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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딤전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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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남준 몯사 |
참고 : | 열린교회 http://www.yullin.org |
가족을 사랑하라
2006-05-10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 보다 더 악한 자니라”(딤전 5:8)
I. 들어가는 말
오늘 본문에 보면, ‘친족과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는 자는 불신자보다 더 악하니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무슨 문맥에서 이 이야기가 나왔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나이가 많이 들어서 스스로를 혼자 부양할 수 없는 처지의 늙은 과부들을 교회의 과부 명부에 올리고 돌보라는 당부 속에서 나온다. 바울이 그러한 선한 일에 대해 디모데에게 지시하는 가운데, 먼저 자식이 있는 살펴보고, 만일 자식이 있다면, 자식으로 하여금 과부를 봉양하도록 하고, 만일 손자가 있다면 손자로 하여금 그렇게 하도록 하라고 말하고 있다. 이렇게 과부를 돌아보지 아니하는 자는 악하다고 말하고 있다.
II. 신자와 가족
그러면 신자와 가족은 어떤 관계가 있는가? 가끔 어떤 사람들은 가족이 자기한테 무엇을 해주었냐고 불평한다. 그런데 가족은 무엇을 해주어서 가족이 아니고, 맨 처음부터 가족이다. 부모가 자식들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사랑이다. 자식들이 부모에게 해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도 이와 같다. 아무리 상처를 받아도 가족이 살아만 있어도 은혜이다. 그들이 죽은 다음에는 사랑할 기회가 없는 것이다. 우리의 가족들이 살아서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에 대해 감사해야 한다. 신자에게 있어서 가족은 그 이상의 의미이다. 신자에게는 은혜 받은 자로써 소명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자기의 가정을 이 세상에 있는 또 하나의 천국으로 만드는 것이다. 가족이 죽고 나면 사명지도 사라진다. 그러나 가족들이 살아 있으면 지금은 다 박살나고, 깨뜨려진 가정이라도 회복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으니까,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은 눈에 보이는 사람 속에서 펼쳐진다. 그 사랑은 제일 먼저 가족들 가운데서 열매를 맺는다.
그런데 신자에게 큰 의무가 있으니, 친족과 가족을 돌아보는 것이다. 가정의 달에는 부모공경이나, 부부간의 사랑이나, 자녀양육에 대해서 잘 가르치는데, 할머니, 할아버지 공경하라고 가르치는 것은 드물다. 그런데 과부가 있어 돌볼 이 없이 어려우면, 손자가 있는지 살펴보고 손자로 하여금 봉양의 의무를 다하게 하라고 말하고 있다. 부모 사랑이 ‘올리 사랑’이고, 자녀사랑이 ‘내리 사랑’이라면, 조부모를 향한 사랑은 ‘치올리 사랑’이다. 자기가 사랑하는 부모가 할머니, 할아버지에게서 태어났고,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가 사랑하는 하나님에게서 조부모가 태어났다. 그것을 아이에게 잘 가르쳐야 한다. 몇 년 전, 텔레비전의 코미디 프로를 보면서 화가 나는 일이 있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주책을 부리는 것을 방송하고 있었다. 그것을 보는 아이들로 하여금, 늙으면 죽어야 된다는 부정적인 생각을 갖도록 만든다. 복음이 나이를 극복해서 드러나지 못한다면, 그것이 복음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마음을 드려서 그분들을 인정하고, 사랑하는 것이 바로 어른들을 공경하는 도리이다.
예수 믿는 나 때문에 우리 가정이 하나의 천국이 되도록 가꾸어 가는 것이 바로 신자의 첫 번째 사명이다. 한 사람의 사람됨은 멀리 있는 사람에게는 제대로 판단되기 어렵고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제대로 판단될 수 있다. 가장 측근이 누구인가요? 은혜로운 주일 밤 예배가 끝나고 교회 사택에서 주무시려는데, 사모님이 이불하고 베개를 챙겨서 교회 당 간다고 하니까, ‘여봐 거기 왜 가?’ 강대에서 잡시다. 당신은 강대에서 있을 때, 제일 그럴 듯해! 가족이 내리는 평가가 가장 정확하고 그 사람은 그 이하도 이상도 아니다. 그런데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런 평범한 사실을 잊는다. 교회에서 목사님께는 인정을 받는데 가족에게는 인정을 못 받는다. 이것은 모두 그리스도인들의 잘못된 자화상이다.
III. 가족을 돌아보는 길
A. 진실한 사랑으로
여기서 ‘돌본다.’는 것은 갓난아이를 돌보듯이 돌아보라는 의미이다. 아무 힘없는 연약한 가족을 마치 나를 돌보듯이 진심어린 태도로 돌아보라는 것이다. 효도의 첫 번째 원리는 마음으로 부모를 자신의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 분들은 나의 가족, 즉 부모이자 운명 공동체이구나! 나의 존재와 그분들의 존재가 공존하는 구나!’ 이렇게 마음으로 부모를 받아들이는 것이 바로 진실한 사랑이요, 효도의 첩경이다. 먼저 예수 믿는 우리가 진실한 사랑으로 가족에게 다가가야 한다. 사랑은 오래 참는 것이다. 제 하고 싶은 때만 하는 것은 참는 것이 아니다. 참는 것은 한계를 넘어서 견디는 것이다. 사랑이란 말은 아름답지만, 그 한 가운데는 쓴물이 나는 기억을 가지고 있다. 가족을 사랑하다가 박해 받는 많은 이에게 하나님께서는 많은 축복을 주신다. 한상동 목사님께서 힘든 옥고 시절에 대해 이렇게 회고하셨다. “그때, 하나님이 나를 감싸서 고통이 고통으로 여겨지지 않는 감미로운 연합 속으로 들어가게 했습니다.” 이처럼 사랑은 우리로 하여금 그 모든 것을 극복하게 하는 놀라운 힘이 있다. 고난을 잘 견디면 하나님께서 위로를 주신다.
B. 물질로 섬기며
형제가 둘이 있었는데, 한 사람은 시골에서 농사를 지었고, 동생은 도시에 살면서 그저 그렇게 사는데, 유산 문제로 대판거리로 형제가 싸우고 결국 의절하고 말았다. 그 싸움에서 가장 열을 냈던 사람이 동생 부인이었는데, 이 여인이 예수님을 믿고, 은혜 받고 나니까 얼마 안되는 유산 문제로 시아주버니와 얼굴 붉힌 일이 생각났다. 그래서 이 관계를 회복시키려 회개하고 기도하기를 수없이 하면서, 화해를 위해 노력했다. 동서 내복, 시아주버니 내복, 아이들 내복하고 정성스레 편지까지 써서 보냈다. 처음엔 본 척도 안했는데, 여러 해 동일하게 선물 해 보냈다. 해마다 이렇게 하니까 서서히 손윗동서와 시아주버니 마음이 서서히 풀려서 드디어 형제 관계가 회복되었다. 이렇게 물질로 섬겨야지만 가족을 돌아보는 것이다. 동기간이 예수를 잘 믿거나 안믿거나 불신자이거나 상관없이 물질로 잘 섬겨라. 때로는 기도를 많이 하는 것보다 진심어린 물질 섬김이 더 나은 때도 있다.
C. 화평케 하며
형제들이 반목하고, 서로 다투고 분쟁할 때에 그것을 수습하고 화해시키는 사람은 다른 형제를 섭섭하게 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그래야 화해자가 된다. 혈기를 잘 내고 분노하는 사람은 화해자가 되기 어렵다. 때로 여러분의 부모님이 이혼 지경이고 형제가 반목할 때, 어찌 기도해야할지 모를 위치에 있을 때, 제일 중요한 것은 혼란스러운 가정에서 지도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그 지도력은 많이 희생한 사람에게 옮겨간다. 이기심을 가진 자는 화평케 하는 자가 될 수 없다. 욕망과 욕망이 충돌할 때, 누군가 그 욕망을 꺾고 희생할 때, 화평케 하는 자가 될 수 있다.
D. 영혼을 돌아보며
마지막으로 가족들의 영혼을 돌보아야 한다. 영혼의 필요를 채워 주어야 한다. 교내가 은혜 받고 나니까, 하나님을 모르는 내 가족이 마음의 슬픔이 된다. 그런 연민이 없다면 여러분 아직 은혜가 없는 것이다. 사랑이 없으니, 희생도 없는 것이다. 제아무리 은혜 받았다고 방방 뛰어도 가족에 대한 연민이 없으면 아직 그 은혜는 표피만 스친 것에 불과하다.
예수의 넓은 사랑을 어찌다 말하랴
그 사랑 받은 사람만 그 사랑 알도다.
은혜가 스며들고 예수님의 사랑이 스며들면 가족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참 변화를 받았고, 가족에게 복음 전할 수 있는 유일한 증인인데, 조그만 이해관계로 가족 관계를 깨버릴 수 있겠는가? 그런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불신자보다 더 악하다고 말씀하고 있다. 그래서 가족들의 영혼을 깊이 돌아 보아야한다. ‘구원 받은 우리 엄마 아빠 그냥 돌아가셔도 어쩔 수 없지, 교회가지고 몇 번 해봤잖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부모보다 더 불쌍한 자이다. 자기가 은혜를 받았던 본분을 잊은 것이다. 처음 은혜를 받고 나서 있었던 은혜를 잊은 것이다. 가장 추루한 영혼은 바로 그 사명을 내 팽개치고 사는 영혼이다.
IV. 결론과 적용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결국 우리 모두는 죽은 다음에, 주님 앞에 가면 그분이 이렇게 물으실 것이다. “얘야, 네가 드디어 천국에 왔구나! 내가 네게 맡긴 가족이 어디 있느냐?” 대답도 못하고 고개를 숙이고 울기만 하겠는가? 아니면 “여기 다 모였어요. 하나님이 나를 통해 저들을 섬기게 해 주셔서 이 천국에 함께 모두 모였어요.”라고 기쁨에 차서 대답하겠는가? 키더민스터의 리차드 백스터는 이런 자신의 교구를 충성스럽게 돌보았다. 그래도 회심치 않는 가정이 교구에 서너 가정이 남았기 때문에, 근심어린 마음으로 이런 말씀을 설교하신 적이 있다. “하늘나라에 갔을 때, ‘네 교구의 어떤 사람들이 어떤 사람은 왜 보이지 않니?’라고 물으시면, ‘저는 온 마음을 다하여 섬기고 참되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지만, 무슨 일을 해도 그들의 마음은 움직이지 않았어요.’라고 말할 때, 내 눈에는 눈물이 샘솟듯 할 것입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원하는 마음이 바로 이 마음이다. 주님께서 당신을 다 주셔서, 우리를 돌아보신 것처럼 우리도 그들의 영혼의 신음 소리에 귀 기울이며, 그 영혼들을 섬겨, 주님의 품에 돌아오게 해야 한다. 그렇게 가족을 돌아보고 사랑하는 일이 아무리 고통스럽고 힘들어도, 주님께서 주신 은혜와 사랑에 비하면 그저 작은 고통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가 너무나 큰 은혜를 받았으니 고난이 클 때마다, 받은 은혜의 넓이와 높이와 깊이를 떠올려 보라. 그리고 여러분의 깨어진 가정에서 여러분이 유일한 희망임을 깊이 명심하라.
2006-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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