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글모든게시글모음 인기글(7일간 조회수높은순서)
m-5.jpg
현재접속자

명설교 모음

택스트 설교

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물세례, 성령세례

마가복음 정용섭 목사............... 조회 수 2943 추천 수 0 2012.02.09 23:39:09
.........
성경본문 : 막1:4-11 
설교자 : 정용섭 목사 
참고 : http://dabia.net/xe/566672 

jys.jpg물세례, 성령세례

마가복음 1:4-11,

주현절후 첫째 주일, 2012년 1월8일

 

예수님이 세례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았다는 사실에 대해서 신약의 네 복음서가 똑같이 전합니다. 이게 예사로운 현상은 아닙니다. 복음서는 여러 단락에서 예수님의 공생애 사건을 서로 다르게 전합니다. 마태복음에 나오는 이야기가 누가복음에 빠진 경우, 누가복음에 나오는 이야기가 마가복음에 빠진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특히 요한복음에 나오는 이야기가 공관복음서에 빠지는 경우는 많습니다. 예수님의 세례 이야기를 네 복음서가 다 다루고 있다는 것은 초기 기독교에서 이 이야기가 잘 알려져 있었다는 뜻입니다. 복음서 기자들은 이 사실을 거론하면서 적지 않게 고민했을 겁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며, 메시아이셨습니다. 그는 삼위일체의 아들 하나님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요한에게서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세례를 받았다는 것은 정체성 논란을 불러일으킬 만합니다. 특히 요한이 베푼 세례는 ‘죄 사함’을 받는 회개의 세례였습니다. 아무 죄도 없으신 예수님은 죄 사함을 받는 세례를 받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세례를 받았다는 것은 분명한 역사적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니 복음서 기자들이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런 고민이 네 복음서에 다 나오지만, 요한복음에 더 분명하게 나옵니다. 요한복음은 예수님이 세례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았다는 사실을 노골적으로가 아니라 약간 비틀어서 간접적으로 보도합니다. 세례요한은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오시는 것을 보고 이렇게 말합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 1:29) 이어서 예수님이 자기 자신보다 앞선 분이라고 말합니다. 그 사실을 세례요한은 이미 앞에서 언급했다고도 합니다. 예수님이 누구인지 몰랐다는 말을 두 번(31, 33절)이나 반복합니다. 예수님이 자기를 초월하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세례요한이 예수님에게 세례를 베푼 이유는 예수님을 이스라엘 앞에 나타내려는 것이었습니다. 메시아로서의 길을 시작하는 의식이었습니다. 이것을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세례가 세례요한의 세례와 전혀 다르다는 말로 설명했습니다. 예수님은 물이 아니라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분이라는 겁니다.


영혼의 변화

 

마가복음은 세례요한의 입을 통해서 이 사실을 더 명백하게 설명했습니다. 8절 말씀은 이렇습니다.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베풀었거니와 그는 너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시리라.” 요한의 물세례는 요단강에서 베풀어졌습니다. 사람들을 요단강 물속에 밀어 넣었다가 빼내는 의식입니다. 물속에 들어가는 것은 죽음을 의미하고, 다시 나오는 것은 새로운 삶을 의미합니다. 요한의 물세례는 개인과 사회의 개혁에 방점이 있습니다. 누가복음 기자는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옷 두 벌 있는 사람은 없는 사람에게 나눠주고, 먹을 것이 있는 사람도 그렇게 하고, 세리들은 뇌물을 받지 말고, 군인들은 백성들의 것을 강탈하지 말아야 합니다.(눅 3:11-14) 요즘도 이런 요구는 많습니다. 정치 개혁과 혁신을 말합니다. 여당과 야당, 보수와 진보 가릴 것 없이 모두 개혁을 외칩니다. 필요한 일들입니다. 세례 요한은 당대의 양심을 일깨우는 광야의 소리였습니다.

 

물세례에 비해서 성령세례는 조금 모호합니다. 손에 잘 잡히지 않습니다. 물은 눈에 보이지만 성령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성령세례는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세례는 아닙니다. 예수님은 세례를 베풀지도 않았습니다. 지금 교회에서 베풀어지는 세례의 전통은 세례요한에게서 온 겁니다. 세례요한의 제자들이 기독교의 구성원으로 들어오면서 세례가 교회의 의식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것은 당연히 물세례입니다. 물세례는 물과 관계가 있다면 성령세례는 성령과 관계가 있습니다. 성령세례는 성령을 받는 것입니다. 성령의 능력에 사로잡히는 것입니다. 성령과 일치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설명은 물세례에 대한 낱말 뜻입니다. 중요한 것은 성령세례의 실체가 무엇이냐 하는 데에 있습니다.

 

물세례는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개인과 사회의 도덕 윤리적인 변화를 가리킨다면 성령세례는 영혼의 변화를 가리킵니다. 물세례는 표면적인 변화이고, 영혼의 변화는 내면적인 변화입니다. 표면적인 변화는 눈에 확 드러나지만 내면적인 변화는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성령세례를 표면적인 변화에서 찾고 확인하려고 애를 씁니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았으면 뭔가 실제적인 변화가 있어야 하지 않느냐 하는 요구입니다. 교회 봉사를 열심히 하기도 하고, 가정도 모범적으로 꾸리고, 모든 이웃과의 관계도 원만하게 합니다. 만약 이런 수준의 변화가 기독교인들이 추구해야 할 것이라고 한다면 굳이 물세례와 성령세례를 구분할 필요가 없습니다. 세례요한으로 충분하지 예수님은 필요 없습니다. 좋은 것이라고 해서 기독교에서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닙니다. 물세례가 좋긴 하지만 그것으로 기독교 신앙이 성립되는 게 아닙니다.

 

성령세례를 통한 영혼의 변화는 사람의 본질이 변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행위의 변화가 아니라 속에서 일어나는 존재의 변화입니다. 사람의 본질은 죄와 악, 그리고 죽음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변하지 않습니다. 지금 저는 서로 모순되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영혼의 변화는 본질의 변화라는 말과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는 말은 서로 모순이면서 충돌합니다. 이런 모순과 충돌 사이에 신앙의 신비가 자리합니다. 복음서 기자들은 우리에게 그 신앙의 신비를 끊임없이 전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아무나 들을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귀 있는 자는 들으라고 말합니다. 오늘 우리는 귀 있는 자들일까요?

 

인간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좀더 진지하게 생각하십시오. 오랫동안 목회를 하던 분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은 사람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이 아무리 오래 교회에 다녀도, 겉으로는 그럴듯하게 신앙생활을 해도 실제로는 변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전혀 이상한 현상이 아닙니다. 그것 때문에 실망할 것도 없습니다. 저를 거기에 비춰 봐도 사람이 잘 변하지 않는다는 말은 옳습니다. 그걸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제도적으로 고칠 건 합리적으로 고치고, 시시비비를 따질 건 따지고, 교육을 통해서 의식을 개혁할 것은 개혁하면서 가능한대로 건강한 공동체로 방향을 잡고 나가는 것이 최선입니다.

 

성령세례를 통해서 영혼이 변한다는 말은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변화의 주체가 하나님이라는 사실입니다. 사람들은 변화라는 말을 늘 인간이 주체로 나서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자기가 스스로 노력해서 공부도 더 열심히 하고, 자식을 모범적인 사람으로 바꿔나가려고 합니다. 자신의 모든 삶의 에너지를 거기에다가 투자합니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헛된 일입니다. 시편 127:1,2절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옵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하나님이 자기 인생의 주체가 되지 못하면 근면 성실한 삶마저 헛되다는 뜻입니다. 과격하게 들리지만 옳은 말입니다. 인간의 모든 노력은 본질을 변화시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보다 좀더 안락하게 살다가 결국 죽습니다. 살아있는 중에도 자기의 노력이 그만한 대가를 받지 못하는 것을 초조하게 생각합니다. 변화의 주체가 하나님이라는 사실은 인간 생명의 본질과 관계됩니다. 하나님만이 창조주이시기 때문에 그분만이 생명의 본질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말은 논리적으로 옳습니다. 피조물인 인간은 그런 능력이 없습니다. 문제는 그 본질의 변화가 확연하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데에 있습니다.

 

그것이 성령세례를 통해서 영혼이 변화한다는 말의 두 번째 의미입니다. 그 변화는 영혼의 깊이를, 또는 영적인 삶의 깊이를 아는 사람에게만 경험됩니다. 죽음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사는 사람은 삶의 소중함을 알 수 없는 것과 같이 영혼의 깊이를 모르면 성령세례도 알 수 없습니다. 우선 이해를 돕기 위해서 예를 들겠습니다. 여기 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목사 두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한 사람은 5천명이 모이는 교회를 담임합니다. 다른 한 사람은 50명이 모이는 교회를 담임합니다. 겉으로만 본다면 5천명 교회가 더 행복하겠지만, 그건 단지 표면적인 것에 불과합니다. 영혼의 깊이에서 보면 5천명이 모이나 50명이 모이나 그것 자체는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주님의 몸된 교회 공동체를 꾸려간다는 사실에 집중하면 50명의 교회로 행복할 수 있으며 만족할 수 있습니다. 세상살이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난해도 남을 의식하거나 소유에 집착하지 않고 삶 자체에 집중하면 행복합니다. 그런 생각은 너무 낭만적인 것이어서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생각하시나요? 당장 먹고 살기 힘든데 모든 삶 자체에 집중할 수 있느냐고 생각하시나요? 그렇다면 여러분은 기독교 신앙의 중심을 전혀 모르고 있는 겁니다.


세례, 그리스도와의 연합

 

앞에서 저는 성령세례를 통해서 영혼이 변한다는 말을 두 가지로 설명했습니다. 하나는 그것이 하나님의 일이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영혼의 변화는 영혼의 깊이로 들어가야만 느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를 한데 묶어서 생각해보십시오. 어떤 대답을 얻을 겁니다. 성령세례를 통한 영혼의 변화는 하나님이 행하신 구원 사건에 자신의 영혼을 완전히 의존해서 살아간다는 뜻입니다. 다르게 설명하면, 성령을 받았다는 것은 성령의 일에 마음이 열린다는 뜻입니다. 성령은 일은 곧 하나님이 행하신 구원 사건입니다. 그 사건이 무엇인지 모르는 기독교인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일어난 것입니다. 그 사건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 있다면 영혼이 변화된 것이며, 곧 성령을 받은 것입니다. 성령을 받았다는 것을 이상한 현상에 휩싸이는 것으로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 것에 현혹되지 마십시오. 물론 성령은 은사를 주십니다. 여러 종류의 은사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성령을 받았다는 증거가 아니라 그 결과일 뿐입니다. 그런 현상에 너무 매달리지 않아도 됩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에게 일어난 하나님의 구원 사건을 인격적으로 동의하고, 인식하고, 거기에 자기의 운명을 맡기는 것입니다. 그게 믿음입니다. 바울은 롬 5:1절에서 이렇게 선언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는 사실이 명백하게 느껴지지 않는다거나, 지금 살아가는 세상의 현실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기 힘들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을 겁니다. 그런 분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는 있지만 그런 분들이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할 자신은 없습니다. 성령께서 그분들의 생각을 깨우쳐달라고 기도를 드릴 뿐입니다. 성령이 돕는다면 새로운 영적 세계를 깨닫게 될 겁니다. 성령의 도움을 원하는 분들이 해야 할 일은 자신의 고정관념을 내려놓고 기독교 영성의 중심으로 들어가는 겁니다. 영성의 중심은 성서와 예배를 통해서 전승되었습니다. 성서와 예배에 가까이 가보십시오. 전혀 다른 생명의 현실들이 눈에 보일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물세례에 머물지 않고 성령세례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이 세례를 받을 때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왔습니다. 예수님에게 일어난 사건은 모두 성령의 일입니다. 그 사건에 더 주목하십시오. 그 사건의 고유한 생명 세계 안으로 더 깊이 들어가십시오. 인생살이의 다른 일들은 좀 서툴러도 괜찮지만 예수 사건을 아는 일에는 전문가가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 일은 생명을 얻느냐 얻지 못하느냐의 차원이기 때문입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성경본문 설교자 날짜 조회 수sort
16278 출애굽기 스스로 있는 자 출3:13-22  임덕순 목사  2012-12-31 2947
16277 출애굽기 홍해 건너기 출14:15-31  김필곤 목사  2011-05-20 2947
16276 다니엘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단3:1-18  이정원 목사  2013-05-13 2946
16275 예레미야 감찰하시는 하나님 렘17:10  한태완 목사  2010-12-28 2946
16274 잠언 부모님께 기쁨을 드리는 자녀 잠23:22-25  김필곤 목사  2013-07-19 2945
16273 마태복음 하나님을 시험해 보라 마5:9  박신 목사  2012-09-08 2945
16272 로마서 오직 믿음으로! 롬1:16-17  이상호 목사  2011-08-03 2945
16271 누가복음 기다리시는 하나님 눅15:20  김남준 목사  2011-11-12 2944
16270 로마서 열정있는 사람들의 삶 롬9:1-3  김필곤 목사  2009-10-03 2944
16269 마태복음 사순절의 부름(Calling at Lent) 마4:1-11  김영봉 목사  2013-03-13 2943
16268 마태복음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법 (Ways To Hear God’s Voice) [1] 마26:36-46  김영봉 목사  2012-03-03 2943
» 마가복음 물세례, 성령세례 막1:4-11  정용섭 목사  2012-02-09 2943
16266 고린도전 인생을 살찌우는 5대 자산 고전15:50-58  이한규 목사  2010-04-23 2943
16265 사사기 엄지 손가락과 엄지 발가락 삿1:1-7.  강문호 목사  2009-08-07 2943
16264 요한복음 돈보다 믿음이 소중합니다. 요3:16  한태완 목사  2014-01-11 2942
16263 설교자료 강해설교 준비의 실제 강해설교  이동원 목사  2011-06-17 2942
16262 요한복음 세상에서 예수 제자로 살기 요17:6-19  정용섭 목사  2012-06-11 2941
16261 느헤미야 지속적인 복을 누리기 위한 성도의 4가지 구별된 삶 느13:4-31  김필곤 목사  2010-07-25 2941
16260 출애굽기 모세의 상처를 치유하시는 하나님 출4:1-17  류영모 목사  2013-01-08 2940
16259 신명기 그대 춤출 수 있다면 나는 노래하리 신26:1-11  김준우 교수  2003-10-03 2940
16258 요엘 꿈과 비전을 가지세요 욜2:28  한태완 목사  2013-01-17 2939
16257 누가복음 기도의 모본을 보이신 예수 눅11:1  김남준 목사  2012-06-20 2939
16256 사도행전 삶을 위대하게 만드는 6대 특징 행28:30-31  이한규 목사  2010-03-09 2939
16255 사도행전 한 사람이 중요합니다 행28:1-10  이한규 목사  2010-03-09 2939
16254 마태복음 가진 것 다 팔고 예수를 좇으라. 마19:16-22  박신 목사  2012-05-30 2938
16253 열왕기상 작은 것으로 넉넉히 사는 삶의 원리 왕상17:8-16  김필곤 목사  2010-02-28 2938
16252 마가복음 힘과 섬김 막10:35-46  김필곤 목사  2010-11-17 2937
16251 사무엘상 우리는 문제는 있지만 행복한 가정을 만들 수 있습니다. 삼상1:21-28  김필곤 목사  2010-04-06 2937
16250 사도행전 꿈꾸게 하시는 성령님 [2] 행2:14-21  김동호 목사  2012-05-16 2935
16249 마태복음 오라! 거하라! 가라! 마28:18-20  이정수 목사  2010-04-25 2935
16248 마태복음 추수할 일꾼들은 어디에? 마9:35-10:1  이동원 목사  2010-09-11 2934
16247 창세기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 창20:8-18  이정원 목사  2010-01-21 2934
16246 이사야 삶에서 얻는 교훈 사20:1-6  최장환 목사  2013-05-29 2933
16245 출애굽기 하나님을 만나는 방법 출29:38-46  이한규 목사  2012-11-08 2933
16244 빌립보서 모방할 수 없는 고난 빌2:5-14  강문호 목사  2014-04-06 2932

설교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본 홈페이지는 조건없이 주고가신 예수님 처럼, 조건없이 퍼가기, 인용, 링크 모두 허용합니다.(단, 이단단체나, 상업적, 불법이용은 엄금)
    *운영자: 최용우 (010-7162-3514) * 9191az@hanmail.net * 30083 세종특별시 금남면 용포쑥티2길 5-7 (용포리 53-3)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