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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본문 : | 창1: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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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 김남준 목사 |
| 참고 : | 2007-08-01 -열린교회 http://www.yullin.org |
창조와 하나님의 아름다움 2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창1:31)
지난시간에 우리는 아름다움이 존재와 선의 일치라는 이야기를 하였다. 그리고 아름다움은 두 가지 완전성이 충족되어야 하며 그것은 개별적 사물의 완전성과 보편적 질서의 완전성이라고 이야기하였다.
I. 아름다움 자체이신 존재
그렇다면 하나님과 아름다움과의 관계를 이야기해보자. 하나님도 존재이시니 존재와 선이 일치해야 하는데 그 선이란 바로 창조목적이다. 하나님께서 창조의 목적을 정하셨는데 당신 스스로 그 목적을 거스를 수 있겠는가? 절대 그럴 수 없다. 인간은 모순될 수 있지만 하나님께 모순이란 없다. 하나님은 당신이 정하신 창조목적에 일치하신다. 사물에는 한계가 있지만 하나님께 한계란 없다. 하나님은 무한하시고 시간을 초월하신다. 그리고 당신 자신의 목적에 일치하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완전하신 분이시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찬란한 아름다움의 원천이고 근원이시며 아름다움 자체이신 존재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도 아름다움의 두 가지 완전성을 충족시키셔야 한다. 그것은 각위의 완전성과 삼위 안에서의 완전성으로 드러난다.
A. 각 위(位) 안에서
성부 하나님에게서 성자 하나님이 나셨고 성령 하나님은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에게서 나셨다. 완전하신 하나님에게서 나셨기에 성자, 성령도 완전하시다. 완전하기에 참 존재이시며 완전성을 삼위일체 하나님이 공유하신다. 영원세계에서 삼위로 존재하시던 하나님이 시간 속에서 질서롭게 존재하시는 것이다. 삼위 하나님 한분 한분이 완전하시고 무한하시며 창조 목적에 완전히 합치되신다. 성부 하나님은 성부 하나님대로 완전히 아름다우시고 성자 하나님은 성자 하나님대로 완전히 아름다우시며 성령 하나님은 성령 하나님대로 완전히 아름다우시다.
B. 삼위(三位) 안에서
하나님은 한 분, 한 분이 완전히 아름다우신 분이시만 하나님 안에 있는 아름다운 질서 안에서 그 찬란한 원래의 아름다움을 드러내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아름다움의 원천이시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사랑이시다고 말한다. 인간에 대한 사랑뿐만 아니라 삼위간의 사랑 때문이다. 각 위들 간의 사랑이다. 성부 하나님은 성자와 성령 하나님을 사랑하시고 성자 하나님은 성부와 성령 하나님을 사랑하시며 성령 하나님은 성부와 성자 하나님을 사랑하신다. 아름다우시기 때문이다.
II. 창조세계의 아름다움
그런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셨는데 이것이 창조세계의 아름다움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이 세상을 아름답게 창조하신 이유는 무엇이겠는가? 하나님이 무한하신 분이시라면 그 피조물이 시간과 공간 속에서 생겨나는데 그것은 바로 하나님 안에 있는 것이다. 하나님 안에 있으며 그 안을 벗어날 수 없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것들이 아름다운 이유는 그 만물을 통해 당신 자신과 교통하시기 때문이다.
A. 자연세계의 아름다움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세계는 탁월하게 아름답다. 죄가 들어온 후 그 영향으로 망가진 자연세계를 보면서도 아름답다고 여기는데 원래 창조되었을 때의 자연세계의 아름다움은 어떠하겠는가? 그런데 모든 만물은 그 아름다운 것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그 하나님을 사랑하도록 지어졌다. 그리고 이것을 올바르게 볼 수 있는 인간의 눈도 망가졌다.
B. 심미적 경험과 사랑
우리가 어떤 것을 보고 아름답다고 느낄 때 그것이 아름다운 것인지 어떻게 아는 것인가? 하나님께서 인간의 마음속에, 자기의 안목에서 볼 때 더 아름다운 것을 택하고자 하는 본성을 주신 것이다. 우리의 고향인 영원, 하나님 안에서 그런 기억들을 가지고 온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아름답다고 느낄 때 감정이 출렁거린다. 이것이 정동(情動, affection)이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신 것도 정동을 일으키기 위함이다. 그런데 이렇게 출렁거리는 감동이 그것의 아름다움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것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사물을 보고 아름답다고 느끼기는 하지만 지성이 살아있다면 그보다 그 아름다움을 소급해 올라갈 때 이것을 지으신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생각하는 것이다. 이 출렁거림은 사랑의 출렁거림이다. 이 정동이 모두 사랑은 아니지만 이 반복되는 정동의 경험을 통해 사랑이 생기기 때문에 이것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 이러한 정동을 통해 우리는 인간을 포함한 만물을 보고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며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향해 “너는 나를 사랑하라”고 명령하신다. 이 명령을 수동태로 바꾸어보면 “나는 너에게서 사랑받고 싶다”는 말이 된다. 이 얼마나 놀라운 초청인가? “네가 나를 사랑하면 나는 만족을 느낀다” 인간의 존귀함이 여기에 있다. 인간에게만 그런 말씀을 하신다. 참된 행복은 여기에 있다. 하나님의 아름다우심을 발견하고 결국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것이 하나님에게로 돌아가는 길이다.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하나님만 사랑하는 우리들이 되길 원한다. 2007-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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