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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영, 생명의 영

에스겔 정용섭 목사............... 조회 수 2330 추천 수 0 2012.07.08 00:3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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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겔37:7-14 
설교자 : 정용섭 목사 
참고 : 2012년 5월27일 http://dabia.net/xe/594263 

jys.jpg 정용섭 목사

 

여호와의 영, 생명의 영

겔 37:7-14, 성령강림절 주일, 2012년 5월27일

 

     오늘은 모든 세계 기독교회가 성령강림절로 지키는 주일입니다. 성탄절, 부활절과 더불어 기독교의 삼대절기에 해당됩니다. 성탄절은 예수님이 탄생하신 날을 기리고, 부활절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을 기린다면, 성령강림절은 초기 기독교에 처음으로 성령이 강림한 날을 기립니다. 성령 강림 사건에 대한 이야기는 사도행전 2:1절 이하에 나옵니다. 예수님의 부활 승천 이후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이 오순절에 한 곳에 모였을 때 성령이 바람과 같은 소리, 그리고 불의 혀 같은 모습으로 강림했다는 것입니다. 초기 기독교는 성령강림으로 인해서 아주 역동적인 공동체로 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이런 점에서 초기 기독교와 그 뒤를 잇는 오늘의 기독교는 성령 공동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성령강림이라는 말을 들으면 어떤 생각이 떠오르십니까? 가장 일반적으로는 초자연적인 은사활동일 겁니다. 방언, 신유, 투시 등등입니다. 한국에서 이런 현상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교회는 ‘하나님의 성회’, 일명 순복음교회입니다. 모든 순복음교회가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전체적으로 방언과 신유를 강조합니다. 이런 현상은 성경에도 종종 나옵니다. 방언 현상은 주로 열광적인 경향이 강했던 고린도교회에 두드러졌습니다. 사도행전에도 그에 대한 간단한 언급이 자주 나옵니다. 신유는 신적 능력으로 병이 치료되는 현상인데, 복음서에 많이 나옵니다. 성경에 나온 현상이라고 해서 그것이 오늘 우리에게도 똑같이 반복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갈릴리 호수 위를 걸었던 베드로처럼 자신도 믿음으로 한강을 걸어서 건너보겠다고 시도했습니다. 막 16:18절에 따르면 믿는 자들은 무슨 독을 마시든지 죽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성경이 기록되던 시대의 사람들은 지금 우리와 전혀 다른 세계관에서 살았습니다. 우주가 하늘과 땅과 땅속이라는 삼층으로 되었다고 보았고, 지구가 도는 게 아니라 태양과 별들이 지구를 중심으로 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땅속과 바다속이 바로 지옥이며, 자연에 주술적인 힘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대다수 고대 종교는 태양을 신으로 섬겼습니다. 성경이 기록되는 시대의 사람들이 방언과 신유를 성령강림 현상으로 이해한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성경이 잘못되었다고 말하면 안 됩니다. 비록 고대의 물리적 한계를 그대로 담고 있지만 하나님 경험이라는 차원에서 성경은 진리입니다. 성경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과 같은 겁니다. 비록 손가락에 흠집에 있다고 해도 달을 정확하게 가리키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습니다. 중요한 건 손가락만 볼 게 아니라 손가락이 가리키고 있는 달을 봐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초기 기독교는 바람과 불의 현상을 통해서 성령을 경험했습니다. 그 사건을 우리는 오순절 성령강림이라고 말합니다. 

 

    그런 경험이 구약에도 나옵니다. 에스겔은 어떤 환상을 경험합니다. 겔 37:1절은 이렇습니다. “여호와께서 권능으로 내게 임재하시고 그의 영으로 나를 데리고 가서 골짜기 가운데 두셨는데 거기 뼈가 가득하더라.” 뼈들이 많았고 아주 말랐다고 합니다. 어떤 독재자가 주민들을 집단적으로 살해한 장소일까요? 전쟁 중에서 죽은 사람들의 시체일까요? 에스겔 선지자는 여호와의 말씀을 듣습니다. “내가 생기를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겔 37:5) 생기는 살아있는 기운입니다. 그 뒤로 모든 일들이 그대로 진행되었습니다. 뼈들이 서로 연결되면서 사람의 형태를 이루어갑니다. 힘줄이 생기고 살이 붙었고 가죽이 덮였습니다. 그러나 ‘생기’는 없었습니다. 생기가 없었다는 말은 숨을 쉬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그 숨은 곧 영입니다. 에스겔은 생기에게 여호와의 말씀을 전하라는 명령을 듣습니다.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자 그들이 다 살아나서 큰 군대를 이루었다고 합니다. 

 

    에스겔 선지자가 전하고 있는 이 이야기가 무엇을 가리킬까요? 이런 이야기를 실제로 일어난 사실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은 없겠지요. 이것은 에스겔 선지자의 예언자적 상상력입니다. 그 시대를 향한 설교이며 시적 상상력입니다. 상상력이라는 표현을 오해하지 마십시오. 망상이나 야망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영적 희망이라고 말하는 게 좋습니다. 에스겔은 11절 이하에서 자기가 본 환상을 해석합니다. 골짜기에 널려있는 뼈들은 이스라엘 온 족속입니다. 뼈들이 마른 것처럼 이스라엘에게 희망이 없습니다. 여호와께서 에스겔에게 이렇게 말씀을 주십니다. “내 백성들아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너희로 거기에서 나오게 하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게 하리라.”(겔 37:12) 이런 일이 일어나면 이스라엘은 여호와를 알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에스겔은 마지막으로 이렇게 여호와의 말씀을 전합니다. 이게 바로 에스겔 선지자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고 싶은 중심 메시지였습니다. “내가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가 살아나게 하고 내가 또 너희를 너희 고국 땅에 두리니 나 여호와가 이 일을 말하고 이룬 줄을 너희가 알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14절) 

 

    지금 에스겔과 이스라엘이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를 보십시오. 에스겔 선지자가 활동하던 시기는 기원전 597-571년입니다. 예루살렘 바벨론에 의해서 초토화된 587년을 전후한 시기입니다. 당시는 마른 뼈가 골짜기에 뒹구는 것과 같은 패배주의와 냉소주의가 팽배했습니다. 그럴만합니다.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실제적인 수도이기도 하지만 정신적인 지주이기도 했습니다. 그곳에 왕궁이 있었고 성전이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의 모든 것이 파괴되었습니다. 지도자들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갔고, 예루살렘은 바벨론 관리들에 의해서 식민통치를 받았습니다. 완전히 나라가 망했습니다. 구원의 조짐이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이제 그들은 모든 걸 체념한 채 세월이 가기만 기다릴 뿐이었습니다. 그런 방식으로 역사에서 사라진 민족은 많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스라엘은 신학적인 질문을 하게 되었습니다. 자신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맞는지 질문한 겁니다. 만약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한다면 하나님이 그들을 지켜줘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완전히 망했습니다. 어디에 문제가 있을까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지켜줄만한 능력이 없으셨을까요? 이런 질문은 당연한 겁니다. 이스라엘 선지자들과 학자들은 이런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았습니다. 그들 중의 한 사람이 에스겔입니다. 그는 마른 뼈 이야기를 통해서 이스라엘 민중들에게 대답했습니다.

 

     살리는 영

     본문은 그 대답을 명확하게 제시합니다. 이스라엘이 지금은 골짜기에 쌓여 있는 마른 뼈처럼 절망적이지만 여호와께서 생기를 불어넣어 살리신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살아난다는 것은 바벨론 포로의 운명에서 벗어나 고국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지금은 여호와께서 무능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여호와께서 곧 이스라엘에게 영을 주시고, 그래서 그들이 살아납니다. 

 

    이런 에스겔의 영적 통찰력은 그렇게 간단히 주어지는 게 아닙니다. 에스겔은 특별한 영적 감동을 통해서 그걸 뚫어보았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이런 메시지를 전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거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대개 두 가지 방식으로 세상을 읽고 생각하고 그렇게 살아갑니다. 하나는 현재의 상황만 보는 것입니다. 바벨론 포로라는 상황은 대다수 사람들을 절망하게 합니다. 그런 상황에 대충 어울려서 살게 됩니다. 다른 하나는 과거를 보고 미래를 보는 것입니다. 역사학자들은 이런 방식으로 미래를 예측합니다. 역사학자들의 방식으로 본다 하더라도 이스라엘에는 아무런 희망이 없습니다. 바벨론 제국은 결코 허물어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에스겔은 전혀 다른 차원에서 역사를 보았습니다. 현재의 억압적인 상황에만 머물러 있지 않았고, 또는 역사과학적인 차원에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그는 영적인 차원으로 들어갔습니다. 이런 선지자들의 경험을 신탁(神託)이라고 부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경험입니다. 선지자들은 다른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한다고 해도 자신의 그런 신탁경험에 의지해서 하나님 말씀을 대언했습니다. 

 

    에스겔은 하나님의 영이 고유한 방식으로 세상을 통치한다고 보았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영을 선택한 백성들에게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 영은 사람과 세상을 살립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영인 성령은 기본적으로 생명의 영, 즉 살리는 영입니다. 살리는 능력입니다. 에스겔은 그 사실을 마른 뼈가 여호와의 생기를 통해서 큰 군대를 이루는 환상에서 보았습니다. 초기 기독교의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도 곧 살리는 힘이 그들과 함께 했다는 뜻입니다. 

 

    생명의 영, 살리는 영이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우리는 이것을 보통 세상살이 문제로 생각합니다. 불치병에 걸렸던 사람이 치료되었다거나 부도에 몰렸다가 기사회생했다거나, 실연의 슬픔에서 다시 힘을 얻는 것들입니다. 오랫동안 취업을 못하던 사람이 마음에 드는 직장을 얻는 것도 중요합니다. 성령은 분명히 이런 일상의 능력을 주십니다. 그 일상은 지금 우리가 세상에서 생명을 경험하는 실체입니다. 이런 생각은 기본적으로 옳지만 극단적으로 나가면 기복주의에 빠집니다. 모든 일상이 다른 사람보다 더 월등해야만 살아갈 힘을 얻게 됩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대사회가 그렇습니다. 소유와 소비를 늘리는 방식으로만 생명을 경험하려고 합니다. 모두 경쟁의 대열에서 낙오되지 않으려고 무한정 힘을 쏟습니다. 어떻습니까? 이런 방식의 삶에서 우리가 생명의 충만감을 경험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경쟁심리만 자극되고 있는 건 아닐까요? 생명의 영인 성령이 무엇인지를 알려면 생명이 무엇인지를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생명을 경험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생명은 사람이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서만 주어진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이건 더 긴 설명이 필요 없이 분명한 사실입니다. 여호와 하나님만이 창조주이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피조물입니다. 기독교 신앙의 대전제가 이것입니다. 우리는 생명을 받을 뿐입니다. 이는 생명이 우리의 생각을 뛰어넘는 사건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향해서 세상을 왜 이렇게 창조했느냐고 따질 수 없습니다. 소풍가기로 한 날인데 왜 비가 내리느냐고 불평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궁극적으로, 생명이 무엇인지 우리는 아직 모릅니다. 하나님의 영이 실행되어야만 우리가 알아챌 수 있습니다. 이런 설명이 복잡하게 들리시나요? 실감이 가지 않으시나요? 이게 얼마나 큰 은총인지 아시는 분들은 아실 겁니다. 쉽게 말해서 부자이며 건강한 사람만 생명 충만감을 느낄 수 있다면 그런 세상이야말로 불행합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행복할 것 같지 않은 조건에 사는 사람들이 행복하기도 합니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부부처럼 보이는데도 아주 잘 어울리기도 합니다. 생명의 능력이 임의로 부는 바람처럼 우리의 예상과 다르게 움직인다는 작은 증거들입니다. 

 

    기독교의 생명 경험은 한 가지로 집중됩니다. 그것을 여러분은 너무나 잘 아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에게 일어난 하나님의 구원 통치입니다. 복음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생명이라고 말합니다. 그를 통해서 죄의 용서가 가능해졌으며, 부활생명에의 참여가 가능해졌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생명이라면 바로 성령은 여호와의 영이면서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의 영입니다.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생명 충만감을 경험한다면 일상도 전혀 새로운 빛을 내게 될 것입니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이런 경험으로 카타콤에 들어가서도 예배를 드렸고, 극단적인 상황에서는 순교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에스겔에게 경험된 여호와의 영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영입니다. 그 영은 죽음의 무덤을 여는 생명의 능력입니다. 그 영이 초기 교회에 강림했습니다. 오늘 우리와도 함께 하십니다. 그분을 찬양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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