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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가 왕 노릇 못하는 나라

로마서 김필곤 목사............... 조회 수 2754 추천 수 0 2012.07.30 23:5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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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롬5:12-21 
설교자 : 김필곤 목사 
참고 : 2012.4.1 열린교회(용인) http://www.yeolin.or.kr 

좋은 세상 만들기(2) 죄가 왕 노릇 못하는 나라
로마서5:12-21

오늘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을 기념하는 고난 주일입니다. 예수님은 좋은 세상을 만들려고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인간을 근본적으로 불행하게 만드는 죄의 문제,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인간 세상은 좋은 세상이 될 수가 없습니다. 이 중에는 나는 죄와는 무관하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오늘 날같이 자유스런 시대에 무슨 죄를 이야기 하냐고 생각하시는 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고 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유쾌하고 행복하게 살 수 없습니다. 목사도 성자도 마찬가지입니다. 미국에 유명한 목사님 중에 찰스 스윈돌이라는 분이 계십니다. 모범적인 목회를 하고 좋은 설교를 잘하기로 유명한 목사님입니다. 한 번은 주일 설교를 하면서 "우리 크리스천들은 법과 질서를 지켜야합니다. 교통신호도 정확하게 지키십시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예배가 다 끝나서 집에 돌아가는 길에 그만 이 목사님이 딴 생각을 하다가 빨간 불인데도 모르고 지나갔답니다. 깜짝 놀라서 옆을 보니까 자꾸 사람들이 쳐다보는 것 같았답니다. 목사님은 순간적으로 '아, 교인들이구나! 내가 설교해놓고 내가 규칙을 어기다니...' 라고 생각하며 교인들에게 들킨 것 때문에 너무나 창피했답니다. 죄인은 들킨 죄인과 안들 킨 죄인 스스로 죄인임을 자백하는 죄인이 있을 뿐입니다. 목사님이 누군가에게 죄가 들킬 때 얼마나 창피하겠습니까? 지난 주 만만만 생명운동 일로 필리핀에 두 분의 이사와 함께 갔다 왔는데 한 분이 공수부대 헌병 출신입니다. 그 분이 헌병으로 근무할 때 이야기를 해주며 근무하면서 깨달은 것 중의 하나가 “얼마나 인간이 죄인이라는 것을 철저히 깨달았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몸 파는 여인들이 있는 곳을 순찰하면 그렇게도 착하게 보이던 군인들이 그곳에 와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누구도 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얼마 후 교인들로부터 전화가 왔답니다. "목사님, 아까 차 가지고 지나가셨죠? 내일 우리 교인들이 목사님을 만나고 싶습니다." 목사님은 '교인들이 아마 따지려고 그러나 보다'라고 생각했답니다. 속으로는 무척 걱정스러웠답니다. 아주 유머가 풍부한 목사님은 점심 약속 시간에 목에다 무얼 걸고 나가셨답니다. '나는 죄인이다'(I am guilty)라고 쓰 것을 목에 걸고 나타나니까 교인들은 배꼽을 잡고 웃으면서 박수를 치고 환영했답니다. 그 때 목사님은 갑자기 뒤로 돌아 섰답니다. 등에는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쓰여 있었답니다. 죄의 문제가 해결될 때 세상은 살맛나는 세상, 아름다운 세상, 좋은 세상이 됩니다. 우리 예수님은 우리를 불행하게 만드는 이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죄가 왕노릇하지 못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분명하게 가르쳐 주시고 있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은 한 사람이라는 말이 강조되고 있습니다(11,15,16,17,19). 10번이나 나오고 있습니다. 한 범죄와 한 행동까지(18) 합하면 무려 12번이나 나오고 있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한 사람은 한 사람 아담과 한 사람 예수님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 아담 때문에 죄가 들어와 좋지 않은 세상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 사람 예수 때문에 죄의 문제가 해결되어 좋은 세상이 왔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자세히 관찰해 보면 크게 두 단락으로 나누워져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12절 이하는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로 시작된 좋은 않은 세상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18절 이하는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로 시작된 좋은 세상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죄가 왕 노릇하지 못하는 좋은 세상은 어떤 세상입니까?

1.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의 결과인 죽음에서 해방되는 세상이 좋은 세상입니다.
인간을 가장 불행하게 하는 것은 죄의 결과로 파생된 죽음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이것은 누구로부터 들어왔습니까? 12절을 보십시오. 한 사람 아담으로부터 들어왔습니다.
한 사람 아담의 영향력(12)으로 죄가 세상에 들어왔습니다. 창세기 3장에 죄가 들어오기 전에는 세상은 참으로 행복하고 아름다운 세상입니다. 영생을 누리는 삶입니다. 죽음이 없는 세상입니다. 하나님과 영적인 교제를 누리며 세상의 노예가 아니라 세상을 다스리는 삶입니다. 인간관계로 고통 받지 않는 세상입니다.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말하는 세상입니다." 자신의 몸처럼 서로 사랑하고 이해하는 사이입니다. 그러나 죄가 들어오니까 하나님에 대하여 어떻게 합니까? 창세기 3장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숨습니다(8). 두려워합니다(10). 인간끼리 어떻게 합니까? 서로를 보고 수치를 느낍니다(7) 서로 사랑하고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원수 시 합니다(12). 저 여자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고통이 따릅니다. 자연도 저주를 받아 자연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싸우며 살아야 합니다. 땀을 흘려야 먹을 수가 있습니다. 죄가 들어오면 모든 관계는 뒤틀리기 시작합니다. 죄의 결과 사망이 들어 왔습니다. 사망은 우연히 생긴 것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이 자연스럽게 사망에 이르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결국 죄의 대가였습니다. 먹는 날에는 사는 것이 아니라 정녕 죽으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어김으로 말미암아 죽음이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와 사망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대표와 연합의 원리입니다. 하나님께서 한 사람 아담과 언약을 체결하였습니다. 아담이 이 언약을 지키면 모든 인류는 아담 안에서 참 행복과 안식을 누릴 수 있지만 아담이 이것을 어기면 아담 안에서 다 그 책임을 면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담의 범죄로 우리 인간은 모두다 그 죄에 참여하게 되었고 그 결과 아담이 맛보았던 죽음을 맛보아야만 했던 것입니다. 미국과 FTA를 체결하였습니다. 이것을 놓고 반대파와 지지파가 싸우고 있습니다. 대표자들이 체결하였지만 국민 모두에게 적용이 됩니다. 그 체계 앞에서 살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담 안에 사는 모든 인류는 죄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13-14) 어떤 사람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율법을 주시기 전에도 죄가 있었느냐고 질문할 수도 있습니다. 억울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오늘 성경은 죄는 율법 전에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가인은 아벨을 죽였습니다. 노아 시대 때는 죄악이 관영하였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죄는 유황불을 불러들였습니다. 율법이 없을 때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였을 뿐입니다. 죄가 없었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사람이 범죄하고도 철저한 죄의식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형벌을 받는 기준점이 없었기 때문에 죄를 지면서도 죄의식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망이 왕 노릇하였습니다. 사망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망을 왕 노릇을 못하게 되었습니다. 21절을 보십시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와 죽음을 정복하고 영생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왜 십자가를 지셨습니까?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사 53:5)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사 53:6)” 인간을 불행하게 만드는 죄의 문제, 죄의 삯으로 주어진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내의 죄 때문에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사실을 믿고 회개하면 누구든지 죄 사함 받고 좋은 세상의 주인공이 될 수 있고 이런 사람들이 사는 곳이 좋은 세상이 되는 것입니다.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 (사 1:18)”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요일 1:9)”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사 43:25)”
오늘 고난 주일을 맞이하여 죄 사함의 복을 누리고 죄와 죽음의 문제를 해결 받는 좋은 세상을 만드는 주인공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2.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신분이 죄인에서 의인으로 변화되는 세상이 좋은 세상입니다.
한 사람 아담의 범죄로 인간은 어떤 신분의 사람이 되었습니까? 18절을 보십시오.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아담의 불순종으로 모든 인류에게 영향력을 끼친 것입니다(창3:17-19, 롬5:18.19. 6:21). 19절을 보십시오. 죄인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으로 (요6:38,롬5:18,19, 히5:8-9) 어떤 결과가 주어졌습니까?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이 의롭다하심을 받게 되었습니다. 19절을 보십시오. 의인이 된 것입니다. 한 사람의 범죄로 정죄에 이르렀습니다(18). 한 사람의 불순종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이 되었습니다(19). 한 사람의 의의 행동으로 많은 사람이 의롭다함을 받았습니다(18).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었습니다(19). 예수님은 바로 우리를 의인이 되게 하기 위해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죄인인 우리를 의인으로 만들어 주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롬 3:24)” 그래서 누구도 우리를 정죄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아직 우리가 완전한 성화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허물이 있고 부족함이 있습니다. 그러나 신분으로는 의인입니다. 그러나 사탄은 계속 우리를 정죄합니다. “너 같은 것이 예수 믿는 사람이냐? 네가 진정 구원받았느냐?” 의롭다고 하는 신앙인들은 계속 정죄를 합니다.
어느 시골교회 나 잘난 권사님이 있었다고 합니다. 새벽기도회도 잘 나오고, 수요 기도회, 주일 예배, 저녁 예배 빠지지 않고 다녔습니다. 그런데 장로님을 보면 새벽기도회를 나오지 않는 사람도 있고, 어떤 권사님은 주일 대예배만 참석하기도 했답니다. 교인들은 행실을 보니 세상 사람들이나 별 차이가 없게 보였답니다. 그러나 어느 날 제직회 때 이 권사님이 작심하고 발언을 하였답니다. “우리 교회 교인들의 반은 한마디로 돼지보다 못해요!” 교인들은 아우성을 하며 “권사님은 발언을 취소하라! 발언을 취소하라!”라고 했답니다. 목사님이 설득하여 발언을 취소하게 했는데 권사님은 “좋아요 취소하죠. 우리 교회 교인들의 반은 돼지보다 못하지 않습니다.” 화가 풀리지 않은 교인들은 예배 후 나잘난 권사님 집으로 몰려갔답니다. “우리가 권사님보고 돼지라고 하면 되나요? 안되나요?” “물론 안 되지!” 교인들은 돼지우리를 가리키며 그럼 저 돼지들에게 권사님이라고 부르는 건 상관없죠? 돼지에게 “권사님! 권사님!”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권사님의 잘난 코가 돼지 코가 돼버렸답니다. 우리는 의의 경쟁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의의 경쟁을 하는 바리새인을 향하여 예수님은 회칠한 무덤이라고 책망합니다. 그 권사님이 죽어 하나님께 갔답니다. 그런데 천국 입구에 엄청나게 많은 시계가 걸려 있고 그 시계 밑에는 사람들의 명패가 일일이 붙어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에게 그 이유를 물었답니다. "여긴 왠 시계가 이렇게 많이 걸려 있죠?" 그러자 베드로가 "여기에 걸려있는 시계는 자신이 세상에서 살 때 나쁜 일을 한 만큼 시계 바늘이 빠르게 돌고 있느니라."라고 말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사님의 시계를 보았답니다. 빨리 돌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장로님의 시계를 보았답니다. 더 빨리 돌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교인들의 시계를 보았답니다. 다 빨리 돌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렇지 이 인간들이 그렇게 살더니 여기 와 보니 증명이 되는 군’ 자신의 시계를 찾아보았답니다. 그런데 없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에게 물어 보았답니다. "전 나쁜 일을 하나도 안 해서 내 시계가 없나보죠?" 그러자 베드로가 하는 말이 "당신의 시계는 너무 빨리 돌고 있어서 모세 할아버지가 지금 선풍기로 쓰고 있소!"라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누가 웃자고 지어낸 이야기지만 뼈대가 있습니다. 우리는 부족하지만 그 누구도 정죄하지 못합니다. 8장 33절을 보십시오.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롬 8:33)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롬 8:34)”
“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롬 8:35)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롬 8:37)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롬 8:38)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롬 8:39)”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정죄로부터 해방된 의인들입니다. 이런 의인들이 사는 세상이 좋은 세상입니다. 이런 의인들이 사는 세상이 완전하지 못하지만 좋은 세상입니다.

3.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생명 안에서 풍성한 삶을 누리는 세상이 좋은 세상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인에서 의인으로 신분이 회복되었습니다. 죄의 문제가 해결되어 사망에서 해방되었습니다.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왕 노릇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17절을 보십시오. 예수를 믿기 전에는 사망이 왕 노릇합니다. 그러나 은혜로 말미암아 의로운 사람들이 된 사람은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하게 됩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죽음의 공포 속에서 살지 않습니다. 18절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달리심으로 우리는 의롭다함을 받게 되었습니다. 20절을 보십시오. 예수를 믿어도 죄를 짓고 삽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죄로부터 완전히 격리된 무균실에서 사는 것이 아닙니다. 여전히 죄가 있는 곳에 살며 죄를 숨 쉬듯 짓고 삽니다.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은혜가 넘쳐서 생명 안에서 왕노릇하게 만드셨습니다(20-21) 율법이 온 후에는 오히려 죄가 더욱 넘쳐났으나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하나님의 은혜는 더욱 넘칩니다.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하였으나 우리는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우리의 행위가 부족하여도 신분이 왕 같은 제사장이 되었으니 왕 노릇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왜 이 땅이 좋이 않은 세상이 되었습니까? 자신이 왕 노릇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말씀한 에덴동산은 자신이 왕이 되고자하는 인간의 반역으로 좋지 않은 세상이 된 것입니다. 죄가 없는 좋은 세상은 하나님이 왕으로 다스리는 세상입니다. 그런데 아담이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합니다. 자신이 왕이 되려고 합니다. 스스로 하나님의 통치를 받지 않고 자신이 통치하여고 합니다. 사단은 아담에게 하나님의 통치를 거슬러 선악과를 먹음으로 “하나님 같이 되라”고 충동질합니다. 결국 아담은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하나님같이 되라는 사탄의 말에 순종합니다. 그 결과 아담은 하나님같이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를 벗어나 죄가 왕 노릇하는 사탄의 통치 아래 굴러 떨어진 것입니다. 자신이 왕이고 자신이 신이고 자신 스스로 생명을 확보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진 것입니다. 이것이 교만입니다. 스스로 삶을 주관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스스로 안녕과 행복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스스로 미래를 보장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것이 죄입니다. 죄의 본질은 스스로 하나님같이 되고자하는 것입니다. 스스로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무한한 자원을 거부하고 자신 안에 내재하는 유한한 자원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무한한 하나님과의 생명의 관계를 거부하고 무한한 하나님과 교제의 관계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풍성한 삶을 살지 못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자원은 유한합니다. 장소적으로, 시간적으로, 지혜와 능력으로, 유한하여 결핍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자원의 결핍에서 모든 고난이 나오는 것입니다. 시간 속에 존재하기 때문에 늙고 병들고 쇠약해지고 죽는 것입니다. 장소적 제약 가운데 있기 때문에 충분한 자유를 누리지 못합니다. 지혜와 능력의 부족 때문에 불안하고 문제를 해결하지 못합니다. 사랑이 부족하기 때문에 갈등에 빠집니다. 그러므로 불안, 병고, 압제, 빈곤, 갈등, 폭력, 죽음 등의 모든 고난은 인간의 유한성, 결핍성에서 오는 것입니다. 왕 되신 하나님의 부요함을 거부하고 스스로 왕노릇하려은 죄의 결과로 온 것입니다. 그러나 한 사람 예수님은 왕 되심을 포기하고 십자가에서 종으로 죽었습니다. 그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왕 같은 제사장으로 살게 된 것입니다. 죽음으로부터 자유를 누리며 살 수 있습니다. 율법의 속박으로부터 자유를 누리며 살 수 있습니다. 죄의 속박으로부터 자유를 누리며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수많은 고난으로부터 참 자유와 행복을 누리며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떤 어려움이 와도 우리는 주님 안에서 풍성한 삶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서”를 지은 벤자민 슈몰크(Benjamin Schmolck)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당시는 30년 전쟁(1618-1648)으로 인하여 독일이 다 폐허가 되고 흑사병까지 돌아서 고통을 겪고 있는 때였습니다. 1600만 명이었던 독일 인구 중 천만 명이 사망하였다고 합니다. 얼마나 참혹한 현실이겠습니까? 가장 치열한 격전지였던 실레지아라는 곳에서는 전쟁이 끝난 후 대부분 주민이 종교 개혁 이전의 천주교로 돌아 가 버렸답니다. 승리한 가톨릭의 세력은 더욱 더 개신교를 탄압하고 있었답니다. 벤자민 슈몰크 목사님은 루터교 목사로 그곳에 부임하였답니다. 종탑도 없고, 그저 통나무와 흙벽으로 된 예배당 하나만 그곳에 덩그렇게 서 있었답니다. 목사님이 담당해야 할 교구는 주변의 36개 마을 이었답니다. 박해가 심해 종탑도 세울 수 없었고 심지어는 장례식도 허락을 받고 치를 수 있었답니다. 그러나 목사님 부부는 행함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복음을 들고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헌신하였고 과로로 자주 쓰러졌고 급기야는 30대 초반에 중풍과 백내장을 앓아야 했답니다.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그의 정열은 그것들도 막을 수 없었답니다. 36개 마을을 빠짐없이 심방하였는데 1704년 어느 날 32세가 된 슈몰크 목사님이 사모님과 함께 먼 곳에 있는 병든 교인을 심방하고 돌아왔다고 합니다. 돌아와 보니 교회는 불타버리고 사택도 불타버리고 아들딸이 서로 끌어안은 채 불에 타 죽어 있었답니다. 그 엄청난 사건 앞에서 그는 몸부림치며 아이를 붙들고 울다가 하나님 앞에 기도를 드렸답니다. 마을 사람들은 '목사님께서 너무 절망해서 아마도 목사를 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목사님은 아이들의 장례식 때 그가 쓴 기도문을 들려주었답니다.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온 몸과 영혼을 다 주께 드리니, 이 세상 고락 간 주 인도하시고, 날 주관하셔서 뜻대로 하소서.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큰 근심 중에도 낙심케 마소서. 주님도 때로는 울기도 하셨네. 날 주관 하셔서 뜻대로 하소서.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내 모든 일들을 다 주께 맡기고. 저 천성 향하여 고요히 가리니 살든지 죽든지 뜻대로 하소서.”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을 믿고 세상에서 왕 노릇하며 사는 참 의인의 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생각하면 어떤 환경도 우리는 극복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왕 같은 제사장으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조금만 어려워도 회피하려고 합니다. 왕 같은 제사장으로 살려고 하지 않습니다.
암흑 같은 조선을 좀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혼신을 다한 아더노블 선교사님이 계십니다. 두 아이들 조선 땅에서 잃었습니다. 어린것들은 둘씩이나 평양에 묻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조선 땅을 좀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조선의 영혼들을 위해 그들은 항해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조선과 조선인은 우리에게 지독하리만큼 큰 대가를 치르게 했다.”라고 썼던 선교사는 “매티 노블의 조선회상”에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둘째 아들 시릴(Cyril Drew)이 이렇게 아팠던 때가 1896년 10월 20일이었다. 그리고 11월 4일 숨을 거두었다. 아기는 죽어가고 있었다 (…) 아더가 아기를 좀 안아주자 울어댔다. 난 아기를 팔에 안고 내 무릎 위에 뉘였다. 우린 숨죽이고 아기의 거친 호흡을 지켜보았다. 은탯줄이 풀리고 금사발은 깨어졌다. 우린 널 시릴이라 이름 지었지. 우리 사랑하는 어린 아들 시릴, 네가 오래 살며 위대한 일을 하길 바랬지. 이젠 천사들이 널 데려간 후, 네가 없는 우리 집은 너무 외롭구나. 그러나 아기야, 너를 향한 사랑은 우리 가슴 위에 새겨있단다. 하나님께서 우릴 본향 집에 데려 가 너와 함께 살게 하실 때까지.”라고 쓰고 있습니다. 이런 분 한 사람 한 사람 때문에 우리나라는 이 만큼 좋아졌습니다. 조금 어렵고 불편하다고, 조금 힘들다고 좋은 세상 만드는 사명을 회피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생각하면 얼마든지 고난도 영광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십자가에 돌아가셨습니다. 한 사람 예수님에 의해 좋은 세상은 시작되었습니다. 한 사람 예수님 때문에 죄의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한 사람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죽음이 정복되었습니다. 한 사람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우리가 의인이 되었습니다. 한 사람 예수로 말미암아 왕 같은 제사장으로 우리가 살게 되었습니다. 나 한 사람 때문에 세상이 어떻게 좋아지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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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72 이사야 하나님의 크신 사랑 사65:1-12  이한규 목사  2012-03-16 2758
15671 스가랴 영혼의 3대 축복 슥3:9-10  이한규 목사  2010-04-03 2758
15670 민수기 하나님의 신실하심 민26:1-65  이정원 목사  2012-09-06 2757
15669 이사야 천 배의 축복을 꿈꾸십시오 사60:10-22  이한규 목사  2012-02-14 2757
15668 마태복음 지극히 작은 것에 대하여 마25:14-46  이정수 목사  2011-06-18 2757
15667 시편 왕의 결혼을 축하하는 노래 시45:1-17  한태완 목사  2011-04-28 2757
15666 시편 위대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라 시135:1-21  한태완 목사  2011-01-16 2757
15665 누가복음 두 여자의 만남 눅1:39-56  정용섭 목사  2010-01-20 2757
15664 사도행전 천국같은 가정 가정같은 교회 행10:1-8  김필곤 목사  2009-11-07 2757
15663 요한복음 밀알 하나의 운명 요12:23-26  홍근수 목사  2004-10-13 2757
15662 창세기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 창49:22-26  강문호 목사  2013-07-30 2756
15661 시편 나를 위하여 모든 것을 이루시는 하나님 시57:1-11  김필곤 목사  2011-06-23 2756
15660 사도행전 하나님을 생각하는 교회 행13:1-3  김동호 목사  2011-05-28 2756
15659 시편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라 시24:1-10  박노열 목사  2010-04-12 2756
15658 이사야 그래도 우리 가족을 사랑하시는 하나님 사43:1-7  김필곤 목사  2013-09-08 2755
15657 마태복음 새로운 시작 - 졸업 마28:19-20  이상호 목사  2013-06-12 2755
15656 마태복음 하나님께서 복 주는 사람 10 - 애통하는 사람 마5:4  김동현 목사  2011-11-08 2755
15655 잠언 개미와 여름 잠6:6-11  이상호 목사  2013-06-12 2754
» 로마서 죄가 왕 노릇 못하는 나라 롬5:12-21  김필곤 목사  2012-07-30 2754
15653 에배소서 성령으로 하나되는 교회 엡4:1-6  김동호 목사  2011-05-28 2754
15652 마가복음 행복한 가정의 원리 막10:1-12  김필곤 목사  2010-11-17 2754
15651 요한복음 인간이 되신 하나님 요1:1-18  길희성 형제  2008-08-10 2754
15650 예레미야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 렘33:2-3  조용기 목사  2008-11-25 2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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