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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림의 때를 사는 성도들의 자세 ④

무엇이든 묵상............... 조회 수 1270 추천 수 0 2012.01.15 14:2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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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처녀의 비유'는 이스라엘의 결혼 풍습을 통해서 신랑이신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천국 잔치'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의 풍습을 살펴보니 결혼 전에 약혼으로 혼인서약을 먼저 했다고 합니다.

 

'크투마'라고 하는 결혼 서약서를 신부될 사람에게 줌으로 법적으로 혼인관계가 성립되는 것이지요. 약혼을 하게 되면 신랑의 아버지는 신부에게 반드시 결혼 지참금을 주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아름다운 '예복'을 만들어 줍니다. 그만큼 많은 댓가를 지불하고 신부를 데려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아들이신 예수님과 교회인 우리와의 혼인을 위하여 엄청난 댓가, 곧 그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 주는 희생을 감당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요3:16)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롬5:8)

 

아버지는 이 세상을, 나를 하나뿐인 그 아들을 십자가에서 대신 죽게 하시기까지 사랑하셨습니다. 그것으로 우리를 사랑하는 그 사랑을 확연히 증명하셨습니다. 이보다 더 큰 혼인 지참금은 없습니다.

 

'십자가의 보혈'은 신부를 위한 지참금이자 '혼인 예복'입니다. 이 예복을 입지 않으면 신부든 손님이든 어느 누구도 혼인잔치에 들어올 수가 없었습니다. 십자가와 보혈로서 그 거룩한 '의의 옷'을 입히시는 것입니다.

 

요한은 그 주님과의 잔치를 '어린 양의 혼인잔치'라고 하시는 성령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으므로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의의 행실'이로다 하더라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내게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계19:7-9)

 

이것은 놀라운 비밀입니다. 혼인 잔치에 들어갈 수 있는 거룩한 예복은 '세마포 옷'입니다.

 

나는 레위기에서 아주 심각한 말씀을 읽었습니다. 제사장이 피를 가지고 성소의 휘장 안에 있는 법궤의 속죄소에 들어갈 때는 반드시 세마포 옷을 입어야 했습니다(레16:2-4).

 

세마포로 된 겉옷과 속옷과 띠, 심지어는 관(冠)까지 써야 했습니다. 그것을 입지 않으면 죽었습니다. 세마포는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고 죽으신 주님을 쌌던 수의(壽衣)입니다. 깨끗하고 희었던 그 옷은 예수님의 몸을 감싸안음으로 피로 물들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 아들의 신부들에게 주는 결혼 예복입니다. 아아... 이것은 너무나 중요한 비밀입니다. 그리스도의 진정한 신부들은 반드시 이 십자가와 보혈의 본질과 능력을 소유해야만 합니다.

 

처음 법적 구속력을 가지는 믿음을 가질 때 뿐만 아니라 온전한 혼인의 몸의 구속을 위한 재림의 때에도 이것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또한 마지막 환난 날에 마귀의 권세를 깨트리고 승리를 거두는 것도 이것입니다.

 

또 우리 형제들이 어린 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그를 이겼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들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계12:11)

 

이것은 슬기로운 다섯처녀가 예비한 혼인잔치에 들어가는 조건인 그'기름'과 매우 실제적으로 연결되는 것입니다. 마지막 때에 성령님이 요구하시는 '이기는 자'가 되는 힘의 원천이 바로 그것입니다.

 

저는 이것을 깨닫고 희열의 기름부음 가운데 들어갔습니다. 성경은 성령의 '기름'과 십자가의 '보혈'을 하나로 연결하고 있습니다. 아벨이 '어린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진정한 제사를 드렸듯 둘은 본질적으로 하나입니다.

 

흑암을 격파하고 사슬을 끊어내는 '양 날이 선 검'(劍)입니다.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께 있도다...장로 중에 하나가 응답하여 내게 이르되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뇨 내가 가로되 내 주여 당신이 알리이다 하니 그가 나더러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계:7:9,10, 13,14)

 

성경은 이토록 치밀하고 명확합니다. 이 거룩하고 정결한 혼인 예복을 입은 자들은 단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은 자들입니다. 거룩한 신부들입니다. 이들이 진정으로 등에 기름을 예비한 자들이며 주님을 영접할 신부들입니다.

 

그 날에는 "주여, 주여"하고 신랑을 부른다 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마7:21)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또 다른 혼인잔치의 비유에서 강한 경고를 읽을 수 있습니다.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 임금이 손님들을 보러 들어올새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이르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그가 아무 말도 못하거늘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 데에 내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하니라" (마22:2,11-13)

 

처음에 혼인 잔치를 열고 손님들을 초대했으나 사람들이 그것을 알리는 종들을 죽이고 초청을 거절했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로 초림하신 메시아인 예수님을 거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임금은 화가 나서 거리에서 아무나 데리고 오라고 명령합니다. 이것은 먼저 초청을 받은 이스라엘이 실족함으로 구원이 돌감람나무인 우리 이방인에게 이른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들이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나게 함이니라 (롬11:11)

 

우리는 이스라엘이 어리석게 자신들이 바라던 그 왕, 신랑을 거부함으로 오히려 하나님 나라에 초청을 받아 은혜를 덧입게 되었습니다. 오직 은혜로 성령님의 중매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도 관문이 있습니다. 은혜로 초청은 받았으나 '예복'을 입지 않은 자는 어두운데 내어 쫓긴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매우 심각한 말씀입니다.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마22:14)

 

비유의 마지막에 남기신 이 말씀은 매우 두려움으로 다가왔습니다. 많은 이들이 주님과의 혼인잔치에 청함을 받지만 그곳에 들어가는 것을 허락받은 이들은 매우 적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예복'을 준비하지 못해서 입니다. 나는 이 비유과 열처녀의 비유의 연결성을 생각했습니다. 열명이 다 등을 들고 신랑을 기다렸습니다. 그들은 당연히 신랑이신 예수님을 믿는 성도를 상징합니다.

 

'등'을 가졌다는 것은 말씀을 믿고 나름대로 성령의 내주하심을 경험했다는 것입니다. 교회를 다니고 신앙생활을 하는 이들입니다. 결코 불신자들을 가리키는 말이 아닙니다.

 

그런데 동일하게 신랑을 기다렸으나 다섯명은 안타깝게도 잔치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등(횃불)을 계속 밝힐 여분의 기름을 준비하지 않아서 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비유일까요? 아니면 정말 교회를 다녀도 하나님의 기준을 통과하는 예복과 기름을 예비한 자들만 그날에 주님을 영접하게 될까요? 그것은 각자가 알아서, 말씀을 통해 판단하십시오.

 

다만 예복을 입지 않아서 바깥 어두운 곳에 쫓겨난 것과 기름을 예비하지 않아서 잔치에 들어가지 못하고 어둠 속에서 슬피 우는 것은 동일한 것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바깥 어두운 곳'이 어디인가를 연구한 이들이 있습니다. 저도 나름대로 연구한 바 있습니다. 이것은 주님이 말씀하시는 '천국'을 이해하는데에 중요한 개념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자칫 변론으로 번질 소지가 깊은 것이라 절제하기로 합니다. 우리는 가능하면 '투기나 분쟁으로 '가 아닌 '선한 뜻(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으로 그리스도를 증거해야 합니다(빌1:15).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일에 집중해야 하고 그것을 위해서 작은 지체도 실족하지 않도록 귀히 여기고 나를 낮추고 부인할 줄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의 결혼 풍습에서 혼인 기약이 정해지면 신랑은 신부를 데리러 떠납니다. 특이한 것은 '혼인 날짜'는 아들도 모르고 오직 신랑의 아버지만 정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당시는 아버지의 책임과 주권이 대단했던 모양입니다.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마24:36)

 

그래서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나 봅니다. 약혼을 한 후에는 일상을 살지만 언제 혼인잔치를 할지 모르기에 신랑이든 신부든 항상 준비하고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항상 깨어서 준비하라는 것이 말씀의 요구입니다.

 

이런 나눔도, 예수님의 말씀도 무수한 예언들을 성경에 선포하고 기록하신 것도 항상 경건함으로 깨어서 그 날을 사모하고 자신을 예비하라는 것입니다.

 

그 말씀의 중심적 의도와 요구에 혼신으로 집중해야 합니다. 기름을 예비하지 않은 처녀에게 사용한 '미련한'이라는 헬라어 '모라이'(mwrai)는 '깊은 생각없이 태만하고 둔한, 사려깊지 않은 상태'를 의미하는 말입니다.

 

말씀을 읽고 교회를 다니고 재림에 대하여 무언가를 말하기는 하나, 그 말씀과 신앙의 본질을 진리와 주님 앞에서 깊이 살피지 않는 것입니다. 진정 깨어있지는 않는 것입니다.

 

그저 흐름과 유행을 따라 이리저리 휘청이면서 그것을 추구하거나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도 '미련한' 자들입니다. 특히 성령님을 열정으로 구한다는 이들 중에도 이런 예를 흔히 봅니다.

 

요즘처럼 '기름부음'이라는 말이 유행이고 흔한 시절도 드물 것입니다. 그것의 유익과 의미가 있을 터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기름부음을 알고 누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령님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과 진리를 나타냅니다. 그렇다면 성령님을 통한 가장 중요한 기름부음의 결실은 바로 '그리스도의 마음'과 '종의 형체'를 가지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사랑하시는 아버지의 마음으로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앞서 가신 예수님의 형상을 닮는 삶을 열어 주십니다. 그러나 그 본질보다도 자신의 즉물적인 어떤 체험, 능력의 나타냄, 그 은사를 차용해서 사역을 확장하고자 하는 일이 우선인 경우를 흔히 봅니다.

 

기름에 대한 이해와 누림이 너무나 편협함을 봅니다. 그것이 '미련한 처녀'입니다. 그에 반해서 '슬기로운'으로 해석된 단어는 '프로니모이'(frovnimoi) 인데, 그것은 '신중함과 명확한 영적 분별력을 가진'이란 뜻입니다.

 

이 시대를 향하신 아버지의 뜻, 하나님의 나라와 그 방향을 진리의 영을 통해서 명확히 분별해야 합니다. 이 처녀들은 결국 지상의 두가지 형태의 교회와 성도를 상징합니다.

 

그저 막연히 경건의 외양만 갖추고 흘러가면 결국 미련한 다섯 처녀처럼 됩니다.

이것을 주님은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 표현하셨습니다.

 

"만일 그 악한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마24:47)

 

혹시 우리 마음에 주님이 '더디올 것이다'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미련한 처녀에 속한 그룹입니다. 그 마음이 둔하고 미련하여져서 신랑이 올 때와 그것을 예비하는 것에 대한 진정한 감각과 예민함을 상실한 자들입니다.

 

솔직히 이것은 몇년 전까지 저의 모습인지도 모릅니다. 저 또한 다시 오실 주님을 그다지 심령에 열망하지 못한 악하고 게으른 자였습니다. 진리의 성령님이 내 안에 충만하시자 주님을 사모하게 되고 그 얼굴을 대할 그 날을 너무나 사모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지난 날이나 현재의 상태에 집착할 필요가 없습니다. 뒤를 돌아보는 것은 아버지가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이제라도 깨어 영적 분별력과 예민함을 가지고 진정 성경이 말하는 '기름'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것을 더욱 채우면 됩니다.

 

그것이 바로 등불을 내 발에 비추는 것입니다. 진리의 성령님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의 그 본질을 조명받고 실제적으로 준비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 나라의 실제입니다. 그것이 깨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마지막 때에 대한 일어날 일들을 아버지가 감추시고 대부분 예언적 형식과 비유로 말씀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을 곰곰히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일단은 주님의 다시 오심을 가장 싫어하는 세력들 때문일 것 같습니다. 예수님이 오시면 마귀들은 심판을 당하고 패하여 무저갱에 갇히게 됩니다. 이 사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그것을 알기에 어둠의 세력들은 엄청난 집중력과 교묘한 술책으로 그 날을 방해하고 교회가 깨어 예비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분명히 인식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 날의 명확한 시점과 일들의 본질을 비밀로 감추는 것입니다. 오직 깨어 성령님의 기름부음으로 자신을 채운 이들이 그것을 알 수 있도록 말입니다.

 

"너희를 미혹하는 자들에 관하여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썼노라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 자녀들아 이제 그의 안에 거하라 이는 주께서 나타내신 바 되면 그가 강림하실 때에 우리로 담대함을 얻어 그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요일 2:26-28)

 

이 말씀은 얼마나 소중하고 의미가 있는지요!

주님이 예비하라 하신 기름이 무엇인지 진리의 성령님을 통해서 가르침을 받아야 합니다. 등과 기름을 예비하는 것은 감추어진 주님의 그 길을 진리의 성령님을 통해 깨닫고 예비한다는 뜻이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기름부음'을 어떤 은사체험이나 능력 행함으로만 생각하지만 사실 성경을 엄밀히 살피면 그것은 느낌이나 어떤 열망, 체험이라기보다 진정한 '앎'이요, 믿음의 '지식'입니다.

 

그것은 그저 표피적인 성경 지식을 넘어서는 영생과 연결되는 '인격적인 진리의 앎'입니다. 그것이 예수님에게 부어진 놀라운 기름의 의미입니다.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이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벧후1:2,3)

 

이 글을 쓰던 중, 미국에서 오신 말리라는 인도 출신 사모님의 집회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지난번 미국 집회를 갔을 때, 시카고의 작은 중보 모임에 이끌려 가서 처음 만났습니다.

 

인도의 사역자는 그 때 처음 만났는데 시차적응도 안되고 많은 집회로 인해 거의 잠을 자지 못한 상태였는데 너무나 말씀이 강하게 다가왔습니다. 정말 잠에서 화들짝 깨어났습니다.

 

목회자도 아니고 공원같은 곳에서 남편 목사님과 가난한 이들을 사역하시는 그분을 한국에 모시고 싶었는데 기회가 되어 작은 모임들을 갖게 되었습니다.

 

사모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꿈꾸는 동지들의 사무실에서 이 말씀을 전해 주셨습니다.

"주 예수를 아는 것이 곧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평강을 누리는 것입니다. 그 지식이 우리에게 하늘의 능력을 경험하게 합니다. 또 예수님의 십자가의 신기한 능력을 통해서 우리에게 생명, 경건에 속한 모든 역사들을 주셨는데... 그것은 우리를 부르신 그분을 알 때에 열립니다."

 

말리 사모님은 아주 단순하게 성경을 그대로 설명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내게 하나님의 능력의 나타나심, 기름부음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했습니다.

 

기름부음은 진정으로 말씀과 진리의 지식을 가질 때에 나타납니다. 그 '앎'이 곧 능력입니다. 기름을 예비하여 등불을 밝히는 것은 이 의미도 강하게 들어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이 말씀하신 '등'과 '기름'에 대하여 막연한 상식이나 정보를 넘어서는 진리로서 깨닫는다면 그것이 기름부음이 될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 (요15:15)

 

하나님 나라의 비밀과 비유를 주님은 그 측근들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변화산에서, 겟세마네에도 그들을 데리고 가셔서 놀라운 영광과 당신의 갈망, 깨어 있어야 함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기름부음은 그리스도 안으로 깊이 들어가는 '친밀함'입니다. 그런 친구들에게는 주님께서 비밀을 가르쳐 주십니다. 그것이 성경의 약속입니다. 나는 이것을 깨닫고 그 친밀함의 기름부음을 날마다 구했습니다.

 

주님의 그 사랑 안에 거하는 그 가슴에 기대어 심장의 박동을 듣는 요한같은 이를 얼마나 부러워 했는지 모릅니다. 그런 간구와 갈망 속에서 서서히 내 영이 밭에 감추인 보화들을 발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글쓰기도 그런 작은 소산들을 나누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이 작업이 기름의 예비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신랑의 아버지로부터 그 날이 정해졌다는 통기를 받으면 신부는 가장 친한 친구들을 들러리로 세워 마중을 보냅니다.그 들러리는 대게 10명 정도라고 합니다. 왜 10명인가를 고민하는 이들도 보았습니다.

 

아브라함이 그 땅이 하나님의 심판으로 멸망하지 않는 조건으로 "의인 10명"을 마지막으로 구한 것을 기억합니다(창18:32). 이스라엘에서 '10명'은 '공동체의 언약을 이루는 최소한의 숫자'입니다.

 

성경에는 10명의 나병환자, 열뿔, 10가지 재앙 등 많은 개념이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서는 숫자가 매우 중요하므로 결코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이는 신약의 저자가 10명이라는 것을 주목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열명이라는 숫자도 중요하지만 이 비유를 말씀하신 주님의 진정한 의도에 집중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원수는 우리에게 재림이든 끝 날에 관심을 가지게 하되 '변죽'(邊竹)만 울리게 하는 전략을 씁니다. 교회를 다니고, 예배와 열정을 가지되 자신의 유익과 자아실현에 집중하게 합니다.

 

항상 자기를 부인하고 진리의 본질을 만지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들러리'는 무엇이고 '신부'는 또 무엇인가? (이것도 너무나 중요하나 자칫 변론이 될 소지가 있어 절제합니다. 그러나 후에 충분히 깨닫고 확신이 서면 나누지요)

 

이스라엘은 독특하게 결혼식을 한밤 중에 합니다. 그래서 신부의 친구들은 나무에 천조각을 감싼 등(횃불)을 들고 신랑을 기다립니다. 저는 이 글을 쓰다가 문득 독특한 생각에 사로잡혔습니다. '혹시 이 등불을 싼 천이 세마포가 아닐까?'

 

이 글을 쓰는데 갑자기 그런 의문이 스쳤습니다. 이것은 마치 성령님이 주시는 생각처럼 내 영을 자극했습니다. 그래서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성경과 여러 자료들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등'과 '기름'에 대한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여호와의 영이 삼손에게 갑자기 임하시매 그의 팔 위의 밧줄이 불탄 삼과 같이 그의 결박되었던 손에서 떨어진지라" (삿15:14) 이 말씀을 발견한 것입니다. 참으로 이 말씀의 발견은 제게 힘이 되었습니다.

 

주님의 재림을 맞이하는 우리들의 자세에 대해 글을 쓰기 시작하자 아주 미묘한 영적 공격이 감지되기 시작했습니다. 바울이 우리의 씨름(레슬링)은 치밀한 구조와 전략을 가진 세력과의 영적 전쟁이라고 했듯이, 당연히 어둠은 교묘하게 압박해 옵니다.

 

갑자기 모든 것이 귀찮고 그저 아무도 없는 풍경 속에서 사슴벌레처럼 통나무나 썰고 살고 싶다는 스산한 마음이 엄습했습니다. 가끔 이렇게 바람이 들기는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더 깊어졌습니다.

 

나 때문에 너무나 많은 이들이 시간과 물질, 열정을 드려 이스라엘로 가고 하는 것도 왠지 미안함마저 들었습니다. '과연 이 길이 진정 옳은가?' 하는 생각도 들고.... 글쓰기도 집회도 싫고 혼자서 안식년이라도 선포하고 어디 타히티 같은 곳에서 반바지만 입고 소원하던 낚시나 하고 싶다는 생각....

 

"들릴라가 무슨 뜻이지?" 그래도 겨우 몸을 추스려 봄 기운을 머금은 산에 가서 기도하는데 문득 '들릴라'라는 단어가 자꾸 생각났습니다. "그것은 밤이란 뜻이예요. 삼손은 태양의 아들... 밤이 와서 그 빛을 덮은 것이지요."

 

히브리어를 잘 아는 후배가 그렇게 말해 주었습니다. 그것을 깨닫는 순간, 내가 들릴라의 영에게 눌렸음을 깨달았습니다. 나는 이 글쓰기만이 아니라, 주님의 오시는 그 길을 위한 예비로서 가서 순종해야 할 곳이 있었습니다.

 

그 길들을 방해하는 들릴라의 공격을 강한 기도로 걷어 내었습니다. 다시 영이 맑아지고 생수가 내 안에서 흐르는 기분이었습니다. 용기를 내어 글을 쓰는데 신랑을 맞이하는데 가장 중요한 '등'에 대하여 성경을 찾다가 문득 들릴라가 결박한 밧줄을 끊는 삼손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 밧줄은 놀랍게도 '가는 삼 줄기'(세마, 細麻)를 꼬아 엮은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권능, 성령님의 역사가 임하자 그 밧줄이 '불에 타는 삼'처럼 끊어져 버렸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불탄 삼'은 히브리어로 '피쉬팀'(pishtim)이라 하는데 그것은 바로 '심지'를 의미하는 '피쉬타'(pishtha)의 복수형입니다.

 

피쉬타는 세마포 천으로 만든 것으로 등불이나 횃불을 밝히는데 사용되었습니다. 그것을 성경은 '심지'나 '등불'로 번역한 것입니다.

 

"주께서 '심지'(피쉬타)가 견고한 자를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신뢰함이니이다" (사26:3)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피쉬타)을 끄지 아니하고 진실로 정의를 시행할 것이며" (사42:3)

 

이 말씀들은 내 영혼을 불꽃처럼 뜨겁게 자극했습니다. 이스라엘의 풍습과 문화를 조사해보니 '심지'(세마포)가 바로 '등불'을 밝히는 도구였습니다. 그것의 재료는 당연히 세마포의 천이었습니다.

 

성경에서 세마포는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 가는 거룩한 '예복'(레16:4)이며, 허리를 동이는 '띠'(렘`13:1), 예수님의 시체를 싼 '수의'(마27:59), 그리고 어둠을 밝히는 '등불'(사42:3, 마12:20)로 사용되었습니다.

 

이것은 내게 놀라운 깨달음을 주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마지막 때를 예비하라는 말씀들에 가장 중요한 코드들입니다. 결국 어린 양의 혼인잔치에 들어가는 '예복'과 '기름'은 동일한 본질임을 발견했습니다.

 

이것은 내가 그동안 생각하던 그 '기름부음'의 의미를 충족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진리의 영이신 성령님의 깊고 측량 못할 지식의 인도하심을 느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신랑을 맞으러 갈 때에 예비해야 할 그 '등'은 세마포로 만든 횃불입니다. 들러리들은 그 세마포로 만든 횃불을 예비한 기름에 적셔서 불을 밝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랑은 언제 올지 모르고 흔히 더디왔습니다. 여분의 기름을 충분히 준비하지 못하면 그 세마포는 말라 버리고 불을 밝히지 못합니다.

 

특히 이스라엘의 혼인잔치에서는 신부의 친구들이 그 횃불을 들고 신랑과 신부와 함께 원을 그리고 돌며 춤을 추는 것으로 절정을 이룹니다. 들러리들은 이 때를 너무나 기대하고 영광으로 생각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세마포로 된 횃불만 가지고 기름이 없는 이들은 그 춤의 대열에 합류할 수가 없습니다. 그저 어두운 곳에 서서 부러움으로 쳐다만 볼 뿐이지요.

 

'기름'은 횃불을 계속 타오르게 하는 것입니다. 세마포(십자가와 보혈)에 기름이 적셔짐으로 불이 붙어야 하고 계속 타올라야만 합니다. 이 두가지의 하나됨이 어둠을 이겨내는 진정한 하나님의 능력, 곧 성령의 권능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비밀을 깊이 깨달은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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