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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본문 : | 살전1:5-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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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 윤은철 목사 |
| 참고 : | 갈릴리교회 |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라
살전 1: 5-10
인생에 있어서 남에게 본이 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은 모든 사람들의 꿈이요 간절한 바램입니다. 부모가 자식들에게 귀감이 되거나 대통령이나 공직자들이 역사에 기록될만한 인물이 된다는 것은 모든 자들이 바라는 소망일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소아시아에서 마게도냐로 건너가, 빌립에 이어서 데살로니가에 전도한 것은, A.D. 49년, 사도 바울의 제 2차 전도여행 때였습니다. 그는 이곳에서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3주 동안에 많은 사람들을 회심시켰습니다.(행 17: 1-9) 그러나 뜻밖에 유대인들의 박해를 받으면서 사도 바울은 그 도시를 밤에 급히 떠나야 했습니다. 그 이후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도시에서 일어난 부흥으로 세워졌던 교회들이 어떻게 되었을까 염려되었습니다. 그러나 디모데가 돌아와 그곳에 교인들이 환란 가운데서도 굳건한 믿음 생활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기쁜 마음으로 이 편지를 보내게 된 것입니다.
짧은 기간 동안에 복음을 전했지만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그 지역의 모든 믿는 자들에게 귀감이 되어 본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그들이 이렇게 뛰어난 믿음을 가지고 많은 신앙인들의 본이 되었는지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로, 말이 필요 없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 8절의 말씀을 다같이 함께 읽겠습니다.
“주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마게도냐와 아가야에만 들릴 뿐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지므로 우리는 아무 말도 할 것이 없노라”(살전 1:8)
각처에 소문이 퍼지는 아무 말도 할 것이 없는 귀한 믿음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가지고 있는 믿음도 아주 귀한 믿음이었습니다만 자신이 가지고 있는 믿음과 견주어 보아도 흠이 없는 믿음을 데살로니가 교인들도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믿는 자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이 믿음을 어떻게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서 하나님의 칭찬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로이드 존스라는 영국의 유명한 목사님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존전에 서게 되리라는 것을 정말로 믿는다면 허비할 시간이 없으며 따라서 우리 앞에 놓인 가장 긴급한 문제는 우리가 어떻게 성화될 수 있는 지를 배우는 일입니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가지는 생각은 천국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람이 죽은 후에나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천국은 예수님을 믿는 순간부터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죽은 후의 천국이 아니라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예수님을 통하여 천국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17:20~21)
하나님의 나라는 지금 현재 우리들의 마음속에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금 살고 있는 이 땅에서 우리들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이야 말로 기적 중에 기적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적을 외적인 것에서 많이 찾습니다. 병이 낫거나 어떤 풀리지 않는 문제가 풀리거나 믿기지 않은 일들이 일어나게 되었을 때에 기적이 일어났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기적 중의 기적은 하나님의 말씀이 믿어지는 것입니다. 이천 년 전에 일어난 사건이 오늘 나의 삶 속에서 말씀을 통해 이루어진 것으로 믿어지는 것이 기적인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 사람에게 나타나는 표징이 무엇입니까? 성령충만의 모습인 줄 믿습니다. 성령충만의 모습을 많은 사람들이 어떤 모습일까 생각해 봅니다. 그런데 그 모습이 바로 주님 안에서 항상 기뻐하는 것이요 쉬지 말고 기도하는 것이요 범사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믿는 모습이 이런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비록 기쁜 일이 없어도 기뻐해야 합니다. 기도할 수 없는 중에 있어도 기도해야 합니다. 감사할 수 없는 상황이라 할지라도 감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이 예수님을 믿었다면 그 사람의 문제는 이미 다 해결이 된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모습은 단순히 생각만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이란 행동이 뒤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믿는다고 하면서 믿지 못하는 행동을 한다면 그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분명히 성경은 예수님의 죽으심은 단순히 그 분의 죽으심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죽음과 같은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죽으심과 그 분을 믿는 한 사람의 죽음이 십자가에서 동시에 이루어진 것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느낌으로 믿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생각으로 믿으라는 것도 아닙니다. 믿음은 그 사람의 의지로 되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로서 굳건히 붙들고 있으라는 것입니다. 느낌이 올 때 믿어진다면 그 사람은 느낌이라는 자신의 감정을 믿는 것이지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백부장의 믿음을 크게 칭찬하신 것을 잘 아실 것입니다. 백부장은 자신의 하인이 병을 고치기 위해서 예수님께 찾아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방인이 자신에게 찾아온 것을 매우 기쁘게 여기며 그 하인에게 가서 고쳐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백부장은 이렇게 예수님에게 말합니다. “백부장이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삽나이다”(마8:8) 이런 백부장의 말을 들은 예수님께서 놀라워 하시며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스라엘 중에서 이처럼 큰 믿음을 본 적이 없노니, 결코 없도다.“(마8:10) 예수님께서 놀라워하신 백부장의 믿음은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는 믿음이었습니다. 자신의 느낌을 믿으려고 했다면 그는 실패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이성으로 이해가 되어 믿으려고 했다면 역시 믿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믿음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느낌이나 생각으로 믿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믿음에 실패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 안에서 하나님을 믿으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감정적으로 느낌이 오거나 생각으로 이해가 될 때 믿으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믿음을 가지지 못하는 것입니다.
더구나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도를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다고 했습니다.(살전 1: 6) 그들은 많은 환란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그냥 믿은 것이 아니라 많은 환란 중에 믿었다는 것입니다. 좋은 환경에서 믿은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많은 환란에서 믿게 되었다는 것은 그들의 감정이나 생각을 초월해서 믿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환란은 말씀을 그 사람의 느낌이나 생각으로 믿지 못하게 합니다. 환란이 왔는데 느낌이 좋을 수 없습니다. 생각으로 이해가 될 수가 없습니다. 이 환란을 뛰어넘어 그들은 자신의 느낌이나 생각을 더 이상 신뢰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을 붙들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소문난 믿음이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에게 있어서 가장 큰 자랑거리가 가문의 영광이나 명예나 돈이나 자식이 되지 않으시기를 바랍니다. 그것으로 인해 그 사람이 하나님 앞에 칭찬을 받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칭찬을 받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백부장과 같이 굳건히 믿는 믿음입니다. 그것도 환란 가운데 말씀을 받아들이는 믿음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만 섬겨야 합니다.
9절 말씀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저희가 우리에 대하여 스스로 고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너희 가운데 들어간 것과 너희가 어떻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사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며”(살전 1:9)
데살로니가는 로마에 있어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지역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왕래하는 도시였습니다. 따라서 퇴패와 환락의 도시였습니다. 우상을 섬기는 것은 너무나 흔한 일상생활이었습니다. 이런 지역에서 그들은 자신들이 섬기는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이런 예를 들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태국에 가 보면 그곳은 불교가 국교이기 때문에 그곳에서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상당한 핍박을 감수해야 합니다. 회교 국가에서 예수님을 믿는 것은 더욱 더 어렵습니다. 마찬가지로 이미 데살로니가 도시에는 우상들이 만연해 있었습니다. 우상을 섬기는 것이 그 도시의 문화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우상들과 함께 살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런 곳에서 예수님을 믿는 것은 때로는 가족에게 멀어질 수도 있을 것이요 심지어 직장에서도 불이익을 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상황 가운데서 모든 우상을 담대히 버리고 하나님만을 섬기며 살았다는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자신의 것을 담대히 버렸을 때 그 소문이 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자신이 한 때 우상처럼 섬겼던 유대인들의 율법을 버림으로 그의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었습니다. 사도 베드로도 자신의 집과 직업을 버리고 예수님을 좇았기 때문에 그를 하나님께서 유명하게 하셨습니다.
구약에서 요셉을 보십시오. 그는 자신의 집에서 아버지의 사랑을 받으며 자랐다면 애굽의 총리가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 야곱과 그 가정의 품을 떠나 종으로 팔려 애굽으로 갔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를 애굽의 총리가 되는 축복을 주신 것입니다. 그의 소문이 온 세상에 나서 마침내 요셉을 버렸던 형제들에게도 들리게 되어 그들은 곡식을 얻기 위해 애굽으로 달려갔던 것입니다.
이번에 연회에서 12명의 젊은 목사님들이 안수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한기형 감독님이 말씀을 증거하시게 되었습니다. 그 분은 자신이 젊은 목사 시절에 있었던 일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목사님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목사의 길을 걸어가지 않고 학교 교사도 했고 비즈니스도 했습니다. 그런데 하는 일마다 잘 안되어서 마침내 세상적인 길을 버리고 신학교에 들어가 목사가 되었습니다. 목회 초년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교회에 어려움은 계속 찾아오게 되었고 그나마 자신이 벌어놓은 돈마저 다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다 끝이 났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마지막 돈을 헌금으로 하나님께 다 드리면서 이렇게 기도했다고 합니다. “하나님, 돈이 그렇게 좋으십니까? 내 돈이 그렇게 탐이 나십니까? 이 돈 받으셔요. 이것이 저의 마지막 있는 돈 전부입니다. 그러니 이 돈 받으시고 이제 내가 의지하는 것이 아무 것도 없는 것을 아시겠사오니 하나님께서 이 젊은 목사의 길을 열어주세요.” 그 때 그렇게 믿음으로 하나님만을 선택하고 살겠다고 결심했는데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고 축복하셨다고 고백하셨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우상을 버려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의지하는 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그것을 버리지 않으면 그것이 여러분의 우상이 되는 것입니다. 돈이든, 재능이든, 사람이든, 명예이든, 권세이든 그것을 여러분들이 하나님보다 더 의지한다면 그것이 곧 우상이 되는 것입니다. 그 우상을 버리고 사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길 때 그 사람의 믿음의 소문이 나는 것입니다. 세상의 우상을 믿음으로 끊고 하나님을 선택하여 섬길 때 믿음의 소문이 나는 훌륭한 성도가 되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려야 합니다.
10절 말씀을 다같이 함께 읽겠습니다.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심을 기다린다고 말하니 이는 장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시니라”(살전 1:10)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예수님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심을 기다리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재림신앙을 가지는 것이 주위의 믿는 자들의 본이 되는 모습입니다.
재림 신앙을 이야기하면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단들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인사가 “마라나타”였습니다. ‘마라나타’란 “아멘,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라는 의미입니다. 초대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의 재림을 사모하며 인사를 한 것입니다. 현대 그리스도인들은 재림 신앙을 잃어 버렸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재림 신앙을 이단들에게 다 빼앗겨 버린 것입니다.
재림 신앙은 단순히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실 것을 사모하는 것이 아닙니다. 재림 신앙은 자신이 이 땅에서 하늘의 영역 속에 이미 살고 있다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소망하는 모습인 것입니다.
에베소서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천상에 함께 앉히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인자하심 가운데 우리를 향한 그의 은혜의 지극히 풍요함을 오는 시대들에 보여 주시려 함이니라.”(엡2:6~7)
이 말씀이 참으로 놀랍습니다. 우리들은 이 땅에 있지만 하나님은 우리들이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늘의 영역에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앉히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죽은 후에도 하늘의 영역 속에 있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이미 우리들은 하늘의 영역 속에 있게 하셨습니다. 이것을 믿는 믿음이 재림 신앙인 것입니다. 재림 신앙의 척도는 믿는 사람이 자신이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하늘의 영역 속에 있다고 믿는 믿음에 의해 결정되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장차 하늘로부터 강림하신다는 것이 그냥 간단하게 되는 것이겠습니까?
“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저가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마24:29~31)
예수님의 재림은 그냥 그 분이 이 세상에 좋은 모습으로 오시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초림하셨을 때에는 한 아기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세상 죄를 짊어지시는 한 마리의 어린 양’으로 오셨습니다. 그런데 재림으로 오시는 예수님은 믿는 자들을 장래 하나님의 노하심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오시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세상의 심판주로 오시는 것입니다. 세상의 여태까지 일어났던 천재지변보다도 더 큰 우주적인 대 변혁 속에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그런 자리에 오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 날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는 것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엄청난 사건이라 정말 감이 오지를 않습니다. 그런데 이 사건이 앞으로 일어날 것을 믿기 전에 먼저 우리들이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사건으로 인해 믿는 자들은 이미 하늘의 영역 속에 있음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이것도 믿지 못하면서 어떻게 마지막 때에 일어날 일들을 감히 믿는다고 고백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 하나님께서 믿는 사람을 위해 이미 해 놓으신 일도 믿지 못하는데 앞으로 일어날 심판의 날에 되어질 일을 어찌 믿을 수 있겠습니까?
하늘의 영역 속에서 지금 현재를 살고 있는 사람만이 미래의 심판에서 건짐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의 사건은 믿음으로 하늘의 영역 속에 있다고 믿으며 살고 있는 성도들에게 말할 수 없는 축복의 사건이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장차 하나님의 노하심에서 건지심을 받는 축복의 사건이 되는 것입니다.
재림 신앙은 이단들이 가져야 하는 신앙이 아니라 오늘 이 마지막 때를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진정으로 가져야 할 신앙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의 믿음이 소문난 믿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환란가운데 흔들리지 않는 아무 할 말이 없는 완전한 신앙과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만 섬기는 신앙과 재림 신앙으로 무장하셔서 이 지역의 모든 믿는 자들의 본이 되는 신앙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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