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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마26:36-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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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동호목사 |
참고 : | 2009.6.21 |
일어나라 함께가자.
마 26:36-46.
공부를 잘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가장 중요한 차이는 무엇일까요? 지적인 능력의 차이가 사람마다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공부를 잘 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가장 중요한 차이가 지적 능력의 차이는 아닙니다. 물론 어느 정도 영향력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지적 능력의 차이보다는 학습태도와 자세의 차이가 더 큽니다.
가장 중요한 것 중에 하나는 집중력입니다. 한 가지 일에만 집중하는 능력이 공부를 잘 하는 사람들은 대개 탁월합니다. 얼마 전 텔레비전 오락프로그램에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 개발의 선구자인 안철수씨가 나왔습니다. 군대 가기 전날 새벽까지 미켈란제로라는 바이러스 백신을 만들어 완성하고 입대를 하였답니다. 그런데 군대에 입대한 후에 생각해 보니 집에 자기가 군대에 입대한다는 이야기를 못하고 왔더라는 것입니다. 그때 이미 결혼하여 아내와 아이들도 있었다는데 말입니다. 한 가지 일에 집중하면 그 밖의 다른 일은 전혀 생각할 줄 모르는 그 탁월한 집중력이 탁월한 성과를 가져 오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집중력이 어디서부터 오는지 아십니까? 그것은 성취동기입니다. 공부하는데 있어서 성취동기가 강하다는 것은 공부하는 목적이 분명한 것을 의미합니다. 왜 공부하는지 그 목적과 목표가 분명한 사람이 공부를 잘 한다는 것입니다. 성취동기가 강해지면 따라서 집중력도 강해지게 됩니다. 그러나 성취동기가 약하게 되면 집중력도 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공부를 잘 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잘 사는 것입니다. 제가 이야기하는 잘 산다는 말은 돈 많은 부자로 산다는 말과는 다른 이야기입니다. 돈 많은 부자로 사는 것도 좋지만 한번 왔다 가는 인생 정말로 사람답게 잘 살다 가는 것은 그것과 비교할 수 없으리만큼 중요합니다.
우리는 정말 잘 사는 것에 대한 욕심을 가져야만 합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부자로 사는 것에는 욕심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정작 보다 중요한 정말로 잘 사는 것에 대해서는 별로 욕심이 없습니다. 행복은 부자로 사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잘 사는데 있는데도 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잘 사는 것에 대한 욕심을 가지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잘 사는 사람이 되려면 무엇보다도 왜 살아야만 하는지 삶의 목적에 대한 생각이 분명해야 합니다. 삶의 목적에 따라 우리의 삶의 자세와 모습이 달라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잘 사는 사람이 되려고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삶의 목적을 분명히 하고 그 목적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잘 산다는 것은 소유가치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존재가치를 높이는 것입니다. 소유가치가 높은 사람은 잘 사는 사람이 아니고 부자입니다. 존재가치가 높은 사람이 잘 사는 사람입니다. 존재가치는 존재목적에서부터 옵니다. 목적대로 존재할 때 그 존재는 비로소 가치 있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잘 사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 강대상의 마이크는 특별한 존재목적을 가지고 만들어졌습니다. 그것은 작은 목소리를 크게 확성하는 목적입니다. 이 마이크가 그 목적대로 존재할 때는 가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마이크가 그 목적을 상실하게 될 때 다시 말해서 고장 나게 될 때 마이크는 가치를 상실하게 됩니다.
컴퓨터 바이러스는 컴퓨터를 파괴합니다. 본래의 기능과 목적을 달성할 수 없게 만듭니다. 사탄은 우리 인간을 파괴하기 위하여 죄라고 하는 바이러스를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사탄이 만든 죄라고 하는 바이러스의 핵심이 무엇인지 여러분 아십니까? 그것은 삶과 인생의 목적을 바꾸어 놓은 것입니다. 존재의 목적을 상실하게 함으로 존재의 가치를 상실하게 하려는 것이 사탄의 의도입니다.
사탄은 하와에게 선악과를 따먹게 할 때 선악과를 먹으면 네가 하나님이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삶의 목적입니다. 우리 스스로가 하나님이 된다는 것은 삶의 목적을 하나님으로부터 자기 자신으로 바꾼다는 의미입니다. 삶의 목적은 바뀔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 삶의 목적이 선악과를 따 먹음으로 바뀌었습니다. 인간은 목적을 상실한 존재가 되었고, 목적을 상실함으로 가치를 상실하게 되었습니다. 고장 난 마이크는 쓰레기 통에 버려야 하듯 우리 인생들도 무가치한 존재가 되어 지옥에 버려져야 할 존재들이 되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에게는 12 제자들이 있었습니다. 제자는 그냥 예수님을 따라다니는 무리가 아니었습니다. 말 그대로 제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제자들마저도 엄밀히 말하면 제자들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앞두고 무척이나 외롭고 고통스러우셨습니다. 감람산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가 하나님께 기도하실 때 제자들과 함께 동행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고 부탁하셨습니다. 그러나 저들은 한 시간도 예수님을 위하여 깨어 있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을 위하여 깨어 있지 못한 까닭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예수님의 고민이 자신의 고민이 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고민과 자신의 고민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삶의 목적과 자신의 삶의 목적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자신의 삶의 목적이 하나님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때까지도 엄밀히 이야기하면 예수님의 제자들은 진정한 의미의 제자였다고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후 오순절날 성령을 받고 비로소 제자가 됩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제자들에게 있어서 달라진 것이 무엇인지 여러분 아십니까? 그것은 제자들의 삶의 목적이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삶의 목적이 분명해 졌다는 것입니다. 성령 받고 거듭난 제자들은 더 이상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았습니다. 누가 더 높으냐를 가지고 경쟁하지 않았습니다. 주를 위하여 살았습니다. 복음을 위하여 살았습니다. 아니 주를 위하여, 복음을 위하여 산 것이 아니라 주와 복음을 위하여 죽었습니다. 참 삶은 역설적입니다. 저들은 죽음으로 살았습니다. 죽음으로 비로소 잘 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죽었다는 것은 목적을 바꾸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선악과를 따 먹음으로 자신이 자신의 삶에 주인이었던 것을 끊어 버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진정한 삶의 목적을 되찾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 높은 뜻 교회는 이 땅에 교회를 세우신 하나님의 뜻에 집중하려고 하는 교회입니다. 교회가 교회의 목적이 되지 않으려고 부족하지만 발버둥질 치는 교회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교회를 해체까지 하는 교회입니다. 우리 교회가 요즘 집중하고 있는 하나님의 뜻은 이 땅의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들의 자활을 도와주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뜻이 우리 교회의 목적이 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 예배당부터 짓지 않고 재단부터 세운 것입니다. 탈북자를 위한 공장부터 세운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는 보이지 않는 성전건축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2006년 8월 열매나눔재단을 세우기로 결정하고 일 년을 준비하여 2007년 7월 서울시로부터 재단설립 인가를 받게 되었습니다. 5억 원 정도면 재단을 설립할 줄 알고 시작한 일이었는데 결국은 70억 원을 투자하게 되었습니다. 5억 원 인 줄 알고 도전하였다가 그것이 70억 원이 되면 포기해야 하는데 우리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준비 된 현찰이 없어서 20억 원은 현찰로 내고 50억 원은 매년 10억 원씩 5년 동안 내기로 공증을 하고 재단을 설립하였습니다.
또 일 년 가까이를 준비하여 2008년 5월 드디어 무모한 도전이라고 모두 생각했던 희망공장 1호 즉 파주의 박스 공장 메자닌 아이팩을 설립하였습니다. 매달 몇 천 만 원 씩 적자를 보았습니다. 공장에 위기가 닥치기도 하였습니다. 그 위기는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사업에 경험이 없는 저와 재단 식구들이 당연히 예상하지 못했던 변수들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위기가 닥쳤을 때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힘든 것은 위기가 아니었습니다. 위기가 닥쳤을 때 누구에게도 힘들다는 이야기를 할 수 없다는 것이 힘들었습니다. 수 천 명의 교인들이 있지만 그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제게는 없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하면 함께 걱정해 주고 함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발 벗고 나서줄 사람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위기를 나름대로 빨리 발견하고 대처하여 아슬아슬하게 그 위기를 넘어설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기적과 같이 아무도 믿지 못했던 공장의 흑자를 이룰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 2 공장과 제 3 공장을 설립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흑자를 내기 시작한 제 1 공장을 여러분들에게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400 여 평 적지 않은 공장이 좁아서 마당에 천막까지 치고 물건을 쌓아놓은 공장을 여러분들에게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박스를 커팅하는 기계와 프린팅하는 기계를 보여드리고 싶고 이제는 그와 같은 기계들을 능수능란하게 다루며 박스를 만들어내는 새터민 우리 식구들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우리 공장들은 우리나라에서 새터민들이 직원이 되어 움직이는 기업 중에 이미 대표가 되었습니다. 특히 새터민들을 고용하여 만든 사회적 1호 기업이 되었습니다. 특히 성공모델을 제시한 1호 기업이 되었습니다.박스 공장은 이제 미국으로부터도 주문을 받는 기업이 되었습니다. 미국으로부터 연간 18억 원의 계약을 따냈습니다. 며칠 후 우리 사장이 계약을 하러 미국으로 갑니다. 제 2호 공장인 메자닌 에코원은 블라인드 커튼을 만드는 공장인데 지난 주 복지부 장관실 커튼을 우리 공장에서 생산한 우드 블라이드 커튼으로 바꾸어 달았습니다. 복지부와 노동부 그리고 통일부가 우리 재단과 공장을 적극 지지해 주고 있기 때문에 아직은 적자이지만 제 2 공장도 곧 좋은 소식을 우리에게 전해 주리라 믿습니다. 우리 재단과 공장의 기업이미지가 너무 좋기 때문에 우리에게 점점 더 많은 기회들이 주어지는 것 같습니다. 얼마나 감사한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이쯤 되면 제 마음 고생은 끝나는 줄 알았습니다. 흑자도 내고, 주문도 늘어나니 이제는 고생 끝 행복 시작인 줄 알았습니다. 저는 지난 주 사회연대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으면서 연대보증을 서야만 했습니다. 공장이 주문을 많이 받아 그것을 생산하려니 예산에 없던 비용이 있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대출을 받았습니다. 우선 1 억 원을 대출 받았습니다. 은행은 제가 재단의 대표이기 때문에 연대보증을 해야만 한다고 하였습니다. 쉽게 말해 공장이 갚지 못하면 재단이 갚고 재단이 갚지 못하면 제가 갚아야 한다는 것을 보증하는 것이었습니다.
재단의 사무처장은 그것이 미안하여 어쩔 줄 몰라 했지만 저는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사인을 하였습니다. 기쁜 마음으로 하였습니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정말 재단까지도 그 돈을 갚지 못해 내가 갚게 되어도 좋다는 마음으로 사인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인간적인 생각도 들었습니다. 공장과 재단에서 월급을 받는 것도 아닌데, 공장이 잘 된다고 내게 어떤 유익과 이익이 생기는 것도 아닌데, 공장이 잘못되면 책임은 내가 져야 한다니 뭔가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솔직히 들었습니다.
교회가 적지 않은 투자를 하였지만 공장이 성공적이 되어 늘어나다 보니 그 한정된 예산으로 이런 일들을 감당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앞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미처 예상 하지 못했던 변수들 즉 어려움이 생기면 그것을 해결할 재정적인여유가 전혀 없습니다.
지난 주 금요일에 우리 공장에 노벨평화상을 받으셨던 무하마드 유누스 총재께서 다녀가셨습니다. 3년 전에도 우리나라에 서울평화상을 받기 위하여 오셨다가 우리 교회가 운영하고 있는 자활기관이 김밥천국을 방문하신 적이 있으셨는데 이번에 이화여자대학교의 초청으로 오셨다가 우리 재단 소식을 들으시고는 정말 바쁘신 시간을 쪼개어 제 1공장과 제 2 공장을 방문해 주셨습니다.우리 공장 방문을 마치시고는 귀국을 하셨는데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시는 동안 통역을 하였던 제 큰 아이에게 메일을 보내주셨습니다. 간단하게 그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면서 열매나눔재단이 운영하고 있는 사회적 기업을 방문했던 것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열매나눔재단에서 이해하고 있는 사회적 기업 컨셉에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열매나눔재단처럼 사회적 기업의 컨셉을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중략) 열매나눔재단의 사례를 제가 운영하는 홈페이지에 올려서 다른 사람들이 열매나눔을 알게 되고, 열매나눔재단의 조언을 듣게 되기를 원합니다. (중략) 사회적 기업과 관련하여 투자가 필요하다면 알려주세요. 도울 수 있는 친구들에게 알리도록 하겠습니다.>
얼마나 감사하고 격려가 되었는지 모릅니다. 빈민자활의 세계적인 대부요 그 때문에 노벨평화상을 받으신 분이 그렇게까지 감동하는 것을 보고 그 동안 우리 교회가 한 일이 헛된 일이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감사했습니다. 저는 그것이 비단 유누스라고 하는 한 사람의 격려가 아니라 그를 통한 하나님의 격려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이 일을 도와주시고 밀어 주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상상하지 못했던 일들을 이루게 해 주실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유누스 총재는 제 1공장에서 잠깐 연설을 하시면서 30명이 성공했다면 3천 만 명도 성공할 수 있다는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저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소름이 끼쳤습니다. 우리가 이 일을 시작한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하나님의 계시를 듣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이 일을 기뻐하시기 때문에 이 일에 동참하고 헌신하는 사람을 기뻐하시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반드시 저들에게 축복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이 일에 참여하고 헌신하는 모든 자들에게 하나님은 영육간에 말로 다할 수 없는 복으로 축복해 주실 줄 저는 믿습니다. 제 말을 흘려듣지 마시고 믿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함께 동역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누가 뭐라고해도 열매나눔재단과 탈북자들과 빈민들의 자활을 위한 공장들은 우리 교회 교인들의 헌신과 헌금으로 시작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이 일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과 상을 우리 교회 교인들이 일 등으로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그게 제 솔직한 심정입니다. 우리 교회가 이 일을 시작한 주체임에는 틀림이 없으나 저는 우리 교회 교인들이 모두 다 능동적인 참여자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참여자이기는 하지만 능동적이라기 보다는 수동적입니다.
우리가 이 일에 보다 적극적이지 못하고 능동적이지 못한 까닭은 우리가 하나님의 일에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에 관심이 없는 까닭은 아직도 우리 삶의 궁극적인 목적이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사회연대은행에 연대보증인으로 사인을 하면서 느꼈던 외로움을 어떻게 오늘 본문의 예수님의 외로움에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저는 개인적으로 그 조그마한 외로움을 느끼면서 감히 예수님의 외로움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죄로 말미암아 죽게 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시기로 결심하셨습니다. 그게 너무 힘들고 어려우셔서 자신을 사랑한다고 믿으신 제자들에게 그동안은 내가 너희들을 위하여 기도했지만 이번만큼은 너희들이 나를 위하여 기도해 달라고 부탁하셨던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탈북하여 이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여 사회적인 빈민과 약자로 전락하게 된 새터민들을 구하기 위하여 예배당 건축을 우선 포기하고 교회까지 해체하면서 나름 작은 십자가를 지려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무겁습니다. 힘듭니다. 외롭습니다. 구경하지 마시고, 판단만 하지 마시고, 위하여 기도해 주시고 함께 이 짐을 져 주시기를 바랍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우리 재단과 우리 재단이 운영하는 사회적 기업인 희망공장에 대한 소문이 나면서부터 우리를 돕고 함께 하려는 사람들이 하나 둘 생겨나기 시작하였습니다. 좋은 현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러다가 정작 이 일을 시작한 우리 높은 뜻 교회의 교인들은 점점 소극적이 되고 방관자가 되는 것이 아닌가하는 염려가 인간적으로 듭니다.
이 일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이 일은 반드시 성공합니다. 여러분 이 일에 방관자가 되시면 안 됩니다. 예수님은 오늘 본문에서 제자들에게 일어나 함께 가자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오늘 이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일어나 함께 이 귀한 사역을 감당하자고 말씀하십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말씀을 정리하면서 엉뚱하게 모르드개가 에스더에게 하였던 말이 생각납니다. <네가 왕후의 위를 얻음이 이 때를 위함인지 누가 아느냐?>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건강을 주시고 물질을 주시고 이런 저런 능력을 주심이 이와 같은 일을 하라고 하심인지 누가 알겠습니까?
하나님의 모든 축복을 자신을 위하여 쓰지 말고 하나님을 위하여 쓸 줄 앎으로 정말로 잘 사는 사람의 복을 받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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