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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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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마5:33-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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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박신 목사 |
참고 : | http://www.whyjesusonly.com/ |
베드로처럼 사단을 좇는 신자들
“또 옛사람에게 말한바 헛맹세를 하지 말고 네 맹세한 것을 주께 지키라고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찌니 하늘로도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 땅으로도 말라 이는 하나님의 발등상임이요 예루살렘으로도 말라 이는 큰 임금의 성임이요 네 머리로도 말라 이는 네게 한 터럭도 희고 검게 할 수 없음이라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 좇아 나느니라.” (마5:33-37)
맹세를 했으면 반드시 지키라고 가르치는 것이 상식인데 예수님은 맹세 자체를 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것도 ‘도무지’ 하지 말라고 아주 강조했습니다. 말하자면 무슨 일이 있어도 맹세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나아가 맹세 대신에 옳다 아니다만 말하되 이에서 지나는 것 즉 맹세를 하는 것은 악에서 나온 것이라고까지 말합니다. 너무 극단적인 말씀이 아닌가요?
사람이 살다보면 이 모양 저 모양으로 맹세를 해야 할 때가 많습니다. 남들과의 관계에서 자기의 신실함을 보증하기 위해서 혹은 자신의 결단과 헌신을 스스로 다짐하기 위해서 맹세는 필요합니다. 그럼 신자는 무슨 맹세라도 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까? 어떤 이단처럼 국기에 대한 맹세나 법원에서 하는 선서마저 하지 말아야 합니까? 만약에 그런 맹세는 해도 된다면 해도 되는 맹세와 하지 말아야 하는 맹세가 따로 있는 것입니까?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게 된 일차적 동기는 당시에 맹세를 악용했던 유대교 지도자들에게 경종을 울리고자 한 것입니다. 그들은 맹세를 꼭 지켜야 할 것과 안 지켜도 될 것으로 나누어서 종교적 이득을 챙기려 했습니다.(마23:16) 심지어 하나님의 명시적인 계명마저 인간의 맹세와 맞바꾸게 되면 안 지켜도 된다고 가르쳤습니다.(마15:3-6) 문자적, 외형적 준수는 아무런 의미가 없으며 심지어 하나님의 이름을 팔아서 그렇게 하는 것은 죄악이라고 꾸짖으신 것입니다.
성경은 맹세를 해도 되고 또 했으면 반드시 지키라고 합니다.(민30;2-16) 심지어 속아서 한 맹세도 인정하고 이행하라고 가르칩니다.(수9:20) 나아가 예수님도 맹세를 인정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잠잠하시거늘 대제사장이 가로되 내가 너로 살아 계신 하나님께 맹세하게 하노니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지 우리에게 말하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말하였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후에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마26:63,64)
예수님의 이 말씀은 맹세 자체가 좋다 나쁘다 혹은 맹세를 지켜야 하는 신실성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닙니다. 맹세를 할 때 갖는 사람의 근본 생각을 따진 것입니다. 예수님이 맹세를 하지 말아야 할 이유로 든 것이 전부 무엇입니까? 하늘은 하나님의 보좌이며, 땅은 하나님의 발등상이라고 합니다. 우선 하늘이나 땅이나 하나님이 지은 피조물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맹세란 가장 먼저 그것을 지키고자 하는 성실성을 보장해야 하기에 영원토록 변함없는 것에 대고 하는 것이 상례입니다. 땅과 하늘 또한 하나님의 섭리 아래에 있어 언제든 당신의 뜻이라면 천지가 개벽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 네 머리로도 말라고 하는데 인간이 그 머리카락을 하나라도 희거나 검게 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결혼식에서 흔히 하는 머리가 파뿌리 될 때까지 헤어지지 않겠다는 서약은 늙어 죽을 때까지 서로 헌신하겠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대로라면 순식간에 머리가 희어질 수도 있는데 자칫 그 이후는 헤어져도 된다는 서약이 될 수 있습니다. 물론 예수님이 그런 식의 어휘상의 유희(遊戱)를 한 것은 아닙니다.
맹세란 한 마디로 장래에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일이 맞고 옳으니 무슨 일이 있어도 그렇게 하겠다는 뜻입니다. 요컨대 인간의 생각이 옳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맹세를 할 때에 갖는 바로 그런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지적한 것입니다. 세상만사를 주관하는 이는 따로 있는데도 인간이 먼 장래의 일까지 스스로 확정짓지 말라는 것입니다. 인간이 미리 마음대로 판단하고 계획하여 추진하려하지 말고 항상 하나님이 그 일을 어떻게 주관하고 계시는지 또 하나님의 뜻이 어디 있는지 먼저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 뜻 안에서 하는 맹세는 해도 됩니다. 단 그 맹세를 지킬 수 있는 힘도 오직 하나님께만 의탁한다면 말입니다. 신자라면 하나님의 뜻 안에서 절대로 거짓 증거 하지 않고 혹시라도 개인적으로 손해나 핍박이 따를지라도 진리만 증거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지켜달라고 기도하면서 법원의 선서를 해야 합니다. 또 국기에 대한 맹세도 한 나라의 국민으로서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는 한 국가에 충성해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기에 해도 되는 것입니다.
인류 역사에 손꼽히는 모든 영웅들 심지어 나찌의 히틀러도 사실은 유토피아의 건설을 꿈꾸었습니다. 또 인간의 사상만으로 따져서 가장 옳고 이상적인 제도는 공산주의였습니다. 그러나 모두 실패했습니다. 하나님을 배제한 채 인간만의 생각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 생각이 틀렸다는 뜻이 아니라 우주만물을 다스리는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단 한 번도 겸비하게 물어 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본문 식으로 말하자면 인간 스스로 판단하여 실천하기로 다짐하면서 하나님이 아닌 것에다 대고 맹세를 했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인간의 양심과 정의감에다 대고 맹세했습니다. 연약하고 부패했고 수시로 변하는 인간의 양심이 그 맹세를 지켜낼 수 있는 힘을 주는 것도 아니요 심지어 그 맹세를 보장할 근거는 더더욱 되지 못합니다.
인간의 사상과 계획은 반드시 하나님 앞에서 선해야 합니다. 아니 무엇보다도 그분으로부터 오는 생각이어야 합니다. 범사를 주관하는 그분의 뜻과 상관이 없으면 인간 생각의 옳고 그름을 떠나 그 일이 이뤄지지 않을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하나님 당신을 배제해서 건방지다고 들어 주시지 않겠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과 상관없으므로 악이 됩니다. 또 다시 인간의 생각자체가 악하거나 나쁘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없으면 선이 타락해 악으로 변하는 것이 아니라 절대 선이신 하나님이 없으므로 선 자체가 처음부터 실종된 것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인간이 선한 동기에서 출발하여 의로운 목표를 세워도 악의 세력에 의해 지배당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악으로 흐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알기 쉽게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예수님을 따를 때에 모든 계명을 다 지키고 생명을 바칠 수 있는 것처럼 섣불리 자신하여 스스로 맹세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정말 그럴 작정이면 단순히 예만 하면 됩니다. 베드로가 생명을 걸고 스승을 지키겠다고 나서자 예수님은 사탄아 물러가라고 야단쳤습니다. 베드로가 사탄이 아니라 오직 인간적 생각만 앞세우고 예수님의 뜻은 전혀 반영되어 있지 않으니 바로 그것이 사탄에게 이용당한 것이라고 지적한 것입니다. 실제로 예수님이 잡히시기 전날 밤에 한 베드로의 맹세는 완전히 사단의 노리개가 되어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 세 번이나 어기게 되었지 않습니까?
예수님은 베드로의 두 번 맹세가 있기 전에 이미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 지나는 것은 악으로 좇아 나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에게 헛맹세를 발하지 말라고 미리 교육을 시켰습니다. 마치 수제자인양 설쳤던 그가 사실은 이미 제자 훈련 받은 것조차 제대로 지키지 못했습니다. 그가 악하거나 머리가 나빠서가 아닙니다. 단 5분 앞의 일도 모르는 인간이 앞날을 자기 뜻대로 하려고 설쳤고, 그것도 하나님 당신이신 예수님이 이미 말씀하신 것을 예를 하지 않고 뒤집으려 했기 때문입니다.
신자더러 장래 일에 대해 예와 아니오 둘만 하라고 한 또 다른 뜻은 이 세상을 다스리는 이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허락을 받은 사단뿐이라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신자의 모든 장래 일은 하나님이 인도하든지 아니면 사단이 훼방하든지 둘 중 하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자로선 하나님의 일이라고 확신하면 당연히 믿음으로 예만 하면 되고 그렇지 않으면, 즉 그 일에 아무리 봐도 하나님이 없다고 판단되면 단호하게 아니오 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순종은 사람과 세상과 죄악과 사단에 대한 거역입니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인간사 특별히 신자의 삶은 단 한순간도 빠지지 않고 오직 이 두 가지로만 이뤄집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하나님에게 제가 이 일을 못 이뤄내면, 실제로는 하나님이 다 이루시는데도, 제 목숨을 걸겠습니다라고 맹세하는 것이 과연 가당한 일일까요? 그 반대로 사단에게 그러는 것은 더더욱 웃기는 일 아닌가요?
그런데 실제로 그런 일들을 수많은 신자들이 아무 의식 없이 자주 행하고 있으니 큰 일 아닙니까? 가장 대표적 예로 기도할 때에 제가 이런 저런 일을 하겠으니 하나님도 이렇게 저렇게 해 주세요라고 하지 않습니까? 자기가 하나님 앞에 맹세하는 것은 둘째 치고 하나님더러 자기 앞에서 맹세하라고 합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들어서 예라고 대답하는 행위입니다. 또 사단의 말임을 분별하여 아니오라고 냉정하게 거절하는 작업입니다. 아니 기도뿐 아니라 신자의 모든 믿음의 싸움이 그러합니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신자들은 하나님더러 예 아니면 아니오 둘 중 하나를, 그것도 한시라도 빨리 결정하여 시행하라고 욱박지르는 것이 잘 하는 짓인 양 착각하고 있습니다. 또 그 답을 빨리 듣기 위해 모든 치성과 열심을 다 동원합니다. 그 가운데는 당연히 인간적 의로움, 세상적 선행, 종교적 경건 다 포함시켜서 말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신자가 믿음이 좋은 신자로 교회 안팎에서 칭송을 받습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악이라고 했는데도....
6/1/2006
“또 옛사람에게 말한바 헛맹세를 하지 말고 네 맹세한 것을 주께 지키라고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찌니 하늘로도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 땅으로도 말라 이는 하나님의 발등상임이요 예루살렘으로도 말라 이는 큰 임금의 성임이요 네 머리로도 말라 이는 네게 한 터럭도 희고 검게 할 수 없음이라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 좇아 나느니라.” (마5:33-37)
맹세를 했으면 반드시 지키라고 가르치는 것이 상식인데 예수님은 맹세 자체를 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것도 ‘도무지’ 하지 말라고 아주 강조했습니다. 말하자면 무슨 일이 있어도 맹세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나아가 맹세 대신에 옳다 아니다만 말하되 이에서 지나는 것 즉 맹세를 하는 것은 악에서 나온 것이라고까지 말합니다. 너무 극단적인 말씀이 아닌가요?
사람이 살다보면 이 모양 저 모양으로 맹세를 해야 할 때가 많습니다. 남들과의 관계에서 자기의 신실함을 보증하기 위해서 혹은 자신의 결단과 헌신을 스스로 다짐하기 위해서 맹세는 필요합니다. 그럼 신자는 무슨 맹세라도 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까? 어떤 이단처럼 국기에 대한 맹세나 법원에서 하는 선서마저 하지 말아야 합니까? 만약에 그런 맹세는 해도 된다면 해도 되는 맹세와 하지 말아야 하는 맹세가 따로 있는 것입니까?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게 된 일차적 동기는 당시에 맹세를 악용했던 유대교 지도자들에게 경종을 울리고자 한 것입니다. 그들은 맹세를 꼭 지켜야 할 것과 안 지켜도 될 것으로 나누어서 종교적 이득을 챙기려 했습니다.(마23:16) 심지어 하나님의 명시적인 계명마저 인간의 맹세와 맞바꾸게 되면 안 지켜도 된다고 가르쳤습니다.(마15:3-6) 문자적, 외형적 준수는 아무런 의미가 없으며 심지어 하나님의 이름을 팔아서 그렇게 하는 것은 죄악이라고 꾸짖으신 것입니다.
성경은 맹세를 해도 되고 또 했으면 반드시 지키라고 합니다.(민30;2-16) 심지어 속아서 한 맹세도 인정하고 이행하라고 가르칩니다.(수9:20) 나아가 예수님도 맹세를 인정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잠잠하시거늘 대제사장이 가로되 내가 너로 살아 계신 하나님께 맹세하게 하노니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지 우리에게 말하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말하였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후에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마26:63,64)
예수님의 이 말씀은 맹세 자체가 좋다 나쁘다 혹은 맹세를 지켜야 하는 신실성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닙니다. 맹세를 할 때 갖는 사람의 근본 생각을 따진 것입니다. 예수님이 맹세를 하지 말아야 할 이유로 든 것이 전부 무엇입니까? 하늘은 하나님의 보좌이며, 땅은 하나님의 발등상이라고 합니다. 우선 하늘이나 땅이나 하나님이 지은 피조물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맹세란 가장 먼저 그것을 지키고자 하는 성실성을 보장해야 하기에 영원토록 변함없는 것에 대고 하는 것이 상례입니다. 땅과 하늘 또한 하나님의 섭리 아래에 있어 언제든 당신의 뜻이라면 천지가 개벽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 네 머리로도 말라고 하는데 인간이 그 머리카락을 하나라도 희거나 검게 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결혼식에서 흔히 하는 머리가 파뿌리 될 때까지 헤어지지 않겠다는 서약은 늙어 죽을 때까지 서로 헌신하겠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대로라면 순식간에 머리가 희어질 수도 있는데 자칫 그 이후는 헤어져도 된다는 서약이 될 수 있습니다. 물론 예수님이 그런 식의 어휘상의 유희(遊戱)를 한 것은 아닙니다.
맹세란 한 마디로 장래에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일이 맞고 옳으니 무슨 일이 있어도 그렇게 하겠다는 뜻입니다. 요컨대 인간의 생각이 옳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맹세를 할 때에 갖는 바로 그런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지적한 것입니다. 세상만사를 주관하는 이는 따로 있는데도 인간이 먼 장래의 일까지 스스로 확정짓지 말라는 것입니다. 인간이 미리 마음대로 판단하고 계획하여 추진하려하지 말고 항상 하나님이 그 일을 어떻게 주관하고 계시는지 또 하나님의 뜻이 어디 있는지 먼저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 뜻 안에서 하는 맹세는 해도 됩니다. 단 그 맹세를 지킬 수 있는 힘도 오직 하나님께만 의탁한다면 말입니다. 신자라면 하나님의 뜻 안에서 절대로 거짓 증거 하지 않고 혹시라도 개인적으로 손해나 핍박이 따를지라도 진리만 증거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지켜달라고 기도하면서 법원의 선서를 해야 합니다. 또 국기에 대한 맹세도 한 나라의 국민으로서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는 한 국가에 충성해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기에 해도 되는 것입니다.
인류 역사에 손꼽히는 모든 영웅들 심지어 나찌의 히틀러도 사실은 유토피아의 건설을 꿈꾸었습니다. 또 인간의 사상만으로 따져서 가장 옳고 이상적인 제도는 공산주의였습니다. 그러나 모두 실패했습니다. 하나님을 배제한 채 인간만의 생각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 생각이 틀렸다는 뜻이 아니라 우주만물을 다스리는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단 한 번도 겸비하게 물어 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본문 식으로 말하자면 인간 스스로 판단하여 실천하기로 다짐하면서 하나님이 아닌 것에다 대고 맹세를 했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인간의 양심과 정의감에다 대고 맹세했습니다. 연약하고 부패했고 수시로 변하는 인간의 양심이 그 맹세를 지켜낼 수 있는 힘을 주는 것도 아니요 심지어 그 맹세를 보장할 근거는 더더욱 되지 못합니다.
인간의 사상과 계획은 반드시 하나님 앞에서 선해야 합니다. 아니 무엇보다도 그분으로부터 오는 생각이어야 합니다. 범사를 주관하는 그분의 뜻과 상관이 없으면 인간 생각의 옳고 그름을 떠나 그 일이 이뤄지지 않을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하나님 당신을 배제해서 건방지다고 들어 주시지 않겠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과 상관없으므로 악이 됩니다. 또 다시 인간의 생각자체가 악하거나 나쁘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없으면 선이 타락해 악으로 변하는 것이 아니라 절대 선이신 하나님이 없으므로 선 자체가 처음부터 실종된 것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인간이 선한 동기에서 출발하여 의로운 목표를 세워도 악의 세력에 의해 지배당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악으로 흐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알기 쉽게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예수님을 따를 때에 모든 계명을 다 지키고 생명을 바칠 수 있는 것처럼 섣불리 자신하여 스스로 맹세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정말 그럴 작정이면 단순히 예만 하면 됩니다. 베드로가 생명을 걸고 스승을 지키겠다고 나서자 예수님은 사탄아 물러가라고 야단쳤습니다. 베드로가 사탄이 아니라 오직 인간적 생각만 앞세우고 예수님의 뜻은 전혀 반영되어 있지 않으니 바로 그것이 사탄에게 이용당한 것이라고 지적한 것입니다. 실제로 예수님이 잡히시기 전날 밤에 한 베드로의 맹세는 완전히 사단의 노리개가 되어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 세 번이나 어기게 되었지 않습니까?
예수님은 베드로의 두 번 맹세가 있기 전에 이미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 지나는 것은 악으로 좇아 나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에게 헛맹세를 발하지 말라고 미리 교육을 시켰습니다. 마치 수제자인양 설쳤던 그가 사실은 이미 제자 훈련 받은 것조차 제대로 지키지 못했습니다. 그가 악하거나 머리가 나빠서가 아닙니다. 단 5분 앞의 일도 모르는 인간이 앞날을 자기 뜻대로 하려고 설쳤고, 그것도 하나님 당신이신 예수님이 이미 말씀하신 것을 예를 하지 않고 뒤집으려 했기 때문입니다.
신자더러 장래 일에 대해 예와 아니오 둘만 하라고 한 또 다른 뜻은 이 세상을 다스리는 이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허락을 받은 사단뿐이라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신자의 모든 장래 일은 하나님이 인도하든지 아니면 사단이 훼방하든지 둘 중 하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자로선 하나님의 일이라고 확신하면 당연히 믿음으로 예만 하면 되고 그렇지 않으면, 즉 그 일에 아무리 봐도 하나님이 없다고 판단되면 단호하게 아니오 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순종은 사람과 세상과 죄악과 사단에 대한 거역입니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인간사 특별히 신자의 삶은 단 한순간도 빠지지 않고 오직 이 두 가지로만 이뤄집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하나님에게 제가 이 일을 못 이뤄내면, 실제로는 하나님이 다 이루시는데도, 제 목숨을 걸겠습니다라고 맹세하는 것이 과연 가당한 일일까요? 그 반대로 사단에게 그러는 것은 더더욱 웃기는 일 아닌가요?
그런데 실제로 그런 일들을 수많은 신자들이 아무 의식 없이 자주 행하고 있으니 큰 일 아닙니까? 가장 대표적 예로 기도할 때에 제가 이런 저런 일을 하겠으니 하나님도 이렇게 저렇게 해 주세요라고 하지 않습니까? 자기가 하나님 앞에 맹세하는 것은 둘째 치고 하나님더러 자기 앞에서 맹세하라고 합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들어서 예라고 대답하는 행위입니다. 또 사단의 말임을 분별하여 아니오라고 냉정하게 거절하는 작업입니다. 아니 기도뿐 아니라 신자의 모든 믿음의 싸움이 그러합니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신자들은 하나님더러 예 아니면 아니오 둘 중 하나를, 그것도 한시라도 빨리 결정하여 시행하라고 욱박지르는 것이 잘 하는 짓인 양 착각하고 있습니다. 또 그 답을 빨리 듣기 위해 모든 치성과 열심을 다 동원합니다. 그 가운데는 당연히 인간적 의로움, 세상적 선행, 종교적 경건 다 포함시켜서 말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신자가 믿음이 좋은 신자로 교회 안팎에서 칭송을 받습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악이라고 했는데도....
6/1/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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