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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관건

로마서 허태수 목사............... 조회 수 2203 추천 수 0 2012.02.03 23: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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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롬8:31-39 
설교자 : 허태수 목사 
참고 : 춘천성암교회 http://sungamch.net 

행복의 관건
롬 8:31-39
2009.7.12

“하나님이 우리 편이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습니까?”(롬 8:31)

여러분은 하나님이 누구 편이시라고 믿는가요? 하나님이 우리 편 또는 내 편이라고 믿는가요? 그렇다면 아무도 우리를 대적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내 편'이라는 말은 보편적인 선언의 뜻이 아니라 내가 고백하고 체험할 때 그렇다는 말입니다. 극심한 이기주의 신앙과 혼돈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분명히 하나님이 우리 편이라고 머리로는 생각을 하면서도 실제로 믿음을 갖지 않습니다. 그런 우리들에게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의 아들을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 모두를 위하여 내주신 분이,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선물로 거저 주지 않으시겠습니까?”(32절)

하나님이 당신의 아들을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를 위하여 내주신 것이, 하나님이 우리 편이시라는 가장 확실한 증거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이요 우리의 주님으로 고백하고 예배한다면 이미 우리는 하나님의 그 큰 사랑을 받고 있고 하나님은 우리 편에 서 계신 것입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걱정하거나 두려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이어서 바울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들을 누가 감히 고소하겠습니까? 의롭게 하여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신데 누가 감히 그들을 정죄하겠습니까?”(33-34절).

외부의 공격이나 비난보다 더 견디기 힘든 것이 정죄입니다. 남의 정죄를 받는 것도 견디기 힘든 것이지만, 더 무서운 것은 나중에 자기 자신을 스스로 정죄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 바울은, 하나님이 의롭게 하여 주신 사람을 그 누구도 정죄할 수 없다고 분명히 말합니다.

체면 문화가 발달한 우리나라 사람들은 무슨 일을 하든지, 자신의 행복을 우선하지 않고, 남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미덕이라고 배워 왔습니다. 필요 이상으로 자기를 낮추고 자기를 쉽게 정죄하곤 합니다. 우리는 자기희생적인 삶이 가장 모범적인 삶이라고 배워왔습니다. 버스차장이나 식모살이를 해서 번 돈으로 동생들을 대학에 보내는 것은 과거의 대표적인 미담이었습니다. 그런 희생적 삶이 숭고해 보이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자기 자신에 대한 존중이 빠지면, 그것이 아무리 숭고하다 해도, 진정한 삶의 표준이 될 수 없을 것입니다.

언젠가 어느 열녀비의 사연을 들었는데 남편이 위독하자 자기 허벅지 살을 떼어서 먹여서 살렸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전엔 그런 이야기에 감동을 받은 적도 있었지만, 최근에 그런 이야기를 읽으면서는, 감동보다는 끔찍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게 과연 상을 줄 일인가. 그것은, 신하는 임금에게 여자는 지아비에게, 허벅지 살을 먹이면서까지 공경을 해야 한다는, 유교사회의 낡은 윤리일 뿐입니다. 그런 희생이 결코 아름다운 일이 아닌데도, 열녀비가 세워지면, 동네 사람들은 자랑스럽다고 하고, 보통의 여자들은 그것 때문에 열등감을 갖게 되고, 행여 재혼이라도 하게 되면 죽을죄라도 진 것처럼 수치스럽게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유교 문화의 속임수가 우리에게 집단적으로 죄의식과 콤플렉스를 심어 주었습니다.

그 외에도, 자신은 장남 또는 장녀이기 때문에 집안을 일으키려면 이런 저런 책임이 있고 부모와 형제에 대해 책임이 있다면서 힘들어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집안의 모든 일이 자기 책임이라고 생각하여 늘 자신에게 부담을 지웁니다. 요즘 부모들은, 옛날에 비하면 자식들에게 너무나 잘 대해주는 것인데도, 늘 잘해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하고, 심지어 남들처럼 해외 유학을 못 시켜 주어 미안하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늘 자기 자신에게 미안해합니다. 늘 자기 몸을 해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술을 덜 먹어야 하는데, 담배를 끊어야 하는데, 운동을 더해야 하는데, 건강검진을 해야 하는데, 이러면서 늘 자신에게 미안해합니다. 그것이 필요하면 즉시 하면 됩니다. 그런데 하지는 않으면서 늘 미안해합니다.

그들은 늘 외모에 대해서 콤플렉스를 갖습니다. 자기가 가진 것을 부끄러워합니다. 살이 쪄서, 말라서, 키가 커서, 작아서, 얼굴이 커서, 작아서, 길어서 짧아서 등등, 공연한 일들로 자기 자신을 열등하게 여깁니다. 그러나 미남, 미녀만 아름다운 것이 아닙니다. 진정으로 자기를 받아들이고, 자신감에 넘치고, 자신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사람이 아름답습니다. 우리는 주님이 택하시고 의롭다 하신 우리 자신을 자주 칭찬해 주어야 합니다. 가끔 거울을 보면서,“넌 참 멋있어! 나는 나의 이런 모습이 좋아! 나는 주님의 걸작이고 세상에 둘도 없지, 얼마나 멋진 일을 해낼지 기대하시라!”이렇게 말해 주어야 합니다.

또 그들은 자기 시간의 주인이 되지 못하고 늘 끌려 다닙니다. 언제나“...해야 하는데”하면서 불안해합니다. 할 일이 있으면 즉시 하고, 오래 걸릴 일이면 계획을 세워 그때 가서 하면 됩니다. 그런데 늘 바쁘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별로 일을 하지 못하고 시간에 쫓겨 다닙니다. 주님으로부터 시간을 선물로 받은 우리는, 틈만 나면 나의 시간을 축하해 주어야 합니다.“야, 아주 잘했어. 오늘은 아주 멋진 날이야! 오늘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 살고 신선한 공기를 마시는 것이 축복이다. 나의 시간을 감사한다. 난 정말 행복하다”이렇게 늘 자신에게 말해 주어야 합니다. 아는 의사 한 분이 말하기를, 환자에게 어떤 약을 복용하라고 하면, 으레 사람들은“죽을 때까지 먹어야 하나요”하고 묻는다고 합니다. 그러면 그는,“아닙니다. 살아계신 동안만 드십시오”하고 대답한답니다. 똑같은 날들을 살면서도, 어떤 사람은 감사하고 행복한 시간들을“살아가는”것이지만, 어떤 사람들은 늘 죽음의 공포 속에서 조금씩“죽어가는”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이 주신 시간을 정죄하지 말고, 선물로 받아들이고 축하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를 의롭다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좀 더 자신감 있고 당당하게 살아야겠습니다. 나는 이 모습 이대로 온전히 주님께 받아들여졌고, 주님은 나를 가장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나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며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나는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고, 자기주장을 할 수 있고, 이기적으로 살 수 있으며, 행복할 권리가 있습니다.

우리를 의롭다 하는 이는, 전통도 체면도 사회적 통념도 아닙니다. 선생님도 부모님도 판사도 변호사도 아닙니다. 엄밀히 말하면 우리는 이 세상에 의해서는 그 어떤 일로도 정죄 받지 않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이해 못하고 손가락질 하지만 주님 앞에서 의로운 일들이 많습니다. 나다나엘 호손의 <주홍글씨>라는 소설에서, 해스터 프린은 가슴에 A(간음)자를 새기고 살아가지만, 의로워 보이는 그 여인의 남편도, 그 교회 목사도, 그 누구도 그 여인을 정죄할 자격이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이 세상이 이해 못하지만 주님 앞에서는 의롭다 함을 받는 경험을 간직하며 삽니다. 그것만은 절대로 빼앗기면 안 됩니다.

우리는 주님 앞에서 그냥 우리 이름일 뿐 어떤 직함도 지위도 신분도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는 모범생이어야 한다거나 효자, 효부여야 한다거나 의리가 있어야 한다거나 착해야 한다는 콤플렉스로부터 벗어나야 합니다. 또는 매사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콤플렉스에서도 벗어나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그런 것을 강요하신 적이 없습니다. 우리는 때로 잘못할 수도 있고, 건방질 수도 있고, 화를 낼 수도 있습니다. 잘못하지 않는 완벽한 존재를 만들려고 했으면 하나님은 하와가 선악과 따먹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런“완벽”보다 더 중요한“자유”를 주고 싶으셨습니다. 그래서 사이보그를 만들지 않으시고 잘못할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드신 것입니다. 그 자유 때문에 선악과도 따먹었고 그래서 잘못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잘못을 할 수 있기에 인간이고 거기에 은혜가 있고 구원이 있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정죄하지 않으시는데 감히 그 누가 우리를 정죄할 수 있겠어요. 이것이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선물입니다. 주님은 이 세상 그 누구도 침해할 수 없는 그 어떤 것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있겠습니까? 환난입니까, 곤고입니까, 핍박입니까, 굶주림입니까, 헐벗음입니까, 위협입니까, 또는 칼입니까? ...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삶도, 천사들도, 권세자들도, 현재 일도, 장래 일도, 능력도, 높음도, 깊음도, 그 밖에 어떤 피조물도, 우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35-39절).

이 우렁찬 승리의 선언의 핵심은, 우리에게는 그 무엇도, 핵 미사일도 꿰뚫을 수 없는 우리만의 거룩한 영역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 열거한 온갖 시련과 곤경과 불안과 공포 악의 권세 그 무엇으로도 침범할 수 없는 영역이 있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그 무엇도 우리를 이 사랑으로부터 끊을 수 없습니다. 이것은 신성불가침 영역입니다.

우리는 늘 정치 지도자들에 대한 비난과 원망 하곤 합니다. 박정희 정권 전두환 정권 노태우 정권에 대해 늘 군사정권만 사라지면 당장 정의 평화가 실현될 듯이 원망들을 했습니다. 김영삼 정권에 대해서도 IMF의 책임을 물었고, 김대중 정권에 대해서도 비슷한 원망들을 했습니다. 노무현 정권은 가장 많이 욕을 먹다가 어느 때 반전이 된 듯, 마치 영웅이었던 것처럼 불려집니다. 또 한 번도 경제가 어렵지 않은 적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한 번도 기름 값이 올라가지 않은 적이 없었고, 실업이 심각하지 않은 적이 없었습니다. 또 북한의 위협이 고조되지 않은 적이 없었습니다. 지금 세계 10대 교역국이라고 하고 단군 이래 가장 잘 산다고 하는데도 뉴스를 보면 늘 어렵다는 얘기뿐입니다. 전쟁직후 1953년 우리나라 국민소득이 67불이었고, 박 정권은 국민소득 1,000불만 되면 별천지가 올 듯이 선전했습니다. 지금은 무려 국민소득 20,000불 시대가 되었지만 별천지로 느끼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노태우 정권 때 곧 마이카 시대가 오면 보통사람들이 행복할 거라고 했지만 지금 차 두 대씩 갖고 사는 집도 많지만, 그리 행복한 것 같지 않습니다. 행복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셔서 내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것이지 절대로 외부적인 조건에 의해서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경제 문제, 정치 문제, 사회적인 성공 등등으로 우리 자신을 너무 쉽게 또 자주 괴롭히고 침해합니다. 우리보다 훨씬 더 못 사는 인도네시아나 필리핀 사람들이 행복지수가 높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우리가 너무 쉽게 우리만의 공간을 외적인 것에 내주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 어떤 외적 조건에 의해서도 절대로 침해를 받을 수 없는 시간과 공간을 확보하고 살아야 합니다. 신앙을 갖고 산다는 것은 남들이 모르는 그런 시간과 공간을 간직하고 산다는 의미입니다. 바울사도의 승리 선언처럼,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굶주림이나 죽음이나 삶이나 장래일이나 현재일이나 그 무엇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으로부터 끊을 수 없습니다. 바울은 이 거룩한 시간과 공간을 침해당하지 않고 간직할 수 있었기에 그렇게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그토록 위대한 하나님의 사도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 누구도 침해할 수 없는 소중한 것을 지키려면, 먼저 시간을 성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는 휴식이나 명상, 기도의 시간, 산책이나 여행 등, 자기 자신을 위한 시간을 사치나 낭비로 여깁니다. 헬렌 니어링 부부가 쓴 <조화로운 삶>에서 보면, 그들은 하루 일과에서 절반은 밭에서 일을 하고 나머지 절반은 꼭 휴식을 취하면서 책을 읽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일과의 절반은 아니더라도 하루 한 시간이라도 일주일에 하루라도 꼭 자기 자신만을 위한 시간, 혼자 있는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주일에 주님 앞에 나오는 것도 시간을 성별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소중하게 지켜야 우리도 이 세상 속에서 헛된 것들의 침해를 당하지 않고 소중한 것을 지킬 수 있습니다.

바울이 그 무엇도“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고 한 점을 주목하세요. 우리가 절대 침해받아서는 안 되는 것은 주님과의 사랑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시간과 공간은 절대로 빼앗겨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여러 가지 의미가 되겠지만, 그 가운데 하나는 기도입니다.

생명의 탄생 과정을 전자현미경으로 찍은 것을 보면 수억 마리의 정자가 난자에게 접근합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난자와 만나 수정이 이루어지는 순간 보호막 같은 것이 쳐져서 다른 것이 들어오지 못하게 한답니다. 그렇게 해서 생명이 탄생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기도하는 가운데 주님과 만나는 경험, 사랑하는 경험, 사랑받는 경험을 해야 합니다. 그 순간 우리 주위에는 보호막이 생기고, 이 세상의 그 어떤 근심도 불안도 그 무엇도 우리를 공격하지 못하고 우리의 믿음과 행복을 지킬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새벽기도만은 아닙니다. 어디서든 혼자 있을 때 기도하면 됩니다, 산책하면서, 집무실에서 일을 시작하기 전에, 차 안에서도 우리는 기도할 수 있습니다. 어느 때 어느 곳이든지 시간과 공간을 성별하여 주님의 사랑을 느끼고 그분으로부터 받아들여짐을 확신하고 기뻐할 수 있는 훈련을 스스로 터득해 나가야 합니다. 그렇게 하다 보면 속에 차오르는 기쁨이 있고, 남모르는 자신감이 생깁니다. 뜻밖의 영감이 떠오르고 아이디어가 생깁니다. 자신도 모르는 능력이 내게 있음을 알게 됩니다. 신령한 비밀을 갖게도 됩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그 어떤 외적인 것도 그를 침해할 수 없습니다.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늘 승리하는 삶을 살고 행복한 생애를 살게 됩니다.

이렇게 가장 소중한 것을 지켜서, 하루하루의 삶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승리하는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내 편이시니 아무도 나를 대적할 수 없다는 자신감을 갖기를 바랍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셔서 내 죄를 용서하시고 나를 받아들여주셨으니 이젠 세상 그 누구도 나를 정죄하지 못한다는 확신을 갖기 바랍니다. 그 누구도 침해할 수 없는 거룩한 시간을 지키며 살기를 바랍니다. 세상 그 무엇도 침범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간직하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바울 사도처럼,“이 세상 그 어떤 것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고 고백하는 성도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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