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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 출처 :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204052133375&code=9900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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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세상]독서력을 갖춘 사회
이현우 | 서평가·필명 ‘로쟈’
경향신문 2012-04-05
책을 몇권 내면서 가끔 강연회에서 독자들을 만난다. ‘책에 대한 책’으로 분류되는 책들이다 보니 화제는 주로 독서다. 무슨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가 청중의 주된 관심사다. 그런 물음에 답하다 보니 애용하게 된 레퍼토리 중 하나는 ‘책 읽는 뇌’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독서목록을 만드는 것보다 먼저 할 일이 독서력을 갖추는 것이란 점은 자명하다.
문제는 문해력이 곧 ‘독서력’을 뜻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책을 읽는 능력은 글자를 읽거나 글을 읽는 능력보다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능력이다. 그리고 이 독서력은 자연스레 체득되는 것이 아니라 의식적인 노력의 결과로 얻어진다. 대단한 노력은 아니다. 일주일에 한두 권씩 2년 정도의 단기간에 꾸준히 읽으면 된다. 그렇게 ‘10000페이지 독서’나 ‘150권 독서’를 통해서 독서력이 길러진다. 어지간한 책을 읽고 소화할 수 있는 힘이 독서력이다. 만약 어지간한 책을 읽어내는 게 힘겹다면 독서력이 아직 부족한 단계라고 말할 수 있다. 책 읽는 ‘근육’이 아직 형성되지 않은 것이다.
글을 읽는 단계에서 책을 읽는 단계로 넘어가려면 좀 더 단련된 뇌 근육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렇게 단련된 뇌 근육은 독서의 지평뿐 아니라 세계의 질감 또한 변화시킨다. 이 변화는 개인적 차원에 한정되지 않는다. 문맹을 벗어난 사회가 문해력을 갖춘 사회라면 진정한 문명사회는 독서력을 갖춘 사회라고 말할 수 있을 테니까.
일제시기 한국인의 70%가 문맹이었다고 한다. 오늘날 문맹률에 있어서만큼 세계 최저 수준이니 우리의 초급 문해력은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다시 강조하자면 문해력과 독서력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문해력은 초등교육의 과제일 수는 있을지언정 고등교육의 목표일 수는 없다. 독서력은 초등학교 교과서가 아니라 대학교재를 읽을 수 있는 진전된 문해력이다. 세계 최저수준의 문맹률에도 불구하고 한국 대학생들의 문해력이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면 문제는 독서량이고 독서력이다. 한 달에 한권 정도를 읽는 평균 독서량을 갖고서 우리 사회가 ‘독서력을 갖춘 사회’라고 말할 수는 없다.
흔히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민은 그들의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갖는다고 한다. 그 수준을 말해주는 척도 가운데 하나가 바로 독서력이다. 민간인 불법사찰이나 일삼는, 그러면서도 무엇이 부끄러운 일인지 모르는 수준 낮은 정부를 우리가 갖고 있다는 사실이 우리의 미흡한 독서력과 무관하지 않다면 독서는 정치적 차원에서도 진지한 숙고의 대상이 될 만하다. 국민 다수가 정치와 역사와 철학에 대한 기본교양을 갖추고 말들의 홍수 속에서 무엇이 거짓말이고 꼼수인지 판별해낼 수 있다면 그런 국민을 상대해야 하는 정부의 수준도 한층 높아질 것이다. 아무리 거짓말이라 해도 최소한 좀 더 성의 있는 거짓말을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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