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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바람 같은 예수

마가복음 허태수 목사............... 조회 수 1899 추천 수 0 2012.05.18 18:3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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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막2:18-22 
설교자 : 허태수 목사 
참고 : 춘천성암교회 http://sungamch.net 

봄바람 같은 예수
막2:18-22
2010.2.7


어떤 사람이 예수님에게 와서,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의 제자들은 금식 하는데, 왜 선생님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않습니까?"하고 물었습니다(18). 물론 그들이 누군지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앞뒤 문맥을 살펴보면,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과 마찰을 빚고 있는 사람들은,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이 아니라,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입니다(16,24). 그들은, 예수님이 세리들과 죄인(여기서 말하는 '죄인'은 당시의 바리새파나 율법학자들이 만들어낸 수많은 규칙을 따라 살 수 없는 연약한 사람들을 통칭하는 말이지, 실제로 인간관계나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관계를 깨뜨리는'어긋난 행위를 한 이들이 아니다)들과 어울려서 한 자리에서 음식을 먹는 일이나, 안식일에 병을 고쳐 주는 일, 그리고 안식일에 예수님의 제자들이 밀 이삭을 자른 일 등을 문제를 삼았습니다. 예수님을 찾아와서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들도, 그들과 같은 부류의 사람들이거나 또는 그들과 같은 입장에  있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그들이,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을 그들과 전혀 어울리지도 않는 바리새파 사람들과 한데 묶은 것은, 다분히 의도적으로 보입니다. 그 두 집단은, 금식을 한다는 거 말고는, 한데 묶일 수 있는 그런 공통점이 없습니다.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은 오히려 예수님의 제자들과 가깝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 두 집단을 한데 묶어서 예수님의 제자들과 대조시킴으로써, '너나 할 것 없이 다들 금식 하는데 왜 당신들만 안 하느냐'는 식으로 몰고 가려는 것입니다. 우리도 누군가를 공박할 때 이런 식으로 하지요?

그들은, 겉으로는 금식을 문제 삼고 있지만, 실제로는 그게 아닙니다. 그것은 구실일 뿐입니다. 진짜 문제는 세리들과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 예수님과 제자들입니다. 우리는 자주 이런 장면을 목격합니다.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비난 받는(이른바 죄인들)사람들과 밥을 먹을 때 그걸 문제 삼는 장면 말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그게 무슨 문제가 되겠느냐고 생각을 하겠지만, 예수님이 그렇게 한다는 것은 당시의 율법이 정한 종교사회적인 가치관을 부정하고 저항하는 일이 됩니다. 그러니 그걸 가만 두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정을 잘 묘사하는 성경 구절이 있습니다. "세례자 요한이 와서, 빵도 먹지 않고 포도주도 마시지 않으니 너희가 말하기를 '그는 귀신이 들렸다'하고,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기도 하니, 너희가 말하기를 '보아라 저 사람은 먹보요, 술꾼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구나' 한다"(눅7:33-34). 세례자 요한은 금식을 했고, 예수님은 금식을 하지 않았지만, 그들을 비난하는 사람들의 말은 두 사람을 모두 싸잡아 비난하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금식이 문제가 아니라 예수님의 처신이 거슬렸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시비를 거는 그들의 중심이 뭔지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19절을 대뜸 말씀 하시는 것입니다. "혼인 잔치에 온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금식할 수 있느냐?"(19).

예수님은 세리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을 혼인 잔치에 비유합니다. 아무리 속상한 일이 있거나, 심각한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도 혼인집에 가서 금식을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혼인집에 가서 손을 씻고 왔는지 아닌지를 검사하고 면박을 주는 사람도 없습니다. 잔치판을 깨는 나쁜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 자신이 세리들과 죄인들과 같이 밥을 먹는 일이 마치 '혼인 잔치'와 같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예수님의 비유 중에 가장 위대하고 아름다운 비유가 있다면 오늘 우리가 읽은 '잔치집'의 비유라고 말합니다. 이 비유는 예수님의 모든 삶과 가치를 한 번에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이 '예수님이 이 땅에서 하시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이걸 안다면, 이게 예수님이 할 일이라는 걸 안다면 '금식을  했느니 어쩌느니'하는 시비는 필요치 않습니다.

어쩌면 오늘날 우리도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이 '혼인 잔치의 비유'를 이해하기 어려울지 모릅니다. 그동안 기독교가 기득권의 종교가 되어서 일수도 있습니다. 그런데다가 요즘 우리가 하는 결혼이라는 게 이런 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옛날처럼 온 동네 사람들이 며칠 동안 먹고 흥겹게 지내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예수님이 세리들과 죄인들과 함께 어울린 잔치 자리는 흡사 옛날의 혼인 풍경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그들과 함께 그토록 기뻐하고 즐거워 한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맛있는 음식, 술 때문이었을까요? 그걸 여러 날 그렇게 먹을 수 있어서였을까요? 아닐 겁니다. 세상에서 멸시 받던 그들을 예수님이 받아들이고, 그들 속에 갇혀 있던 삶의 기쁨을 드러나게 해 주어서였을 것입니다. 바리새파 사람들은 그들을 얼마나 무시 했던지, 기도하면서 "하나님 감사합니다. 나는...이 세리와도 같지 않습니다. 나는 이레에 두 번 씩 금식합니다."(눅18:11-12)하고 했을 정도입니다. 그들은 그러면서 그렇게 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정죄하고 분리하였습니다. 그런 세력들 앞에서 그들은 주눅 들어 기를 펴고 살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그들을 받아 주셨을 뿐만 아니라 '의롭다'고 인정하였습니다(눅18:13-14). 그리고 하나님 나라 운동의 주인공들로 세웠습니다(마21:31). 그들과 친구도 되어 주었습니다(마11:19, 눅7:34). 그들은 비로소 예수와 함께 지내면서 사람이 된 듯 했습니다. 기가 살아나고 기쁨이 넘쳤습니다. 자신을 부끄럽게 여기고 열등하게 취급을 했었는데, 그 때 부터는 선하고, 소중하며, 기쁜 자신을 경험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사람은 지금이나 예나 자기를 알아주고 높여주는 사람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뭔가에 의해 짓눌리고 덮였던 것들이 확 걷히는 그런 일들이 예수님과 함께 하는 동안에 일어난 것입니다. 추운 겨울이 가고 새싹들이 터 오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인생의 봄, 영혼의 봄이 예수로부터 불어왔던 것입니다. 그들은 비로소 자기 자신과, 세상과, 삶과, 그들의 가난을 다시보기 시작했습니다. 봄이란, 이렇게 본다고 [봄]인 것입니다. 세리들과 죄인들에게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은 차가운 겨울바람이고 매서운 눈이었을 것입니다. 그들 앞에서 그들은 점점 움츠러들었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예수님은 그들에게 있어서 [봄]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래서 어떤 여인은 하지 말아야 행동을 예수님에게 서슴치 않고 하기도 했던 것입니다. 추위를 몰아내고, 눈을 녹이고, 얼었던 것을 풀리게 하고, 활짝 펴는 거, 거기서 아름다운 향기를 드러내는 게 봄 아닙니까? 그 사람들이 예수님 앞에서 그렇게 되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존재입니다. 이게 또한 교회의 사명이기도 합니다. 새로운 세상을 보고, 자기 자신도 잘 들여다보고, 인생의 종착점도 보고, 웅크려진 마음도 펴고,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향기를 드러내게 하는 것입니다. 그게 예수님의 삶이고, 그 삶을 이어받은 우리들의 과제인 것입니다. 사람이나 자연이나 이렇게 봄바람이 불어오면 그 무엇으로도 막지 못합니다. 가만히 있지 못합니다. 이전에 감추고 싶었던 것들을 일부러라도 드러내게 됩니다. 속 깊은 곳에서 싹트는 기쁨을 억누를 수 없는 것입니다. 김상미 라는 시인은 봄을 이렇게 노래합니다.

봄은 그래
기쁨을 절대로 억제하지 않아
조용 조용 가만 가만
무엇이든 드러내려고 해

잔치 날 신랑 신부는 즐거움과 기쁨을 감추고 싶어도 얼굴에 드러내게 되어 있습니다. 만물에게 있어서 봄이 그렇습니다. 예수를 만난 이들의 본성이 그렇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잔득 웅크리고 있던 사람들을 가만 두지 않습니다.. 툭툭 건드리고, 살랑살랑 불어오고 해서, 그들 속에 있는 삶의 기쁨을 밖으로 끄집어 내지 않고서는 못 견디게 합니다. 그것이 예수님이 베푸는 혼인 잔치였습니다. 그게 배 아프고 못 땅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거 저런 거로 트집을 잡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꽃 샘 추위가 이미 봄바람에 취한 만물을 다시 땅 속으로 들어가라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다가 대고 깁는 사람은 없다. 그렇게 하면 새로운 조각이 낡은 데를 당겨서 더욱더 심하게 찢어진다. 또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담는 사람도 없다. 그렇게 하면 포도주가 가죽 부대를 퍼뜨려서 포도주도 가죽 부대도 다 버리게 된다. 세 포도주는 새 가죽 부대에 담아야 한다"(21-22).

그러면 예수님은 새것과 낡은 것이 어울릴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하시려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봄은 겨울을 놔두고 시작되는 게 아니라, 겨울을 파괴하고 일어나는 일이라는 것을 말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바리새파 사람들이 정죄한 그 죄인들이 죄를 면제 받고 복권이 되는 것을 바라는 게 아니라, 그런 식으로 사람을 더 이상은 구속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제 너희들이 쓰던 그 종교적인 도구들은 쓸모가 없어졌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바리새파 사람들의 기반을 뒤흔드는 말이었습니다. 혁명적인 선언이고 행동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필사적으로 예수가 몰고 오는 그 변화의 바람을, 봄바람을 막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비난하고, 격렬하게 대들고 마침내 사람을 죽여야 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낡은 틀을 고수하려고 하는 것, 사람을 얽어매는 것을 틀어쥐고 놓지 않으려고 하는 것으로부터 교회는 저항해야 하고 파괴해야 합니다. 그리고 사람들로 하여금 봄바람을 맞은 사람들과 같이 되게 해야 합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이 땅에서 하신 처음 일이며, 마지막 일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이 숨 쉬게 하는 것, 사람들이 움츠러들지 않고 잔치집의 신랑과 신부처럼 봄에 취한 사람처럼 기뻐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게 교회이며, 신앙이며, 기독교입니다. 그러는 중에 하나님의 나라가, 하나님의 일이, 우리 속에 스며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 속에 나쁜 게 입력되어 있어서, 낡은 자루를 버리지 않고 그걸로 어떻게 해 보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거침없이 밀고 들어오는 봄을 막아 보려는 허튼 짓에 지나지 않습니다. 겨울이, 봄이 오는 것을 막을 수 없는 것처럼, 예수님을 통한 사람들의 변화나 가치관의 전환도 막을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이것을 잘 보여주는 소설이 앙드레지드의 [전원교향악]입니다.

개신교의 한 목사가 부모 잃은 눈먼 아이를 자기 집으로 데리고 옵니다. 그 아이의 이름은 제르뜨뤼드 입니다. 목사는 그 아이를 잘 기릅니다. 그리고 그 아이는 어른이 됩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목사가 그만 숙녀가 된 그 아이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 것입니다. 그러다가 숙녀가 된 아이는 개안 수술을 받습니다. 그녀가 세상을 보게 되었을 때, 그녀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가 늘 사랑하며 마음속으로 보고 싶었던 얼굴이 목사의 얼굴이 아니라 그의 아들 자끄의 얼굴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목사가 그 두 사람사이를 가로막습니다. 아들과 아버지가 정적이 된 것입니다. 결국 아들 자끄는 집을 떠나고, 눈을 떴던 제르뜨뤼드는 자살을 하고 맙니다.

뭐, 이상하게 끝난 사랑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게 아닙니다. 한 번 새로운 세상에 대해서 눈을 뜬 사람은 이전의 세계로 돌아갈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죽음보다 더 괴로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한 번, 예수를 통해 변화를 맛본 사람들은 과거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우리가운데 예수님이 일으키는 봄바람이 성큼 다가와야 합니다. 그걸 위해 우리가 이렇게 모여 교회를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는 혼인 잔치의 기쁜 역사를 만드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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