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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신앙 고백을 할 수 있는가?

마태복음 김필곤 목사............... 조회 수 2172 추천 수 0 2012.05.17 22:2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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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마16:15-16 
설교자 : 박신 목사 
참고 : http://www.nosuchjesus.com 
진정한 신앙 고백을 할 수 있는가?

가라사대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16:15,16)

본문은 예수의 제자가, 사실은 전체 인간 중에서, 역사상 처음으로 예수님의 정체성을 확인한 위대한 고백(the Great Confession)으로 불립니다. 예수님은 이 고백을 바탕으로 비로소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수난을 준비하고 또 제자들에게 당신이 십자가에 오르시고 죽을 것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이보다 먼저 제자들로부터 동일한 고백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한 밤중에 물위를 걸어오실 때에 베드로도 물 위를 걷다가 바람을 보고 빠져가는 것을 주님이 구해 배에 오르자 바람이 그쳤습니다. 그 때에 “배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께 절하며 가로되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하더라”(마14:33)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베드로 혼자가 아니라 전 제자가 그것도 절까지 하며 분명히 그런 고백을 했습니다.

그런데도 왜 이 고백보다 나중에 한 베드로의 고백을 더 중하게 여길까요? 그 차이는 기적을 보고 놀라 자기도 모르게 탄복해서 나오는 말과 그런 일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단지 예수님의 질문에 대답한 것과의 차이 때문입니다. 즉 후자의 경우는 베드로가 스스로 생각하여 마음에 완전히 수긍한 후에 한 고백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의 이런 고백들이 그 후에 진행된 일련의 사건에서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제자들이야말로 예수님을 입술로만 주여주여 하고 따른 셈입니다. 이 고백을 한 베드로부터 스승을 배반했습니다. 그의 고백에 비추어보면 스승을 배반한 것이 아니라 사실은 하나님의 아들, 아니 하나님을 배반한 것입니다.

다른 말로 베드로는 마음에 수긍을 하여 예수님을 ‘주(主)’라고 시인해 놓고는 자기가 방금한 고백의 진정한 의미를 몰랐다는 뜻입니다. 당연히 예수님이 그 고백을 바탕으로   주신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는 약속의 의미도 몰랐습니다. 실제로 이 고백 후에 귀신들린 간질 환자도 고치지 못했습니다.(마17:14-20)  

성경에서 가장 이해되지 않는 일 중의 하나는 이런 위대한 고백을 했던 베드로가 어떻게 스승, 아니 하나님의 아들을 세 번이나 부인할 수 있었을까일 것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믿음마저 완전히 상실 된 사건 아닙니까? 혹시라도 믿음이 상실되지 않았다면 그 믿음이 전혀 힘을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만약에 그분이 진정으로 하나님의 아들임을 확신했다면 그도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 순교의 길을 가야 마땅했습니다.

그렇지만 그의 고백은 단지 머리로만 생각하여 지식적 동의로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3년간 예수님을 바로 곁에서 따르며 온갖 확실한 체험을 했습니다. 구약의 모세를 제외하고는  인류 역사상 그만큼 예수님(하나님)과 가까이 대면하여서 많은 체험을 한 자도 없을 것입니다. 물위를 걸었고, 변화산에서 모세와 옐리야를 보았고, 그물이 찢어지도록 고기를 잡았고, 자신의 장모도 고침을 받는 등 다른 제자들보다 더 많은 이적을 겪었습니다. 틀림없이 예수님과 대화도 가장 많이 나눴을 것입니다.

다른 말로 그의 이 고백은 실제 체험과  주님과의 개인적인 친밀한 관계를 바탕으로 한 위대한 고백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딱 한 가지 빠진 것이 있었습니다. 또 바로 그것이 십자가 사건 때에 아무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배반케 한 결정적 원인이기도 합니다. 그 고백에는 아직 자신의 깨어짐이 포함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어떤 분이라는 것은 분명히 알았지만 그 분 앞에 비춰본 자신이 어떤 존재라는 것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전혀 없었던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던 바로 전날 밤까지도 자신에 대해 전혀 잘못 알고 있었습니다. 진정한 자아상을 그리지 못하고 사단이 그려준 허상에 사로 잡혀 있었습니다. 자신은 예수님의 수제자로서 의협심이 강해 불의를 참지 못하고 앞장서는 정의의 사자가 될 수 있는 충분한 도덕성과 종교성과 심지어 영성을 갖추고 있다고 착각한 것입니다.  

그런데 막상 대제사장의 하속들과 로마 군병들의 창칼 앞에 자신의 그 하늘 높은 줄 몰랐던 인간적 의협심과 스승에 대한 사랑이 휴지조각처럼 갈가리 찢어지는 것을 철저하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때까지 스스로 의롭다고 여겼던 자아가 완전히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그의  통곡은 단순히 스승을 배반했다는 도덕적 죄책감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자신이 너무나도 무력하고 부패해서 버러지보다 못한 존재라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비로소 그는 완전한 자기 부인의 고통을 통과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것만으로는 부족했습니다. 그는 여전히 주님의 부활을 알고도 갈릴리로 돌아갔습니다. 또 다시 그가 부활을 믿지 못했거나 주님을 사랑하지 않았다고 섣불리 단정 지어선 안 됩니다. 완전히 깨어진 자아가 회복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완전히 죽어버린 자신이 되살아나지 못한 것입니다. 바로 그 때에 주님이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세 번의 부인 사건으로 그가 지니고 있던 몸과 마음과 영혼의 짐을 세 번의 용서로 모두 벗겨 주었습니다. 그는 드디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것입니다.  
    
성경을 공부하고 교리에 동의하여 예수님을 지적으로 믿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 기도원에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여 중병이 낫는 개인적 체험 후에 믿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 두 가지 경우 모두 베드로처럼 예수님은 자신의 주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언제든 환난이 닥치기만 하면 세 번이 아니라 수백 수천 번도 더 예수님을 부인합니다. 자신이 철저하게 깨어져서 스스로 고난의 십자가를 통과한 적이 아직 없기 때문입니다. 자기 자신이 완전히 죽었다 되살아 난 자만이 가끔 실패를 하더라도 항상 그분께 되돌아오는 흔들림 없는 믿음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중생이라고 해서 특별히 신령한 체험을 하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예수님을 철저하게 부인하다가 자신이 더 철저하게 깨어지는 과정을 반드시 겪어야 한다는 것뿐입니다. 다른 말로 예수님의 정체성을 알려고 하기 이전에 십자가에 죽으신 그 분 앞에서 자기의 정체성부터 먼저 확실하게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주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고백은 저절로 나오게 마련입니다.

다른 말로 그 동안 예수님을 부인했던 자신이 얼마나 확실한 죽음 속에 있었는지 그래서 살아는 있되 실제로는 완전히 죽어있었다는 사실을 처절하게 깨달아야 합니다. “저는 도저히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쓰레기입니다. 예수님을 부인하는 것 말고는 제 힘으로 할 줄 아는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습니다. 세상에 나보다 잘나지 않은 자 단 한 명도 없습니다. 제가 이제 살든지 죽든지 모든 것이 주님의 뜻입니다. 주님의 처분에만 내 모든 것을 온전히 맡기겠습니다.”라는 항복 선언이 절로 나와야 합니다.

베드로처럼 도저히 자신이 부끄럽고 싫어서 세상 끝, 갈릴리 바닷가까지 도망갔지만 그곳까지 찾아 오셔서 자신을 사랑해주시는 예수님을 만나 그 긍휼 앞에 완전히 엎드렸던  체험이 있어야 합니다. 주님의 긍휼과 사랑 외에는 더 이상 이 세상을 살아 갈 수 있는 힘이 자신에게는 없음을 온전히 인정하고 또 실제로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베드로가 세 번 부인할 것을 미리 아셨을 뿐 아니라 사실은 당신께서 사전에 다 연출 해놓은 사건이었습니다. 세 번 부인한 자신을 다시 찾아 오셔서 똑 같이 세 번 용서하여 사랑을 베푼 주님을 베드로 본인이 어떻게 느꼈겠습니까? 세 번 부인할 것을 다 알고도 한 마디 경고도 야단도 치지 않으셨던 까닭이 바로 이 세 번의 용서하는 절차를 예비해 놓으셨기 때문이라고 확신했을 것 아닙니까?

주님은 베드로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위대한 고백을 할 때에 이미 그의 배반을 아시고 당신의 용서까지 다 계획 해 놓으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당장에 그런 계획을 제자들에게 설명해 주어봐야 아무도 알지 못했을 것이므로 말씀 안 하신 것뿐입니다. 대신에 주님은 그들에게 올바른 신앙 고백에 따라 올 천국 열쇠의 약속만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약속에 담긴 주님의 진정한 뜻은 “너희도 스스로 십자가를 통과하지 않고는 하나님의 사랑을 절대 제대로 알지 못 한다”는 것입니다. 믿음은 입술의 고백이 아니라 몸으로 십자가에 죽는 것이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또 그래야만 비로소 천국 열쇠의 권능이 나타날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아직 자신들의 자아가 깨어지기 전의 제자들이 그 진리를 들어도 알 재간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대신에 그 때부터 당신께서 십자가에 죽을 본을 먼저 보일 것을 비로소 가르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 시간 예수님이 우리에게 찾아 오셔서 “너는 나를 누구라 생각하느냐?”라고 똑 같은 질문을 한다고 가정해 봅시다. 물론 우리 모두는 베드로와 똑 같은 고백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럼 천국 열쇠를 받았다고 확신할 수 있습니까? 또 그 권세를 실제로 사용하고 있습니까? 그렇지 않다면 우리 또한 입술로만 베드로의 고백을 흉내 낸 것에 불과하지 않습니까? 그분의 십자가 위에서 자신이 완전한 깨어지고, 낮아지고, 비워지지 않고는 어떤 거룩하고도 신령한 신앙 고백이라도 입술로 주여주여 하는 것뿐입니다.

8/19/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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