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출처 : | http://cafe.daum.net/water2432/Pj3m/1345 |
---|
그리스도교와 그리스도를 구별하라 - 이현주 목사의 신앙고백
나는 하나님의 무한하심을 믿는 만큼 인간의 유한함을 믿는다.
시간과 공간 속에서 인간은 한계가 있다.
이것이 인간을 구원한다.
나는 나의 주장이 그 어떠한 것이든 본질상 상대적인 것임을 인정한다.
나의 주장이 옳으냐 그르냐를 떠나 나의 주장과 다른 주장이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한다.
이것을 인정하는 때에 비로소 나는 구원받는다.
나는 나의 한계성을 인정한다.
단 한 분 절대자이신 그분을 믿는 그만큼, 나는 나의 상대성을 믿는다.
내가 부단히 상대화시키는 것들 가운데는 물론 나의 이 “신앙고백”도 들어 있다.
달라진다는 것에 관하여 나는 조금도 두렵지 않다.
혹시 지금 하고 있는 것과 정반대의 고백을 하게 된다 하더라도, 그 사실이 두렵지는 않다.
두려운 것은 어쩌다가 진실을 등지게 될까봐, 그것이 두려울 따름이다.
두려운 게 또 하나 있다.
지금 하는 이 고백이 무슨 고정 관념처럼 굳어져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도무지 “달라지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나의 신앙이 굳어졌음을 의미하는 것이고
따라서 그것은 내 신앙의 부고장(訃告狀)이나 마찬가지이겠기에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참으로 내가 두려운 일은 나이를 먹으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낡은 가죽 부대”가 되는 거나 아닌가 하는 점이다.
그렇다면 나는 끝이다.
욕심인지는 모르나 나는 언제나 새로운 인간이 되고 싶다.
자기가 알고 있는 성서 지식, 또는 자기가 고백하는 하나님 신앙만이 유일한 것이라고
배타적으로 주장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는 자기 자신에게 갇혀 있음을 그런 식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참 삶의 길 곧 구원받는 길이 되심을 믿는다.
나의 이 믿음은 다른 무엇으로 바꿔치기할 수 없는 절대적인 것이다.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이런 고백을 하는 게 아니라, 이런 고백을 하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이다.
그러나 나는 나의 이 절대적인 신앙 고백 자체가 상대적인 것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스도 곧 그리스도교”라는 등식은 성립되지 않는다.
이 분명한 사실을 왜들 그렇게 억지로 외면하려고 하는지 모를 일이다.
그리스도교는 이제 나이 2천 살이 되어 가는 하나의 종교일 뿐이다.
그리스도는 그리스도교라는 울타리와 상관없는 분이다.
그리스도교는 그리스도를 만든 자궁도 아니요
그 속에 그리스도를 보관하고 있는 창고도 아니다.
그리스도교는 그리스도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믿고 따르는 사람들의 모임일 뿐이다.
사실 예수 그리스도 그분은 “그리스도교”의 “그” 자(字)도 모르신 분이다.
그리스도교 2천 년 역사를 돌이켜보면, 아무도 “그리스도교”가
곧 사람을 구원한다고 주장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스도교가 이른바 진리 수호의 이름으로, 얼마나 참혹한 일을 인류에게 감행했는지
살펴본 사람이라면 그런 억지를 부리지 않을 것이다.
그리스도교가 지니고 있는 유일한 가치는, 그것이 그리스도를 가르치고 그리스도를 전하고
그리스도를 지키고 있다는 점에 있다.
그러나 역사는 그리스도교가 언제나 모자람 없이
이 유일한 가치를 발휘하지는 못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현주·목사, 『나의 어머니 나의 교회여』, 종로서적, 46-49쪽.)
|
혹 글을 퍼오실 때는 경로 (url)까지 함께 퍼와서 올려 주세요 |
자료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 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