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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시126: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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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한규 목사 |
참고 : | 이한규 http://www.john316.or.kr |
꿈같은 축복을 얻는 길 (시편 126편 1-6절)
< 용서가 힘들 때 용서하십시오 >
구소련에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을 때 위기를 느낀 공산당과 군부가 수많은 탱크를 이끌고 러시아 광장에 진격했습니다. 그때 다른 시민들은 다 도망쳤지만 한 청년이 탱크 앞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그 뒤로 또 한 청년이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여러 청년들이 무릎을 꿇자 탱크는 그들을 넘어가지 못했습니다. 결국 탱크는 멈췄고 시민혁명이 성공했습니다. 그때 워싱턴 포스트는 기도하는 청년 사진을 싣고 이런 제목을 달았습니다. “소련 공산당의 탱크도 기도하는 한 청년을 넘지 못했다.”
기도는 절망을 희망으로 만듭니다. 아무리 사단이 강하고 문제가 커도 기도하는 성도를 무너뜨리지 못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겉으로 보면 절망 같았지만 그 십자가로 인해 인류에게 구원의 길이 열렸습니다. 그처럼 기도하면 십자가는 부활이 되고, 근심은 기쁨이 되고, 문제는 축복이 되고, 실패는 승리가 될 것입니다.
어느 날, 미국의 한 제재소 직원이 출근하자 책상은 사라지고 한 장의 편지만 있었습니다. 해고 통보였습니다. 아무런 설명도 없었습니다. 젊음을 바친 직장이 그렇게 비참하게 내치는 것을 보고 복수심이 생겼습니다. 복수심을 품고 열심히 새 직장을 알아보았지만 계속 퇴짜를 맞았습니다. 길이 보이지 않고 너무 심신이 지쳐서 자살을 결심했습니다. 바로 그때 아내가 그의 손을 꼭 붙잡고 말했습니다. “여보! 당신은 친구도 만나보고 여러 길을 찾았지만 한 가지를 안 했어요. 이제 하나님 앞에 기도해 보세요.”
그 말을 듣고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기도 중에 원망과 복수심은 사라졌습니다. 그러자 새로운 아이디어가 생겼습니다. 그는 미국의 여러 도시를 다니며 호텔 문제가 시급함을 깨달았습니다. 좋은 호텔은 너무 비쌌고 보통 호텔은 너무 더러웠습니다. 그래서 값싸고 친절하고 깨끗한 호텔을 짓겠다고 호텔 사업에 뛰어들었습니다. 그가 세계적인 호텔 체인인 홀리데이인의 회장인 게몬스 윌슨입니다.
절망적인 순간에 절망하지 마십시오. 그때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성령 충만하게 되어 원망과 불평과 복수심을 성령의 불로 태워버리고 마음을 감사로 채우십시오. 사업은 어렵지만 건강은 잃지 않고 자녀문제는 의외로 잘 풀리는 것을 감사하십시오. 그렇게 어려운 중에도 감사할 것을 찾고 현재의 시련에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다고 믿으십시오. 무엇보다 믿음과 예배하는 삶을 잃지 않은 것을 감사하고 미운 사람도 멋지게 용서하십시오.
며칠 전 새벽에 기도할 때 그 동안 용서하기 힘든 사람들을 죽 떠올리며 용서기도를 했습니다. 그처럼 용서하기 힘든 사람을 용서하십시오. 우리 교회는 축복 받는 교회가 되고 모든 성도가 축복을 준비해야 하기에 의지적으로 그 미운 사람을 용서하십시오. 죽도록 용서하십시오. 그들을 더 이상 미워하지 말고 그로 인해 성숙해졌다고 생각하십시오. 이제 자기만 들을 수 있는 암구호를 속으로 힘차게 외치십시오. “죽도록 용서하고 축복받자!”
축복 받고 선교 많이 하려면 용서를 통해 축복을 문을 열어야 합니다. 이제 용서하십시오. 잃은 것을 생각하지 말고 얻은 것만 생각하십시오. 그래서 하나님의 마음을 열고 축복의 문도 여십시오. 그처럼 용서하기 힘들 때 용서하고 감사하기 힘들 때 감사하면 하나님이 창조적인 아이디어와 최상의 연줄도 주셔서 조만간 꿈과 비전이 이뤄지는 찬란한 축복의 때가 오게 하실 것입니다.
< 꿈같은 축복을 얻는 길 >
살다 보면 누구나 절망적인 순간을 만납니다. 그처럼 절망적인 현실을 극복하고 내일의 찬란한 축복을 얻어 누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은혜에 감사하십시오
주전 538년 바벨론을 무너뜨린 고레스 왕의 선포로 이스라엘은 70년 만에 포로생활에서 귀환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본문 1절 말씀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보내실 때에 우리는 꿈꾸는 것 같았도다.” 기적적인 해방으로 그들은 “이게 꿈이냐 생시냐?”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때 그들의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혀에는 찬양이 찼고 지켜보던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역사에 감탄했습니다(2절). 또한 그들은 하나님이 행하신 큰일에 깊이 감사하며 기뻐했습니다(3절).
그처럼 기뻐하고 감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태도가 있습니다. 그것은 그 감사한 마음을 지속시키는 것입니다. 불행한 사람들의 제일 특징이 있습니다. 그것은 조금만 어려워도 감사한 일을 다 잊는 것입니다. 물론 슬픈 일은 잘 잊으십시오. 그러나 은혜 받은 일은 오래 기억하고 감사하십시오. 암이 걸렸다가 치유되면 나머지 삶은 사실상 보너스입니다. 더 나아가 지옥에 갈 사람이 구원받고 영생을 얻었다면 나머지 삶은 진짜 보너스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체질화시켜야 합니다.
1984년 저는 대학 졸업을 앞두고 형식적인 교회생활을 버리고 뜨겁게 믿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예배시간과 기도시간이 너무 좋았습니다. 입술에서는 늘 찬양이 넘쳤고 영안이 열려 보는 것이 다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영안이 열린다.”는 것은 신비한 투시 능력이 생긴다는 말보다는 세상과 사람이 아름답게 보인다는 말입니다. 살면서 추한 것만 보고 비판과 판단과 정죄를 일삼는다면 그것은 영안이 닫힌 것입니다. 이런 속담이 있습니다. “개 눈에는 똥만 보인다.” 그런 개 눈을 가지면 안 됩니다.
하나님이 “아무개야! 눈에 무엇이 보이느냐?”라고 물을 때 “하나님! 경제난이 보이고, 어려운 상황이 보이고, 사업이 안 되는 것이 보입니다. 남편은 이해심이 없고, 아내는 바가지만 긁고, 자식은 속만 상하게 합니다.”라고 대답하면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그때 이렇게 대답하십시오. “하나님! 사랑이 필요한 사람들이 보입니다. 감사할 일이 보입니다. 배우자와 자녀와 교우들이 사랑스럽게 보입니다. 고통도 축복의 전조로 보입니다.”
사랑의 렌즈를 끼고 아름다운 면을 보십시오. 또한 불평할 것은 작게 보고 감사할 것은 크게 보십시오. 그처럼 감사할 것을 크게 보고 힘든 현실에서도 원망하지 말고 그때 더욱 하나님이 은혜를 생각하십시오. 병에 걸렸든지, 사업이 흔들리든지, 무슨 어려운 일을 당했어도 이제까지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은 그 감사하는 믿음을 보시고 가장 적절한 때에 축복의 문을 활짝 열어 주실 것입니다.
2. 희망을 가지십시오
본문 1-3절 말씀에서는 시편 기록자가 크게 기뻐하다가 본문 4절부터는 분위기를 바꿔 비장한 기도를 합니다. 본문 4절 말씀을 보십시오. “여호와여 우리의 포로를 남방 시내들 같이 돌려보내소서.” 그때 귀환한 백성들에게는 큰 기도제목이 있었습니다. 어떤 기도제목입니까? 돌아와 보니까 예루살렘이 완전히 폐허가 되어 있었습니다. 성전도 폐허가 되었고 눈앞에 기다리는 것은 추위와 굶주림뿐이었습니다.
또한 아직도 바벨론에서 가족의 일부가 오지 못한 이산가족도 상당히 많았습니다. 게다가 믿음과 정체성의 회복을 위해 성전 건축을 하려는데 그곳에 이주해 살던 이방인들이 성전 건축을 방해했습니다. 기쁜 마음으로 귀환했지만 기쁨은 잠깐이고 고통스런 현실이 눈앞에 닥친 것입니다. 살다 보면 그런 경험이 얼마나 많습니까? 예배를 잘 드리고 말씀을 통해 은혜를 받으면 그때는 너무 기쁩니다. 그러나 다시 어려운 현실에 부딪치면 또 낙심이 찾아옵니다. 그것이 바로 인생입니다.
결혼 후 신혼여행을 떠날 때 얼마나 행복합니까?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너무 기뻐서 마치 꿈꾸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곧 그 가정에도 어려움이 찾아옵니다. 그처럼 무엇인가 좋은 일을 하려는데 고난과 갈등의 골짜기를 만나면서 인생의 내리막길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그때 실망하지 마십시오. 내리막길의 낙차에너지를 잘 이용하고 반동을 잘 이용하면 더 높게 올라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마십시오.
본문 4절에 나오는 ‘남방’은 히브리 원어로 ‘네게브’란 말로 광야를 뜻합니다. 결국 ‘남방 시내’란 ‘광야 시내’를 뜻합니다. 광야 시내는 건기에는 바짝 말라 있다가 비가 내리면 금방 시내가 강물로 변합니다. 그 사실을 염두에 두고 시편기자는 힘든 상황에서도 은혜의 단비를 주셔서 강물과 같은 축복이 넘치게 해달라고 기도한 것입니다.
믿음이란 과거에 구원해주신 하나님이 현재도 책임지시고 미래에도 최선의 길을 열어주실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간이 지날수록 더 축복을 받을 것이란 믿음과 기대와 희망을 가지십시오. 지금은 메마른 것 같고 가망이 없어 보이지만 간절히 기도하면 그 메마른 땅에도 강물이 넘치게 흐르는 역사가 나타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힘들면 찬란한 꿈과 비전을 새롭게 하고 기도로 하늘 문을 줄기차게 두드리십시오.
자녀가 잘 되기를 바라면 기도하십시오. “하나님! 저희 자녀들을 남방 시내들같이 돌려주소서!” 사업을 위해서도 기도하십시오. “하나님! 저의 사업을 남방 시내들 같이 돌려주소서!” 하나님은 왜 어려움을 주십니까? 낙심케 하기 위함이 아니라 더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도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힘들어도 희망을 가지고 계속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조만간 꿈꾸는 것과 같은 축복의 때가 찾아올 것입니다.
3. 씨를 뿌리십시오
본문 5절 말씀을 보십시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어려울 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눈물로 씨를 뿌리는 것’입니다. 위대한 믿음의 선진들은 다 그런 눈물이 있었습니다. 모세는 사랑하는 동족을 위해 “하나님! 저들의 죄를 용서하실 수 있다면 제 이름을 하나님의 생명책에서 제하셔도 좋습니다.”라고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사도 바울도 자신의 사랑하는 민족과 골육이 구원받을 수만 있다면 자신이 저주를 받아 끊어져도 차라리 그것을 원한다고 눈물로 고백했습니다.
어느 날, 미국에 찰스 피니 목사님이 시카고의 거리에서 지나가는 수많은 사람들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거리에서 펑펑 울었습니다. 같이 가던 사람이 물었습니다. “목사님, 왜 그렇게 우세요?” 목사님이 눈물을 그치고 말했습니다. “영생을 모르고 지옥으로 가는 저 무리들을 보니까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났습니다.” 그처럼 영혼을 위한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울고 잘못된 길로 가는 한국 교회를 위해서도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울 줄 아는 사람이 우리 중에 많이 일어나야 합니다.
눈물은 놀라운 치유 능력이 있습니다. 한국 사람은 누가 울면 “울지 마!”라고 하지만 그것은 잘못입니다. 울고 싶으면 울게 놔두십시오. 요한복음 11장을 보면 예수님도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영혼은 눈물의 물을 주어야 잘 자랍니다. 요새 얼마나 눈물이 말랐습니까? 이제 눈물을 찾으십시오. 그러나 감정적인 눈물만 흘리면 자기감정 해소만으로 끝나기에 눈물을 흘리며 동시에 씨를 뿌리십시오. 믿음과 기쁨과 축복은 빈둥거리며 노는 사람이 것이 아니라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사람의 것입니다.
이제 상처와 슬픔에 잠겨 할 일을 외면하지 말고 눈물로 씨를 뿌리십시오. 부지런한 꿀벌은 슬퍼할 틈이 없습니다. 꿈꾸는 것 같은 축복을 원하면 뒷짐만 지고 있지 말고 뒤에서 모함도 하지 마십시오. 눈물로 씨를 뿌려서 크려고 하지 않고 모함해서 크려는 것은 가장 사단적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함하지도 말고 모함하는 사람도 멀리하십시오. 조선시대에 겉으로는 윤리 도덕을 내세우면서 얼마나 많은 선비들이 모함으로 죽거나 유배를 당했습니까?
서양영화를 보면 정정당당히 결투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서로 등을 지고 열 발자국 후에 돌아서서 쏘자고 하면 그대로 목숨 걸고 합니다. 그런데 간혹 어떤 악인은 열 발자국 전에 돌아서서 상대를 쏩니다. 그러면 선인은 죽고 악인은 삽니다. 그러나 그 악인은 평생 욕을 먹기에 보통 사람들은 그 길을 가지 않지만 뻔뻔하게 그 길로 가는 사람들이 지금도 정치계, 경제계, 문화계, 교육계, 그리고 종교계에 얼마나 많습니까?
500억을 기부한다고 해서 장학재단이나 문화재단이나 사학을 만든 후 재단이사회에 친인척을 쫙 깔아놓고 재정권을 행사하면 결국 그것은 200억의 상속세를 안 내기위한 방편으로 기부를 이용한 셈입니다. 특히 사학은 학생들의 등록금과 정부 보조금 수입이 있기에 100억을 기부하고 이사회를 장악한 후 500억의 권리를 행사하는 비리가 얼마든지 생길 수 있습니다. 그것이 어떻게 기부입니까? 이제는 기부도 정말 순수한 기부인지 아니면 세금 거부 및 자기 세력 확대를 위한 정략적인 기부인지를 분별해내야 합니다.
부당한 씨를 뿌리면 정당한 열매가 생길 수 없습니다. 모함의 씨를 뿌리면 좋은 공동체가 될 수 없고, 절망의 씨를 뿌리면 희망을 거둘 수 없고, 부정적인 언어의 씨를 뿌리면 긍정적인 결과를 얻지 못합니다. 사랑을 원하면 사랑의 씨를 뿌리고, 영성을 원하면 말씀과 기도의 씨를 뿌리고, 지경이 넓혀지는 실질적인 축복을 원하면 열심히 땀을 흘리십시오. 믿는다고 땀까지 외면하는 허무한 영성주의자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어느 날, 신학교에서 성령론 시험을 치는데 한 성령 충만한 학생은 공부는 하지 않고 열심히 기도만 했습니다. 그리고 시험지를 받아보니 아는 것이 하나도 없어서 시험 중에 계속 기도만 하는데 마침내 성령님의 지혜를 주셔서 문제지 끝에 한 줄로 은혜롭게 답을 썼습니다. “교수님! 저는 몰라도 성령님은 다 아실 줄 믿습니다.” 그 답을 보고 교수님이 점수를 썼습니다. “성령님은 다 아니까 100점, 학생은 하나도 모르니까 0점.” 결국 낙제했습니다.
가끔 보면 그런 성령 충만한 낙제생들을 봅니다. 그것은 성령님에 대한 모독입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은 최선의 땀도 흘려야 합니다. 그래야 성령님이 그 연약함을 보충해주십니다. 어렵고 힘들수록 더욱 눈물로 씨를 뿌리십시오. 기쁨은 눈물과 비례합니다. 심은 대로 거둡니다. 심은 대로 거두는 원리는 역사상 최고의 경영학 원리입니다. 그처럼 어려워도 눈물로 씨를 뿌리면 반드시 기쁨으로 추수할 날이 올 것입니다.
4. 포기하지 마십시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라는 말은 씨를 뿌린 후에 참고 기다리라는 말도 포함합니다. 살다 보면 수시로 꿈과 비전을 포기하고 싶은 유혹이 옵니다. 그때 참으십시오. 너무 조급하고 감정적으로 나와서 이제까지 쌓은 것을 다 무너뜨리지 마십시오. 요새 모든 것이 빨라지면서 편한 면도 있지만 반면에 참을성이 없어진 것은 큰 문제입니다. 그래서 요새 마귀의 제일 전략 중의 하나가 사람들의 마음을 조급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조급할수록 더 침착해 지려고 하고 조금 더 참고 기다리십시오.
지금 내가 거두지 못하면 내 후손과 후배가 거둘 것이란 여유를 가지십시오. 그처럼 넉넉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십시오. 사람들은 자기 시간에 하나님이 맞추기를 원하면서 심지어는 기도 응답 시한까지 자기가 정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최적의 때가 있습니다. 그때까지 참고 어려움과 지루함 속에서도 믿음을 보여주십시오. 그러면 때가 되어 축복의 문이 열리고 삶의 가장 큰 성공 요인인 위대한 멘토도 얻을 것입니다.
사람이 꿈과 비전을 이루려면 두 종류의 사람이 꼭 필요합니다. 하나는 뒤에서 소리 없는 도와주는 루디아이고, 또 하나는 앞에서 이끌어주는 멘토입니다. 목회에서도 멘토가 도와주면 교회도 힘 있게 성장합니다. 주위를 보면 개척교회 목사님들 중에도 유능하고, 인격도 좋고, 말씀도 잘 전하는 목사님들이 많은데 왜 그분들이 목회에서 고전합니까?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는 멘토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처럼 멘토가 없어서 얼마나 많은 가능성 있는 리더들이 꿈과 비전을 펼치지 못하고 사장됩니까?
멘토를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이 은혜 주셔야 되지만 먼저 자신이 미래의 가능성을 바라보며 내일의 멘토와 함께 십자가를 지고 동고동락해야 합니다. 만 명의 성도가 있는 초대형 교회에 가서 열심히 섬긴다고 그 목사님이 자기의 멘토가 됩니까? 이미 성장한 큰 공동체의 높으신 리더는 거의 멘토가 되기 힘듭니다. 멘토관계는 대개 작은 공동체에서 기꺼이 십자가를 같이 지며 나갈 때 형성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눈앞의 큰 것에 몸담는 것은 잘하지만 꿈과 희망에 투자해서 개척자의 길을 걷는 것은 잘 못합니다. 그것이 결국 축복의 멘토를 얻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입니다. 축복의 멘토를 얻으려면 반드시 멘토와 함께 눈물로 씨를 뿌리는 시간을 내야 합니다. 천국은 겨자씨와 같습니다. 그 작은 겨자씨 안에 숨겨진 가능성을 보고 눈물로 겨자씨를 뿌리는 과정을 거쳐야 나중에 멘토도 얻고 축복도 얻습니다. 그처럼 힘든 현실 속에서도 계속해서 눈물로 씨를 뿌리면 조만간 반드시 열매를 거두게 될 것입니다.
< 눈물로 씨를 뿌리십시오 >
주님은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다.”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안타깝게 듣고 지금까지 구경하는 입장이었다면 이제 구경꾼에서 일꾼으로 나서십시오. 미국의 한 통계에 의하면 교인 중에 95%가 평생 한 명도 전도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그 정도는 아니지만 요새 많은 성도들이 전도를 포기한 상태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는 전도할 줄 몰라서 못한다고 하지만 사실상 전도는 방법과 기술로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과 마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고, 말할 수 없었던 헬렌 켈러를 가르칠 때 설리반 선생님에게 무엇이 필요했습니까? 그 선생님이 말했습니다. “그녀를 가르치는 단 한 가지 교육방법이 있었다. 그것은 사랑의 터치였다.” 사랑하는 마음은 기술과 방법을 능가합니다. 우리 분당샛별교회는 위로는 드리고 옆으로는 나누고 아래로는 베풀 줄 아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성도들을 많이 배출해서 교회가 이렇게 멋지게 잘 나눌 수 있구나 하는 모델 교회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눈물로 씨를 뿌리면 6절 하반부 말씀처럼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라는 말씀의 역사가 그대로 이뤄질 것입니다. 심은 대로 거두지만 씨앗 하나를 심고 씨앗 하나를 거두는 것이 아니라 씨앗 하나를 심으면 단으로 거두게 됩니다. 안드레가 자기 형제 베드로 한 명을 전도했지만 베드로가 오순절 날 한 번의 설교로 3천명을 거두었습니다. 그처럼 자신이 뿌린 씨 하나가 엄청난 단이 되어 돌아오는 역사가 있을 것입니다.
인터넷으로 말씀사역을 하면서 그런 상황을 체험할 때가 많습니다. 가끔 기도제목이 있을 때 무명의 헌신자들이 그 필요를 채울 때가 있습니다. 그때 감사 표현을 하면 대부분 오히려 자신이 그 동안 받은 은혜를 표현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고 합니다. 말씀의 씨앗이 그들의 마음에 소리 없이 뿌려져 차곡차곡 은혜가 쌓여왔던 것입니다. 때로는 밤을 새면서 말씀을 준비한 말씀의 씨가 어떤 심령에 떨어져 시간이 지나면서 소리 없이 단이 되어 돌아온 것입니다.
어느 날, 미국의 한 주일학교 보조 교사가 교회에 오다가 꼬마 넷이 골목에서 노는 것을 보고 전도했습니다. “예들아! 교회에 가자!” 그때 네 명의 꼬마들이 순순히 따라왔습니다. 그렇게 네 명의 양떼가 생기자 자기가 직접 가르치고 싶은 욕심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담임목사님께 반을 하나 따로 만들어 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정식교사가 되어 그들을 사랑과 말씀으로 잘 양육했습니다.
그로부터 오십년 후, 그 선생님이 50년 전의 골목길 꼬마들로부터 동시에 생일 카드 네 장을 받았습니다. 한 장은 중국 파송 선교사가 보낸 카드였고, 또 한 장은 미국 연방은행 총재가 보낸 카드였고, 또 한 장은 미국 대통령 비서실장이 보낸 카드였고, 마지막 한 장은 당시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허버트 후버 대통령이 보낸 카드였습니다. 오십년 전 그가 가르쳤던 네 명의 작은 씨가 큰 단이 되어 돌아온 것입니다.
지금 예배와 기도와 전도와 봉사의 씨를 뿌리는 일을 결코 과소평가하지 마십시오. 이제 기도하십시오. “하나님! 기쁨으로 축복의 단을 거두는 내일을 바라보며 사랑과 진리와 생명의 씨를 열심히 뿌리겠습니다. 속히 저희 제단에 예수 믿고 인물 되는 역사의 주인공들이 속속 등장해서 저희 교회가 나눔을 선도하는 한국의 대표적인 교회가 되게 하소서.” 그런 기도와 함께 눈물로 씨를 뿌림으로 마침내 큰 단을 가지고 돌아오는 복된 심령들이 되십시오.
ⓒ 글 : 이한규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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