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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이 넘치는 세상

창세기 김필곤 목사............... 조회 수 2030 추천 수 0 2012.08.28 23:4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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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창13:14-18 
설교자 : 김필곤 목사 
참고 : 2012.5.20열린교회(용인) http://www.yeolin.or.kr 

좋은 세상 만들기(8) 소망이 넘치는 세상
창세기13:14-18

매주 토요일 희망하는 아이들에게 역사탐방, 문화탐방, 학교 탐방 등 체험학습을 시키고 있습니다. 직접 현장을 보고 느끼고 만지고 경험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어제도 연세대학교에 보내었는데 대학에 가서 잠시나마 대학문화를 체험하게 하여 어릴 때부터 소망을 품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아이들이 소망을 품으면 눈빛이 달라지고 말이 달라지고 인생이 달라집니다. 미국 부시 행정부에서 국무부 장관으로 막강한 힘을 사용한 흑인 여성 정치인 "콘돌리자 라이스"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분의 할아버지도 목사였고 아버지도 목사입니다. 흑인이기 때문에 갖은 무시를 받고 살았습니다. 노예생활을 했습니다. 해방되어 소작농을 했습니다. 흑인은 백인에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할 수 없었습니다. 음식점에도 백인과 같이 앉을 수 없고 학교도 같이 공부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주 무시 받으며 자랐습니다. 콘돌리자 라이스가 10살 때 부모님이 그를 대리고 수도인 워싱턴 D.C. 갔답니다. 백악관 구경을 하던 중 백악관의 정문 앞에선 콘돌리자가 침묵을 깨뜨리고 말했답니다. "아빠, 제가 밖에서 백악관을 구경해야 하는 건 피부색 때문이에요. 두고 보세요, 전 반드시 저 안으로 들어갈 거예요." 백악관을 체험하고 어릴 때 소망을 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공부하여 박사학위를 받았고 25년 뒤, 그녀는 소련과 냉전 후 통일 독일에 대한 미국의 정책을 주도하는 수석보좌관으로 조지 부시 전(前) 대통령을 도왔고 그리고 11년 후, 백악관으로 재입성하여 국무부 장관으로 그의 아들인 조지 W 부시 현(現) 대통령과 함께 일하였습니다. 소망을 갖는 것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요즈음 자녀 교육에 목숨을 건 부모들이 많은데 자녀를 잘 교육시키길 원하면 어릴 때부터 소망을 가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5남매 수재로 키운 산골농부의 체험수기 '포항 농부 황보태조의 자식농사 이야기(올림)'라는 책이 있습니다. 토마토 농사꾼 황보태조 씨가 4녀 1남을 순서대로 서울대 의대 최우수졸업생, 경북대 의대 장학생, 포항공대 화학과 수석 입학생, 대구가톨릭대 약대생, 서울대 의대 특차 합격생으로 키워낸 이야기입니다. 그의 학력은 고교중퇴입니다. 그는 위로 딸 넷을 얻은 다음에 마지막으로 아들을 얻었는데 아내와 그는 아이가 생길 때마다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라며 함께 기뻐했다고 합니다. 가난하여 결혼 후 아내와 어린 두 딸을 시골에 남겨두고 서울로 올라와 관악산 서울대 신축공사장에서 노무자로 일했다고 합니다. 그 때 그는 일을 하며 '그래, 우리 아이들을 서울대에 보내야지'라는 소망을 품게 되었답니다. 합격해 온 식구가 함께 기뻐하는 광경을 상상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소망을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소망을 품길 원하십니다. 어떤 환경 어떤 처지에 있든지 소망을 품고 살기를 원하십니다. 죽음에 이를 때도 천국에 대한 소망을 품고 살기를 원하십니다. 절망하는 세상이 아니라 소망이 넘치는 세상을 만들기 원하십니다.

1.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이 주시는 소망으로 세상에 소망을 주는 사람이 되길 원합니다.
하나님은 갈데아 우르에서 소망을 주고 아브라함을 불렀습니다. 어떤 소망입니까? 12장 1-3절에 나와 있습니다.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지금 아들이 없지만 너로 큰 민족을 이룰 것이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땅이 없지만 살 땅을 주겠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약속을 소망으로 품고 가나안 땅에 갔습니다. 그 때 7절에 보십시오. 하나님이 말씀합니다.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가뭄으로 애굽에 내려갔다 다시 가나안 땅으로 올라왔습니다. 이 때 아브라함의 목자와 롯의 목자가 서로 다투었습니다. 그래서 롯에게 아브라함이 네가 원하는 땅을 차지하라고 합니다. 롯이 여호와의 동산 같은 소돔과 고모라를 차지하고 떠났습니다. 아들같이 여긴 조카가 자신을 떠났을 때입니다. 고향에서부터 같이 온 조카입니다. 아브라함은 아들이 없었기 때문에 아들처럼 생각하며 살아온 조카입니다. 이 때 나이 75살입니다. 이제 아버지도 돌아가셨고 조카 롯도 떠났습니다. 외롭고 허전했을 것입니다. 배신감도 들었을 것입니다. 괘씸했을 것입니다. 절망했을 수도 있습니다.
이 때 하나님이 찾아 오셔서 하시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14절 같이 읽겠습니다. 조카 롯과 작별하고 새 출발하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입니다.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현실만 바라보지 말고 원대한 소망을 품으라는 말씀입니다. 너 있는 곳 현실을 직시하면서 동서남북 원대한 세상을 소망으로 품으라는 것입니다. 땅에 집착하지 말고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라는 말씀일 것입니다. 에덴동산 같고 애굽같은 그곳이 전부가 아니니 그것에 집착하지 말고 좀 더 넓은 세계를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절망적인 상황에 있을 지라도 소망을 품고 살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소망을 품으시길 바랍니다. 우상장사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소망을 주신 하나님, 광야의 도망자로 살아가는 모세를 불러 민족 구원의 소망을 주신 하나님, 갈릴리 어부 베드로를 불러 사람 낚는 어부의 소망을 주신 하나님, 혈기 방자한 바울을 불러 세계 복음화의 소망을 주신 하나님이 우리 하나님입니다. 우리 하나님이 우리에게 소망을 주었듯이 우리도 다른 사람에게 소망을 주는 사람이 되어 좋은 세상을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소망이 넘치는 세상이 좋은 세상입니다.
크리소스톰이 "우리를 불행에 던져 넣은 것은 죄가 아니고 절망이다"라고 말했듯이 절망을 던지는 사람들은 세상을 무덤으로 만듭니다. 실존 철학자 키엘케고르는 '절망은 죄'라고 말하며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질병"이라고 했습니다. 희망의 신학자로 알려진 독일의 위르겐 몰트만 박사는 "오늘날 인류를 비참한 상태로 몰아넣는 것은 그들이 절망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기독교의 이해에 있어서 절망은 가장 나쁜 죄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절망은 재앙을 부르는 가장 나쁜 죄"라고 지적합니다. 절망하는 자에게는 미래가 없습니다. 절망하는 자에게는 행복이 없습니다. 절망하는 자에게는 웃음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단테는 그의 책「신곡」에서 지옥 입구에 "이곳에 들어오는 모든 자들은 소망을 포기하라!"라고 붙여 놓았습니다. 절망하는 자는 이 땅에 살지만 지옥 같은 삶을 사는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절망하는 자가 많으면 많은 수록 세상은 지옥으로 변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마음의 전염병은 `절망'이라는 바이러스입니다. 철학자 에른스트 블로흐는 소망을 모든 인간의 행위 속에 들어있는 하나님의 힘(divine force)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에 소망을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우리말에도 힘이 있습니다. 소망을 말을 합니까? 절망의 말을 합니까? 한 어머니가 5살짜리 아이를 데리고 점쟁이 집을 찾아갔답니다. 그 점쟁이라 어머니에게 "이 아이는 아주 똑똑하고 앞으로 유명한 사람이 되긴 하겠는데 아깝게도 단명하겠다."고 했답니다. 43세가 되면 죽을 것이라고 했는데 그 소리를 아이는 옆에서 들었답니다. 그는 자라서 유명한 사람이 되었지만 40이 가까워지자 어릴 때 점쟁이로 들었던 말이 계속 생각나 불안해지기 시작했답니다. 너무나 불안한 나머지 마약에 손을 대기 시작했고 그를 지배했던 말대로 43세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답니다. 그가 바로 유명한 엘비스프렛슬리입니다.
남자는 하루에 2만 5천 마디, 여자는 3만 마디 말을 한다고 합니다. 절망의 말을 많이 합니까? 소망의 말을 많이 합니까?
세상엔 소망을 주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소망을 주는 사람들에 의해 절망하는 사람들은 일어나고, 세상은 살맛나게 됩니다. 절망적인 환경에 처한 사람에게 보다 좋은 세계를 꿈꾸게 하고 선을 향해 나아가도록 희망을 불어 넣는 사람이야 말로 이 시대에 반드시 필요한 사람입니다. 시궁창에서 노는 아이를 향해 "시궁창에 코 막고 죽어라"고 악담을 하는 사람보다는 "시궁창에 놀아도 생각은 하늘을 향하라"고 희망을 주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불치의 병에 걸린 사람을 향하여 "당신은 소생할 가망성이 없습니다."라고 절망적 말을 하는 사람보다 "당신은 아직도 소생할 수 있는 가망성이 있습니다."라고 희망을 주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아무리 칠흑같이 어두운 환경일지라도 "새벽이 다가올수록 어둠은 짙어진다."고 희망을 주는 사람, 실연당하고 슬퍼하는 자에게 "꽃은 봄이 되면 다시 핀다."고 희망의 말을 전하는 사람, 실패하여 좌절한 사람에게 "산이 높으면 골도 깊다."고 희망을 말하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영국의 문호 셰익스피어가 "불행한 사람에게는 희망만이 약이다"라고 말했듯이 불행한 사람에게 소망을 주는 사람들이 아름답습니다.
신의 손이라 불리우는 존 흡킨스 대학의 밴 카슨 박사는 원래 디트로이트의 흑인 빈민촌에 말썽을 일으키는 소년이었습니다. 늘 싸우고 학교성적은 맨 밑바닥에서 헤매고 소망이라고는 조금도 보이지 않는 그런 아이였답니다.
그런데 그의 어머니는 그가 싸우고 돌아와도, 꼴찌의 성적표를 가져와도 늘 이렇게 말했답니다. "밴 너는 무엇이든지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어, 넌 노력만하면 너는 성공할 수 있어" 희망을 주는 말을 한 것입니다. 결국 그는 마음을 고쳐먹고 훌륭한 외과의사가 되었습니다.
소망의 말은 인간의 자화상과 성격, 미래를 바꿉니다. 소망을 주는 말 한 마디가 사람을 살맛나게 합니다. 1947년 전보 배달원으로 일하고 있던 12살 난 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땀 흘리며 전보 배달을 하던 소년은 전보를 받은 사람이 조용히 자기의 어깨를 토닥이며 "아주 총명하게 생겼구나. 지금은 몇 사람에게 소식을 전하지만 언젠가는 모든 사람에게 희망을 전하는 인물로 자라거라."라는 소망의 소리를 들었습니다. 이 소리를 듣는 순간 소년은 갑자기 미래의 비전이 떠올랐고 이전에 느끼지 못했던 인생의 확신을 가지게 되었답니다. 그는 다짐했답니다. "그래 지금은 내가 작은 배달부지만 앞으로는 많은 사람에게 희망을 주는 사람으로 자랄 거야." 바로 그 소년이 미국의 강철 왕이요 대부호인 카네기였습니다.
하나님은 살인자로 몰려 도망자 신세가 된 모세를 찾아가 소망의 말씀을 해 주었습니다. 엄청난 곤경에 처해있는 예레미야에게, 마치 죽은 사람과 같은 환난을 당한 다니엘에게 소망의 말을 해주었습니다. 예수님은 38년 된 병자에게, 간음하다 현장에 잡힌 여인에게, 외아들이 죽은 여인에게, 문둥병으로 쓰러져 가는 환자에게, 병든 자녀로 신음하는 자들에게, 배신한 베드로에게 소망의 말을 주었습니다. 혀는 작지만 말 한마디로 듣는 사람을 절망하게도 할 수 있고 소망을 줄 수도 있습니다. 절망보다는 소망을 주는 말을 해야 합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 하는 생각이라(렘29:11)"

2.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이 주신 소망을 확신하여 우리가 소망 넘치는 세상의 주인공이 되시길 원하십니다.
아브라함에게 소망을 주신 하나님께서 두 가지 약속을 해 주시고 있습니다. 15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첫째는 땅을 주겠다는 약속입니다(15,17하). 보이는 땅을 주겠다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땅이 아닙니다. 지금 볼 수 있는 땅을 주겠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보느냐가 중요합니다. 무엇을 소망으로 품느냐가 중요합니다.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만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에게 주겠다는 것입니다. 지금 아브라함에게는 자손이 없습니다. 롯을 아들처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 후손에게도 주겠다는 것입니다. 영원히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일시적이 아닙니다. 영원히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자손을 주겠다는 약속입니다(16). 16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자손을 땅의 띠끌 처럼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그 땅을 관리하고 그 축복을 누릴 자손을 띠끌처럼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너무나 허황된 것같이 보일 수 있습니다. 지금 아들하나 없는데 어떻게 티끌같이 많아질 수 있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소망을 품게 하시고 그 소망을 성취해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아브라함 너를 하나님의 소망을 이루는 주인공으로 사용하겠다는 것입니다. 너를 통해 하나님의 소원을 이룰 테니 확신하고 좋은 세상을 이루는 그 소망의 주인공으로 살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그 약속을 그대로 이루어질 것을 확신할 것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허황된 소망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신 소망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이 소망은 아브라함에게 계속 주어집니다(창15:5; 22:17) 그리고 결국 하나님은 성취하십니다. 이스라엘 역사에서는 가장 평화로운 세상이었던 솔로몬 시대 때 "유다와 이스라엘의 인구가 바닷가의 모래 같이 많게 되매 먹고 마시며 즐거워하였으며(왕상4:20)"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3장 7절 말씀을 보면 이 약속은 단순이 이스라엘 백성이 아니라 믿음의 후손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아들인 줄 알지어다 (갈 3:7)" 복음으로 죽음과 죄의 문제가 해결된 참으로 좋은 세상을 만드는데 믿음의 조상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소망은 꼭 성취됩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열심히 성취하고 맙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어떻습니까? 잘 믿지 못합니다. 창17:17을 보십시오. 웃습니다.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현실을 보고 이성적 사유를 신앙적 사유보다 우선시하기 때문입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소망을 꼭 이루어 나가십니다. 하나님은 오늘날도 우리를 통하여 소망이 넘치는 좋은 가정, 소망이 넘치는 좋은 교회, 소망이 넘치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원하십니다. 확신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이 하십니다. 지금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지금 어렵다고 절망하거나 의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출애굽 하는 것은 창15:16절에 아브라함의 자손 4대 만에 있으리라고 약속했습니다. 그것은 430년 만에서 모세를 통하여 성취되었습니다(출2:23-25).
바벨론 포로 생활도 이미 예레미야를 통하여 70년 만에 회복될 것을 말씀하였습니다. 그것 역시 정확하게 성취되었습니다. 바벨론을 망하게 하여 바사 왕 고레스를 세웁니다(스가랴1:2).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켜 이스라엘을 해방시키십니다. 역사를 바꾸어서라도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하십니다. 아브라함에게 75세에 아들을 낳을 것을 약속하였습니다. 25년 후 그 약속은 성취되었습니다.
의심 많은 도마에게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요 20:29)"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소망을 주면 그것을 확신하느냐 안하느냐가 중요합니다. 확신하되 얼마나 확신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우리가 가져야 할 오대 확신이 있지 않습니까? 기도 응답에 대한 확신, 구원에 대한 확신,인도에 대한 확신, 용서에 대한 확신, 승리에 대한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내게 주신 소망 나는 부족하다 할지라도 우리 하나님이 이루어주신다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어떤 일을 이루거나 얻고자 기대하고 바람, 좋은 결과를 기대하는 마음 또는 밝은 전망도 수준이 있습니다. 소망 수준이 있다는 말입니다. 소망수준이 높은 사람은 소망수준이 낮은 사람들에 비해 도전적이고 성공에 초점을 맞추고 긍정적인 정서 상태를 유지하고, 괴로움을 덜 느끼며, 문제를 회피하지 않습니다. 확신하는 사람들은 어떤 경우에도 소망의 끈을 놓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뇌성마비 딸을 바로세운 아버지의 감동수기가 있습니다. "일어나라 내 딸아"라는 책입니다. 딸은 81년 2월 태어난 지 3일 만에 뇌성마비 진단을 받았답니다. '각오하라'는 의료진의 말에 아버지는 좌절치 않고 기도로써 각오를 다졌답니다. 그러나 장애아를 갖게 된 모든 부모의 고통처럼 아버지인 김일권 목사도 이 일로 부부간의 사랑이 금이 갔고 교인들은 목회자가 뇌성마비 딸을 낳았다고 정죄어린 시선을 보냈답니다. 그래서 교회마저 사임하게 되었답니다. 그러나 그는 고통 속에서 한탄하고 있을 수는 없었고 고통과 절망을 믿음과 사랑으로 극복해냈다고 합니다. 그는 굳어지는 딸의 전신 근육을 따뜻한 손길로 풀어줬다고 합니다. 각종 강연을 통해 보바스, 보이타 등 선진 물리치료법도 배웠답니다. 아이에게 발끝의 촉감을 느끼게 해주려고 개울가와 자갈길을 함께 걷는 등 하루 모두를 딸을 위해 보냈답니다. 하루에 수백 번씩 언어 훈련을 시켜 다섯 살 되던 해에는 드디어 엄마 아빠를 부를 수 있게 만들었답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기도하며 '우리는 승이를 사랑한다. 예수님은 승이를 더욱 사랑한다.'고 불러주었답니다. 밤이면 딸의 상상력과 지능개발을 위해 동화를 들려주었답니다. 결국 딸은 다소 장애는 남았지만 정상에 가깝게 성장했고, 의료진 모두 이를 보고 기적이라고 환호했다고 합니다. 이 일로 말미암아 그는 동화 작가로 데뷔하게 되었고,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한국특수교육연구소'를 설립하여 불행에 처한 뇌성마비, 자폐증, 정신지체. 다운증후군, 학습장애, 정신질환 등의 아이와 그 부모들을 돕고 있다고 합니다. 딸은 아버지의 배려로 초등학교 3년 때 동시 문집을 펴냈고 자유문학의 추천을 받아 시인으로 정식 등단하였다고 합니다. 그는 말합니다. "남들은 애물단지로 여길지 몰라도 승이는 태어날 때부터 내게는 보물단지였고 결국 내게 보물을 안겨준 셈이지요. 사춘기를 지나면서 다소 굼뜬 동작과 학업 부진으로 딸이 힘겨워할 때 가슴이 쓰라렸지만 결코 좌절치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소망을 확신하여 소망 넘치는 가정을 만드는 주인공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이 주신 소망을 확신하여 우리가 소망 넘치는 세상의 주인공이 되시길 원하십니다.

3.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이 주신 소망을 붙들고 실제 삶의 현장에서 실행하길 원하십니다.
소망을 주신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마지막으로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17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일어나 두루 다녀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는 것입니다. 소망이 넘치는 세상을 만드는 자들에게는 이것이 필요합니다. 실제 삶의 현장에서 소망붙들고 순종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먼저 일어나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일지라도 그 현장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지금 아브라함의 심적 상태는 어떻겠습니까? 무척이나 낙심하고 있는 상황일 것입니다. 자신은 그렇게도 조카를 사랑했는데 전혀 자신을 고려하지 않고 싸우고 그리고 이익을 챙겨 떠나버리는 보면서 배신감을 받지 않았겠습니까? 인간의 한계를 느끼지 않았겠습니까? 결국 낙심하지 않았겠습니까? 함께 잘 살아 보려고 했는데 이제 홀로 남았습니다. 외롭지 않겠습니까? 좀 더 추론한다면 절망적인 상황일 수도 있습니다. 이 때 하나님이 일어나라고 합니다. 그 절망적 상황을 극복하고 일어나라는 것입니다. 그곳에 주저앉아 있지 말고 일어나라는 것입니다. 우리도 절망적인 상황이 있다면 그곳에서 과감히 일어나야 합니다. 주저앉아 있으면 안 됩니다. 내 인생을 절망의 늪으로 끌고 가는 잘못된 생각, 잘못된 습관, 잘못된 관행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곳에서 과감하게 일어나야 합니다. 생각만 하지 말고 첫발을 내디뎌야 합니다.
마귀는 항상 뒤를 돌아보며 절망하게 하고 성령님은 항상 미래를 바라보며 희망을 갖게 합니다. 과거는 잘했건 잘못했건 잊어버리고 미래를 향해 힘찬 발걸음을 옮겨야 합니다. 잘못한 과거를 생각하면 위축이 되어 능력을 발휘할 수 없고 잘한 일을 자꾸 생각하면 교만과 자만에 빠져 실패하기 쉽습니다.
용감하게 결단력을 가지고 모험정신을 가지고 나아가야 합니다. 그 땅을 종횡으로 행하여 보라고 말씀합니다. 벤처 정신, 모험 정신이 필요합니다. 그 땅이란 네가 서 있는 땅, 네가 소망을 품은 땅입니다. 소망을 행하여 종횡으로 과감히 행해 보라는 것입니다. 일을 추진하라는 말씀입니다. 망설이고 젤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하여 창조적으로 일을 해 나가야 합니다. 적극적으로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여 차지해 보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이 사회는 창의성과 전문성이 요구되는 사회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모험정신을 가지고 결단하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아브라함도 벤처정신을 가졌습니다. 모세도 벤처정신을 가졌습니다. 여호수아도 벤처정신을 가지고 나아갔습니다. 다윗도 골리앗 앞에 나아갈 때 벤처 정신을 가지고 나아갔습니다. 바울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브라함은 그 약속을 믿고 즉시 행합니다.(18).
아브라함이 그 하나님의 명령과 약속을 듣고 한 첫 번째 한 행동을 무엇입니까?
장막을 옮기고,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하며,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는 것이었습니다.
‘이에’라는 말은 그리고 즉시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계시가 있은 바로 직후 즉각적인 순종을 의미합니다. 소망을 품었다고 즉각 무엇이 바꾸어진 것은 아닙니다. 아직도 상수리 수풀입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예배를 드리며 실천하였습니다. 소망만 품고 행함이 없다면 아무런 능력이 없습니다. 결국 우리의 소망은 행함으로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소망이 있다면 그것을 확신하고 그것을 행해야 합니다. 약속을 확신하면 요단강을 건너라고 할 때 법궤를 메고 찰랑거리는 요단강에 들어가야 합니다. 홍해를 가르기 위해 지팡이를 내밀어야 합니다. 문둥병을 낳기 위해 요단강 물에 들어가라고 할 때 요단강 물에 들어가 목욕을 해야 합니다. 실제의 삶의 현장에서 소망있는 자처럼 살아야 합니다.
소망은 실제적인 힘이 있습니다. "희망의 힘(The anatomy of hope)"의 저자 제롬 그루프먼은 혈액학과 종양학 전문의로 현재 하버드 대학 의대교수이며 실험의학과 과장입니다. 30여년 간 직접 환자들을 치료하면서 희망이 병을 어떻게 고칠 수 있나에 대한 연구를 해오면서 이 책을 쓰게 되었답니다. 의사인 자신이 척추수술을 잘못 받아 19년 동안 재발되는 통증과 장애의 미로 속을 헤매며 감옥 같은 생활을 해왔다고 합니다. 1979년 가을, 보스턴 마라톤 대회 출전을 위한 훈련을 하던 중에 요추 디스크가 탈출하는 부상을 입었답니다. 디스크 절제술을 받았는데, 반년 뒤 다시 쓰러져서 척추유합술이란 수술을 받았답니다. 깨어나 중환자실에 누워있었는데 마취 기운이 점점 사라지면서 난생 처음 겪어 보는 뼈를 깎는 듯한 통증이 하체를 뒤틀었답니다. 더더욱 무서운 사실은 두 발이 전혀 움직여지지 않았답니다. 퇴원하여 몇 달씩 비교적 통증이 덜한 휴식기도 있었지만 어느 순간 분명 별 무리가 없었을 동작이었음에도 요추에 격렬한 통증 발작이 일어나곤 했답니다. 그렇게 십구 년을 살았고 삶의 벽은 마치 감옥 하나를 가운데 두고 사방을 둘러친 전기 울타리 같았다고 했습니다.
깊어지는 통증으로 재활의학 전문의인 제임스 레인빌 박사를 찾아갔다고 합니다. 레인빌 박사는 "지금까지 고통을 피했기 때문에 선생의 삶의 영역은 이렇게 좁디 좁은 공간으로 줄어들었소. 고통을 무시하시오. 선생의 허리 근육들은 정상 긴장도의 30퍼센트에 불과하오. 인대와 힘줄도 오랫동안 쓰지 않아 수축된 상태요. 계속 척추와 근육과 인대를 사용하면서 힘을 길러 그런 기억을 지우시오. 그러면 과거에 입은 손상을 보상하고 다시 정상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소."라고 말하더라는 것입니다. 병원을 나오는데 심장이 마구 뛰었답니다. 의사로서 희망의 필요성을 익히 알고 있었지만 자신은 완전히 희망을 포기하고 있었답니다. 레인빌 박사는 그에게 희망을 준 단호한 외부의 목소리였답니다. 희망만이 자신의 병을 고칠 수 있다고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재활 치료가 점점 편해지고, 자신 속에 희망이 일기 시작하자 몸의 생리 작용도 변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로부터 일 년이 조금 지나자 일상의 통증은 거의 사라졌답니다. 두려움 없이 아침을 맞았고, 하루 종일 편안히 돌아다녔고, 감사의 기도를 올리며 잠자리에 들었답니다.
밝혀진 바에 따르면 인간의 몸에는 천연 모르핀이 존재한다고 합니다. '엔도르핀'과 '엔케팔린'으로 불리는 화학 물질입니다. 희망의 두 가지 주성분인 '믿음'과 '기대'가 뇌에서 엔도르핀과 엔케팔린이 분비되게 하고, 이들이 모르핀 효과를 흉내냄으로써 통증이 차단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결과는 건강한 자원자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나 질환을 앓는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임상 실험에나 같은 결과가 나왔답니다. 절망감이 커지면 커질수록 뇌의 엔도르핀과 엔케팔린의 분비량은 점점 줄어들고 통증을 배가하는 콜레시스토키닌의 분비량은 점점 늘어난다고 합니다. 그의 환자 중에 '공격형 비호지킨 림프종'에 걸린 사람이 있었답니다. 실제로 종양의 크기와 공격성에도 불구하고 완치의 가능성은 존재했답니다. 그러나 환자는 "선생님, 저는 죽음의 문턱에 가 본 적이 있습니다. 베트남에서 그랬고 그 뒤에도요. 지금 제 속 깊숙한 곳에서 그 죽음이 느껴진단 말입니다. 저는 안 됩니다. 제가 압니다." 그가 치료를 거부한 것은 군대 동료였던 가장 친했던 친구가 암에 걸려 중환자실에서 여러 가지 합병증으로 고생하다 세상을 떠날 때까지 곁에서 지켜 보았기 때문이었답니다. 그러나 희망의 중요성을 안 그루프먼 교수는 그에게 희망을 주었답니다. 그는 희망을 가지고 치료를 받아들였고 완치되었다고 합니다.
심리학자로 희망에 대하여 체계화를 시도한 미국 캔자스 대학의 심리학자였던 릭 스나이더(Rick Snyder)는 대학 신입생들을 대상으로 희망의 크기와 그 전의 수능(SAT) 점수, 그리고 대학생활에서의 학점, 졸업 후 성취 정도 등을 조사했다고 합니다. 그 결과 학생들이 대학 생활에서 좋은 학점을 받고 잘 적응하는지를 예측하는 것은 수능 점수보다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희망의 크기였다고 합니다. 대학 시절 학점이 높은 사람보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졸업 후 더 많이 성취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희망의 크기가 목표 설정과 성취, 노력에 중대한 영향력을 끼친다는 것입니다. 소망은 목표 성취를 위한 긍정적인 기대입니다. 소망은 정체된 상태가 아니고 역동적인 에너지입니다. 어떤 목표에 대한 기대와 노력을 의미합니다. 밀러는 인간존재와 삶에 가장 가치있는 강력한 자원을 소망이라고 주장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소망을 가지고 실제 삶에서 실행을 하여야 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소망이 넘치는 좋은 세상을 만드는 주인공들이 될 수 있습니다.
스위팅은 "사람은 40일을 먹지 않고도 살 수 있고, 3일 동안 물을 마시지 않고도 살 수 있으며, 8분간 숨을 쉬지 않고도 살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희망 없이는 단 2초도 살 수 없다."라고 했습니다. 소망은 인생의 최고 영양제입니다. 똑같은 상황, 똑같은 환경이라 할지라도 희망을 품고 사는 사람과 절망을 품고 사는 사람의 인생은 큰 차이가 납니다. 슈바이처 박사는 "성공의 비결은 소망을 잃지 않는데 있다"고 했고, 헬렌켈러는 "참된 소망은 모든 일을 가능케 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소망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에게 소망을 주시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도 절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다윗을 보십시오. 당시 최강대국 블레셋이 쳐들어 왔습니다. 골리앗이란 거구의 장수 앞에서 백성들은 겁에 질려 벌벌 떨며 절망하고 있었습니다. 이 때 다윗은 여호와를 통해 소망을 가졌습니다.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삼상 17:45-47)" 다윗은 여호와를 통해 절망하는 민족에게 소망을 주었습니다.
사울왕의 아들 요나단과 그의 부하 한 사람을 보십시오. 블레셋 민족이 이스라엘을 침범했을 때, 블레셋 군대는 전차 3만, 기마병이 육천, 보병은 해변의 모래같이 많았습니다. 백성들은 패배감과 무기력증에 사로잡혀 절망하였습니다. 이 때 요나단이 말합니다.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의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아니하였느니라(삼상14:6)" 소망을 주시는 여호와를 통해 희망의 나라로 만들었습니다. 다수가 다 반대한다고 하나님의 일에 포기하고 절망해서는 안 됩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을 보십시오. 10명의 정탐꾼이 절망하며 원망합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절망에 사로잡힌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민14:9)"라고 외쳤습니다. 소망을 주시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이렇게 살아야 합니다. 엘리야를 보십시오. 갈멜산에서 850명의 이방신을 섬기는 사람들과 대결합니다. 홀로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홀로라고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불을 내려 그들을 이겼습니다. 지지해 주는 사람이 적다고 절망하며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기드온을 보십시오. 수많은 적군 앞에 300명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 300명 용사로 적을 이겼습니다. 12제자를 보십시오. 약한 자들입니다. 대부분 어부 출신들입니다. 배우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세계를 복음화 시키는 주역이 되었습니다. 소망을 심어주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우리도 힘이 없다고, 돈이 없다고, 실력이 없다고, 기술이 없다고, 능력이 없다고 낙심하며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38년 된 병자도, 12년 동안 혈루증으로 희망을 잃은 여인도, 중풍병자도, 외아들이 죽은 여인도 예수님을 만나 새로운 소망을 가지고 새로운 삶을 살았습니다.
예수님 말씀합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막 9:23)"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요14:12)"
사도 바울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 4:13)"라고 말씀하십니다. 소망을 주시는 우리 하나님 다윗을 사용하면, 하나님이 엘리야를 사용하면, 하나님 요나단을 사용하면, 하나님이 12제자를 사용하면 희망을 주는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이 주시는 소망으로 세상에 소망을 주는 사람이 되길 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이 주신 소망을 확신하여 우리가 소망 넘치는 세상의 주인공이 되시길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이 주신 소망을 붙들고 실제 삶의 현장에서 실행하길 원하십니다.

열린교회/김필곤 목사/2012.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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