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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삼상1: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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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남준 목사 |
참고 : | 열린교회 http://www.yullin.org |
이 아이를 드리나이다
2006-05-17
“그러므로 나도 그를 여호와께 드리되 그의 평생을 여호와께 드리나이다 하고 그 아니는 거기서 여호와께 경배하니라”(삼상 1:28)
I. 본문해설
예전이나 지금이나 시집가서 여자가 아이를 낳지 못하면 수치입니다. 조선시대까지는 칠거지악 중의 하나였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아들을 낳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어에서 아들이 벤이란 단어입니다. 이는 바나라는 동사에서 왔습니다. ‘(집이나 건물 따위를)세우다, 건설하다.’라는 뜻입니다. 여자가 사내아이를 낳아서 세워야만 그 여자의 입지도 세워집니다.
한나는 사무엘의 엄마였습니다. 남편 엘가나의 많은 사랑을 받으며 조강지처로 지냈으나 불행하게도 아들이 없었습니다. 아들이 없으니, 남편의 사랑을 받아도 자기의 집을 세우지 못했습니다. 당시에는 일부다처제가 허락되었는데 그 이유는 인간들의 방종함 때문이고, 좀 더 넓게는 하나님의 섭리가 깃들어 있습니다. 이에 대해 어거스틴은 사람들이 매우 미약한 숫자였기에 일부다처제의 섭리가운데 인류가 번성하도록 경륜하셨다고 하였습니다. 다 수긍할 수는 없지만, 일면 수긍이 갑니다. 부닌나라는 여인이 첩으로 들어와서 아들을 낳고 위세를 부리기 시작하자 한나는 마음의 고통을 받았습니다. 엘가나는 조강지처를 끔찍이 사랑했으나, 한나는 큰 위로를 얻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여인은 지극히 사소한 일을 가지고 하나님의 성전에 올라갔습니다. 우리의 인생도 그렇습니다. 우리의 인생의 소소한 일을 가지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을 통해 성화되어가니 이는 큰 은혜의 방편입니다. 우리는 우리를 거룩하게 하는 기도가 큰 기도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조국, 선교, 성화라는 큰 주제들 말입니다. 청구용기도와 성화용기도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 내용이 무엇이라도 기도를 통해 성소로 나아가 하나님을 찾아 큰 은혜를 누립니다.
한나는 성소에 가서 아이를 구하는 간절한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 얼마 안되어 사무엘을 얻습니다. 사무엘은 사사시대에서 왕정시대로 넘어가는 수문과 같은 역할을 감당하는 구약시대에 모세에 버금가는 위대한 인물입니다. 사무엘이란 이름이 ‘하나님의 부른다.’라는 뜻입니다. ‘이 아이를 주시면 하나님의 일에 바치겠습니다.’라고 서원을 했기 때문입니다. 한나가 말을 그리했지만,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젖을 뗄 때면 돌 정도 되었을 텐데, 좋은 육아시설이 있는 것도 아니고 보모가 있는 것도 아닌데 그 아이들 바치려면 이 어머니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겠습니까? 한나는 이제 돌박이 아들을 서원대로 드렸습니다. 얼마나 애잔합니까? 눈에 밟혀서 어떻게 이 아이를 드리고 내려옵니까? 독한 데가 좀 있어야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나 봅니다. 이 여인이 얼마나 독한 데가 있습니까? “나는 너를 보고 싶고 사랑하지만 하나님의 약속 때문에 바친다.” 날마다 그렇게 결단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II. 아이를 주께 드림
A. 인생 최고의 섬김
그런데 이 여인의 섬김은 아이를 주께 드린 것이었습니다. “아이를 주께 드리나이다” 아이를 하나님께 바치는 것입니다. 자연의 모든 이치를 보십시오. 이제 꽃이 지고, 잎이 시들면 흡사 죽은 것 같은데, 이듬해에 다시 소생합니다. 또 싹이 나고 잎이 돋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습니다. 동물도 마찬가지입니다. 동물이 다 죽고 스러지는 것 같으나 다시 살아나서 종을 번식시킵니다.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은 동물과 달리,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따라 살아가도록 후손을 퍼뜨려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기만 잘 섬기고 산다고 합니다.
제가 우체국장 시절에, 그 때 처음 나온 보험을 팔라고 했는데, 직원들을 시켜서 동내 유지들에게 팔라고 해보았습니다. “이 보험 드세요. 일억이 나와요.”라고 말하니까 유지들이 “언제 나와요?”라고 묻습니다. “돌아가신 다음에 나와요.”라고 대답하니, 이 얼마나 썰렁합니까? 죽으면 무슨 소요이냐는 말입니다. 모든 부모가 자식이면 껌뻑 죽는다고 하는데, 인간은 안 그렇습니까? 존 오웬이 비중생자의 부정함을 이야기 하다가, 오죽하면 아이를 버리는 어머니를 예로 들었겠습니까? 이것이 인간의 본성입니다.
아이들은 그런 부모 밑에서 큰 불행을 느낍니다. 거기서 자녀의 마음에 멍이 듭니다. 자녀를 폭행하지 않아도 끔찍이 사랑해주지 않는 그 자체가 돌이키기 힘든 상처를 주게 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자녀를 먹이고 입히고 교육시키면 끝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게 아닙니다. 부모가 죽은 후에도 아이가 참으로 이 세상에서 인간답게, 참 사람으로, 진정한 의미에서 행복하고, 하나님의 창조 목적에 기여하는 아이로 기워놓아야 부모의 사명을 다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최고의 섬김입니다.
부모는 자녀가 어릴 적부터 하나님을 잘 섬기도록 말로 가르치고 모본을 보여서 자신보다 더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그래서 그 아이가 정치인, 사업가, 목회자나 무엇이 되든지 훌륭한 섬김의 삶을 살도록 말입니다. 그로 인해 칭찬받을 사람은 부모입니다. 얼마나 놀랍고 아름다운 섬김입니까? 그렇기 때문에 부모의 주된 관심사는 이 아이의 요람에서 무덤까지 일생을 주님 뜻대로 살도록 돌보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이의 인생이자 여러분의 인생인 것입니다. 그런데 “몰라, 몰라, 장가만 보내면 되지?” 이렇게 말하는 것은 어머니가 아니라 ‘어미’입니다. 짐승도 그렇게 합니다. 그 아이의 평생이 하나님 앞에 드려지도록 키워야합니다.
B. 기도하는 어머니
한나가 바로 기도의 어머니였습니다. 기도하면서 아이를 구하고, 아이를 낳고, 아이를 키우고, 아이를 바치고, 아이를 바치고 나서도 아이를 위해서 기도했을 것입니다. 여기서 이해 안되는 것이 있는데, 아들, 딸이 태어나기 전에 “목사로 드리겠습니다”, “사모로 드리겠습니다.” 왜 그럽니까? 그런 아이들은 방황을 많이 합니다. 한번은 한 학생에게 신학교에 들어온 이유를 물은즉, “어머니 소원이라고 해서 왔어요.”라고 대답하길래 이렇게 말해 주었습니다. “당신 가고 어머니 오시라고 하세요.” 또 하나 의문이 있습니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선교사로, 목사로, 사모로 바칠 정도의 믿음이 있는 사람이 왜 기도를 안합니까? 그렇게 아이를 바칠 서원을 드릴 정도면 기도하십시오. 아이에게 잔소리 할 시간에 아이를 위해 기도하는 데 투자한다면, 아이는 놀랍게 변했을 겁니다.
유아세례 시에, “그대는 당신의 믿음에 힘쓰는 것처럼…이 아이를 가르치기 위해 힘쓰겠느냐?”서약했습니다. 이것이 서원보다 더 중요합니다. 이 아이를 위해 기도하면 그런 서원 안해도 아이가 교회의 유익이 되고, 하나님의 기쁨이 됩니다. 어거스틴이 그렇게 탕자처럼 방황하고 있을 때, 어머니의 눈물어린 간구가 이 아이를 기라성 같은 교부가 되게 하였습니다. 아이를 위한 기도의 십자가를 지고, 그 아이가 기도할 수 없을 때 대신 기도하고, 그 아이가 참회할 수 없을 때 대신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향해 올라가던 길이었습니다. 하루 내내 제대로 먹지도 주무시지도 못하고, 150kg이 넘는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로 올라갈 때, 예루살렘에 있던 여인들이 눈물을 흘리며 뒤따랐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구경하며 올라갔지만, 여인들은 “슬피 울며 가슴을 치며” 따랐습니다. 예수님이 이때 여인을 향하여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해 울지 말라” 이 십자가는 피할 수 없는 내 몫에 태인 십자가라는 의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자녀를 위해 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자녀가 십자가처럼 느껴지십니까?
가슴에 손을 얻고 자문해보십시오. 다른 이유때문이아니라, 여러분의 자녀의 영혼을 위해서 앉은 자리를 흠뻑 적시도록 울던 적이 도대체 언제입니까? 그 마음이 식어진 때부터 이 아이를 위한 세속적인 욕망이 고개를 들었던 것입니다. “이 아이가 판사나, 의사가 아니어도 무슨 직업을 가져도 주님을 사랑하며 섬기는 아이가 되게 해주세요.” 기도하던 때가 언제입니까? 언젠가 여러분이 눈을 감고 난후, 여러분에 대한 어떤 인상이 자녀의 영혼에 아로 새겨지기를 원하십니까? 많이 배우지도 못하고, 높은 지위가 아니어도, 내가 아플 때나 건강할 때나 곁에서 늘 기도하시던 어머니! 그런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 세상 계실 때 많은 고생 보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니
어머님이 읽으며 눈물 많이 흘린 것
지금까지 내가 기억합니다
C. 여호와를 경외하는 아이로 키워라.
일생동안 사무엘은 하나님을 경배하는 훌륭한 믿음의 사람이 되어 하나님을 진실히 섬겼습니다. 사무엘은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망하는 사람이 아니라 시종일관 주님을 섬겼습니다. 사무엘의 스승이 누구였습니까? 엘리는 사무엘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쯤, 하나님의 신이 떠났던 허울뿐인 제사장이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은 바로 어머니에게서 배운 것입니다. 엘리 밑에 있을 동안, 하나님의 은혜가 사무엘이 주님 경외하는 삶을 살도록 인도했습니다. 요사이, 아이를 많이 낳으라고 공익광고를 합니다. 그래서 저번 주에는 아이를 많이 낳으라고 설교했는데, 그러면서도 걱정입니다. 속속들이 주님의 아이로 이 아이를 키우지 못한다면 어떻게 합니까? 웨슬리의 어머니는 19명의 아이를 낳았답니다. 웨슬리는 철들면서 어머니의 배가 꺼진 것을 본 적이 없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그 어머니는 “아이들을 많이 주세요. 이 아이들을 주님의 사람들로 키우겠습니다.”라고 구했답니다. 중요한 것은 인해전술이 아니라 ‘아이를 정말 주님의 사람으로 키울 수 있느냐?’입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다다익선입니다.
아이를 위한 까리따스의 사랑을 가지고 눈물을 적시며 기도하는 것이 부모의 사명입니다. 자녀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고 바르게 만들기 위해, 어떻게 키워야 합니까? 여러분들이 날마다 자기를 깨뜨려서 주님의 사랑 즉, 까리따스의 사랑으로 충만해야 자식농사를 잘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없으면 아이들이 무엇을 배우겠습니까? 여러분이 가던 길로 계속 가면 자식 농사 망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어떻게 개인적인 일입니까? 이것이 바로 주님의 나라를 위한 일이고, 교회를 위한 일입니다.
한번 가슴에 손을 얹고 대답해 보십시오. 여러분이 부모가 되어 자녀를 키우는데, 지금까지 걸어온 길로 계속 가면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습니까? 여러분의 자녀는 구원 받았습니까? 여러분의 자녀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못 박히고, 예수님의 생명에 젖 붙여졌습니까? 저는 24살 때부터 되지도 않는 설교를 시작했습니다만, 지금 가만히 돌아보면 그 어린이들은 어찌 그리 회심을 잘하는지요! 아이들의 회심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고 말씀을 전하면 아이가 고사리 손을 모으고 울먹울먹하면서 “예수님이 저 때문에 돌아가셨어요.”라고 회심합니다. 아이들이 점점 더 자라갈수록 회심의 기회가 줄어듭니다. 왜 자녀의 회심을 위해서 기도하지 않습니까? 오늘밤 그 아이들이 죽으면 어떻게 하시렵니까? 그 아이를 위해 금식기도 해 보셨습니까? “주님, 아이가 교회 안나간대요. 저를 죽이시던지, 이 아이를 회심 시키든지 해주세요!”하고 사생결단의 기도를 드려본 적 있습니까?
우리 교회의 한 집사님이 전도학교를 하는데, 4영리를 전하라는 숙제를 받았답니다. 전할 대가 없어서 난생처음으로 자기 아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답니다. 그랬더니 아이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주님을 영접하더랍니다. 여러분 아프더라도 들으십시오. “자식을 위해 기도하지 않는 엄마는 영적인 의붓 엄마, 영적인 계모입니다.” 눈물 흘리면서 아이를 위해 기도하면 어느날 아이가 변화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맡겨주신 사랑스런 자녀입니다. 그 아이를 위해 하나님께 빌어 보십시오. 지금도 늦지 않았습니다. 부모는 아이를 많이 사랑하고 간절히 기도해서 하나님앞에 세워 드려야 합니다. 그렇지 우리의 인생의 수한이 차서, 주님 앞에 갈 날, “얘들아 나는 하나님께 간다. 나는 너희를 통해 못한 일을 할 것이다. 조금 있다가 새 예루살렘에서 만나자!”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2006-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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