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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의 시각으로 문제를 바라보라

창세기 yecheol............... 조회 수 2583 추천 수 0 2012.04.30 22:5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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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창45:1-14 
설교자 : 윤은철 목사 
참고 :  

요셉의 시각으로 문제를 바라보라

45: 1-14

 

요셉은 꿈을 꾸는 사람이었습니다. 꿈을 꾸고 그것을 마음에 간직한 것이 아니라 말로 선포했습니다. 가족들에게 자신의 꿈을 담대히 이야기했는데 이것은 특별히 형제들에게 많은 상처를 주었습니다. 그 꿈들이 만약에 단순한 성공을 말하는 것이라면 형제들이 그렇게 격렬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는 항상 자신이 꾼 꿈의 주인공이었고 부모와 형제들은 엑스트라였습니다. 더구나 형제들 중 11번 째 되는 동생에게 무릎을 꿇고 절을 한다는 것은 형들에게는 거의 치욕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요셉은 형들의 미움을 받아 애굽에 팔려가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가서는 안 되는 감옥까지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죄수가 된 요셉은 그곳에서 꿈을 해석하는 능력을 길렀습니다. 전에는 자신이 스스로 꿈을 꾸는 사람이었지만 감옥에서 남의 꿈을 해석하는 능력을 소유하게 된 것입니다. 이어서 마침내 왕의 꿈을 해석하여 당시에 가장 강력한 나라였던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왕의 꿈대로 전 세계가 극심한 기근에 시달리는 때에 요셉의 형제들은 양식을 구하기 위해 애굽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요셉의 형들은 애굽의 총리가 된 요셉을 극적으로 만났습니다. 자신들이 팔았던 어린 아우 요셉이 애굽의 가장 높은 자리에 있다는 사실로 인해 그들은 큰 충격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자신들이 요셉에게 저질렀던 부끄러운 일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자신의 형들에게 관용을 베풉니다. 왜냐하면 요셉은 자신의 인생을 하나님의 시각으로 볼 수 있는 힘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요셉이 자신의 인생을 어떻게 하나님의 시각으로 보았는지 함께 생각해 보며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로, 자신을 탓하는 마음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5절 말씀을 다같이 함께 읽겠습니다.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45:5)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라는 말은 이제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거나 당신들 스스로에게 노하지 마소서.”(Therefore be not grieved, nor angry with yourselves) 라는 의미입니다.


사실 요셉의 형제들이 요셉을 팔았다는 것은 엄청난 잘못입니다. 인간적으로나 도덕적으로 해서는 안 될 일을 한 것입니다. 형들이 이런 일을 했을 때에는 요셉이 힘이 없었던 어린 시절 때였습니다. 또한 일 대 십의 싸움이었습니다. 도저히 당해낼 수 없는 싸움에서 그는 형들이 하는 대로 애굽으로 팔려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요셉은 애굽의 총리가 되었고 형들은 힘없는 유목민으로서 더구나 양식이 다 떨어져가는 어려운 상황 속에 있었습니다. 형들이 전에 요셉을 마음대로 애굽에 팔아 버렸듯이 이제는 요셉이 형들을 마음대로 요리할 수 있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형들이 이 상황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은 자신의 동생이 살아 있다는 기쁨보다는 그 동생이 살아 있음으로 인해 자신들에게 다가올 보복의 두려움이었습니다. 요셉으로부터 얼마든지 요셉의 형들은 큰 벌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형들에게 그들 자신들을 자책하지 말라고 위로합니다. 당신들 스스로에게 노하거나 근심하지 말라는 것은 그들이 그 때 왜 그런 일을 했는가에 대해 자책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형제들이 요셉을 애굽으로 판 것은 분명히 용서받을 수 없는 일입니다. 어린 동생이 좀 잘난 척을 하면서 꿈에 대하여 떠들어대기로서니 그것을 빌미로 아무 힘도 없는 어린 동생을 죽일 음모를 꾸미고 결국에는 애굽에 팔아버렸다는 것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이 절대로 용서할 수 없는 일을 요셉은 오히려 형들이 그 일로 인해 스스로를 자책하지 못하도록 염려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신앙생활은 스스로를 자책하는 것이 아닙니다. 스스로를 자책하는 것은 옛사람들이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새로워진 피조물은 우선 자신에 대하여 자책할 아무 것도 발견한 것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부모가 갓 태어난 어린 생명을 보았을 때 그 어린 아기에게 무엇을 요구할 수 있겠습니까? 그 아기에게 부모를 실망시키지 말라고, 공부도 잘하고 효도를 잘하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 아기는 이 세상에 태어난 것만으로도 부모에게는 기쁨이요 사랑을 준 것입니다. 자식이 태어난 것만으로도 부모에게는 사랑할 대상이 생긴 것입니다. 베풀고 보살피고 돌볼 수 있는 대상이 생긴 것으로 인해 부모는 자식을 기뻐하는 것입니다.


하물며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들을 하늘의 양자로 삼으셨는데 인간적인 부모들이 가진 심정보다 더하면 더했지 부족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문제는 믿는 자들이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하나님 앞에 이미 자신이 용납되었고 받아들여졌음을 깨닫지 못하고 죄책감을 가지는 것입니다. 믿는 자들이 자신의 행위로 하나님 앞에서 받아들여지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잘하면 하나님이 자신에 대하여 기쁨을 가지고 대하시고 하나님께 잘못하면 분노와 책망으로 자신을 대하시는 것으로 여긴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이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무엇을 진정으로 요구하시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우리를 지으신 창조의 목적과도 일맥상통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하시기 위해서 창조하신 것입니다. 일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바로 하나님과의 사랑입니다. 이 관계가 제대로 형성이 되어 있지 않으면 하나님을 율법적으로 섬기게 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우선순위는 하나님을 아버지로서 만나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도 한 번 어쩌다 만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계속적으로 만나야 합니다. 자신이 만나고 싶은 시간에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만나고 싶은 시간에 만나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그것만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항상 만나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했을 때 제일 중요한 것은 우리들을 그리스도를 통하여 의롭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해야 하는 것입니다. 부정적인 감정보다는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아들여진 의인이라는 의식이 하나님을 온전히 만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8:1)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 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나도 나를 판단치 아니하노니 내가 자책할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나 그러나 이를 인하여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판단하실 이는 주시니라”(고전4:3~4)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니”(딤후1:7)


요셉이 형들에게 스스로 정죄하거나 자책하지 말라고 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이미 애굽의 총리로서 높은 자리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높은 의식이 형제들을 오히려 위로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 모든 것을 용서받고 새로워진 존재들인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요셉이 높여진 것과 같이 믿는 자들은 이미 그리스도와 같이 하늘 높이 높여진 자들이 된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들의 영적인 실제인 것입니다. 이것이 믿어질 때 육적으로 묶인 것들을 벗어버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는 자들에게는 정죄의식이 없고 오히려 그리스도와 같이 남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정죄보다는 자기 자신을 하늘의 충만한 복으로 받은 것처럼 여기며 살아가시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로, 먼저 앞서 인도하신 하나님을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8절 말씀을 다같이 함께 읽겠습니다.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자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로 바로의 아비를 삼으시며 그 온 집의 주를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치리자를 삼으셨나이다(45:8)


요셉은 자신이 과거에 형들로부터 쓰라린 기억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생각하기도 싫은 13년 동안의 애굽 생활도 있었습니다. 종살이에서 감옥으로 들어가 살았던 너무나 가슴 아픈 고통의 시간들이었습니다. 그러한 고난의 순간의 원인이 바로 형제들의 배신이었습니다. 요셉이 형들의 배신과 자신을 팔았다는 것을 생각하며 13년을 살았다면 그는 애굽의 총리가 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요셉은 고난의 의미를 애굽의 총리가 된 다음에 올바로 깨달았습니다. 고난이 요셉을 형제들보다 앞서 이곳으로 오게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요셉이 고난을 당했을 때에는 고통스럽고 힘들고 어려웠지만 그 순간이 애굽 왕 바로의 아비가 될 수 있는 축복을 받게 된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만약에 요셉이 꿈을 꾸었지만 그것을 마음에 담아 두었다면 그는 아버지의 품 안에서 떠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꿈을 이야기했기 때문에 형들이 시기하게 되었고 그들은 요셉을 이스마엘 대상들에게 팔아 넘겼던 것입니다. 꿈이 곧 고난의 길을 걷게 한 것입니다. 이것을 깨닫는다면 우리들이 오늘날 당하고 있는 환난이나 어려움에 대한 생각을 달리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꿈이라는 것을 알고 보면 곧 고난입니다. 꿈이 있기 때문에 연단을 당하고 고통을 당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을 말씀을 듣는 순간 큰 꿈이 생기게 됩니다. 그 꿈이 무엇입니까? 장차 하늘나라의 왕으로서 주님과 함께 그 나라를 통치하는 것입니다. 아니 이런 꿈이 너무 거창하다면 그 분의 나라에서 영원히 아들의 위치에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더구나 나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과 영원한 사랑을 나누며 살게 되었습니다. 이 꿈이 생길 때 이것을 방해하고 훼방 놓는 존재가 있습니다. 그들이 바로 사단이요 악한 영들인 것입니다.

우리들은 바로 이런 악한 존재들로 인해 우리들의 믿음을 시험받으며 우리들의 꿈을 이루어나가는 존재들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이미 결론을 다 알고 있습니다. 중간부분이 어떠하든지 간에 그 결론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승리한다는 것입니다. 중간 부분에 일어나는 부분은 어떤 상황이 전개되든지 전혀 문제가 될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승리하셨듯이 우리들도 반드시 승리할 것입니다.


우리들은 때때로 국가의 중요한 축구경기를 때로 바빠서 시간을 놓쳤기 때문에 보지 못했을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 녹화된 것을 다시 볼 수 있습니다. 대부분 이긴 경기를 다시 보게 되는데 생중계로 볼 때보다 이때에 오히려 차분하게 볼 수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미 결과를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중간 부분에 우리나라 선수들이 잘못하고 실수를 한다 할지라도 선수들을 질책하지도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겼다는 결과를 이미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은 예수님을 통해 아주 높은 곳에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을 바로의 아비로 삼으셔서 높이신 것과 같이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들이 알고 있는 결론입니다.


고난을 받는 곳은 영적으로 광야의 삶입니다. 누구든 이 광야의 삶을 통과하지 않고서는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 광야의 삶에서 배우는 것이 무엇입니까? 버리고 떠나는 것입니다. 요셉이 꿈을 가지게 전까지는 그는 아버지 야곱으로부터 특별대우를 받는 그런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요셉이 꿈을 가지게 되었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아버지의 품과 그가 살고 있었던 환경을 떠나야 했습니다. 아버지 품과 가정과 형제를 떠나는 것이 너무나 힘든 일이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 역할을 주위의 형제들에게 이 역할을 맡기신 것입니다.


우리들도 옛사람에게 속한 모든 것을 버리기 위해 광야로 가야 합니다. 이 광야에서 내게 속한 모든 불순물을 버리고 정금과 같이 정결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내 힘으로 광야를 갈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 고난을 일부로 자처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 광야의 길을 우리 힘으로 갈 수 없기에 하나님께서는 그 역할을 우리의 이웃이나 환경에 위임을 하신 것입니다. 사람이나 환경이 고난의 길을 걸어가게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하나님께서 그 일을 하신 것입니다. 이것을 바로 요셉이 깨달은 것입니다.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도다”(34:19)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119:71)


고난은 우리들을 요셉과 같이 애굽의 총리의 자리로 이끌어가는 놀라운 축복의 통로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사람을 세우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10절 말씀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당신들은 속히 아버지께로 올라가서 고하기를 아버지의 아들 요셉의 말에 하나님이 나를 애굽 전국의 주로 세우셨으니 내게로 지체말고 내려오사 아버지의 아들들과 아버지의 손자들과 아버지의 양과 소와 모든 소유가 고센 땅에 있어서 나와 가깝게 하소서”(45:9-10)


요셉은 자신의 부모와 형제들을 자신과 가까운 가장 안전하고 풍요로운 고센 땅으로 오게 합니다. 그곳에서 야곱의 자손들은 가장 어려운 때를 안전하게 지낼 수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이스라엘 자손의 수는 번창하여 애굽에서 나올 때에는 이 백만이라는 놀라운 수로 늘어났던 것입니다.


요셉이 이 때 형제들에게 원한을 품고 잘못 대해 주었더라면 그들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들은 요셉에게 형으로서 해서는 안 될 일을 하였다고 생각하면서 일생동안을 죄책감과 괴로움 속에서 살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요셉의 용서로 믿음의 자리에 온전히 서게 되었고 그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계획은 차질 없이 진행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용서는 사람을 세우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자신에 대한 용서를 할 때에 자신이 세워집니다.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고 언제나 질책하고 책망하며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자신을 결국에는 스스로 파멸시키고 말 것입니다. 아내를, 남편을, 자식을, 부모를, 이웃을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용서하면 그들이 세워져서 나중에 자신을 돕는 가장 큰 원군이 되는데 용서하지 못하고 다 너 때문이다라고 합니다. 그래서 가정이 지옥이 되는 것입니다. 가정의 식구들을 용서하고 사랑할 때 그들이 세워지게 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교회 식구들을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들을 용서하지 못할 때 공동체는 더 이상 세워질 수 없습니다. 용서할 때 믿음의 역사가 일어나는 교회로 세워집니다. 그래야 교회가 하나님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다윗을 보십시오. 다윗이 사울을 죽을 수 있는 기회가 두 번이나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를 죽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사울이 굴속에서 용변을 보고 나올 때 그의 옷자락의 끝을 벤 것을 인해 큰 죄책감을 가지고 사울에게 용서를 구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신하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내 주인 곧 주의 기름 부음 받은 자에게 이 일을 행하는 것 즉 내 손을 내밀어 그를 치는 것을 주께서 금하시나니 그는 주의 기름 부음 받은 자니라”(삼상 24:6) 내가 너를 충분히 죽일 수 있었는데도 나는 죽이지 않았다라는 그 생각자체를 다윗은 죄로 여긴 것입니다.(삼상 24:5)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있는 자리에서 성공하려고 하기 보다는 다른 곳으로 떠나려고 합니다. 여기 아니면 다른 곳이 없나 하는 식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지금 내가 있는 곳이 바로 하나님께서 나를 어떤 목적과 뜻이 있어서 보내신 것입니다. 다른 곳으로 떠나가서 새로운 환경에서 또 무엇인가 멋진 것을 해보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곳에서 얼마 가지 않아 다시 옛날로 돌아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문제는 환경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있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변화되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환경이나 다른 사람이 변화되기를 바라니 그것이 어찌 될 수가 있겠습니까?


자신이 있는 곳에 최선을 다하며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면 요셉과 같은 영광스러운 순간이 오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인생을 나의 시각에서 바로 보면 모든 것이 불만이요 불평거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오늘 나를 이곳까지 인도하신 것을 깨닫는다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될 것입니다.


요셉과 같이 하나님의 시각으로 여러분의 인생을 크게 보시기 바랍니다. 나의 좁은 인생의 시각으로 보면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깊은 뜻이 오늘 나의 삶의 현장에 있음을 깨닫고 그곳에서 하나님의 일을 묵묵히 감당하심으로 주님께 칭찬받고 존귀함을 받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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