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축하예배(祝賀禮拜)
왜곡된 예배 중에 그 첫 번째가 축하 예배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축하예배는 사람을 위한
대표적인 인본주의 예배이며, 동시에 예배대상, 예배목적, 예배내용에 있어 혼합주의 예배라
고 할 수 있습니다. 축하(祝賀)의 사전적 의미는 ‘남의 좋은 일을 기뻐하고 즐거워한다는 뜻으
로 인사함’이라 되어 있지만 축하는 축하받는 사람을 높여주고 그에게 영광을 돌리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입니다(박수는 영광을 돌리는 것). 그러므로 “홍길동 당선 축하예배”라고 할
때 그 축하는 홍길동이의 당선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면서 동시에 홍길동이를 높여주고 그에게
영광을 돌리는 의미를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세간의 이목을 끌었던 성대한 축하예배가 몇 번 있었습니다. 2004. 3. 18. 12시에 대전 정부종
합청사 대 강당에서 1000여명이 모인 가운데 “고속철도 개통 축하예배”가 있었고(한기총 주최),
2006. 5. 11. 오전 6시에는 서울 삼성병원 장례식장에서 신모 목사의 “천국입성 축하예배”가
있었으며(일간지 전면 광고게재), 날짜를 정확하게 기억은 못하지만 우리나라의 목회자를 대표
한다고 할 수 있는 한모 목사의 “템풀던상 수상 축하예배”를 들 수 있습니다. 그 외에도 개인적
으로 “팔순축하예배” “박사학위취득 축하예배” “출판기념 축하예배” “돌 축하예배” “당선 축
하예배”등 다양한 축하예배들이 행해지고 있습니다.
여기서 축하예배의 축하라는 단어는 명사로 쓰였지만 사실은 동사의 성격, 즉 “축하하는”이라
는 의미를 가진 명사입니다. 축하예배를 정확하게 풀어서 쓰면 “축하하는 예배”가 되는 것입
니다. 그리고 그 앞에는 축하를 받는 사람의 이름이 붙게 됩니다. 쉽게 말해서 축하를 받는 사
람의 이름이 목적어가 되는 것입니다. 축하예배에는 예배 대상인 하나님과 축하받는 축하의
대상(사람)이 나란히 공존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사람이 예배대상은 아니지만 하나님을 예배
하는 자리에서 사람이 동시에 축하를 받는 다는 것입니다. 축하예배에는 공통된 순서 중에
하나는 주인공이 되는 사람을 위해서 축사를 하고, 축시를 낭독하고, 축가도 부르고 박수를
쳐서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축하잔치에서는 그렇게 축사를 하고, 축시를 낭독하고, 축가를
부르고, 축하박수를 칠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축하를 받는 사람이 그 잔치의 주인공이고, 그 잔치의 중심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
러므로, 예배에서도 사람을 위해서 축사를 하고, 축시를 낭독하고, 축가를 부르고, 축하박수를
친다면 축하받는 그 사람이 그 예배의 중심이 되며, 그 예배는 그 사람을 위한 예배이지 하나
님을 위한예배라고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인간이 아무리 공이 높고 업적이 위대하다 할지라
도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면서 예배의 중간에 어떻게 감히 인간을 위해서 축사를 하고, 축시를
낭독하고, 축가를 부르고, 업적을 기리고, 공로를 찬양하거나, 축하박수를 쳐서 영광을 돌릴
수 있다는 말인가? 어떠한 이유와 목적으로도 예배 중에 사람을 축하하고, 사람에게 축하박수
를 쳐서 영광을 돌리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축사나 축시, 축가, 축하박수 없이 예배를
드리면 되지 않는가라고 반문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순서나 내용이 없다고
해서 축하예배가 감사예배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축하예배라는 명칭 자체가 이미 사람을 축하한다는 의미와 목적을 담고 있기 때문에 내용과
관계없이 왜곡된 인본주의 예배가 되므로 어떤 형태로든지 축하예배는 드리지 않아야한다고
봅니다. 축하 대상이 예수님이라면 축하예배라고 할 수가 있지만 축하 대상이 사람이라면 이
는 예배의 목적이 전도된 사람을 위한 예배이지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께 드리는 하나님중심
의 예배라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고속철도 개통 축하예배는 축하예배 중에서도 축하대상 까
지도 모호한 대단히 잘못된 예배라고 할 것입니다. 누구를 축하한다는 것입니까? 정부나 철도
공사를 축하 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철도공사 사장, 또는 고속철도 공사장에서 일한 노동자들을 축하 하는 것인지, 그도
저도 아니라면 쇳덩어리 차량이나 레일을 축하 하는 것인지도 잘 모르는 것입니다. 이러한 철
도개통을 자축하는 축하잔치(행사, event)에 목사들이 어찌 예배라는 이름을 붙이고, 그런 예
배를 집례 하는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으며 납득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2006년 5월 13일
모 일간지 모 논설위원은 “천국입성 축하예배”라는 부음광고가 “신선한 충격”이라고 극찬하면
서 조사를 “축사”라고 한데 많은 사람들이 놀랐으며,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격려 전화와 메시지
를 받았다고 하였습니다. 뒤를 이어 시인인 모 목사는 “천국입성 축하예배”에 대해 감사한다는
글을 실었습니다. 그분들에게 축하예배가 어떻게 예배인지와 과연 합당한 예배인지를 묻고
싶습니다.
아는 예배와 모르는 예배에서의 가상 질문을 여기에 다시 써 봅니다. 똑똑한 주일학교 어린
학생이 축하예배를 드리는 것을 보고 담임목사에게 질문을 합니다. “목사님! 축하예배가 뭐예
요?” 그 때 목사는 아마 이렇게 대답을 할 것입니다. “응 그 것은 그분이 축하 받을 만큼 훌륭
한 일을 했기 때문에 축하예배를 드리는 거란다” 하고 대답을 합니다. 여기 까지는 말이 되는
것 같이 보입니다. 그런데, 이 아이가 의외로 똑똑하여 다시 질문을 합니다. “목사님! 그런데
사람을 축하는 것이 왜 예배예요?” 라고 질문을 했을 때 그 어떤 목사나 신학자라 할지라도
사람을 축하는 것이 왜 예배인지를 성경적으로 명확하게 설명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축하예
배가 왜 예배인지를 성격적으로 설명을 할 수 없다면 그 것은 바른 예배라고 할 수가 없는 것
입니다.
쉽게 말해서는 축하예배는 하나님이 주인공이 아니라 축하를 받는 사람이 주인공이며, 하나님
이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축하, 축시, 축가, 축사, 박수를(영광) 받는 예배인 것
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들러리이고, 그 예배의 중심은 바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
로 사람을 축하하는 것은 예배가 아니라 행사인 것입니다. 축하예배는 목적이 전도된 것입니
다. 예배는 어떤 예배를 막론하고 하나님을 위한 목적 외에 그 어떤 목적을 가져서도 안 되는
것이라고 봅니다. 예배에서 하나님을 위한 목적 외에 다른 목적이 혼합 된다면 그 것은 혼합주
의 예배이지 참된 예배라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무 행사에나 예배라는 이름을
붙이고 성경을 읽고, 찬송하며, 기도하고, 설교를 하면 그것이 예배인줄로 오해나 착각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예배와 같은 내용으로 순서를 진행한다고 그런 것이 다 예배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예배는 하나님만을 위하고, 하나님만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만을 높여 드리는 하나님 중심
의 예배가 되어야 한다는 것은 새삼 강조할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축하라는 수식어를 써서
축하예배라고 할 수 있는 예배가 있다면 우리를 위해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부활을
축하하는 “부활 축하예배” 오직 하나뿐입니다. 예수님은 사망권세를 이기시고 부활 하셨으며,
예수님은 예배의 대상이시며, 예배의 중심이시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축하예배는 바른 예배가
아님을 인식하고 드리지도 않도록 해야 할 것이며, 주의 종들은 축하예배를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와 축하하는 행사로 나누고, 축하를 받도록 은혜를 주신 하나님께 먼저 감사예배로 영광
을 돌리고, 2부로 축하순서를 가지는 것이 바람직한 것입니다.
2) 추모예배(追慕禮拜), 추도예배(追悼禮拜)
그동안, 추모예배 또는 추도예배가 제사의 대체 기능을 하면서 기독교는 불효한다는 오해를
불식시키고, 가정의 화목에 기여하고, 전도에 좋은 영향을 끼친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를 할
수 있다고 여겨 집입니다. 그러나 추모(추도)예배가 하나님 앞에서 참된 예배인가라는 물음
에 대해서는 하나님만을 위한예배, 하나님만을 높이는 예배,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는 참된
예배가 아니라 인본주의요, 혼합주의 예배라고 밖에 달리 답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지난해
전직 대통령들이 서거하면서 대대적인 추모예배가 몇 번 있었으며, 그 열기는 대단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사롭게도 많은 추모예배가 진행되고 있으며, 일간지에는 추모예배 광고들이
많이 실리고 있습니다. 추모예배 역시 두 번째 가라면 서러워 할 정도로 왜곡되기는 축하예배
와 마찬가지입니다. 축하예배와 아울러 대표적인 인본주의 예배이며, 동시에 혼합주의 예배
라고 할 수 있습니다.
축하예배나 추모예배가 다 같이 사람을 높여주고, 사람을 위한 목적으로 행해지는 인본주의
예배라는 점에서는 동일하나 다른 점이 있다면 축하예배는 산사람을 위한 것이며, 추모예배는
죽은 사람을 위한다는 것이 다를 뿐입니다. 추모예배의 추모(追慕)는 “죽은 사람을 그리워하
며 생각 하는 것”이라는 뜻이며, 비슷한 뜻인 추도(追悼)는 “죽은 사람을 생각하여 슬퍼하는
것” 이라는 뜻입니다. 초기에는 추도예배라 용어를 많이 사용하였으나 요즘은 추모예배로 쓰
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추모하는 사람의 이름 앞에 붙이는 故(고)자는 세상을 떠난 사람 앞에
붙이는 관형사입니다. 즉 죽은 사람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추모예배라는 명칭 앞에
는 언제나 故(고)자를 붙여 “故 홍길동추모예배” 와같이 씁니다. 즉 추모예배라는 말은 그 자
체가 죽은 사람을 위한 예배라는 것을 잘 말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추모예배”라는 4글자만을 단순하게 보면 틀림없는 예배처럼 보이지만 풀어서 써놓고 보면
이것은 예배라고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추모예배의 추모라는 단어는 명사로 쓰였지만 사실
은 동사의 성격, 즉 “추모하는”이라는 의미를 가진 명사입니다. 그리고 그 앞에는 추모하는
대상의 이름이 붙어 있습니다. 쉽게 말해서 추모의 대상이 목적어가 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
을 위한 예배가 아니라 추모하는 대상을 위해서 드리는 예배라는 의미를 나타내고 있는 것입
니다. 따라서 추모예배는 죽은 사람을 추모하는 것이 예배의 목적이며, 예배 대상인 하나님과
추모를 받는 추모의 대상(죽은 사람)이 나란히 공존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죽은 사람이 예배대
상은 아니지만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리에서 죽은 사람이 동시에 추모를 받는 것입니다. 그러
므로, 추모예배는 하나님만을 위한 예배가 아니라 죽은 사람을 추모하는 것이 목적이며 추모
가 중심내용을 이루게 되므로 참된 예배가 아니라 혼합주의 예배라고 밖에 달리 표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무 행사에나 예배라는 이름을 붙이고 성경을 읽고, 찬송하며, 기도하고, 설교
를 하면 그것이 예배인줄로 오해나 착각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예배와 같은 내용으로 순서
를 진행한다고 그런 것이 다 예배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소수이기는 하
지만 일부 성도들 중에는 추모 예배가 고인에게 유익이 되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다는 것입
니다. 그러므로 고인을 위해서 예배를 많이 드리면 많이 드릴수록 더 유익한 것으로 생각하여
장례식장에서도 예배를 많이 드리기를 원하여 성도들이 자주 가서 예배를 드리는 것을 보게
됩니다. 추모예배 자체도 왜곡된 것이거니와 추모예배가 고인에게 유익이 된다고 하는 생각은
참으로 너무나 큰 오해인 것입니다. 마치 불교의 위령제(慰靈祭, 죽은 사람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하여 지내는 제사)와 비슷한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배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
이며, 고인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입니다.
예배를 아무리 많이 드려도 고인에게는 아무 유익이 없으며, 예배를 한 번도 안 드려도 아무
손해도 상관도 없는 것입니다. 수일 전에 있었던 “고 김대중 前 대통령 추모예배”가 국회의원
회관에서 있었습니다. 이 문구를 알기 쉽게 정확하게 풀어서 쓰면 이렇습니다. “돌아가신 김대
중 전 대통령을 그리워하며 생각하는 예배”라는 말이 됩니다. 추모예배는 쉽게 말하면 “죽은
사람을 그리워하며 생각하는 예배”라는 뜻입니다. 죽은 사람을 그리워하며 생각하는 것이 어떻
게 예배가 될 수 있습니까? 죽은 사람을 그리워하며 성경을 읽고, 찬송을 부르고, 기도를 하고,
추모시를 낭독하고, 설교를 하면 그것이 예배인가요? 예배는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께 드릴
때 예배가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서 예배학자나 목사들 중에서 성경적으로 답할 수 있는
분이 있다면 명쾌하게 답을 좀 해주시기를 부탁을 드립니다. 추모예배가 왜 예배인지를 성격적
으로 설명을 할 수 없다면 그 것은 바른 예배라고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2010. 08. 24(화) 07시 30분 국회의사당 대회의실에서 있었던 “고 김대중 전 대통령 추모예배
”의 순서 내용을 열거해 보겠습니다.
추모메시지 : 이모 목사.
추모시 : 소모 목사.
추모사 : 김모 의원.
추모사 : 권모 목사.
추모사 : 김모 의원.
추모사 : 박모 의원.
인사말 : 권모
사회 : 최모 의원.
대표기도 : 원모 의원.
축도 : 홍모 목사.
광고 : 김모 목사.
성경봉독 : 원모 의원.
헌금기도 : 강모 의원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순서를 맡은 사람 13명 중에 4명이 추모사를 하고, 1명이 추모메시지를 하고, 1명이 추모시를
낭독하였습니다. 설교자도 추모의 말을 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면 13명중에 7명, 즉 절반이 넘
는 사람이 추모하는 말을 하였다고 봅니다. 물론 설교와 헌금, 찬송, 기도, 축도도 하여서 예배
로서의 구색은 갖추었지만 이것을 어떻게 감히 예배라고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누가 이것을
예배라고 말 하였습니까? 이러한 추모예배의 목적은 죽은 사람을 추모하는 것이며, 예배의 내
용도 추모일색으로 하나님을 위한 예배가 아니라 죽은 사람을 위한 혼합주의 예배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엄격하게 말하자면 예배가 아니라 추모행사(event)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들러리에 불과하며, 하나님은 설자리가 없는 예배인 것입니다. 예배는 죽은 사람을
추모하는 하나의 수단으로 이용되는 “수단으로서의 예배”일 뿐입니다.
소위, 목사라는 사람들이 어떻게 이러한 것을 예배라고 하며 함께 진행을 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추모사나 추모메시지, 추모시 낭독 같은 순서가 없이 예배를 드리면 되지
않는가라는 생각을 가지는 사람이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순서나 내용이 없다
고 해서 추모예배가 헌신예배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앞에서 설명한바와 같이 추모예배라는
명칭자체 속에 이미 죽은 사람을 추모한다는 메시지와 목적이 담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추모
예배는 순서나 내용에 관계없이 왜곡된 인본주의 예배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형태로든지
추모예배는 드리지 않아야한다고 봅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
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요 4:23)” 이렇게 말씀
을 하셨습니다.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을 하나님 아버지께서 찾으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런 추모예배가 과연 참되게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일까요? 예배는 하나님을 위하고, 하나님
만을 높이며. 하나님만을 영화롭게 하는 예배가 될 때 참된 예배가 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
니다. 한국에 예배학자들은 다 휴가를 갔습니까? 크리스천 기자들 중에는 예배에 대한 안목을
가진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다는 말입니까? 이러한 왜곡된 예배에 대해서 그 어느 누구도 입
을 열지 않고, 잘못된 것을 지적하고 비판을 하거나 글을 쓰는 이가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은
한국교회에 참으로 슬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추모예배는 축하예배와 함께 사람을 위한 수
단으로서의 예배이며, 사람을 위한 내용들로 채워진 혼합주의 예배의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
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거니와 이런 것은 하나님을 위한 예배가 아니라 사람을 위한 추모행
사(event)일 뿐입니다.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사 43:18-19)”
이러한 수단으로서의 예배, 혼합주의 예배들이 하루속히 혁신되고 올바른 예배문화 풍토가
조성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하나님만을 위하고, 하나님만을 높이고, 하나님만 영화롭게
하는 예배열심이 파도처럼 밀려와 한국교회를 덮는 그 날이 속히 오기를! 할렐루야!
3) 기념예배(記念禮拜)
2010. 08. 22(주일). 오후 3시. 서울의 모 교회에서 “故 안모 목사 순교 60주년 기념예배”가
있다는 광고가 8월 19일자 신문에 실렸었습니다. 순교는 매우 귀한일이며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으로 기념을 할 만 한 일입니다. 또한 마땅히 기념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념
할 일이 있으면 기념행사를 하던가 아니면 감사예배를 드려야지, 왜 사람을 기념하는 행사를
굳이 예배라는 이름으로 진행하는지를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기념예배는 매우 다양하게 진
행되는 혼합주의 예배입니다. 축하예배나 추모예배는 다 사람을 높여주고, 사람을 위하는
목적으로 행해지는 예배라는 점에서는 동일하나 축하예배는 산사람을 위한 것이며, 추모예배
는 죽은 사람을 위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념예배는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을 위하는데 같이
사용되는 것입니다. 즉 산사람을 위해서 기념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죽은 사람
을 위해서 기념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기념예배는 특정한 개인을 위해서 진행되기도 하지만 불특정 다수를 위한 경우
도 있으며, 또 사람과는 관계가 없는 절기나 사건을 위해서도 진행되기도 하는 것을 봅니다.
많은 사람들이 참으로 다양한 형태의 기념예배들을 실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앞서 축하예배
에서 언급한바와 같이 예배명칭의 명사, 즉 기념예배의 기념이라는 단어는 명사로 쓰였지만
사실은 동사의 성격, “기념하는”이라는 의미를 가진 명사입니다. 그리고 그 앞에는 기념하는
사람이나 사건의 이름이 붙어 있습니다. 쉽게 말해서 기념의 대상이 목적어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한 예배가 아니라 기념하는 대상을 위한 예배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기념예배에는 다른 혼합주의 예배와 동일하게 한 예배 안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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