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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알지만 모른 척 하기

요한일서 허태수 목사............... 조회 수 2019 추천 수 0 2012.01.08 23:5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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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요일4:7-12 
설교자 : 허태수 목사 
참고 : 춘천성암교회 http://sungamch.net 

사랑, 알지만 모른 척 하기
요일 4:7-12

*추석은 왜 설레는 걸까요?
  밝은 달이 만물을 슬쩍슬쩍 그의 밝지 않은 빛으로 감춰주기 때문입니다.
  사람들도 너나없이 이 때 만큼은 까발리지 않고 슬그머니 넘어가는 아량을베풀기 때문입니다.
  그게 우주요, 하늘이요, 사랑인 까닭입니다.
  그 걸 눈치채고 살아가는 사람은 하나님의 자식입니다.
  '나는 사랑이다'
  이 말을 하시는 하나님의 속내를 읽기 위해서 준비되었습니다.

아침신문에(경향신문 2008년 9월4일자 매거진 10쪽), 김어준이라는 이가 젊은이들의 고민을 듣고 답하는 코너가 실렸습니다. ‘사랑에 관한 몇 가지 오해’가 작은 제목입니다. 어떤 친구가 이렇게 묻습니다.

“여친은 차분하고 합리적입니다. 그런 그녀가 갑자기 어학연수를 가겠다고 하더군요. 일 년 연애 동안 얼핏 언급은 했지만 구체적으로 말 한 적은 없었기에 당황했죠. 왜 미리 말하지 않았느냐니까 유학원 거치지 않고 직접 하는 거라 언제 될지 몰랐고 기간도 1년에 불과한데 뭐가 걱정이냐는 겁니다. 하지만 이 중요한 문제를 숨긴 채 혼자 결정한 그녀에 대한 믿음이 예전 같지 않습니다. 사랑한다면 모든 걸 함께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나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사랑은 모든 걸 함께해야 하는 건가요? 아니 좀 더 좁혀서 말하면, 상대방의 전부를 시시콜콜 점검하고 간섭하고 주장해야 되는 건가요? 그게 사랑인가요?

오늘 본문 8절과 16절은 거듭하여 “하나님은 사랑이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대개 이 구절을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의미로 이해하죠. 그러나 그런 의미라면 “하나님은 사랑하신다”고 하면 되는데, 어찌하여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고 하여, 하나님과 사랑을 동격으로 놓을까요? 하나님의 이름도 함부로 부르지 못하는 유대 관습을 생각할 때, 하나님을 사랑이라는 추상명사와 동격으로 놓는 데는 그 만한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존재 방식을 새롭게 이해했음을 의미하는 거예요. 이전에 그들은 하나님은 저 하늘 위에 계시다고 생각했고, 전지전능하고(창 17:1, El Shaddai) 무소부재한 분(시 139:1-10)으로 생각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는 표현은, 아브라함이 늙고 약한 처지에 있을 때 그를 위로하고 격려하는 맥락에서 하신 말씀이죠.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서 종살이를 하던 때, 그들이 스스로 서는 것이 중요했을 때, 하나님은 모세에게 “나는 스스로 있는(서게 하는, 있게 하는) 나다”라고 자기를 계시하셨습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하나님은 새롭게 자신을 계시하셨는데, 그것이“하나님은 사랑이시다”는 말입니다. 그 의미는 10절에서 분명해지는데,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당신의 아들을 보내 주시고, 우리의 죄를 속하여 주시려고 속죄제물이 되게 해주셨다는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 이해는 “전능하신 하나님”이해와는 다르죠.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는 표현의 의미는 “하나님도 못 하시는 것(할 수 있지만 일부러 하지 않는. 슬쩍 눈감아 모른 척 하는)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예수께서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라면, 십자가 밑의 병사들이 “네가 메시아면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라” 했을 때 하늘의 군사를 동원하여 왕으로 등장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겟세마네동산에서는, “할 수 있으면 이 잔을 내게서 물리쳐 주십시오”라고 기도했지만, 그 기도가 응답되지 않았습니다. 예수는 자기 뜻대로 못하는 게 없는 분이십니다. 그래도 자기 뜻을 꺾고 하나님께 순종하여 십자가를 진 것은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바로 이 십자가 사건 때문에 사람들은 이제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하고 깨닫고 고백하게 된 것입니다.

전능이 꼭 좋은 것은 아닙니다. 전지전능한 존재 앞의 인간은, 마치 사방에 몰래 카메라를 설치해 놓은 거리에 서 있는 사람과도 같습니다. 밤이 되어도 불이 꺼지지 않는 가로등 옆의 나무와 같다 하겠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피곤한 것인지 알지 못하고 우리는 무턱대고 하나님을 전지전능하다고 치켜세웁니다. 과연 그것이 하나님을 진실하게 높이는 것인지 반성해 봐야 됩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자주 “하나님, 우리를 눈동자처럼 지켜주소서”라고 합니다. 이는 신명기 32:10 말씀인데, 몸에서 눈이 가장 중요하듯 이스라엘을 그렇게 소중히 지켜 주신다는 뜻이죠. 그런데, 많은 이들이 이 구절을 하나님이 감시하는 큰 눈동자처럼 눈을 번뜩이며 우리를 지켜 주신다는 뜻으로 오해를 하곤 합니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의 이미지를 감시자 또는 형리(刑吏)의 이미지로 일그러뜨리게 되는 것입니다. 주일학교 노래 가운데 “예배시간에 떠드는 아이(장난꾸러기) 예수님이 보시면 뭐라 하실까... 아니 아니 안 돼요. 예수님이 화내실 거야”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전지전능한 감시자로 만드는 노래죠. 아이들은 그런 노래를 들으면서 예수님을 두려워하게 되고, 자꾸만 죄의식을 키우게 됩니다.

어릴 때 집에서 기르던 토끼가 자꾸 입으로 자기 털을 뽑아서 자리에 깔고 그러더니 새끼를 여러 마리 낳았습니다. 새끼들 모습이 하도 궁금해서 토끼집을 가끔 들춰 보았는데, 그래선지 새끼들이 다 죽었습니다. 어른들이 설명하기를, 불안해진 어미 토끼가 새끼들을 물어 죽인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저 가만히 덮어두었으면 시간이 지나고 예쁜 토끼들이 나타났을 것인데, 그런 걸 잘 모르고 조급하게 열어본 것이 후회가 되었습니다.

우리 자녀들도 그냥 덮어줘야 할 때가 있습니다. 좀 속아주고 묻어줘도 때가 되면 스스로 깨닫게 됩니다. 선도나 훈육선생처럼 가방 뒤지고 일기장 검사, 편지 검사, 이메일 검사까지 하겠다고 하는 학부모는 스스로 ‘전지전능한’ 부모가 되려고 하는 겁니다. 그보다는 ‘사랑하는’ 부모가 되어야 합니다. 사랑은 모르는 게 있는 겁니다. 사랑은 공개가 아니라 덮어주는 겁니다. 하나님은 우리 죄를 덮으시기 위해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는 말씀은 ‘하나님도 모르시는 게 있다’는 의미일 수 있습니다. 아니. 하나님은 잘 덮어 주시는 분이라는 겁니다.

예수는 창녀, 간음한 자, 반역자, 세리, 죄인의 비밀을 묻어주고 건드리지 않았습니다. 바리새파와 율법학자들은 그들을 번번이 죄인으로 정죄하고 따돌렸습니다. 그들에게는 비밀이라는 게 없었습니다. 그들은 현미경으로 보듯이 그들을 들여다보고 판단하고 정죄했습니다.

자식에게 늘 공부 얘기만 하고, 약점만 공격하면 반감만 높아집니다. 부부간에도 절대로 건드려서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걸 지켜 주는 게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남을 정죄하거나 판단하는 것을 못하게 하셨습니다. 남을 판단하면 자신도 판단을 받습니다. 남의 눈의 티보다 자기 눈의 들보를 먼저 보라고 하셨습니다. 간음죄로 한 여인을 정죄하려는 사람들에게 죄 없는 자가 돌로 치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죄인이며 누구도 다른 사람을 정죄할 수 없는 존재임을 가르치셨습니다.

늘 비유로 가르치신 것도 그렇습니다. 비유는 분명하게 말하는 대신 약간 감추는 방식이죠. 전지한 존재 같으면 한 마디 말로 깨달음을 주어서 명령하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웃을 사랑하여라” 하고 명령하시는 대신에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를 들려주셔서, 진정한 이웃 사랑을 느끼게 하시고, 스스로 깨닫도록 초대하셨습니다. 숭고한 하늘의 진리를, 잃은 양, 잃은 돈, 장사꾼, 누룩, 씨 뿌리는 농부 등등 가장 평범한 단어들 속에 담으셨습니다. 전능하신 분의 뜻이 무식한 농부와 잇속 차리는 장사꾼의 삶에서 나타나게 하셨습니다. 예수는 이런 식으로 평범한 것들, 작은 사람들을 초대하고 사랑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는 말씀의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이런 큰 사랑을 받은 사람들은 또한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11절). 그 사랑의 방식도 이미 정해졌습니다. 우리도, 스스로 ‘전능’을 버리고 못하는 것 많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스스로 ‘전지’를 버리고 모르는 게 많고, 알아도 말 못하고, 덮어주고 비밀을 간직해주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스스로 ‘무소부재’를 버리고 제한당하고 못 가는 데가 많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한다”는 말의 의미일 것입니다.

바리새파와 율법학자들은 자신들이 율법 전문가이고 모르는 것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죽게 만드는 가시 돋친 말들을 많이 했습니다. 소외된 작은 사람들에게 “세리와 죄인”이라는 별명을 붙이고 손가락질하였습니다. 예수님에게도 “술꾼, 먹보, 귀신들린 자” 등등 악의적 칭호들을 갖다 붙였습니다. 예수께서 병을 고치시면 왜 안식일에 고치느냐고 트집 잡고, 흥겹게 잔치를 하면 왜 요한의 제자들처럼 금식을 안 하느냐면서 시비를 걸었습니다. 세례 요한이 금식을 하니까 이번에는 그가 귀신이 들렸다 하고, 예수께서 능력 있는 일들을 행하시니까 바알세불에 지폈다고 모함을 하였습니다.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에서 남자 주인공(잭 니콜슨 분)은 강박증 환자이자 유명한 소설가입니다. 사랑을 찬미하는 소설을 쓰면서도 아무에게나 심한 독설을 퍼붓기 때문에 아무도 그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오직 그가 즐겨 찾는 레스토랑 종업원(헬렌 헌트 분)만이 그를 상대해 줄 뿐입니다. 그 여자의 인내와 친절에 감동한 그는 마침내 사랑을 고백하게 되고, 그 여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남자로부터 찬사를 듣고 싶어 합니다.

여: 칭찬 한 가지만 해봐요.
남: 정신과적인 문제가 있는데... 얼마 전부터 약을 먹기로 했어요. 약을 먹으면 좋아질 수 있대요.
여: 그게 무슨 칭찬이에요?
남: 당신은 내게 더 좋은 남자가 되고 싶게 만들었어요.
여: 내 생애 최고의 칭찬이에요.

이런 언어는 우리를 감동하게 하고 들뜨게 합니다. 행복하게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가까이 계시고 싶어서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보내신 분입니다. 그렇게까지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에게 관심이 많으신 분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무소부재하신 하나님, 하면서 자꾸 하나님을 먼 곳으로 밀어 놓는 것은 하나님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거부하는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사랑이 불가능한 사람들이지만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해주셨기 때문에 우리도 사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전능을 버리셨고 못하는 게 있으십니다. 모르는 게 있고 갈 수 없는 곳이 있으십니다. 그렇게까지 먼저 우리를 사랑해 주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도 못하는 것, 모르는 것, 갈 수 없는 곳이 있음을 인정하고 겸허하게 서로 칭찬하고 격려하고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믿어주고 덮어주고 기다려주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이런 사랑으로 살아서 우리 가운데 임재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거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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