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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으로 살고 싶습니까?

고린도전 허태수 목사............... 조회 수 2277 추천 수 0 2012.01.08 23:5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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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고전13장 
설교자 : 허태수 목사 
참고 : 춘천성암교회 http://sungamch.net 

어떤 사람으로 살고 싶습니까?
고전13장

2009.3.1


요즘 사람들은 어떤 사람으로 살고 싶어 합니까? 좀 더 범위를 좁혀서, 요즘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사람이길 꿈꿉니까? 뭐, 교회 안이나 밖이나 많이 가지고(지식, 소유, 권력, 명예)싶어 하지 않을까요? 고린도전서 13장은 바울당시의 기독교인들이 꿈꾸던 것들이 어떤 것이지를 말해줍니다.  

바울이 살던 초기교회의 사람들이 가장 되어 보고 싶었던 것은, 사람을 매혹시킬 만큼 말을 잘 하는 것이었습니다. 말을 잘 해서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 말을 이해하고, 인식하고, 그리고 행동으로까지 옮겨질 수 있는 그런 달변가가 되었으면 하는 게 꿈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때는 수사학(현대의 웅변학)이라는 것이 가장 인기 있는 학문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웅변가가 되지 못하면 적어도 그런 사람들의 말을 듣는 것을 기뻐했습니다.

그 다음으로 바울 시대의 교우들이 바라는 삶은 '예언'과 같은 신비스러운 지식을 갖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산을 옮길 만한 완전한 믿음의 능력을 갖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어떤 삶을 꿈꿨을까요? 자기의 소유를 모두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결단성이었습니다. 초대교회의 재산 헌납은 예수 신앙공동체의 덕목이 되어 있었습니다. 마치 김수환 추기경이 각막을 이식하고 세상을 뜨자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참 좋게 여겨 자기도 그렇게 했으면 하는 것처럼, 초대 교회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재산의 전부를 나눠 주는 결단'은 믿음 있는 사람의 최고의 행위였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와 같은 바람들을 일시에 제거해 버립니다. 천사의 말을 한다 해도, 예언과 같은 신비함을 갖고, 산을 옮기는 믿음의 완전한 능력이 있다 해도, 재산만이 아니라 자신의 몸까지 불사르게 내어준다 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사실 고린도 교회 교인들은 단지 ‘자기’를 내 세우기 위해서 그런 것들을 바랄 뿐만 아니라 실천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말합니다. 사랑으로 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신앙 행위가 필요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하되 사랑으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또 있습니다. 이 사람들이 그런 행위를 하면서 ‘사랑’을 말한다는 것입니다. 그게 이제 4절에서 6절까지입니다.
  
그는 말합니다. 사랑은 뭔고 하니 '오래 참는 거'다. 여기서 '오래 참는다'는 말은 무작정 참고 기다리는 게 아니라 '자기를 스스로 고통 가운데 오래 집어넣는'것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그것을 지탱 하고 유지하는 것입니다. 그는 또 말합니다. 사랑은 '친절'이라고 말입니다. 기분이 좋아서 살랑댄다는 말이 아니라 ‘내가 너를 위해서 고통을 받아도 좋다’는 뜻입니다. '너를 위한 것이라면 어떤 고통도 받겠다'는 게 친절입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는 것'이랍니다. 시기는 자기 이기심에서 나오는 것이니까 시기하면 내가 사랑하지 않는 증거입니다. 그리고 '교만하지 않는 것'입니다. '네가 나보다 못하다'라든지 '내가 너보다 낫다'는 생각이 일체 없는 걸 말하는 겁니다. 사랑은 '무례하지 않는 것'입니다. 상대방의 감정을 상하지 않게 하는 것, 상대방이 이해되지 않는 그런 행위를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다는 말이 근사치가 되겠습니다. 사랑은 '자기 것을 구하지 않는 것' 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사랑은 '성내지 않는 것' 이랍니다. 성내지 않는다는 말은 여러 경우로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성을 낸다는 것은 내가 상대방을 실제로 내 안에 용납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사랑은 '악을 생각지 않는 것'입니다. '원한을 품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내가 너를 생각할 때, 사랑하면 할수록 내가 그와의 관계에서 좋던 일만 생각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서 ‘사랑’으로 한다고 포장을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하는 ‘자기’를 위해 하는 짓이라는 말입니다.

그러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되려고 하지 말고 이런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사랑은 불의를 기뻐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불의를 절대로 즐거워하지 않는다는 말은 너를 범죄 속으로 끌어들이지는 않는다는 말입니다. 상처를 주려고 내 속으로 끌어들이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사랑하면 할수록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려는 노력이 언제나 앞서도록 되어 있습니다. 내가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면서도 사랑을 만끽하겠다고 그러면 그것은 사랑하지 않는 증거입니다. 아니, 나는 의외로 상대방의 원수가 되고 있습니다. 이런 것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것을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서 보고 있고, 세상에서도 봅니다. 아니, 참 사랑을 한다면 그들은 함께 기뻐해야 합니다. 여기에 ‘더불어’라는 말이 꼭 들어가야 이해가 됩니다. 너를 불의 속에 몰아넣으면서 내가 행복할 길은 없는 것입니다. 네 불행이 내게 행복이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네 불행이 내게 행복이 된다면 그것은 진짜 사랑이 아닙니다. 그것이 이성에 대한 사랑이든, 우정이든, 민족애든 간에 그렇습니다. 그와 내가 함께 진리 안에서 행복하거나 행복하게 될 때 그 사랑은 참 사랑이 될 것입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덮어주다'는 말은 모른 척 하거나 해 준다는 뜻이 아니라 '모든 것을 지탱'한다는 뜻입니다. 죽음이나, 배신이나, 절망이나, 어떤 것이든지 지탱하게 해 줍니다. 그게 사랑입니다. '모든 것을 지탱한다'는 말은 무엇을 '짊어지고 나간다'는 말입니다. 사랑은 오늘 잠깐 하고 마는 것이 아니고 즐거울 때만 웃는 게 아니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있을수록 사랑은 빛이 나게 되어 있습니다. 사랑은 고난의 역경을 밟으면 밟을수록 그 자체가 확실해집니다. 또 사랑은 어려운 때가 오면 올수록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것을, 거꾸로 상대방이 날 사랑한다는 것을 알게 하는 것입니다. 고난은 우리 사랑을 시험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 말은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내 사랑은 끝끝내 지속하고 지탱이 되는 것, 그것이 사랑입니다. 여기에 쓰여진 헬라어의 “스테게(stege)”라는 말은 '지붕'이라는 어원이 있습니다. 집은 지붕이 있어서 집이 됩니다. 이처럼 언제나 지속적으로 지붕 역할을 해 줘야 비도 안 맞습니다. 그처럼 지붕이 되어 주는 것, 그래서 덮어 준다는 말을 하는 겁니다. 지붕은 지속적으로 거기에 있어줍니다. 어려운 일이 있어도,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언제나 덮어줍니다. 그게 참 사랑이라 는 것입니다. 사랑은 즐거울 때만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괴로울 때, 조금 더 나아가서 상대방이 내게 괴로움의 존재가 될 때,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어질 때(그것이 없으면 편안하긴 하지만)바로 그런 존재를 향해서 내 마음을 여는 것입니다. 그래야 사랑은 단련되고, 사랑이 입증 되고, 사랑이 참이냐 아니냐를 확증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나는 이만큼 했는데 상대방은 그렇지 않더라. 그러니까 우리 관계가 이렇게 됐다. 그 말은 벌써 사랑을 포기한 것입니다. 사랑이 증오로 변하게 된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사랑은 잠깐이 아니고, 지속적으로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고통스러우나 즐거우나 감싸주는 게 그게 사랑입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믿는 것입니다.
참 사랑은 모든 것을 믿습니다. 이것을 줄줄 외울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교회에 오는 사람들, 특별히 예수 믿는다는 사람들의 이 말은 너무 형식화되어서 의미가 퇴색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기독교적인 의미에서 늘 하는 '믿는다'는 말이 아닙니다. '나는 너에게 속을 줄 안다'는 말입니다. 속지 않으려고 하면 그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믿는다는 말은 속을 각오를 이미 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사랑은 속겠다는 뜻입니다. 사랑은 어떤 경우에도 믿는 것입니다. 어려운 이야기입니다. 예수는 모든 경우에, 마지막에 철저하게 배신을 당했을 때도 제자들을 끝끝내 믿었습니다. 네가 나를 버릴 것이라고 알고도 그 믿음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내가 부활하면 네가 반드시 나를 찾아올 거라고 확신했습니다. 불신을 그대로 신뢰한 것, 불신 속에서 신뢰한 사건이 부활의 사건입니다. 그래서 부활이 사랑의 완성이 되는 겁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는 철저히 불신 속에서 배신을 받고 죽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사랑이고 믿음 이란 걸 가르치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는 믿음의 창조자입니다. 하나님께 절규했어도 아무 응답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아무도 십자가의 예수를 돕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오죽하면 "왜 나를 버리십니까?" 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예수님은 여전히 '나의 하나님' 하고 믿습니다. 그게 [사랑]입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바라는 거랍니다.
'모든 걸 바란'다는 말은 너를 완성품으로 보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다 된 사람으로 보지 않고 가능성의 사람이라고 믿는 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내 앞에 잘못을 저지르는 것을 볼 때 "너는 질적으로 틀려먹었어." 하고 선언해 버리면 그땐 사랑이 정지되는 순간입니다. 부부관계나 부모와 자식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틀렸어 너는. 너는 희망이 하나도 없어. 너는 꽉 막혔어"하고 포기하면 그 순간 그 사랑은 정지되는 것입니다. 그 대신 "너는 달라질 거야" 아니면 "내 이해가 달라질 거야. 그러면 너와 나와의 관계는 달라질 거야. 꼭 달라질 거야." 이것이 [바람] 즉 [바란다]는 말입니다. "나는 네게 기대를 걸어. 너는 가능성이 있어" 그런 뜻입니다. "아직도 너는 달라질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어. 네가 나를 열 번 속였지만 그러나 나는 네가 다시 달라질 것을 믿어"그겁니다. 그게 '바란다'는 말입니다. "너는 반드시 나를 이해할 때가 올 거야. 내가 너를 이해할 때가 올 거야. 지금 모습은 아닌 것으로 변할 날이 올 거야" 그런 겁니다.

그 다음에는 모든 것을 견디는 것이 사랑이라고 합니다.
무엇이든지 견딘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시간성 이라기보다는 아픔의 농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네 아픔을, 네가 내게 준 아픔을 견디어 내는 것입니다. 그 깊은 아픔을 어떻게 이겨내느냐 하는 것이 내 사랑이 참 사랑이냐 아니냐를 입증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으로 사는 게 가장 으뜸 된 삶이고, 이것을 사모하고 실현하기위해 분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13절을 쓰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 소망(바람),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가운데 으뜸은 사랑입니다" 믿음과 바람, 사랑, 이 셋은 사람이 제대로 살고자 할 때에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바울은 말합니다. 그리고 그 중에 사랑을 기둥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고 따르는 교회 공동체의 구성원이라면 이런 사람이 되는 것을 목표 하라는 것이 바울의 권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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