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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손

누가복음 허태수 목사............... 조회 수 2019 추천 수 0 2012.03.08 21: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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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눅18:9-14 
설교자 : 허태수 목사 
참고 : 춘천성암교회 http://sungamch.net 

당신의 손
눅18:9-14
2009.8.30

우리는 바리새파 사람과 세리에 대한 예수님의 비유를 들었습니다.
얼핏 보기에 이 비유는 두 가지의 기도를 대조하면서, 바람직한 기도란 어떤 것인가를 가르치는 것 같이 보입니다. 바리새인처럼 하지는 말고 세리처럼 하라는 말인가 하고 말입니다.

그러나 이 비유는 그렇게 간단히 기도의 자세를 가르치는 것이라고 보아서는 안됩니다. 이 비유가 기도의 자세를 가르치는 것이라면, 예수님이 두 사람의 기도를 비교한 다음에 세리의 기도가 받아 들여졌다고 말했어야 옳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게 말씀하는 대신에 세리가 의롭다고 인정을 받았다고만 합니다.

그러면 뭘까? 비유의 끝부분에 나오는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아질 것이다'는 말씀이 결론처럼 있으니까 '겸손하게 기도하라'는 뜻인가?

그도 아닙니다.

누가 복음에는 잔치에 초청을 받은 사람이 기를 쓰고 윗자리를 골라 잡으려는 것을 보고, 예수님은 잔치에 초대를 받거든 윗자리에 앉지 말고 맨 끝자리에 앉으라고 가르칩니다. 그러면 주인이 와서 윗자리에 올라앉으라고 권한다는 것이죠. 조금 어색하죠. 그 이야기가 그 이야기 같기 때문입니다. 여하튼, 그 말끝에 예수님이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낮아질 것이고 낮추는 사람은 높아질 것이다"고 했습니다(14:11).

그러나 마태복음에 보면,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의 거만하고도 위선적인 태도를 비판하면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그들처럼 윗자리에 앉으려고 하지 말고 섬기는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신 것입니다. 그 말끝에 예수님은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아질 것이다"라고 하신 겁니다(23:12).

그러니 이 말씀이 예수님이 하신 말씀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이 '세리처럼 겸손하게 기도할 것'을 주문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면 뭘까요?
이 비유의 도입부를 보세요.

예수님은 이 비유를 "스스로 의롭다고 확신하고 남을 멸시하는 몇몇 사람에게"말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처신하는 사람들이 몇몇 바리새파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사건은 단순하게 '기도'거나 '겸손' 때문에 벌어진 이야기가 아니라 예수님 당시 바리새파와 세리라는 두 사회적인 집단의 갈등 문제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성경에 바리새파 사람들에 대한 비판이 많이 나오기 때문에, 우리는 바리새파 하면 의당 모두 나쁜 사람으로 여깁니다. 그래서 당시대의 모든 사람들이 바리새파 사람들을 손가락질 하고 비난했을거라고 짐작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이해입니다. 바리새파 사람들은 철저하게 율법을 지켰기 때문에 오히려 당시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들 가운데 율법 학자들은 율법해석에 있어서 전문가일 뿐만 아니라, 그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오늘날 국회의원에 해당하는 사회적인 지위를 가지고 존경을 받았습니다. 유대사회에서 바리새파는 애국자 집단이었습니다. 그런 당시의 상식으로 볼 때 예수님의 바리새인들을 향한 비난은 상당히 당혹스러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그런 행동을 사람들은 이해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면 세리는 어떻습니까? 이 사람들은 의심의 여지없이 비난 받는 사회 계층이었습니다. 그들은 로마로부터 세금 징수권을 도급맡기 위해 경쟁해야 했습니다.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그 실적이 좋아야 했습니다. 실적이 좋다는 것은 동족들로부터 세금을 많이 거두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니 그들의 태도가 오만하기 짝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그러면서 자기 배를 불려 부자도 있었습니다. 동족들은 그들을 가장 악랄한 사람들로 여겼습니다. 민족주의자요 원칙주의자들인 바리새인들에게 그들은 원수와 같았습니다. 이렇게 두 사회적인 집단은 갈등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단순하게 바리새인들을 비난하고 세리들을 두둔했다는 것이 이해됩니까? 이를테면 예수님의 행동은 애국자 그룹을 비난하고 매국노 집단을 두둔하는 것이 되니까요. 그러니 간단히 '겸손한 세리를 본받으라'는 뜻도 압니다.

예수님은 바리새파 집단과 세리 집단과의 사회적인 갈등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바리새파 사람들'은 모든 바리새파를 대변하는 게 아니라 사사건건 예수님이 하는 일에 시비를 거는 몇몇(9)바리새파 사람들입니다.

그렇다고 일방적으로 세리라는 직업을 두둔하려는 것도 아닙니다. 세리라는 이름으로 대표되는 사회의 약자들의 대한 태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이 비판하는 몇몇 바리새파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그것은 그들이 하는 기도 속에 들어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자기 자신을 다른 사람과 다르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들의 감사는 '다르다'는 것입니다(11). 본래 '바리새' 라는 말도 '다르다'입니다. 자신을 다른 사람들로부터 구별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신을 다른 사람과 구별 짓는 것이 그들의 잘못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빠지기 쉬운 함정이었고 초대교회 에서도 이것은 교회를 위협하는 위험한 요소로 작용했습니다. 갈라디아서 2:11-14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얼마나 구별에 대한 경계가 컸으면 바울이 베드로를 나무라겠습니까? 이렇게 나를 다른 사람과 구별하려는 것은 비단 바리새인만의 문제가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해 줍니다. 초대교회 안에도 그랬으니까요.

자 본문으로 돌아갑시다,
바리새인이 자신을 "이 세리와 같지 않다"고 말하는 대목을 눈에 그려 보세요. 그냥 눈으로 그렇게 말하는 게 아닙니다. 턱으로 가리키는 것도 아닙니다. 손가락질을 하면서 "이 세리..."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이 손가락질이 어느 칼보다 무섭고 독한 것입니다. 손가락은 귀한 것이지만 그것이 이렇게 사용될 때 우리는 '질'이라고 합니다. 도둑질, 주먹질 따위죠. 손가락질은 그만큼 나쁜 것입니다.

바리새인의 손가락을 따라가 보면 거기 세리가 보이겠죠. 아니 세리로 대변되는 사회적인 약자가 있겠죠. 세리 또는 그와 같은 사람들은 당시의 종교적인 규율에따라 성전 안으로 들어오지도 못하고 성전 밖 멀리서 기도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가 기도했다는 "아, 하나님 이 죄인에게 자비를 베푸소서"(13)는 일반적인 세리의 기도 모습은 아닙니다. 당시의 세리들은 대체적으로 부자였고 오만했습니다. 그러나 이 비유에 등장하는 세리는 그와는 다른 처지에 있거나 특별한 사정이 있는 세리로 어렵고 딱한 사람입니다. 그러니 여기서 세리는 꼭 집어 세리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회적인 약자입니다(마9:10, 막2:15, 눅5:30).바리새파 사람들이 가장 멸시하는 세리를 등장인물로 쓴 거죠.

비유를 말하고 계시는 예수님을 보세요. 처음에 예수님은 바리새파 사람 쪽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고기서 세리 이야기를 합니다. 세리가 멀찌기 떨어져 있다고 하는 것을 보면 예수님은 세리로 부터는 멀고 바리새인으로부터는 가까운 곳에 계십니다. 그러나 14절을 보세요.

"....이 세리다."

14절에서 화자의 위치가 바뀌어 집니다. '저 바리새파 사람'과 '이 세리'가 대조되어 있는 겁니다. 바리새파 사람은 저쪽에 멀리 있고 세리는 이쪽에 가까이 있습니다. 마치 드라마에서 카메라가 저쪽에서 시작하여 주인공 쪽으로 주욱 댕겨지는 것, 줌인과 같은 장면입니다.

방금 인용한 구절에서, "저 바리새파 사람이 아니라 이 세리다"라는 부분을 헬라어 성경은 "저 사람이 아니라 이 사람이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바리새파 사람을 가리켜 '저 사람이다'라고 말하고 세리를 가리켜 '이 사람이다'하시는 이게 오늘 본문에서 가장 큰 의미가 됩니다. 이 말에서 지금까지 이야기해 온 것, 또는 사람들이 기대하고 있던 것이 역전이 되고 뜻밖의 결론이 나옵니다.

'저 사람이 아니라 이 사람이 의롭다고 인정을 받았다'고 할 때, 의롭다고 인정하는 주체는 하나님이 되지만, 이런 해석을 하는 주체는 예수님입니다. 하나님이 의로운 분이라고 추상적인 진리나 선언으로 머무는 것은 사람들의 삶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따라서 이 세상의 삶을 해석하는 주체가 있게 되면 그건 말이 달라집니다. 그것은 새로운 변화의 힘이 됩니다. 예수님이 바로 그런 일을 하고 계신 겁니다. 이게 지금까지 본문을 보아온 우리들과 예수님의 해석과 다른 것입니다.

예수님의 해석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세리가 의롭다고 인정을 받았다'입니다. 여기서 조금만 더 주의를 기울이면 그 말에서 다 표현하지 않는 예수의 몸짓을 느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분명 여기서 '저 사람'과 '이 사람'을 대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바로 앞에서 바리새파 사람이 쓰던 방식입니다. 바리새파 사람이 '이 사람' '저 사람'이라는 구체적인 대조법은 쓰지 않았지만 세리를 가리켜 '이 세리'라고 했습니다. 거기에는 멸시하는 감정이 담겨 있는 것이지요. '이 따위 세리' '이런 인간'정도의 의미를 깔고 하는 말입니다. 차라리 '저 사람'이라고 했으면 덜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 세리'라는 말은 그 손가락이 세리의 얼굴에 닿을 것 같은 느낌을 줍니다. 이런 모멸적인 언어를 예수님이 정 반대로 바꾸어 놓은 것입니다.

'이 세리'를 예수님은 '이 사람'으로 바꾸어 놓으신 것입니다. '이'라는 똑같은 인칭 대명사인데 그 단어를 말하는 손의 감정은 정 반대입니다. 바리새파 사람의 손은 손가락질 하는 손이지만 예수님의 손은 어깨를 다독이는 따뜻한 손입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이 드러내고자 하는 그의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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