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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빛을따라간사람들] 허드슨 테일러

영성묵상훈련 황상범 목사(오미교회)............... 조회 수 2899 추천 수 0 2012.08.31 20:2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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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www.inbora.com/bbs/board.php?bo_table=board13&wr_id=40&page=65 

허드슨테일러 

그리스도께서 다 이루어 놓으신 일

‘중국내륙선교회’의 창립자 허드슨 테일러는 1832년 5월 21일 영국 반슬리에서 출생했다. 신앙에 열심하였던 부모님의 영향으로 테일러는 어려서부터 기도하는 것과 성경 읽는 것을 규칙적으로 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소년 허드슨 테일러는 책을 읽다 문득 한 문구에 사로잡히기 시작하였다. ‘그리스도께서 다 이루어 놓으신 일’ 왜 이런 표현을 썼을까? 왜 그리스도께서 죄를 속하시고 화목제물이 되셨다는 표현을 쓰지 않았을까? 그때, ‘다 이루었다’는 말이 눈에 들어왔다. ‘다 이루었다? 무엇이 다 이루어졌다는 말일까?’ 완전하고 영원한 속죄함. 그의 마음에서 대신 대답이 들려왔다. 위대하신 대속자가 죄의 빚을 청산하셨다.

승리의 법정싸움

 

그렇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완전한 속죄제사를 드림으로 온 인류를 구속하셨다. 이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이루어주신 완전한 속죄제사에 대해 잠시 언급하고자 한다. 우리에게 한 법정이 있으니 법정 검사는 원수 마귀이고, 검사의 출석 증인은 각인의 양심이다. 검사의 정죄와 양심의 증언에 각 영혼은 입 한번 제대로 열지 못하고, 비통한 표정을 감출 수 없다. 이대로라면 이미 결과는 불 보듯 뻔한 것이다. 공정하시고 엄위하신 재판장 하나님의 판결은 유죄요 영원 지옥 형벌은 우리의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변호사가 있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분의 출석 증인은 십자가이다. 검사 마귀와 각인의 양심은 정죄한다. “이 사람은 살인하였고 도둑질도 하였습니다.” 변호사 예수님은 대변한다. “예, 맞습니다. 그의 증거는 참됩니다. 이 사람은 죽을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저는 십자가에서 대신 죽었습니다. 증인은 저 십자가입니다.” 당황하는 기색이 역역한 검사는 다시 정죄한다. “이 사람은 간음하였고 거짓말을 한 자입니다.” 다시 주님 답변하신다. “네. 맞습니다. 이 사람은 큰 죄인입니다. 도무지 용서받을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의 죄 값을 감당했습니다. 여기 십자가를 증인으로 제시합니다.” 원수 마귀의 얼굴이 심히 일그러진다. 훨씬 작아진 소리로 다시 한번 정죄한다. “이 사람은 불성실하고 게으르고 욕심이 많으며…” 구차하고 끈질긴 송사 끝에 우리의 변호사 주님께서 다시 한번 대변한다. “위대하신 재판장님, 저 검사와 양심의 정죄는 모두 정당합니다. 이 사람은 참으로 죽을 죄인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 사람을 대신 하였습니다. 이제 이 사람은 이제 모든 죄와 사망에서 자유합니다. 이 사람은 저에게 속하였고. 그 증거로 이 사람 안에는 저의 영이 거합니다.”

 

위대하신 재판장은 변호사 측에 손을 들어 줄 수밖에 없다. 이것이 주님께서 다 이루어주신 완전하고 영원하신 속죄제사인 것이다.

이제 남은 일은 무엇인가

 

소년 허드슨 테일러는 다음의 생각이 머리에 떠올랐다. 모든 일이 다 이루어져 있고 모든 죄의 빚이 다 청산되었으니 이제 내가 할 일은 무엇이 남아 있는가? 대답은 분명하게 하나로 모아졌다. 이 세상에서 구원을 위하여서 내가 할 일이라곤 한 가지도 남아있는 것이 없다. 다만 무릎을 꿇고 겸손한 마음으로 구주를 모셔들이고, 주님께서 주시는 구원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남은 생애를 주님을 찬양하며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만 사는 것이 분명하게 남아있을 뿐이다. 이전에 가졌던 모든 의심과 두려움이 사라졌다. 놀라운 평안과 기쁨이 그의 마음에 충만했다. 영접하는 자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기에 나타나는 새 생명의 변화였다.

 

하나님께서는 이 사건을 위하여 그의 어머니와 누이를 통해 작심하여 기도케 하였고 모두 그의 변화를 보고 기뻐하였다. 이때부터 그는 멸망하는 영혼을 향해 그리스도의 열정을 가지고 그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일에 전력을 다하였다. 그는 이때를 회고하며 다음과 같이 고백하였다.

 

“나는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의 영혼을 쏟아 놓았다. 여러번 반복해서 감사와 사랑을 하나님께 고백하였다. 나를 위해 모든 것을 베풀어 주셨고, 내가 모든 소망을 포기하고 구원의 소망마저 포기했을 때 나를 구원해 주셨던 하나님께 사랑을 고백하였다. 사랑과 감사의 표현으로 하나님을 위해 무든 일이라도 하겠다고 아뢰었다. 나는 나 자신과 내 생활과 나의 친구들과 나의 모든 것을 제단 위에 올려놓았다. 이러한 나의 제사가 열납되었다는 확신이 내 영혼에 넘치는 순간, 나는 하나님 앞에 엎드려 형언할 수 없는 기쁨과 경외감에 차 있었다. 그리고 더 이상 나는 내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나를 사로잡았고 이는 그날 이후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사역의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헌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허드슨 테일러는 평범한 소년이었다. 은행 사무직원으로 아버지의 조력자로 바쁜 생활을 보내었다. 그러면서도 많은 유혹과 영적 패배 그리고 갈증을 경험하였다. 그의 안에 소원은 점점 간절하였다. 주께서 자신을 거룩하게 하시고 넘어져 죄를 짓는 생활에서 구해 주신다면 무엇이든지 할 각오가 서 있었다. 거룩함으로 인도 받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당연한 삶의 경험들이었다. 이 무렵 하나님의 새로운 손길이 그에게 임하였다.

 

그리스도의 승리가 실제의 삶 속에서 구체적으로 열매를 맺게 해 주신다면 어느 곳이든 지시하시는 곳으로 갈 것이며, 주님께서 원하신다면 자신의 생명까지도 바치기를 원하는 용기있는 결단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서원이 하나님께 열납 되었다는 확신과 함께 분명한 음성이 들려왔다.

 

“너는 나를 위해 중국으로 가라.” 이때부터 허드슨 테일러의 일생은 하나의 위대한 목적과 기도로 일관되게 되었다. 허드슨 테일러는 자신의 양심을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였다. 그리고 이 순종은 구체적이고 실제적이었다. 그는 육체의 고난을 겪을 준비를 하였다. 더 많이 운동하였고, 깃털 침대를 매트리스로 바꾸었고, 음식을 먹을 때도 절제하기를 연습하였다. 저녁시간은 가난한 사람들이 살고있는 곳에 가서 전도지를 나누어주었고, 중국어 공부도 열심히 하였다.

 

1850년 중국선교를 위한 준비로 의학공부를 하기 위해 헐(Hull)이라는 항구도시에서 닥터 하디의 조수로서 훈련받았다. 그는 어려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이모의 집의 비교적 좋은 환경을 떠나 하숫가의 빈민촌에 한 평 정도의 조그만 오두막집에서 세를 주고 살기로 했다.

 

음식은 귀리와 쌀을 주식으로 하고 가끔 한번씩 다른 음식을 먹었다. 그의 소득의 삼분지 일은 다른 선한 목적을 위해 사용하였다. 자신을 위해 덜 쓰면 덜 쓸수록 다른 사람을 위해 더 쓸 수가 있고, 그럴수록 자신의 영혼에 행복과 축복이 넘치는 것을 경험하였다.

 

허드슨 테일러는 그곳에서 고독한 생활을 하였고 그 속에서 하나님을 따르는 자에게 하나님은 어떤 분이 되어주시는가를 배웠다. 하나님께서 사용하실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많은 희생을 치러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그리스도를 닮은 인격은 저절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값비싼 대가를 지불하고서야 비로소 얻는 생명과도 같은 것이다. 그리스도의 인격을 닮을 때 그리스도의 일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너희가 나의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나의 받는 세례를 받을 수 있느냐”(막10:38)라고 주님은 말씀하셨다.

 

허드슨 테일러는 고독했고 사랑과 동정을 원했으며, 아직 소년으로서 절제의 생활을 한다는 것은 말할 수 없이 힘이 들었다. 그러나 마귀는 이때를 노렸고, 횡포를 부렸다. 그가 하숫가의 빈민촌으로 이사한지 몇 주가 안 지나서 그가 몹시 사랑했던 연인이 그를 떠나기를 선언 하였다. 2년간이란 긴 세월동안 하루같이 그녀를 사랑했으나 그가 중국의 선교사로 떠나기로 결정하자 결별을 선언한 것이다. 그녀를 사랑했던 만큼 그의 상처는 컸다.

 

마귀는 그를 쓰러뜨리려 했으나, 주님께서는 이것도 결국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셨다. 허드슨 테일러는 큰 아픔과 희생을 치르고서라도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소원하였고 이는 그에게 주님을 더욱 소유하는 기쁨을 경험하게 하였다. 그리고 그는 찬송하였다. “슬퍼하고 통회하는 심령을 멸시치 않으시는 주님, 저는 주님 안에서 기뻐합니다. 저는 구원의 하나님 안에서 기뻐합니다.” 

전부를 주어 얻은 기쁨과 평화

희생보다 큰 보상

 

허드슨 테일러는 과거를 회상하면서 ‘나는 결코 희생하지 않았다’라고 고백하였다. 왜냐하면 그의 희생에 비해 받는 보상이 컸기 때문이었다. 중국선교를 위해 애인도 포기하고 풍족한 생활보다 가난한 하수지역의 셋방살이를 선택했지만, 분명 테일러는 하나님의 간섭을 그의 생활에서 체험하며 살았다.

 

하나님을 위하여 자신의 가장 큰 소유(애인)를 포기하였을 때, 그의 삶은 비로소 달라지기 시작하였다. 자기연민으로 인해 침체되었던 사명감과 인간에 대한 구령의 열정이 회복되었던 것이다. 그는 어머니에게 다음과 같이 편지하였다.
“어머니, 저의 열정에 대해 조금도 염려하지 마십시오. 선교사의 일이란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고귀한 일입니다. 어머니, 저는 얼마나 선교사가 되기를 원했는지 모릅니다. 가난하게 살다가 결국은 멸망으로 갈 수밖에 없는 수많은 죄인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나를 위해 죽으신 주님을 위해 저의 생애를 드리고 또 사용되기를 얼마나 갈망하는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습니다. 어머니, 매년 1,200만의 인구가 하나님도 영생도 없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셨습니다. 우리도 주님을 닮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머니, 결론을 내려야겠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어머니를 위해 죽으신 예수님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실 의향이 없으십니까? 저는 중국을 위해 무엇인가를 하지 않고는 살 수가 없을 것처럼 느껴집니다.”

자신의 믿음 너머 하나님께로

 

이 시기 허드슨 테일러는 영적으로 새로운 힘의 필요를 절실히 느꼈다. 자신의 믿음만 튼튼하면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버리시지 않으리라 믿었다. 그러나 문제는 믿음이 약해지면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주님께서 얼마나 미쁘신가 보다는 주어질 일에 대해 감당할 믿음이 자신에게 있는가 없는가가 중요한 문제였던 것이다. 허드슨 테일러는 기도 하나만을 통해서 사람을 움직이는 능력을 배워야만 하였다. 그해 겨울은 이 위대한 비결을 터득하는 기간이 되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롬 1:17) 하였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믿음이란, 그 사람 자신이 가졌다 생각하는 그런 믿음이 아니다. 자신의 믿음의 한계를 넘어 변함없으신 하나님께 믿음의 뿌리를 깊이 내려야 한다. 하나님의 사람이란 스스로 믿음이 있다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요, 오히려 자신의 믿음은 너무나 연약함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절히 의지하는 자이다.

 

아무도 모르는 치열한 싸움

 

헐(Hull)에서 사는 동안 허드슨 테일러는 하디박사의 병원에서 일했다. 봉급은 석달에 한번씩 지급되었는데 하디박사는 그날을 제대로 기억해 내지 못했다. 워낙 바쁜 병원일정 때문이었다. 박사는 봉급 때가 되면 자신에게 알려줄 것을 허드슨 테일러에게 부탁했다. 그러나 허드슨 테일러는 자신의 입으로 직접 말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박사를 움직여 주시기를 기도하며 훈련하였다. 온전히 하나님만 의지하고 바라보는 선교지의 생활을 앞당겨 훈련한 것이다. 월급날은 다가왔으나 박사는 역시 기억하지 못했다. 계속 기도하였다. 수 일 후에도 박사는 기억하지 못했다. 이상과 현실의 벽은 높았다. 그나마 먹던 귀리죽도 하루치 밖에 남지 않았다. 어느 누구도 허드슨 테일러로 하여금 급여를 받지 못하게 하지 않았다. 어느 누구도 그로 하여금 귀리죽 마저 먹지 못하게 하지는 않았다. 이것은 허드슨 테일러 스스로 선택한 믿음과 불신의 치열한 싸움이었던 것이다.

 

수중의 돈을 모두 모아보니 반크라운짜리 은화 한 개가 남아있었다. 주일이 되자 평소대로 그는 아침예배를 마치고 도시의 빈민촌에 있는 여러 셋집들을 돌며 종일 복음을 전하였다. 밤 열 시경 마지막 심방예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테일러의 현실은, 당장 내일 저녁 끼니가 없었다. 하지만 그는 복음을 전한 기쁨으로 대신 위로를 삼았다.

2실링 6펜스의 기쁨과 평화

 

집으로 가는 길에 문득 한 가난한 사람이 자신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자신의 아내가 죽어가고 있으니 와서 기도해 줄 것을 부탁하였다. 평소 같으면 흔쾌히 받아들일 수 있는 부탁이었으나 그날은 예외였다. 많은 날을 놔두고 하필 이때 이 분이 나를 찾아올 게 무엇인가. 지금 나는 이 사람과 같이 가난한 사람이 아닌가.

 

허드슨 테일러는 수중의 은화 한 개가 무척이나 마음에 걸렸다. 왜냐하면 작은 단위의 여러 돈이 아닌 은화 단 한 개(2실링 6펜스)였기 때문이었다. 웬일인지 갑자기 마음의 기쁨이 사라졌다. ‘이 은화대신 2실링 6펜스가 있었다면 기쁘게 한 실링을 이 사람에게 줄 수 있었을 텐데….’

 

집안에 들어가 보니 4명의 아이들과 죽어 가는 산모가 갓 낳은 핏덩이와 함께 신음하며 누워있었다. 다시 한번 마음의 갈등이 밀려왔다. 차라리 은화대신 2실링 6펜스였다면 1실링 6펜스를 기쁘게 줄 수 있었을 텐데…. 허드슨 테일러는 달리 위로할 말을 찾지 못했다. 무책임한 정부의 대책이 원망스러웠다.

 

허드슨 테일러는 불쌍한 그들에게 아무리 환경이 어렵더라도 하늘에 계신 사랑이 많으시고 친절하신 하나님을 의지하라고 말하였다. 그때 양심에서 날카로운 책망의 음성이 들려왔다. ‘이 위선자야, 구원받지도 않은 이들에게 하늘에 계신 사랑이 많고 친절한 하나님에 대해 말하면서 네 호주머니에 있는 은화는 통째로 줄 수 없단 말이냐?’ 허드슨 테일러는 2실링이라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드리고 6펜스만 있어도 살아 갈 것 같았다. 그러나 아직도 그가 의지하는 하나님은 꼭 6펜스와 함께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었다.

 

당시 허드슨 테일러에게 기도는 즐거운 일이었다. 그러나 그날만큼은 예외였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라고 입술을 열자마자 그의 양심에서는 또다시 ‘네가 하나님을 희롱하느냐, 호주머니에 은화를 가지고도 감히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느냐’라는 음성이 들렸다. 순간 아무생각도 나지 않았다. 정신없이 기도를 마치고 밖으로 나가려 하는데 남자가 “선생님, 얼마나 처참한지 보셨지요? 가능하시다면 좀 도와주세요.”라고 또 손을 내밀었다.

 

그 순간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어라’하신 주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그리고 천천히 허드슨 테일러는 자신의 호주머니로 손을 집어넣어 은화 한 개를 꺼내어 그에게 주었다. “다른 이에게 별로 안 되는 적은 돈일 수 있으나 지금 저에게 이 돈은 저의 가진 전부입니다. 받아주세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은 진실하시고 믿을 만한 분이십니다.”
바로 그때 허드슨 테일러의 마음속에서 기쁨이 홍수처럼 밀려왔다. 양심의 가책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할 수 있게 되었다. 축복을 저해하던 요소가 사라진 것이다.

 

그날 밤 허드슨 테일러의 마음은 텅빈 호주머니만큼 가볍고 기뻤다. 잠자리에 들기 전 평소대로 기도하였다. “하나님!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이는 것이라는 말씀을 믿음으로 실천하였습니다. 내일 저녁부터는 먹을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저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허드슨 테일러의 용기있는 믿음과 결단은, 죽어가는 산모의 생명만 아니라 자신의 생명도 건졌다. 영혼의 생명! 그 날밤, 테일러는 여느 때보다도 달콤하고 평화로운 안식을 누릴 수 있었다.

높은 이상, 냉험한 현실 그리고 믿음

자원하는 믿음

 

허드슨 테일러는 헐을 떠나 런던의 한 큰 병원에 의과대학의 실습생으로 들어갔다. 허드슨 테일러 일체의 필요를 하나님에게서만 얻고자 하였기에 아버지로부터의 생활비지원에 대한 제안을 믿음으로 사양하였다. 그의 필요는 선교회의 공급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선교회는 그의 학교 수업료만 겨우 공급해줄 뿐이었다. 그러나 그의 믿음은 약하여 지지 않았다. 그의 모친에게 다음과 같이 편지하였다.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에 평강으로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사26:3). 라는 말씀이 진리라는 것을 생활에서 체험하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 호주머니에 100파운드를 가지고 있는 것보다 더 마음이 든든합니다. 물질적인 것이나 영적인 것을 막론하고 모든 축복의 근원되시는 주님을 오직 믿음으로 의뢰할 때 주님께서는 항상 나를 지켜주실 것을 믿습니다.” 그는 일부러 자원하여 가능한 모든 공급원을 차단하였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 곧 살아계신 하나님이었다.

당시의 중국상황

 

이러한 결심으로 인해 순적한 하나님의 인도로 중국으로 출발하게 되었다. 그의 나이 21세였다. 당시 중국은 태평천국의 난이 절정에 이르렀다. 이 난의 주동자인 홍수전은 선교사의 전해준 전도지를 받고 2-3개월의 성경공부를 한 뒤 정식으로 교인으로 등록이나 세례도 받기전에 고향땅으로 돌아가 반란의 운동을 시작하였다.반란군은 주로 그리스도인으로 구성되었고 반란군은 남경에서 시작하여 중부와 북부를 점령해 나갔고 북경까지도 곧 장악될 것같이 보였다. 홍수전은 선교사에게 다음과 같이 편지하였다.

 

“진리를 전파할 수 있는 많은 선교사들을 보내주십시오. 앞으로 나의 거사가 성공적으로 끝나면 나는 중국 전대륙에 복음을 전파할 예정이며 모든 사람들이 주님께 돌아와 참된 하나님을 경배하도록 하겠습니다. 이것이 내가 마음으로 갈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중국은 당장이라도 복음의 일꾼들에게 맡겨지는 것처럼 보였다. 곳곳에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마음에 감동을 받아 큰 위기를 맞이한 중국을 위해 무엇인가를 해야만 한다고 느꼈다. 따라서 많은 헌금이 몰려들었다. 전도사업의 하나로 영국성서공회에서는 중국어 신약성경을 100만부 인쇄를 하여 창립 50주년을 기념하였다.

영원아닌 비장한 이별

 

허드슨 테일러는 중국선교회와 접촉을 하여 중국내륙지방으로 보내지는 두 명의 선교사 중 한사람으로 출항하게 되었다. 허드슨 테일러에게 있어서 이 출항은 사랑하는 가족들과의 이 땅에서 이별이 될 수 있었다. 그러므로 그는 비장한 각오를 가족과 이별을 고했다. “한번 더 어머니와 상면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만났다가 영원히 아니, 영원히는 아니지만 헤어질 아픔을 생각하면 안 만나는 편이 더 좋을 것 같기도 합니다.
“이 세상은 잠깐이요, 덧없는 인생이라.
약속하신 십자가를 어찌하여 피하리오.
오, 주님의 발자취를 흠모하며 따르세.
이 세상은 고락간 잠시 동안뿐일세.
주님의 미소와 상금을 기대하세.”
저를 위해 많이 기도해주십시오. 주님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겠노라고 말하기는 쉽습니다. 그러나 정작 닥치면 주님 안에 온전히 서있을 때만 모든 역경을 물리치고 실천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주님의 귀하심을 더욱 깨닫고 주님을 아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함(빌3:10)을 알게 하여주시기를 빕니다.”

시련을 통해 강건해지는 믿음

 

1854년, 허드슨 테일러는 5개월간의 위험한 항해 끝에 처음으로 중국 해안에 도착했다. 당시 중국은 전도하기에 어려움이 많았다. 상해와 기타 4개 항구 도시에서만 외국인이 살수 있을 뿐 내륙지방은 단 한명의 개신교 선교사가 없었다. 태평천국의 난은 더욱 맹렬해졌으나 초기 성격을 잊어버리고 부패한 정치적 운동으로 타락하여 중국의 전 영토는 피로 물들어 가고 있었다. 이 시기에 내륙 지방 전도는 대단히 어려운 실정이었다. 내륙은 고사하고 상해에서도 발붙이기가 대단히 어려웠다. 허드슨 테일러는 자신의 뒤에 들어오게 될 수백 명의 선교사를 위해 선구적 위치에 있다는 것을 상상하지 못했다. 다만 모든 짐이 시련에 고통스러울 따름이었다. 무쇠가 단련되어 강철이 되듯 사람의 마음은 시련으로 단련되어 금보다 귀한 믿음이 되는 것이었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더욱 강한 인내심이란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처음 상해에 도착하였을때 그곳은 겨울이었다. 석탄은 너무나 고가품의 물건이었기에 사용할만한 형편이 안되었으며, 살을 에는 추위와 습기에 보호할 만한 옷도 제대로 구비되어있지 못한 형편이었다. 거리는 폐허가 된 집들과 수많은 죽은 사람들의 시신과 부상자들, 불쌍히 끌려가는 포로들로 참담한 모습이었다. 허드슨 테일러는 그들을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는 먼 나라 사람이 아닌, 강 건너 불구경이 아닌, 비참한 현실 가운데 한사람으로 그곳에 거하시는 주님을 발견하였다.

 

“고국에서 멀리 떨어져 전쟁터에 있으면서 저는 이해할 수도, 이해받지도 못하는 상태에 있는 것이 어떠한 생활이라는 것을 잘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가련하고 처참한 사람들의 모습, 그리고 저의 도울 수 없는 입장, 더욱이 그들에게 예수님을 전도할 수없는 상황에 대한 괴로움은 헤아릴 수 없습니다. 사탄이 홍수같이 밀려왔으나 주님께서 그를 대적해 깃발을 세우셨습니다. 지금 주님께서 여기계십니다. 비록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알려지지도 대접을 받으시지도 못하시나 자기백성에게는 귀하신 분이시며 함께하십니다.”

 

그는 생애 처음으로 재정적 책임을 감당하지 못할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본국에서는 분수대로 살고, 기꺼이 아무것도 먹지 않으면 되었다. 그러나 이제는 전혀 자신의 소득으로는 감당할 길이 없었다. 자기 봉급의 3-4배를 받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 세를 들어 살아야만 했으며 그나마 방조차도 제대로 구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 환율이 두 배나 뛰어 돈의 가치는 반으로 줄게 되어 그의 적은 재원은 급격히 줄어들게 되었다. 그러나 정작 중국선교회에 보낸 편지의 회신은 실망적이었다. 중국선교회의 위원들은 허드슨 테일러의 처한 상황을 거의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은 바쁜 사람들로서 자신의 업무에 열중하였고, 그나마 하나님의 복음사업에 진정한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경험하지 못한 전혀 다른 상황을 실감할 수는 없었다. 신앙은 높은 이상과 냉엄한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숙제를 허드슨 테일러는 실감하였다. 그는 몇 달이 지나도록 불안과 재정적 궁핍에서 신음하여야만 했다.

 

찌는 듯한 여름이 되었다. 허드슨 테일러 선교사 다음에 오기로 된 다른 한 선교사 가족이 도착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이 거처할 만한 집은 없었다. 그들은 아무 돈이 없었다. 먼저 상해 온 다른 이들의 권유는 땅을 사서 집을 지어야 한다는 것이다. 실상을 이야기해야만 했으나 벌써부터 중국선교회의 운영에 대한 비난이 일어나고 있었다. 허드슨 테일러는 그가 처한 문제들을 자신에게 국한 시키고 가능한 한 마음의 짐을 주님께만 털어 놓으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속에서 평화하는 것을 배워나갔다.

 

“사랑하는 자를 진심으로 의뢰하는 자는 언제나 ‘내가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하심이라’(시23:4)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베드로와 같이 주님에게서 눈을 돌려 주위의 바람과 파도를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저는 좀더 믿음과 의지함이 필요한 사람입니다. 말씀을 읽고 약속들을 묵항하는 것은 요즈음 저에게 가일층 소중한 것이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중국어를 빨리 배울 욕심으로 영적인 것을 조금 게을리했습니다. 이는 저의 신앙생활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주님의 얼굴을 다시 뵙게 되었습니다. … 저는 다시 집 문제로 갈등을 하고 있습니다. 머리를 짜내어 보았으나 별도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기도하기로 작정하고 완전히 주님께 의탁하기로 했습니다. 이제는 그 문제에 대하여 온전히 평안합니다. 주님께서 이 문제뿐만 아니라 다른 괴롭히는 문제에서도 저의 안내자가 될 것입니다.”

그 어떤 것도 믿음을 연약하게 할 수 없다.

그가 나의 모든 사정을 알고 계신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의뢰하는 자에게 가장 좋은 것으로 채워 주신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에서

 

전쟁은 지나가고 중국은 다시 고요해졌다. 허드슨 테일러는 동료들과 함께 환자들을 치료하고 돌보는 일에 전념하였다. 안정된 사역을 위한 중국선교회본부 건립을 위한 자금을 영국에 있는 중국선교회본부에 요청하였다. 이를 위하여 치밀한 계획과 함께 많은 기도를 하였다. 그러나 끝내 회신은 오지 않았다. 그해 여름은 유난히도 무더웠다. 그러나 그는 쉽게 지쳐버리는 작열하는 태양볕 아래서, 이 모든 어려운 낙관들이 곧 추수 때에 양식을 준비하는 밑거름임을 알았다(잠6:8).

긴 머리 선교사

 

더 이상 세를 낼 수 없었던 허드슨 테일러와 함께 한 선교사들은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다. 이제 허드슨 테일러는 다른 중국인들과 같이 집 없이 보트생활을 해야만 했다. 처음부터 중국인의 옷을 입었던 그는 이제 완전히 중국인들과 동화되기 위하여 윗머리를 거의 다 깎고 뒷머리는 길게 늘어뜨렸다. 이제까지 선교사 중에는 한사람도 이와 같이 중국인의 복장을 취한 적이 없었다. 그것은 자신의 모든 체면, 관념, 경험들을 내려놓는 것이었다.

 

그는 오직 하나님과 동등되시나 종의 형체를 취하셨던 주님의 겸손과 함께 하길 원했다. 그러기에 지금까지 살아왔던 생활양식을 쉽게 벗어버릴 수 있었다. 이 모든 것이 복음을 위해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지혜였다. 그가 선택한 의복은 많은 중국인들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그에게 다가와 복음을 접할 수 있게 해 주었다. 내륙 지방전도의 가장 큰 조력자가 된 셈이었다.

눈물을 머금고 돌아서는 발걸음

 

허드슨 테일러는 백만의 인구를 가진 내륙지방의 숭명이라는 섬으로 들어갔다. 사람들은 의약품과 함께 그의 설교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하나님께선 이미 예비한 사람들을 그곳에 두셨다. 환자의 줄은 끊일 줄 몰랐고, 진지한 구도자들의 수도 많았다. 중국인 조력자들도 생기어 허드슨 테일러의 복음사업을 도왔다. 그러나 기쁨의 날도 오래가지 못했다. 숭명 섬의 의료인들의 거센 반발이 일어났다. 그들은 세력 있는 정치인을 매수하여 경쟁자인 허드슨 테일러를 제거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그러나 사실상 허드슨 테일러는 치료에 관한 아무 보상도 받지 않았다. 결국 그는 영국 영사관으로 소환됐다. 그리고 숭명섬을 떠나 다시 상해로 돌아가게 되었다.

 

마지막 날 밤, 허드슨 테일러는 숭명섬의 형제들과 아쉬운 이별의 인사를 하였고 형제들의 영혼을 하나님께 의탁하였다.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요10:15)라는 주님의 말씀처럼 허드슨 테일러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기를 원했다. 삯꾼 목자처럼 여우가 올 때 도망가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이 주님의 뜻이라면 추방이라도 받아야만 하였기에 그의 마음은 안타까움에 눈물을 적셔야만 했다. 다만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만이 영광스럽게 되기를 소원하였다.

영적 아버지와의 만남

 

하나님께서는 이 일이 있은 후에 허드슨 테일러에게 신앙의 아버지를 만나게 해 주셨다. 그는 1839년 스코틀랜드와 캐나다에서 강력한 신앙의 부흥을 일으키는데 사용된 하나님의 사람 윌리암 번스였다. 그들은 상해에서 만나 얼마 되지 않아 형제의식을 가졌다. 비록 나이 차이는 컸으나 흡사 바울과 디모데를 보는 듯 했다. 한 팀이 되어 보트를 타고 내륙으로 전도여행을 나가게 되었다. 그들은 날마다 빠짐없이 배 안에서 예배를 드렸다.

 

번스는 분명한 계획으로 팀을 이끌었다. 중심에 선교 본부를 정해놓고 새로운 곳으로 나갔으며 한곳에 2-3주를 머무는 것이었는데, 처음에는 외국인을 전혀 볼 수 없는 외곽지역에서 조용히 시작하여 점차 인구가 많은 지역으로 전도를 해갔다. 마침내 어느 곳이든지 상점 주인들의 성미를 돋구거나 그들의 상품들을 해치지 않고 지나갈 수 있게 되었다. 허드슨 테일러에게 윌리암 번스는 대학 교육보다 더 좋은 실물 교육이었다.

 

윌리암 번스는 기도의 사람이었다. 또한 말씀을 매일의 양식으로 삼은 사람이었다. 박학 다식하였으며 다정다감하였다. 그는 허드슨 테일러에게 허락된 하나님의 특별한 축복이었던 것이었다. 번스의 영향력 아래 허드슨 테일러의 신앙은 무럭무럭 자라났다. 번스는 허드슨 테일러에 삶의 중요한 영적 가치관을 심어준 진정한 스승이었던 것이다. 허드슨 테일러는 이 기간 동안, 후에 이끌 원대한 선교 사업의 밑거름을 얻게 되었다.

 

예측할 수 없는 이별

 

7개월간의 복음사업이 진행되었을 때, 번스는 부족한 의약품을 보충하기 위하여 허드슨 테일러에게 상해를 다녀올 것을 부탁하였다. 이것이 이 땅에서 서로에게 마지막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허드슨 테일러가 상해에 도착하였을 때 이미 보관된 의약품은 다 불에 타고 없었다. 하는 수 없이 허드슨 테일러는 부족한 의약품을 구하러 동분서주하며 상해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던 중 비보를 듣게 되었다. 스승인 번스가 관가에 붙잡혀 멀리 광동까지 31일간의 추방을 당했다는 소식이었다. 이는 허드슨 테일러에게 큰 충격이었다. 밝게만 보이던 전도사업에 다시 먹구름이 덮이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시험이 없었다면 허드슨 테일러의 전도 생애는 결코 성공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초월하여 합력하시어 선을 이루게 하셨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길

 

번스의 체포에 관한 비보와 함께 중국과 영국간의 전쟁이 발발하였다. 광동은 영국 함대의 공격을 받았고 전쟁은 4년 후에 비로소 끝을 맺게 되었다. 번스가 산두에서 광동으로 호송되어 간 것은 전화위복이었다. 만약 번스가 계속 산두에 있었더라면 그는 성급한 남부 사람들의 분노의 희생제물이 되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처음에 허드슨 테일러는 왜 번스가 광동으로 포박을 받아 호송되었는지 알지 못했다. 그러나 나중에는 그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은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롬8:28) 하나님의 섭리임을 알게 되었다. 그 비보는 하나님의 모든 것 중에 하나였던 것이었다. 이번 일로 허드슨 테일러는 모든 환경가운데서 은밀하게 도우시는 하나님의 전능하신 손길을 다시금 깊이 깨달았다. 모든 외부의 환경은 모든 것이 하나님 손에 인도되거나 허락된 것이며, 비록 인간이 보기에 불만족스러울지라도 결국은 자기를 위해 예비 된 가장 좋은 환경이었음을 알고 감사하게 되었다. 이 곳에서 허드슨 테일러는 미리 예비하신 신앙의 동반자를 만나게 되었다.

빚지지 않는 하나님의 일

 

당시 중국선교회는 명성과 달리 오랜 재정적 빚을 안고 있었다. 허드슨 테일러의 받는 봉급도 꾼 돈으로 송금해 주는 형편이었다. 개인적으로 절대로 빚지지 않고 사는 것이 신조였던 허드슨 테일러에게 있어서 이것은 대단히 어려운 문제였다. 개인적인 믿음에 비춰볼 때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롬13:8)라는 하나님의 가르침은 분명한 것이었다. 참으로 하나님의 일이라면 하나님은 반드시 충분히 공급해 주실 것이다. 하나님께선 결코 가난한 분이 아니시다. 그가 말씀에서 배운 하나는 빚과는 손을 떼라는 것이었다. 어떤 일이든 그 일을 하는데 자금이 딸린다면 그때부터는 하나님의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중지해야 하며 손을 떼야한다는 것이다.

 

결국 이듬해에 그는 중국 선교회에 사표를 제출하였다. 이제 그는 하나님께서 공급하여 주시지 않으면 안 되는 오직 하나님의 얼굴만을 바라보는 가난한 사람이 되었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쁨으로 평안과 용기가 솟아났다. 허드슨 테일러는 모든 것을 의탁하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얼굴만을 주목하게 되었다.

모든 불신앙을 뛰어넘어 믿음의 길로

질병과 은둔생활

 

과중한 중국선교지의 병원업무는 허드슨 테일러의 건강을 급속히 악화시켰다. 또한 영혼구원에 대한 절박한 책임감은 그를 더욱 힘들게 하였다. 결국 그는 어쩔 수 없이 초기중국선교 단락을 맺게 하였다. 허드슨 테일러는 6년만에 질병에 걸려 고국으로 돌아와야만 했다. 그리고 5년이라는 긴 은둔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 기간은 또 다른 하나님의 다루심이었다. 허드슨 테일러는 기도와 말씀에 전무하며 하나님께 대한 그의 신뢰를 높여갔다. 비록 몸은 병으로 인해 활동에 어려움을 겪었으나, 그의 영혼은 더욱 활발히 하나님을 향하여 달려가는 기간이었다. 외적으로 볼 때 그의 매일의 생활은 조용하였고 통상적인 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지극히 제한된 재정만으로 아내와 네 아이를 돌봐야만 했기에 하나님만을 의뢰하는 과정에서 가끔 시험도 겪어야만 했다. 또한 중국 영파의 사역을 위해 물질을 공급해야 했고 여러 가지 원격지시도 내려야만 했다. 따라서 많은 서신 업무를 해야 했다. 이외에도 허드슨 테일러는 중국성경 개정 작업에 놀라울 정도의 많은 시간을 투자하였다.

말씀의 터 위에 믿음의 뿌리를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11:6). 허드슨 테일러는 벽에 걸린 중국지도를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약속이 담긴 성경을 읽어 내려갔다. 말씀과 기도만이 애타는 그의 심정을 달래주었다. 그러나 기도하는 것만으로는 도저히 위로가 되지 않았다. 마음은 있으나 실제는 그 일을 회피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였다.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중국선교에 희생하여야만 마음이 풀릴 것 같았다. 그는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이 아닌 허드슨 테일러 자신을 사용하기 원하고 계심을 확신하였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불신앙을 뛰어넘어 말씀의 터 위에 믿음의 뿌리를 내리길 원하셨다.

 

그 어느 누구도 아닌 하나님만이 그에게 다시금 선교의 열정을 불태울 수 있었다. 그는 중국선교에 함께 동역할 사역자를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다. 하나님의 애타는 마음을 강하게 느꼈기에 그곳에서 멈출 수가 없었다. 그러나 한 가지 장애물이 있었다. 그것은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치 못함에서 오는 마음에 일말의 불안이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께 매달렸다.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면서 중요한 진리를 터득했다. 또한 주의 일꾼을 구하려면, 지금처럼 각 교단을 방문하여 호소하지 말고 먼저 하나님께 일꾼을 달라는 간청의 기도를 하여야 함을. 그 다음으로는 영국 교회에 영적부흥을 일으켜 사역자들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감동되어 스스로 자원케 하는 것이었다. 하나님의 일꾼이란, 먼저 방법이나 수단을 강구하는 것이 아니고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는 약속의 말씀을 의지하고 먼저 나가서 일하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계속되는 마음의 번민과 고통

 

그러나 불신앙은 허드슨 테일러를 또 다시 주저케 했다. 분명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꾼을 주실 것을 기도했고 이것이 기도한 대로 이루어질 것을 알고 있었다. 또한 기도의 응답으로 이 일꾼들이 갈 여비도 마련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아직 복음을 접하지 못한 수많은 대륙 사람들에게 복음의 문이 열릴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허드슨 테일러는 자신의 믿음이 아직도 많이 부족함을 느꼈다. 하나님께서 이 선교 사업을 수행할 수 있도록 자신에게 은혜와 능력을 주실 것을 믿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자신과 함께 가는 일꾼들도 주님께서 보살펴 주실 것을 믿지 못했다.

 

선교사의 일을 한다는 것은 위험과 역경과 시련의 생활을 자원하는 것인데 아직 미숙한 선교사들이 도중에 포기하게 될 것을 생각하니 염려가 되었다. 자기들이 감당하지도 못할 어려운 일을 맡게 했다고 그들이 나에게 와서 질책하고 원망할 것만 같았다. 허드슨 테일러는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다. 하나님께 대한 송구스러움은 더욱 커졌다. 선교사 모집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꾼들이 나서지 않는 것 같았고 중국선교의 길이 막히는 것 같아 괴로웠다.

 

한편 중국대륙에서는 매일 수만 명이 그리스도 없이 무덤으로 향하고 있었다. 멸망해 가는 영혼으로 가득 찬 중국 대륙이 그의 마음과 생각을 사로잡아 낮에도 휴식이 없었고 밤에도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이윽고 그로 인해 건강이 더욱 많이 악화되었다.

 

친구의 권유로 허드슨 테일러는 브라이튼에 있는 해변에 가서 쉬게 되었다. 그는 그곳의 모래사장을 거닐며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자기만이 아는 신앙의 고민을 가지고 하나님과 대화하였다. 그날 일찍 다른 사람들과 함께 교회에 참석하였다. 그곳의 성도들은 새로 구원받은 사람들로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의 환호성을 올렸다. 이 광경을 본 테일러의 마음은 더욱 무겁고 괴로웠다. 견디기 힘든 아픔을 느꼈다.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요10:16). 어느 누구도 돌보아 주지 않는 광활한 중국 대륙의 멸망하는 영혼들, 그들도 역시 인도해야 한다. 주님의 음성이 들려왔다. 주님의 인자하신 사랑의 부르심이었다. 이러한 마음을 주신 이가 하나님임을 확신하였다. 주님의 뜻에 순종하고 주님의 인도하심만 의지하고 기도하면 주님께서 중국 내륙 지방 전도자들을 주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또한 이 전도자들의 경제적인 문제도 주님께서 채워주실 것을 알고 있었다. 분명 매일 매일의 일용할 양식을 틀림없이 주실 것을 믿었다. 그러나 그의 마음속에 해결되지 않은 고민은 그들 전도자들이 도중에 실족하여 하차하는 것이었다. 허드슨 테일러는 중국의 생활 여건을 잘 알고 있었다. 또한 선교의 유혹과 장애물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기에 견디다 못해 쓰러져 뒤로 물러가며 더욱이 그 책임을 자기에게로 돌릴 것에 대하여 염려가 되었다. 당시의 허드슨 테일러의 회고는 다음과 같다.

 

“그것은 불신앙의 고민이었다. 기도와 믿음에 자신이 없으면 가능한 한 최선을 다해 그 곤경에서 빠져나와야 한다고 마귀는 끊임없이 속삭였다. 중국 선교를 기피하라는 말이었다. 나는 이 당시, 주님은 전도자를 공급해 주시고 그들에게 물질적인 필요를 제공하실 뿐만 아니라 그 전도자들의 믿음도 지켜 주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중국의 깊숙한 내륙 지방에서도 주님은 그들을 지켜 주시고 보호해 주시는 분이심을 믿지 못했던 것이다.”

하나님을 신뢰하며 따르는 믿음의 길

 

한편 한 달에 약 100만 명의 영혼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한 채 죽어가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견딜 수가 없었다. 그는 결심해야 했다. 왜냐하면 더 이상 고민으로 실랑이를 할 시간이 없었다. 선교지에 나가 일하는 일꾼들을 위해 기도해 준다는 것은 비교적 쉬운 일이었다. 그러나 자기가 솔선하여 그들의 지도자가 된다는 것은 실로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 결심이었다. 그는 다음과 같이 회고하였다.

 

“커다란 영적 고뇌 속에서 나는 홀로 모래밭 위를 걸었다. 주님께서는 이곳에서 나의 불신앙을 정복해 주셨다. 그리고 나는 이 선교 사업을 위해 내 자신을 하나님께 나는 앞으로 있을 어떤 문제나 그 결과에 대한 모든 책임이 주님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주님의 종인 나의 책임은 오로지 순종하고 주님을 따르는 것이며, 나와 또 나와 함께 일할 복음의 역군들을 인도하시고 돌보아 주시고 지도해 주실 책임은 주님께 있다고 말했다. 그 즉시로 무거웠던 마음은 평안을 회복하고 기쁨이 찾아들었다.”

 

브라이튼 여행은 허드슨 테일러에게 정말 좋은 여행이 되었다. 이때부터 그는 11개의 각 성에 2명씩과 몽고 지역의 2명을 더해 24명의 사역자를 달라고 하나님께 간청하였다. 수개월 동안 맛보지 못했던 평안과 확신이 그에게 임하였다.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극복해야 할 장벽

 

허드슨 테일러의 친절함과 사려 깊은 관심과 사랑 그리고 격려는 많은 선교사들의 귀감이 되었다. 그러나 그의 일행 중에는 그를 잘못 이해하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었다. 항해 중에 발생한 오해로 인해 테일러 부인에게도 큰 어려움이 미쳤다. 테일러 부인은 이 사실을 몇 달이 지나도록 한 번도 발설하지 않았다. 오직 사랑과 인내로 극복하였다. 후에 이 일에 대하여 테일러 부인은 본국의 담당자였던 버거에게 다음과 같이 편지하였다.

 

“우리는 참으로 어리석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우리의 힘으로 싸우려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를 대적하는 모든 원수보다 더 강하신 분이 우리와 함께 계심을 감사하고 있습니다. …우리 일행 중 여자 선교사들 사이를 사탄이 이간질하고 있어 저는 이것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선교사 모씨의 일로 앞으로 어떠한 결과가 올지 잘 모르겠습니다. 분명히 아는 것이 하나 있다면 “이스라엘의 소망”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리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어떤 때는 참으로 견디기 어려워,‘아니, 하나님은 모씨를 왜 처음부터 선교사로 파송했을까?’하고 자문해 볼 때도 있었습니다. 이것도 다 우리 내륙 선교회가 처음부터 강한 기초 위에 서있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고통일 것입니다.”
내륙 선교회에 슬픔은 늘 계속되어 믿음과 인내를 시험하였다. 그러는 동안에 주님의 교회의 성도는 날로 더해져 갔다. 신도 1500명이 넘는 교회가 세워졌고 그해 5월에 첫 세례가 배풀어졌다. 그리고 그해 여름에 허드슨 테일러 부부는 사랑하는 맏딸을 잃어버리는 개인적인 슬픔을 당하게 되었다. 안팎의 시련은 혹독하였으나 허드슨 테일러에게 주신 하나님의 사명은 멈출 수 없었다.

폭풍끝에 찾아온 평화

 

테일러 부부는 2개월의 보트 생활 끝에 양주시에 자리를 잡았다. 당시 양주의 인구는 36만이었고, 아무도 복음을 접하지 않은 상태였다. 양주의 주민들은 테일러 부부의 의술과 유창한 중국어 실력과 겸손한 모습에 호의를 베풀었고, 양주의 총독도 대단히 우호적이었다. 다른 곳에서와 마찬가지로 마음의 문이 열리는 것 같았다. 그러나 원수 마귀는 바쁘게 움직이며 전도사업을 방해하였다. 그 도시의 실질적 세력층의 사람들이 모임을 갖고 허드슨 테일러 일행을 매도하기로 결의하였다. 그들은 익명의 전단지를 통해 예수교를 전파하는 외국인들을 모든 범죄와 악행의 소행자로 모함하였다. 양주 사람들은 얼마 가지 않아 태도를 확 바꿔버렸다. 방문객도 없어졌고, 그나마 온 방문객마저 성난 군중들과 합세하였다. 총독의 호의도 선교사들을 피해갔다. 이상한 소문은 극심하여져 외국인의 손에 의해 24명의 어린아이들이 죽었다는 소문으로 이어졌고, 급기야 성난 군중들은 폭도와 약탈자로 변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비하심은 그들의 손에서 허드슨 테일러 일행의 생명을 구하셨다. 이 놀라운 사실은 그 분을 의뢰한 사람들만이 알 수 있는 은총이었다. 죽음이 여러번 코앞에 다가왔으나 그때마다 피할 수 있었고, 폭도들도 무엇에 의해서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감히 범접할 수 없는 두려움이 그들에게 임하여 허드슨 테일러 일행은 생명을 부지할 수 있었다. 폭들이 지나간 잿더미 위에 다시 돌아온 허드슨 테일러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고 곧 바로 수리를 하고 부인들과 자녀들을 다시 불러드렸다. 선교사들은 여느 때와 같이 평온하였고 조용하였으며 또한 상냥하였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옛말이 있듯이 선교사들의 행동은 말보다 웅변적이었으며 양주 시민들에게 큰 감화를 주었다. 말 그대로 폭풍우를 치르고도 아이들까지 데려와 평화롭게 사는 선교사들의 모습을 본 이웃사람들은 자신들의 오해를 풀기시작하였다. 무엇보다도 양주 사건을 통해 선교사들이 깨달은 것은 임재하시는 구세주셨다. 생명의 위태함 속에서 아무 기댈 것 없이 오직 하나님께만 그들의 생명과 처자식들의 생명을 의탁하였을 때 하나님께서 과연 어떻게 지키시는가를 분명히 목격할 수 있었다.

 

우리와 늘 함께 하시는 구세주를 확신한다는 것이 시련과 역경을 헤쳐나가는데 있어서 얼마나 큰 위로와 하늘의 능력인가! 주를 위해 생명을 불사한 이들에게 주어지는 은총을 그들은 맛보았던 것이다. 폭풍으로 인해 다친 선교사들의 상처도 아물기 시작하였고, 허드슨가에도 넷째 아들이 태어났다. 중국인 호텔주인은 그들을 따뜻이 맞아주었고, 두 명의 중국인이 믿는다고 세례를 요청해 왔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시126:6)

고난 속에 다져지는 믿음

 

한편 영국에 있는 중국내륙선교회의 담당이었던 버거는 그 해 겨울, 중국에 있는 선교사들보다 더 심한 풍파를 겪고 있었다. 양주 폭동이 영국의회와 전국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격렬한 비난을 몰고 온 것이다. 매스컴에서 사건을 오해하여 중국에서 일하고 있는 선교사들에게 비난의 화살을 퍼부었다. 선교사들이 대포와 총검을 앞세워 중국인들을 개종시키려하자 현지 중국인들의 거센 반발을 야기시켰고, 폭동이 일어나 선교사들이 영국 함대의 보호를 요청함으로써 중국과 영국이 전쟁 일보 직전에 와 있다는 것이었다. 말할나위 없이 테일러 일행은 이러한 비난의 대상이 될만한 어떠한 일도 한 적이 없었다. 이러한 물의는 선교사들이 원하지도 기대하지도 않았던 것이었다. 오해의 발단은 중국에 있는 영국 영사관에서 본국에 보낸 보고로부터 비롯됐다. 선교사를 보호해야 한다는 좋은 뜻에서 중국과 맺은 권한을 주장해야 한다는 보고였다. 때마침 바뀐 영국 내각이 이 보고에 대해 잘못 이해하고 대응하는 혼선을 빚고 말았다. 이같은 물의는 허드슨 테일러가 양주의 옛집에 돌아와 평화롭게 살게되고 난 한참 뒤의 일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선교 초기부터 말썽을 부리던 몇몇의 선교사들이 사표를 제출하고 나왔다. 이로 인해 오해에 오해가 더해갔다. 그 결과 선교부의 후원자들이 지원을 중단하여 선교부는 재정적으로 심한 위기에 봉착하게 되었다. 허드슨 테일러는 양주 사건 후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썼다.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주님의 많은 은총이 필요합니다. 이곳에 있는 저희들은 매일같이 국적과 언어와 성향이 다른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오해와 많은 어려움을 극복하는데 인내와 관용과 지혜로 참고 나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상상하기 힘드실 것입니다. 제게 맡겨진 임무를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일편 단심, 올바른 판단력, 지혜와 온유, 강인한 인내심, 확고한 목표, 흔들리지 않는 믿음 그리고 그리스도를 닮은 사랑의 마음을 주시도록 주님께 기도해 주십시오. 그리고 이제 겨우 시작해 놓은 이 큰 사업을 위해 필요한 재정적 뒷받침과 여기에서 일할 적임자를 보내 주시도록 주님께 간구해 주십시오.”

예비된 도움의 손길

 

개척 선교에 더 많은 물자와 사람이 필요한데도 불구하고 영국에서부터 오는 지원은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그러나 예상치도 않은 도움의 손길로 인해 선교부는 적잖은 위로와 기쁨을 얻었다. 고아들의 아버지라 불리우는 기도의 사람 조지 뮬러가 중국 선교부에 재정적 후원의 손길을 보내 온 것이다. 양주 사건이 난 후로 기도하는 가운데 사람들은 오해로 인해 어려워진 하나님의 중국 선교 사업이 어려움을 당하는 것을 보자 오히려 결단하고 돕기로 작정한 것이었다. 조지 뮬러는 중국선교사의 한 명이 아닌 열 한 명의 모든 재정적 후원을 지원하였다.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니었으나 그는 고아원의 고용하던 요리사를 포기한 뒤 이로인해 하나님의 사업이 위축되지 않기를 위하여 기도하였다. 물론 그와 같은 소중한 헌금으로 중국 선교부를 지원한 것이었기에 중국 선교부에 더 없는 도움의 손길이 되었다. 또한 이 일화는 참 나눔이란 남는 중에 나누는 것이 아닌 구차한 중에라도 꼭 필요한 하나님의 일에, 꼭 필요한 이웃에게 나누는 것이란 것을 중국 선교부에게 뿐만 아니라 이 일을 기억하는 모든 이에게 알려주는 좋은 일화가 되었다.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극복해야 할 장벽

 

허드슨 테일러의 친절함과 사려 깊은 관심과 사랑 그리고 격려는 많은 선교사들의 귀감이 되었다. 그러나 그의 일행 중에는 그를 잘못 이해하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었다. 항해 중에 발생한 오해로 인해 테일러 부인에게도 큰 어려움이 미쳤다. 테일러 부인은 이 사실을 몇 달이 지나도록 한 번도 발설하지 않았다. 오직 사랑과 인내로 극복하였다. 후에 이 일에 대하여 테일러 부인은 본국의 담당자였던 버거에게 다음과 같이 편지하였다.

 

“우리는 참으로 어리석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우리의 힘으로 싸우려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를 대적하는 모든 원수보다 더 강하신 분이 우리와 함께 계심을 감사하고 있습니다. …우리 일행 중 여자 선교사들 사이를 사탄이 이간질하고 있어 저는 이것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선교사 모씨의 일로 앞으로 어떠한 결과가 올지 잘 모르겠습니다. 분명히 아는 것이 하나 있다면 “이스라엘의 소망”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리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어떤 때는 참으로 견디기 어려워,‘아니, 하나님은 모씨를 왜 처음부터 선교사로 파송했을까?’하고 자문해 볼 때도 있었습니다. 이것도 다 우리 내륙 선교회가 처음부터 강한 기초 위에 서있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고통일 것입니다.”
내륙 선교회에 슬픔은 늘 계속되어 믿음과 인내를 시험하였다. 그러는 동안에 주님의 교회의 성도는 날로 더해져 갔다. 신도 1500명이 넘는 교회가 세워졌고 그해 5월에 첫 세례가 배풀어졌다. 그리고 그해 여름에 허드슨 테일러 부부는 사랑하는 맏딸을 잃어버리는 개인적인 슬픔을 당하게 되었다. 안팎의 시련은 혹독하였으나 허드슨 테일러에게 주신 하나님의 사명은 멈출 수 없었다.

폭풍끝에 찾아온 평화

 

테일러 부부는 2개월의 보트 생활 끝에 양주시에 자리를 잡았다. 당시 양주의 인구는 36만이었고, 아무도 복음을 접하지 않은 상태였다. 양주의 주민들은 테일러 부부의 의술과 유창한 중국어 실력과 겸손한 모습에 호의를 베풀었고, 양주의 총독도 대단히 우호적이었다. 다른 곳에서와 마찬가지로 마음의 문이 열리는 것 같았다. 그러나 원수 마귀는 바쁘게 움직이며 전도사업을 방해하였다. 그 도시의 실질적 세력층의 사람들이 모임을 갖고 허드슨 테일러 일행을 매도하기로 결의하였다. 그들은 익명의 전단지를 통해 예수교를 전파하는 외국인들을 모든 범죄와 악행의 소행자로 모함하였다. 양주 사람들은 얼마 가지 않아 태도를 확 바꿔버렸다. 방문객도 없어졌고, 그나마 온 방문객마저 성난 군중들과 합세하였다. 총독의 호의도 선교사들을 피해갔다. 이상한 소문은 극심하여져 외국인의 손에 의해 24명의 어린아이들이 죽었다는 소문으로 이어졌고, 급기야 성난 군중들은 폭도와 약탈자로 변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비하심은 그들의 손에서 허드슨 테일러 일행의 생명을 구하셨다. 이 놀라운 사실은 그 분을 의뢰한 사람들만이 알 수 있는 은총이었다. 죽음이 여러번 코앞에 다가왔으나 그때마다 피할 수 있었고, 폭도들도 무엇에 의해서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감히 범접할 수 없는 두려움이 그들에게 임하여 허드슨 테일러 일행은 생명을 부지할 수 있었다. 폭들이 지나간 잿더미 위에 다시 돌아온 허드슨 테일러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고 곧 바로 수리를 하고 부인들과 자녀들을 다시 불러드렸다. 선교사들은 여느 때와 같이 평온하였고 조용하였으며 또한 상냥하였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옛말이 있듯이 선교사들의 행동은 말보다 웅변적이었으며 양주 시민들에게 큰 감화를 주었다. 말 그대로 폭풍우를 치르고도 아이들까지 데려와 평화롭게 사는 선교사들의 모습을 본 이웃사람들은 자신들의 오해를 풀기시작하였다. 무엇보다도 양주 사건을 통해 선교사들이 깨달은 것은 임재하시는 구세주셨다. 생명의 위태함 속에서 아무 기댈 것 없이 오직 하나님께만 그들의 생명과 처자식들의 생명을 의탁하였을 때 하나님께서 과연 어떻게 지키시는가를 분명히 목격할 수 있었다.

 

우리와 늘 함께 하시는 구세주를 확신한다는 것이 시련과 역경을 헤쳐나가는데 있어서 얼마나 큰 위로와 하늘의 능력인가! 주를 위해 생명을 불사한 이들에게 주어지는 은총을 그들은 맛보았던 것이다. 폭풍으로 인해 다친 선교사들의 상처도 아물기 시작하였고, 허드슨가에도 넷째 아들이 태어났다. 중국인 호텔주인은 그들을 따뜻이 맞아주었고, 두 명의 중국인이 믿는다고 세례를 요청해 왔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시126:6)

고난 속에 다져지는 믿음

 

한편 영국에 있는 중국내륙선교회의 담당이었던 버거는 그 해 겨울, 중국에 있는 선교사들보다 더 심한 풍파를 겪고 있었다. 양주 폭동이 영국의회와 전국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격렬한 비난을 몰고 온 것이다. 매스컴에서 사건을 오해하여 중국에서 일하고 있는 선교사들에게 비난의 화살을 퍼부었다. 선교사들이 대포와 총검을 앞세워 중국인들을 개종시키려하자 현지 중국인들의 거센 반발을 야기시켰고, 폭동이 일어나 선교사들이 영국 함대의 보호를 요청함으로써 중국과 영국이 전쟁 일보 직전에 와 있다는 것이었다. 말할나위 없이 테일러 일행은 이러한 비난의 대상이 될만한 어떠한 일도 한 적이 없었다. 이러한 물의는 선교사들이 원하지도 기대하지도 않았던 것이었다. 오해의 발단은 중국에 있는 영국 영사관에서 본국에 보낸 보고로부터 비롯됐다. 선교사를 보호해야 한다는 좋은 뜻에서 중국과 맺은 권한을 주장해야 한다는 보고였다. 때마침 바뀐 영국 내각이 이 보고에 대해 잘못 이해하고 대응하는 혼선을 빚고 말았다. 이같은 물의는 허드슨 테일러가 양주의 옛집에 돌아와 평화롭게 살게되고 난 한참 뒤의 일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선교 초기부터 말썽을 부리던 몇몇의 선교사들이 사표를 제출하고 나왔다. 이로 인해 오해에 오해가 더해갔다. 그 결과 선교부의 후원자들이 지원을 중단하여 선교부는 재정적으로 심한 위기에 봉착하게 되었다. 허드슨 테일러는 양주 사건 후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썼다.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주님의 많은 은총이 필요합니다. 이곳에 있는 저희들은 매일같이 국적과 언어와 성향이 다른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오해와 많은 어려움을 극복하는데 인내와 관용과 지혜로 참고 나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상상하기 힘드실 것입니다. 제게 맡겨진 임무를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일편 단심, 올바른 판단력, 지혜와 온유, 강인한 인내심, 확고한 목표, 흔들리지 않는 믿음 그리고 그리스도를 닮은 사랑의 마음을 주시도록 주님께 기도해 주십시오. 그리고 이제 겨우 시작해 놓은 이 큰 사업을 위해 필요한 재정적 뒷받침과 여기에서 일할 적임자를 보내 주시도록 주님께 간구해 주십시오.”

예비된 도움의 손길

 

개척 선교에 더 많은 물자와 사람이 필요한데도 불구하고 영국에서부터 오는 지원은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그러나 예상치도 않은 도움의 손길로 인해 선교부는 적잖은 위로와 기쁨을 얻었다. 고아들의 아버지라 불리우는 기도의 사람 조지 뮬러가 중국 선교부에 재정적 후원의 손길을 보내 온 것이다. 양주 사건이 난 후로 기도하는 가운데 사람들은 오해로 인해 어려워진 하나님의 중국 선교 사업이 어려움을 당하는 것을 보자 오히려 결단하고 돕기로 작정한 것이었다. 조지 뮬러는 중국선교사의 한 명이 아닌 열 한 명의 모든 재정적 후원을 지원하였다.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니었으나 그는 고아원의 고용하던 요리사를 포기한 뒤 이로인해 하나님의 사업이 위축되지 않기를 위하여 기도하였다. 물론 그와 같은 소중한 헌금으로 중국 선교부를 지원한 것이었기에 중국 선교부에 더 없는 도움의 손길이 되었다. 또한 이 일화는 참 나눔이란 남는 중에 나누는 것이 아닌 구차한 중에라도 꼭 필요한 하나님의 일에, 꼭 필요한 이웃에게 나누는 것이란 것을 중국 선교부에게 뿐만 아니라 이 일을 기억하는 모든 이에게 알려주는 좋은 일화가 되었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허드슨 테일러는 중국내륙선교회를 이끌어 가는 외적인 큰 사역 속에서도 내면의 성령의 인도를 결코 소홀히 할 수 없었다. 누가 알랴마는 허드슨 테일러는 오래 지속되어 오던 영적 고뇌의 터널을 비로소 하나님의 은총으로 통과하게 되었고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게 되었다.

 

그가 처음 죄사함을 경험하였을 때 “눈먼 내가 이제는 눈을 뜨게 되었다.”는 깨달음과 비교될 수 있었다. 허드슨 테일러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은 그의 친구이자 동역자였던 존 맥카디라는 형제의 신앙편지였을 것이다.

모든 것이 되시는 하나님

 

편지의 내용은 ‘그리스도께서 모든 것이 되신다(Christ Is All)’라는 책을 읽고 깊은 감명을 받은 맥카디형제의 경험적인 고백이었다. “주 예수님을 영접함은 거룩함의 시작이요, 주 예수님을 간직함은 거룩함의 진보요, 주 예수님을 의지함(항상 함께 하시는 주로 의지함)은 거룩함의 완성이라. …자기 안에 그리스도를 모시고 주님이 완성하신 일을 기뻐하는 만큼 거룩함에 이른다. 절뚝거리며 넘어짐은 믿음에 결함이 있음을 의미한다.”라는 책 내용 앞에서 존 맥카디는 전적인 동감을 하였다. 자신의 편에서 노력하거나 안간힘을 쓰는 것이 아니고 주안에 거하는 것, 주님을 신뢰하는 것, 전능하신 구세주의 사랑 안에서 쉬는 것, 모든 죄에서 완전히 구원하신 기쁨 안에서 쉬는 것, 이것은 새로운 진리가 아니었으나 맥카디에게서는 이제 새로운 현실이 되었던 것이었다. 믿음은 가지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고, 신실하신 그분을 바라보는 것이다. 허드슨 테일러도 그러한 사실을 경험적으로 깨닫게 되었다.

 

허드슨 테일러는 이후로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다. 전에는 주님을 제대로 따르지 못하는 자신을 애통히 생각하며 주님을 닮는 일에 게으른 자신을 채찍질하였으나 이제 그는 자신이 아니었다. 그의 안에서 그리스도의 생명의 능력이 모든 일을 가능케 했다. 그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겼으며 기도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였다. 그리고 많은 시간들을 영적으로 굶주린 심령들에게 이 고귀한 비밀을 설명해 주는데 사용하였다.

거룩함을 향한 끊임없는 영적투쟁

 

허드슨 테일러가 고민하였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그는 그리스도 안에 거하기만 한다면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라고 확신하였다. 그러나 문제는 그리스도 안에 거할 수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하루를 기도로 시작하고 일순간도 주님에게서 눈을 돌리지 않기로 작정하였다. 그러나 때로는 힘든 일이나 밀리는 업무로 인해 아니면 다른 방해물들로 인해 주님을 잊게 되었다. 이러한 상태에서는 그는 극도로 신경이 날카로워졌으며, 화를 내도록 유혹을 당하였고, 원망하거나 불쾌한 언사를 하게 되었다. 노력하면 할수록 제어할 수는 없었다. “원함은 내게 있으나” 그것을 성취할 방법을 알지는 못하였던 것이다. 너무 빈번한 패배의 경험 속에서 그의 믿음은 강건해지기보다 점점 약해지는 것 같았다. 예수님을 영접하는 자, 하나님과 같이 자녀(거룩하게)가 될 수 있는 권세를 주셨다고 하였으나 경험되지 못하는 자가 어찌 설교할 수 있단 말인가! 그는 자신을 미워하고 죄를 미워하였으나 죄를 이길 힘을 얻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인 것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자신 속에 있는 하나님의 영은 이 모든 실패에도 불구하고 변함없이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짖었다. 그러나 부르짖을 뿐 능력은 전혀 없었다.

 

허드슨 테일러는 생각하기를 실제적인 거룩(성화)은 점차적으로 얻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는 무엇보다도 거룩함을 갈망하고 원하였다. 그러나 어느 정도라도 이루어지기는커녕 그것을 위해 노력하면 할수록 그의 손을 피해 갔고, 거룩케 될 것이라는 소망마저도 사라져 갔다. 급기야 지상에서의 거룩함은 더욱 달콤한 천국을 위하여 허락하지 않으시는 줄로 여겨지기까지 하였다. 그렇다고 그는 자신의 힘으로 무엇인가를 의지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그는 자신의 무능력함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주께서 하루를 붙들어 주시고 힘을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하였다. 그러나 정작 저녁이 되어 하루를 반성해 보면, 죄와 실패를 고백하면서 애통해 해야만 했다. 때때로 주님 안에서 평안과 기쁨을 누릴 때도 있었다. 그러나 잠시 뿐이었다. 슬픈 것은 능력의 부족이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허드슨 테일러는 항상 자신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은 그리스도 안에 있다고 확신하였다. 그러나 실제적인 문제는 그것을 어떻게 자신의 것으로 하느냐 하는 것이었다. 그리스도는 실로 부유하시다. 그러나 자신은 가난하다는 것이었다. 그리스도는 강하시나 자신은 너무나도 연약하다는 것이었다. 뿌리에 튼튼한 줄기가 있고 풍성한 영양분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그 영양분을 어떻게 끌어올리느냐 하는 것이 실질적인 문제인 것이었다.

 

허드슨 테일러는 점차 깨닫기 시작하였다. 믿음만이 유일한 요구 사항이며 주님의 풍요하심에 대한 열쇠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직 가지(의인)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믿음을 통해서만이 주님의 풍성하신 은총을 얻을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이 믿음이 없었다. 허드슨 테일러는 믿음을 위해 애를 써보았다. 그러나 이 믿음은 오지 않았다. 주님의 풍성하심 앞에서 극한 무기력함과 죄책감에 그는 고통스러워하였다. 마치 오아시스의 생수 앞에서 극한의 갈함으로 고통받는 가련한 인간이었다. 이제 그의 눈엔 생활에서 범한 죄들은 이 죄들의 근원이 되는 불신앙의 죄에 비하면 하찮은 것으로 보였다. 죄악의 뿌리인 불순종, 그 뒤에는 불신앙이 맞물려 있었던 것이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지 못하므로 불순종하게되고 이는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들게 되는 것이 되었다. 허드슨 테일러는 믿음을 위해서 기도하였다. 그러나 믿음은 오지 않았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리스도와의 연합 안에서 누리는 안식

 

허드슨 테일러의 고뇌가 극에 달했을 때 맥카디 형제로부터 온 편지 속의 한 문장이 그의 눈에서 껍질을 벗겨 내주었다. 예수님과 그의 백성이 하나라는 진리를 보여 주었다. “믿음은 구하기 위해 애쓰는 것이 아니고 미쁘신 분 안에서 쉬는 것입니다.”라고 기록된 편지를 읽는 순간 허드슨 테일러에게 믿음의 답이 떠올랐다. “우리는 미쁨이 없을지라도 주는 일향 미쁘시니”(딤후2:13). 허드슨 테일러는 예수님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주님께서는 “내가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히13:5)라고 말씀하셨던 것이었다. 기쁨이 한량없었다. “아, 여기에 안식이 있구나 나는 이제는 더 이상 노력하지 않으리라. 주님께서 친히 나와 함께 계신다고 약속해 주시지 않았던가. 정녕 나를 떠나지 않으신다고, 또 나를 버리지 않으신다고 약속하지 않았던가.”

 

허드슨 테일러는 자신의 큰 실수를 깨닫게 되었다. 포도나무는 뿌리만이 아니고 뿌리와 줄기, 가지와 잔가지, 잎사귀와 꽃 그리고 과일 등 모두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자신은 그리스도의 몸의 일부이며 그분의 살과 뼈의 일부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 허드슨 테일러와 연합된 하나님이시며, 엘리야에게 능력을 공급하여 주시던 하나님의 일부가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허드슨 테일러였던 것이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다 이루어지는 것은 너무나도 분명한 사실이었다. 부활 승천하신 구주와 참으로 하나가 되고 그리스도의 일부가 된다는 것은 참으로 놀랍고 복된 것이다. 머리이신 그리스도는 부요하시고 몸된 성도는 가난할 수 있는가? 오른 손은 부자이고 왼손은 가난할 수 있는가? 진실로 그럴 수 없는 것이다. 머리이신 그리스도께서 능력으로 부활하시고 승천하셨으므로 몸된 성도들 또한 결코 사망이 잡아 둘 수 없는 것이다. 무엇이든지 머리되신 그리스도를 위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자는 그리스도와 연합한 새로운 자신(자아)을 발견하고 믿음의 안식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2:20).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넘치리라

꺾이지 않는 헌신

 

허드슨 테일러의 변화된 생활은 많은 시련을 통하여서 얻어진 결과였다. 몽학선생 아래서 최선을 다하며 하나님의 뜻을 지키려 애쓰고 또 애썼다. 고통과 불평의 시간들이 지나갔고 이제 비로소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태초부터 그리스도 안에 감추어졌던, 그러나 결코 숨기지 않으신 하나님의 평강 속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이것은 영원한 안식이었다. 다시 잃는 법이 없었다. 시련은 여전히 왔고 더 큰 시련으로 다가왔으나 주님의 임재하심으로 인한 기쁨은 전혀 방해를 받지 않았다.

 

이 체험을 통하여 허드슨 테일러는 자신에게 있어서 주님은 누구이신 것을 깨닫고 온전한 헌신으로 주님께 자신을 맡기는 것을 배웠다. 이제껏 주님께 헌신한다는 것을 모르며 헌신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변화된 후 그의 헌신은 새로운 차원의 헌신이었다. 자원하는 마음과 기쁨으로 자신과 자신의 모든 것을 주님께 완전히 넘겨주는 것이었다. 주님이 원하실 때가 아니라 그저 먼저 최선을 다해 충성하는 것이었다. 큰일에나 작은 일속에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위해 자신이 기꺼이 희생하였다.

 

이듬해 큰 시련들을 많이 겪었다. 큰딸에 이어 5살인 막내 아들을 잃게 되었다. 천진 대학살 사건(1870년)을 통해 많은 사람들의 목숨이 위협받았다. 가장 큰 슬픔은 테일러 부인과 함께 새로 태어난 아들의 죽음이었다. 엄마의 콜레라 발생과 함께 영양부족으로 어린 생명이 세상에 나온지 일주일만에 본향으로 돌아갔고 엄마도 얼마 못되어 하늘 집으로 가게 된 것이었다. 그녀의 나이 겨우 33세였다. 허드슨 테일러는 사랑하는 아내 곁을 떠나지 않았다. 마지막 숨을 거둘 때 테일러 선교사는 무릎을 꿇고 그녀를 주님의 팔에 의탁했으며, 그녀와 함께 행복한 시절을 12년 반 동안 살게 해주신 주님께 감사하였고, 주님의 곁으로 데려가 주심을 감사하였다. 그리고 자신의 남은 여생을 이 미쁘신 주님을 위하여 더욱 헌신할 것을 서원하는 기도를 드렸다.

결코 마르지 않는 양자강

 

이전에는 하나 둘씩 오던 고난이 한꺼번에 여럿을 맞게 되었다. 그러나 허드슨 테일러 속에 역사하는 평강은 결코 없어지지 않았다.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 넘치리라’라는 성경의 말씀은 그대로 그에게 응하였다. 양자강보다 더 힘이 있고 더욱 깊으며 더욱 넘치는 강물이 흘러 나왔다. 시냇물은 가뭄이 오면 마르며 바닥을 드러내나 양자강은 결코 메말라 버리지 않듯이 깊은 물은 아무도 저지 할 수 없는 것이었다. 때론 긴 밤을 질병으로 고생하며 홀로 지내야 할 때면 못 견딜 정도로 아내가 그리웠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라고 말씀하여 주셨으며 즉시 슬픔대신 기쁨으로 채워 주셨다. 그 만족이 얼마나 큰 지 자신이 누리는 만족이 천국에서 아내가 누리는 만족보다 크리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겸손의 사람

 

허드슨 테일러는 겸손의 사람이었다. 훗날 그의 기도가 응답되어 중국 내륙 지방 깊숙이까지 복음이 전파되고 있을 때 스코틀랜드 교회 소속의 한 지도자는 테일러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하나님께서 선생님을 크게 사용하셔서 가끔 자부심이 들 때도 있으시겠습니다. 살아 있는 인간으로서 선생님만큼 큰일을 하신 분도 아마 없을 것입니다.” 그러자 허드슨 테일러는 대답하기를 “정반대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연약하고 가장 작은 사람을 찾다가 어쩌다 저를 발견하시고 사용하신 것뿐입니다.”라고 하였다.

완전한 위탁에서 오는 기쁨과 승리

 

그는 기뻐하며 쉬는 사람이었다. 한번은 몇몇 선교지부에서 폭동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본부에서 듣게 되었다. 18명의 개척 선교사 중 한 사람인 니콜은 테일러가 혼자 있고 싶어하는 것 같아서 자리를 잠시 비워 드릴려고 하였다. 그런데 누군가 휘파람 부는 소리가 들려왔다. 허드슨 테일러였다. “예수님, 나는 그 안에서 쉬며 기뻐하네.” 놀란 니콜은 소리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동료들이 위기에 처해있다는 소식을 듣고도 휘파람이 나옵니까?” 허드슨 테일러는 조용히 대답하였다. “니콜형제, 우리가 근심하고 고민한다고 그들에게 도움이 됩니까? 근심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일도 못하게 합니다. 우리의 무거운 마음을 주님께 맡깁시다.” ‘나의 부담을 주님께 맡긴다.’ 이것이 그의 비결이었다. 그가 가진 내적으로, 외적으로 크고 작은 모든 시련을 극복케 하시고, 모든 문제의 해결이 되시는 주님 안에서 쉬면서 기뻐하는 법을 배우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의 삶에 있어서 주님 안에서 누리는 평강은 특권 그 이상의 것이었다. 그것이 없이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완전한 평안을 잃지 않는 사람이었다.

 

또한 허드슨 테일러는 승리의 사람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승리하는 생애를 주시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승리할 때 생명을 주신다.” 그에게 있어서 승리의 비결은 매일 매시간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과 갈급한 심령에게 힘을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끊임없이 섭취하는 생활이었다. 허드슨 테일러는 바쁜 생활 중에서도 다른 사람들이 잠들고 조용할 때면, 등잔에 불을 붙이고 하나님의 말씀읽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으며, 새벽 2시에서 4까지 매일 새벽기도를 하였다. 이 시간들은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은밀히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시간들이었다. 그의 나이 70세가 넘어서 그는 성경을 들고 응접실을 거닐면서 그의 한 자녀에게 “나는 지금 막 40년만에 성경 40번 읽기를 끝냈다”라고 말하였다. 그는 성경을 읽었을 뿐만 아니라 그 말씀대로 살았다.

그칠 줄 모르는 사랑

 

그는 어떠한 희생을 치르고서라도 그리스도를 따르는 일을 그칠 줄 몰랐다. “십자가를 사랑하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지극히 사랑하는 그 분을 더욱 알고 그 분의 부활의 능력과 고난에 참예하는 법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은 그가 평시 중국에서 일하면서 한 말이었다. 생명을 살리기 위해 우리는 생명을 버릴 준비가 되어야 할 것이다. 한알의 밀알이 죽지 않으면 한알 그대로이나 다른 이를 위해 죽으면 그 밀알은 많은 생명을 살리게 된다는 것은 우리 주님께서 몸소 보여주신 영원한 진리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중국의 영혼들을 사랑한 허드슨 테일러의 사랑은 결코 죽지 않고 지금도 중국을 포함한 이글을 읽고 있는 우리의 마음속에 영원히 살아있다. (끝)

황상범 목사(오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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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04 한국교회허와실 한국교회의 나아갈 방향과 과제 김영훈 목사 2012-10-23 2060
2703 한국교회허와실 계속 늘어나는 ‘새터민선교’문제 기독교신문 2012-10-23 2259
2702 성경적재정원리 한국의 백만장자, 몇 명인가 최용우 2012-10-18 1799
2701 인기감동기타 초미니 절·교회·성당에 끊이지 않는 기부 발길 김윤호 기자 2012-10-16 5181
2700 순전한신앙이야기 말씀으로 산다는 것 황부일목사 2012-09-24 2148
2699 순전한신앙이야기 인간의 싸움과 성도의 싸움 황부일목사 2012-09-24 2075
2698 순전한신앙이야기 십일조를 하는 복음적인 교회 황부일목사 2012-09-24 2492
2697 경포호수가에서 호모 데멘스 피러한 2012-09-18 2051
2696 성경적재정원리 불황에서도 풍요로운 재정관리의 비결 신상래 목사 2012-09-14 2598
2695 더깊은신앙으로 반만 먹지요 이현주 목사 2012-09-09 2224
2694 더깊은신앙으로 먹이사슬도 살생인가? [2] 이현주 목사 2012-09-09 2309
2693 영성묵상훈련 [빛을따라간사람들] 잔느 귀용 [1] 황상범 전도서 2012-09-07 4048
» 영성묵상훈련 [빛을따라간사람들] 허드슨 테일러 황상범 목사(오미교회) 2012-08-31 2899
2691 영성묵상훈련 [빛을따라간사람들] 리타 [1] 강태형 목사(은총교회) 2012-08-31 2386
2690 영성묵상훈련 [빛을따라간사람들] 비안네 [1] 강태형 목사(은총교회) 2012-08-23 2130
2689 영성묵상훈련 [빛을따라간사람들] 마르가리타 [1] 최용우 2012-08-21 2004
2688 영성묵상훈련 [빛을따라간사람들] 사막의 성인 안토니오(251-356) [1] 강태형 목사 2012-08-20 2609
2687 순전한신앙이야기 목회지에도 영전이 있는가? 황부일목사 2012-07-28 2115
2686 순전한신앙이야기 망령되이 남발되는 할렐루야와 아멘 황부일목사 2012-07-28 6355
2685 순전한신앙이야기 개그맨이 되려는 목회자들 황부일목사 2012-07-28 7213
2684 정치건강취미 밀가루 똥배- 밀가루는 절대 유해하다 건강체계 2012-07-28 5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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