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오후 4시로 예정됐던 한일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GSOMIA) 체결을 정부가 연기하기로 결정했다. 한 외교 소식통은 29일 오후 <연합뉴스> 기자와 만나 "여야의 요구에 따라 서명 전에 국회에 먼저 설명키로 했다"며 "향후 일정은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고 밝혔다. 지난 26일 국무회의에서 비밀리에 처리한 것이 문제가 돼 국민적인 반발에 부딪히자 정부가 항복한 셈이다. 야당과 시민사회는 물론 여당인 새누리당조차 정부의 졸속처리를 비난하면서 협정 체결을 보류하라고 압박하고 나선 것. |
▲ 단군민족평화통일협의회 및 한민족운동단체연합 회원들이 29일 오후 서울 세종로 정부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한일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 체결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 노컷뉴스 |
결국 정부는 외교적 결례를 감수하고서 정치권과 국민들의 요구를 수용한 셈이다. 이렇게 되자 신각수 주일대사는 일본 외무성에 국내 사정을 이유로 이날 협정문 정부를 강하게 압박해 연기 결정을 내리게 한 직접적인 ‘힘’은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김성환 외교부 장관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협정체결 보류를 촉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건에 대해서는 신문, 방송, 보수-진보 할 것 없이 거의 전 매체가 반대 내지 우려를 표명하고 나섰기 때문인데 새누리당으로서도 이같은 여론을 외면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결국 새누리당은 국무회의 통과 3일 만인 29일 한일군사협정 체결에 급제동을 걸고 나섰다. 진영 새누리당 정책위의장은 29일 오후 국회에서 가진 브리핑에서 “이한구 원내대표가 조금 전 정부 측에 곧 체결 예정인 한일정보보호협정의 유예를 강력히 촉구했다”면서 이 원내대표가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당의 입장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진 의장은 이어 “정보보호협정 체결이 국회의 동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정부가 결론을 내렸다고 해도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나 국방위원회에 보고하고, 또 국회나 국민과 상의한 뒤 체결해야 한다”고 전제한 뒤 “국민 사이에 반대하는 정서가 있는 데다, 절차상 급하게 서둘러 잘 알려지지도 않은 채 체결하는 건 부적절하다”며 정부의 졸속처리를 비판하고 나섰다.
한편, 새누리당의 이같은 결정은 전적으로 여론에 따른 것으로 당초의 입장에서 많이 후퇴한 것이다. 국무회의 통과 사실이 처음 알려진 27일 이후 어제(28일)까지만 해도 새누리당은 “지금 세계는 자국의 생존을 위해서 또는 국가 이익을 위해서 다른 나라와 다양한 형태의 협력을 하고 있다. 경제문제든, 군사문제든, 나홀로 살아갈 수는 없는 세상”이라며 “국가 안보를 위한 외국과의 군사협력을 괜한 반일 감정으로 자극하는 것은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협정 체결의 필요성을 강조했었다.
그러나 야당의 비난 성명과 시민사회, 언론의 집중포화를 맞게 되자 결국 노선을 변경하게 된 셈이다. 민주당은 졸속으로 처리된 협정의 무효화를 위해 대국민운동을 전개하기로 하는 등 강경투쟁 방침을 세웠다. 이해찬 대표는 이날 열린 확대간부회의에서 “우리의 모든 군사정보가 일본 자위대에 제공하겠다는 협정이 몰래 추진되고 있는데 3ㆍ1 운동 정신을 무시하는 이명박 정권의 친일 태도를 규탄하지 않을 수 없다”며 “당에서는 강력하게 협정을 저지하는 대국민운동을 전개해야 할 것”이라고 지시했다.
이밖에도 민주당 추미애, 이종걸 최고위원 등 당 지도부는 29일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국무총리실을 항의방문 했다. 또 문재인, 손학규, 정세균 등 민주당 대선후보들은 이구동성으로 정부의 졸속처리와 소통부족을 비난하고 나섰다. 특히 인터넷에서는 이번 협정 체결을 두고 구한말 일제가 강제로 체결한 ‘을사늑약’에 빗대 정부를 강하게 비난하는 등 반대 목소리가 폭발하자 새누리당으로서는 당황하게 됐다는 지적이다.
한편, 일본정부는 당초 예정대로 29일 ‘한일 군사정보 포괄보호협정(GSOMIA) 체결안’을 내각회의 안건으로 올려 통과시켰다. 일본은 그러나 한국 내의 거센 반발을 의식한 듯 협정 명칭에서 ‘군사’라는 단어를 빼고 ‘한일 정보협정’으로 안건 명칭을 바꿔 처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한국정부가 돌연 협정체결 연기 결정을 함에 따라 일본정부로선 머쓱해진 꼴이 됐다.
‘백기’ 든 정부, 한일군사협정 체결 연기 결정
“2008년 군사협정 日에 먼저 제안”...
군 관계자 “탄약 확보위해 지원요청”
정부가 일본과의 ‘군사정보보호협정’ 체결안을 국무회의에서 비밀리에 통과시켜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한일군사협정은 2010년 일본이 먼저 제안했다’는 정부와는 달리 우리정부가 2008년 일본에 ‘상호군수지원협정’ 체결을 먼저 제안한 것으로 확인돼 충격을 던지고 있다.
<세계일보>가 29일 오후에 보도한 기사에 따르면, 정부소식통은 28일 “(우리정부가 일본에 제안)한 것으로 안다”며 “이는 우리의 필요에 의해서였다”고 밝혔다. 또 군 관계자도 “일본과 사용하는 무기가 비슷하다. 탄약은 동일한 탄종이 많은 편”이라며 “재고가 적은 특수탄약 재고가 많은 일본의 도움이 절실했다”고 당시 ‘상호군수지원협정’ 제안하게 된 배경에 대해 설명했다. 군 관게자는 또 “을지프리덤가디언(UFG) 연습 때마다 반복되는 탄약 부족 현상을 메우고 유사시 한반도 급변사태에 대비한 원활한 탄약 공급처로 일본을 고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고 덧붙였다. <세계일보> 보도에 따르면, 당시 우리 측 제안에 일본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였지만 국민 감정과 독도 문제로 성사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탄약 확보라는 현실적 이유로 고민했던 군 당국은 한·일 군사협정에서 상호군수지원협정이 군사정보보호협정보다 우선 체결되기를 원했으며, 이런 이유로 최근까지도 일본 측과 계속 논의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군사협정의 또 다른 축인 ‘군사정보보호협정’이 26일 국무회에서 비밀리에 통과된 사실이 알려진 뒤 비난 여론에 일자 군수분야의 협정 체결은 중단을 선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부 고위관계자는 이날 “군수지원협정은 순수 군사 대 군사 협정이기 때문에 아직 시기상조”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정부 관계자는 “한일 관계가 국민 정서적 요소까지 충분히 이해될 수 있는 단계가 되면 다시 판단할 것”이라며 “지금 당장 (군수지원협정은)추진하지는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심층해설] ‘한일군사협정’ 체결은 일본의 오랜 ‘한반도 재침략’의 일환
오늘 한일 양국의 국정 최고책임자의 재개를 받아 대리인이 한일군사협정에 공식 서명한다고 한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오늘 오후 중에는 마무리될 것이라고 한다. 대체 이게 얼마만인가. 해방(일제는 패망) 후 67년만의 일이니 일본으로서는 오랜 세월, 먼 길을 돌아 온 셈이다. 1945년 8월 패전 후 호시탐탐 노려왔던 한반도 재상륙(재침략?)의 기회를 일본은 마침내 거머쥐게 된 것이다. 그것도 한국 측의 ‘백기투항’으로 무혈입성을 하게 됐으니 일본으로서는 축배를 들 만한 경사가 아니겠는가.
묻는다. 대체 무엇이 그리 급했던가. 엊그제 대한민국 정부의 국무회의에서는 한일군사협정 처리 건에 대해 사전 설명도 없이 ‘즉석 안건’으로 올려 ‘도둑 처리’를 했다. 한 정부 당국자는 해외에 출타중인 이 대통령은 귀국하면 이를 재가할 것이라고 장담하기도 했다. 말하자면 이미 오래 전부터 해당 부처에서 준비해온 사안이라는 얘기로 들린다. 일본으로서는 고맙고 또 고마울 따름이다. 야당이 “뼛속까지 친일정권” 운운하며 MB와 그 휘하들을 비판해봐야 그들에겐 ‘쇠귀에 경 읽기’ 꼴이니 말이다.
그제 국무회의에서 한일군사협정을 비밀리에 통과시켰다는 소식이 알려진 후 국내 언론들은 대체적으로 절차, 혹은 소통부족을 지적했다. 또 더러는 일반론 차원에서 협정 체결의 필요성을 역설하기도 했다. 전반적으로 무지한 탓이다. 언론은 일반국민들이 한일군사협정 체결의 의미와 문젯점에 대해 이해가 부족한 대목에 대해서는 풍부한 해설을 제공했어야 했다. 그러나 그러기는커녕 오히려 정부 당국의 나팔수 노릇을 자임 했다. 신문, 방송 둘 중에서는 방송이 더 실망스런 보도를 한 것 같다.
▲ 한일군사협정 체결에 반대하는 시민들. ⓒ 자주민보
‘절차 문제’도 간단하게 볼 게 아니다. 정부 당국자는 이번 협정은 조약이 아니라 정부간 협약이나 양해각서(MOU) 같은 것이어서 국회 동의가 없어도 가능하다고 했지만 그건 매우 오만한 발상이다. 한일 양국민 간에 민족감정이 견원지간인데 다른 것도 아닌 군사협정을 맺으면서 공청회 한 번도 열지 않았다는 것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이런 점을 잘 알고 있는 일본은 친일적인 MB정부에서 군사협정 체결을 목표로 추진해 왔고, 또 결국 보란 듯이 이를 성사시켰다.
뼛속까지 친일정권의 또 하나의 날치기 통과
일본에 대해 지레 겁을 먹거나 기우(杞憂) 차원의 얘기가 절대 아니다. 오랜 지난 역사를 통해 볼 때 일본은 우리에게 ‘선한 이웃’이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조선조 선조 때는 명나라를 치러 갈 테니 길을 비키라는 명분으로 임진년에 조일전쟁(‘임진왜란’)을 일으켜 7년간 조선 산하를 군마로 짓밟았으며, 1875년 ‘운양호사건’ 때는 동해도 아닌 서해 강화도 앞바다에서 ‘수로 측량’을 구실로 조선 상륙의 빌미를 만들어 이듬해 결국 조선땅에 침략의 기반을 다진 장본인들이 아닌가.
1945년 패망으로 이 땅에서 퇴각한지 67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 한번 한 적이 없다. 오늘날 일본을 지배하는 극우세력들은 ‘일제 지배가 조선에 축복이었다’는 망언을 낡은 레코드판 틀 듯 기회가 있을 때마다 틀어대고 있고, 삼국시대 이후 우리의 고유영토인 독도를 러일전쟁 때 강제로 뺏은 것을 기화로 지금도 넘보고 있는 ‘도둑’이나 마찬가지다. 충분한 입증자료가 있고 피해 당사자들이 버젓이 살아 있는 데도 위안부 문제는 내몰라라 하고 일본, 일본이 그런 추악한 이웃임을 한국인이면 모른다 할 자가 누가 있으랴.
그러면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건대, 세상에 뿌리 없는 나무가 없고, 새암이 없는 강이 없듯이 이번 한일군사협정도 어느 날 하루아침에 불쑥 등장한 것이 결코 아니다. 일본은 이미 60년대 초부터 이런 작업을 정부차원에서 주도면밀하고도 줄기차게 준비해 왔다. 반면 한국 측은 무지와 전략부재, 게으름, 미국의 압력 등의 이유로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거나 친일상향의 관료들이 방임 내지 협조한 측면이 없지 않다. 말하자면 일본 페이스에 말려들고 있는 듯 한 인상을 지울 수 없는 ‘독도’ 건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1950년대 후반 일본 정가에서 ‘부산적기론(釜山赤旗論)’, 즉 ‘한국이 공산화 되면 일본도 위험하니 나서서 도와야 한다’는 얘기가 나돌 무렵 한일회담 일본측 수석대표였던 사와다 겐조(澤田薕三)는 1958년 6월 11일 열린 제4차 한일회담에서 “38선을 압록강까지 밀어부치는 것이 한일회담 교섭의 목적이다. 38선이 부산까지 내려오면, 일본은 당장 위험하기 때문이다. 지하에 잠든 조선관계 선열들의 영을 생각해서라도, 이 일을 잊어선 안된다.”고 지껄였다.
사와다의 발언은 조선땅은 자기 선조들이 가꾼 땅이므로 그것을 제3자가 38선으로 분단시킨 것은 용납할 수 없으며, 선조의 공로를 지키지 못한 점에 대하여 죄송스럽다는 뜻인데, 한 마디로 궤변이요, 망언이다. 한반도가 언제 그들의 고토(故土)였던 적이 있었던가? 한국땅을 일본의 고토로 인식하고 있는 사와다의 인식은 놀랍다 못해 기가 찰 노릇이다. 일본은 패전 몇 년 뒤인 1950대부터 ‘한반도 재침탈’ 계획을 세워두었던 셈입니다.
북한의 연평도 포격사건(2010. 11.23)이 발생한지 보름 뒤인 그해 12월 11일, 일본의 간 나오토 총리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한반도에 전쟁 등 만일의 사태가 발생할 경우 한국에 거주하는 일본인들을 피난시키기 위해 자위대를 한국에 파견할 수 있도록 한국과 협의를 시작할 뜻을 밝혔다. 간 총리는 또 한반도 유사시 자위대 파견에 걸림돌이 없도록 자위대법 개정을 검토할 뜻을 내비쳤고 이는 당시 일본 언론에 대사특필 됐다. 이른바 ‘연기’가 피어오른 것이다.
패전 직후부터 시작된 한반도 재침탈 계획
이튿날 <요미우리신문>은 “일본정부는 1997년 작성한 ‘미-일 방위협력지침’에 유사시 한국에 있는 일본인 구출계획의 협조를 명시했으며, 미-일 양국간에는 비전투원 철수에 관한 구체적인 계획 작성이 진척돼 있다”며 “남아 있는 가장 큰 문제는 한국이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다.”라고 보도했다. 말하자면 일본은 한반도에 유사시 자국민 안전(보호)을 위해 한반도에 자위대 파견 계획을 이미 수립해 두었고, 미국과는 얘기가 이미 끝났다. 남은 문제는 한국과의 협상 뿐이었던 것이다. 이것이 오늘 ‘군사협정’의 탈을 쓰고 비로소 관철된 것이다.
▲ 일본 자위대 지역별 배치 및 각 군별 병력 현황. ⓒ 파이낸셜타임스
그러면 당시 간 총리의 발언에 대해 한국정부는 과연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당시 한국 외교부의 한 당국자는 “한-일간에 이런 문제가 협의된 바 없고, 일본 쪽에서도 제기된 바 없다”며 “일본 자체 내의 논란이기 때문에 우리 정부가 코멘트 한다든가, 판단할 입장은 아니다.”(<한겨레> 2010. 12. 13)고 밝혔다. 한 마디로 말해 ‘남의 집 얘기’라는 식이다. 청와대는 여기서 한 술 더 떴다. “(간 총리가) 깊이 생각하고 한 얘기 같지 않다. 현실성 있는 얘기는 아니다.”고 말했는데, 말하자면 간 총리가 별 뜻 없이 불쑥 한 마디 했다는 식이다.
그러나 간 총리의 발언은 결코 빈말이 아니었다. 빈말은커녕 아주 구체적인 한반도 ‘침투’ 계획을 갖고 있었다. 간 총리는 기자들을 만나기 하루 전날 북한 납치피해자 가족들을 만난 자리에서 ‘자위대가 한국을 거쳐 북한에서 행동’하는 방안을 거론했다. 두 가지를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 하나는 ‘한국을 거쳐’이며, 다른 하나는 ‘행동’이란 표현이다. 한국과 아무런 협의도 되지 않은 그 시점에서 일본은 이미 한반도 진입을 기정사실화하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 ‘행동’이란 ‘군사행동’을 말하는 것으로 다른 말로 하면 ‘전쟁’이다.
일본은 2006년 12월 미국과 공동으로 유사사태 대응 ‘공동작전계획’을 구체화시켰다. 이는 유사시 미군이 출동하면 일본이 도로와 항구, 비행장 등 지자체와 민간의 시설과 인력을 동원해 ‘후방지원’하는 방안을 담고 있다. 또 일본이 직접 무력공격을 받을 경우 자위대와 미군이 미사일방어(MD)를 가동하고 적 기지를 공격하는 것까지를 상정하고 있다. 따라서 ‘유사시’ 일본 자위대와 미군은 ‘공동작전계획’이라는 명분 아래 ‘가상 적’ 가운데 하나인 북한을 공격할 수도 있고 그 결과로 한반도에서 ‘제2의 한국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
그럴 경우 한국군은 미국이 주도하는 유엔군이나 한국군 전시작전통제권을 쥐고 있는 미군 지휘 아래 들어가게 된다. 또 ‘미군 지원’이란 미명 아래 자위대가 한반도에 상륙할 경우 한국군은 일본 자위대의 지휘를 받아야 할지도 모른다. 이런 내용은 현재(평시)로선 가상시나리오에 불과하지만 만에 하나 유사시가 되면 즉각 현실로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미-일 간에 합의돼 유사시 일본 자위대의 한반도 출병을 구체적으로 상정한 이른바 ‘공동작전계획’은 이른바 ‘미쓰야(三矢) 계획’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조만간 군수협정 체결하면 자위대 상륙 공식허가
‘미쓰야 계획’이란 사토 총리 때 방위청장관을 지낸 고이즈미 준야(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 부친) 등 방위청 간부들이 1963년 미국의 지원 속에 비밀리에 만든 것으로, 골자는 ‘미국이 동아시아 개입을 위해 일본을 군사적 대리자로 내세우고 한국과 대만을 거기에 묶어(미쓰야(三矢)=세개의 화살) 한반도와 만주 점령까지를 염두에 두고 짠 작전계획’이다. 일본은 겉으로는 한일친선 운운하면서도 뒤로는 미국을 끌어 들여 ‘미·일동맹’을 구실로 한반도 재출병 계획을 수립했던 것인데 이는 1965년 2월 일본 사회당 소속 오카다(岡田春夫) 의원의 폭로로 세상에 알려졌다.
일명 ‘삼시(三矢)작전계획’으로도 불리는 이 작전은 세부적으로 모두 7단계·24개 연구과제로 이루어져 있다. 오카다 의원의 폭로에 따르면, ‘제1단계’는 한국군 내부에서 반란이 일어나 북한군이 개입하면서 한반도에서 제2의 한국전쟁이 발발하며, 이 때 주일미군이 1차적으로 전쟁에 출동한다는 계획이다. 일본이 유엔군의 일원이 되어 자위대를 직접 한국에 파견하는 것은 ‘제4단계’ 상황이며, 이 비상시나리오의 마지막 단계인 ‘제7단계’ 상황에서는 미군이 원폭을 투하해 전쟁에서 최종 승리를 거두고, 일본 자위대가 한국에 주둔한다는 계획을 담고 있다. 명실공히 ‘일본군 한반도 재출병’ 시나리오인 셈이다.
▲ 김관진 국방장관(왼쪽)과 기타자와 도시미 일본 방위상이 한-일 국방장관회담 시작 전 악수하고 있다. ⓒ 한겨레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대목은 이 ‘미쓰야 계획’을 세운 시점이다. 1963년이면 아직 한일 국교정상화도 되지 않았었고, 또 요즘처럼 북핵 위기가 발생하지도 않은 때였다. 그런데 그 시점에 일본은 이미 한반도 출병계획을 세웠었고, 또 이를 50년 가까이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 해왔다는 사실이다. 작년 1월초 기타자와 도시미 일본 방위상이 한국을 방문해 김관진 국방장관과 김성환 외교부장관을 만나 정보보호협정과 상호군수지원협정 체결문제를 논의한 바 있다. 이번에 논란이 된 한일군사협정은 바로 그 결과물인 셈이다.
정부 당국자는 어제(28일) 논란이 된 군사정보보호협정은 계획대로 추진할 것이고 이어 군수협정도 추진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렇게 되면 한반도에서 유사시 자국민 보호 및 탈출 지원 명분을 내걸고 일본 자위대가 한반도에 상륙할 수 있는 길을 공식적으로 열어주게 된다. 그야말로 일본 자위대의 깃발이 한국땅에 펄럭일 날을 머잖아 보게 될 지도 모른다. 일본은 늘 이런 식으로 한반도에 발을 들여놨고, 또 그를 기화로 침략의 마수를 뻗쳐 온 것을 우리는 지난 역사에서 여러 번 경험하지 않았던가.
거리상으로 이웃해 있을 뿐 전혀 이웃답지 않은 그런 자들에게 다른 것도 아닌 군사협정을 체결하면서 국정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국무회의에서 날치기 처리를 했다는 것은 구한말 ‘을사늑약’에 찬동한 매국노에 다름 아니다. 김황식 국무총리 이하 외교장관, 국방장관 등 국무위원들은 대체 어느 나라 각료들인가? 이래놓고도 그대들이 대한민국의 장관이요, 국무위원이라고 할 수 있는가? “뼛속까지 친일·친미”라는 MB에게 더이상 기대할 것은 없다. 해결책은 오직 하나, 정권교체 뿐이다. 이 협정의 유효기간이 1년이라고 하니 정권교체 해 새정부에서 내년 이맘 때 협정 폐기를 선언하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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