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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능의 조건

마가복음 정용섭 목사............... 조회 수 2162 추천 수 0 2012.08.07 23:5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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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막6:1-13 
설교자 : 정용섭 목사 
참고 : 2012.7.7 http://dabia.net/xe/6000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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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능의 조건

마가복음 6:1-13, 성령강림절후 6째 주일, 2012년 7월8일

 

고향 나사렛에서

오늘 설교 본문인 막 6:1-13절은 예수님께서 고향에 들르셨다는 이야기로부터 시작됩니다. 예수님의 고향은 나사렛입니다. 나사렛에서 갈릴리 호수까지는 대략 30킬로미터 정도 됩니다. 예수님이 가장 많이 활동하신 가버나움이나 디베랴 등이 모두 갈릴리 호수를 낀 마을들입니다. 예수님은 고향 나사렛에 오기 직전에 배를 타고 갈릴리 호수를 오가시면서 많은 사람을 고치셨습니다. 막 5장에만 세 가지 사건이 나옵니다. 하나는 군대 귀신을 쫓아내신 것이고, 둘째는 12년 동안 혈루증을 앓던 여자를 치료한 것이며, 셋째는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고친 것입니다. 각각의 사건은 군중들의 관심을 크게 끌만한 것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럴 때마다 자리를 피했습니다. 자신이 크게 드러나는 일을 경계하셨습니다. 세 번 째 사건만 해도 그렇습니다. 야이로의 열두 살 된 딸이 큰 병에 걸렸다가 죽었습니다. 예수님이 그의 손을 붙고 ‘달리다굼’이라고 말씀하시자 소녀가 다시 살아났습니다. 사람들이 크게 놀랐습니다. 예수님은 이 일을 비밀로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과 함께 고향 나사렛으로 오신 것입니다.

안식일이 되어 예수님은 회당에서 가르치셨습니다. 설교를 하신 겁니다. 사람들이 듣고 놀랐습니다. “이 사람이 어디서 이런 것을 얻었느냐 이 사람이 받은 지혜와 그 손으로 이루어지는 이런 권능이 어찌됨이냐?”(막 6:2)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해서 놀란 것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예수님의 지혜입니다. 마가복음 기자는 이미 앞에서 예수님의 가르침이 서기관들과 달리 권위가 있었다고 말합니다.(막 1:22) 당시에 가르치는 권위는 서기관들에게 있었습니다. 그들은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사람이었습니다. 신학박사, 신학대학 교수에 해당됩니다. 마가복음 기자가 말하는 권위는 서기관들의 것과는 다릅니다. 서기관들은 들은 것을 전달할 뿐이지만 예수님은 전혀 새로운 것을 전했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해서 놀란 또 다른 하나는 권능입니다. 막 5장에 나오는 세 가지 사건과 같은 큰 능력을 가리킵니다. 고향 사람들은 예수님이 갈릴리 호수 인근을 다니시면서 행하신 일들을 전해 듣고 그렇게 놀란 것입니다.

고향사람들이 놀라워했다는 것까지는 좋습니다. 그것은 당시 예수님을 만났던 많은 사람들에게 나타난 현상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이 예수님을 배척했다는 데에 있습니다. “예수를 배척한지라.”(막 6:3b) 마가복음의 설명에 따르면 배척한 이유는 예수님의 가족을 자신들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 그리고 예수님의 누이들을 알고 있었습니다. 잘 알고 있다면 더 잘 받아들여야 하는데, 이들은 거꾸로 배척했습니다. 고향사람들과의 관계가 껄끄러웠다는 것은 객관적인 사실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 사실을 공관복음서가 모두 인정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에 따르면 고향 사람들이 예수님을 낭떠러지로 데리고 가서 밀어 떨어뜨려 죽이려고까지 했습니다. 이것은 산헤드린 문서에도 규정되어있는 일종의 종교재판에 의한 집단살해 사건입니다. 낭떠러지에서 떨어져도 죽지 않으면 돌을 던져서 죽입니다.

도대체 이런 일이 왜 예수님의 고향에서 일어난 것일까요? 그리고 복음서기자들은 이런 불미스런 사실까지 보도하는 걸까요? 고향사람들을 이상한 사람들로 보면 안 됩니다. 그들은 정상적인 사람들입니다. 모든 유대인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바르게 믿으려고 노력한 사람들입니다. 이런 갈등의 전조를 마가복음 기자는 3:20절 이하에서 설명했습니다. 예수님의 친족들이 예수님을 붙들러 가버나움까지 찾아왔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바알세불에 지폈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 일행에는 물론 예수님의 가족들도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친족과 고향사람들의 눈에 예수님은 이해될 수 없는 분이었습니다. 그들이 볼 때 예수님은 주제 파악이 안 되는 사람이었습니다. 위험인물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자신들이 알아서 처리하는 게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고향사람들에게 믿음이 없어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아닙니다. 예수님의 정체를 알아보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고향사람들만이 아니라 당시 종교전문가들이라 할 바리새인과 서기관과 제사장, 그리고 최고 종교권력 기관인 산헤드린 의원들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지식의 문제도, 종교성의 문제도, 도덕성의 문제도 아닙니다. 인간 인식이 제한적이라는 것이 핵심 문제입니다. 우리는 근본적으로 궁극적인 진리를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이 턱없이 부족합니다. 지금 우리의 모든 삶을 돌아보십시오. 인간 문명을 보십시오. 학교와 병원과 기업과 정치를 보십시오. 궁극적인 진리를 인식하지 못합니다. 병원이 병을 고치는지 키우는지 단정적으로 말할 수 없습니다. 학교가 학생들을 인격적으로 계몽시키는지 미몽으로 몰아넣는지 결정적으로 말할 수도 없습니다. 우리는 종이 한 장만 눈앞에 놓아도 세상을 볼 수 없을 정도로 인식 능력이 없습니다. 고향사람들의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다는 것은 당연한 겁니다. 그런 일은 역사에 반복되었고, 지금도 반복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한국교회에 재림하시면 우리가 알아볼 수 있을까요?

 

제자들의 권능

예수님은 결국 고향에서 더 이상 권능을 행하지 못하고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7절부터 오늘 본문의 두 번째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첫 번 이야기가 고향 사람들에게 벌어진 것이라면, 두 번째 이야기는 제자들에게 벌어진 것입니다. 예수님은 열두 제자를 둘씩 짝을 지어서 전도를 보내셨습니다. 그들에게 주신 것과 주지 않으신 것이 있습니다. 주신 것은 축귀 능력입니다. 주지 않으신 것은 모든 여행에 필요한 물품입니다. 양식, 배낭, 돈을 준비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지팡이와 신고 있는 신과 입고 있는 옷만으로 충분하다고 하셨습니다. 탁발 수도사의 모습입니다. 무전여행과 비슷합니다. 이런 모습은 이번만이 아니라 예수님 일행에게서 늘 볼 수 있던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서 전도에 나섰습니다. 그들은 회개하라 전파하고, 또 축귀와 치병을 행했습니다.

고향사람들에게서는 예수님이 권능을 나타낼 수 없었는데 반해서 제자들에게서는 그 권능을 나타낼 수 있었습니다. 이런 차이가 난 이유는 무엇일까요? 성서는 그것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설명하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간접적으로 그 이유를 찾아야 합니다. 고향사람들과 당시 기존 유대교 고위층의 태도가 무엇인지를 보면 됩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고정관념으로 예수님을 대했습니다. 유대교 고위층들에게는 안식일과 성전이 절대적인 종교 이념이었습니다. 그것을 조금이라도 손상하는 듯한 발언이나 행동을 하는 사람이 있으면, 여지없이 적개심을 드러냈습니다. 예수님은 안식일과 성전에 대해서 그들이 요구하는 것과는 다르게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예수님은 안식일과 성전을 거부하신 것이 아니라 그것의 본질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것을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자신이 절대적인 이념으로 지켜온 것을 상대화한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성서문자주의에 굳어진 사람들은 자신들과 약간만 다른 식으로 말해도 화를 냅니다. 예컨대 동정녀 마리아 사건이 생리적인 차원의 언급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에 대한 초기 기독교의 신앙고백이라는 사실을 무조건 거부합니다. 거부할 뿐만 아니라 그렇게 말하는 사람을 자유주의자라고 매도합니다. 자신들의 종교적 전통으로 예수님을 판단하는 이들에게 예수님의 권능은 나타날 수 없습니다.

이와 달리 제자들은 그런 고정관념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오해는 마십시오. 제자들에게 종교심이 없었다거나 구약성경이나 유대교에 대해서 무지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들도 다른 유대인들과 마찬가지로 구약성경과 유대교 전통에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으로 인해서 그들의 영성이 마비되지 않았습니다. 마음이 굳어지지 않았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가르침과 권능을 그대로 인식하고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이게 작은 차이인 것 같지만 실제로는 결정적인 차이입니다. 종교적 전통에 의해서 영혼이 마비되는가, 아니면 그런 전통에 의해서 영혼이 살아나느냐 하는 것입니다.

타종교와의 관계를 생각해보십시오. 우리는 모두 기독교 전통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옳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기독교 전통을 교조적으로, 이데올로기 차원으로 받아들입니다. 자기와 조금만 다른 이야기를 하면 이단 운운합니다. 인터넷에 떠도는 글 중에는 정용섭 목사를 그렇게 보는 글들도 있습니다. 같은 기독교 전통에 있는 사람에 대해서도 이런 정도이니 타종교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이런 이들의 영혼은 아무리 열광적이라고 하더라도, 아니 열광적이면 열광적일수록 더 마비됩니다. 땅밟기 퍼포먼스를 하는 이들의 영혼이 어떤지 보시면 됩니다. 반면에 기독교 신앙을 올곧게 지켜나가면서도 타종교에 대해서 열린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이들의 영혼은 기독교 전통을 통해서 더 풍요로워집니다.

영혼이 열려있다고 해서 기독교 신앙을 상대화할 수는 없지 않느냐, 사이비 이단들까지 용납해야 하느냐, 바울도 화를 내면서까지 다른 복음을 비판하지 않았느냐, 하는 질문이 가능합니다. 그렇습니다. 기독교 신앙이 혼합주의가 되어도 좋다는 뜻이 아닙니다. 옳고 그름을 다투어야 할 때는 치열하게 다투어야 합니다. 영적인 예민성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런 영적인 예민성과 고정관념에 찌든 독단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그것을 구별하기는 쉬지 않습니다. 아예 불가능할지 모릅니다. 자기 자신도 모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성령과의 관계에서만 구별될 수 있습니다. 이것을 구별할 수 있는 길을 오늘 본문에 한정해서 말씀드리면 권능 여부에 달려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능’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그 권능에 따라서 많은 귀신을 쫓아내고 병자들을 고쳤습니다. 복음서는 축귀와 치병 현상을 권능에 의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런 일은 공생애 중에 예수님이 행하신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축귀와 치병은 고대인들에게 권능의 표시였습니다. 사람을 악한 힘으로부터 해방시키는 일입니다. 병든 삶의 회복이며 갱신입니다. 오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더러운 귀신’에 사로잡혀 있는지를 보십시오. 황금만능주의가 더러운 귀신입니다. 한국교회는 이런 귀신과 싸우고 있나요? 교회를 통해서 이런 귀신들이 제어되고 있을까요? 아니면 더 신바람을 내고 있을까요? 교회를 통해서 남북분단의 고통이 치유되고 있을까요? 아니면 더 심해지고 있을까요? 한국교회를 통해서 사회적 소수자들의 삶이 회복되고 있을까요? 부끄럽게도 한국교회에 어떤 권능이 나타나는 일들을 경험하기가 어렵습니다.

여러분은 개인적으로 권능을, 즉 놀라운 일을 경험하고 있으신가요? 삶의 해방과 자유와 갱신을 경험하고 있으신가요? 예수님이 권능을 행할 수 없었던 고향사람들은 아니신가요? 권능을 경험하고 싶으시다면 신앙적인 고정관념, 처세술적인 고정관념을 일단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게 말처럼 쉽지는 않을 겁니다. 오랫동안 길들여졌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열린 마음으로 대하십시오. 그에게 가까이 가십시오. 그의 가르침과 그의 행위를 있는 그대로 직관하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와의 일치를 통해서 오랫동안 길들여진 삶의 가치와 방식들이 뒤로 물러나게 될 것입니다. 그 순간에 여러분은 말 그대로 권능을, 즉 생명을 살리는 참된 능력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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