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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출처 : | http://christustraeger.tistory.com/1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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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애적 성격장애와 집단괴롭힘의 한국사회
간혹 세상이 자기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걸로 착각하는 듯한, '지 편한 세상'을 사는 사람들을 만날 때가 있다.
이런 사람들은 자기 아이디어와 노력은 굉장히 특별하다고 굳게 믿지만 다른 사람들의 아이디어와 노력이 소중한지 모르고 자기 편한 대로 써먹는다. 그렇게 써먹고 나서 그 열매를 다함께 공유하기라도 하면 좋겠는데, 공은 제 혼자 챙기고 자기가 써먹은 사람에 대해선 도리어 험담을 퍼뜨리거나 일이 잘못될 경우 책임을 뒤집어 씌우기까지 한다. 이들은 흔히 뒤에서 쑤군대는 것으로 '진심을 나누는' 친구를 만들어 자기가 써먹은 사람을 집단따돌림시킨다. 재주는 곰이 넘고 이득은 엉뚱한 놈이 챙길 뿐 아니라, 한 번 놀아보라고 멍석을 깔아주는 척 하다가 멍석말이를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양심의 가책을 느끼긴 커녕 자신들은 굉장히 특별한 사람이어서 그런 식으로 집단따돌림으로 응징할 특권이 있다고 느끼기 까지 한다.
이들의 사람됨은 자연히 겉과 속이 다를 수밖에 없다. 당위적 도덕률로 겉모습을 치장하더라도 그것은 마치 양파껍질과도 같이 실체가 없다. 그들이 치장하는 당위적 도덕률이 실은 자기 자신에게 걸맞는 것이 아니다. 그럴수록 이들은 더욱 자기 바깥에서부터 주어지는 정당화가 필요하다. 해서 누군가를 희생양 삼아 자기가 상대방보다 도덕적으로나 지적으로, 또는 사회적으로, 인간적으로 '위에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야말로 이들의 속내에 은밀하게 숨겨진 불안한 강박적 욕구이다.
이런 뒤틀린 욕구의 실현이 오래 갈 수 없어야 건강하고 정상적일 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종종 혹은 자주 이들의 잔꾀와 꼼수가 아주 오래오래 먹혀들곤 한다.
최근에 이런 사람들에게 자기애적 성격장애가 있다는 것을 다룬 흥미로운 기사가 나왔는데, 신학적으로도 눈여겨 볼 만한 대목이다. 마르틴 루터는 자기 안으로 굽어 있는 사람(homo incurvatus in se)이 타락한 인간의 죄성이라고 갈파한 바 있다. 사람이 자기 안에 굽어 있는 죄된 상태가 나타나는 양태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자기애적 성격장애는 '자기 안에 굽어 있음'을 아주 구체적으로 드러내 준다고 할 수 있다.
이게 꼭 개인만의 문제는 아니다. 일찌기 아우구스티누스는 세상 나라가 자기애를 바탕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 바 있다. 우리 사회의 역사와 현재를 놓고 보면 우리 사회도 자기애적 성격장애증을 앓고 있지 않을까? 다 함께 우리 사회 발전에 이바지한 사람들인데 특정지역, 특정집단을 차별하고 집단따돌림하는 사회적 인식을 퍼뜨리는 자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 자신들과 생각이 다르면 빨갱이, 좌파 따위의 주홍글씨를 박아 집단따돌림을 자행하지만, 정작 자신들의 정신적 기원은 군사독재요, 친일파요, 민중과 민족의 역사를 수탈한 벌열정치를 자행한 세도가집단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들의 못된 버릇은 결코 바뀌지 않고 있다. 몇 안 되는 무고한 지도자들에게 죄를 만들어 덮어 씌우고, 거짓증언과 거짓증거를 만들어 그들의 의를 죄로 바꾸면서 그들의 매장과 살해 소식에 서로 축하하고 안도한다.(*1) 이들은 자신들의 세치 혀로 흑을 백으로, 백을 흑으로 바꾸고 있다. 이들의 잔꾀와 꼼수가 대체 언제까지 먹혀들 것인가?
자기애적 성격장애자들이 득세한 사회란 병든 사회다. 이들은 자신들의 성격장애의 병증으로 스스로 이득을 취할 뿐 아니라, 끼리끼리 패거리를 지어 다니면서 모종의 이득을 약속하면서 자기애적 성격장애에 감염된 좀비를 양산해 낸다. 한국교회도 예외가 아니다. 오히려 교회는 특유의 반공근본주의를 통해 그런 좀비를 양산해 내는 강력한 감염진원지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지 않은가!
우리 사회가 자기애적 성격장애증을 앓고 있는 한 통합과 화합은 불가능하다. 누군가를 배제하고 타도해야만 유지되고 뭉칠 수 있는 사회는 암과 같은 존재방식으로 연명하고 있는 것이다. 도려내지 않으면 그나마 살아 있는 사람들마저 함께 망할 수밖에 없다. 조선왕조가 그렇게 패망했고, 로마제국이 그렇게 패망했으며, 고대 이스라엘과 유다가 그렇게 패망했다. 예언자 이사야는 당시 유다왕국의 병든 사회상을 이렇게 비판한다.
19 그들이 이르기를 그는 자기의 일을 속속히 이루어 우리에게 보게 할 것이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는 자기의 계획을 속히 이루어 우리가 알게 할 것이라 하는도다
20 악을 선하다 하며 선을 악하다 하며
흑암으로 광명을 삼으며 광명으로 흑암을 삼으며
쓴 것으로 단 것을 삼으며 단 것으로 쓴 것을 삼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23 그들은 뇌물로 말미암아 악인을 의롭다 하고 의인에게서 그 공의를 빼앗는도다
남유다의 패망을 목도한 예레미야나 에스겔이 전하는 사회상은 더욱 어지럽다. 특히 종교권력의 부패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들은 거짓이상을 보고 거짓예언을 했으며 (에스겔 13장, 예레미야 23:23-32), 사람들의 영혼을 삼키고, 재산을 약탈하고 과부를 만들었다.(에스겔 22:25) 기득권자들의 부정부패를 종교적으로 정당화해주었다.(에스겔22:27-28, 예레미야 23:16-22) 성직자들 가운데 간음하는 자들이 가득했다.(예레미야 23:9-10)
한반도가 분단된 지 60년이 넘었다. 아직까지도 한반도에 평화가 깃들 수 없는 까닭은 우리 사회가 자기 안으로 굽어 있기 때문이다.
특별히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맡았다는 교회는 뼈를 깎는 반성과 회개가 있어야 마땅하다.
모름지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서 역사와 인생에 새로운 희망의 지평을 열어주셨다. 그런데, 이 복음을 증거하기는 커녕 근본주의, 반공주의 따위의 비본질적인 데 함몰되어 복음의 길을 가로 막고 있는 우리 현실에 대해 통곡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자비와 용서를 구해야 하지 않겠는가? 실로 한국교회가 한반도에 진 복음의 빚이 무겁고도 무겁다.
[덧붙임]
*1. 가까운 예로 노무현 대통령과 한명숙 총리, 곽노현 교육감에 대한 검찰의 표적수사와 주류언론의 받아쓰기를 들 수 있겠다. 특히 정권 실세가 분명 연루되어 있는 부산저축은행 사태를 다룸에 있어서 로비 핵심인물 박태규가 금품수수를 했다는 명백한 사실에 대해 검찰 수사는 미적미적하고 주류언론은 기억 나지도 않을 만큼 보도를 하지 않으면서, 곽노현 수사 쪽을 부각시키고, 강호동, 김아중 등 애꿎은 연예인들의 탈세혐의까지 대중에게 흘려 대중의 에너지를 엉뚱한 곳으로 흘러가게 하고 있다. 짜고 치는 판이 정도껏 해야지, 이건 저열한 사기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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