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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왜 고난을 받으셨나?

마가복음 허태수 목사............... 조회 수 2710 추천 수 0 2012.07.28 23: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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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막3:20-29 
설교자 : 허태수 목사 
참고 : 2011.3.6 주일설교 성암교회 http://sungamch.net 

예수님이 왜 고난을 받으셨나?
막3:20-29

몇 년 전에, 예수님이 겪으신 고난을 실감나게 보여주는 영화가 상영되었습니다. 우리교회에서도 프로젝트로 상영을 했었으니까 여러분의 기억에도 남아 있을 겁니다. 모든 화면을 다 보여 드릴 수는 없고, 가장 중심 되는 부분만 한 번 더 보여드리겠습니다. 그런데 이영화가 상영 되고 난 후에 어느 성서학자가 TV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영화는 예수님이 고난 받는 처절한 장면을 실감나게 그렸으나 예수님이 왜 그런 고난을 받으셔야 하는지는 밝히지 않고 있다.“라고 말입니다. 고난 절기를 맞아 오늘 이 [Passion of Christ] 라는 영화를 중심으로 예수님의 수난의 의미를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이 영화는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땀을 흘리면서 기도하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거기에 횃불을 든 무리들이 유다를 앞장세우고 나타나죠. 예수를 포박하여 대사제인 가야바에게 끌고 가는 장면부터 폭력이 등장합니다. 가야바의 법정에 선 예수님은 온갖 수모를 당하시면서 심문을 받습니다. 예수를 해치려는 무리들은 여러 가지 증언을 들이대지만 어느 것 하나도 확증이 되지는 않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는 그렇게 고민을 하시던 예수님은 정작 무리들 앞에서는 침묵합니다.

이런 예수님에게 가야바는 “당신이 찬양을 받으실 분의 아들 그리스도요?”라고 묻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바로 그이요. 당신들은 내가 전능하신 분의 오른 쪽에 앉아 있는 것과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보게 될 것이오.” 하고 대답을 하시지요. 그러자 대 사제는 옷을 찢으면서 “이제 무슨 다른 증언이 필요할 것인가” 하면서 예수를 빌라도의 법정으로 끌고 갑니다. 그 과정에 베드로가 세 번씩이나 예수를 모른다고 하는 서글픈 장면이 나옵니다. 빌라도는 저들이 예수를 죽이려는 것은 질투에서 나온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를 석방하려고 애씁니다. 특히 빌라도의 아내는 밤에 예수가 거룩한 분이라는 꿈을 꾸고 빌라도에게 전갈을 보내어 그의 피에 손을 대지 말라고 권합니다. 예수 처형에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빌라도는 예수가 갈릴리 사람이라는 것을 알자 그를 헤롯왕에게 보내죠. 예수를 만나보고 싶었던 헤롯도 예수를 단죄하지 못합니다. 그리고는 다시 빌라도에 돌려보내죠. 빌라도는 다시 예수를 무리들 앞에 세우고 말합니다. “헤롯도 죽일 죄를 찾지 못하고 나에게 도로 보냈고 나도 그에게서 죽일 죄를 찾지 못하니 나는 그에게 매질이나 하여 석방을 하겠다.“라고 하면서 군인들을 시켜서 그에게 심한 매질을 하게 합니다.

쇠붙이들이 매인 채찍으로 매질을 하는 장면은 정말 무지막지합니다. 살이 찢기고 피가 흐르는 장면이란 차마 눈뜨고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머리에 가시관을 눌러 씌우고 무리들 앞에 끌고 나옵니다. 이를 본 무리들은 다시 그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칩니다. 빌라도는 다시 한 번 예수를 석방할 궁리를 합니다. 그는 살인강도 바나바를 끌어내어 무대 위에 세우고 “유월절이 되면 여러분이 원하는 죄수 한 사람을 석방하기로 되어 있소. 이제 이 예수를 석방할 것인지 아니면 이 살인강도를 석방할 것인지 말하시오“ 라고 묻습니다. 그러자 대사제와 그들의 충동을 받은 무리들은 바라바를 석방하라고 합니다. “유대인의 왕이라고 하는 이 예수를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빌라도가 묻자 대사제의 무리는 “우리에게는 가이사 밖에는 왕이 없오” 라고 화답합니다. 그리고 저들은 “만일 예수를 석방한다고 하면 당신은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오”라고 경고합니다.

그들의 뜻을 받아드리지 않으면 폭동이라도 일어날 것 같아 빌라도는 대야에 담아 온 물에 손을 씻으면서 “이 사람의 피는 나와 관계가 없다”라고 선언하면서 그 물을 무리들에게 뿌립니다. 이렇게 사형 언도를 받은 예수님은 무겁기 그지없는 십자가를 끌로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시면서 수 없이 넘어지고 꼬꾸라집니다. 지나가던 아리마태 요셉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도저히 사형장까지 올라갈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손과 발에 커다란 못을 박는 장면, 피투성이가 되어 십자가에 매여 달린 장면 등은 눈물 없이는 볼 수가 없었지요. 그런데 예수님은 그를 못 박는 병사에게 “알지 못하고 하는 일이기에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하고 기원합니다. 바른 편에 있는 강도에게는 “네가 오늘 나와 같이 낙원에 이르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의 어머니와 같이 서 있는 제자에게 어머니를 모시라고 부탁합니다. 그리고 얼마 있다가 “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라고 외치시더니 “다 이루었다”고 하시고는 머리를 떨어뜨리고 운명하셨어요. 그러자 천지가 어두워지고 지진이 일어나 모두 겁에 질리게 됩니다. 성전 휘장이 둘로 찢어지기도 했죠. 이 비참한 장면이 두 시간이나 계속됩니다.  

이 영화는 네 복음서에 있는 기사들을 종합한 것입니다. 그러나 가장 신빙성이 있는 기사는 주후 70 년경 예루살렘 성전이 로마 군병들에게 초토화 된 뒤에 쓰여진 마가복음서의 증언입니다. 이 증언에 보면 빌라도가 예수를 석방하려고 노력한 모습은 전혀 나타나지 않습니다. 대 사제들의 제소를 받은 빌라도는 무리들을 기쁘게 하려고 서슴지 않고 예수를 십자가에 처형하도록 넘겨줍니다. 그런데 주 후 90 년 후에 기록이 된 다른 복음서에는 빌라도를 예수를 석방하려고 노력한 인자한 사람으로 그려놓았습니다. 빌라도를 미화한 것입니다. 이렇게 된 까닭이란 당시 초대 교회와 로마 사이에 있은 긴장관계 때문입니다. 당시 초대 교회는 예수를 메시아라고 증언을 했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오시기 전에 복음을 땅 끝까지 전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로마는 유대인들의 독립운동을 몹시 경계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를 왕 중의 왕이라고 생각하는 초대교회는 될 수 있는 대로 로마와의 긴장을 해소하려고 했습니다. 따라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한 책임이 빌라도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유대교 지도자들에게 있다고 강조했던 것입니다. 실제로는 책임은 대사제들과 빌라도 양쪽에 꼭 같이 있는데 말이죠.

이제 우리들이 물어야 할 중요한 질문이 있습니다. 그것은 “왜 예수님이 이런 고난을 받으셔야 하느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자는 누구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왜 이런 고난을 받으셔야 했습니까? 이에 대한 전통적인 대답은 ‘그가 십자가의 고난을 받으신 것은 우리들의 죄 때문이다’라는 것입니다. ‘그가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 우리들의 죄가 사함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가 우리 모두를 위해서 십자가를 지셨다는 것은 두말할 것 없습니다. 그러나 그가 흘리신 피 공로로 우리의 죄가 속죄함 받았다는 것은 예수님의 수난의 의미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을 보면 예수님의 수난은 이보다 더 깊은 의미가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이제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을 살펴봅시다. 예수님이 하신 선포의 첫 마디는 “회개하라 천국이 문전에 도달했다”입니다. 가던 길을 돌아서기만 하면 과거의 죄는 다 용서함 받고 우리는 하나님 나라 시민이 된다는 것입니다. 막2장에 있는, 들것에 들려서 예수님을 찾아온 중풍 병 환자가 지붕을 헤치고 예수님 앞에 드려 내렸을 때, 예수님은 그를 보고 “네 죄는 이미 용서함 받았다”라고 선언을 하셨습니다. 간음을 하다가 잡힌 여인을 보시고도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라고 말씀하셨지요. 그의 주변이 몰려든 죄인과 세리들을 향해서 예수님은 한 번도 그들의 죄를 추궁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를 믿고 그에게 나온 것만으로 그들의 죄는 다 용서되었다는 것입니다. 탕자의 비유는 가장 좋은 예가 됩니다. 탕자가 돌아오자 아버지는 그냥 껴안아 주셨습니다. 그리고 기쁨에 찬 잔치를 벌였습니다. 아들의 과오를 추궁하시지 않았습니다. 깨닫고 돌아왔기에 그냥 기쁘시기만 했습니다. 예수님의 피 공로라는 말이 없지요?

예수님이 마지막 만찬에서 포도주 잔을 돌리시면서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언약의 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새 언약을 상징하는 피였습니다. 예수님은 이 사랑 때문에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죄를 용서하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은 게 아니라, 사랑 때문에 달려 죽은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기로 결단한 것은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율법학자들이 예수가 악령을 쫓아내는 것은 마귀의 왕 바알제불의 힘으로 한다는 어처구니없는 유언비어를 유포시키는 것을 보신 다음입니다. 예수님은 갈릴리에 있는 무리들을 목자 없는 양처럼 애절하게 느끼셔서 각 가지 병자들을 고치시고 악령을 추방하시고 떡을 때시면서 하늘나라의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갈 바를 알지 못해서 헤매던 무리들이 예수님 주변에 모여들어 인산인해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의 따뜻한 사랑의 품안에서 새로운 생명을 얻어 에스겔 골짜기의 군대와도 같이 늠름하게 서게 되었습니다. 이 얼마나 감격스런 일입니까? 그런데 이것을 보고 당황해 한 무리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바리새파 사람들과 헤롯 당원들입니다. 예수님의 영향이 확산 될수록 저들의 특권에는 손상이 있게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를 잡아 죽일 계획을 세우면서 예루살렘에 이 사실을 보고했습니다. 이 소식을 들고 허둥지둥 갈릴리로 내려온 율법학자들은 나사렛 청년 예수의 영향이 이만저만이 아닌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대로 두었다간 예수님의 영향이 갈릴리는 물론 온 유대 땅에 펴져서 자기들이 설자리가 없어지게 될 거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당황한 저들은 악랄한 유언비어를 유포시켰습니다. 예수는 마귀왕 바알제불의 힘으로 악령을 쫓는다고 말하는 것이었죠. 억눌렸던 무리들이 새로운 소망을 가지고 일어서는 것을 축하하지는 못 할망정 유언비어로 예수와 그 추종자들을 짓밟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유언비어가 엄청난 효과를 발휘했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와 동생까지도 이 말을 믿고 예수를 붙잡아 나사렛으로 데리고 가려고 했으니 말이죠. 그리고 예수님의 제자들까지도 당황해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한 가정이나 나라도 갈라지면 망한다. 사탄이 악령을 내어 쫓는다면 사탄의 왕국이 망할 것이다. 어찌 그럴 수가 있겠는가? 그러나 하나님의 영이 하시는 것을 훼방하면 용서받을 수 없다“라고 깨우치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율법학자들의 하는 짓을 본 예수님은 이를 묵과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그들과 대결하려고 결심하셨습니다. 이것은 고난을 자초하는 일이었죠. 그러나 인류를 극진히 사랑하시는 그는 생명 운동을 해치는 그들을 그대로 둘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루살렘을 향해서 발걸음을 옮기신 것입니다. 그리고 보면 예수님이 고난을 받으신 것은 우리의 죄 때문이 아니라 악령의 세력에서 우리를 구출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그가 예루살렘에 올라가셔서 하신 일을 보세요. 로마와 손을 잡고 자기 배 채우기에 여념이 없는 성전에 가서 채찍을 드셨지요?. 그리고 이것이 십자가의 고난을 초래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를 위한 그의 사랑의 극치입니다. 이렇게 고난을 겪으신 결과는 무엇입니까?

첫째로 그 동안 유대인들이 숭배해 왔던 대 사제의 무리와 바리새파 사람들의 가면이 완전히 벗겨진 것입니다. 그들이 거룩한 하나님의 종들인 줄을 알았는데, 자기 배만 생각하는 악당이라는 것이 밝혀진 것입니다. 따라서 다시는 그들에게 현혹될 까닭이 없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의 마수에서 해방이 된 것입니다.
둘째로 예수님의 고난과 부활을 통해서 사랑이 폭력보다 강하다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사랑으로 나를 줄 때 50 배 100 백의 열매를 맺는다는 것을 확증해 주셨습니다. 따라서 모두 대담하게 사랑의 대도를 걷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다음 제자들의 변화된 모습을 보십시오. 대 사제들의 공갈을 두려워하지 않고 당당히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하지 않았습니까?

깁손이 제작한 예수님의 수난이란 영화는 탐욕에 사로잡힌 자, 힘의 철학에 노예가 된 자들의 포악함을 들어냈을 뿐 예수님의 삶의 의미는 밝혀주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관람자들에게 유대인에 대한 혐오감만을 조장시켜 주었습니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자란 유대인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탐욕에 사로잡힌 자, 권력에 도취한 자들이란 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는 자들입니다. 그리고 2 천 년 전에 유대나라의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를 죽음의 자리에 몰아넣었다고 해서 덮어놓고 유대인들을 증오해서도 안 됩니다. 우리도 탐욕과 권세욕에 사로잡히면 예수의 손발에 못을 박는 자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예수님의 수난에서 사랑의 계약의 진리를 발견해야 합니다. 그 넓으신 하나님의 사랑의 품에 돌아오면 우리들의 죄는 용서함을 받고, 하늘나라의 잔치에 참여한다는 것, 그리고 사랑의 힘이 이 세상의 폭력보다 강하다는 것을 믿고 대담하게 나를 주면 50 배 100 배의 열매를 맺는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이것에 예수님이 자신의 전부를 던져서 우리를 깨우쳐 준 것입니다. 이 진리를 따라 사는 사람이 자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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