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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읽는 어른은 순수합니다

동화읽는어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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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초등학교 5학년 2반 이기자 여사님 - 박주혜

 

우리 엄마는 똑똑하다.

“고등어를 잡았다고 할까? 멸치를 잡았다고 할까?”

엄마가 연필로 머리를 긁적이며 말한다. 나는 솔직히 둘 다 싫다. 하지만 엄마는 둘 다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아마 고등어와 멸치를 앉혀놓고, 몇 시간이 걸리더라도 설득을 해서 둘 다 잡아 올 것이다.

“고등어는 너무 거짓말 같지? 우리가 잡은 게 멸치니까, 그냥 멸치로 하자.”

엄마는 금세 글짓기에 몰두한다. 사각사각, 연필이 종이를 괴롭히는 소리가 들린다. 엄마가 내게 쏟아붓는 잔소리 같다.

엄마는 지금 바다사랑 글짓기를 하고 있다. 어쩌면 또 글짓기 대회에서 일등을 할지도 모른다. 엄마는 엄청 똑똑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뭐든지 잘한다. 불조심 포스터, 과학의 날 표어, 환경 독후감 대회, 방학숙제 잘하기…. 그중 최고는 글짓기다.

“그래도 이번 휴가 때, 바다에 다녀와서 그런지 훨씬 쓰기가 쉽다. 그치?”

엄마의 손끝에서 꼬불꼬불, 지렁이들이 태어난다. 이번 휴가 때 동해바다에 가서 멸치를 잡은 이야기를 쓰고 있나 보다.

“그래?”

나는 관심 없다는 듯 대답했다. 솔직히 관심이 없다. 엄마가 이렇게 글짓기를 열심히 할 줄 알았다면, 나는 아빠사랑 동시대회에도 나가지 않았을 것이다.

삼학년, 수업시간에 아빠에 관한 동시를 썼다. 선생님은 내 동시를 칭찬해 주었다. 잘 쓴 시를 뽑아서 전국대회에 내보낼 것이라고도 했었다. 그런데 내가 거기서 상을 받아버린 것이다. 그것도 이등을 말이다. 엄마는 그때부터 글짓기에 온 힘을 쏟았다. 대회란 대회는 모두 참가했다. 물론 모든 작품은 엄마가 썼다. 그러고는 항상 내게 이렇게 말했다.

‘달희야, 너는 공부만 잘하면 돼. 이런 건 엄마가 쓸게!’

엄마가 내 이름으로 응모를 하는 작품들은 거의 상을 탔다. 상도, 상품도 아주 다양했다. 엄마는 내가 상을 받을 때마다 정말 좋아했다. 내가 할 일은, 엄마 대신에 조회 때 단상 위에 올라가 상을 받는 것이다.

학교 친구들은 내가 뭐든지 잘하는 줄 안다. 내가 잘하는 게 아니라, 엄마가 잘하는 건데 말이다. 엄마가 한 모든 것들이, 내 것이 되어 버렸다. 나는 글짓기도 싫고, 그림을 그리는 건 더욱 싫다. 피아노와 플루트는 재미가 없고, 그중 제일 재미가 없는 것은 공부다. 시험 때마다 서점에 나온 문제집들을 모두 사서 푸는 것은 정말이지 끔찍한 일이다.

“선생님이 월요일까지 글짓기 가져오래.”

“알았어. 그래서 지금 하고 있잖아. 걱정 마. 넌 나가서 공부나 해.”

엄마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대답했다. 글짓기에 푹 빠진 것이다. 나는 거실로 나왔다. 빨리 집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엄마는 나를 보면, 항상 공부하라는 말밖에 하지 않는다. 엄마는 나를 속속들이 잘 알지만, 내 진짜 속은 모른다. 나는 뭐든지 잘하는 엄마가 부담스럽다. 엄마가 나는 아니니까.

베란다에서 문주란이 땀을 뻘뻘 흘리고 있다. 문주란은 엄마가 제일 아끼는 화분이다. 신혼여행을 갔을 때, 기념으로 사온 화분이기 때문이다. 나는 베란다로 통하는 거실 문을 살짝 열었다. 문주란도 에어컨 바람을 맞으면 좀 시원할 것 같아서였다. 하지만 여전히 땀을 뻘뻘 흘리는 것 같았다. 반짝이는 햇볕에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거실의 벽시계는 네 시를 가리켰다. 영어학원은 다섯 시 반까지 가야 한다. 나는 살금살금 내 방으로 향했다. 책상 옆에는 삼십 센티미터 자가 있다. 엄마는 다양한 용도로 자를 사용한다. 불조심 포스터에서 글자 구도를 잡을 때, 과학의 날 표어에 글자를 쓸 때, 또 나를 혼낼 때 사용한다. 하지만 나는 엄마와는 다른 용도로 자를 사용한다. 운동화에 붙은 껌을 뗄 때, 풀기 싫은 문제집에서 티 나지 않게 한 장을 잘라 낼 때, 또 시계를 돌릴 때이다.

까치발을 들고, 자를 올렸다. 정각을 가리키는 분침을 자로 살살 건드렸다. 분침을 한 바퀴 돌리자 다섯 시가 되었다. 이제, 학원에 갈 시간이다. 나는 다시 자를 제자리에 갖다 두었다. 그러고는 학원에 갈 가방을 챙겨 거실로 나왔다.

“엄마! 나 학원 간다.”

“벌써?”

엄마가 재빨리 방에서 뛰어나왔다. 나는 시계를 가리켰다.

“벌써 다섯 시가 된 거야? 어머머, 글짓기를 하다 보니까 시간이 후딱 가네. 얼른 저녁 준비해야지. 달희야, 가서 영어공부 잘하고 와. 엄마가 맛있는 저녁 해 놓을게!”

엄마는 나를 배웅했다. 오늘도 성공이다.

역시 바깥 공기는 뜨거웠다.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뜨거운 공기가 가슴속으로 흘렀다. 답답했던 가슴이 조금은 뚫리는 것 같았다.

“유달희!”

세희다. 세희는 나와 제일 친한 친구이다. 내 비밀을 가장 많이 알고 있는 친구이기도 하다. 우리는 같은 영어 학원에 다닌다. 세희는 영어를 아주 잘한다. 다른 건 잘 못하는데, 영어 하나는 정말 잘한다. 때로는 세희가 부럽다. 나도 뭐 하나만 잘했으면, 조금 편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대답 않고, 세희를 보며 웃었다.

“선생님이 말한 글짓기 잘하고 있어?”

“…응.”

제일 친해도 엄마가 내 대신 글짓기를 해준다는 이야기는 못 했다.

“이번에도 잘해서 또 상 받으면 좋겠다. 그치? 그럼 이번엔 네가 떡볶이 쏴!”

세희가 장난스럽게 웃었다. 세희는 얼마 전, 영어 말하기 대회에서 일등을 했다. 그래서 나에게 떡볶이를 쐈다. 나는 맛있게 먹었지만, 엄마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세희가 나보다 영어를 잘하는 걸 알면, 엄마는 당장 영어 문제집을 열권은 더 사올 것이다.

“이번 월요일 조회 때 또 상 받아?”

“몰라. 저번에 표어 대회 최우수 상장은 아직 못 받았어.”

나는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매번 조회 때마다 단상 위로 올라가는 것도 좀 민망하다.

“너 상 받으러 올라가면, 연석이가 제일 박수를 크게 친다!”

나는 걷다가 멈춰 섰다.

“유연석이 너 좋아하잖아.”

햇볕 때문에 자꾸 인상이 찌푸려진다. 유연석은 우리 반 꼴등이다. 매일 친구들과 축구만 한다. 절대 유연석이 싫어서 인상이 찌푸려지는 건 아니다. 세희가 실실대며 웃더니, 다시 앞으로 걸어간다.

“뭐야….”

나도 세희를 따라 걸었다.

“유달희 오늘 일기장에 쓸 내용이 늘었네. 유연석이 나를 좋아한다, 이렇게 써야지!”

세희가 놀리듯 말했다.

“안 그래도 일기장 다 써가. 문방구 들렸다 가자. 일기장 사게.”

“나도 사야지.”

세희가 밝게 웃으며 대답했다. 세희와 나는 비밀일기장이 있다. 우리는 일기를 두 개씩 쓴다. 학교에 내는 공식일기장과 나만 보는 비밀일기장, 이렇게 말이다.

‘일기 쓰는 것도 글짓기 하는 것 같아.’

내가 말하자, 세희가 해결책을 줬다.

‘일기장을 하나 더 만들어. 그리고 거기엔 진짜 네 일기를 쓰는 거지. 나도 그렇게 하거든. 난 일기장이 두 개야.’

그 이후로 나는 비밀일기장을 만들었다. 그 사실은 세희만 안다. 엄마도 모르는 일이다.

세희가 나를 앞질러 걸어간다. 새로운 일기장을 살 생각에 신이 난 모양이다. 세희는 어른 같다. 처음 만났을 때에도 나보다 언니 같았다. 긴 생머리를 가졌고, 키도 크고, 옷도 어른스럽게 입는다. 제일 중요한 건 나보다 가슴도 크고, 세희는 생리도 한다. 정말 어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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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기장을 가방에 넣고 침대에 누웠다. 일기장은 항상 가방에 넣고 다녀야 한다. 엄마한테 들키기 싫기 때문이다. 엄마는 내 방에 있는 모든 걸 알고 싶어 하는 이상한 취미를 가졌다. 어제부터 계속 아파오던 아랫배를 쓰다듬으면서, 새우처럼 몸을 말았다. 이렇게 하면 덜 아픈 것 같았다.

내일은 월요일. 아침 조회가 있는 날이다. 나는 분명히 단상 위에 올라가 상을 받을 것이다. 친구들은 모두 박수를 칠 것이고, 선생님들은 칭찬을 해 줄 것이다. 처음에는 단상 위에 올라가 상을 받은 게 즐겁고 뿌듯했다. 친구들의 박수소리도 정말 듣기 좋았다. 하지만 나는 엄마 대신에 상을 받는 것뿐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하나도 기쁘지 않았다. 친구들의 박수 소리가 마치 나에게 보내는 비웃음 같았다. 나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우리 엄마, 이기자 여사의 냄새가 나는 것 같다.

얼핏, 잠이 들었다. 그 순간이었다. 찔끔, 오줌이 나오는 느낌이었다. 나는 눈을 번쩍 떴다. 잠이 든 적이 없었던 것처럼, 화들짝 침대에서 일어섰다. 그러고는 벌컥, 문을 열고 화장실로 달려갔다. 화장실 거울 앞에는 내가 서 있었다. 이기자 여사가 아니라 나 유달희. 나는 지금 이게 어떤 상황인지 알 것 같았다. 엄마는 항상 내게 이야기를 했었다.

‘달희야, 곧 너도 초경을 하게 될 거야. 그건 절대 무서운 게 아니야. 우리 달희도 여자가 된다는 거지. 그러니까 오줌 눌 때 피가 나오거나, 팬티에 피가 묻어도 절대 무서워하지 말고, 바로 엄마한테 말해. 알았지?’

엄마는 내가 아직 애기인 줄 안다. 나도 알 건 다 안다. 학교에서도 수차례 성교육을 했었다. 친구들 중에도 초경을 한 친구들이 반 이상이다. 그렇게 애기한테 말을 하듯 알려주지 않아도, 나도 그쯤은 안다.

‘시작하면 불편해. 처음엔 기저귀 찬 것 같아서 잘 걷지도 못했어.’

세희가 말했었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나는 살짝 팬티를 내려 보았다. 역시, 내 예감이 맞았다. 나는 재빠르게 팬티를 올렸다. 안방에서 아빠의 코 고는 소리가 들렸다. 아빠와 엄마는 잠을 자고 있을 것이다. 왠지 엄마에게 달려가서 말을 하기 싫었다. 엄마가 모르는 나도 있을 수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나는 휴지를 돌돌 말아서 팬티에 대어 놓았다.

침대에 누웠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뱃속에서 꾸물꾸물, 무엇인가 기어 다니는 것 같았다. 심장이 두근거리기도 했지만, 쿵쾅거리기도 했다. 나는 느낌이 이상해서 밤새도록 화장실에 들락거렸다.

“글짓기는?”

“챙겼어.”

“오늘 일기 내는 날이잖아. 일기는?”

“그것도.”

“유달희! 오늘 왜 이렇게 힘이 없어? 오늘도 힘차게!”

엄마는 나에게 손바닥을 내보였다. 나는 건성으로 팔을 뻗어 엄마와 하이파이브를 했다. 엄마는 내 엉덩이를 토닥였다. 나는 엄마의 손길을 피해 재빨리 아파트 단지를 빠져나왔다. 팬티가 축축한 것 같았다. 하지만 화장실에 가 보면, 별로 묻은 것도 없었다. 자꾸 신경이 쓰이고 배가 아팠다.

“아아, 학생여러분. 오늘은 월요일 아침 조회가 있는 날입니다. 모두 학교 운동장으로 모여 주시기 바랍니다.”

스피커가 쨍쨍댔다. 세희와 나는 운동장으로 향했다.

“이렇게 더운 날에 무슨 조회야. 그냥 방송조회로 하지.”

세희가 툴툴거렸다. 나는 아랫배가 싸하게 계속 아파 왔지만, 티를 내지 않았다. 선생님들은 각 반 앞에서 자기 반 학생들을 챙기느라 바빴다. 운동장이 웅성웅성거렸다. 전교생이 한꺼번에 숨을 뱉어내서, 나까지 숨이 턱턱 막히는 느낌이었다. 나는 크게 숨을 들이쉬면서 우리 반 줄을 찾았다.

“호명하는 학생들은 앞으로 와 서세요. 2학년 1반 김초롱, 3학년 6반 사진희, 4학년 3반 김예슬, 5학년 2반 유달희….”

내 이름이 불렸다. 나는 이름을 들었지만 쭈뼛거리며 서 있었다. 나가고 싶지 않았다. 뒤에서 세희가 얼른 나가라며, 내 등을 밀었다. 반 친구들이 모두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친구들의 눈빛이 내 뒤통수에 다닥다닥 달라붙었다. 햇볕도 내 뒤통수를 째려보는 것 같았다. 너무 더워 내가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축축한 팬티 때문에 걸음걸이가 어색했다. 나는 계속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앞으로 나가지질 않았다. 내 발이 이상했다. 땅에서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초콜릿이 녹듯이 발이 땅속으로 녹아내렸다. 너무 더워서 몸이 녹는 것이었다! 나는 놀라서 주변을 살펴보았다. 친구들은 모두 아무렇지도 않았다. 내 몸만 녹아내리고 있었다. 발이 운동장 바닥으로 녹은 초콜릿처럼 붙어버렸고, 얼굴과 팔 머리카락까지 모두 녹아서 뚝뚝 떨어져 내렸다. 친구들은 모두 나를 보면서 웃었다. 만화영화의 한 장면을 보듯이 깔깔대면서 말이다. 친구들 사이로 내가 받았던 상장들이 걸려 있었다. 엄마가 그려줬던 불조심 포스터, 과학의 날 표어도 걸려 있었다. 상장과 그림들이 구겨지듯 깔깔대며 웃었다. 나는 점점 운동장 바닥으로 녹아내렸다. 운동장은 여전히 웅성거렸다.

“꺅! 선생님!”

세희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달희야, 유달희!”

하늘이 새하얗게 변해 있었다. 하늘도 녹아내린 걸까?

“달희야, 괜찮아? 정신이 들어?”

엄마가 내 얼굴을 쓰다듬으면서 물었다. 나는 침을 꼴깍, 삼켜보았다. 엄마가 잡은 손을 빼내 얼굴을 만져보았다. 벌떡, 일어나 앉아 내 다리를 확인했다. 모두 그대로였다. 나는 하나도 녹지 않았다.

“배가 그렇게 아팠으면, 엄마한테 잘 말을 해야지. 너 쓰러졌다고 해서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다행히 별일 아니래. 초경 때문에 놀란 모양이야. 괜찮아.”

엄마는 집에서만 하는 앞치마를 하고 있었다. 내가 조회시간에 쓰러져 놀란 모양이었다. 어쩐지 햇볕이 너무 따가웠다.

나는 조퇴를 하고 학교를 땡땡이쳤다. 다른 친구들은 모두 공부를 할 때, 혼자 논다고 생각하니 꿈만 같았다. 나는 방 침대에 누워서 멀뚱멀뚱 천장을 쳐다보았다. 조회시간을 생각하니 끔찍했다. 정말 내 몸이 녹아서 없어지는 줄 알았기 때문이다. 엄마는 나를 침대에 눕혀 놓고, 죽을 만들어 준다면서 부엌으로 향했다.

“오늘은 아무것도 하지 말고, 누워 있어. 내가 놀라서 앞치마를 하고 뛴 생각을 하면, 으이그. 애물단지. 정말 아프다고 이야길 하지…. 엄마는 네가 꾀피우는지 알았잖아.”

엄마는 죽을 먹여 주면서 말했다. 혼이 나는 것이었지만, 왠지 신이 났다. 엄마가 숙제에 신경을 쓰는 게 아니라, 나한테 신경을 쓴다는 게 좋았다.

“딩동!”

초인종이 울렸다. 엄마는 내게 숟가락을 쥐어주고 현관으로 달려 나갔다. 곧이어 세희가 내 책가방을 갖고 들어왔다.

“가방 두고 갔더라. 아프면 말을 하지. 얼마나 놀랐다고.”

세희는 걱정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이제 안 아파.”

“맞다, 선생님이 일기 검사한다고 내라 하셔서 내가 네 가방에서 일기 꺼내서 냈어. 너 글짓기 완성한 것도 내고.”

“뭐?”

나는 놀라서 벌떡 일어났다. 책가방을 열어보았다. 가방 속에 남아 있는 것은 공식일기장이었다. 내 비밀일기장이 아니라. 나는 울상이 되었다. 내 비밀일기를 선생님한테 검사 맡게 된다니,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왜? 내가 잘못 냈어? 가방에 있던 일기장 낸 건데?”

“비밀 일기장….”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내 모든 비밀이 적혀 있는 일기장이었다. 그걸 보면 선생님은 모든 걸 알게 될 것이다.

“야! 그걸 가방에 넣고 다니면 어떡해. 집에 숨겨놓고 다녔어야지!”

세희는 도리어 화를 냈다. 괜찮던 아랫배가 다시 아파 왔다. 엄마가 들어오자 우리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연기를 했다.

“세희야, 넌 언제 여자가 됐니?”

엄마는 짓궂게 웃으면서 물었다. 세희는 자연스럽게 대답했지만, 나는 심장이 까맣게 타버리는 것 같았다. 아빠는 그날 저녁, 꽃과 케이크를 사오셨다. 축하를 할 일인가 싶었지만, 일기장 생각에 금세 우울해졌다. 제발 선생님이 내일 일기 검사를 하길 바라면서 침대에 누웠다. 나는 내일 일찍 학교에 가서, 일기장을 바꿔치기할 생각이다.

하지만 선생님은 이미 일기 검사를 끝낸 후였다. 아무리 찾아도 일기장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이른 시간이라 아무도 없는 교실에 털썩, 주저앉았다. 친구들은 나에게 괜찮냐고 물어보았다. 나는 괜찮다고 대답했지만, 실은 하나도 괜찮지 않았다.

선생님이 들어왔다. 나는 선생님과 눈을 마주칠 수 없었다. 너무 창피했다. 선생님은 내 쪽을 쳐다보더니 싱긋, 웃었다. 그러고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수업을 시작했다. 수업시간 내내 집중이 되지 않았다. 칠판에 써진 글씨들이 모두 날아다니며 내 주위를 맴돌았다. 그냥 책상 밑으로 숨어버리고만 싶었다.

“자, 오늘도 모두 수고 많았어요. 내일은 미술 준비물을 챙겨 와야 하는 거 알죠? 그럼 모두 내일 만나도록 해요. 아, 유달희는 잠깐 선생님 좀 보고 가도록!”

나는 가방에 책을 쑤셔 넣다가 멈추고 말았다. 드디어 하루 종일 걱정했던 순간이 오고 만 것이다.

“달희야.”

“…네에.”

선생님 앞에 섰지만,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이거 선생님이 제일 좋아하는 초콜릿이거든. 무척 힘든 날이나, 가슴이 답답한 날에 이 초콜릿을 먹으면 막 힘이 난다.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래서 선생님은 힘이 드는 날에는 약 대신 이 초콜릿을 먹어. 달희에게 주는 선생님 선물.”

선생님은 커다랗고 네모난 초콜릿 하나를 내밀었다.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선생님을 쳐다보았다. 선생님은 내 손을 잡더니 초콜릿을 쥐어 주었다. 그러고는 비밀일기장을 내밀었다.

“선생님은 지금까지 본 어떤 일기보다 감동적이었어. 선생님은 달희가 공부도 잘하고 글짓기도 잘해서 예쁜 게 아니야. 항상 열심히 해서 예쁜 거지.”

선생님의 커다란 손이 내 앞머리를 흐트러트렸다. 나는 선생님이 돌려준 일기장과 초콜릿을 들고 교실에서 나왔다. 일기장을 펼쳐보았다. 매일 검, 도장이 찍혀 있던 것과는 다르게 참 잘했어요, 도장이 찍혀 있었다. 아랫배에서 무엇인가 꿈틀거리는 것 같았지만, 더 이상 배가 아프지는 않았다.<끝>

 

당선소감 -박주혜

 

제가 사는 세상은 정말 재미있습니다. 그곳에서 외계생물체 친구를 만나기도 하고 동물친구들과는 대화를 하기도 합니다. 고민이 많은 친구들과 서로 고민을 털어놓기도 하고 말이 되지 않는 걸 우기면서 어른들과 싸우기도 합니다. 저는 그런 세상을 항상 누군가에게 보여 주고 싶었습니다.

그런 세상을 보여 줄 수 있는 기회를 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 정말 감사합니다. 성실하게 쓰겠습니다. 많은 친구들을 만나겠습니다.

오랜 시간을 살아온 건 아니지만, 살다 보면 숨이 턱턱 막히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어찌 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그럴 땐 초콜릿 과자를 잔뜩 뜯어 놓고, 동화책을 잔뜩 쌓아 둡니다. 그러고는 망설임 없이 과자와 동화책을 먹어 치웁니다. 한참을 킥킥거리면서 웃다가 잠이 듭니다. 깨어나면 또다시 일상입니다. 나는 또 하루를 살아갑니다.

응원해 주시는 분들이 정말 많습니다. 항상 응원해 주시는 가족들, 선생님들, 선배님들, 친구들 감사합니다. 어작교 식구들도 정말정말 감사드립니다.

박관수 아빠, 홍숙자 엄마 지금까지 괴롭혀서 죄송해요. 하지만 앞으로도 쭉 괴롭히게 될 것 같아요. 평소에 표현하진 못했지만 정말 사랑하고 고맙습니다. 그리고 항상 내 짜증과 투정과 성질을 말 없이 받아 주던 우리 똥깡이, 정말 사랑해. 언니가 초코 많이 사줄게.

당선 소식에 기뻐해 주신 모든 분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노력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 1988년 인천 출생

▲ 추계예술대 문예창작학과 졸업

▲ 한양대 국어국문학과 대학원 재학 중

▲ 어린이책 작가교실 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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