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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 허물기

마가복음 허태수 목사............... 조회 수 1933 추천 수 0 2012.01.08 23:5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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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막5:33-34 
설교자 : 허태수 목사 
참고 : 춘천성암교회 http://sungamch.net 

벽 허물기
막5:33-34

제가 아주 어릴 때 아버지가 짓는 흙벽돌집을 구경 한 적이 있습니다. 흙벽돌을 찍기 위해 진흙에다가 지푸라기를 잘라 넣고 발로 밟는 일도 얼마간 도와 드렸고, 흙벽돌로 벽을 쌓고 고물을 누를 때에는 흙덩이를 주먹만 하게 뭉쳐서 지붕위로 휙휙 던지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돌이나 벽돌을 쌓는 조적식 구조법(組積式構造法)에서는 먼저 벽을 만든 후에 지붕을 얹지요. 이 때 벽이라고 하는 것은 외력(外力)이나 자중에 견디고, 그 건물의 형태를 유지하는 기능을 가지는 주체구조입니다. 아주 중요한 역할을 벽이 한다 그 말입니다. 벽을 쌓고 지붕을 올리고 문을 단 후에 집으로 들어가 보면 [벽]이라는 게 공간을 나누고, 소통을 막고, 빛을 차단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즘처럼 철근콘크리트구조·철골구조와 같은 가구식(架構式) 구조를 많이 사용하게 되면서 구조의 주체는 기둥이나 보가 되고 벽은 구조학적으로는 크게 중요한 것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유리를 많이 사용하므로 벽이 필요 없고, 맘대로 창을 낼 수 있어서 단절을 거부하고 소통을 극대화 시킵니다. 저는 이런 현대의 건축 양식을 보면서 예수 믿는 사람들의 의식과 삶의 방식 또는 가치가 이렇게 달라졌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을 하곤 합니다.

몸을 눕혀 사는 건물을 지을 때는 벽을 최소화 하고 창을 내고 자연과 일체화하려고 하면서, 우리들의 영혼과 정신이나 가치는 아직 자신에게나 서로에게 벽이 많습니다. 아니 어떻게 보면 더 크고 단단한 벽을 첩첩으로 쌓아가고 있다고 봅니다. 가끔 어떤 아파트로 심방을 가게 되면 아파트의 초입에서부터 비밀번호를 눌러야지만 현관문이 열리는 것을 보면 당황스럽습니다. 그리고 답답해집니다. 그보다 더 비싸고 고급스러운 곳에서는 아예 주민등록을 대조해야 한다고도 합니다. 물리적인 생활의 벽은 허물어 내고 통유리로 바꾸면서 정신의 벽, 관계의 벽은 더 탄탄히 쌓는 배반적인 삶의 단면이 있는 게 사실 아닙니까?

이렇게 보이지 않는 내면의 정신적이고 영적인 벽이 많아지기 때문에 정신과적인 질병이 늘어나는 게 아닌가도 생각해 봅니다. 불안과 우울, 대상을 알 수 없는 짜증과 공격심 같은 것들이 모두 '자신이 갇혀 있다'는 폐쇄성의 불안에서 오는 게 아니겠어요? 사람들은 모두 벽 없는 친근감 속에 살기를 원하지만, 생각과는 반대로 세상이 쌓아가는 벽돌 속에 갇히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러는 가운데 스스로도 자기를 방어하고 보호하기 위해 벽을 쌓아야만 하는 모순이 반복되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러다보면 더 높은 벽을 쌓음으로만 존재를 확인하게 됩니다. 사람들은 그러면서 벽을 보호막이자 은신처이며 안락이라고 생각 할 것입니다.

누구나 벽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그 자신의 벽이 그를 보호하는 게 아니라 형벌을 가한다는 것입니다. 벽이 허물어지면 더욱 큰 형벌이라고 생각하면서 더욱 단단한 벽을 구축하고 그 속에 깊이 갇히게 됩니다. 누구나 사람은 작고 큰 벽을 가지고 삽니다. 그리고 그 벽을 허물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벽을 쌓는 일이 때론 나를 지탱시켜주는 힘이기도 하지만, 그것을 허무는 일 또한 첩첩이 쌓인 인간사의 유용한 기술이기도 하다는 것을 말입니다. 신앙인은 자신을 구축하고 보호하려고 하는 이 유무형의 벽을 자발적으로 허무는 능력을 하늘에 구해야 합니다.

이제 벽에 관한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성서 본문의 사건 하나를 보겠습니다. 우리가 읽은 막 5:33-34의 이야기가 그것입니다.          

예수님은 어느 신실한 회당장의 죽어가는 딸을 고치기 위해 서둘러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많은 군중이 혼잡하게 그의 뒤를 따랐을 겁니다. 그 때 한 여인이 조심스레 그의 옷자락을 만집니다. 그 옷자락에서 신령스런 기운이 자기에게 옮겨 오기를 바라면서 말입니다. 이 여인이 어떤 형편에 있었습니까? 그렇습니다. 12년 동안이나 하혈증상으로 고생하던 여인이었습니다. '열 둘'이라는 숫자는 하나의 상징입니다. 회당장의 딸도 열 두 살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열둘은 마치 우리의 12지간처럼 하나의 순환고리입니다. 출발이자 끝이라는 말입니다. 열둘로서 하나의 완성이 일어납니다. 미성년자는 열 두 순환에 성인이 되고, 각 지파는 열둘로써 한 민족을 이루며, 열둘의 배수는 구원받은 이들의 수이기도 하지요.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열두 해를 앓았다는 것은 이 질병이 그녀의 평생을 사로잡고 있는 견고한, 무너뜨릴 수 없는 벽이었음을 말해줍니다. 뭘로도, 누구도, 어떤 방법으로도 무너지게 할 수 없는 두껍고 두꺼운 벽이었습니다.

하혈이라고 하는 것은, 그 자신의 고통만이 아니라 사회적인 고통 또한 극심한 것입니다. 남자를 가까이 할 수 없고, 자녀를 낳을 수 없는, 가뜩이나 여자가 사람이하로 천대받던 시절에서 이런 상황은 그녀로 하여금 사람 인 것을 불가능하게 하는 외부적인 조건이었습니다. 그녀가 사람의 세계로 진입하기란 참으로 너무나 멀고 두꺼운 벽으로 가로막힌 세상이었습니다. 이 여인에게 심판은 벽 그 자체였습니다.  그 벽이 마침내는 스스로 세상과 벽을 쌓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거기에 가두어 버렸을 것입니다.

이런 여인 앞에, 높고 두꺼운 절망의 벽 앞에 누가 나타나셨습니까?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거기 오신 겁니다. 그리고 여인은 예수 앞에 나타납니다. 예수에게 나아가는 벽을 허뭅니다. 그러나 벽이 허물어지리라고는 생각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여하튼 벽속에 갇혀 지내던 여인은 예수에게 손을 내밉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그녀에게로 돌아섭니다. 그리고 선언합니다.

"그대의 믿음이 그대를 구원했소."
벽이 허물어지는 순간입니다. 예수님의 기적 행위에서 이런 표현은 병행 본문을 빼면 4번 나옵니다. 본문 외에, 한 번은 창녀에게(눅7:50), 한 번은 거지에게(막10:52),그리고 한 번은 나병환자(눅17:19)에게입니다. 모두가 자폐적이고 사회적인 단단한 벽에 갇힌 사람들에게 일어났던 일입니다. 의롭기는커녕 정죄 받아 마땅하다고 평할 것이 뻔한 세상의 벽, 그리고 스스로도 그렇다고 고백하는 자발적인 자폐의벽에 갇힌 그들에게, 그녀에게 해방을 선언하신 겁니다. 옷자락만 만져도 병이 나을 수 있다는 놀라운 능력을 위세하지 않으시고 당신의 행동이 당신을 구원했다고 하십니다. 지금 하나님은 성령을 통해 이 말을 우리들에게도 들려주고 싶어하십니다.

지금 우리는 우리들 각자가 자폐의 높은 벽을 쌓아 놓고 거기 웅크리고 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우리들 곁을 왔다갔다 하고 계십니다. 우리들의 벽을 배려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쌓은 그 벽을 허물 수 있게 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리고 그는 말씀하셨습니다.
"평안히 가시오"          

이제는 벽이 그를 괴롭히지 않을 거라는 뜻이지요?
우리도 그렇게 되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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