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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수와 그리스도를 넘어서

마가복음 허태수 목사............... 조회 수 2161 추천 수 0 2012.04.13 17:3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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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막6:1-6 
설교자 : 허태수 목사 
참고 : 춘천성암교회 http://sungamch.net 

'목수'와 '그리스도'를 넘어서
막6:1-6
2009.11.22

금요일 저녁에 스위스로 시집간 큰딸이 딸을 낳아 가지고 남편과 시아버지와 함께 춘천에 왔습니다. 이미 여러분이 아시는 것처럼 딸의 남자는 목수입니다. 물론 요즘은 육아와 가사 노동을 하느라 잠시 목수 일을 미뤄 두고 있지만, 장차 사위는 춘천에다가도 제가 살 집 하나를 땅만 구하면 지어 주겠다고 합니다.

그래서 말입니다. 오늘은 성경에 나오는 목수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막6:3에 고향으로 돌아온 청년 예수를 보고 동네 사람들이 하는 말이 그것입니다.

"이 사람은 그 목수가 아닌가? 그는 마리아의 아들이고,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이 아닌가? 또 그 누이들은 모두 우리와 같이 여기에 살고 있지 않은가?"

이 구절의 핵심은 "이 사람은 목수다"입니다. 그 다음에 나오는, 마리아의 아들이니, 누구누구의 형이니 하는 말들은 '목수'라는 단어를 설명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이 예수님을 대했을 때, 맨 먼저 떠올린 것은 목수라는 그의 직업이었습니다. 목수라는 직업, 요즘도 썩 나아지지는 않았지만, 당시대에는 존경받는 직업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동네 사람들은 예수가 가르치고 기적을 일으킨다는 말을 믿기가 어려웠던 것입니다. 이런 연유로 보아 실제 예수님은 목수였던 게 분명합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성서를 읽으면서 예수님이 목수였다는 사실을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다. 상징적인 의미정도로만 생각을 합니다.  

왜 이렇게 '목수'였었다는 것을 가볍게 여기게 되었을까요?
우선 한국어로 번역을 하는 이들이 예수님이 '목수'라는 사실을 꺼려했던 거 같습니다. 본래 헬라어 성서로 본다면, '이 사람은 목수요, 마리아의 아들이요'이런 식으로 시작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사람은 마리아의 아들 목수요'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마리아의 아들이 되는 것이고, 목수라는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게 취급하게 됩니다.
우리만 그런 게 아니라 초대 교회도 예수의 직업이 목수라는 것을 밝히기를 꺼려했습니다. 마가복음에는 '목수'라고 하지만, 마태복음으로 가면 '목수의 아들(13:55)'로, 누가복음에는 '요셉의 아들(4:22)'로 바뀝니다. 그렇게 함으로 예수님의 직업을 피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서 가운데 가장 먼저 기록된 마가복음은 '목수'라고 했습니다. 마태의 기록을 따른다고 하더라도 '목수의 아들'이라는 말은 예수님이 목수였다는 확실한 증거이기도 합니다. 당시 직업은 대물림을 했거든요.

고향 사람들이 예수를 보고 '목수'라고 했다는 것은, 형식적으로 목수라는 직업을 갖고 있었던 게 아니라, 실제로 자기 몫을 하는 알려진 목수였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사람들에게 손을 얹어 병을 고쳐 주는 것을 보고, 어떻게 그가 '그 손으로' 그런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느냐고 묻습니다. 굳이 그의 손을 언급하는 것이 특이하지 않습니까? 그들이 기억하는 예수님의 손은 성직자의 거룩한 손이 아니라 일하는 투박한 손이었던 것입니다.

자, 오늘 우리가 왜 이렇게 예수의 노동행위 즉, 목수로 살았던 삶을 집중하느냐 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상상을 걷어 버리자는 뜻이 있습니다. 우리의 상상 속에 예수님의 손은 부드럽고 가늘고 긴, 평생 노동은 해본적도 없는 것 같은, 근육 없는 어깨와 팔뚝을 가진 예수님을 상상했고 실제 그림도 그렇게 그려왔습니다. 그런데 이제 우리는 오늘 본문을 이해함과 동시에 그런 상상을 버려야 합니다. 예수님은 건강한 노동자의 손을 가진 분이어야 하는 겁니다. 손에 못이 박히기 이전에 이미 굳은살이 박여 있는 손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영광의 그리스도는 알지만 '목수 예수'는 낯설어 합니다. 예수의 손에 난 못 자국을 생각하면서 그 십자가 사랑으로 자기 죄를 씻기는 바라면서, '목수' 예수의 투박한 손에 박인 그 굳은살은 생각지 않습니다. 왜 그렇게 예수를 상상해야 하는지 아십니까? 아무래도 우리의 소원을 들어주려면 굳은 살 박인 투박한 손 보다는, 가늘고 긴, 부드럽고 섬세한 손이 더 능력있어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손이 더 신뢰가 가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출세한 인생들이 지닌 손은 '목수'의 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고운 손', '험한 일을 하지 않는 손'을 힘과 능력의 상징으로 취급하여 왔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따라서 말입니다. 이래서 점점 교회는 부의 축적을 신앙의 목표로 하는 것이고, 신분과 삶을 상승시키는 기제로 믿음을 해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직접 손으로 노동을 하며 살았던 예수를 애써 외면하려는 것입니다. 이러는 한, 우리는 진정으로 예수를 알지 못하게 됩니다. 상상속의 예수이기 때문입니다.

얄궂게도, 오늘날의 이런 현상은 예수님 당시의 고향 사람들과는 정반대의 행위입니다. 저들은 예수가 '목수'로만 보여서 문제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반대로 '목수'라는 사실을 알지 못해서, 예수를 영광의 그리스도로만 알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를 바로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목수'예수에 대한 고정관념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알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그들에게 말했다고 합니다.
"예언자는 고향과 친척과 자기 집 밖에서는 존경을 받지 않는 법이 없다"고 말이죠. 말이 조금 꼬여 있지만, 고향과 친척과 자기 집에서는 존경을 받지 못하지만, 밖으로 나가면 존경을 받는 다는 말입니다. 이 말은 '목수'로만 자신을 보는 이들에 대한 답답한 심정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고향에서 '기적을 일으키지 않았다'고 합니다. '일으킬 수 없다'고 한 대목을 눈여겨  보시길 바랍니다. 사람을 대할 때 가능성에서 보지 못하는 곳에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 다는 뜻입니다. 지금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교회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그러셨으니 우리야 말해 무엇 하겠습니까?

예수의 고향사람들이 예수님을 대한 이런 방식을 두고 바울은 '육신을 따라'보는 것이라고 했습니다(고전1:26). 바울은 고린도교회 사람들이 부르심을 받았을 때, '육신을 따라서'는 신통한 사람이 없었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여러분이나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과거에 참으로 변변치 못한 학력, 권력, 가문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육신의 기준으로 볼 때 우리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을 당시는 패배자요 병든 자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하나님이 고린도교회 사람들을 부른 기준이 세상적인 기준과는 전혀 다른 기준이었다고 말합니다. '이 세상의 기준'으로 볼 때는 어리석고, 약하고, 비천하고, 멸시받는 것들, 곧 아무것도 아닌 것들에 지나지 않았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새로운 가능성을 보고 택하셨던 것입니다(1:27-29). 바울은 이와 같이 '육신의 기준을 따라서'사람을 평가하는 것과 정 반대되는 것을 두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은 자기 자신을 포함하여 모든 사람을 새로운 가능성 속에서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고후 5:17절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 안에서 사람을 새로운 가능성으로 보지 못한다면 우리역시 '목수'만 알고 예수를 몰랐던 예수님의 고향사람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또 반대로 '목수'는 안보이고 '영광의 그리스도'만 보게 된다면 그 또한 예수를 바로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두 경우는 결국 '육신의 기준을 따라'사는 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누구도, 어떤 신앙공동체도 바울의 고백(고후5:17)에 이르지 못합니다.      
          
육신의 기준들을 벗어나지 않으면 새로워 지지 않습니다. 그런 공동체나 사람에게서는 별로 기대할 게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산다면, 부정적인 이미지와, 사람을 둘러싼 조건들에서 벗어나, 새로운 가능성 속에서 보고, 그들에게 새로운 기대를 건다면 필경 놀라운 일들이 일어날 것입니다.

오늘 설교는, 이제 우리 모두 '목수'에게서 '그리스도'를 보는 사람들이 되자는 겁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예수만 알지 말고 '목수'예수도 알자는 것입니다. 우리교회가 그러자는 것이고, 우리 성도들이 그러자는 것입니다.

오늘은 사실 금년의 마지막 주일이기도 합니다. 교회 회기가 오늘로 끝나기 때문입니다. 목사로써 2010년을 위해 기도할 때 오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오늘 말씀의 가르침을 따라 새로운 직분자들을 세우고 2010년의 신앙생활을 시작하게 될 것입니다. 제발 '고향에서는 기적을 일으키지 않았다'는 말씀을  벗어나 수 없는 하늘의 기적을 경험하는 해가 되길 소망합니다. 우리의 판단 기준을 '세상에'두지 않고 '하나님 안에'두고 사나면 틀림없이 그렇게 될 것입니다. 교회를 세우느라 애쓴 성도 여러분에게 지난 한 해를 감사합니다. 아울러 2010년을 기대합니다. 우리를 인도 하실 하나님의 복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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