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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 출처 : | http://cafe.daum.net/pg-sori/Ao37/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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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
당신을 선생님이라고 부를 수 있게 해주셔서 참으로 고맙습니다 . 그렇습니다 . 제가 당신을 선생님이라고 부르도록 해주셨습니다 . "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택했다 " 고 말씀하신 것을 기억합니다 . 옳으신 말씀입니다 . (감히 선생님 말씀에 대하여 '옳다' 고 말하는 것을 용서해 주십시오 . 시비를 판단해서 그렇게 말하는 것이 아님은 선생님께서 아실 터입니다 .) 제가 무엇을 했다면 그것은 선생님께서 하신 일이요 제가 무엇을 하지 않았다면 또한 선생님께서 하시지 않은 것입니다 . 저보다 먼저 선생님이 계시지 않았다면 저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몸입니다 .
저 혼자로는 무슨 선행을 할 능력도 없지만 따라서 어떤 악행을 저지를 실력도 없습니다 . 제가 여태껏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해서 ,스스로 선과 악을 가려내어 악을 피하고 선을 취하는 일에 나름대로 노력을 기울여왔습니다 . 물론 지난날의 애씀을 후회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 제가 성공적으로 악을 피하고 선을 취할 때마다 선생님은 흐릿해지고 그 대신 제가 또렷해짐으로써 , 제가 진정으로 가야 할 길에서 오히려 더욱 멀어져왔음을 이제 겨우 눈치채기에 이르렀습니다 .
저는 " 나는 망해야 하고 당신이 흥해야 한다 " 는 세례자 요한의 고백을 그동안 위대한 예언자의 고백으로만 알았습니다 . 똑같은 말이 제 입에서도 나와야 한다는 사실을 , 제 '입'이 아니라 '온몸'에서 나와야 한다는 사실을 , 이제야 어렴풋이 짐작합니다 . 아아 , 이렇게 된 것 또한 제가 아니라 선생님께서 하신 일입이다 . 그동안 제 몸을 통해서 이루어진 일이 있다면 모두가 선생님께서 이루신 일이었습니다 . 재가 저지른 잘못으로 아픔을 겪으신 분도 선생님이셨고 제가 지은 선행으로 기뻐하시며 저로 하여금 그 공을 가로채게 하신 분도 선생님이셨습니다 . 선생님 말씀하셨듯이 , 저는 포도나무 가지요 그러기에 포도나무이신 선생님을 떠나서는 진실로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
선생님께서 숨을 내쉬지 않으시면 제가 어찌 숨을 들이쉴 수 있으며 선생님께서 숨을 들이쉬지 않으시면 제가 어찌 숨을 내쉴 수 있겠습니까 ? 저는 밥을 먹을 대에도 숨을 쉬고 글 쓸 때도 숨을 쉬고 잠 잘 대도 숨을 쉬는데 , 그런데 그 '숨'은 제가 제 맘대로 할 수 있는 제 것이 아니라 제가 지금 선생님이라는 호칭으로 불러 모시는 당신 것입니다 .이 사실 하나만 보아도 저는 당신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닌 그런 존재임을 알 수 있습니다 . 실로 저는 당신 아니면 무아(無我)인 존재요 당신이 계시기에 또한 무아(無我)인 그런 존재 아닌 존재입니다 . 선생님 , 당신과 저의 관계를 무슨 말로 서술할는지 모르겠습니다 . 그냥 지금은 , 당신이 모든 것의 모든 것이요 저는 당신의 그림자 같은 것임을 이처럼 서툰 언어로 중얼거리고 있을 따름입니다 .
선생님 , 저는 당신을 모릅니다 . 제가 당신을 당신을 안다는 것은 제 손톱이 저를 안다는 것과 같은 말이요 빗물이 하늘을 안다는 것과 같은 말인데 , 어찌 감히 제가 당신을 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
선생님 , 제가 당신을 모른다는 말은 제가 저를 모른다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 그 까닭은 제 손톱과 제가 동떨어진 개별체(個別體)가 아니고 빗물과 하늘이 서로 단절되어 있지 않듯이 선생님과 저는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한 몸이기 때문입니다 . 언젠가 제가 , "오늘도 저와 동행해주십시오" 하고 기도했을 때 선생님께서는 아주 도렷하개 대꾸해 주셨지요 . "나는 한 순간도 너와 동행하지 않은 적이 없었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 그 한 마디 말씀으로 제가 얼마다 큰 안심(安心)과 기쁨을 얻었는지는 선생님께서 아십니다 .
그러기에 선생님 , 저는 당신을 모른다고 할 수 없습니다 . 제가 있어서 제 손톱이 있고 하늘이 있어서 빗물이 있듯이 , 선생님이 계셔서 제가 여기 이렇게 있거늘 , 어떻게 당신을 모른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
저는 당신께서 저에게 주신 약속울 그 동안 기억해왔습니다 . 언제부터 그 약속 말슴이 제 가슴에 물결을 일으켰는지 , 그것은 기억나지 않습니다 . 제가 기억하고 있는 당신의 약속이란 ,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와 함께 있겠다" 는 말씀입니다 . 저는 그 말씀을 "내가 너 죽는 날까지 너와 함께 있겠다" 는 말씀으로 새겨서 들었습니다 . 제 목숨이 끊어지는 그날이 바로 저에게는 세상 끝날이니까요 .
당신의 약속은 일방적인 것입니다 . 저와 의논해서 합의한 약속이 아니라 , 아무 조건없이 그냥 당신께서 주신 것입니다 . 그러니 저에게는 그 약속에 대하여 , 그것을 성사시키거나 아니면 파기시킬 아무런 권한도 능력도 자격도 없습니다 . 오직 당신께만 그 약속을 지키거나 깨뜨릴 권한과 능력과 자격이 있습니다 . 물론 저는 당신의 약속을 무시하거나 아니면 거부할 수 있습니다 . 그러나 , 그래도 , 당신은 약속을 무시하거나 거부하는 저와 함께 계십니다 . 당신은 제가 무시함으로꺼 무시되는 분이 아니십니다 . 제가 거절함으로써 거절되거나 제가 부인함으로써 바뀌는 것은 오직 저에게만 이루어지는 가현실(假現實)입니다 . 제가 아무리 눈을 감아도 태양은 눈부시게 밝고 , 스스로 눈을 감아 어둠 속에 헤매는 제 어깨 위로 그 빛을 쏟아 붓습니다 . 아아 , 저는 "너와 함께 있겠다"는 당신의 약속을 벗어나 , 당신과 함께 있지 않은 때와 곳으로 갈 수 없는 몸입니다 . 옛 시인의 말대로 , 제가 음부에 내려가 그 밑바닥네 자리를 깔지라도 당신은 거기 저와 함께 계십니다 . 이것은 저의 운명이면서 또한 당신의 움명입니다 . 제가 당신께로부터 떨어져 나오려해도 덜어져 나올 수 없음을 알았을 대 사실 제 인생길은 더 나아갈 곳이 없게 되었습니다 .
그러나 , 그런 줄 알면서도 , 선생님 , 아직 저는 갈 길이 먼 것을 또한 잘 알고 있습니다 . 제 곁에 계시는 당신의 현존에 대한 인식이 아직도 제 몸의 세포 한 알 한 알에 배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 간디의 말로 , 선생님과 제가 서로 떨어질 수 없는 관계임을 아는 저의 지식이 아직 제 머리에서 가슴으로 손발로 내려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 개울이 바다에 들어가 바다로 되기에는 일정한 세월이 필요하듯 , 저에게도 시간이 필요하겠지요 . 그런 줄 알고 있기에 저는 다만 그 순간을 기다리고 있을 따름입니다 . 저는 아무 할 일도 없고 할 수 있는 일도 없으며 사실인즉 하고 있는 일도 없습니다 . 개울이 스스로 바다를 향해 흘러가는게 아니라 바다가 다함없는 힘으로 , 모든 것을 받아 안는 그 사랑의 힘으로 , 개울을 끌어드리고 있는 것임을 알았기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 언젠가 선생님께서 저에게 허공 가운데 들려주신 말씀처럼 과연 저는 '낫싱(nothing)'입니다 . 아무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닌 것도 아닙니다 .
저는 "너 있는 곳에 함께 있겠다"는 당신의 약속이 깨어지거나 취소되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러하리라는 것을 믿습니다 . 한 때 예수라는 이름으로 사람들 가운데 나타내시어 스스로 만든 죄의 굴레에 얽매인 자들에게 하느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법을 가르치셨고 한 때는 석가모니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몸을 나투시어 온갖 고통과 번뇌에서 해방되는 길을 가르치신 당신께서 우리에게 지키지 않을 약속을 하셨으리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 .
선생님 , 금방 제가 한 말에 어리둥절하거나 아니면 화를 낼 사람들이 있으리라는걸 잘 알고 있습니다 . 감히 예수와 석가를 동일시하는 거냐 고 , 이쪽 동네 사람들와 저쪽 동네 사람들이 동시에 일어나 저를 꾸짖을는지 모르겟습니다 . 그래도 어쩔 수 없습니다 . 선생님 , 저에게 당신은 이미 무명(無名)의 존재십니다 . 어떵 이름으로도 가두거나 제한할 수 없는 분이십니다 . 노자(老子)도 일찍이 도(道)는 무명(無名)이니 , 그 어던 것하고도 분리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거니와 , 지금 제 속에 계시며 저를 품고 계시는 당신은 더 이상 '예수'도 아니요 '석가'도 아니십니다 . 그러면서 또한 당신은 모든 것이 되십니다 .
밤늦은 시간에 술 냄새 풍기면서 저를 찾아와 벙어리에 소경에 불신(不信)으로 가득 찬 저의 진면목을 보여주신 당신을 저는 잊을 수 없습니다 . 쓸쓸한 유리창 독방 구석 구겨진 군용담요 위에서 보이지 않는 모습으로 저를 맞아주시며 웃으시던 당신을 또한 잊을 수 없습니다 .
복음서에 기록된 당신의 행적과 말씀을 , 그것은 나의 발자취요 형상(image)일 뿐이라고 , 그것을 나와 혼동하지말라고 , 그렇게 당신은 저를 일깨워 주셨습니다 . 복음서를 읽으면서 (또는 읽느라고) 지금 이 순간 네 곁에 (네 속에) 있는 나를 만나지 못한다면 그것은 곰의 발자국을 들여다보면서 (또는 들여다보느라고) 자기 곁에 서 있는 곰을 알아보지 못하는 사냥꾼과 다를 바가 없다고 , 그렇게 일러주셨습니다 .
산에 정상이 하나 있을 뿐이듯이 , 저에게는 선생님도 당신 한 분뿐이십니다 . 저에게 당신은 예수라는 이름으로 짧은 세월 지상에 머물러 하늘의 도(道)를 가르치신 분이요 석가모니라는 이름으로 해탈의 도를 가르치신 분이십니다 . 두 이름 말고도 당신은 더 많은 이름과 모습으로 우리 가운데 계시겠습니다만 제가 미처 모를 따름입니다 . 그러기에 선생님 , 이제 당신은 저에게 거 이상 '예수' 도 아니요 '석가모니' 도 아닙니다 . 제가 시방 당신을 만나고 있는 장소가 그 이름들을 넘어선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
어떤 사람이 그렇다면 너는 더 이상 기독교인이 아니라고 , 그렇게 말할는지 모르겠습니다 , 더는 그의 주장에 반박하지 않을 것입니다 . 차라리 그의 말을 동조하며 , 그렇다고 , 나는 기독교라는 알에서 부화(孵化)되어 가없는 허공을 날고 싶다고 말하겠습니다 . 이제 더 이상 제가 기독교인인지 아닌지 , 목사인지 아닌지 , 그런 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 저에게는 다만 당신 한 분 , 아직은 '선생님' 이라는 칭호로 불러 모십니다만 언제고 때가 되면 '형제' 로 또는 '벗' 으로 부르게 될 당신 한 분만이 문제라면 문제요 해답이라면 해답입니다 . 세상이 저를 무엇으로 규정짓느냐는 제가 간섭할 일도 아니며 관심할 일 도 아닙니다 .
벌써 어떤 사람이 저를 이단(異端)이라고 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 제가 절에 가서 당신 얘기를 햇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지요 . 저는 웃으면서 그런 이유 때문이라면 이단 정도가 아니라 삼사오단이 되어도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 교권을 잡은 자들로부터 하느님을 모독한 자라는 누명을 쓰고 끝내 십자가에 처형된 당신의 모습 앞에서 제가 무엇을 망설이며 두려워하겠습니까 ?
선생님 , 제가 마지막으로 담임 목사직을 벗으면서 , 한국 감리교회가 나보다 작아졌다고 , 내 몸이 교회보다 커져서 더이상 교회라는 옷을 입을 수가 없다고 , 사람들에게 말한 것은 진심이었습니다 . 병아리가 달걀보다 큰 것은 달걀을 깨고 세상밖으로 나왔기 때문이겠지요 .
그러나 선생님 , 여기서 다시 한 번 반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 이 모두가 선생님이 하신 일이었습니다 .저는 아무 한 일이 없습니다 . 저는 정말 아무것고 아닙니다 . 앞으로 세월이 흐를수록 저는 더욱 아무것도 아닐 것입니다 . 그렇게 되는 것만이 아직 남아 잇는 저의 소원입니다 .
젊은 시절 , 저는 성자(聖者)가 되고 싶었습니다 . 이왕 한 생애 살다가는 거라면 , 모든 사람의 존경과 사랑을 받는 성자로 살다가 가고 샆었습니다 . 그래서 성인들릐 전기(前記)를 읽었습니다 . 제가 그들의 전기를 읽으면서 알게 된 것은 성인들마다 제각기 다른 모양 , 다른 색깔로 다르게 살았다는 사실이었습니다 . 그것은 저에게 너무나도 큰 위안이 되었습니다 . 왜냐하면 저 또한 제 모양 제 색깔로 살면서 성인이 될 수 있을 테니까요 . 저는 그렇게 다양한 삶을 살아간 이들의 공통점이 무엇이지를 생각해보았습니다 . 그리고 발전한 것은 , 그들이 제 맘대로 살기를 포기하고 하느님께 모든 것을 바쳤다는 사실이었습니다 .
그래서 저도 당신께 저를 바쳤습니다 . 아아 , 그런데도 저는 아직 성자가 아닙니다 . 성자는 커녕 그 근처에도 못 갔습니다 . 그 까닭은 , 제가 저를 하느님께 바쳤다고 생각 또는 말만 햇지 사실은 여전히 제 손으로 움켜 잡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
선생님 , 지금은 성자 되겠다는 마음을 모두 비웠습니다 . 왜냐하면 '성인'이라는 타이틀은 세상 사람들한테 있지 그 이름으로 불리우는 사람한테 있는 것이 아님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 정말 제가 '무엇'으로 되느냐는 더 이상 저에게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저의 문제는 어떻게 하면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되느냐―입니다 . 그것이야말로 저에게는 참된 자아현실입니다 . 본디 '아무것고 아님'이 저의 '자아'이기 때문입니다 .
어느 날 , 한 미국인이 쓴 책을 읽는 순간 , 속된 표현으로 제 머리에 전등불이 켜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 < 당신이 어디를 가든 거기에 당신이 있다(Wherever You Go There Are) > 는 제목이었지요 , 저에게는 그 말이 "네가 어디를 가든지 거기에 내가 있다"는 당신 말씀의 다른 표현으로 들렸습니다 .
그러면서 제가 어디를 가든 거기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 그것은 저였습니다 .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저의 몸이었습니다 . 거기에다가 저의 느낌 , 생각 , 판단 , 행위를 보태면 『금강경』에서 말하는 저의 오온(五蘊)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
그 뒤로 저는 제 몸을 자세히 보기 시작했지요 . 얼마 지나지 않아서 저는 제 몸에 바깥으로는 안으로든 경계(境界)라는 게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게 되었습니다 . 다르게 말하면 , 제 몸이 소우주(小宇宙)가 아니라 그대로 우주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 그 무렵 , 데이빗 호킨스가 다가와 한 인간의 몸에 인류의 경험으로 알게 된 모든 정보가 들어 있음을 일깨워주었지요 . 선생님 , 돌아다보면 , 이 모두가 당신께서 저에게 귀띔해주신 것이었습니다 .
당신은 저에게 노자 , 장자 , 공자 , 석가를 읽게 하셨고 그들의 말과 행실 속에서 미소짓고 계신 당신을 보도록 허락하셨습니다 . 저에게는 제가 만난 모든 사람 , 모든 경험이 당신께로 저를 이끌어가는 길이요 이정표였습니다 . 다만 , 그것이 그렇다는 걸 너무나도 오래 모르고 살아왔던 것입니다 .
그렇습니다 . 제가 어디를 가든 거기에 제 몸이 있었습니다 . 제 몸이 아니라 우주가 있었습니다 . 모르는 것이 없는 지혜가 , 지식이 , 거기에 있었습니다 , 다시 말해서 , 거기에 당신이 계셨습니다 . 하늘로 올라가 하늘이 되신 당신께서 제가 어디를 가든 거기에 계셨습니다 . 응신불(應身彿)인 석가모니를 벗고 법신불(法身彿)인 진여(眞茹)로 돌아간 당신이 삼라한 만상 속에 미소짓고 계셨습니다. 비로소, 지극히 작은 소자에게 물 한 그릇 대접하는 것이 왜 당신을 보살피는 것인지, 조금 짐작하게 되었습니다. 저의 생각, 말, 행동이 모두가 당신께 향한 생각이요 말이며 행동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어디를, 무엇을, 누구를 향하든 제 앞에는 당신만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 이유로 제가 만일 누구를 등지고 돌아선다면 그것 또한 바로 당신을 등지고 돌아서는 것입니다. 그런 줄 알면서도 제게는 여전히 만나고 싶지않은 사람들이 있고 만나면 안 될 것 같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제가 아직 갈 길이 많이 남아 있는 못난 제자임을 증명하는 것이겠지요.
옳습니다. 선생님. 제가 어디를 가든, 세상 끝날까지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는 당신의 약속에 의하여, 거기에는 당신이 계십니다. 그리고, 제가 어디를 가든 거기에는 우주인 제 몸이 있습니다. 포도나무인 당신이 함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당신입니다.
서울 어느 지하철에서 술에 취한 사십대 남자로 제 앞에 나타나셨던 당신을 기억합니다. 대낮이었지요. 당신은 낮술에 취한 부랑자의 모습 이었습니다. 당신 곁에 앉았던 중년부인이 치근거리는 당신에게 하얗게 뜬 눈길을 던지고 일어서서 다른 곳으로 갔습니다. 그때부터 당신은 눈을 감고 제 바로 맞은편에 앉아 얼굴을 실룩거리며 온갖 표정을 짓기 시작했지요. 그때까지만 해도 당신은 저에게 그냥 좀 불쾌하면서도 재미있기도 한 구경거리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한참 바라보고 있을 때 당신이 갑자기 눈을 떠서 저를 노려보셨습니다. 저는 깜짝 놀랐지요. 무안해서 얼른 고개를 숙이는데, 당신이 말씀하셨습니다.
"어때? 재미 있느냐?"
제가 무슨 말로 대답할는지 모르고 있는데 당신이 말씀을 계속하셨지요.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야. 나는 만들지 못할 '표정'이 없다. 온갖 인간의 온갖 얼굴이 다 내가 지어내는 것들이지. 방금 나를 흘겨보고 저쪽에 가서 새침하게 서 있는 저년 얼굴도 내 얼굴이요 아까부터 무슨 도사나 되는 듯이 같잖게 속으로 웃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는 네놈 얼굴도 바로 내 얼굴이다!"
그 순간 저는 '사람'의 얼굴을 보았다고 생각됩니다. 지구라는 작은 별에서 대략 60억개쯤 되는 얼굴로 동시에 60억개쯤 되는 표정을 짓고있는 '사람'의 모습이 천수관음(千手觀音)의 이미지와 함게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것 같았습니다.
선생님, 그날 당신이 바로 다음 역에서 내리셨는지 아니면 제가 다음 역에서 내렸었는지 그것도 아니면 당신과 제가 그렇게 마주앉은 상태로 몇 정거장을 더 갔는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습니다. 제 머리 속에는 다만, "온갖 인간의 온갖 얼굴이 다 내가 지어내는 것들"이라는 당신의 한 마디 말씀만 남아 있고, 당신의 모습은 도무지 간데가 없습니다.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도 아마 그렇게 당신을 알아보는 순간 당신 모습을 놓쳤던 것이겠지요. 그렇습니다. 당신은 제게 말씀 한 마디만 던져주시고, 저한테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셨습니다. 아니지요. 장천하어천하(裝天下於天下)라, 바로 제 속에 들어오시어 저의 모습으로 당신 모습을 감추셨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평범이 비범이다, 특별한 것에서 특별한 것을 찾지 말고 평범한 것에서 특별한 것을 보아라. 제상(諸相) 곧 비상(非相)임을 보면 그 자리에서 여래(如來)인 나를 보리라."
선생님, 제가 어떻게 해야 당신의 참모습을 볼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해야 십자가에 못박히고 있는 당신과 함께, 자기 몸을 십자가에 못박고 있는 당신을 볼 수 있을까요? 제가 무슨 눈을 떠야 '예수'라는 또는 '석가'라는 얼굴에 가리워져 있는 당신의 나머지 얼굴을 마저 볼 수 있겠습니까?
알고 있습니다. 거기는 제 발로 걸어서 갈 수 없는 경지임을! 제가 무슨 초인적 노력을 해도, 저 자신의 힘만으로는 열 수 없는 문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선생님, 저는 다만 이렇게 앉아 있을 뿐입니다. 고요히 앉아 터오르는 먼동을 기다리듯이 언어도단(言語道斷)의 자리에 피어나는 당신의 모습 그러니까 저의 참모습을 그리워할 따름입니다.
그러나 선생님, 선생님게서는 저에게 끊임없이 움직이라고, 톱으로 나무를 자르든지 숲길을 걷든지 손님에게 차를 대접하든지 책을 읽든지 대나무를 구워 단소를 만들든지 텃밭을 가꾸든지 먼길에 지친 나그네로 석양 빛에 물들든지, 아무튼 무엇인가를 하라고, 무엇인가를 하면서 고요히 앉아 있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예, 그리 하겠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생활 속에 선정(腺定)을 시도해보겠습니다. 아아, 그러나 어찌 제가 그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아닙니다. 저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몸입니다. 제가 만일 무엇인가를 한다면 그것은 제가 아니라 당신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이점을 저로 하여금 언제나 유념(有念)토록 도와주십시오. 그러면 저에게 아무 공(功)이 없음을 제가 스스로 알 것입니다. 아울러, 공(功)이 없거늘 또한 어찌 과(過)가 있겠습니까? 저는, 당신 앞에서, 선행은 말할 것 없고 악행도 지을 수 없는 '무(無)'입니다. 이렇게 말씀드리고 있는 저는 누구입니까? 지금 누가 누구에게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까? 누가 제 눈으로 사물을 보며 누가 제 손으로 글을 쓰고 있는 것입니까? 지금 제 머리로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은 누구며 제 어개로 통증을 느끼고 있는 것은 누구입니까?
선생님, 저는 저를 모릅니다. 당신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찌 제가 저를 "모른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제가 어찌 당신을 "모른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베드로는 당신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했습니다만, 그건 그가 스스로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한 말 임을 당신께서 잘 아실 것입니다. 그 사람은 변화산 꼭대기에서도 그러지 않았던가요? 당신은 그래서, 그가 당신을 세 번 모른다고 하기 전에 이미 그를 용납하시지 않았습니까?
선생님, 이쯤에서 저의 두서없는 말을 거두어야 하겠습니다. 드리고 싶은 말슴이야 아직도 많이 남아 있습니다만 오늘은 이만 하겠습니다. 제가 무슨 말씀을 드린들, 선생님께서 저를 아시는 만큼이야 제 속을 털어놓을 수 있겠습니까? 어림도 없는 일이지요. 다만 저에게 중요한 것은 선생님께 제 생각과 느낌을 말씀드린다는 사실, 이렇게 선생님과 가느다란 끈으로 연결을 짓고 있다는 사실뿐입니다.
그렇습니다. 삼체개공(三體皆空)이라, 주는 나도 없고 받는 너도 없고 주고 받는 물건 또한 없습니다. 있는 것은 오직 주고 받는 사랑의 행위, 다만 사랑 그 자체가 있을 따름이지요. 선생님 말씀하신 대로, 천지가 없어져도 하느님의 말씀 곧"서로 사랑하라"는 명령만은 남을 것 입니다. 그리고 그 명령이 남는 한, 저처럼 모자라고 둔하고 어리석고 어두운 인간 또한 사라지지 않겠지요. 몾다라고 둔하고 어리석고 어두운 인간 없이 누구를 가르치고 보살피며 깨달음으로 이끌어 가시겠습니까?
이제 정말 자리에서 일어날 시간이 되었습니다. 아침 7시 20분, 부천의 한 교회에서 제 시간에 설교를 하려면 지금 기차를 타러 가야 합니다.
(이현주/이 글은 '세계의 신학'57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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