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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밖에 난 몰라(13장의 바른 해석)

고린도전 허태수 목사............... 조회 수 2517 추천 수 0 2012.03.08 21: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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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고전13:8-13 
설교자 : 허태수 목사 
참고 : 춘천성암교회 http://sungamch.net 

사랑 밖에 난 몰라(13장의 바른 해석)
고전13:8-13

2009.10.25

지난 주일에는 우리가 누려야 할 쾌락이 어떤 것인가에 대해서 전도서 기자의 통찰을 교훈으로 받았습니다. 이왕 이렇게 '쾌락'을 설교의 주제로 삼은 김에 좀 더 깊숙하게 우리의 삶 속으로 들어가 보려고 합니다.

조선일보 1999년 8월4일자 기사에 의하면, 가슴 뛰는 사랑은 길어야 30개월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뭐 대단한 것처럼 말하는 [사랑]이라는 게 사실은 인간의 대뇌 속에서 일어나는 일종의 화학반응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이냐? 대뇌에서 옥시토신, 도파민, 페니레시라민 등 3가지의 화학 물질이 분비되어 형성되는 일종의 정신 상태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사랑]이라는 증상이라는 것입니다. 때문에 사귄지 2년 쯤 지나면 대뇌에 항체가 생겨 애정 효과가 사라진다고 합니다. 특히 아이를 낳고 나면 애정 화학 물질은 더 이상 생성되지 않는답니다. 미국 코넬데학의 신디 하잔 교수의 연구랍니다.

제가 이런 신문 기사를 인용 하는 이유는, 사랑이라는 것을 이렇게 생화학적으로 분석해버리는 지경에 이른 것은 우리들에게 있어서 사랑에 대한 환상이 깨져 버렸다는 것입니다. '사랑' '사랑' 하면서도 실제로는 '사랑은 없어'하고 냉소적인 인간, 냉소적인 사회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사랑은 하찮고 무가치한 것이기 때문에, 그런 것 보다는 신이나 지혜에 대한 사랑, 즉 '소피아 sophia'나 '아가페 agape'와 같은 사랑이 진정하고 영원한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성서가 말하는 사랑이란 에로스적이거나, 에로틱한, 낭만적인 사랑과는 거리가 멀고, 아가페 사랑을 말하는 것이라고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식의 단순화는 위험하죠. 사랑의 에로스적인 면, 자기애의 면만 보는 것도 좋지 않지만, 그런 것을 배제한 어떤 이타적인 사랑만을 사랑이라고 보는 것도 옳지 않습니다. 특히 기독교가 '자기 사랑'은 없고 '다른 사람'사랑 하는 것만 사랑이라고 한다면 그것도 틀린 것이라는 뜻입니다. 구약 성서에서 사랑을 말하는 단어인 '아하바/아헵'은 남녀의 사랑, 부모 자식 간의 사랑, 하나님의 사랑을 두루 나타내는 단어입니다. 신약성서에서 사용하는 사랑인 '아가페'도 달랑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 만을 말하는 게 아니라 구약성서에서와 같이 넓은 의미를 갖고 있는 단어입니다.

폴 틸리히라는 신학자는 사랑을 정서적인 사랑과 윤리적인 사랑으로 나누어 이해하고 있습니다. 가족이나 애인과 같은 가까운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정서적인 사랑이고(마5:46), 원수나 타인과 같은 사람을 사랑해야 하는 것이 윤리적인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이 두 경우의 사랑이 사람을 만나게 하고 세상을 움직이게 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사람들의 사랑'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사람들의 정서적인 사랑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제 고린도전서 13장을 보십시다. 사람들은 이 사랑 노래를 윤리 강령인줄 알고 있어요. 견디고, 오래참고, 자랑하지 말고....뭐 그래야 되는 게 사랑이 줄 알아요. 그래서 이 말씀을 우리가 일상에서 실현해야 할 사람과 사람간의 사랑의 이야기라고 생각하기 보다는, 아가페 사랑의 모범 답안 정도로 알아요.

사랑의 찬가는 크게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첫 번째 부분(1-3)에서는 '내가 ~할지라도' '내게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이런 식으로 되어 있죠. 이것은 그 당시 사람들이 이루려고 애쓰는 것들을 거의 망라하고 있는 거예요. 당시 고린도 교회에서는 열광적인 신앙으로 뜨거워진 사람들이 방언이나 예언에 열중했습니다. 신비주의 지식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믿음 있는 것을 자랑하기 위해 재산을 내 놓거나 자기의 몸을 바치는 일이 빈번하던 때입니다. 그런데 그런 행동들이 교회의 분쟁을 가져왔습니다. 덕이 되어야 하는데 그 반대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런 일들을 지적하면서 그런 모든 행동들의 뿌리는 [사랑]이어야 한다고 두 번 세 번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고린도 전서 13장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사랑'의 헌장이 아니라는 겁니다.

두 번째 부분은(4-7)'사랑은 ~ 하다'로 되어 있지요. 이런 식으로 15개의 덕목이 줄줄이 나옵니다. 바울은 앞에서 말한 '사랑은 행동의 뿌리다'라는 말을 다시 한 번 다른 방식으로 강조하는 거죠. 어떻게든 알아듣게 하려고 인식의 모든 기능을 동원하는 것입니다. 그만큼 한 마디로 표현하기가 어려웠다는 말이죠. 만약 바울이 사랑의 원리 같은 것을 서술하려고 했다면 한 줄로 했을 거예요. 그러나 그걸 행동으로 하자니 쉽지 않았던 거죠. 그러니 15개가 아니라 30개도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더 보태야 할 덕목들인 거죠.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세부 덕목 하나하나를 전체 맥락과 상관없이 독립적으로 다루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어떤 공무원이 상사의 부정행위를 목격합니다. 그럼 그 사람은 그냥 '오래 참는'것이 옳습니까? 만약 그렇게 한다고 하면 그건 처세술이지 '사랑'이 아닙니다. 또 이러한 덕목 하나하나를 개개인을 위한 윤리 덕목으로 삼으면 거기 걸려 넘어지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세상에는 아무도 사랑할 사람이 없게 됩니다. 그러면 15개 항목에 합격하는 사람만이 사랑하라는 이야기입니까? 그런 사람은 있습니까? 바울은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닙니다.

바울은 바로 앞에서 사랑은 모든 행동의 원동력임을 밝히고 나서 여기에서는 다음 단계로 그 사랑이 이루는 일은 맹목적이 아니라 분명한 목표가 있음을 밝히고 있는 거죠. 그것은 바로 '불의를 기뻐하지 않고 진리와 함께 기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여러 다른 덕목들을 하나로 꿰뚫는 것입니다. 사랑의 덕목들을 다 지키지 못하는 사람일지라도, 불의를 기뻐하지 않고 진리와 함께 기뻐하는 삶을 사는 동안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사랑의 삶을 살고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래 참을 수 있고, 견딜 수 있고, 겸손할 수 도 있는 겁니다. 사랑의 덕목들을 지켜서 사랑을 하는 게 아니라 사랑을 하는 가운데 덕목들을 이루어가는 것입니다. 바울의 이야기입니다.

세 번째 부분이 오늘 우리가 집중하는 부분(8-13)입니다.
요약하면 '모든 것은 없어지나 사랑은 없어지지 않는다'입니다. 앞에서는 사랑이 방언이나 예언이나 지식의 근본이라고 했지요. 그걸 다시 한 번 강조 합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사랑은 영원이 남는다고 합니다. 이 말의 배후에는 '과연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 게 무언가'라는 물음이 깔려 있습니다. 당시 그리스철학에서는 영원히 불멸하는 게 무엇인가 하는 것을 주요 주제로 다루고 있었습니다. 오늘날도 많은 인생들이 그 삶의 근저에 이 물음을 품고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 물음에 각각 답을 하거나 또는 침묵하면서 인생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물음은 플라톤 이후 정리가 되었습니다. 정신적인 것은 영원하고 육체적인 것은 영원하지도 귀하지도 않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 플라톤의 이원론에 물들어 있는 당시대 사람들의 생각을 뒤집어 놓습니다. 그것이 고전13장의 [사랑]이야기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그저 사랑에 관한 아름다운 문장 정도로 이 본문을 읽지만, 신비한 지식이나 영혼에 관한 것만이 영원하다고 하면서 몸의 사랑, 삶의 사랑, 사람과의 사랑을 하찮게 여기던 사람들에게는 충격적인 선언과도 같았습니다. 바울은 이 몸의 사랑, 삶의 사랑, 사람과의 사랑에서 비로소 몸의 부활도 있고, 그리스도 십자가도 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고전13장은 바울이 몸의 부활을 주장하는 아주 중요한 밑거름입니다. 당시대 사람들은 영혼만이 영원하며 영혼만이 부활한다고 믿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아니라는 겁니다. 몸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이런 에로스적인 사랑이 없으면 [몸의 부활]도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롬5:8에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직 죄인으로 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써,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사랑을 나타내셨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그린도전서 13장의사랑은 몸을 떠난, 사람의 삶을 떠난, 사람의 감정이나 정서를 떠나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사랑은 지극히 인간적인,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며 이룩한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사랑은 영원하다'는 말을 하면 공허하게 들립니다. 피식피식 웃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그것이 행동이나 사건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관념적이거나 감상적인 감정을 가리키기 때문입니다. 나를 많이도 때리셨던 아버지의 그 사랑, 그것은 내게 실제적인 사건이고 행위였기 때문에 나는 아버지의 그 사랑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아버지는 사람이고, 몸이고, 필레오적인데 내겐 '영원'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렇겠지만 지난 날 누군가와의 관계를 회상해보면, 남는 것은 무엇입니까? 주고받은 선물도 시간이 지나면 사라집니다. 모든 게 사라지지만 남는 게 하나 있습니다. 그와의 관계가 사랑을 바탕으로 한 실제적인 사건이었다면 단 하나, 사랑 밖에 남는 게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이 영원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이름을 남기고 기록을 남기는 것 같지만 실상은 그것도 허무함으로 남아있는 것들일 뿐입니다. 모든 게 사라져도 남는 게 있다면 그건 뭘까요? 그렇습니다. 사랑입니다. 그게 십자가입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한 것이고, 그 영원한 삶을 위해 오늘을 사랑으로 사는 게 진리입니다. 그러니 온몸으로 사랑하며 사십시오. 열심히 사랑하며 사십시오. 모든 삶이 사랑이 되게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사는 사람이 영원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울이 고전13장에서 하고자 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럼 폴 틸리히가 전하는 사랑과, 바울이 '몸의 부활'을 근거로 주장하는 사랑학인 고전13장을 우리식으로 표현해 보라면 어떻게 될까요?

[사랑 밖에 난 몰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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