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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여울 풀씨처럼 2.23]
겨울은 지나고
주님, 유난히 길고 긴 겨울이었습니다.
창 안에서 보는 겨울도
바람에 휩싸여 있었습니다.
창 밖에는 눈이 쌓였습니다.
겨울비가 끝없이 내렸습니다.
자동차 소리도 끊긴 새벽,
겨울이 더 차가운 얼굴로
제 방안을 들여다 보았습니다.
겨울과 눈을 마주치기 싫어
얼굴을 돌리곤 했습니다.
그러나 문풍지 사이로
새어드는 겨울 바람이 저를 봅니다.
추위를 피하지 말라는 듯
바람을 막지 말라는 듯
주님, 어느새 겨울은 지나고
비도 그치고
바람도 잦아들었습니다.
숲에 머물던 눈도 녹아버렸습니다.
움추렸던 나무들이 기지개를 켭니다.
겨우내 피어있던 동백꽃들은
오히려 입을 다물고
사라지는 겨울을 그리워합니다.
잔뜩 얼어붙은 땅 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나 봅니다.
황폐해진 들판을 바라보며
"겨울에 빵이 자라네."
읇조린 한 시인의 말과 조우합니다.
마치도 주검처럼 꼼짝 않던
벼 밑둥이 쉬고만 있던 게 아님을
알아차리고 있습니다.
이미 빵 만들 준비를
하고 있었군요
봄을 만드는 겨울을 주심에 감사합니다.
주님, 가슴에 감흥이 일지 않아도
침묵속에 그리고 보이지 않는 시간 속에서
저희의 믿음이 자라고 있음을 감지합니다.
비록 영혼이 아직 겨울을 거닌다 해도
제 안에서 빵 한 덩이가
자라고 있다는 의미를 되새깁니다.
전혀 예기치 못한 일입니다.
당신께서 그 일을 하십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빵 한덩이가 나타나면
"어느새 네가 빵을 만들었구나.
장하고 갸륵하다."
당신은 제게 찬사를 띄우십니다.
그러나 주님, 그 빵의 제조자는
제가 아니라 당신이심을 알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주님, 그러기에 겨울이 오래 머묾에
환영하는 마음을 품게 됩니다.
발가벗고 서있는 나무들의 겨울나기를
배우고 있습니다.
삭풍맞은 나무의 강인을 부러워합니다.
추위에도 옷을 껴입지 않고
견뎌낸 나무의 의지를 선망합니다.
겨울이 길면 길수록 봄다운 봄이 만들어지고
바람이 거세면 거셀수록
고요와 평안이 깃든다는 것을
몸으로 느끼고 마음으로 받습니다.
고통 뒤의 평화
고통 후의 기쁨을 절감합니다.
겨울에도 자라게 하신
사랑하는 당신께 감사를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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