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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아브라함이 소음인인 5가지 이유

정치건강취미 박영준 한의사............... 조회 수 2996 추천 수 0 2012.05.13 08:0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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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www.hanbangnews.pe.kr/ 
아브라함이 소음인인 5가지 이유

 

첫째 이유; 사려깊음

 

행동가적인 소양인과 달리 물기운의 소음인은 정적이고 사려깊은 내면의 소유자다. 앞뒤 안가리고 일만 벌려놓고 보는 소양인 기질과는 상극인 것이다. 철두철미한 계산과 혹시라 도 생길 위험을 염두에 두고 빠져나갈 구멍을 마련해 놓고 일을 시작한다. 재산증식에서도 위험부담이 큰 '주식투자형'보다는 안전방인 '은행저축형'이다. 솔직담백하고 충동적인 소 양인과 태양인이 볼 때, 소음인은 너무 계산적인 꽁생원으로 비친다. "사내 대장부가 저렇 게 속이 좁아서야 어찌 큰일을 하나?" 실제로 소음인은 친구간의 모임에서도 식사비나 커 피값을 미적미적대며 상대에게 떠맡기거나, 기껏해야 더치패이를 하는 경우가 많다. 사려깊 은 심사숙고형의 소음인 성격은 때로 중요한 결정을 급히 해야 하는 상황에서 주저주저하 고 버벅(?)대다가 기회를 놓치기 쉽다. '버스 떠난 뒤에 손 흔드는 격이요, 뒷북 치는 꼴' 인 것이다.

소심한 의기소침형의 소음인에게는 물기운이 많은 반면, 이에 균형을 잡아줄 불기운의 부족이 문제다. 이들은 삶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과 모험과 투자, 헌신의 말씀을 붙들고 삶 의 균형을 잡아야 한다. 때로 현실에서 분명한 손해와 위험이 따르더라도 믿음으로 도전하 는 진취적 자세가 필요하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창세기12:1) 소음인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난다는 것 은 미지의 세계에 대한 모험이요, 죽음까지 각오한 결단이다. 더군다나 삶의 터전이 확고 한 75세의 나이에 새로운 삶을 출발하라니, 아닌 밤중에 홍두깨도 아니고! 그러나 이 말씀 이야말로 아브라함의 기질을 잘 아시는 하나님의 지혜요 구속의 경륜에서 나온 것이다. 말 씀에 대한 아브라함의 주저대는 듯한 순종! 우리는 여기서 소음인 마인드를 가진 그의 내 면을 읽을 수 있다. 하나님의 명령은 <갈대아 우르> 지방에서 아버지 '데라'와 함께 우상 판매업을 하는 아브라함에게 최초로 임했다. 그는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라'는 명령을 100% 순종하지 못하고, 결국 아버지 데라와 조카 롯을 데리고 떠난다. '본토'인 갈대아 우 르 지방은 떠났을지 몰라도 '친척 아비집'은 못 떠난 것이다. 아브라함의 소심한 성격은 후에 <하란>에서 아버지 '데라'가 죽자 그곳에 그냥 주저앉는 것으로 나타난다.

 

창세기12:1 말씀은 이곳에서 다시 부르신 하나님의 두번째 명령이다. 그는 이번에도 홀 로 떠나지 못하고 조카 롯을 데리고 떠난다. 결국 롯은 그의 신앙생활에서 뗄 수 없는 올 무만 된다. 소음인 마인드를 가진 아브라함에게 미지의 세계를 홀로 떠난다는 것은 엄청난 두려움을 안겨준다. 누군가와 함께 가야 안심이 되는 것이다. 이때 잘 모르는 사람과 가느 니 차라리 혼자 갈 터이고, 가게 되면 반드시 자기가 완전히 신뢰할 수 있는 사람, 즉 가 족이나 친척, 죽마고우쯤 되는 친구를 데려갈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이들에겐 하나님 한 분 만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실제적인 믿음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뭔가 인간적으로 믿을만한 구석이 있을 경우에만 '아멘'이 나오고, 순종도 할 수 있는 것이다.


둘째 이유; 평화를 좋아함

 

틈만 나면 싸우고 논쟁하기를 좋아하는 소양인과 달리 소음인에게는 평화를 갈구하는 마 음이 있다.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주소서!"라고 기도한 '성 프란치스코'와 같은 '평화의 사도'쯤 될 것이다. 때로 자기의 소유를 잃는 한이 있더라도 평화를 사랑한다. '돈은 잃어도 사람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이들의 인생철학인 것이다. 물론 계산적이고 이 기적이 되기 쉬운 소음인들이 성령의 열매를 맺고 내면의 성숙을 이룬 경우에 해당하리라. 이들은 어디를 가나 화합을 잘 하고, 고매한 인격자로 존경을 받는다. 화목케 하는 자요, 평화의 창조자라 할 수 있다. 예수믿고도 사기치고 뻔뻔한 수많은 크리스찬과 달리, 소음인 은 예수믿기 전과 후에도 가장 크리스찬 다운 삶을 살아간다. 그러나 논쟁을 싫어하다 보 니 의사표현이 불분명할 때도 많다. 할 얘기를 못하고 속으로 끙끙 앓으며 마음고생을 한 다. 그러나 겉으로는 '좋은게 좋다'는 식이다. '물에 술탄 듯 술에 물탄 듯' 구렁이 담 넘 어가듯 술렁술렁 넘어간다. '양보의 미덕'은 때로 '중단없는 타협(?)'이 되고 신앙의 절대 성, 순수성을 잃기도 한다. 술자리에 가면 '뭐 굳이 불신자하고 부딪칠거 있나? 맥주 한 잔 쯤은 괜찭겠지!'하고 속으로 생각한다.

 

아브라함과 롯이 가나안 땅에 정착한 후, 목축을 하는 그들의 양(羊)이 많아지자 땅문제 가 심각하게 대두되었다. 땅은 좁고 소유가 많아지자 목자들끼리 서로 '니땅 내땅'하며 편 가르기 싸움을 한 것이다(창세기13:6-9). 아브라함이 볼 때 불신자들 앞에서 믿는자들끼리 싸우는 것은 전혀 은혜롭지 못한 장면이다. 목축업자들에게 '물 좋은 목초지'는, 농사꾼들 이 '토지'에 대해 갖는 애착 그 이상이다. 이때 아브라함은 삼촌의 권위를 내세우지 않고 양보의 미덕을 발휘했다. "네가 좌(左)하면 나는 우(右)하고 네가 우하면 내가 좌하리라" 조카에게 먼저 선택권을 준 것이다. 이에 조카 롯은 최소한의 사양도 없이 얼른 소알성 (城)의 <소돔과 고모라> 땅을 택하여 한평생 잘 먹고 잘 살았다. 그에게는 한번쯤 "삼촌 먼저, 조카 먼저"하며 양보하는 미덕을 찾아볼 수 없었던 것이다.

 

양보하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괘씸한 조카롯을 보는 아브라함의 타는 속을 누가 알랴! "괘씸한 놈 같으니라구, 애비없는 자식 이날 이때껏 키워놨더니, 배은망덕도 유분수지! 이 렇게 은혜를 배반해? 아이고 딸자식 하나없는 내 팔자야" 결국 이런 그의 마음은 하나님께 로 화살을 돌리게 된다. '하나님, 왜 잘 살고 있는 나를 이곳 타향만리로 이끌어내어 생고 생을 시키십니까? 자식하나 얻는다는 말에 귀가 솔깃해서 속아넘어간 내가 잘못이지...' 물론 두려움이 많은 소음인이니까 하늘을 향해 삿대질하며 큰소리는 못칠테고, 속으로 중 얼거릴거다. 잘못 했다가는 벼락이라도 맞을지 모르니까! 이런 아브라함의 마음 속을 하나 님이 모르실 리 만무하다. 롯이 떠나고 외롭게 된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먼저 찾아와 새 롭게 약속의 말씀과 비젼을 주신다.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 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창세기13:14,15)


셋째 이유; 신실함

 

소음인은 그야말로 신실하고 믿을 수 있는 친구가 많다. 말만 앞서고 행동이 따르지 못 하는 소양인이나 태양인과는 달리, 소음인은 대체로 말도 함부로 하지 않는 편이고 자기가 한 말에 대해 끝까지 책임을 진다. 약속을 하면 잊지 않기 위해 꼼꼼하게 수첩에 메모를 하고, 30분쯤 전에 미리 나가서 기다린다. 이들은 상황이 좋으나 어려우나 변함이 없다. '시종여일(始終如一)' 그 자체다. 교회에서 매달 첫주에 드리는 십일조 헌금도 매번 밀리지 않고 꾸준히 드리는 사람도 소음인에게 많다. 이는 소음인들이 규칙과 정해진 틀 안에 자 기를 맞추고, 그 가운데에서 안정감을 찾는 '물'의 속성을 타고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기 적인 십일조 생활에는 강한 반면 '특별 건축헌금' 등 갑작스런 큰 액수의 헌금에는 약하기 쉽다. 갑작스런 헌금지출이 계산적이고 인색한 소음인들에게 그달 생활비 부족에 대한 불 안감을 주기 때문이다. 어쨋든 이들은 조용하고 묵묵히 자기가 맡은 직분을 해낸다. 대체로 앞에 나서서 조명을 받는 일보다는 뒤에서 소양인이나 태양인들이 관심갖지 않는 일을 이 름도 없이 빛도 없이 충성스럽게 해낸다.

 

소음인은 위급하고 압박받는 상황에서도 가장 잘 견디고 숨은 지혜와 리더쉽을 발휘한 다. 평소에는 소양인과 태양인들이 앞장 서서 큰일을 해내지만, 위급한 상황에 처하면 이들 은 허둥지둥대다가 일을 그르치기 쉽다. 또한 제풀에 지쳐 낙심해버린다. 반면 소음인은 평 소 눈에 띄지도 않을 뿐더러 연약해 보이지만 곤경에 처할 때 오히려 침착하게 맡은바 일 을 감당해낸다. 말그대로 '외유내강(外柔內剛)'인 것이다. 이들이 운전을 할 경우 극심한 교통체증 속에서도 동요함없이 유유히 라디오를 듣거나 영어카세트를 들을 수 있지만, 소 양인과 태양인처럼 갑갑함을 견디지 못하는 체질은 한숨만 푹푹 쉬어 대며 애궂은 경음기 만 빵빵거리며 울려댈 것이다.

 

창세기 14장에 보면 위기의 상황에서 나타나는 소음인 아브라함의 지략과 리더쉽이 잘 보인다. 당시의 국제정세는 조그만 소도시 국가들이 '도토리 키재기'식으로 번성했다. 그 중 엘람왕 '그돌라오멜'이 맹주 역할을 하며 주변국가로부터 조공을 받았다. 이때 12년간 엘람왕을 섬기던 주변국가들이 소돔왕 '베라'를 중심으로 반역을 꾀한다. 결국 엘람왕 연 합군과 소돔왕 연합군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는데, '싯딤 골짜기 전투'에서 소돔측 군대가 대패한다. 이때 아브라함의 조카 롯도 포로로 잡혀간다. 이 소식을 들은 아브라함은 집에 서 길리고 연습한 318명의 특공대를 조직해 대규모의 엘람왕 군대를 무찌른다. 밤에 기습 적으로 치고 빠지는 '게릴라 전술'을 써가며 승리를 거두는 아브라함! 그야말로 평소에는 보기 힘든 지도자적 자질인 것이다.

 

소음인의 신실함은 역사의 전환점에서 시류를 잘 타고 출세가도를 달리는 '아첨꾼', '속 빈 강정'식의 부정적 측면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군사독재의 칼날이 서슬할 때에도 소음인 은 시국(時局)보다는 맡은 바 직장과 가정을 돌본다. 소양인이 독재타도를 외치는 데모부 대의 행동대원이 되고, 태양인이 그 흐름을 리드하는 정신적 지주가 될 때, 그러다가 양심 수, 정치범 등으로 감옥행을 할 때도, 소음인의 신실함이란 '악법도 법이다'라고 하는, 소 양인과 태양인들이 볼 때는 '궤변'에 불과한 말을 뱉으며 독재정부에 변함없는 충성을 다 하는 것이다. 고려말 조선이 들어설 때 우리는 역사의 두갈래 길에 선 인물을 만난다. 두 왕조,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는 태양인 '정몽주'! "이몸이 죽고 죽어 일백번 고쳐죽어 백 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향한 일편단심이야 변할 줄이 있으랴" 바람기운의 고 결함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없는 삶을 살겠다'는, 혹은 남들이 다 변심해도 홀로 '독야청청'하리라는 결심을 굳게한다. 반면 이를 회유하는 태종 이방원의 시조도 여러사람 의 입에 회자된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혀져 백년 같이 누리리라"

 

이외에도 조선초기 세조의 쿠데타적(?) 사건 앞에 단종을 따르며 사육신, 생육신 반열에 선 태양인이 있었던 반면, 변함없는 신실함(?)으로 세조를 섬긴 신숙주, 정인지와 같은 무 리도 있었다. 문민정부가 출범하며 곳곳에서 '개혁과 사정'의 바람이 불었다. 말로는 '성 역없는 사정'을 부르짖었지만 '사정없는 성역(?)'은 엄연히 존재했다. 국민들은 저마다 '사정의 칼날'과 재산공개가 필요한 곳은 '법조계'와 '종교계'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문제없는 사람들의 모임이 없겠지만 교회 또한 예외가 아니다. 교회 내의 문제는 대체로 대대적인 건축역사 속에서 이루어진다. 지은지 3년도 안되는 교회를 부수고 새롭게 짓고자 몇십억의 건축헌금을 하는 동안, 그 교회의 가난한 집사는 전세금 5백만원이 없어서 온가 족과 함께 지하 단칸방에서 자살을 했다. "하나님, 죄송합니다. 먼저갑니다"라는 유서를 써놓고! 교회내에서 공공연히 이루어지는 비리를 보며 소양인과 태양인들은 속이 뒤집힌 다. 이들은 목사님이라고 해서 비판의 대상에서 제외시키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들의 의로 운 요구가 관철되지 않을 경우 미련없이 교회를 옮긴다. 그러다가 모든 교회가 다 썩었다 고 느껴지면 무교회적 기독교인이 되거나 신앙을 헌신짝처럼 버린다. 이런 상황에서도 소 음인들은 역시 변함없는 충성을 다할 것이다. 목사님 입장에서는 이런 소음인들이야말로 가장 신실하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이다. 이것이 거시적 안목이 부족한 소음인들의 '소아적 (小我的) 신실함'의 본질인 것이다.


넷째 이유; 수동적

물은 일정한 형태가 없이 담기는 그릇에 따라 모양이 변한다. 둥그런 그릇에 담기면 둥 그렇게, 네모난 그릇에 담기면 네모낳게! 물기운의 소음인은 스스로의 능동적이고 주체적 인 판단보다는 누군가에 의해 이끌려지고 주어진 여건에 안주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다 가 잘 되지 않을 경우 쉽게 남에게 책임을 전가시킨다. 모임에서도 먼저 마이크를 잡고 18 번 노래를 부르기보다 누군가 시키면 마지못해 나온다. 그러면서도 미리 노래방에서 자신 의 18번을 연마하며 비장의 칼날을 간다. 흔히 말하는 '완벽한 내숭'인 것이다. 소음인 남 성은 가정에서도 남편의 권위를 주장하기보다 아내에게 쥐어살기도 하고 끔직히도 아내를 사랑한다. 애처가 플러스 공처가다. 귀가시간이 늦으면 반드시 집에서 홀로 자신을 기다리 는 아내에게 전화를 하고, 별일 없으면 집으로 곧장 향한다.

 

그야말로 '아내의, 아내에 의 한, 아내를 위한' 남편인 것이다. 그러나 아내를 향한 극진한 사랑과 함께 소음인의 소심하 고 불안정하고 의심이 많은 성격이 왜곡되어 나타날 경우 심각한 '의처증'환자가 되기도 한다. 늘 아내의 일거수 일투족을 살피고 직장에서도 집에 수시로 전화를 건다. "아까 12시 55분에서 1시 사이에 어디갔었어? 솔직하게 말해!" 이런 남편과 사는 아내는 피가 마르는 고통을 맛본다.

 

창세기 16장에 보면 아브라함이 가정에서의 주도권을 거의 아내에게 준 듯한 인상을 받 는다. 하나님이 아들을 주신다는 약속이 이루어질 기미가 안보이자, 그의 아내 '사라'는 당시의 풍습을 좇아 첩을 얻어 후사를 잇자고 남편에게 제안을 한다. 아브라함은 귀가 솔 깃해져 아내의 말을 듣는다(창16:2). 여기까지는 별문제가 없었지만 첩을 얻는다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사라는 자신의 여종 '하갈'을 남편의 첩으로 주어 학수고대하던 아 들 '이스마엘'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문제의 발단은 배가 불러 오면서 하갈의 교만도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간 데서 비롯되었다. 사라의 몸종에 불과하던 하갈은 이제 주인 을 노골적으로 무시했다. "흥, 아이도 못낳는게 여자야?" 그리고는 빨래와 설겆이를 주인에게 떠맡기고, 안방을 차지하며 태교에 좋다는 바하의 음악만 듣고 있는게 아닌가? 이쯤 되면 속이 뒤집히지 않을 여자가 없다. 참다못한 사라도 하갈을 학대하며 급기야 아브라함 의 집안은 '평화'가 깨진다. 복잡하게 꼬인 가정문제에서도 아브라함은 솔선해서 해결하고 자 하기보다 아내에게 모든 권한을 맡기는, 사내 대장부답지 않은 행동을 취한다. "그대의 눈에 좋은대로 그에게 행하라"(창16:6) 이에 남편까지 등에 업고 자기편으로 만든 사라는 내친 김에 하갈과 이스마엘을 쫓아버린다. 평화를 좋아하는 소음인 아브라함! 그렇다고 평 화를 위해 자신이 직접 나서서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하는 소극적인 성격의 소유자인 것이 다.


다섯째 이유; 두려움

 

물은 바람을 만나면 물결이 일고 물보라가 날리며 동요한다. 또 불을 만나면 더워서 끓 고 수증기가 되어 사라지며, 반대로 찬공기를 만나면 유동성을 잃고 꽁꽁 얼어버린다. 흐르 는 물은 흙을 만나면 흙에 흡수되거나 그 흐름이 막히고 만다. 물은 외부의 모든 요소로부 터 자신의 존재와 운명에 대해 늘 위협을 느끼며 겁먹은 눈빛으로 주위세상을 바라보며 조 심스레 제 갈길을 간다.

 

물기운을 타고난 소음인이 볼 때 세상살이란 캄캄한 밤에 으슥한 뒷골목을 지나는 것과 같다. 소음인 여성이 볼 때 남자들이란 양의 탈을 쓴 '늑대'요, 소음인 남성들이 볼 때 요 즘 여성들은 정절을 잃고 발랑 까진 '여우'들에 불과한 것이다. 두려운 세상을 향한 무의 식적인 방어로 인해 소음인은 흔히 말하는 '눈치코치'와 '육감'이 발달했고, 사람들을 있 는 모습 그대로 신뢰하지 못한다. 이로인해 신경이 늘 예민하고 세상에 대한 피해의식도 많다. 남들이 수군수군거리면 모두 나를 헐뜯는 것 같고, 신경을 안 쓰려고 마음을 먹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더욱 신경이 쓰인다. 그러다가 잠을 설치고 심하면 수면제 없이는 잠을 못이룰 정도의 불면증에 시달리기도 한다. 이들을 괴롭히는 신경성 위염, 신경불안증, 의처 증, 의부증, 대인공포증, 불면증 등의 정신과적 질환은, 타고난 물기운이 소음인에게 나쁜쪽 으로 작용한 결과다. 이들은 마음에 끊임없이 찾아오는 두려움과 불안을 극복할 말씀이 필 요하다. 세상이 빼앗을 수 없는 잔잔한 평안과 기쁨이 필요한 것이다.

 

창세기 12장에는 두려움 많은 소음인 아브라함의 모습이 잘 나타난다. 하나님 말씀에 순 종하여 가나안에 도착한 아브라함은 장막을 치고 생활의 터전을 마련했다. 그런데 예기치 않은 가뭄이 닥치자 굶어죽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그는 짐을 싸들고 애굽으 로 피신했다. 우리는 성경의 어디에도 그가 애굽으로 내려가기 위해 기도를 했거나 성령의 이끌림을 받았다는 구절을 찾아볼 수 없다. 소음인들은 어려움에 처하면 말씀이고 은혜고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는 수가 많다. 그저 현재의 어려움을 피하면 그만인 것이다.

 

애굽에 내려갔지만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소음인 아브라함이 볼 때 애굽사 람들은 까무잡잡하고 덩치도 씨름선수를 뺨치고 그야말로 '왕년에 뒷골목에서 한가닥하던' 깡패들과도 같았다. 그는 순간 자기 아내로 인해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우리라는 공포를 느 꼈다. 아브라함이 볼 때 투박한 애굽여인에 비해 자기의 아내는 너무 아름다와 자기를 죽 이고 아내를 빼앗을 줄로 안 것이다. 타고난 물기운으로 인한 '두려움'과 후천적으로 발달 한 '육감'과 '눈치코치'가 발동한 결과다. 곰곰히 생각한 후, 그는 자기 아내를 누이라 속 이는, '잔꾀'에 불과한 묘안을 짜냈다. 그러나 결국은 자기가 놓은 덫에 자기가 걸리고 만 다. 사라를 보고 첫눈에 반한 바로왕이 사라를 자신의 후궁으로 부른 것이다. 그 댓가로 가축, 약대, 나귀를 아브라함에게 주면서 말이다. 그러면 당연히 이를 사양하면서 전후사 정을 이야기 하고 아내를 보호해야할 터인데 넙죽 선물을 받고 아내를 고분고분 바로왕에 게 넘겨준다. 말그대로 '속절없는 사내'다. 이런 아브라함을 남편으로 믿고 살아온 사라의 인생이 불쌍하다. 그러나 이런 아브라함의 두려움 많은 내면을 하나님이 모르실 리 없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뒤치닥거리를 다 해주시고 빼앗겼던 아내도 찾게 해주신다. 사라로 인해 바로의 집에 큰 재앙을 내리신 것이다.

 

창세기 20장에 보면 똑같은 사건이 반복된다. 그랄 땅에 잠시 머문 아브라함. 그랄 왕 아비멜렉이 사라를 보고 한눈에 뿅(?)갔다. 그랄 땅의 살벌한 분위기를 육감으로 알아낸 아브라함은 또다시 아내를 누이라 속이고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기에만 바빴던 것이다. 아 비멜렉은 안심하고 사라를 후궁으로 맞이했다. 한번의 실수는 그렇다 칠 수 있다. 또한 12 장에서의 실수는 아브라함이 신앙생활을 시작한지 얼마 안되 믿음이 어렸기 때문에 그랬다 고 볼 수도 있다. 그런데 20장의 반복된 실수는 도대체 쉽게 이해가 안가는 구석이 많다. 22장에서 아브라함은 자기아들 이삭까지 번제로 바칠 정도의 믿음인 것을 보면 20장의 단 계에서도 상당한 신앙의 성숙을 이룬 것으로 사료된다.

 

신앙생활을 그렇게 오래 해 놓고도 두려움과 소심함을 극복못한 사람을 바라보노라면 실 로 답답한 생각이 든다. '어쩜 저렇게 지지리도 못났을까?'하며 속으로 판단하는 생각도 가질 수 있다. 만약 소양인 바울이라면 똑같은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했을까? 우리는 여기 서 소심하고 두려움 많은 소음인 아브라함과 담대한 정의의 투사 같은 소양인 바울의 기질 적 특성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하나님은 과연 담대하고 열정적인 소양인만 당신의 구원역 사에 쓰시는가? 이는 결코 그렇지 않다.

 

만약 어떤 사람의 믿음을 열정적인 헌신만으로 평가한다고 하자. 교회에서 열심히 봉사 하고 성격 또한 외향적이고 사교적인 소양인들만 믿음 좋은 사람으로 인정받을 것이다. 이 렇게 되면 다른 체질, 즉 소음인이나 태음인처럼 별로 주변머리도 없고 사교성도 없는 사 람들은 늘 아웃사이더로 겉돌면서 헤매게 된다. 그러나 만약 어떤 사람의 믿음을 순종을 잘 하는데서 찾는다면 상황이 달라진다. 이렇게 되면 순종적이고 양보를 잘 하는 순박한 천성의 소유자인 소음인이 최고의 인정을 받을 것이다. 소양인과 태양인 처럼 따지기 좋아 하고 분을 잘 내는 사람들은 때로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면 뜻을 굽히지 않고 목사님의 말 에도 전혀 꿈쩍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처럼 겉으로 드러난 한가지 단면만을 가지고 사람을 평가할 수는 없는 것이다. 사람은 외모를 보고 남을 평가하지만 하나님은 내면의 중심을 보고 우리를 평가하신다. 사람은 누구나 불완전하며 타고난 기질로 인한 연약함과 장점이 골고루 있기 마련이다. 소음인 아브라함에게 있어서는 그의 타고난 기질에서 오는 <두려 움>이라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소양인 바울이 볼 때는 "뭐, 그런 걸 가지고 두려워 하 냐? 쫌생이처럼!"하고 비웃을 지 모르지만 이게 그렇게 간단히 해결되는 문제는 아니다. 마치 소양인 바울이 여차하면 분을 내는 다혈질로서 스스로도 자신의 문제를 알지만 잘 고 쳐지지 않는 것과도 같다. 타고난 기질에서 오는 연약함은 한순간의 회개와 결심으로 쉽게 고쳐지지 않으며 완전히 치유되는 데에도 상당한 시일이 걸리기 마련이다. 그야말로 '고질 병'인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질을 잘 아시고 또한 나의 연약함과 고질병을 너무도 잘 아신다. 왜냐하면 그분이 우리를 지으신 창조주이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의 반복된 실수에 도 조금도 책망치 않으시고 감당해주시는 우리 하나님은 참으로 좋으신 하나님이시다.

 

지금까지 언급한 여러 성격은 소음인의 전형적인 특징들이다. 소음인은 법 없이도 살 정 도로 순박한 천성을 타고났다으며 자기 일을 묵묵히 감당하는 성품을 지녔다. 기질이 내향 적이어서 남의 앞에 나서거나 밖에 나 다니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으며 가정과 학교, 혹 은 직장 사이만을 시계추처럼 왔다갔다 한다. 평범한 생활인, 알뜰한 가정주부 중에는 이 런 소음인이 많다. 이들의 눈에는 돈을 불필요하게 뿌려대며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는 정 치 성향의 태양인, 태음인들이 도대체 이해되지 않는다. 그 돈으로 불쌍한 불우이웃이라도 돕는 것이 훨씬 나을 텐데 하는 것이 소음인들의 생각이다. 그래서 흔히 말하는 정치인이 나 사회 저명인사, 역사에 남는 위인들 중에는 소음인이 드물다. 그렇다고 해서 이런 사실 이 소음인이 다른 체질보다 열등하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체질에는 절대적인 우열이 없 다. 체질은 저마다 타고난 불균형으로 인해 생겨난 것이므로 거기에는 각자 보완하고 계발 해야 할 장단점만이 있을 뿐이다.

요즘같은 자기 선전의 시대, 국제화 세계화의 시대에 사는 소음인들은 자칫 자신의 체질 을 열등하게 여기며 자학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나는 왜 이렇게 소심하고 내성적일까?> 하며 잘 나가는 소양인이나 태양인 친구들을 부러워하는 것이다. 그래서 체질 개선에 관심 을 쏟으며 자신의 체질을 개조하고자 무던히 애를 쓰곤 한다. 그러나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체질은 절대 바뀔 수 없는 법이다. 소음인의 또다른 문제는 자기 기질의 장점을 보지 못하 고 남과 비교하며 자신을 한없이 왜소하게 여기는 데에 있다. 삶의 열매에는 눈에 보이는 외적인 열매와 사람의 내면에 맺히는 내적인 열매, 두 가지가 있다. 소음인이 비록 남들의 눈에 띄는 빛나는 성과는 거두지 못하더라도 내적 열매에서 만큼은 다른 기질이 감히 넘볼 수 없다. 사랑이니 온유니, 절제, 양보, 겸손과 같은 내면의 열매와 성숙한 인격은 늘 남 앞에서 으시대고 분주하게 돌아다니며 인정받기 좋아하는 소양인과 태양인들에게는 멀게만 느껴지는 내적 열매인 것이다. 그러므로 소음인은 자기 체질의 긍정적인 면을 인정하고 자 신감을 갖고 적극적으로 험난한 삶을 대처해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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