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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눅1:57-6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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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한규 목사 |
참고 :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
장차 인물이 될 사람 (누가복음 1장 57-66절)
< 인물을 키우십시오 >
지금 국제정세가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중국의 힘이 커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중국을 너무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언론이 통제된 상태에서 형성된 획일적인 힘은 그 수명이 짧기 때문입니다. 이제 중국도 언론이 자유화되면 점차 국론이 분열될 것입니다. 그 분열된 국론을 넘어설 건전한 최상위 가치가 있느냐가 중국의 미래를 결정할 관건입니다. 아직은 중국에 그런 건전한 최상위 가치가 있는 것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남의 나라 영해를 침범해서 조업하는 배의 선장이 단속 경찰의 배를 유리병으로 찌르는 만행을 저질러도 자성의 소리보다 정당방위란 억지소리를 내는 것을 보십시오. 자기 본토에서 1000킬로미터쯤 떨어진 남사군도의 영유권을 주장하며 남의 나라 본토 100킬로미터 앞바다까지 모두 자기 영해라고 주장하는 것을 보십시오. 그런 자정 능력이 없는 국민성에서 형성된 힘이 얼마나 가겠습니까?
미국에는 자유주의 및 민주주의란 최상의 가치가 있습니다. 물론 그 가치가 속으로는 많이 병든 상태지만 겉으로라도 그런 가치들을 내세우기에 사람들은 미국의 패권주의를 싫어해도 미국에 큰 공포를 가지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중남미 국가들 중에는 미국이 거부해서 그렇지 은근히 미국에 편입되기를 원하는 정서도 있습니다. 반면에 중국이 현재의 국민성을 가지고 미국과 같은 힘을 가진다면 불안을 느끼는 이웃 국가들이 많을 것입니다.
물론 중국도 점차 언론과 종교의 자유가 확대되고 국민성의 수준도 올라갈 것입니다. 그래서 지구촌의 좋은 리더 국가 중의 하나가 되기를 바라지만 만에 하나 중국이 자신의 힘과 인구수만 믿고 패권주의적인 야욕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런 가정이 현실화될 수도 있음을 생각하고 우리 한민족의 미래를 준비해나가야 합니다. 그래서 자체적인 힘을 기르고 큰 꿈과 비전을 가지고 마음과 시각과 지경을 넓혀 나가야 합니다.
100년 전, 우리는 힘이 없어 한일합방이란 치욕을 당했습니다. 그래서 일본을 엄청나게 미워합니다. 그러나 그 미움조차 극복해야 결국 일본을 이길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궁극적으로는 일본을 흡수하는 새로운 차원의 한일합방도 꿈꾸고 단계적으로 우리 주도로 한국과 몽골과 일본이 연합한 ‘한몽일 합중국’도 꿈꿀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그런 영향력을 가질 수 있을까요? 충분히 가능합니다. 저는 그 가능성의 최대 원천을 3가지로 봅니다.
첫째, 한류입니다. 요새 한류의 기세가 무섭습니다. 한국 드라마와 노래가 인구가 훨씬 많은 일본과 중국을 압도하고 점차 아시아는 물론 아프리카, 중동, 남미에서도 큰 힘을 발휘합니다. 대장금은 방영되는 나라마다 전무후무한 시청률을 기록합니다. 앞으로 그 기세는 더욱 커질 것입니다. 역사를 깊이 살펴보면 인본주의나 자본주의보다 더욱 강력한 힘이 문본주의였습니다. 문화적인 침략을 의도하면 안 되지만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문화의 힘은 어느 힘보다 큽니다. 쉽게 말하면 대장금이나 소녀시대의 힘이 원자폭탄보다 강하다는 말입니다.
둘째, 한글입니다. 요즘 재발견되는 한국인의 놀라운 창조성과 예술성은 한글이란 탁월한 문자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지난 몇 천 년 동안 세계 문화를 지배한 문자 권력은 헬라어와 히브리어 문자였습니다. 영어, 독어, 불어, 스페인어, 라틴어 모두 헬라어 문자에서 나왔습니다. 아랍어 문자도 무슬림 신앙의 힘을 바탕으로 천년 이상 문자권력으로 군림했지만 사실 그 문자 자체를 세계화시키기에는 허점과 한계가 많습니다.
그런 문자권력들이 세상을 지배할 때 약 5백 년 전에 극동의 한 작은 나라에서 전무후무한 문자인 한글이 창제되었습니다. 한글의 우수성은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과학적이고 단순하고 쉬우면서도 현존하는 거의 모든 소리를 들리는 소리에 가깝게 표현할 수 있는 지상 최대의 언어인 한글의 진가와 위력은 시간이 갈수록 더욱 뚜렷해질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세계 제일의 정보통신 국가가 된 이면에는 단순하고 과학적인 한글 역할도 컸습니다.
셋째, 복음입니다. 우리나라는 고려시대 이후로 한반도 원방 지역에 식민지를 개척한 적이 없었습니다. 식민지는 대개 한 나라의 응축된 강력한 내부적인 힘이 외부로 분출되면서 생깁니다. 과거에 고구려와 발해는 북방의 넓은 영토를 개척했고 백제와 신라도 중국과 일본 곳곳에 식민지를 개척했지만 고려 시대 이후로는 그런 진취성이 거의 사라졌습니다. 내부의 힘이 적절하게 외부로 발산되지 못하면 대개 내분이 생기면서 국력도 약해집니다. 특히 조선시대 유교사상은 외부로 눈을 돌려 세계를 바라보는 태도를 현저히 약화시켰습니다.
그처럼 1000년간 잠자던 한민족의 진취성이 최근에 복음의 사명으로 다시 깨어났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복음은 소아시아, 그리스, 이탈리아, 독일, 영국으로 서진하다가 마침내 미국에 도달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차례인 일본을 건너뛰고 한국이 복음의 주체가 되면서 지금은 그 복음을 가지고 거꾸로 전 세계로 선교하러 나가는 한민족 역사상 가장 진취적인 역사가 우리 때에 써지고 있습니다. 그 선교사들을 중심으로 형성된 한민족의 영향력은 우리보다 인구가 2.5배 많은 일본을 압도하고 인구가 25배 많은 중국까지도 압도할 정도입니다.
며칠 전, 멕시코 티화나에서 100여명의 멕시코 신학생들이 다니는 신학교를 운영하는 한 선교사님을 만났습니다. 그분 말에 의하면 지난 몇 십 년 동안 일본이 여러 대기업과 돈을 앞세워 멕시코와 중남미에 공장을 세우고 도로를 건설해주며 영향력을 키워왔는데 지금은 일본인보다 한국인의 영향력이 더 커진다고 합니다. 그렇게 된 데는 한류 역할도 있지만 특히 선교사들의 역할이 큽니다. 선교사들이 현지에서 교회를 개척하고 현지인 제자들과 일꾼들을 키워나가니까 그 영향력이 누룩처럼 점차 커지고 지속성도 있게 된 것입니다.
과거 일부 제국주의적인 패권주의자들은 복음을 패권주의 확장의 도구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그런 폐단을 답습할 염려는 없습니까? 없어야 하고 없을 것으로 믿습니다. 역사적으로 우리는 남의 나라를 침략한 적이 없고 기본적으로 동정심이 강하고 평화를 추구하는 민족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게다가 역사가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는 상황에서 이전의 잘못된 역사를 답습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 한민족에게 특별히 선교의 사명을 맡기신 줄 믿습니다.
실제로 한인 선교사들은 대부분 어떤 정치권력과도 결탁하지 않고 그저 현지인을 섬겨주고 현지인과 동화되면서 현지인들을 리더로 세우고 본인은 점차 물러서는 모범적인 선교를 합니다. 그처럼 현지인을 앞세우고 뒤로 물러서는 길이 오히려 선한 영향력을 확장시키는 길입니다. 이론적으로 잘 배우지 않았어도 어떻게 그렇게 선교를 바르게 잘하는지 모릅니다. 그것은 한국인의 민족성과 십자가의 희생을 마다하지 않는 신앙의 영향이 큽니다.
그처럼 한류, 한글, 복음이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키며 지금 한민족의 영향력이 점차 커지고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평화로운 합의하에 제일 발달된 한글을 제 1공용 문자로 쓰는 연방제 형태의 ‘한몽일 합중국’의 등장이 불가능한 것만은 아닙니다. 만약 중국의 부상이 염려되어 무엇인가 후대를 위한 안전판을 준비해야 한다면 민족적인 감정과 상처를 씻고 용서와 화해와 호혜평등이 사회 저변을 흐르는 강력하고 복된 나라를 꿈꿀 필요도 있습니다.
이제 앞으로 세계가 어떻게 변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습니다. 조만간 성경의 예언대로 적그리스도가 나타나서 엄청난 패권주의로 세계를 공포의 도가니로 빠뜨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사랑하는 자녀와 후대들이 그런 역사적인 소용돌이에 휘말릴 수도 있기에 그때를 대비해 수많은 지구촌 사람들을 구해낼 영적인 쉰들러들을 소리 나지 않게 키우면서 ‘적그리스도를 진멸하고 오실 예수님의 재림’을 준비해야 합니다.
< 장차 인물이 될 사람 >
본문을 보면 예수님의 길을 예비했던 세례 요한의 출생과 할례와 작명 기록이 나옵니다. 할례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약속된 백성임을 나타내려고 행하는 중요한 의식인데 보통 출생 8일 후에 시행했습니다. 그리고 그때 이웃과 친족이 함께 아기의 이름도 지어주었습니다. 그런 관습을 따라 세례 요한에게도 할례를 행하면서 이웃과 친족들은 아이의 이름을 아버지의 이름을 따라 사가랴라고 짓자고 했습니다(59절).
그때 세례 요한의 모친인 엘리사벳은 아들 이름을 ‘요한(여호와는 은혜롭다)’이라고 짓겠다고 강력히 주장했습니다(60절). 이웃과 친족들은 네 가문에는 그런 이름을 가진 사람이 없다고 주장하며 반대했습니다(61절). 결국 말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던 사가랴에게 몸짓으로 말해서 아들의 이름을 어떻게 짓겠느냐고 묻게 되었습니다(62절). 그때 사가랴가 서판에 아들의 이름을 요한이라고 썼습니다(63절).
바로 그 순간, 사가랴의 입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처음으로 했던 말이 하나님을 향한 찬송이었습니다(64절). 지난 10개월 가까이 얼마나 답답했겠습니까? 그래도 단 한 마디의 분노나 원망도 없이 하나님을 찬송한 것입니다. 결국 그에게 10개월간의 침묵 기간은 꼭 필요한 기간이었습니다. 그때 더욱 복된 존재로 빚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런 세례 요한의 출생과 관련된 소식을 듣고 근처 사람들이 경외하는 마음을 가졌고 점점 그 소식이 유대 전역으로 퍼졌습니다(65절). 그러자 그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장차 그 아이가 어떤 인물이 될지 궁금해 했습니다(66절).
우리 분당 샛별교회는 이 시대에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저 교회는 과연 어떻게 될까? 저 교회에서 정말 인물이 나올까?” 지금은 분당의 작은 교회로 있지만 세계를 꿈꾸고 천년 영향력을 꿈꾸는 교회가 되고 우리 가운데 장차 세례 요한처럼 예수님의 재림을 길을 예비하는 큰 인물들이 많이 나오도록 꿈꾸고 기도하십시오.
지난 수년 간 저의 입에서 줄기차게 ‘인물’에 관한 언급이 나오고, ‘천년 영향력’에 관한 언급이 나오는 것을 볼 때 정말 저희 교회에서 장차 엄청난 인물들이 나올 것 같습니다. 어떻게 장차 큰 인물이 될 수 있을까요? 역사상 하나님으로부터 쓰임 받은 인물들의 공통점을 보니까 하나 같이 하나님을 간절히 추구했던 사람들입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을 간절히 추구하는 사람입니까? 3가지만 생각해보겠습니다.
1. 교회를 사랑하는 사람
하나님을 추구하는 사람은 대개 교회도 지극히 사랑합니다. 요새 교회에 대한 비판이 많습니다. 그런 비판에 반성해야 할 점도 많지만 본질적으로 교회의 본질을 잘 몰라서 생기는 오해도 많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에 대한 비판에 낙심하지 말고 일반인의 비판을 더욱 성도답게 잘 살라는 채찍으로 받아들이고 교회를 더욱 사랑해야 합니다. 교회를 사랑하는 사람은 자주 교회에 와보고 교회의 필요도 힘껏 채우려고 할 것입니다. 그처럼 교회를 살피고, 교인을 섬기며 보낸 시간들은 결코 헛되지 않고 하나님이 다 기억해주실 것입니다.
2. 자녀를 믿음으로 키우는 사람
시편 127편 3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보라 자식들은 여호와의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이 말씀은 자녀는 내 자녀가 아닌 하나님의 자녀란 말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자녀를 우리 가정에 보내신 특별한 뜻이 있습니다. 그 뜻을 찾아서 자녀의 재능과 개성을 따라 하나님 앞에 쓰임 받는 자녀가 되도록 키워야 합니다. 그것을 위해 가장 기초적으로 가르쳐야 할 삶이 바로 주일성수입니다. 그처럼 주일성수를 필두로 자녀의 믿음생활에 최대한 관심과 배려를 해주는 것도 하나님을 추구하는 삶의 중요한 내용입니다.
3.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
하나님의 뜻은 어디에 있을까요? 대개 좁은 문을 선택해서 들어가는 삶에 있습니다. 그처럼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마다하지 않는 사람이 나중에는 결국 축복받습니다. 어떤 분야든지 고난의 과정을 통과하지 않고 영광을 얻는 길은 없습니다. 좁은 문을 선택해 들어가면 넓은 길이 나오지만 넓은 문을 선택해 들어가면 좁은 길이 나옵니다. 그러므로 근시안적인 시각을 가지고 넓고 편한 길로만 가려고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뜻이라면 기꺼이 힘든 일도 감수하는 삶이 바로 하나님을 추구하는 삶입니다.
축복의 문은 대개 쉽게 열리지 않습니다. 의사나 판검사가 되려면 얼마나 많이 공부해야 합니까? 수험생들이 좋은 대학에 가려면 얼마나 많이 노력해야 합니까? 저는 이제까지 했던 설교를 한번만 재탕해도 은퇴 때까지 편하게 지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2023년까지 성경 66권 전권 설교파일 완성이란 대 목표를 가지고 나가기에 일주일에 평균 50시간 정도를 설교 작성에만 심혈을 쏟고 있습니다. 어찌 되었는지 간에 의미 있고 복된 인생을 원하면 피땀 흘리는 길을 외면하지 말고, 더 나아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언제나 선택의 순간에 넓은 길보다는 좁은 길을 선택하려고 하십시오.
< 하나님을 추구하는 삶의 축복 >
이제 하나님을 추구하는 삶을 가장 우선적인 일상의 삶으로 만드십시오. 아침에 일어나면 곧 고백하십시오.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하루의 삶도 하나님의 손길에 온전히 맡깁니다.” 그리고 매일 말씀을 조금씩이라도 꾸준히 보고, 하나님의 약속을 계속 묵상하고, 선택의 순간에는 잘 선택할 수 있는 지혜를 구하며 기도하되 최종 결정권은 하나님께 드리십시오.
다윗이 왜 축복받았습니까? 그도 많은 죄와 허물을 노출했고 실수도 많이 했고 믿음 없는 행동도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끊임없이 하나님을 추구했습니다. 그는 찬양시를 지으면서 자신이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하고 필요로 하는지, 그리고 하나님이 얼마나 위대한 분인지를 끊임없이 노래로 고백했습니다. 그처럼 하나님을 간절히 추구하면 능력도 커지고 지혜도 생기며 자신의 능력으로 이룰 수 없는 넘치는 은혜도 받게 될 것입니다.
미국 미시시피 주에 한 석유 사업가가 있었습니다. 한때 그의 사업은 잘 나갔지만 지난 몇 년 동안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회사는 거의 파산 지경이 되었습니다. 게다가 집까지 담보로 잡히면서 부부관계에도 갈등이 생겼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부부가 TV 설교를 듣다가 은혜를 받았습니다. 마치 메마른 심령에 생수가 채워진 것 같았습니다. 그러면서 점점 예배를 TV로만 보지 않고 예배에 직접 참여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매주 토요일에 가장 싼 비행기 표를 사서 미시시피 주에서 비행기를 타고 텍사스 주로 와서 예배드리고 주일 예배 후에는 다시 저녁 비행기로 미시시피 주로 돌아갔습니다. 매주 그렇게 하나님을 예배하며 하나님을 간절히 추구했습니다.
요새 많은 분들은 예배를 위해 길 하나도 건너지 않고 같은 아파트 단지 안에서도 오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바쁘고 피곤하고 할 일이 많다고 합니다. 그처럼 예배의식이 약해지는 시대에 매주 일본에서 한국 분당 샛별교회로 빠짐없이 주일예배에 참석하고 일본으로 돌아가는 부부가 있다고 해보십시오. 사람들은 어리석다고 하겠지만 그 간절한 마음을 남이 어떻게 알겠습니까? 또한 하나님은 그 마음을 얼마나 기쁘게 받으시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간절히 추구하는 모습을 빠짐없이 다 보고 계십니다. 아침에 일어나 말씀 묵상으로 하나님을 추구하는 모습을 보시고, 어떤 일을 선택하기 전에 기도하는 모습을 보시고, 자녀에게 예배하는 삶을 가르치려고 바쁘게 준비시키는 모습도 다 보십니다. 또한 오늘 이 예배 시간도 기억해주시고, 멀리선 온 분들은 여기에 오려고 들인 휘발유 값, 시간, 그리고 그 마음과 정성도 다 기억해주실 것입니다.
그처럼 그 부부가 경제적으로 어려운 중에도 매주 그렇게 하나님을 간절히 추구하자 하나님이 그 남편에게 어떤 장소를 계속 파면 석유를 얻을 것이란 믿음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 장소를 팠습니다. 그러나 석유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곳을 중심으로 10번을 더 팠습니다. 그래도 석유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계속 그 근처를 20번, 30번, 40번, 45번까지 팠습니다. 역시 석유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결국 아내가 말했습니다. “여보! 이제 포기하고 다른 곳을 파보세요.” 자신도 포기하고 아내의 말을 따르려고 했는데 그때 갑자기 마음속에 이런 음성이 들렸습니다. “아들아! 그곳을 계속 파라.” 그래서 그곳을 계속 파니까 마침내 인부들은 그가 이성을 잃었다고 여겼습니다. 그래도 계속해서 46번째 땅을 팠습니다.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47번째 땅을 팠습니다. 역시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48번째 땅을 팠습니다. 그때 마침내 석유가 터졌습니다.
지금 그 부부는 텍사스 주로 예배드리러 갈 때 싼 비행기 표를 구할 일이 더 이상 없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자가용 비행기를 타고 다니기 때문입니다. 그처럼 하나님은 하나님을 줄기차게 추구하는 심령에게 반드시 복을 내려주실 것입니다.
지금 하나님을 열심히 추구합니까? 주일성수에 목숨을 걸고, 매일 말씀과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고 계십니까? 계속 그렇게 하나님을 간절히 추구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이 축복의 문이 열리도록 내적인 기막힌 정보도 주시고 가장 적절한 때에 꿈과 비전을 이루는데 필요한 거룩한 커넥션도 맺어주실 것입니다.
요새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선교사님들을 위한 후원자들의 후원도 30%이상 줄었습니다. 그래서 사방에서 선교사님들의 어려운 소식이 들려오지만 다 채워드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최선을 다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어제는 재정위원들과 연말 선물의 의미로 몇 분의 선교사님들을 위한 특별지출을 이번 주 내에 하기로 결의했습니다. 그런 문제로 협의할 때마다 모두가 항상 많이 돕지 못해서 안타까운 마음들을 가집니다.
그런 재정적인 후원 문제를 항구적으로 잘 풀도록 지난 9월부터 <네트영어 교육방송의 비전>을 세우고 기초재정으로 하나님께 백만 불(10억 원)을 구하고 있습니다. 네트영어의 비전에는 2가지 뚜렷한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는 ‘유능한 국제적인 인물을 키우는 것’이고 또 하나는 ‘선교사들을 돕는 재정적인 소스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 비전의 중요성을 상기시키려고 일주일에 3-4번 온새기(온라인 새벽기도)에 네트영어 칼럼을 첨부해서 보냅니다. 보낼 때마다 석유 사업가가 땅을 파는 심정으로 후원자와 연결되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하며 보냅니다. 그 네트영어 칼럼이 벌써 155번째를 넘어갔습니다. 쉽지 않은 나날들이지만 때가 되면 하나님이 반드시 거룩한 커넥션을 맺어주실 줄 믿습니다. 그처럼 거룩한 비전을 품되 그 비전 성취의 과정에서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우리의 시선이 이탈되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물질을 먼저 추구하면 믿음과 인간성을 잃고 결국 물질도 잃지만 하나님을 먼저 추구하면 믿음과 인간성과 지혜와 창조성을 얻고 필요한 경우에는 물질의 축복도 얻을 것입니다. 이제 세상적인 욕심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지 마십시오. 그저 순수한 마음으로 오직 하나님을 사랑하고 추구하고 섬기십시오. 비전도 오직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는 순수한 마음으로 세우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은 반드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보여주시고 내일의 넘치는 축복과 상급도 예비해주실 것입니다.
제가 둘째 딸 한나를 키우면서 가장 사랑스러웠던 때가 있습니다. 태어날 때 얼마나 예쁘게 생겼는지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 같은 외모에서 이렇게 예쁜 딸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나 그때보다 더 사랑스러운 때가 있습니다. 한나는 유난히 “아빠! 사랑해요.”란 말을 많이 하는데 그때마다 더 예쁘게 보입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가장 사랑스럽고 예쁘게 느꼈던 때는 한나가 중학교 1학년 때였습니다.
어느 날, 교회로 가려고 14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그때 한나가 막 집에서 나와 엘리베이터가 닫힐 때쯤 소리쳤습니다. “아빠! 저도 같이 가요.” 그런데 이미 엘리베이터가 닫힌 상태였습니다. 곧 엘리베이터가 1층에 닿았습니다. 그래서 밑에서 한나를 기다리는데 곧 바로 한나가 1층에 도착했습니다. 알고 보니까 아빠와 몇 초라도 빨리 있고 싶다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지 않고 14층부터 1층까지 뛰어내려온 것입니다.
그때 얼마나 한나가 사랑스럽게 느껴졌는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때 한나 손을 꼭 붙잡고 같이 차로 가면서 속으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이렇게 정신없이 뛰어내려오다가 계단에서 굴러서 다치지 않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또한 저에게 사랑스럽고 천사와 같은 두 딸을 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저는 가끔 아직도 한나의 뛰어내려왔던 장면을 기억하면서 ‘한나의 아빠를 향한 열정’을 느낍니다. 그때마다 새롭게 다짐합니다. “내가 최선을 다해 평생 딸들을 지켜 주어야지!” 그렇게 다짐하면서 하나님의 마음도 느낍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추구할 때 그렇게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추구하면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은 다른 공로 없이 하나님을 추구하는 것만 가지고도 큰 축복과 상급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히 11:6).
이제 간절히 하나님을 추구하십시오. 하나님의 뜻대로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두려워하지 말고, 교회를 지극히 사랑하며, 자녀를 말씀과 기도로 잘 키워서 예수 믿고 인물 되는 주인공으로 만들려고 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은 그런 모습들을 하나님을 간절히 추구하는 모습으로 보시고 필요한 모든 것을 채워주시고 평생 지켜주실 것입니다. 항상 하나님을 간절히 추구함으로 장차 큰 인물이 되어 예수님의 재림을 예비하는 복된 심령들이 되십시오.
ⓒ 글 : 이한규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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