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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 출처 : | 순전한 신앙이야기<http://cafe.naver.com/ghkdqndlf>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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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야 사는 성도
성도는 본질적으로 죄 된 옛 사람은 죽고 그리스도 안에서 의의 새사람으로 다시 산 자들입니다. 로마서 6:4절이하로 보면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도 또한 새 생명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니라.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자로 여길지어다.” 라고 하였습니다.
성도는 이렇게 본질적으로 그리스도와 한 몸 된 관계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함께 죽고 그가 부활하실 때 함께 영원히 산자가 된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갈라디아서 5:24절에서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고 증거 했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의 본질의 상태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대속의 은혜로 이렇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적 모습에서는 아직 우리 육체가 살아있어 육체의 소욕대로 살려하는 욕구가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일락을 좋아하는 이는 살았으나 죽었느니라”고 증거 했습니다.(딤전 5:6)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다시 산 새 생명을 가진 성도라 할지라도 육신의 일락인 육체의 소욕을 따라 산다면 실제로는 세상의 구원 받지 못한 죽은 자와 같다는 것입니다.
아직도 우리에겐 나면서부터의 계획과 생각이 악한 육체 된 본성으로 살아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내 생각을 앞세우고 내 판단을 고집하며 내 기대를 이루려고 애씁니다. 죄의 본성, 육체의 속성에 사로잡혀 죽은자의 삶을 욕구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사도바울이 증거 하기를 “너희가 욕심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라고 했습니다. (롬 8:13)
성도는 죄의 형벌의 상태로 되어진 세상을 살려는 옛사람의 모습이 죽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된 새 사람 으로써 하나님 나라를 구원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산 자다움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예수님은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마 10:39)고 말씀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자기 목숨을 얻으려고만 사는 인생입니다. 즉 죄의 본성인 욕심을 따라 마음이 원하는대로 살아가도록 되어있습니다. (엡 2:3) 그랬던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속의 은혜를 베푸사 이제 다시는 자기를 위해 살지 않고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다시 사신 그리스도를 위해 살도록 하나님은 구원하셨습니다. (고후 5:15)
성도는 그리스도를위해 살도록 특별히 구별한 자들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자기 목숨을 얻으려고만 하는, 즉 자기를 위해서만 살려는 육체의 소욕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오히려 산자가 죽은자가 되는 경우인데 우리가 그런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몰려든 수많은 유대무리들이나 오늘 예배당으로 몰려드는 수많은 교인들이나 다 주를 통해 자기를 위해 살려고 주여 주여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복음의 말씀은 그런 그들을 죽이고 새롭게 하려 하셨으나 외면하고 실망하고 떠나갔으며 남은 자들이란 주께 붙잡힌 제자들뿐이었습니다. 제자들도 자기를 위해 서로 섬김을 받으려는 자들의 모습에 있었고 자기 생각을 앞세워 인정받으려 했고 서로 큰 자가 되려고 다투기도 했던 것입니다. 그런 그들의 모습은 그리스도의 제자다울 수 없었고 더 나아가 그리스도의 증인된 모습은 아득한 것이었습니다. 인간적이고 부족하고 유대주의적인 그런 그들의 옛 모습을 예수님은 죽어지게 하셨고 없어지게 하셨습니다. 예수님말씀의 권세가 옛 사람은 죽고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새 사람으로 살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리스도의 증인된자가 되어 살게 된 것입니다.
무리가 책망하는 자를 미워하며 정직히 말하는 자를 싫어한다고 아모스 선지자가 증거했듯이 (암 5:10) 우리를 죽이고 성도로 구원을 살게 하는 복음이 있는 곳에는 사람들이 오질 않습니다. 어찌 왔다가도 떠나가게 되어있습니다. 스스로는 옛 사람이 죽을 수 없고 또한 스스로 죽이려고 하지 않는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그리스도안에서 죄의사람은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새 생명으로 살게 하시려는 계획 (작정과 언약)가운데 있는 자들만이 이끌려서 오게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삶의 과정은 성도로 거듭나기 위해 늘 옛것이 버려지고 옛사람적인 것이 죽어지는 하나님의 간섭속에 양육되어지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망하는 역사같이 보이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헛되고 망령되고 가증한 옛 사람된 상태를 죽이시는 은혜의 간섭의 역사인 것입니다.
우리들이 교회에서 소망이 있고 기뻐할 것이 있다면 나를 그렇게 옛사람은 죽고 성도로 살게 하는 복음의 가르침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갈라디아 교회처럼 성령으로 시작했으나 육체로 마치려는 잘못된 신앙으로 역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갈 3:3). 변질된 다른 복음은 죽어야 할 옜사람을 더욱 살게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참된 복음의 가르침은 세례요한의 고백처럼 나는 쇠하고 (망하고 죽고) 그리스도는 흥해야 하니라고 우리를 고백하게 합니다. 여기에 성도의 참된 삶이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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