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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시57:1-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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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한태완 목사 |
참고 : |
새벽을 깨우리로다
본문: 시57: 1- 11
1. 하나님이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 영혼이 주께로 피하되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서 이 재앙들이 지나기까지 피하리이다
2. 내가 지존하신 하나님께 부르짖음이여 곧 나를 위하여 모든 것을 이루시는 하나님께로다
3. 그가 하늘에서 보내사 나를 삼키려는 자의 비방에서 나를 구원하실지라 (셀라) 하나님이 그의 인자와 진리를 보내시리로다
4. 내 영혼이 사자들 가운데에서 살며 내가 불사르는 자들 중에 누웠으니 곧 사람의 아들들 중에라 그들의 이는 창과 화살이요 그들의 혀는 날카로운 칼 같도다
5. 하나님이여 주는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시며 주의 영광이 온 세계 위에 높아지기를 원하나이다
6. 그들이 내 걸음을 막으려고 그물을 준비하였으니 내 영혼이 억울하도다 그들이 내 앞에 웅덩이를 팠으나 자기들이 그 중에 빠졌도다 (셀라)
7.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내가 찬송하리이다
8. 내 영광아 깰지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9. 주여 내가 만민 중에서 주께 감사하오며 뭇 나라 중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
10. 무릇 주의 인자는 커서 하늘에 미치고 주의 진리는 궁창에 이르나이다
11. 하나님이여 주는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시며 주의 영광이 온 세계 위에 높아지기를 원하나이다
오늘 새벽도 설레임을 안고 새벽 기도회를 인도합니다. 늘 만나는 얼굴인데도 반가운 얼굴들이요 새벽마다 만나는 얼굴들인데도 늘 신선하고 아름다운 얼굴들입니다. 목사는 새벽 기도를 드리는 성도의 모습에서 참으로 많은 은혜를 받게 됩니다. 늘 보이는 얼굴 중에 안보이는 성도가 있으면 마음이 무겁습니다. 그러나 새벽 기도회에서 새로운 얼굴을 대할 때면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옛말에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루를 어떻게 시작하느냐 하는 것은 그 하루의 반은 이미 결정지어진 것이나 다를 바가 없습니다. 학생들의 공부도 기초 가정이 중요합니다. 기초 가정이 부실하면 시간이 갈수록 힘이 들고 뒤쳐지게 됩니다. 신앙생활 역시 처음부터 제대로 해야지 형식적인 신앙은 갈수록 힘이 듭니다.
한국 교회가 부흥하게 된 요인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에 하나로 새벽기도 운동을 말하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실제로 길선주 목사에 의해서 시작된 새벽기도 운동을 기점으로 한국 교회는 세계 교회에서도 그 유래를 찾아 볼 수 없는 성장을 하였습니다. 새벽기도회를 인도 할 때마다 새벽에 참석하는 성도들을 보면서 영적 운동에 참여 하고자 하는 결의를 읽을 수 있습니다. 영적 운동은 육의 욕망을 지배하지 않으면 참여 할 수 없기 때문에 피곤한 몸을 깨워 주의 전을 찾는 모습은 그 자체가 승리자의 모임입니다. 가끔 주님이 어느 시간에 오실까 하는 상상을 해봅니다. 아마 우리나라 시간으로는 새벽 시간일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깨어 있으라고 하셨는데 잠자는 시간에 깨어 있다는 것은 새벽 시간이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물론 주님이 말씀하신 것은 시간적 의미로 주신말씀은 아닙니다. 그러나 깨어 있다는 것을 가장 실질적으로 느껴지는 것 이 바로 새벽 기도회 임은 부인 할 수가 없습니다.
평소에 새벽기도를 못하는 사람도 주일 새벽만은 모든 성도들이 다 새벽 기도회에 참석해야 할 것입니다. 성수 주일을 위해서 주일 새벽 예배는 참 중요한 예배라는 생각이 듭니다. 모든 성도들이 그날에 사명을 잘 감당하기 위해서 먼저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는 것은 참으로 귀한 일입니다.
‘여호와여 아침에 주께서 나의 소리를 들으시리니 아침에 내가 주께 기도하고 바라리이다’(시5:3) 본서는 다윗이 사울을 피하여 아둘람굴에 숨어 있을 때 지은 시입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하감하시고 긍휼과 자비를 베풀어 주시므로 원수가 아무리 삼키려해도 하나님이 보호해주실 것을 믿고 재앙이 지날 때까지 주의 날개 그늘 아래 피한다고 하였습니다.
원수의 악랄함은 사자처럼 삼키려하고 맹렬한 불에 태워버리려 하고 원수의 이는 창과 살이요 입은 날카로운 칼같아서 사람을 찌르고 베는 것으로 일삼는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자기를 버리지 아니하시고 보호해 주실 것을 요망합니다.
본문 1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하나님이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 영혼이 주께로 피하되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서 이 재앙들이 지나기까지 피하리이다”시인은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를 구합니다. 시인은 자신의 삶을 위태롭게 하는 환난을 당하여 고통가운데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시고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내 영혼이 주께로 피하되 주의 날개 그늘 아래서 이 재앙이 지나기까지 피하리이다."라고 했습니다.
주께로 피하는 것이 가장 안전함을 믿고 하나님 긍휼을 구하고 있습니다. 주의 날개 그늘 아래서 병아리가 암탉의 날개 아래 숨어 있는 것처럼 다윗은 하나님의 날개 아래 피해 있는 생활을 선택하였습니다(마 23:37 참조). 병아리가 그 암탉의 날개 아래 있으면 독수리가 와도 아무 염려 없습니다. 성도가 언제나 주의 날개 아래 피하는 생활을 하면 이 세상이 아무리 험악할지라도 하나님의 보호를 받고 안식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인 우리는 시험을 당할 때 결코 멸망할까 두려워하지 말고 끝까지 견디는 신앙의 인내를 해야 합니다. 실로 하나님은 미쁘시사 우리가 감당치 못할 시험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우리로 능히 감당하게 해 주십니다.(고전10:13)
본문 2, 3절을 보겠습니다.
‘내가 지존하신 하나님께 부르짖음이여 곧 나를 위하여 모든 것을 이루시는 하나님께로다 그가 하늘에서 보내사 나를 삼키려는 자의 비방에서 나를 구원하실지라(셀라)하나님이 그의 인자와 진리를 보내시리로다’
다윗은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어떤 분이십니까?
1) 지존이십니다.(2절)
2) 나를 위하여 모든 것을 이루시는 분이십니다.(2절)
3) 구원하실 분이십니다.(3절)
시인은 자기의 간구가 헛되지 않게 해달라고 호소합니다.(2절), "내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 부르짖음이여 곧 나를 위하여 모든 것을 이루시는 하나님께로다"라고 했습니다. 시인은 자기가 부르짖어 간구하는 대상이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임을 고백합니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란 말은 "엘로힘 엘리온"이란 합성어로서 성경에서 오직 두 번 사용되었습니다.(시57:2, 78:56절), 이것은 지극히 높으신 창조주. 최고의 통치자. 최종의 권위를 의미합니다. 이것과 연관되어 주목할 다른 단어는 "이루시는"이란 말입니다. 이 단어 역시 성경에서 다섯 번 밖에 나오지 않는 단어로서 모두 시편에 있으며 그 뜻은 "완전하다. 끝나다. 중단하다"입니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은 뜻하신 바를 확실히 이루십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위협적인 상황도 주관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분명한 목적을 갖고 이런 역경을 허락하십니다. 고난은 우리에게 믿음을 연단시켜 강하게 하고 그분께만 소망을 두며 겸손하고 정결한 삶을 살도록 해줍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하나님께서는 도움을 구하는 간절한 부르짖음을 온전하게 다듬어 더욱 인내하는 자로 만드시는 것입니다. 시인이 궁극적으로 기대하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입니다.
본문 4, 5절을 보겠습니다.
‘내 영혼이 사자들 가운데에서 살며 내가 불사르는 자들 중에 누웠으니 곧 사람의 아들들 중에라 그들의 이는 창과 화살이요 그들의 혀는 날카로운 칼 같도다 하나님이여 주는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시며 주의 영광이 온 세계 위에 높아지기를 원하나이다’
다윗의 고통은 대적들의 음모와 박해입니다. 그는 시시각각으로 생명의 위협을 받았으며 그의 형편은 이미 죽은 자와 같이 절망적이었습니다. "내 영혼이 사자 중에 처하며 내가 불사르는 자 중에 누웠으니 곧 인생 중에라 저희 이는 창과 살이요 저희 혀는 날카로운 칼 같다."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처지가 마치 으르렁 거리는 맹수들 사이에 있는 곳과 같으며 불사르는 자 중에 누워 있는 것 같다고 말합니다. 전혀 여유를 가질 수 없는 긴박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보고 찬양합니다.
"하나님이여 주는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시며 주의 영광은 온 세계 위에 높아지기를 원하나이다"라고 했습니다.
본문 6절을 보겠습니다.
그들이 내 걸음을 막으려고 그물을 준비하였으니 내 영혼이 억울하도다 그들이 내 앞에 웅덩이를 팠으나 자기들이 그 중에 빠졌도다 (셀라) 시인은 자기 목숨을 노리고 공격하는 자들의 기세 등등한 모습에 짓눌리지 않고 그들의 궁극적인 운명이 얼마나 비참할 것인지를 보면서 이유 없이 모함하고 자기를 죽이려고 파 놓은 웅덩이에 그들이 빠지리라고 선포합니다.그물은 물고기나 새들 또는 야생 동물을 잡기 위한 것이나 여기서는 악하고 교활한 자들이, 사람들을 속여 죄나 우매함이나 파멸로 빠드리려는 술책을 말합니다. 이같이 거짓되고 교활한 덫을 놓는 것은 악한 자들의 음모의 본질입니다. 이러한 술책으로 시인은 "내 영혼이 억울하도다"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영혼이 스그러졌다"는 말과 같은 의미로서 낙심한 상태를 표현한 것입니다.
본문 7절을 보겠습니다.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내가 찬송하리이다’
알 프레드 화이트헤드 교수는 영국의 대 철학자이자 수학자입니다. 그의 집안은 대대로 기독교를 믿었지만 그는 철학과 수학에 심취하면서 신앙에 대해 깊은 회의에 빠졌고 결국 신앙을 버리렸습니다.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어느 날 그 지방에 엄청난 폭설이 내렸습니다. 눈길을 걸어가고 있는데 어디선가 노래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눈구덩이에 빠져 있는 늙은 할머니였습니다. 그는 서둘러 할머니를 꺼내주었습니다. 할머니는 고맙다고 거듭 감사하면서 물었습니다. “내게 이런 큰 은혜를 베풀어주셨으니 당신은 분명 신앙심이 깊은 분이겠지요. 어느 교회에 다니십니까?”
“아뇨. 저는 교회에 다니지 않습니다. 신앙심도 없고요.”
그러자 노파는 의외라는 듯이 말했습니다. “아니, 다 늙은 사람이 어쩌자고 아직도 예수님을 안 믿는단 말이오! 나는 저 눈구덩이 속에서 죽을 것이라 생각하고 열심히 찬송을 부르고 있었다오.” 그 말을 듣는 순간 그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세상의 어떤 학문도 저 할머니가 갖고 있는 저런 확신을 줄 수 없지 않는가?’ 그리고는 버렸던 신앙을 다시 찾기로 하고 교회에 출석하게 되었습니다. 마음에 확신이 있다면 죽음도 두렵지 않습니다. 그러한 확신을 소유하십시오.
시인은 확정된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송하였습니다. 주의 확실한 믿음 갖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자에게 세상이 두렵지 않습니다. 믿음을 가지고, 대적으로부터의 구원을 확신하고 미리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올립니다. 그의 구원 확신은 인간의 의지로 말미암음이 아닙니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내가 예수님 믿어’
구원의 확신과 찬양입니다. 시인은 마음을 확정했습니다. 이제 흔들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내가 찬송하리이다."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확정 되었다"고 한 말은 "확고하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본문 8절을 읽겠습니다.
‘내 영광아 깰지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오직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구원을 확신하기로 작정한 시인은 이제 하나님께 베푸실 구원을 찬양합니다. "내 영광아 깰지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어려움에 처하여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그것은 인간의 의지나 능력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그럴 때일수록 스스로를 격려해서 주님을 찬양하기로 결단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다윗은 자기 자신에게 그리고 비파와 수금을 향하여 하나님을 찬양하자고 말합니다.
새벽은 어둠이 물러가고 새 날이 밝아오는 하루가 바뀌는 전환기입니다. 이 처럼 새 날이 시작되는 첫 시간에 하나님을 찬양하겠다는 시인의 다짐은 새 날 곧 하나님의 구원으로 말미암아 환난에서 벗어나게 된 이후의 모든 날을 여호와께 드리겠다는 시인의 헌신의 표현입니다. 실로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 성도들(고후5:17)이 중생 이후 자신에게 새롭게 주어진 새날을 어떻게 사용하는 것이 마땅한가를 생각게 하는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여 내 마음을 정하였사오니 내가 노래하며 나의 마음을 다하여 찬양하리로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시108: 1, 2)
본문 9절을 보겠습니다.
‘주여 내가 만민 중에서 주께 감사하오며 뭇 나라 중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
열방 중에서 주님께 감사와 찬송을 드립니다.
나님의 구원을 확신하기에 그는 만민중에 주의 구원을 선포하고 감사하며 찬송하겠다고 합니다. 백성들 가운데서 주께 감사하며 여러 나라들 가운데서 주를 찬송하겠다는 것은 구원을 확신하는 그의 기쁨과 감사가 솟구쳐 억제할 수 없음을 드러냅니다. 만일 다윗이 죽었다면 백성들 가운데서 주께 감사하며 여러 나라들 가운데서 주를 찬송하는 일은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백성들 가운데서 주께 감사하며. 여러 나라들 가운데서 주를 찬송하는 일은 불가능했습니다.
본문 10절을 함께 보겠습니다.
‘무릇 주의 인자는 커서 하늘에 미치고 주의 진리는 궁창에 이르나이다’
다윗은 하나님의 자비로우심을 찬양합니다. 다윗은 큰 위기 속에서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하고 하나님의 인자 (사랑)과 진리 (성실)가 무엇인지를 깊이 느낍니다. 인생의 모든 위기는 그 당시에는 견디기 힘들지만 그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을 배웁니다. 역경은 하나님께 부르짖게 만들며 이론적으로만 알던 살아계신 하나님의 능력과 구원을 체험하는 계기가 됩니다.
성경의 모든 위대한 인물들이 다 말할 수 없는 위기를 만나고 믿음으로 하나님을 도우심을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이러한 구원의 경험은 더 큰 믿음과 신뢰로 이어졌습니다. 하나님의 자비와 성실을 안다는 것은 그분을 안다는 것입니다. 이런 자비와 성실은 회개하고 그분께 돌아오는 죄인들에게 더욱 특별한 의미를 갖습니다. 자신의 무가치함과 더러움. 절망적인 상태를 인식하는 자만이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과 신실하심을 깊이 깨달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 11절을 읽겠습니다.
‘하나님이여 주는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시며 주의 영광이 온 세계 위에 높아지기를 원하나이다’
하나님의 구원을 확신하며 자기의 믿음을 확정한 시인은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찬양합니다. "하나님이여 주는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시며 주의 영광은 온 세게 위에 높아지기를 원하나이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의 모든 왕들보다 그리고 우주의 태양이나 별들. 그리고 그 어떤 다른 피조물과도 비교할 수 없이 높으시며 오직 찬양을 받으실 유일한 분입니다.
하나님만이 영원토록 영광과 찬양을 받기에 합당하신 분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데 드려야 할 이러한 찬양을 다른 피조물에게 드린다는 것은 우상숭배이며 타락입니다. 하나님께서 피조물들에게 원하시는 것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를 찾으시며 찬양과 경배를 드리는 자들을 찾고 계십니다.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감사찬양을 드려서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는 참 그리스도인의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믿으며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사람은 새벽을 깨우는 자로 부름 받은 종들입니다. 여러분들은 무엇으로 이 시대의 어둠을 헤치고 새벽을 깨우시렵니까?
1. 말씀을 전함으로 깨워야 합니다.
이 시대는 진리가 왜곡되거나 소멸하면서 어둠이 가속적으로 짙어가고 있습니다. 어둠에 묻혀 안주하는 이들에게 복음을 전해 주어야 합니다. 성령이 임하는 성도마다 그 권세와 권능으로 말씀을 전해 주어야 합니다.(행1:8) 그것이 어두움을 몷아내는 최선의 방법입니다. 말씀을 증거하는데 앞장섬으로 영혼의 어두움에 잠긴 자들에게 새벽을 가져다 주는 성도가 됩시다.
2, 하나님을 높이는 찬양으로 깨워야 합니다.
본문 8절에서 다윗은 새벽을 깨우기 위하여 비파와 수금으로 깨우고 있습니다. 주께 감사하고 주를 찬송하는 것으로 새벽을 깨우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마음이 확정된 사람은 자연히 주를 찬송하게 됩니다. 여러분의 주위에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하여 주를 찬양하십시오. 여러분의 간증과 찬양이 이웃의 영들을 께우는 도고로써 활용되시기를 바랍니다.
3, 행동하는 삶을 깨워야 합니다.
우리 성도들에게 있어 심각한 문제는 믿음과 실제 생활이 분리되어 이중의 삶을 사는 데 있습니다. 교회안의 생활과 밖의 생활이 일치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세상은 성도로서의 바른 삶을 살지 않는 자들로 인해 더욱 어두워져가도 있습니다. 에스더가 민족을 살리기 위해 죽음을 무릅쓴 것처럼(에4:16) 성도들의 삶도 그러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믿음에 합당한 행동을 해야 합니다. 우리의 빛된 행동이 이 사회의 어둠을 몰아낼 수 있도록 신행(信行)이 일치하는 성도들이 됩시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이 사회의 어둠을 몰아내고 새벽을 깨우기 위해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우리는 참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과 찬양으로 영광 돌리며 간증하는 삶, 그리고 신앙에 따라 행동하는 삶으로 이 시대의 새벽을 깨우는 성도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세상의 어둠 속에 함께 묻혀 지내는 자들이 아니라 각자의 처소에서 빛의 역할을 감당하여 이 시대의 암흑을 몰아내고 새벽을 깨우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 기도: 사랑과 공의의 하나님, 나 같은 죄인까지도 구원해 주신 주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나의 눈과 귀에 아무 증거 없어도 늘 믿으며 주님을 따르겠습니다. 우리는 고난을 즐거워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나 홀로 십자가의 고난을 피해 가기를 기도하지 않겠사오니 고난을 대비하고 극복할 확신을 저에게 주옵소서. 성공을 눈으로 바라보며 사는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영원하신 말씀위에 굳게 서게 하옵소서. 우리가 구원 얻을 때까지 믿음에 굳게 세워주시고 하나님 나라 확장에 쓰임받는 성도되게 하옵소서. 빛의 자녀로서 이 시대의 암흑을 몰아내고 새벽을 깨우는 성도가 되게 하옵소서.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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