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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출처 : | http://www.inbora.com/bbs/board.php?bo_table=board13&wr_id=39&page=6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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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타
십자가의 고통을 지고픈 열망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 가운데 태어난 리타
리타는 이탈리아의 카시아에서 그리 멀지 않은 로카포레나라는 작은 산골에서 안토니오 만치니(부)와 아마타 페리(모)의 사이에서 출생하였다. 리타의 부모는 당시 이탈리아 거의 모든 지역에 만연되어 있었던 나쁜 습관들, 이단자들의 모함, 권세자들의 횡포와 폭력이 난무하는 험난한 세파 속에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자비와 사랑을 베푸는 특별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생활 속에 자리 잡은 좌우명은 주님의 고난과 십자가를 묵상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부부는 인생의 장년기에 접어들도록 자식이 없었다. 가련한 아마타는 자녀에 대한 생각을 포기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하루는 아마타가 열심히 기도하던 중 환상을 통해 한 천사를 보았다. 천사는 그녀의 기도가 하나님께 받아들여졌으며, 기도의 선물로 여자 아기를 낳게 될 터인데, 그 아기는 훗날 하나님의 큰일을 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신앙심 깊은 부인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기쁨에 사로 잡혔다. 그 후 두 번째 환상 중에 천사는 아기의 이름을 리타라고 지을 것을 당부하였다.
리타는 1381년경에 태어났고 유아 세례를 받았다. 세례를 받고 며칠 되지 않아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안토니오 부부가 들판으로 일하러 나가면서 아기를 버드나무로 만든 요람에 넣어서 나무 그늘에 두었다. 부부는 일하고 요람 속의 아기는 고사리 같은 손을 움직이며 혼자 누워 있었다. 그런데 한 떼의 벌들이 요람 주위에서 맴돌더니 제법 많은 수의 벌들이 갑자기 아기의 벌려진 작은 입 속으로 들어갔는데, 이상하게도 아기는 벌에 쏘이지 않았다. 아기는 울기는커녕 오히려 즐거운 듯이 옹알거리고 있었다.
그때 요람 근처에 있던 한 사람이 낫으로 풀을 베다가 그만 실수를 하여 오른 손을 심하게 다쳤다. 그는 의사에게 보이기 위해 급히 카시아로 달려가던 중 아기가 누워 있는 요람 옆을 지나게 되었다. 수많은 벌들이 떼를 지어 아기의 머리 위를 맴돌고 있는 것을 본 그는 가던 길을 멈추고 벌떼를 쫓기 위해 양팔을 내저었다.
그런데 잠시 후 그는 자신의 오른 손이 상처자국도 없이 깨끗하게 나아 있는 것을 발견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심한 상처로 인해 피가 줄줄 흘렀는데 감쪽같이 치료가 된 것이다. 그는 너무나 놀란 나머지 소리를 질렀다. 안토니오 부부는 하던 일을 멈추고 급히 요람으로 달려왔다. 벌떼는 잠시 흩어지는 듯하더니 마치 그들의 맛있는 음식을 놓치기 싫은 것처럼 다시 몰려 왔다. 훗날 리타가 카시아에 있는 수녀원에 들어갈 때에도 벌떼는 수녀원의 담장까지 몰려왔으며, 그곳에서 더 이상 다른 곳으로 옮겨가지 않고 남아 있었다.
자신의 문장에 벌이 새겨져 있는 교황 우르바노 8세는 그 이상한 벌 몇 마리를 로마로 가져오게 했다. 교황은 아주 흥미 있게 그 벌들을 관찰한 후 그 중 한 마리의 허리에 명주실을 감아서 다시 놓아 주었다. 그런데 그 벌은 얼마 후 다시 카시아의 그 수녀원 담장에서 발견되었다. 놀랍게도 그 벌은 자신이 있어야 할 곳에 다시 돌아온 것이다.
십자가의 고통을 지고픈 열망
리타의 부모는 노령기에 리타를 낳았다. 이 때문에 리타의 출생 자체가 기적적인 사건이었다. 리타의 부모는 비록 배운 것이 없는 무식한 사람들이었지만, 그들의 소중한 딸을 어려서부터 종교적인 분위기에서 가르쳤다. 리타는 무슨 일을 하더라도 하나님께 감사할 줄 아는 고운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어린 리타는 어른들의 말씀에 항상 순종하는 온순한 성격을 갖추었고, 시키지 않아도 기도와 묵상을 즐겨 바쳤다. 자신의 정숙한 몸가짐에 대해서도 천성적으로 타고난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으며,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더 깊이 알기 위한 간절한 소망에 가득 차 있었다. 그녀의 두 눈은 무엇을 보든지 마치 명상을 하듯 모든 정신을 집중하여 주의 깊게 바라봄으로써 그 대상을 마음 한가운데 새겨두었다.
또한 눈에 들어온 대상들을 이해하려고 애를 쓰는 동시에 마음을 다하여 사랑하였다. 부모들은 딸에게 자신들이 알고 있는 대로 예수 그리스도와 성모 마리아, 그리고 성인들의 삶에 대해 틈나는 대로 들려주었다. 리타가 즐겨 읽던 책은 꼭 한 권 있었는데 『십자가의 고난』이라는 책이었다.
당시 움브리아 지방에는 예수님을 가장 많이 닮았다고 하는 아씨시의 성인 프랜시스의 체취가 곳곳에 남아 있었다. 이 위대한 하나님의 사자는 양 손과 발, 그리고 허리에 주님께서 받으신 것과 같은 다섯 군데의 상처, 즉 오상(五傷)을 받았는데 성인의 생애에서 마지막 순간까지 겪었던 수많은 고통과 인내는 아직도 그 곳 산골마을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있었다.
리타는 어려서부터 마을 사람들이 성 프랜시스에 대해 말하는 것을 귀담아 들어서 잘 알고 있었다. 또한 그 때마다 어린 마음이었지만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만일 주님의 십자가 전부를 질 수 없다면 그 지독한 고통의 일부분만이라도 자신이 감당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녀는 십자가 고통의 참 의미를 잘 이해하려고 스스로에게 다짐하면서 우선 회개와 보속을 먼저 시작하였다. 유일한 의지가 되었던 부모님들이 만년에 이르자 어린 소녀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종일 고된 일에 시달렸다. 그녀는 수시로 시편 구절을 암송함으로써 힘을 얻으며 어려운 사춘기를 보냈다.
그러나 일에 대한 어려움보다 더욱 힘들었던 것은 절대 순종과 자의적인 희생에 습관적으로 익숙해지는 것이었다. 변덕이 심하고 자칫 경솔하기 쉬운 나이에 순종과 희생을 실천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깊은 산골의 가난했던 리타의 부모들은 딸에게 좋은 옷을 사 입힐 만한 여유가 없었다. 늙은 어머니는 그 대신 딸에게 조그마한 장난감이나 리본 등을 마련해 주기도 하였는데, 보잘 것 없는 물건이었지만 어린 딸에게는 큰 기쁨이 되었다. 그러나 리타는 장난감 등에 대한 욕심이 없었다.
당시 리타가 살고 있었던 로카포레나 일대에는 어거스틴회의 수도자들이 자신들의 개인 동굴을 곳곳에 만들어 놓고 독신으로 수도생활을 하고 있었다. 리타는 은수자들의 삶의 모습을 그대로 좇아가려고 했다. 그녀는 부모님의 허락을 받아 집 안에 작은 방 하나를 따로 준비하였고, 그 작은 방 안에서 예수님의 성화를 가슴에 꼭 안고 당신의 수난에 동참하게 해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그러는 동안 굳게 잠겨 있던 그 작은 방은 기쁨의 장소로 바뀌어졌다. 이곳에서 리타는 자신의 모든 생각을 고백하기 위해 예수님을 마치 사랑하는 연인처럼 기다렸던 것이다.
절대 순종과 마음의 갈망 사이에서
한편 리타의 연로하신 부모님들은 자신들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리타를 결혼시키려고 은밀하게 사윗감을 찾고 있었다. 자신을 오로지 주님께 바치기로 결심했던 리타는 결혼을 원하는 부모님들에 대한 그 어려운 순종 때문에 깊은 고통의 늪으로 빠져 들어갔다.
부모님들의 예기치 못한 놀라운 제안에 대해 확실하게 거절하지 못한 까닭은 이미 습관적으로 익숙해져 있던 절대 순종 때문이었다. 또 다른 이유는 자신의 거절로 인해 낙담하는 그분들의 모습을 차마 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도 이 소녀에게 더욱 큰 슬픔의 눈물을 흘리게 했던 것은 부모님들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이제까지 그렇게도 간절히 소망했던 수도자의 길을 포기해야 한다는 생각이 떠오를 때였다.
비탄에 빠진 그녀에게 또 하나의 견딜 수 없는 슬픔은 그토록 열심히 기도하며, 약속했던 하나님에 대한 자신의 봉헌이 현실에서는 뜻밖에도 정반대의 결과로 나타난 점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리타에게 먼저 갈보리 언덕에 오르기를 원하셨던 것이다.
파울로 디 페르디난도는 리타의 남편감으로 부적당했을 뿐 아니라 전혀 상대도 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대단한 허풍쟁이였고 방탕하고 난폭한 사람이었으므로 마을 사람들에게 전혀 환영받지 못하는 그런 사람이었다고 한다. 순진한 리타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불행한 결혼의 함정에 빠진 것을 알았을 때 얼마나 실망했겠는가? 그러나 하나님의 놀라우신 계획이 따로 있었다. 그것은 첫째, 버림받을 수밖에 없었던 남편의 불쌍한 영혼을 구원하시는 일이었고, 둘째, 그 고통스러운 결혼생활을 통해 인고(忍苦)의 빛나는 본보기를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주고자 하신 것이었다.
사나운 늑대를 길들이기까지
무거운 십자가를 안고 결혼한 리타는 갈보리를 향해 고달픈 여정을 시작하였다. 교황 그레고리오 11세가 아직 프랑스 아비뇽에 거주하고 있는 동안 교황청에 대하여 반기를 들은 지역의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로마의 최고평의회로부터 모든 자격을 박탈당한 처지였고, 교회의 결정에 앙심을 품은 그들은 복수의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그들은 당시 로마에 소속되어 있던 마을들을 습격해서 재물을 약탈하고 방화하였으며, 반항하는 사람들을 마구 죽이기까지 하였다.
믿음의 선진들의 발자취를 따르는 굳은 각오
한편 리타의 남편인 파울로 디 페르디난도도 그들 중의 하나였다. 그의 난폭한 성격을 감안하면 누구보다도 나쁜 짓을 많이 했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거의 3년 동안이나 무뢰한들이 그 지역 일대를 점령하고 있었는데, 새로운 교황이 선출되자 그들은 더 이상 횡포를 부리지 않고 새 교황에게 복종할 것을 맹세하였다. 아울러 이제까지 저질렀던 난동에 대해서도 모두 용서를 받았다.
격심했던 혼란 중에서도 로카포레나 마을의 사람들이 이웃 마을에 비해 비교적 피해를 덜 입은 것은 리타가 그녀의 포악한 남편에게 온갖 희생을 바쳐 유익한 말을 함으로써 그의 난폭한 성격을 누그러트렸기 때문이었다. 마을사람들은 그나마 안도의 숨을 쉴 수 있었다. 이러한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리타의 희생은 남편만이 아니라 그 마을 전체를 위해서 바쳐졌다고 주장하였다. 만치니 가문-리타와 부모님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낸 평화의 사절들이었다고 지금까지 마을 사람들의 입을 통해 전해지고 있다.
성녀 리타와 비슷한 삶을 산 분으로 성 어거스틴의 모친 모니카를 들 수 있다. 모니카 역시 바라지 않던 혼인으로 인해 난폭한 주정뱅이의 아내로 살게 된 곳이 다름 아닌 시어머니의 집이었다. 시어머니는 처음부터 새로 들어온 며느리를 달가워하지 않았으나 모니카는 온갖 정성을 다 기울여 마치 친어머니를 모시듯 함으로써 남편을 만족시켰다. 고통을 겪을 때마다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함으로써 견뎌냈고, 남편의 구원을 위해 온 힘을 다 기울였다. 남편이 그녀에게 포악한 행동을 하여도 반박하지 않았다. 다른 여자들과 지내기 위해 집을 나갔을 때도 못 본 체 하였다. 게다가 심한 매질도 참아냈다.
그러던 남편이 놀랍게도 조금씩 변화를 보이기 시작하였다. 남편은 기도로써 참을성을 쌓았으며, 한편으로는 교리 반에 등록하여 선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으로 세상 떠날 준비를 하였다. 리타가 살던 카시아와 그 부근에 많이 흩어져 살던 은수자들은 모두 어거스틴 수도회 회원들이었다. 매년 성 어거스틴과 성녀 모니카 축일에는 많은 사람들이 사방에서 모여와 장엄한 축제에 참석하였다. 특별히 모니카의 삶을 통해 크게 감동을 받은 리타는 혼인과 함께 파울로의 집에 들어가던 날부터 이미 모니카를 본받기 위한 각오가 서 있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모니카와 리타, 두 부인은 매우 흡사한 성격의 남편들과 결혼을 하였다. 그들은 지극히 사소한 일에도 금방 화를 내고 사나워졌으며 손에 잡히는 것은 무엇이든지 부수어버렸다. 암담한 처지에 놓인 불쌍한 아내들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모욕을 줌으로써 눈물을 흘리게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아내들은 그러한 남편들을 구원시키기 위해 엄청난 인내의 세월을 보낸 것이다. 자신이 겪어왔던 모진 학대와 모욕스러운 고통을 오직 침묵으로 견뎌내며 기도하였던 모니카처럼 남편의 구원과 변화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였을 리타의 모습을 우리는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다.
인내와 희생을 통해 얻게 된 가정의 평화
리타의 남편은 포악한 성격 때문에 주위에 적이 많았다. 한번은 그가 폭행을 당한 적이 있었다. 그는 이를 보복하기 위해 온갖 궁리를 다했고 결국은 복수를 하고야 말았다. 그는 밖에서 기분 나쁜 일이 생길 때마다 꼭 집 안에서 화풀이를 하였다. 상대는 언제나 불쌍하고 죄 없는 자기 아내였다. 리타는 날마다 계속되는 기다림 속에서 마음을 졸여야 했다. 살인혐의로 체포되어 있는 그를 면회하러 가야 했으며, 다치거나 죽은 사람들을 집 안으로 끌고 들어오는 끔찍한 광경을 보아야 했다.
리타가 가졌던 특별한 인내심은 모든 사람들이 우러러볼 정도였는데, 가까운 이웃 사람들은 그녀를 가리켜 오장육부도 없는 여자라고까지 말할 정도였다. 파울로가 자기 아내에게 아무 까닭도 없이 욕설을 퍼붓고 내뱉는 말 한 마디 한 마디에는 교양이라고는 조금도 없었다. 이렇듯 짐승 같은 남편은 자신의 허락 없이는 교회에도 못나가게 했을 뿐 아니라 매질도 자주 했기 때문에 그녀는 온몸이 시퍼렇게 멍들었다. 그런데도 아프다거나 슬픈 기색을 전혀 보이지 않았으며 오직 남편에게 순종만 했다.
이 놀라운 용기는 열심한 기도생활과 특별히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겪으셨던 수난에 대해 깊이 묵상한 결과로 얻어진 것이다.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받으셨던 상처와 배반, 그리고 조소와 멸시 등을 되새기면서 그녀는 자신에게 지워졌던 십자가가 오히려 가볍게 느껴졌다. 무엇보다도 심장이 찢어지는 듯한 아픔으로 괴로워했던 것은 남편인 파울로가 하나님의 원수가 되어 장차 지옥의 모진 형벌을 면치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 때였다. 남편의 회개와 구원이 하나님 안에서 이루어지기 위해 바치는 기도는 보통 사람들이 감당하기 힘든 보속을 통해 바쳐졌다.
당시 사순절에 행해졌던 금육 및 단식은 무척 엄격하게 지켜졌는데, 그녀는 일 년에 한 번이 아니라 세 번의 사순절을 정해놓고 금육 및 단식을 행하였다. 저녁기도 후 하루에 한 끼만 그것도 기름기가 전혀 없는 야채 죽만을 그 기간 중에 먹었다.
이 갸륵한 젊은 아내의 희생적인 기도는 하나님 보좌에 상달되었고, 드디어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되었다. 사납고 난폭한 남편이 조금씩 하나님을 깨닫기 시작하면서 성격도 차츰 온순해졌으니 그야말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제 고통의 날이 지나가고, 드디어 어린양이 사나운 늑대에게 승리를 거두는 날이 찾아왔다. 어느 날 파울로는 자기 스스로 반성하기 시작했다. 자기를 위해 이제껏 희생해 온 아내에 대해 존경심마저 품게 되었다. 이제까지 자신이 저질러 온 못된 짓들이 매우 부끄러운 일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새로운 각오를 한 파울로는 그 때부터 화가 치밀 때면 밖으로 뛰쳐나갔고, 안정을 찾고 나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하나님의 무한하신 은총은 저 사나웠던 당신의 피조물을 누르셨으며, 리타에게 깊고도 포근한 위로를 주셨다. 파울로는 자기 아내 앞에 무릎을 꿇고 그동안 자신이 저질렀던 잘못 때문에 고통을 겪도록 한 것에 대해 진심으로 참회하고 용서를 청했다. 이러한 남편의 회개로 인해 가정에는 평화가 찾아왔다.
새로 태어나게 된 남편은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는 아내의 깊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참 의미의 말들을 겸손한 마음으로 들었다. 그리고 방탕에 물들었던 자신을 바로잡기 위해 노력하였다. 가끔 아내로부터 들은 말들을 잊기도 했지만, 진실이란 말의 의미를 생각하며 십자가에 못 박혀 계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차분히 바라보았다. 십자가에 달려 계시는 그분께서는 모든 사람들이 당신을 배반하였음에도 그들에게 축복을 내려주셨다. 당신을 십자가에 못 박았던 사람들까지도 용서해 주시며 운명하셨다. 파울로는 그처럼 위대하신 예수님의 일들을 하나씩 되새겨보기도 하였다.
그토록 증오와 복수심으로 가득 차 있던 나쁜 생각들은 파울로의 마음에서 어느덧 사라지고 말았다. 이처럼 변화된 마음은 지금까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것이었다. 이는 마치 겨울동안 땅 위에 얼어붙었던 두꺼운 얼음들이 한 순간에 다 녹아버리고, 그 자리에 성령의 조화로 아름다운 꽃들이 새로 피어나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의 변화된 모습은 온 마을 사람들까지 한숨을 돌리도록 만들었다. 마을 사람들은 그 사나웠던 늑대 같은 사람을 온순하게 길들인 리타를 칭송하였다.
그 어떠한 장벽도 뛰어넘게 하는 하나님의 손길
자녀들에게 산 본보기가 된 믿음의 어머니
리타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다. 첫째는 자코모, 둘째는 파울로 마리아였다. 리타는 아들들을 잘 양육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크신 은총이 더욱 필요함을 알고, 희생적인 기도를 더욱 더 많이 바쳤다. 리타는 교회의 모든 축일의 하루 전에는 개인적으로 빵과 물까지도 멀리하는 단식의 규례를 철저히 지켰다.
궁핍한 살림은 계속 되었다. 남편은 생계를 위해 일을 하였지만 형편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그러나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을 볼 때마다 리타는 항상 마음이 아팠다. 어려운 가운데서도 자선을 베푸는 것이 습관이 될 정도였다. 이러한 생활은 자녀들에게 산 본보기가 되었다. 한편으로는 자식들이 혹시 조금이라도 남편의 거친 성격을 닮지는 않을까? 혼란과 잡음이 끊이지 않는 세상에서 그들이 장차 어떻게 살아갈까? 걱정이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걱정 때문에 그녀는 아들들의 연약하고 상처받기 쉬운 마음 안에 덕행을 심어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았다. “내 속에 생각이(걱정, 염려) 많을 때에 주의 위안이 내 영혼을 즐겁게 하시나이다”(시94:19). 덕행을 쌓아가는 법, 즉 완덕에 대해서는 그녀 자신이 이미 훌륭하게 터득했으므로 이를 아들들의 마음에 새겨줌으로써, 장차 다가올 어떠한 고난과 역경에서도 충분히 보호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남편은 이제 올바른 길로 들어섰기 때문에 그 역시 아내가 자식들을 위해 하는 교육을 적극적으로 도와주었다. 그 좋은 예로, 그는 아무리 좋은 의도라 할지라도 예기치 못한 분노가 치밀어 오를 때면, 재빨리 집 밖으로 뛰쳐나가곤 하였다.
리타의 가정은 행복하게 되었다. 아들들은 말썽 없이 잘 자라주었다. 모든 것이 순탄한 듯 했다. 그러나 리타가 어릴 적부터 십자가상의 예수님의 모습을 그대로 닮게 해달라고 간청했던, 즉 극심한 고통의 상처를 자신에게도 주기를 바랬던 소망은 의외로 빨리 이루어졌다.
가정에 불어오는 눈보라
리타의 남편 파울로는 성격이 변했고 예전에 비해서 많이 온순해졌다. 그런데 누군가가 그에 대해서 원한을 품고 복수를 하기 위해 벼르고 있었다. 하루는 저녁나절에 파울로가 일을 다 마치고 카르노 강둑길을 따라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그는 온순하고 참을성 있는 새로운 삶을 위해 더 이상 무기를 몸에 지니지 않았다. 그런데 파울로를 죽이려고 음모를 꾸미던 자들이 그가 항상 다니던 길목에 몰래 숨어 있었다. 그들은 비겁하게도 뒤에서 습격하여 그를 무자비하게 살해하고 말았다. 온통 피투성이가 된 시체는 길을 지나던 사람들에게 발견되었다. 이 사실이 마을에 전해지자 사람들은 크게 동요하였다. 이 끔찍한 소식을 전해들은 리타는 심장을 도려내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리타는 마음을 가다듬으며 아들들의 손을 잡고 그 장소로 갔다. 그리고 처참한 모습으로 죽은 아버지의 모습을 아들들에게 보여주지 않으려 애를 썼다. 오히려 그런 일을 저지른 범인들을 용서해주자고 타일렀다. 남편의 시신은 집으로 옮겨졌다. 리타는 남편의 시신을 직접 깨끗이 염을 한 후, 장례를 위해 성당으로 옮겼다. 리타는 불쌍한 남편의 영혼을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였다. 그리고 남편을 죽인 범인들을 진심으로 용서하는 마음으로 기도하였다.
그 후 아들들은 심한 병에 걸려 차례로 앓아누웠다. 리타는 자식들을 위해 그녀가 할 수 있는 희생을 다 바쳐 치료에 정성을 쏟았다. 그러나 남편이 죽은 지 거의 일 년 만에 두 아들들은 며칠 간격으로 세상을 떠났다. 리타는 아들들을 남편 가까이 묻어 주었다. 이제 리타에게 가족이라고는 아무도 없이 세상에 홀로 남게 되었다. 비록 혼자였지만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고, 세상에서 이제까지 매여 있었던 모든 것에서 해방된 것이다.
장벽 속에 더 깊어가는 믿음
리타는 어린 시절부터 꿈꾸던 대로 수녀원에 들어가 남은 인생을 주님께 온전히 드리고 싶은 바람으로 가득 차 있었다. 당시 그 곳에 있던 몇몇 수녀원 중 가장 마음이 끌렸던 곳은 어거스틴 수녀원이었다. 리타는 매우 겸손하고 부끄러움이 많았으나, 한편으로는 적극적인 면이 있었다.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일인 줄 알고 있었으나 오직 하나님만을 믿고 의지했다. 수녀가 되겠다는 결심을 거듭 반복하면서 카시아로 가던 중 리타는 남편이 살해당하였던 바로 그 장소를 지나치게 되었다. 지난 일을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졌다. 가던 길을 멈추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를 바친 다음 그녀는 다시 걸음을 재촉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굳게 믿으며, 리타는 어거스틴 수녀원의 문을 두드렸다. 그리고 원장 수녀와 면담을 통해 자신의 간절한 소망을 겸손히 청했다. 원장 수녀는 그녀의 겸손한 태도와 깊은 신앙심을 보고 장차 훌륭한 수도자가 될 수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러나, 미혼녀만 입회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 수녀원의 규칙과 과부는 한 번도 받아준 적이 없다는 이유를 내세워 그녀의 입회를 거절했다. 로카포레나로 다시 돌아가야 했던 리타의 심정은 어땠을까! 집으로 돌아온 리타는 기도와 고행과 사랑실천을 계속하였다. 얼마 후 다시 어거스틴 수녀원으로 가서 문을 두드렸다. 그러나 두 번째에도, 세 번째에도 계속 거절을 당하였다.
이렇게 되자 리타는 주님께서 원하시는 자신의 길이 어쩌면 세상에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품게 되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리타의 간절한 소원을 거절하신 것이 아니었다. 다만 그녀의 믿음과 새로운 경험들을 통해 산지식을 얻도록 당신의 은총을 내려 주고 계셨다. 리타의 나이도 이미 40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리타는 비록 수녀원에 입회하지 못하고 세속에 남아 있었으나, 수도자로서의 길을 열심히 닦아 나갔다. 장엄한 서원은 하지 못했어도 복음이 가르치는 대로 살아갔다. 더욱이 내적으로는 하나님의 신비와 결합되어 그분과 함께 하는, 세상에서는 흔치 않은 고귀한 영혼의 소유자가 되어 있었다.
장벽을 뛰어넘을 수 있는 기적은 하늘로부터
어느 날 깊은 밤이었다. 그녀는 항상 하던 대로 열심히 기도와 묵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자기를 부르는 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왔다. 창문 쪽으로 가서 밖을 내다보았으나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잘못 들은 줄 생각하며 기도를 드리는데, 잠시 후 자기를 부르는 소리가 또다시 들려왔다. 잘못 들은 것이 아님을 확신할 수 있었다.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그 곳에는 아주 근엄한 모습을 한 사람이 다른 두 사람과 함께 서 있었다. 낯선 사람들의 돌연한 방문이 리타를 몹시 놀라게 했다. 죽음의 사자인가? 아니면 여행객들인가? 그러나 리타는 후광을 발하고 있는 그 사람들이 누구인지를 바로 알아차렸다. 그들은 세례요한과 성 어거스틴과 톨렌티노의 성 니콜라였다. 그들은 리타에게 자신들의 뒤를 따라오라고 일러 주었다. 이러한 일은 탈혼 상태 또는 꿈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현상이었다.
얼마 가지 않아 카시아에 있는 성 어거스틴 수녀원 앞에 도착했다. 깊은 밤이므로 모든 수녀들은 자고 있었고, 대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그 대문은 벌써 세 번씩이나 그녀를 거절하였던 바로 그 문이었다. 리타의 힘으로는 도저히 들어갈 수 없는 문, 세상과 리타 사이에 가로 놓여 있던 너무나 높은 장벽이었다. 그러나 이 문은 그녀에게 있어서 천국에 들어가는 새로운 관문이었다.
세 분의 성인들은 그녀를 수녀원 안뜰까지 데리고 들어갔다. 그 일을 마치고 난 후 성인들은 사라졌다. 리타만이 수녀원 내부에 있는 안뜰에 홀로 남겨졌다. 다음 날 아침 수녀들이 공동기도를 하기 위해 모두 아래층에 있는 기도방에 내려 왔다. 원장 수녀가 계속해서 입회를 거부했던 바로 그 부인이 그 곳에 있는 것을 보고 모두가 화들짝 놀랐다. 지난 밤 수녀원에서 성당이나 외부로 통하는 모든 문들은 잠겨 있었다. 자물쇠를 부순 흔적이라고는 단 한 군데도 찾아볼 수 없었다. 어떻게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을까? 리타는 간밤에 일어났던 기적 같은 사실들을 꾸밈없이 진실하게 이야기하였다. 수녀들은 그녀가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 확실하게 드러난 이상 믿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확실한 기적을 목격한 수녀원은 그녀를 받아들였다. 리타는 예비 수녀로서 수녀원의 모든 규칙을 배웠으며 수도자의 삶에 필요한 여러 가지를 배우기 시작하였다.
세상 역시 제게는 죽은 것과 다름 없습니다
주님의 겸비를 닮은 여인
리타에게 한없이 높게만 느껴지던 수도원 담이 이제는 하나님의 은혜로 한 울타리가 되었다. 그러나 그녀가 완덕에 도달하기까지는 아직도 수도원 안에서의 넘어야 할 수많은 담들이 있었다. 복음삼덕 즉 청빈·순결·순종을 따르는 수도자들의 삶. 수도원 밖이나 수도원 안이나 리타는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이미 리타는 어릴 때부터 어떠한 경우에라도 부모님에게 절대 순종하는 법을 몸에 익혔었다. 자신을 그렇게도 모질게 학대하던 무자비한 남편에게까지 한 마디 대꾸 없이 침묵으로 순종하였었다. 또한 자녀들이 아버지를 살해한 원수들에게 가졌던 복수심에 대한 분노를 가라앉혀 주느라고 값진 희생도 이미 치렀다.
그 뿐 아니라 리타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철저한 내핍 생활과 일 가운데서 자랐으므로 가난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리타에게는 가난을 실천하는 방법에 대해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었다. 그녀는 먹고 마실 음식과 옷이 없다 해도 배고픔과 헐벗음 그 자체를 받아들였는데, 이는 스스로가 거의 습관적으로 가난을 실천했기 때문이었다.
리타는 원래 동정을 지키는 것에 대해 매우 애착을 가졌기에 남편이 죽은 후에는 철저히 수절했다. 그녀는 함께 사는 동정녀들의 순결함에 대해 전혀 시기심을 갖지 않았다. 리타는 자기 자신을 정식 수녀가 아닌, 일이나 하면서 동료들을 도와주는 보조 수녀 정도로 생각했다.
리타는 그 자신이 십자가의 수난을 통해 깨우침을 얻었으며, 세상에서 이루기 힘든 아주 어려운 완덕의 경지를 터득하기 위해 놀라울 정도로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다. 겸손의 덕을 실천하였고, 공동기도 시간마다 자신에게 쏟아지는 경멸의 눈총들을 사랑으로 받아들였다. 과부의 처지로 동정녀들 사이에서 살아가야 하는 부끄러움을 참으면서, 그 자신을 동료 수녀들의 시중이나 들어주는 하녀의 위치로 끌어내리고 모든 것을 인내심으로 견디어 나갔다. 그녀에 대한 주위의 무관심, 모욕을 주는 말들, 전통적으로 내려오던 공동체의 제도적인 어려움들, 그리고 자신이 겪어야 했던 질병들과 부당한 대우, 계속되는 고통들을 오직 인내로써 극복했다.
그녀가 지녔던 자비의 덕은 모든 이들에게 위로를 주었으며, 그녀는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동료들에게 필요한 일을 해 주었다. 이렇게 해서 그녀의 영혼은 깊이를 더해 갔고 마음이 넓어졌으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모든 섭리를 받아들일 수 있는 자세를 갖추게 되었다. 리타는 예수님께 무한한 사랑을 바쳤으며, 자신을 못마땅하게 여기던 동료 수녀들에게 그와 똑같은 사랑으로 대했다. 그녀의 즐거움 중의 하나는 공동체에서 자기 몫으로 받은 음식의 일부를 수도원 문 앞에서 기다리던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던 일이었는데, 이는 수녀원에 들어오기 전부터 계속하던 일이었다. 그 당시 봉쇄 수도원은 지금보다는 비교적 덜 엄격했다고 한다. 리타는 세상에서 격리된 삶과 묵상을 간절히 원했으면서도 괴로움이 있는 곳에 찾아가 위로해 주기를 서슴지 않았다. 또한 병든 사람에게는 정성껏 간호를 해주기 위해 밖으로 나가는 것을 피하지 않았다. 그녀의 이런 행동을 두고 수녀원 내부에서 비난이 많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하나님의 원수들을 무찌르기 위한 영적투쟁
수련과정을 마치고 착복식을 한 리타는 사도 바울의 말을 빌려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는 이미 세상에서 죽었으며 세상 역시 제게는 죽은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리타는 스스로를 수녀원의 모든 규칙에 얽매어 놓았고, 아무리 사소한 작은 일이라도 규칙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솔선해서 자신은 물론이고 남이 해야 되는 일까지도 찾아 나섰는데 절대로 남의 눈에 띄지 않도록 했다. 리타는 항상 양보하는 자세를 가졌으며 남에게 명령한다거나 지휘하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다.
마귀는 하나님께 선택되어진 영혼들을 항상 유혹하는데 리타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마귀는 리타에게 수도자의 삶은 그녀를 위한 것이 아니므로 다시 세상으로 돌아가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리타는 자신을 수도자의 길로 인도하신 하나님의 뜻이 확실하며 그분에 대한 믿음은 누구도 깨뜨릴 수 없다고 강하게 반박했다. 마귀는 잘생긴 젊은 남자 한 사람을 데려와서 그녀에게 수절하지 말 것을 유혹했으나, 리타가 자신의 의지를 보이기 위해 손을 들어 매질을 하자 더 이상 유혹하지 못하고 도망가고 말았다. 그녀는 자신의 결심이 흔들릴 때마다 이렇게 해결해 나갔다.
어느 날 자신도 모르게 세속적인 불결한 욕망이 떠오르자 손가락을 촛불에 넣었다. 또는 매섭도록 추운 한겨울이었는데도, 그 마지막 인간적인 욕정이 사라질 때까지 자신의 몸을 눈과 얼음 위에 내던져 뒹굴기도 하였다. 그리고 하루에 세 번씩 자신의 몸에 채찍질을 하며 세상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였다.
어떤 사람이 리타에게 채찍질을 하는 이유를 물었을 때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방자한 하나님의 원수들을 무찌르고 그들이 그분을 대항해서 들었던 무기들을 거두어들이기 위해서랍니다.” 리타는 돼지털로 짠 거친 수도복을 항상 입었으며 그 속에 많은 가시들을 넣어서 자기 몸을 찌르도록 하였다. 그녀는 하루 빨리 죄의 사슬에서 자유로워지기를 간절히 바랬다. 그래서 어떠한 유혹도 이제는 더 이상 마음 안에 들어오지 못했다.
순박함과 단순함을 통해 이룬 기적
하나님께서는 리타의 헌신에 기적을 통해 기뻐하시는 뜻을 보여 주셨다. 어느 날 원장 수녀는 리타의 순종을 시험해 보기 위해, 정원 한 구석에 이미 바싹 말라서 죽어 있던 포도나무에 아침저녁으로 매일 물을 주라고 하였다. 그 포도나무들은 잘라서 아궁이에나 던져져야 될 것이었다. 리타는 매일 아침저녁으로 기도가 끝나면 즉시 이 단순한 일을 정성을 다해 계속하였다. 한편 주위의 동료 수녀들은 리타의 그러한 모습을 보고 수군거리며 비웃기까지 했다. 그 일은 여간 힘들지 않았으며,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하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쓸데없는 어리석은 일처럼 생각된 이 일이 내적으로는 하나님께서도 칭찬하실 만한 귀중한 경험을 쌓는 일이 되었다.
어느 화창한 날, 그 안에 살고 있던 수녀들은 자신들의 눈을 의심할 정도로 큰일을 목격하게 되었다. 바싹 말라 비틀어져 있던 포도나무 가지들이 물이 올라 통통하게 불었으며, 가지들 사이에는 많은 잎사귀들이 움터 있었던 것이다. 그 포도나무들에는 얼마 안가서 질 좋은 포도들이 듬뿍 열렸다. 이 포도는 로마의 교황과 추기경들, 귀족들과 수녀원의 후원자들에게 선물로 보내졌다.
이와 비슷한 기적이 알칸타라의 성 베드로와 성 프란체스카 로마나에게도 나타난 적이 있었다. 알칸타라의 성 베드로는 동료 수도자들이 배고파함을 보고 자신의 지팡이를 땅에 꽂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지팡이는 잎과 열매가 풍성한 무화과나무로 변하여, 그 열매로써 동료들이 허기를 면했던 것이다. 성녀 프란체스카 로마나 역시 한겨울에 들판에서 마른 나뭇가지를 줍던 동료 수녀들이 심한 갈증을 느끼자 이를 보다 못해 하나님께 도움을 청하는 기도를 올렸다. 그러자 잎사귀도 나지 않았던 포도 덩굴에서 신선한 포도가 한아름 열렸으며, 이 포도로 갈증을 면한 일이 있었다고 한다. 하나님은 이처럼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르는 참된 종들을 통해,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 가시며 영광을 받으신다.
카시아는 오상을 받은 성 프랜시스가 태어난 아씨시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다. 리타는 성 프랜시스가 세상을 떠난지 한 세기가 조금 지난 때에 태어났다. 그녀 역시 예수님의 수난의 고통을 겪을 수 있기를 간절히 원했으며, 오직 그 일념으로 묵상하였다. 그리고 자기 자신도 그리스도의 십자가로부터 거룩한 표징을 다만 한 부분만이라도 받을 수 있기를 열망하였다. 그녀는 깊은 겸손의 덕 안에서 끊임없이 고통과 수치의 십자가를 청하였다. 그리고 이 열망이 절대로 헛되지 않을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그녀는 묵상을 한번 시작하면 얼마나 깊이 빠져들던지 자주 의식을 잃었다. 함께 지내던 동료 수녀들에 의해 죽음 직전까지 가 있던 그녀의 모습이 자주 발견되었다.
강태형 목사(은총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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