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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눅9:28-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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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조용기 목사 |
참고 : | 2012.6.17 주일 여의도순복음중앙교회 |
“이 말씀을 하신 후 팔 일쯤 되어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기도하시러 산에 올라가사 기도하실 때에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나더라 문득 두 사람이 예수와 함께 말하니 이는 모세와 엘리야라 영광중에 나타나서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할새 …(중략)…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되 이는 나의 아들 곧 택함을 받은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고 소리가 그치매 오직 예수만 보이더라 제자들이 잠잠하여 그 본 것을 무엇이든지 그 때에는 아무에게도 이르지 아니하니라”
누가복음 9장 28∼36절
인생은 시공간의 한계와 고통에 갇혀있어
영원한 하나님 예수 우리위해 세상에 오심
주님 품은 영원의 존재로서 승리하며 살아야
성경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지으셨다고 말씀합니다. 우연히 천지가 생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천지를 지으신 것입니다. 천지란 무엇입니까? 우리가 살고 있는 시간, 공간 그리고 물질 3차원의 세계가 천지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시간은 하나님이 지으셨지만, 하나님은 영원하심으로 시간에 소속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시간과 공간과 물질로 제한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영원하십니다. 영원에 들어가면 시간이 흐르지도 아니하고 변화도 없습니다. 오직 영원에 들어가기 전 우리가 시간 속에 살 때 시간은 과거, 현재, 미래로 흘러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간이 흐르고 변화를 체험할 수 있는 현세에서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현세가 지나고 내세로 들어가면 영원한 세계가 전개되면서 시간도 변화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현세에서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또 다른 기회가 없습니다. 오직 영원에서 영원까지 형벌을 받게 됩니다.
1. 시간 안으로 들어오신 예수님
성경에 보면 예수께서 제자들을 데리고 변화산상에 들어가서 기도하신 장면이 나옵니다.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기도하시는데 갑자기 그들 앞에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났습니다. 그 당시에 모세는 세상을 떠난지 이천년이나 된 사람이고 엘리야는 천년이나 된 사람이었습니다. 현재를 기준으로 하면 모세는 사천년 전 사람이고 엘리야는 삼천년 전에 구름타고 올라갔습니다. 그런 분들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그들에게 나타난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들은 여전히 그 모습 그대로의 모세요, 여전히 그 모습 그대로의 엘리야였습니다. 그들은 시간을 초월한 존재가 된 것입니다. 여기에서 보여준 것은 일단 사람이 이 세상에 살 동안에 어린 아이로 태어나고 젊음이 있고 장년이 있고 노년이 있은후 죽지만 이 세상을 떠나고 난 다음에는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은혜 가운데서 이 세상을 떠난 사람들은 영원히 사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앞에서는 아브라함도 이삭도 야곱도 다 옛날 그 모습 그대로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영원을 입은 모세, 영원을 입은 엘리야가 예수님께 나타나서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은 너무나 놀랐던 것입니다.
예수께서 산 아래로 내려오자 귀신 들린 사람이 있고 병든 자가 있고 죽어가는 사람이 있고 슬픈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사람들을 돌보아 주시고 그들의 짐을 짊어지시고 그들과 함께 삶을 이끌어 나가셨습니다. 그와 같은 방법으로 영원하신 하나님으로서 시간 안으로 들어오신 이가 예수라는 사실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보통 사람과 같지 않습니다. 그분은 영원한 하나님이십니다. 영원한 존재이신 예수님께서 육신을 쓰고 우리의 시간 속에 들어온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시간과 공간에 들어오셔서 우리를 위해서 고통스러운 우리의 짐을 짊어지기 위해서 찾아오신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시간 안에 사는 인생입니다. 우리는 영원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어릴 때가 있고 젊을 때가 있고 중년이 있고 노년기가 있고 죽을 때가 있는 존재입니다. 시간 안에서 사는 사람인 것입니다. 태어나서 성장하여 죽는 과정의 시간 안에 살며 끊임없이 변화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우리 인간입니다. 우리의 육체도 변하고 마음도 변하고 생활도 변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태어난 세계는 마귀가 죄로 인하여 사망의 세력으로 지배하는 세계요, 마귀가 지배하는 이 세상에서 태어나서 인간은 이 암울한 시간이라는 운명을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어릴 때도 마귀의 지배하에서 고통 당했고 장년이 되어도 마귀의 세력하에 있고 노년에도 마귀의 세력하에 있다가 세상을 뜨는 비극 속에 우리는 놓여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시간이라는 거대한 강물의 흐름 위에서 ‘삶’이라는 배를 타고 여행을 떠납니다. 이 땅에 태어난 사람은 누구나 쏜살 같이 달리는 시간의 강물 위에서 유아기, 소년기, 청년기, 장년기, 노년기를 지납니다. 누구도 거스르거나 거역할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해도 과거를 돌이킬 수 없고, 현재를 붙잡아 놓을 수 없으며 미래를 비껴 나갈 도리가 없습니다. 이러한 인생에 대해 야고보서 4장 14절은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고 기록하며 베드로전서 1장 24절은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라고 하며 인생의 안타깝고 슬픈 상황을 기록하였습니다. 인간의 삶에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모든 것이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고 결국 사라져 버립니다. 그래서 실존주의 철학자들은 “인간은 절망적인 존재이며, 죽음의 병을 앓는 자”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시간 안에 있는 인간은 고통과 괴로움 속에 있습니다. 죄악의 고통, 허물의 고통, 질병에 잡혀서 고통당하고 가난과 저주와 절망의 고통, 죽음의 고통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시간 안의 인간을 구원하기 위하여 영원의 존재로서 시간속의 사람이 되어 오신 이가 바로 예수님입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고 온 이유는 시간 안에서 고통당하는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 14절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기록합니다.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분인 것입니다. 말씀은 영원한 하나님인데 그 하나님께서 변화무쌍한 육신을 입고 오신 것입니다. 영원한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 어린 아이로 태어나서 청장년으로 자라나 사시면서 시간 안에서 아담이 저지른 죄와 우리의 허물의 대가를 우리를 대신하여 청산하시고 영생의 길을 열어주신 것입니다. 그렇게 인간으로 오신 예수님은 배고픔과 갈증을 느끼셨고 피곤해 하시고 주무셨으며 민망히 여기시고 근심하며 노하시며 인간적인 희노애락, 감정과 눈물과 땀을 흘리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한없는 고통을 당하셨고 우리가 당하는 여러 시험들을 몸소 겪으셨으며 인간의 마지막 한계상황인 죽음까지도 감당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빌립보서 2장 6절로 8절에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고 기록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기까지 우리를 건지시기 위해서 대신 책임을 짊어지신 것입니다.
2. 예수님의 대속
우리는 예수님의 대속 역사의 의미를 분명히 알아야 됩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우리의 짐을 대신 짊어지러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인간과 똑같이 세상에 오셨으나 유일하게 죄가 없는 분이셨습니다. 죄가 있으면 죄인의 짐을 대신 짊어질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죄를 짊어지기 위해서 인간으로 오셨으나 죄는 없으셨습니다. 죄가 없기 때문에 우리 대신 죄를 짊어질 수가 있으셨던 것입니다. 자신의 빚이 없어야 빚 있는 사람의 빚을 대신 감당할 수 있지, 자신도 빚이 있으면 남의 빚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은 타락한 시간과 공간에서 인간처럼 사셨으나 죄는 전혀 없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죄없이 잉태되시고 죄없이 태어나시고 죄없이 33년을 사신 분입니다. 요한일서 3장 5절에 “그가 우리 죄를 없애려고 나타나신 것을 너희가 아나니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인간의 죄와 허물, 병과 저주, 죽음을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청산해서 오셨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고난을 통해서 “내가 다 이루었다”고 하신 것은 우리의 죄를 다 청산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불의를 청산하고 우리의 질병의 고통을 청산하고 우리의 저주와 가난과 슬픔을 청산하고 우리의 죽음과 절망을 청산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다 이루었다. 너희들이 이룬 것이 아니다. 내가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로 지금 우리가 예수님께 나가면 주님이 우리 인생의 무거운 짐을 다 청산하고 우리를 변화시키는 역사를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2장 14절로 15절에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라고 기록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인간과 같이 세상에 오셔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마귀를 멸하시기 위함입니다. 십자가에서 예수님은 마귀의 세력을 다 옷 벗겨 버리고 패배시키신 것입니다. 십자가의 역사와 보혈의 공로로 마귀의 정사와 권세는 모두 패해 버리고 마귀의 모든 무장이 해제돼 버린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를 영적으로 심적으로 육신의 생활로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마귀의 무장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해제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므로 갈라디아서 5장 1절에 “믿음에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유인으로 생각하고 자유인으로 꿈꾸고 자유인으로 믿고 자유인으로 말하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젠 더 이상 죄와 허물, 병과 저주, 죽음을 걸머지고 고난당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자유케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그 때와 동일하게 죄를 용서하시고 동일하게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고 동일하게 우리의 병을 고쳐 주시고 동일하게 저주에서 해방시켜 주시고 동일하게 영생천국을 주시는 영원한 하나님으로 우리에게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예수님은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의 메달을 달고 우리에게 오시는 것입니다.
3. 올바른 이해
예수님께서 이루신 열매는 이제 예수님과 영원히 같이 있고 변화하거나 소멸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이천년 전에 예수님을 믿는 것이 뿐만 아니라 부활하셔서 지금도 살아계신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용서의 은혜와 함께 부활하셨으며 거룩하게 하는 능력과 함께 부활하셨으며 치료와 기적의 역사와 함께 부활하셨으며 넘치는 축복과 함께 부활하셨으며 천국의 영생복락과 함께 부활하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바로 그 부활하신 예수님을 모셔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제 발가벗고 이 세상에 빈손 들고 태어나신 예수님이 아니십니다. 우리의 위대한 구원자요, 위대한 성령충만을 주시는 자요, 위대한 치료자요, 위대한 축복자요, 위대한 영생복락을 주는 하나님으로 부활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바라볼 때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한 영원한 예수님으로 바라봐야 합니다. 또한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을 가지고 영원히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하게 주는 변함없는 그리스도인 것을 알고 모셔들여야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1장 25절로 26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고 기록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제 부활이요 생명인 것입니다. 과거의 부활이요 생명일 뿐만 아니라 영원한 예수님이기 때문에 현재에도 영원히 부활이요 생명이 되시며 미래에도 영원히 부활이요 생명이 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우리 인생에 모셔들이면 오중복음, 삼중축복은 예수님과 함께 들어옵니다. 그것들은 예수님과 분리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4. 다 이루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외친 것은 첫째 아담이 망쳐 놓은 시간과 공간 물질의 세계를 주님이 마지막 아담으로 오셔서 책임지고 다 청산해 버렸다는 뜻입니다. 이제 이 세상은 옛 아담이 만들어 놓은 세상과는 다릅니다. 옛 아담은 마귀의 종이 되었고 마귀는 우리를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고 아무도 막을 수 없는 힘으로 날뛰었는데 이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마귀의 정사와 권세를 다 철폐하시고 무장해제시키셨습니다. 주님은 죄를 청산하시고 불의를 청산하시고 병을 청산하시고 저주를 청산하시고 죽음을 청산하셨습니다. 그리고 부활이요 생명으로 우리와 같이 계시므로 오늘날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는 새로운 세계가 다가온 것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라고 기록된 것처럼 우리는 새로워진 것입니다. 새사람인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시대가 새로워진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이 예수님이 오늘날 교회와 우리나라에 오셨고 함께 계십니다. 성령의 역사는 예수님을 통해서만 나타나기 때문에 예수님을 구주로 모신 사람 속에는 성령께서 와 계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섬기는 교인들이 모인 곳에는 성령께서 임하여 계십니다. 성령이 운행하는 곳에는 새로운 창조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성령이 운행되는 곳에서는 복된 소식과 즐거운 소식이 증거 되고 포로된 자는 자유를 얻게 됩니다. 또한 성령이 운행하는 곳에는 영적 영안이 열리게 되고 성령이 역사하는 곳에는 눌린 자가 해방과 자유를 얻고 치료받게 되며 자유가 역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성령이 역사하는 곳에는 항상 기적이 따릅니다. 또한 그것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제는 우리의 시간 속에 계시지 않습니다. 영원으로 되돌아가셨습니다. 과거 이천년 전에 우리의 시간 속에 잠시 계시던 예수님이 아니십니다. 죽었다가 부활하심으로 우리의 시간속에서 인간을 구원하시고 난 다음 영원한 주님으로 되돌아 가셨기 때문에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한 변화 없는 영원한 예수님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것입니다. 죄와 마귀의 권세를 영원히 멸하시고 이제 영원한 구주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성령을 통하여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16절로 18절에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누구입니까? 우리는 지금 살아계신 예수님과 함께 있습니까? 예수님은 무상한 인생의 시간속에 사는 우리에게 영원히 들어와서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시간적인 존재임과 동시에 영원한 존재인 것입니다. 시간적인 존재는 인간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시간적인 존재이지만 영원하신 예수님이 우리 안에 들어오셨기 때문에 동시에 영원한 존재인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생각 속에서 영원을 생각하고 영원을 꿈꾸고 영원을 믿고 영원을 입술로 고백할 때 영원한 기적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외로운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는 이제 더 이상 혼자가 아닙니다.
우리는 영원한 존재요, 영원한 축복의 근원인 예수님을 모시고 있는 것입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한 그분이 우리 속에 생명의 근원이 되어 거하시는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셔라. 그러면 네 뱃속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내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영원한 예수님이 우리의 목마름을 채워주시고 생수의 강이 되어 주시고 축복과 건강의 생명의 원천이 되어 주시고 쓴물을 달게 하는 영원한 은총이 되어 주시니 얼마나 좋은지 말로 다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영원한 예수님과 늘 대화해야 합니다. 항상 기뻐하고 쉬지 않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면서 영원한 예수님과 함께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영원에서 영원까지 변치 않는 생명을 가지고 있고 영원에서 영원까지 변치 않는 주님과 함께 살게 되었으므로 이제 우리도 영원한 존재가 된 것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이전 것은 지나가고 이제 새것이 된 것입니다. 영원하신 예수님을 모셨으니 이것을 생각하고 깨달아야 합니다. 이것을 생각하십시오. 그리고 이것을 꿈꾸십시오. 그리고 항상 바라보십시오. 그리스도가 영원히 우리 안에 계셔 영원의 존재로 변화된 우리를 바라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거짓이 없기 때문에 믿고 맡길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담대하게 고백해야 합니다. 이제 영원을 가진 사람처럼 말해야 됩니다. “나는 용서받은 의인이다. 나는 성령을 모신 거룩한 사람이다. 나는 마귀와 병을 이긴 사람이다. 나는 저주와 가난을 이긴 사람이다. 나는 천국 영생을 얻은 사람이다” 이렇게 영원을 가진 사람처럼 말해야 됩니다. 우리는 변화된 사람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변화무쌍한 시간 속에 살면서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영원한 생명과 구원을 가슴에 품고 사는 것이니 우리의 가슴속에 계신 예수님을 놓치지 말고 항상 감사하고 찬송하며 기도하고 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여 감사합니다. 우리는 변화무쌍한 세상에서 유한한 육신을 가지고 살고 있으나 현실세계의 모든 슬픔과 저주를 이기고 부활하신 영원히 계신 예수님, 우리를 용서하신 예수님, 우리를 거룩하게 만드는 예수님, 치료의 예수님, 축복의 예수님, 우리에게 영생부활을 주신 영원한 예수님이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같이 계시므로 영원을 품은 사람으로 변화된 것을 감사합니다. 이제 우리는 속이 텅빈 사람이 아닙니다. 영원을 품고 영원처럼 생각하고 영원처럼 꿈꾸고 영원처럼 믿고 영원처럼 말하며 살아가는 영원의 사람들이 된 것을 감사합니다. 이 믿음에 굳게 서서 영광을 체험하는 삶을 살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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