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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본문 : | 시149: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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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 윤은철 목사 |
| 참고 : | 갈릴리교회 |
하나님의 창조에 감동하라
시 149: 1-9
지금 이 시대는 문화의 시대입니다. 노래와 연극, 드라마, 영화 등이 세상을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인터넷이 발달해서 이제는 세계 곳곳에 순식간에 문화가 들어갑니다. 문화란 무엇입니까? 문화란 혼을 극대화시킨 인간의 창조의 행위입니다. 인간의 감성을 가장 아름답게 포장하여 어떤 가상의 세계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 땅에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은 세계입니다만 인간의 정신적인 세계 속에서 마치 그것이 존재하는 것처럼 조작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영화나 드라마나 노래 연극을 통하여 이런 가상의 세계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가지고 눈물을 짓거나 기뻐하고 감동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이 지은 인간들이 하나님의 창조를 보고 감동받기를 원하시고 계십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행하신 일들을 믿고 고백하는 것을 그 사람의 의로 인정해 주신다(롬 10:9-10)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다윗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의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시8:3~4)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들은 하나님의 무엇에 감동되어 살아가야 하는지를 함께 생각해 보며 은혜 받기를 원합니다.
첫째로, 자신을 지으신 하나님을 기뻐하는 감동을 가져야 합니다.
2절 말씀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이스라엘은 자기를 만드신 분을 기뻐하며 시온의 자녀들은 자기들의 왕을 기뻐할지어다. (시 149:2)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를 만드신 분을 기뻐하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떤 역사를 가지고 있었는지 여러분들은 너무나 잘 아십니다. 원래 이스라엘 백성들은 노예백성이었습니다. 애굽에서 400년 동안 아무런 희망도 없이 살았던 민족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겼던 세월이 36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400년 동안 노예 생활을 하면서 큰 고통을 당했습니다. 그런 그들을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구원해 주셨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택하셨습니까? 그들은 노예들로서 스스로의 힘으로는 절대로 독립국가를 이룰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아무리 노력하고 애써도 결코 그들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그런 백성이었습니다. 노예 근성이 배어서 절대로 독립해서 살 수 없는 백성이라는 말씀입니다.
이런 백성을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크신 능력과 권능으로 구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구원의 과정을 스스로 계획하시고 진행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감독 연출 배우의 역할을 다 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의 구원을 위해서 단 한 방울의 피도 흘리지 않았습니다.
일제치하에서 애국 운동을 하면서 피를 흘려 죽은 애국 열사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적어도 한 나라가 해방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려 죽게 됩니까?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집트에서 해방되어 나올 때 거의 놀라우리만큼 죽은 자들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애굽의 열 가지 재앙을 내리시고 이스라엘을 바로의 손에서 구원하셨습니다. 아홉 가지 재앙은 모든 자연 재해를 동반했고 나중에 열 번째에는 애굽의 장자를 치셔서 출애굽을 하게 하셨습니다. 애굽의 군대가 이스라엘을 뒤쫓아 올 때에 하나님은 홍해를 가르셔서 홍해를 건너게 하셨습니다. 그것뿐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뒤따라오던 애굽의 막강한 군대는 모두 물속에 빠져 죽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의 구원을 위해 한 것은 하나님이 이 놀라운 일을 행하신 것을 보면서 하나님을 찬양했던 것뿐이었습니다.
“바로의 말과 병거와 마병이 함께 바다에 들어가매 여호와께서 바닷물로 그들 위에 돌이켜 흐르게 하셨으나 이스라엘 자손은 바다 가운데서 육지로 행한지라 아론의 누이 선지자 미리암이 손에 소고를 잡으매 모든 여인도 그를 따라 나오며 소고를 잡고 춤추니 미리암이 그들에게 화답하여 가로되 너희는 여호와를 찬송하라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하였더라”(출15:19~21)
여러분, 제가 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행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말씀 드리는 줄 아십니까?
바로 이스라엘의 이 찬양의 모습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원하시는 것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원하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송축하며 찬양하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죄로 말미암아 죽을 수 밖에 없었던 우리들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죄인의 형상을 입으시고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알고 보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사건이 역사적으로 하나님께서 그 큰 능력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신 것보다도 더 놀라운 기적입니다.
더구나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는 자들마다 그것을 근거로 해서 성령께서 하나님 나라의 삶을 이 땅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축복해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십자가와 성령님은 항상 함께 역사를 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십자가를 믿을 때 성령께서 그 사람의 마음속에서 영생을 주시고 변화의 삶으로 축복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은 십자가를 믿는 것입니다. 성경의 말씀과 같이 높이 들리신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을 때 그 믿는 것을 통해서 성령님께서 그 사람의 삶 속에 하늘의 백성이 되게 하시는 역사를 이루시는 것입니다.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을 기뻐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이루어 놓으신 일을 믿는 것이 그 사람의 의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하나님 앞에 한 일을 가지고 자랑하는 것을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간을 위해 놀라운 일을 행하신 것을 바라보고 기뻐하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하나님 앞에 얼마나 큰일을 했는가를 생각하며 기뻐합니다. 또 그것을 자랑합니다. 남들하고 자신이 한 일을 비교하며 다른 사람을 무시하고 조롱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를 위해 하신 일을 생각하면 인간이 아무리 하나님 앞에 큰일을 했다 하더라도 인간의 행위는 그야말로 아무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겸손해야 할 것 뿐인 것입니다.
우리들은 먼저 하나님이 행하신 놀라운 일을 보고 기뻐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가장 원하시는 것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로 아름다운 땅에 이르게 하시나니 그곳은 골짜기에든지 산지에든지 시내와 분천과 샘이 흐르고 밀과 보리의 소산지요 포도와 무화과와 석류와 감람들의 나무와 꿀의 소산지라 너의 먹는 식물의 결핍함이 없고 네게 아무 부족함이 없는 땅이며 그 땅의 돌은 철이요 산에서는 동을 캘 것이라 네가 먹어서 배불리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옥토로 네게 주셨음을 인하여 그를 찬송하리라”(신8:7~10)
우리가 해야 할 중에 가장 우선 순위는 우리가 할 수 없었던 구원의 문제를 풀어주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을 즐거워하신다는 사실에 감동해야 합니다.
4절 말씀을 다같이 함께 읽겠습니다.
“주께서 자신의 백성을 즐거워하시나니 그분께서 온유한 자를 구원으로 아름답게 하시리로다.”(시 149:4)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자신이 행하신 위대한 일을 믿고 감사하며 즐거워하는 자를 기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얼마나 기뻐하셨습니까? 그 이스라엘 백성들을 너무 사랑하셔서 애굽의 노예였지만 그들을 가나안 땅의 주인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스스로 독립하여 나라를 결코 이룰 수 없는 백성이었지만 그들을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여 그 땅의 주인이 되게 하셨습니다. 왜 가나안 땅의 주민을 다 내어 쫓으시고 이스라엘을 그 땅의 주인이 도게 하셨습니까? 자신의 백성들이 행복하고 잘 살게 하시기 위해서 입니다.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자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뇨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너의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신 33:29, 개역)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사랑하심과 같이 지금 이방인인 우리들을 얼마나 사랑하십니까? 우리들을 예수님을 통하여 새로운 피조물로 만드시고 우리로 하여금 이 땅 위에서 천상 사역을 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아직 들어가지 않았지만 이 땅 에서 천국의 일들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축복하셨습니다.
부모는 자식을 사랑합니다. 이것은 기본입니다. 아무리 자식이 잘못을 해도 부모는 내가 낳은 자식이기 때문에 사랑하고 기뻐하는 것입니다. 자식이 기뻐할 때 부모도 같이 기뻐하는 것입니다. 자식이 기쁨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항상 애쓰는 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육신의 부모의 마음이 이러한데 하나님께서 구원하신 자녀를 왜 기쁘게 하시지 않으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가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항상 기쁨으로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 16~18)
하나님의 뜻은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항상 기뻐하는 것, 범사에 감사하는 것, 사실 쉬운 것이 아닙니다. 살다 보면 좋은 일도 있고 나쁜 일도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좋은 일이 있을 때만 좋아하고 감사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가 생기거나 좋지 않은 일이 생길 때에도 기뻐할 수 있고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모습으로 당신의 자녀들이 살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들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은 백성입니다. 영적인 감옥에서 빠져 나온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작품이요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을 자들입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그 나라를 우리들에게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무엇입니까? 구원을 이미 받았으니, 하늘이 상속자가 이미 되었으니, 이미 하나님의 작품이 되었으니 하나님 나라 백성처럼 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로서 그 권세를 누리면서 살라는 것입니다. 세상의 문제 속에서 근심 걱정하면서 살지 말고 그 문제가 이미 해결된 것처럼 믿고 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삶입니다.
우리들은 많은 문제들을 가지고 있지만 그 문제들은 이미 과거에도 있었던 것들이 아닙니까? 먹고 사는 문제 때문에 우리들이 끼니를 걱정하며 내일은 어떻게 먹고 살까 하고 걱정한 때가 있었습니다만 그 문제가 여러분들을 무너뜨린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습니까? 지금까지 잘 살아 오시지 않았습니까? 걱정과 근심은 우리들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들이 죽거나 망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차라리 그 때 우리들이 믿음을 가지고 더 담대하게 살았더라면 오늘의 형편이 더 나아졌을지도 모릅니다. 어려웠을 때 담대하게 하나님을 믿고 믿음으로 살았더라면 훨씬 더 좋은 결과가 나왔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을 사랑하십니다. 기뻐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지금까지 문제가 있었지만 잘 살아온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 말씀대로 기쁘게 살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산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꼭 선한 일 좋은 일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입니까? 오히려 좋지 않은 환경 가운데, 문제가 있는 가운데 기뻐하며 감사하며 기도하며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렇게 살면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하나님 나라의 백성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을 보시고 하나님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문제를 풀어주시고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축복하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원수를 심판하는 권세를 구원받은 백성들에게 주셨음을 인하여 감동해야 합니다.
9절 말씀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기록된 심판을 그들에게 집행하게 하려 함이로다. 이런 존귀가 그분의 모든 성도에게 있도다. 너희는 주를 찬양하라.”(시 149:9)
기록된 심판을 그들에게 집행하게 한다는 것은 믿는 백성을 괴롭힌 존재들을 심판할 수 있는 특권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살아갈 때 성도들이 당한 아픔을 반드시 갚아 주십니다. 이 땅에서 받은 성도의 고난은 하늘의 면류관으로 갚아 주시지만 성도의 고난을 준 악인들은 지옥에서 이 땅에서 성도가 당하는 고통의 수 만 배로 되갚아 주시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악인들은 성도들이 고통을 당하는 것을 즐거워하며 당장에 무슨 큰 일이 날 것같이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자신이 지옥에서 받을 형벌은 전혀 생각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악인들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당장 앞만을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에스더의 이야기를 잘 아실 것입니다. 모르드개가 하만에게 엎드려 절하지 않자 이를 분해하면서 하만 장군은 자신의 권세를 이용하여 모르드개 뿐만 아니라 당시에 바벨론으로 포로 잡혀간 유다 백성 전체를 몰살시킬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모르드개의 목을 매달 장대 끝에 오히려 자신의 목이 달려 죽게 되지 않았습니까? 하만 장군이 자신이 세운 계획이 반드시 이루어질 줄 알았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유다 출신의 왕후 에스더를 사용하여 오히려 상황을 역전시켰습니다.
이스라엘 초대 왕 사울을 보십시오. 그는 자신의 사위이자 하나님의 기름 부으신 자 다윗을 죽이려고 자신의 전 생애 에너지를 쏟아 부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죽이려고 했던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고 사울은 열조와 함께 장사되지 못하고 음부에 떨어졌습니다. 음부에 떨어졌다는 것은 다른 말로 하면 지옥으로 떨어졌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그것은 곧 악인들을 심판하는 권세가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 나라에서 예수님께서 온 세상을 심판하실 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 때가 오기까지는 우리들은 이 세상에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극진히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 스스로 원수를 갚지 말고 도리어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된바, 원수 갚는 일은 내 것이니 내가 갚으리라. 주가 말하노라, 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네 원수가 주리거든 그를 먹이고 그가 목마르거든 그에게 마실 것을 주라. 그리함으로 네가 그의 머리 위에 숯불을 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도리어 선으로 악을 이기라.”(롬 12: 19-21)
원수의 머리 위에 숯불을 쌓으리라는 말씀은 원수가 자신이 한 일로 인하여 부끄러움을 당하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어떤 분은 “악인이 더 편하게 두 다리 쭉 뻗고 자고 더 잘 먹고 더 잘 살더라 하나님이 살아계시면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겠느냐?”라고 말입니다.
예, 맞습니다. 그런 일이 세상에 아주 많이 있습니다. 악인이 승리하는 것처럼 보이는 일들이 세상에는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다윗도 이런 일에 의문을 품고 하나님께 질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신 줄 아십니까?
“주 안에서 안식하고 끈기 있게 그분을 기다리라. 자기 길에서 형통한 자나 사악한 꾀를 이루는 자로 인하여 초조해하지 말지어다. 분노를 그치고 진노를 버리며 결코 악을 행하려고 초조해하지 말지어다. 악을 행하는 자들은 끊어지려니와 주를 바라는 자들은 땅을 상속하리라. 조금 있으면 사악한 자가 없어지리니 참으로 네가 그의 자리를 부지런히 살필지라도 그것이 없으리로다.”(시 37: 7-10)
여러분, 우리들은 하나님을 믿는 자들입니다. 그 분이 우리들을 얼마나 사랑하는 가를 잘 아는 자들입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엔터데인먼트(Entertainment)를 즐기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싸우시는 것을 보며 그것으로 기쁨을 삼는 것이 바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임을 믿으시고 어떠한 환경이나 어려움이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 말씀대로 기뻐하시고 감사하시며 기도로 모든 것을 맡기시며 살아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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