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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보여주면 가야 합니다.

사무엘상 김필곤 목사............... 조회 수 3592 추천 수 0 2012.05.26 23:4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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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삼상30:7-20 
설교자 : 김필곤 목사 
참고 : 2012.1.29 열린교회(용인) http://www.yeolin.or.kr 

길을 보여주면 가야 합니다.
사무엘상30:7-20

어제 교회 청소 당번이신 집사님들과 저녁 식사를 교회에서 했습니다. 식사하면서 한 집사님이 아이들 둘을 양육하는데 아이들이 다투어 나 아버지 노릇 안할 거라고 엄포를 놓았다는 말을 했습니다. “너희가 대신 아버지 해 보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러면 아이들이 며칠은 사이좋게 지내다가 다시 원 위치로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건강과 자녀 교육은 내 마음대로 안 된다고 합니다. 집사님만 그런 생각을 한 것이 아니라 아버지 노릇하기 힘들다라는 생각은 아버지라면 누구나 한 번쯤 해 보았을 것 있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이가 셋이고 한 아이가 피아노를 전공하여 남자인 막내가 거실에서 잤는데 지난 주 명절을 보내고 모처럼 집에 있었는데 아내가 막내 아이가 고 3이 되었고, 방학하여 집에서 공부하게 되었으니 공부할 수 있도록 방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고 안방을 비우자고 했습니다. 내심 불편한 마음이 들었지만 어떻게 합니까? 아내 말을 들어야지, 나이 50대가 넘어가면 아내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가정에 평화롭지 못하다고 하지 않습니까? 노후 보장을 위해서는 하나님 말씀보다 아내 어명을 잘 순종해야 한다고 합니다. 나가서 밥먹으라하며 나가서 먹고 집에서 밥먹으라 하면 집에서 밥먹고 잘 순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요즘 유행하는 유머로 아내들이 집에서 한 끼도 식사 안하는 남편은 “영식님”이라고 부르고, 한 끼만 식사하는 남편은 “일식씨”라고 부른다고 하지 않습니까? 두끼 식사하면 아내 입이 거칠어져 “두식 넘”이라고 하고, 세끼 다하면 “삼식이 쉐끼”라고 하고, 세끼 다하고 간식 먹은 남편은 “간나 쉐끼”라고하고, 세끼 다 먹고 간식 먹고 야식 먹으면 “종간나 쉐끼”라고 하고, 세끼 다 먹고 간식 먹고 야식 먹고 마누라는 쳐다도 안보는 남편은 “쌍 놈의 쉐끼”라고 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우리 교회 여집사님들은 그런 분이 없을 줄 믿습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마지막까지 남편님 말씀에 순종할 줄 믿습니다. 저는 지난 화요일 아내 말에 따라 짐을 다 옮겨 안방을 양보하고 거실로 거처를 옮겼습니다. 밤에 거실에서 잠을 자는데 그날따라 몹시 추웠습니다.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책상도 내어 주고, 방까지 자식들에게 내어주고 거실로 쫓겨났다고 생각하니 얼마 있으면 60을 바라보는 나이에 아버지 노릇한다는 것이 처량하고 슬프기까지 하였습니다. 1시 50분까지 잠이 오지 않아 교회에 가서 기도하여야겠다고 생각하고 짐을 챙겨 교회에 왔습니다.

 

언젠가 제가 이런 아버지 마음을 “현관의 신발”이라는 시로 썼습니다. 이 시가 경춘선 어느 역사에 걸려 있습니다.

“어릴 땐 신발의 무게를 몰랐습니다.

마루 밑에 널려 있는 신발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저 관심있는 것은 내 신발 뿐

늘어져 있는 신발의 숫자가

아버지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자라 신발 한 켤레로 살 땐 몰랐는데

어느 날 신발 두 켤레 나란히 놓인 것을 보고

신발의 무게를 느끼고, 신발의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신발 세 켤레, 네 켤레, 다섯 켤레,

신발의 수만큼 마음은 현관만큼 비좁아지고

생각의 날개엔 신발의 숫자만큼

무거운 추가 매달리게 되었습니다.

 

매일 집으로 들어갈 때

현관의 신발의 숫자를 보려하지 않아도

신발 다섯 켤레의 소리를 듣게 됩니다.

 

어릴 땐 신발의 무게를 몰랐습니다.

마루 밑에 널려 있는 신발이

무엇을 말하는지,

 

이제,

아버지의 마음을 조금 알 것 같습니다.

마루 밑 널려있는 신발을 보고 남몰래

한숨짓는 아버지의 마음을...”

 

우리가 살다가 보면 참 힘들다 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아버지 노릇하기고 힘들고, 어머니 노릇하기도 힘들고, 직장인 노릇하기도 힘들고, 사는 것이 힘겹고 어렵다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오늘 성경에 보면 힘겹게 아버지 노릇, 남편 노릇하는 다윗이 나옵니다. 한 때 블레셋 장군 골리앗을 무너뜨리고 민족의 영웅이 되었던 사람입니다. “사울은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라”는 칭찬을 들을 정도로 사울 왕보다 백성에게 인기가 높았던 사람입니다. 목동에서 단숨에 왕의 사위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순식간에 출세한 그 인기가 화근이 되었습니다. 사울 왕이 시기하여 죽이려는 것입니다. 직장을 잃어버렸습니다. 최고 권력자의 수배자가 되어 전국 각지로 숨어 살았습니다.

 

한참 희망과 꿈을 가지고 달려야 할 30대 나이에 가족을 거느리고 얼마나 처절하겠습니까? 결국 적국인 블레셋으로 정치적 망명을 하였습니다. 자기를 따르는 600명을 부하를 거느리고 아기스 왕에게 망명한 것입니다. 그래서 왕의 신임을 받기 위해 그술과 기르스 사람, 아말렉 사람들을 치고 유다 남방과 여라무엘과 겐 지역을 공격하였다고 거짓을 말한 것입니다. 확실하게 유다 사람과는 등졌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신앙의 사람, 용장 다윗이 얼마나 비참하게 되었습니까? 처자식 살리기 위해, 목숨 건지기 위해 이렇게까지 적진에 투항하고, 거짓으로 신뢰를 받으려고 자기 자신을 속일 정도로 비참해져 버렸습니다.

 

그러나 한 번 밀려가면 인생이라는 것이 그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밀려가는 것을 봅니다. 당시 블레셋에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아기스 왕은 다윗을 이 전쟁에 끌고 갔습니다. 그에게 있어서는 다윗의 충성심을 시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을 것입니다. 진짜 망명인지 가짜 망명인지를 시험할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전쟁에 능한 장수이기 때문에 최전방에 내세워 이용할 가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 다른 방백들이 반대를 합니다. 당시 블레셋은 강력한 왕권을 가진 중앙 집권적인 정치 체계가 아니라 다섯 개의 부족이 연합한 국가 형태로 모든 의사 결정은 다섯 부족의 방백회의에서 결정하였습니다. 다윗이 누구입니까? 적장입니다. 과거 자기 나라 장군 골리앗을 무너뜨린 사람입니다.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기회를 보았다가 결국 자기들의 목을 들고 사울에게 갈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울에게 신임을 받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다윗은 새벽에 일어나 전쟁터에서 쫓겨났습니다. 다윗과 그 군대는 회군하여 자신이 살고 있는 시글락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와 보니 자신이 살고 있는 마을은 불에 다 타버리고 아내와 아이들은 다 포로로 잡혀가 버렸습니다. 목숨이라고 살겠다고 망명 왔는데 달랑 자기 목숨 남고 모든 것을 다 잃어버렸습니다. 재산도, 아내도, 자식들도 다 잃어 버렸습니다. 자기 하나 믿고 따르던 부하들의 식구들도 다 잃어버린 것입니다. 한 순간에 이런 일을 당한다면 어떤 생각이 들겠습니까? 우리는 살다보면 이런 경우를 당할 수 있습니다. 한 순간 이제 까지 쌓아 놓은 재산을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건강을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그렇게 중요하게 여기던 명예를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권력도, 아름다움도, 인기도, 지식도, 자유도, 용기도, 희망도, 심지어는 자식도, 아내도, 부모도, 남편도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직장에서도 밀리고 가정에서도 밀리고, 밀리고 밀리는 인생이 될 수 있습니다. 길이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이럴 때 우리는 어떻게 합니까?

1. 우리는 밀리는 현장에도 계셔 길을 보여주시는 하나님을 만나 힘을 얻고 용기를 가지고 나아가야 합니다.
이런 상황을 당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떻게 합니까? 4절을 보십시오. 울 기력이 없도록 소리를 높여 울었습니다. 인간으로 당연한 것입니다. 다윗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이 단계는 신앙이 있던 없던 누구나 같습니다. 문제는 신앙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은 이다음 단계에서 차이가 납니다. 6절에 보십시오. 백성들은 어떤 반응을 합니까? 자녀들 때문에 마음이 슬퍼서 다윗을 돌로 치자고 합니다. 다윗 때문에 처자를 잃었으니 다윗을 대신 죽이자는 것입니다. 다윗을 죽이면 어떻게 하겠다는 말입니까? 다윗을 죽인다고 성이 새롭게 건축이 됩니까? 포로로 잡혀간 아내와 아이들이 돌아옵니까? 지난주에 우리가 살펴보았지 않습니까? 문제를 당하면 아군을 적군으로 만들지 말아야 합니다.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이 적군이 아니라 함께 그 문제를 풀어가야 할 가장 동지이자 아군입니다.

 

하나를 잃으면 그것 때문에 또 다른 것을 잃으면 안 됩니다. 하나를 잃으면 그것 때문에 더 중요한 것을 잃어버리면 안 됩니다. 가정에서 자녀의 성적이 떨어졌습니다. 그러면 아내는 남편을 탓합니다. 가정 경제가 어려워졌습니다. 그러면 남편은 아내를 탓합니다. 그것으로 감정의 골이 생깁니다. 다툼이 잦아지고 결국 이혼합니다. 밀려가는 인생이 더 밀려가는 것입니다. 자식에게도 아내에게도 남편에게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방법입니다. 다윗은 이 위기 앞에서 어떻게 합니까? 6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다윗이 크게 다급하였으나 그의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더라.” 실패의 현장, 위기의 현장, 진퇴양난의 절박한 현장에서 하나님을 만난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려움과 고난을 당하면 외면합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실패의 현장에서도 우리를 외면하지 않습니다. 밀리는 현장에서도 우리를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밀리는 현장, 실패의 현장이 더욱 하나님을 힘입어야 할 때입니다. 예수님 말씀합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 11:28)” 예수님은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막 2:17)”라고 말씀합니다.

 

열두 해나 혈루증을 앓으며 많은 의사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가진 것도 다 허비하였으나 아무런 효험을 보지 못한 여인이 예수님을 만나 치유를 받았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나인성에서 외아들 의지하며 살던 홀로된 여인이 마지막 희망인 그 외아들이 죽었을 때 그 현장에 찾아가서 그를 살리셨습니다.
예수님은 병을 치료받기 위해 베데스다 연못에 38년 동안이나 누워 있었으나 경쟁에서 밀려 번번이 실패한 병자에게 찾아가 그를 치료시켰습니다.

 

복음 성가 "할 수 있다 하신 이는"을 작곡한 장욱조 씨가 예수님 만나 글을 읽어 보았습니다. 68년 가요계에 데뷔한 그는 조용필의 `상처' 조경수의 `아니야' `돌려줄 수 없나요' 등을 작곡한 사람이고 79년 `고목나무'라는 곡으로 가수로도 크게 성공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고은아 권사를 만남으로 완전히 바뀌어 버렸답니다. 그분은 방송국에서 기회만 있으면 전도를 하였다고 합니다. 장욱조 씨를 만나“교회에 나오세요. 이번 주일부터 어때요?”하며 말을 건넸는데 그는 "그럽시다”라고 말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주일날 고은아 권사께서 교회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30분을 넘게 기다렸다는 것입니다. 예배가 끝날 때까지 오지 않았습니다. 그는 교회에 갈 마음이 없었지만 그렇게 시원하게 대답한 것은 고등학교 시절부터 짝사랑했던 배우였던 탓에 고은아 배우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서였다고 합니다. 그는 추호도 교회에 나가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고 합니다. 가수로 남부러울 게 없이 인기를 누리고 있었고 가는 곳마다 스타대접을 받았는데 교회를 다니며 절제하는 생활을 하기엔 세상이 너무나 신나고 즐기며 놀 일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그는 신나게 즐기다가 70이나 되면 모를까 교회는 하지 말라는 것이 너무 많아 교인이 되는 순간부터 정말 가장 재미없는 인간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때부터였다고 합니다. 그 뒤로 되는 일이 없었고 인기는 곤두박질치기 시작했고 하는 일마다 망했다고 합니다. 마지막에는 이태원에 술집까지 차렸는데 개업과 동시에 에이즈 환자가 이태원에서 나오는 바람에 모두 문을 닫게 되었다고 합니다. 당장 먹고 살게 없을 정로로 생활이 궁핍해졌고 인기 떨어지니까 아무도 반겨주는 이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때 갑자기 고은아 권사가 생각이 났고, 그분이라면 무조건 위로해 주실 것으로 생각했다고 합니다. 86년 3월 부인과 함께 교회를 찾아갔답니다. 고은아 권사는 그분이 상처를 입을까봐 어미닭이 병아리 품듯 섬겨 주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생이 변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이 자신의 인생의 주인임을 고백했습니다. 자신은 죄인인 것을 회개하였습니다. 그 때부터 일이 풀리기 시작하더라는 것입니다. 한 달 동안 출연료가 당시 1천만 원이 되더라는 것입니다. 그는 자신도 이제 자신이 겪은 경험담을 하고 싶었다고 합니다. 가수 모임이 있어 조용필 씨한테 `교회에 나갔더니 이렇게 좋은 일이 일어나더라'고 이야기 하면서 교회에 나가라고 권했답니다. 그랬더니 조용필 씨가 교회에 미치면 큰일이라고 하면서 오히려 조심하라고 충고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는 간증집회를 합니다. 복음 성가를 불렀습니다. 성경공부를 하였습니다. 가요계 생활을 청산하고 신학을 공부하였습니다. 장욱조 집사는 고은아 권사를 `신앙의 어머니'라고 하였습니다.

 

인생이 밀리고 밀리며 앞길이 보이지 않을 때 예수님을 만나면 길이 열립니다. 힘을 얻습니다. 기쁨이 없는 가정에 기쁨이 생깁니다. 가정에 평안이 찾아옵니다. 질병을 앓는 사람들이 기도를 통하여 질병을 치유 받을 수가 있습니다. 희망 없는 사람들이 희망을 발견합니다. 부정적인 사람들이 긍정적인 사람으로 바뀝니다. 병든 사람이 치료의 주님을 만납니다. 낙심된 사람이 용기를 주시는 주님을 만납니다. 세상에서 소외당한 사람이 격려해 주시는 살아계시는 주님을 만납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사람들이 가슴속에 맺혀있는 슬픔과 괴로움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 우리 주님을 만나면 위로를 받고 소망을 가지게 됩니다. 악한 사람이 선한 사람으로 바뀝니다. 약한 사람이 강한 사람으로 바뀝니다. 어두운 삶이 절망적인 인생이 밝아지고 소망적인 인생으로 바뀝니다. 지옥 같은 인생이 천국 같은 인생으로 변화됩니다.

 

주님을 통해 힘을 받으면 용기가 생깁니다. 난관을 해쳐갈 용기가 생기는 것입니다. 밀리는 현장은 하나님을 떠나는 현장이 아니라 길을 보여주시는 하나님을 만나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고 용기를 내어야 할 때입니다. 다윗은 위기 속에서 길을 보여주시는 하나님께 나아갔습니다. 우리는 어떤 경우도 하나님과 함께 있음으로 힘과 용기를 얻고 하나님과 함께 문제를 극복하며 나가야 합니다.
하박국 선지자를 보십시오(합3:17-19).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
욥을 보십시오. 집도 잃었습니다. 재산도 잃었습니다. 자식도 잃었습니다. 그 때 욥은 어떻게 그 문제를 극복합니까?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라(욥1:21-22)”

2. 우리는 밀리는 현장에서 길을 보여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 즉 회복에 대한 확신하고 나가야 합니다.
다윗은 죽음의 위기의 현장에서 무엇을 합니까? 모든 것을 잃어버린 현장에서 무엇을 합니까? 밀리는 현장, 실패의 현장, 절망의 골짜기에서 무엇을 합니까? 8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고 문제의 답을 가지고 계시는 하나님께 문제의 답을 물어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장수입니다. 자신 스스로 판단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따라 잡을 수 있을지 하나님께 물어보는 것입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그를 쫓아가라 네가 반드시 따라 잡고 도로 찾으리라” 오늘 이 말씀이 저와 우리 성도님들에게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되시길 바랍니다. “네게 반드시 따라 잡고 도로 찾으리라.” 삶의 현장에서 올 한해 반드시 따라잡고 도로 찾으시는 역사가 일어나길 바랍니다. 잃은 것 찾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회복시켜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경제적 위기로 지난 해 많을 것을 잃었다고 낙심하고 포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회복시켜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지금 문제가 해결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말씀으로 길을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확신하는 것입니다. 우울증에 사로잡히거나 좌절하시기 마기기 바랍니다. 이것이 말씀을 확신하는 믿음인 것입니다. 아직 실상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기 때문에 그 약속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재림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말씀하시는 예수님을 신뢰하기 때문에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히11:1)”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다윗에게 말씀하신 우리 하나님께서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반드시 따라잡고 도로 찾으리라" 믿습니까?
건강을 잃어 버렸습니까? 재산을 잃어 버렸습니까? 명예를 잃어 버렸습니까? 정령 찾게 해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확신하십시오. 우리 하나님이 건강을 도로 찾게 만들어 주실 것이고, 믿음을 도로 찾게 해 주실 것이고, 재산을 도로 찾을 수 있도록, 평강을 도로 찾게 만들어 주실 것이고, 사랑을 도로 찾게 해 주실 것을 확신하십시오. 먼저 마음으로 확신하는 것입니다. 생각이 중요합니다. 생각은 창조의 원동력입니다. 세상에 나와 있는 '물건'을 거슬러 올라가면 모두 누군가의 머릿속의 생각에 다다르게 됩니다. 생각은 모든 창조물의 어머니입니다. 비행기는 라이트형제의 생각의 산물이고, 상대성 이론은 아인슈타인의 생각의 산물이며, 자동차는 헨리 포드의 생각의 산물입니다. 필라멘트는 에디슨의 생각의 산물이고, 매독 병균을 물리치는 살바르산 백신은 에를리히의 생각의 산물입니다. 생각은 무에서 유를 만드는 기적을 일으킵니다. 기적은 생각의 힘을 믿는 데서 시작됩니다. 무형의 재료로 유형의 부를 만들어낼 수 있는 유일한 힘도 바로 생각입니다. 마이크로 소프트의 창업자 빌게이츠나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를 부자로 만든 것은 그들의 독창적인 생각이었습니다. 특별한 생각은 사람을 부자로 만들어 줍니다. 생각은 대단한 에너지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확신하는 믿음의 생각은 기적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마음의 확신이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길을 보여 주시면 올해 교회 부흥과 사업의 성장과 자녀의 진학에 대하여 먼저 마음으로 확신을 하시기 바랍니다.
다윗을 보십시오. 결국 어떻게 되었습니까? 18절 이하를 보십시오. “빼앗아 갔던 모든 것을 도로 찾고... 아무것도 잃은 것이 없이 모두 도로 찾아왔고... 양 떼와 소 떼를 다 되찾았더니” 하나님의 말씀대로 “찾고, 찾고, 찾은” 것입니다. 올 한 해 우리 성도님의 가정에 이런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얼마나 사랑하는가 보십시오. 다윗이 만약 그 전쟁터에서 이스라엘과 싸웠다고 가정해 보십시오. 이스라엘 왕이 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위기를 통하여 치명적인 실수를 하지 않도록 막아 주신 것입니다. 그 어려운 상황에서 다윗을 인도해 주신 하나님을 다윗은 평생 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평생 간증이 되었을 것입니다.
욥을 보십시오. 결국 어떻게 되었습니까? 도로 찾았습니다. 자식들도 또다시 얻게 되었고, 재산은 갑절로 받았습니다.
여호와는 있게도 하시도 없게도 하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고,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시고, 귀신을 내어 쫓으시고, 앉은뱅이를 일으키며, 병든 자를 고치시고,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하나님이신 것을 믿습니까?
한 번 실패하였다고, 잃어버린 것이 많다고, 병들었다고 좌절하지 마십시오. 때로 일이 잘 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끝없이 밀려가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걷고 있는 길이 내내 언덕길이 때가 있습니다. 자금은 없고 빚으로 짓눌릴 때도 있습니다. 웃어도 웃음이 없고 울어도 풀리지 않는 슬픔이 있을 수 있습니다. 아무리 한숨지어도 풀리지 않는 고통이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재물을 잃고, 인기를 잃고, 건강을 잃을 때도 우리 주님은 우리 곁에 계시며 말씀하십니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 28:20)" 하나님이 내게 길을 보여주시는 말씀을 확신하고 잃어버린 모든 것 회복되는 한 해가 되시길 바랍니다.

3. 우리는 밀리는 현장에서 하나님께서 길을 보여주시면 그 길로 과감하게 걸어가 찾아야 합니다.
위기의 현장에서 하나님이 길을 보여주시면 망설이지 말아야 합니다. 다윗이 하나님께 물어 보았을 때 하나님은 단순하게 “그를 쫓아가라”라고 말씀하였습니다. 특별한 전략을 말씀해 주시지 않습니다. 그저 쫓아가라는 것입니다. 지금 어디에 있는지도 알지 못합니다. 지도가 있는 것도 아니고 나침반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요즈음처럼 위치 추적 장치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당시 아말렉 사람들은 반 유랑생활을 하였기 때문에 일정 지역에 정착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 때 다윗은 몹시 지쳐 있을 때입니다. 1절에 보면 아벡에서 시글락까지 3일 동안 달려온 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길을 보여주시니까 즉각 그 길로 나아갑니다. 망설이지 않습니다. 앞뒤 재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자 어떻게 됩니까? 다윗을 죽이려고 했던 육백 명도 같이 따라갑니다. 어려우면 참 많은 소리가 들립니다. 병들면 이런 저런 약들을 사람들이 소개합니다. 어려우면 사람들이 마음이 약해집니다. 그래서 다급해지면 실수하기 쉽습니다. 그 때 하나님 말씀에 따라 정도를 실행하는 것입니다. 과감하게 말씀 따라 걸어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밀리는 현장에서 우리가 회복할 수 있는 길입니다.

 

말씀 붙들고 가다 보면 어려움이 다가 옵니다. 그 때 머뭇거리지 말아야 합니다.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너의 본토 아비, 친척집을 떠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본토를 떠났습니다. 그런데 그 앞에 다가 온 것은 무엇입니까? 가뭄입니다. 말씀 붙들고 하나님이 길을 보여주었으니 떠나면 옥토와 풍년이 기다려야 하는데 가뭄을 만난 것입니다. 그 때 어떻게 합니까? 애굽으로 내려갑니다. 그래서 거기서 아내를 누이라고 속이는 실수를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을 보십시오.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갈릴리 호수를 건너갑니다. 그런데 그 밤에 폭풍을 만났습니다. 말씀대로 순종하면 폭풍을 만나지 말아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보여주신 길을 걸어가는데도 어려움이 오는 것입니다. 광야를 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보여주신 길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홍해가 나옵니다. 마라의 쓴물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물도 먹을 것도 없는 광야가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럴 때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길을 걸어가는 것을 포기해 버립니다.

 

다윗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길을 즉각적으로 걸어갑니다. 그런데 조금가자 문제가 일어납니다.
브솔 시내에 오자 2백 명의 낙오자가 발생하였습니다. 지쳐서 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6백 명이다 가도 모자라는 군인입니다. 그 때 다윗은 어떻게 합니까? 낙오자들과 싸우지 않습니다. 우리가 좋은 일 하면 모든 사람이 지지해 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며 교만입니다. 아무리 좋은 일을 해도 모두 지지해 주지 않습니다. 나를 지지해 주지 않는다고 가던 길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안 되는 사람에게 집착하다 지지자까지 상실하면 안 됩니다. 다윗은 따르는 자 4백 명만 거느리고 추격을 합니다. 전쟁의 승리는 사람의 수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다윗은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골리앗을 무너뜨릴 때 수많은 군사가 있었지만 자신 한 사람으로 하나님은 블레셋을 무너뜨린 것을 체험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이렇게 나아가니까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11절을 보십시오.

 

그런데 애굽 사람 하나를 만나게 됩니다. 하나님이 예비한 사람을 만난 것입니다. 굶주린 그에게 떡과 물을 먹게 해 주었습니다. 밤낮 3일을 굶주린 사람이었습니다. 아말렉 사람 종으로 병들어 주인에게 버림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그저 다윗을 만나지 못했으면 광야에 죽었을 사람입니다. 그런데 16절을 보십시오. 그가 하나님이 보내어준 지도가 되어 준 것입니다. 광야의 나침반이 되어 준 것입니다. 200명의 중도 포기자보다 훨씬 다윗에게 도움을 준 사람을 만난 것입니다. 어제 동아 일보에서 성우로 유명한 배한성씨에 대한 글을 보았습니다. 날개 달아준 친구는 전 코리아스파이서 대표이사인 이석태 씨라고 말했습니다. 중학교 때 처음 만난 친구인데 어릴 적 다친 한쪽 무릎을 제때 치료하지 못해 다리를 펴지 못하는 벋정다리였던 친구였답니다. 그 친구는 '나 같은 놈이 공부마저 못하면 정말 아무것도 못 된다'며 공부에 열중하였답니다. 6·25전쟁 때 월북한 아버지 대신 어머니와 동생의 생계를 실질적으로 책임지며 밑바닥 인생을 살았다고 합니다. 새벽에 신문을 돌리고, 조그만 회사의 사환(使喚) 노릇도 하며 덕수 상고에 들어갔지만 어릴 적 도끼로 나무를 패다 잘못해서 날에 찍힌 오른손 검지가 뭉툭하게 잘려 주판알을 튀기지 못해 주산 점수가 밑바닥이었다고 합니다. 덕수상고에서 제적된 거나 마찬가지였던 1966년 초 친구인 이석태가 대학을 가지 못하는 자신에게 찾아와 "고졸 배한성, 너 아니다. 꼭 대학 가야 돼."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 친구에게 버럭 화를 내면서 "너나 대학 가라고! 네가 내 사정 뻔히 알잖아. 나 등록금 없어서 못 가. 포기한 지 오래됐어."라고 했답니다. 그런데 며칠 뒤 친구는 신문지에 싼 돈뭉치를 들고 다시 찾아와 "등록금 갖고 왔어. 너, 학교 가."라고 했답니다. 그렇게 해서 1966년 봄, 서라벌예대 방송과에 입학하여 오늘날 성우 배한성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1966년은 그의 생애 최고의 해였다고 말합니다. 이후 45년은 이전과 많이 달랐다고 합니다. “내 생애 최고의 해를 만들어준 친구 이석태가 생각할수록 고맙다”라고 쓰고 있습니다.

 

다윗은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난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쓸모없는 사람이었지만 다윗에게는 참으로 도움이 되는 중요한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다윗을 아멜렉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인도합니다. 당시 아말렉 사람들은 반 유랑생활을 하였기 때문에 일정 지역에 정착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사정을 잘 아는 안내인이 없으면 찾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결국 어떻게 되었습니까? 16절, 17절을 보십시오. 적은 군인으로 기습 공격하여 승리하게 되었습니다. 앞길이 보이지 않는다고 망설이며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 같지만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길로 가다보면 어려움도 있지만 진정 내게 꼭 필요한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하나님이 예비해 놓은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길로 가는 사람에게는 오늘날도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여 찾고 회복할 수 있도록 해 주십니다. 사람은 찾고 찾은 후, 회복된 후가 더 중요합니다.

 

2백 명의 낙오자들에 대하여 다윗을 따른 사람들이 뭐라고 합니까? 4백 명의 용사 중에는 악한 자와 불량배였습니다. 22절을 보십시오. 우리와 함께 가지 않은 자들에게는 전략물을 주지 말자는 것입니다. 처자만 돌려주자는 것입니다. 이 때 다윗이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23절을 보십시오. 같이 읽겠습니다. “나의 형제들아 여호와께서 우리를 보호하시고 우리를 치러 온 그 군대를 우리 손에 넘기셨은즉 그가 우리에게 주신 것을 너희가 이같이 못하리라.” 참 멋진 다윗의 모습니다. 끝까지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길로 가는 것입니다. 24절을 보십시오. 얼마나 하나님의 사람다운 권위가 있습니까? 전쟁에 갔던 자들이나 피곤하여 남아 소유물을 지켰던 자들이나 동일하니 같이 분배하라는 것입니다.

 

앞길이 보이지 않습니까? 하나님께 나아가면 하나님은 길을 보여 주십니다. 길을 보여주시는 하나님을 만나 힘을 입고 용기를 내어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아직 길이 보이지 않는다고 포기하거나 주저하시지 마시고 길을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말씀, ‘반드시 도로 찾으리라’라는 말씀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어떤 어려움과 장애물이 있어도 하나님이 길을 보여 주시면 그 길로 나가 찾으시길 바랍니다. 찾은 후 내 길로 가지 마시고 그 후에도 생이 마치는 순간까지 하나님이 보여 주시는 길로 지속적으로 나아가는 삶이 되시길 바랍니다.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1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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