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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전9:7-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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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한태완 목사 |
참고 : |
산자의 복(기쁨)
본문: 전9: 7- 10
‘너는 가서 기쁨으로 네 음식물을 먹고 즐거운 마음으로 네 포도주를 마실지어다 이는 하나님이 네가 하는 일들을 벌써 기쁘게 받으셨음이니라 네 의복을 항상 희게 하며 네 머리에 향 기름을 그치지 아니하도록 할지니라 헛된 평생의 모든 날 곧 하나님이 해 아래에서 네게 주신 모든 헛된 날에 네가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지어다 그것이 네가 평생에 해 아래에서 수고하고 얻은 네 몫이니라 네 손이 일을 얻는 대로 힘을 다하여 할지어다 네가 장차 들어갈 스올에는 일도 없고 계획도 없고 지식도 없고 지혜도 없음이니라’
영국의 위대한 여왕이었던 엘리자베스 1세의 임종이 가까웠을 때, 대영 제국의 뛰어난 의사와 의술이 총동원이 되었으나 그녀의 죽음은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임종의 자리에서 여왕은 통곡을 하며 “누구든지 생명의 한치라도 연장해 준다면 100만 달러의 상금을 주겠노라”하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녀의 생애에 최대의 부와 권력과 명성을 누렸고, 일만 벌 이상이나 되는 호화스런 의상들, 언제든지 명령대로 움직이는 수많은 신하들, 해가 지지 않는다고 할 만큼 광대한 제국의 주인도 죽음 앞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이렇듯 인간의 부와 명성, 또는 악함과 선함, 세상의 그 무엇도 하나님이 한번 정하신 죽음을 비켜 갈 수는 없습니다.
휼륭한 전도자요, 부흥사로서 많은 영혼을 하나님께로 인도했던 D.L. 무디 역시도 죽음을 피할 수 없었으나 그의 모습은 오늘 많은 성도들에게 어떠한 모습으로 죽음을 준비해야 하는 가를 보여줍니다. 그는 임종을 앞두고 말하기를 “지구가 점점 멀어지는 것이 보이는 구나. 하늘 문이 열리고 하나님이 나를 부르신다”라고 하면서 당당하게 죽음을 맞이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과연 죽음의 문턱에서 어떤 고백을 할 수 있을까요? 실로 삶과 죽음의 문제가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깨닫고 우리의 생명을 그리스도께 맡김으로 그의 뜻에 순종하며 사는 것이 성도된 우리의 삶의 원칙이 아니겠습니까?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9: 27)
‘모든 산 자들 중에 들어 있는 자에게는 누구나 소망이 있음은 산 개가 죽은 사자보다 낫기 때문이니라’(전9:4)
우리가 살아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살아있는 자에게는 네 가지 복(기쁨)이 있습니다.
첫 번째 복은 먹는 기쁨, 마시는 즐거움의 복입니다.
본문 7절을 보겠습니다. ‘너는 가서 기쁨으로 네 음식물을 먹고 즐거운 마음으로 네 포도주를 마실지어다 이는 하나님이 네가 하는 일들을 벌써 기쁘게 받으셨음이니라’ 세상에는 먹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1) 먹을 것이 없을 만큼 가난해서 먹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예를 들면 북한 땅과 아프리카 등지에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2) 건강이 나빠져서 맛있는 것을 먹어도 소화가 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예를 들면 오랫동안 위장병을 잃는 사람 등입니다.
3) 먹을 것이 너무 많아서 먹기가 싫은 사람들입니다. 배불러서 음식투정을 하는 사람입니다. 자녀들에게 억지로 먹이려 하지 마십시오. 먹기 싫어하거든 여러 번 권하지 말고 음식의 소중함을 알 때까지 단호히 주지 마십시오.
4) 너무 살이 쪄서 먹어서는 안될 사람들입니다.
먹는 즐거움은 사람에게 매우 귀중한 것입니다. 그러나 고난주간 때에는 한끼 씩은 금식하고 배고픈 자를 생각하는 것도 소중한 일입니다.
참고: 예수님의 별명: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눅7:34) - 예수님은 함께 만나서 먹고 마심으로 우리 삶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셨습니다.(밥상공동체, 식탁공동체)
우리가 어떤 것을 먹는 것도 중요하지만 누구와 같이 먹느냐가 중요합니다.
‘채소를 먹으며 서로 사랑하는 것이 살진 소를 먹으며 서로 미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잠15:17)
두 번째 복은 자기 몸을 가꾸고 예쁜 옷을 입고 꾸밀 줄 아는 복(기쁨)입니다.
본문 8절을 읽겠습니다. ‘네 의복을 항상 희게 하며 네 머리에 향 기름을 그치지 아니하도록 할지니라’
예수 믿는 사람은 검소하게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치하고 명품만을 고집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자기 몸을 가꾸고 꾸밀 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람들 앞에 아무렇게나 머리와 의복을 하고 형편없는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외모를 취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외모는 학벌, 재물, 생긴 모습 등을 말합니다. 자기 모습을 아름답게 하기 위해 노력하고 수고하고 애씀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소중한 삶을 마치 잔칫집과 같이 기쁨과 감사, 감격과 행복이 넘치는 삶의 자리로 만들어 가십시오.
멋지고 당당한 남성, 아름답고 매력적인 여성으로 자기를 가꾸는 것은 필요한 일입니다. ‘이에 사람을 보내어 그를 데려오매 그의 빛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답더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가 그니 일어나 기름을 부으라 하시는지라’(삼상16:12)‘소년 중 한 사람이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베들레헴 사람 이새의 아들을 본즉 수금을 탈 줄 알고 용기와 무용과 구변이 있는 준수한 자라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시더이다 하더라’(삼상16:18)
예수 믿는 사람은 멋진 사람 매력적인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아침 빛 같이 뚜렷하고 달 같이 아름답고 해 같이 맑고 깃발을 세운 군대 같이 당당한 여자가 누구인가’(아6:10) 우리는 아름다운 그리스도의 신부가 됩시다. "네 의복을 항상 희게 하며..." 라는 말씀은 우리에게 성결한 삶을 도전하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성결한 삶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전혀 죄를 짓지 않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깨끗한 삶일까요? 그랬으면 좋겠지만 죄를 짓지 않고 산다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요? 그렇다면 죄를 적게 지으려는 노력일까요? 그것도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죄를 적게 짓는 것을 보고 "성결하다!"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때로 우리 인간은 죄를 실행하지 않아도 생각으로 죄를 짓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면 성결하다는 것이 생각으로 짓는 죄를 멀리하는 것을 말할까요? 물론 생각으로도 죄를 짓지 않으려는 것은 중요한 일이고 소중한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가장 원하시는 성결함의 모습은 그런 차원 이상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떤 차원의 성결함을 원하실까요? 그것은 바로 믿음의 성결함입니다. 즉 어떤 상황에서도 두 마음을 품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이 바로 성결입니다. 교회 안에서는 믿는 것 같은데 교회 밖에서는 믿지 않는 것 같은 모습, 어떤 때는 믿는 것 같은데, 어떤 때는 믿는 것 같지 않은 모습이 있습니다. 야고보서 1장 6-8절 말씀을 보면 그런 모습을 뭐라고 표현하고 있습니까?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우리의 믿음이 바람에 밀려 요동하지 않는 견고한 믿음이 되는 것이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장 중요한 성결함의 내용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성결한 믿음이 없으면 무엇이든지 얻을 생각을 말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결국 우리의 시험은 대개 우리가 가진 믿음의 성결함을 시험하는 시험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남편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여보! 가게에 불이 났소!" 그때 많은 사람들은 마음이 흔들립니다. 여기까지는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 다음에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믿는 사람다운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습니다!"라고 믿음의 고백을 해야 합니다. 그런 믿음을 보여줄 때 하나님은 최종적인 선을 반드시 보장해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의 성결함을 잃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큰 시험이 와서 우리를 흔들어도 믿음이 흔들리지 말아야 하고, 세상의 화려한 불빛에도 결코 현혹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우리가 마음을 비우고 깨끗한 마음을 가진 상태에서 오직 하나님만 바라볼 때 그러한 성결한 마음에 하나님의 은혜의 샘물이 고이게 될 것입니다.
세 번째 복은 가정에서 아내와 남편과 즐겁게 사는 복(기쁨)입니다.
본문 9절을 보겠습니다. ‘헛된 평생의 모든 날 곧 하나님이 해 아래에서 네게 주신 모든 헛된 날에 네가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지어다 그것이 네가 평생에 해 아래에서 수고하고 얻은 네 몫이니라’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사는 가정은 사실상 그것이 천국입니다. 그리고 큰 의미에서 교회도 가정입니다. 그러므로 즐거운 교회생활도 사실상 그것이 바로 천국생활입니다.
가정과 교회! 이 둘은 땅에 존재하는 가장 소중한 천국공동체입니다. 이 가정과 교회가 평화로우면 그것은 어떤 소중한 보약보다도 보약입니다. 그러나 가정과 교회에 문제가 있으면 그것이 만병의 근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가정과 교회를 천국으로 만들기에 힘써야 합니다. 때로 우리의 가정과 교회에 어려운 환경이 주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면 괴롭습니다. 그러나 이미 주어진 환경인 것을 어찌하겠습니까? 그러한 환경은 내가 감당할 수 있다고 하나님이 주신 분복인 걸 어떻게 합니까? 그러므로 그러한 환경 속에서도 최선을 다해 행복을 찾아야 합니다.
흔히 이런 말을 합니다. 자유는 얻기보다 지키기가 더 어렵다는 말입니다. 비슷한 원리로 가정은 이루기보다 지키기가 더 어렵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우리의 가정을 아름답게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것을 위해 특히 남자에게는 3가지가 꼭 있어야 합니다.
(1) 책임감입니다.
성경은 남자에게 말합니다. "모든 책임을 떠 맡으라." 바운즈는 말합니다. "모든 남자는 가정의 책임적인 도구들이다."라고 말입니다. 남편은 경제적, 도덕적, 신앙적 책임을 지는 기둥이 되어야 합니다.
(2) 자상함입니다.
남편은 손이 큰 남자가 되어야 하고, 통이 큰 남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따뜻하게 보살피고, 베풀고, 칭찬하는 마음의 중심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여자는 외유내강해야 하지만, 남자는 외강내유해야 합니다.
(3) 확고한 중심입니다.
남편은 변덕이 심하면 안됩니다. 그러면 지도력이 생기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내가 남편 비위 맞추기 힘들다는 소리가 나오도록 해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여성들에게도 많은 것이 필요하지만 특히 남편을 존경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당신이 제대로 하는 것이 뭐 있냐?"라는 말은 남편에게는 치명타입니다. 가정에서는 서로간에 자존심 지켜 주도록 힘써야 하겠지만 특히 아내는 남편의 자존심을 꺾는 일이 없도록 더욱 노력해야 합니다.
그리고 남편과 아내에게 서로 꼭 기억할 것은 헌신하려는 마음입니다. 가정은 행복을 채굴하는 곳이 아니라 행복을 저축하는 곳입니다. 얻으려는 사람, 주장하려는 사람이 많아지면 가정과 교회는 어려워집니다. 그러나 헌신하고 베풀려는 사람이 많아지면 가정과 교회는 천국이 됩니다.
일본에서 동경 올림픽이 열리기 전해의 일이었습니다. 올림픽 때문에 스타디움을 확장하기 위해서 인부들이 지붕을 헐었습니다. 그런데 지붕을 헐어보니 벽에 도마뱀이 꼬리에 못이 박힌 채 살아 있었습니다. 인부들이 전에 공사했던 사람들에게 그 못을 언제 박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3년 전에 박은 못이 틀림없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곳에 있던 인부들은 어떻게 3년 동안 도마뱀이 그런 상태에서 살아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공사를 중단하고 가만히 지켜보기로 했습니다. 한참 공사를 중단하고 지켜보니까 한 구석에서 도마뱀 한 마리가 나오더니, 그 도마뱀이 꼬리에 못이 박힌 도마뱀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고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3년 동안 친구를 위해서 하루에 서너 차례 먹이를 물어다 주었던 것입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인부들은 사랑과 헌신의 아름다움을 느꼈다고 합니다. 사랑과 헌신은 언제나 아름답습니다. 정말 아름다운 가정과 교회를 만들기를 원하신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부부를 행복하게 만드는 세미나에 가서 좋은 말 많이 들으면 됩니까? 다른 오묘한 방법을 생각할 것 없습니다. 사랑과 헌신이 있으면 됩니다. 성도는 사랑과 헌신으로 가정과 교회를 천국으로 만들기에 힘써야 합니다.
가정은 축복의 동산입니다. 샘물처럼 인생의 복이 여기에서 나옵니다. 네가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지어다(Enjoy life with your wife, whom you love)남편들이여 아내와 다투지 마십시오. 아내에게 큰소리 안하는 것이 복 받은 남편입니다. 아내를 존귀히 여기세요. 아내에게 ‘고맙소’하고 말하십시오. 아내들도 남편을 존경하고 잔소리 하지 마십시오.
외국에 있는 아들이 결혼을 하게 되었다. 아버지가 축하 편지 한 장을 쓰기 시작했다. 남편이 아들에게 뭐라고 편지 쓰나 아내가 궁급해서 옆에 앉아서 남편의 편지를 살펴보았다. 남편이 편지를 쓴다.“결혼은 참으로 달콤하고 행복한 것이다. 아들아 너는 참으로 소중한 결단을 했구나. 이 아버지가 행복했듯이 너도 반드시 행복할 것이다. 아버지의 가정생활이 멋있듯이 너도 멋있는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아내가 옆에서 읽다가 말고 흐뭇해서 밖으로 나갔다. 이때 아버지가 재빨리 P. S. 추신을 붙였다. “방금 네 엄마가 나갔단다. 이 바보 멍청아! 결혼은 무덤이야, 너는 이제부터 죽었다”
괴테는 이렇게 말했다. “왕이든 백성이든 자기 가정의 평화를 찾을 수 있는 남자가 행복한 사람이다.” 아무쪼록 여러분 가정에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축복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네 번째 복은 건강해서 수고하고 땀흘리는 복(기쁨)입니다.
10절을 함께 읽겠습니다.‘네 손이 일을 얻는 대로 힘을 다하여 할지어다 네가 장차 들어갈 스올에는 일도 없고 계획도 없고 지식도 없고 지혜도 없음이니라’
19세기 영국 작가 찰스 킹슬리는 다음과 같은 글을 썼습니다. "매일 아침 일어났을 때 당신이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 해야 할 일이 있는 것에 대해 감사하십시오. 만일 해야 할 일이 있어서 그 일을 능력을 다해 수행한다면 당신의 내면에 자제력, 근면함, 만족감 등 게으른 사람들은 결코 알지 못하는 수많은 덕이 쌓여질 것입니다."
노동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성경에는 근면하게 일할 것을 촉구하는 구절이 많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일에 얼마나 충실하십니까? 죤 밀턴은 더 나은 시를 쓰기 위해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 4시에 일어났다고 합니다. 여러분에게 주어진 일에 충실하십시오. 만일 우리가 어떤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골3:23)하면 주님은 우리의 수고를 통하여 우리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필요까지도 채워 주실 것입니다.
가끔 믿는 성도 중에 믿음을 오해하고 땀을 흘리지 않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결코 바른 믿음이 아닙니다. 믿음은 놀고먹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지만 열심히 땀을 흘려야 바로 참된 믿음입니다. 땀을 흘리지 않는 사람은 결코 바람직한 인간상을 만들 수 없습니다. 우리는 정말 믿는 사람으로서 바른 인간상을 갖추도록 해야 합니다. 단테는 신곡이라는 유명한 작품에서 지옥을 9층 3단계로 분류했는데, 거기에 들어가 있는 사람들을 보면 하나같이 정신이 똑바르지 않습니다. 믿음은 똑바른 정신을 반드시 수반하는 믿음이 되어야 한다는 도전입니다. 그 작품에서 제일 위 단계에는 감사를 모르는 사람들이가 있습니다. 신세를 졌으면서 "언제 졌더라!"라고 오리발 내리는 사람이 거기에 있고, 절제하지 못해서 많이 먹고 숨을 헐떡이는 사람도 거기에 가 있습니다.
그리고 중간 단계에는 예수님을 믿다가 이단에 빠진 사람들이 있고, 지옥의 제일 아래 단계에는 남을 때리는 사람과 사기꾼들이 있습니다. 그처럼 지옥에 가 있는 사람들을 보면 정신이 똑바른 사람들이 없습니다. 왜 사람들이 정신이 비뚤어질까요?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 정신이 비뚤어질까요? 자기에게 주어진 일의 의미, 그리고 땀의 의미를 모르면 정신이 비뚤어집니다. 결국 우리의 믿음은 똑바른 정신을 반드시 수반하는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믿음은 우리의 정신을 바르게 만드는 힘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왜 기도를 합니까? 기도도 일을 안하려고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일의 면제를 위해서가 아니라 일을 잘하기 위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제목도 놀고먹으려는 심리가 담긴 기도제목은 바른 것이 아닙니다. 대개 사람들에게 복권 심리가 있습니다. 기독교인에게도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분은 복권을 사고 당첨되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그 복권 당첨을 위한 기도는 응답되지 않아야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복권은 아니더라도 그런 유사한 기도제목을 놓고 기도할 때에 그 기도에 응답되지 않는 순간 오히려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가나안 땅, 내일에 대한 약속은 신적 가능성을 가지고 잉태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약속은 여호수아의 책무와 땀을 통해 이루어져야 합니다. 약속하시고 마련하시는 일은 하나님의 일이지만 그 약속된 것을 소유하는 일은 여호수아에게 주어진 일입니다. 약속된 내일을 얻기 위해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구체적인 행동지침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지난주일 예배에 말씀드린 대로 바로 발바닥으로 밟는 일입니다. 즉 우리의 사명이 행동으로 나타나야 하고, 구체적인 땀을 흘려야 합니다. 약속된 축복은 잘 익은 열매처럼 우리의 무릎에 그냥 던져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구체적인 땀을 흘려 약속된 축복을 얻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여러분들에게 말씀으로 주어진 성도의 본분을 잘 지킴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귀한 분들이 되길 바랍니다.바울은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도 너희에게 명하기를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하였더니’(살후3:10) 하였습니다.
수고하고 땀흘리는 복: 인간의 타락 이전에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복입니다. 세상에서 하나님이 주신 지혜와 능력으로 창조행위에 동참하는 복입니다.유대인들은 ‘자녀에게 일하는 것을 가르치지 않는 것은 도둑질을 가르치는 것이다“ 라고 말합니다.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복입니다.‘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민6: 24- 26)
* 기도: 복의 근원이 되신 하나님, 먹고 마시는 복을 주시니 감사하오며, 멋을 내고 즐기며 살게 하시니 감사하오며, 사랑하는 아내를 주신 것을 감사하오며, 수고하고 땀흘리며 일하게 하신 것을 감사합니다. 우리에게 가정 주신 것을 감사드리며 우리에게 죄와 사망에서 자우 주심도 감사드립니다. 우리 모두에게 살아있는 자의 복을 마음껏 누리게 하신 하나님께 영광과 찬양을 드립니다. 세상의 헛된 것을 바라보고 자랑하지 말게 하옵소서. 남은 인생을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이웃을 사랑하고 이웃에게 기쁨과 희망과 진리를 전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우리에게 할 일을 주신 하나님, 최후의 5분을 아름답게 장식하도록 더욱 할 일을 주시고 주께서 맡겨주신 일을 잘 감당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빛의 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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