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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의 하나님 경험

누가복음 정용섭 목사............... 조회 수 2303 추천 수 0 2012.01.07 12:3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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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눅1:26-38 
설교자 : 정용섭 목사 
참고 : http://dabia.net/xe/563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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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의 하나님 경험

누가복음 1:26-38, 대림절 넷째 주일, 2011년 12월18일

 

신약의 네 복음서 중에서 마태복음과 누가복음만 예수님의 출생 이야기를 다룹니다. 마가복음과 요한복음은 출생 이야기 없이 직접 공생애 이야기로 들어갑니다. 각각 복음서 기자들의 입장에 따라서 신학적인 관심이 달랐다는 뜻입니다.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이 다루는 예수님의 출생 이야기도 모두 똑같은 게 아닙니다. 내용 자체도 다르고 전개 과정도 다릅니다. 그중의 하나는 마리아의 임신 사실에 대한 것입니다. 마태복음(1:18-25)은 주의 사자가 요셉의 꿈에 나타나서 그 사실을 알렸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누가복음은 오늘 설교 본문에서 읽은 대로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직접 나타나서 그 사실을 알렸습니다. 마태복음은 동거하기 전에 마리아가 임신했다는 사실의 근거를 이사야 7:14절을 직접 인용하는 방식으로 제시합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누가복음은 그 내용을 간접적으로 표현합니다.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마태복음에서 요셉의 역할은 미미합니다. 그러나 누가복음에서 마리아의 역할은 적극적입니다. 생동감이 넘칩니다.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가브리엘의 말을 들은 마리아는 이렇게 묻습니다.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눅 1:34)

 

마리아의 처녀 임신 사건은 그리스도교 신앙에서 뜨거운 감자와 같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신자들의 생각은 두 가지로 나뉩니다. 하나는 예수님의 동정녀 출생이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의 증거가 된다는 생각입니다. 하나님이 일으키신 초자연적인 기적이라는 겁니다. 이런 식으로 복음을 전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오늘날 아무도 이런 이야기를 사실적인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믿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성서가 말하려는 사실 자체라고 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전해야 합니다만, 실제로는 그게 아닙니다. 이 이야기는 생물학적인 차원이 아니라 그것 너머의 궁극적인 생명과 능력에 속한 것입니다. 이 이야기에 대한 또 하나의 다른 생각은 동정녀 탄생이 고대인들의 유치한 생각이니까 그리스도교 전통에서 완전히 배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식인 그리스도인들이 주로 그렇게 생각합니다. 어떤 교회는 동정녀 탄생을 언급하고 있는 사도신경을 예배 순서에서 배제시켰습니다. 이것도 어리석은 일입니다. 동정녀 탄생 전승은 비록 신화적인 고대인의 세계관이라는 옷을 입고 있지만 그것을 통해서 어떤 근원적인 사건을 비추고 있다는 점에서 그리스도교의 소중한 영적 자산입니다. 그 근원적인 사건을 누가복음 기자는 어떻게 설명하고 있을까요?

 

하나님의 능력

 

누가복음에 따르면 아들을 낳게 될 것이라는 천사의 말을 전해 듣고 이해할 수 없다고 반문한 마리아에게 천사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눅 1:35) 지극히 높으신 이는 하나님입니다. 마리아의 임신은 하나님의 능력이 임한 것이라는 뜻입니다. 마리아가 아직 요셉과 동거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여기서 핵심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능력이 임했다는 사실에 대한 징표입니다. 동정녀 전승에 대한 신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초창기에 동정녀 탄생 전승 없이 전파되었습니다. 복음서 중에서 가장 먼저 기록된 마가복음과 가장 늦게 기록된 요한복음이 이 사건을 언급하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복음이 특정 지역에 전파되면서 동정녀 전승이 언급되기 시작했습니다. 이 지역은 헬라파 유대인들이 살던 곳입니다. 헬라 신화에서 볼 수 있듯이 위대한 인물들은 출생 자체도 특별했습니다. 이런 생각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예수님의 출생도 특별해야만 했습니다. 결국 동정녀 전승이 그리스도교 신앙에 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핵심은 동정녀 전승이 아니라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입니다.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전제에서 동정녀 탄생이 성립되지 동정녀 탄생이라는 전제에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이 성립되는 게 아닙니다. 위에서 인용한 본문 35절이 이를 간접적이지만 정확하게 언급합니다.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

 

동정녀 탄생처럼 중요한 교리를 사실로 믿지 않으면 도대체 그리스도교 신앙에서 지켜야 할 교리가 무엇이 있느냐, 하고 불안하게 생각할 분들을 위해서 보충 설명을 해야겠습니다. 지금 저는 오늘의 합리적인 사고방식에 위배되는 그리스도교 교리를 모두 제거해야 한다거나 현대적으로 재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게 아닙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의 본질에 천착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성서 시대의 신앙을 바르게 이해하자는 것입니다. 예컨대 구약에 따르면 삼겹살은 먹지 말아야 합니다. 여호와의 증인 교도들을 비롯해서 구약마저 문자적으로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삼겹살을 먹지 않습니다. 그게 무조건 옳은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구약성경이 먹을거리마저 일일이 규정한 이유가 무엇인지를 아는 게 중요합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동정녀라는 사실이 중요한 게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이 마리아에게 임했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그 능력으로 마리아는 하나님의 아들을 임신하고 출산했다는 사실 말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능력은 무엇일까요? 이걸 알아야만 성경을 오해하지 않게 됩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초자연적인 어떤 현상으로 생각합니다. 사람이 할 수 없는 특별한 사건을 해결할 수 있는 능력 정도로 생각합니다. 그런 간증을 직업적으로 하러 다니는 이들도 많습니다. 대개는 망할 수밖에 없었던 사업이 크게 잘 되었다는 식의 이야기입니다. 이런 차원의 신앙에서는 하나님이 마치 슈퍼맨이나 육백만 불의 사나이로 취급됩니다. 그건 오해입니다. 그런 하나님의 능력은 없습니다. 그런 능력을 믿으려면 자본주의를 믿는 게 낫습니다. 제국주의, 승리주의를 믿는 게 낫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무기력하게 보일 때도 많습니다. 별 볼 일이 없어 보이기도 합니다. 단적으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생각해보십시오. 십자가 사건은 그야말로 실패입니다. 초기 그리스도교 당시에 유대인들은 십자가를 거리끼는 것으로, 이방인들은 미련한 것으로 생각했습니다.(고전 1:23) 이것을 아주 실질적인 것으로 생각하십시오.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셨다는 교리에만 머무르면 십자가의 실체를 모르는 겁니다. 인류구원은 십자가 사건에 의한 결과입니다. 예수님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 십자가 처형을 받아들인 게 아닙니다. 임박한 하나님의 통치에 전적으로 의존해서 말씀하시고, 병을 고치고, 싸우시다가 결국 십자가에 처형당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하나님의 개입으로 그 십자가는 인류 구원의 길이 되었습니다. 십자가는 인간의 역사에서 볼 때 무능력이요 실패를 가리킵니다. 지금 저는 여러분에게 인생의 낙오자가 되라는 말씀을 드리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세속적인 차원에서 성공적인 인생을 계획하는데 이용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런 설명이 좀 막연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으신가요? 능력이라고 한다면 뭔가 지금 멋진 게 나타나야 하지 않느냐 하고 말입니다. 그런 분들은 모세가 홍해바다를 가른 것을 생각할지 모릅니다. 유대인들이 여리고와 아이 성을 함락시킨 사건도 기억하겠지요. 예수님이 광야에서 오병이어로 5천명 이상이나 먹이고 남은 것이 열두 바구니에 차고 넘쳤다는 것도 기억하겠지요. 이런 사건들은 성경에 지천으로 널려 있습니다. 저는 지금 승리주의를 연상하게 만드는 이런 성경 이야기가 근본적으로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를 일일이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전체적으로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그 모든 이야기는 사람이 예상할 수 없는 방식으로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주목하라는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사람은 모든 것이 지나간 뒤에나 그것이 하나님의 참된 능력이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것이 역사의 비밀입니다.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당시에는 아무도 몰랐습니다. 나사렛에서 어떻게 선한 것이 나올 수 있을까요? 목수의 아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아들일 될 수 있단 말입니까. 예수님에게 그런 표시는 전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도 몰랐습니다. 기껏해야 엘리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로만 생각했습니다. 예수의 메시아성은 시간이 지난 뒤에나 알 수 있는 비밀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즉 메시아라는 사실을 암시하는 복음서의 진술들은 모두 시간이 지난 다음에 기록된 것입니다. 이미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경험한 이들에 의해서 해석된 진술들입니다. 동정녀 마리아의 임신이 곧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누가복음의 진술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당시에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말씀의 능력 앞에서

 

예수님 당시에 대다수의 사람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전혀 눈치 채지 못했지만, 반면에 예수님을 알아본 이들이 있었습니다. 복음서는 그들을 동방박사, 목동, 예수의 정결의식 때 만났던 시므온과 안나 등이라고 전합니다. 이들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이들입니다. 구약을 읽든지 아니면 천사를 통해서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중의 대표인물이 바로 마리아입니다. 그는 가브리엘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가브리엘은 당혹스러워하고 있는 마리아에게 하나님의 능력을 말하고, 친족인 엘리사벳의 특별한 임신 사실을 전한 뒤에 이렇게 마지막 말을 합니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 하나님의 말씀은 곧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마리아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38절)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 앞에서 인간이 취할 최선의 태도는 바로 이 마리아의 진술입니다. 이 마리아의 진술은 초기 그리스도교의 공통된 신앙고백입니다. 누가복음 기자는 바로 이 사실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이런 고백은 쉽지 않습니다. 대개는 자기 뜻대로 세상이 움직여지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안 되면 못 견뎌합니다. 신자나 목사도 마찬가지입니다. 겉으로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뤄지기를 바란다고 하지만 속으로는 자기의 생각이 더 강합니다. 마리아의 이 대답을 오해하지 마십시오. ‘말씀대로 이루어지이다.’는 체념도 아니고 위선도 아니고 광신도 아닙니다. 하나님을 경험한 사람의 영혼에서만 나올 수 있는 신앙고백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세상을 바르게 뚫어본 사람의 영혼에서만 나올 수 있는 찬송입니다. 당연히 평화와 기쁨과 희망이 가득한 찬송이고, 기도입니다. 여기에 초기 그리스도교의 모든 영성이 담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지금도 여러분 주위에 많습니다.

 

이 고백에서 한 가지 더 주목해야 할 사실은 ‘여종’이라는 단어입니다. 마리아는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 앞에서 자신의 실존을 여종으로 낮추었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교 영성의 중심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한 사람은 여종의 심정으로 돌아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앎이 얼마나 제한적인지 절감합니다. 얼마나 몰염치한 사람인지, 얼마나 교만한 사람인지도 압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한 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즉 하나님의 능력이 ‘내게’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말씀, 즉 하나님의 능력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이 오신 날인 성탄절인 일주일 후로 다가왔습니다. 예수를 임신하고 낳은 마리아의 고백이, 즉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한 마리아의 찬송이 오늘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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