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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변함없는 사랑

누가복음 빛의 사자............... 조회 수 2987 추천 수 0 2012.10.17 04:3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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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눅13:31-35 
설교자 : 한태완 목사 
참고 :  

끝까지 변함없는 사랑

 

본문 : 누가복음 13:31-35

 

미국의 어떤 축구장에서 매우 예쁜 스텔라가 죤 홉킨스 의과 대학생인 랄프를 처음으로 만났습니다. 그들은 서로 사랑하였으며 마침내 결혼하기로 굳게 맹세하였습니다. 당시 랄프는 30세였고, 스텔라는 갓 스물이었습니다. 스텔라는 자기의 약혼자가 왜 이렇게 늦도록 의학공부를 끝맺지 못했는지 생각할 여유조차 없었습니다. 드디어 그들은 약혼했으며 랄프가 의사시험에 합격하는 그 다음 날을 결혼일자로 잡고, 합격발표만을 기다렸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랄프의 어머니가 스텔라에게 찾아왔습니다. "난 네가 내 아들을 사랑하고 있는 것을 잘 안다. 또 좋은 아내가 될 것으로 믿는다. 그러나 한 가지 결혼하기 전에 랄프에 대해서 알아야 할 것이 있다. 나는 아들더러 직접 네게 말하라고 권했으나 듣지 않아 내가 아들 대신 말하려고 너를 찾아왔다. 내 아들은 과거에 3년 동안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물론 의사들은 그가 완전히 치료되었고 다시 재발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증했다. 그러나 이 사실을 미리 알고 결혼해야 할 것이다. 나는 고민 끝에 너에게 이 말을 하는 것이다."

 

스텔라는 이 얘기를 듣고 큰 쇼크를 받아 며칠 동안을 자기 자신과 싸워야 했습니다. 결혼 후를 내다보면서 자녀들을 가졌을 때 혹시 자녀 가운데서 정신병자가 생겨나지 않을 런지? 그의 병이 재발한다면 어쩌나? 그녀는 일생일대의 중대한 결정을 앞에 놓고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녀의 이성은 "약혼을 취소하라. 그리고 그를 잊어버려라. 불행의 그림자를 보면서 결혼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하였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그녀의 마음속에선 "왜 지금 망설이는가? 그를 사랑한다면 그를 위해 결정해야지, 그를 떠나려는 방향으로 결정해서는 안된다. 병이나, 건강, 부모에 상관없이 그를 사랑해야 될 것이 아닌가? 그러기로 맹세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다시 냉철한 이성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만약 랄프가 직접 모든 것을 솔직히 고백했다면 달리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말을 하지 못하는 그를 어떻게 믿고 평생을 의지할 수 있겠는가?" 또 다른 마음은 그것에 대해서, "그가 너무나도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나를 잃어버리게 될까봐 두려워서 말을 못한 것이 아닌가?"

 

그녀는 이렇게 며칠을 두고 고민을 하다가 끝내는 가슴보다는 이성의 충고에 따르기로 결정을 내리고 말았습니다. 결국 약혼은 파기됐고, 스텔라는 작은 아버지가 사는 캘리포니아로 떠났으며 여러 해 동안 마음의 상처를 달래다가 결국 수년이 지난 후 다른 남자를 만나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결혼 후 불과 2년이 지난 어느 날 밤 그녀는 잠결에 침대 한쪽이 비어 있는 것을 느끼며 잠을 깼습니다. 옆에 있어야 할 남편이 보이지를 않았습니다. 그녀는 집안 구석을 돌면서 남편을 찾다가 지하실에서 들려오는 인기척에 그리로 내려가 보았더니 남편이 도끼를 들고 집의 주춧돌을 내려찍으며 괴상한 소리를 지르고 있었습니다. "나는 삼손이다. 이 집을 부숴 버리겠다!" 미쳐도 너무 심하게 미쳐 있었습니다. 그는 불치병자로 종신토록 정신병원에 살아야 한다는 의사들의 선언을 받았습니다. 남편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여러 병원을 전전하던 어느 날 어떤 병원에서 우연히 랄프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실로 10여 년만의 대면이었습니다. 랄프는 그 도시에서 가장 유명한 외과의사로 명성을 떨치고 있었으며 그의 곁에는 아내와 아들딸이 있었습니다. 모두가 다 건강했고 행복이 넘쳐있었습니다. 사랑은 머리로 계산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베풀어지는 것입니다. 인생을 살아가는 데는 냉철한 머리도 중요하지만 끝까지 변함없는 사랑은 보다 더 값진 것입니다. 그리고 죽음보다 강한 것은 이성이 아니라 사랑입니다. 또한 사랑은 오래 참고...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는 것입니다.(고전13:4-7) 자신의 이해타산을 따지는 것은 참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은 언제까지나 변함이 없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히13:8)

 

화상으로 얼굴이 아주 흉하게 일그러진 한 소녀가 맹인과 결혼을 해서 아주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맹인은 유명한 외과 의사로부터 수술을 하면 시력을 되찾을 수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 말을 들은 맹인은 무척 기뻐하면서 그 소식을 아내에게 알렸습니다. 그러나 아내는 기뻐할 수가 없었습니다. 남편이 자신의 얼굴을 보면 자신을 더 이상 사랑해 줄 것 같지 않아서였습니다. 얼마만큼 시간이 흐른 뒤 남편은 아내의 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다음과 같은 말을 했습니다. "나는 당신을 너무나 사랑하기에 그냥 맹인으로 지내려오. 내게는 보이는 눈보다 당신의 행복이 더 소중하오..." 진실한 사랑은 언제까지나 변함이 없어야 합니다.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요일3:18)

 

어떤 상이 군인이 군대에서 제대를 하니까 자기 부인이 아기를 하나 놓아 두고 도망을 가 버렸습니다. 다른 남자하고 바람이 나서 도망을 가 버렸습니다. 그래서 그는 어린 아기를 등에 업고 직장도 없이 구걸하면서 삼천리 방방 곡곡을, 잃어 버린 자기 아내의 얼굴을 그리면서, 밤이나 낮이나 찾아서 헤매고 헤매다가 기진해서 돈도 없어지고 마음도 쇠해졌습니다. 3년이 지난 후에 그는 부산 거리에서 행려 병자로 죽어 버렸습니다. 어린 아이는 계속 그의 등에 업혀 있었습니다. 그 몸에서 사진 한 장과 유서가 나왔는데 자기를 버리고 간 아내의 사진 뒤에다가 그는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사랑하는 아내여, 나는 그대를 사랑했었다. 지금도 사랑하고 있다. 앞으로 영원히 사랑하겠노라.' 얼마나 순정을 가진 상이 군인입니까? 과거에도 사랑했고 지금도 사랑하고 앞으로도 영원히 사랑하겠다는 것입니다. 아마 인간의 애정속에서 이만큼 철저하고 고귀한 사랑은 드물 것 같습니다. 만일 그 부인이 어디서이 소식을 들었다면 그 부인의 마음 속은 뜨거운 감동으로 벅찰 것입니다.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요13:1)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8)

 

성경에 등장하는 인간의 사랑 중에서 가장 위대한 것은 아마도 고멜에 대한 호세아의 사랑일 것입니다. 호세아는 음란한 고멜을 아내로 맞아 사랑하였으며, 아내가 바람이 나서 몇 번이고 집을 나갔어도 끝까지 찾아가서 데려와 사랑했습니다. 그 모습에서 우리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습니다. 진짜 사랑은 변함없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팔등신 미녀여서 사랑했는데 애기 몇 낳고 뚱뚱해지자 이혼한 사람도 있습니다. 죽도록 좋아서 결혼했지만 성격이 달라 헤어지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신혼 때는 그저 달콤해서 사랑만으로도 충분했는데 삶에 지치고 현실이 고달파지자 물질과 권세에 더 애착이 가고 그러다가 결국 파국을 맞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사람들에게도 이런 경우가 허다합니다. 몹시 어려웠던 시절에 하나님을 만나서 구원을 받아 사랑을 할 때까지는 그 분이 모든 것이었는데, 세월이 흐르고 살 만해지게 되면 첫사랑을 버리고 세상을 더 사랑하는 교인들이 많아집니다. 그것은 분명히 책망 받을 일입니다.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계2:4)

 

산을 좋아하는 젊은 청년 말콤은 애인인 바브와 6,700피트나 되는 발루 파스산 꼭대기에서 폭설을 만났습니다. 산장에서 밤을 새우고 눈 쌓인 미끄러운 길을 계곡을 타고 내려오다 새끼 곰을 지키고 있는 어미 곰의 공격을 받았습니다. 은빛 털을 가진 굉장히 큰곰이 바브를 덥쳤습니다. 순간 말콤은 바브를 밀쳐 눈 덮인 냇둑으로 쓰러지게 하고 곰과 격투를 벌였습니다. 말콤은 곰의 앞발 공격 한 대에 정신을 잃었습니다. 잠시 후 정신을 차려 고개를 드니 자신이 10피트나 떨어진 곳에 내동댕이쳐진 것을 알았습니다. 곰은 얼굴을 땅 쪽으로 돌린 채 눈 위에 죽은 듯이 넘어져 있는 바브의 등을 물려는 찰나였습니다. 말콤은 지체할 수 없었습니다. 무서워할 겨를도 없이 허리띠에서 등산용 칼을 빼들고 악을 쓰면서 곰에게 달려들었습니다. 육중한 곰의 등에 매달려 목 부근에 칼을 박아 뜨거운 피가 솟구치게 했습니다. 곰은 귀청이 터질 듯 신음소리를 내더니 말콤을 땅에 떨어뜨리고 얼굴을 발로 마구 긁어 댔습니다. 머리털이 가발처럼 홀랑 벗겨졌고 머리가죽도 대부분 달아났습니다. 마지막 힘을 다해 곰의 코를 때리면서 의식을 잃었습니다. 바브의 필사적인 탈출로 연락이 되어 구조반에 의해 병원으로 옮겨진 뒤에야 의식을 되찾은 말콤은 일 천 바늘 이상을 꿰매고 응급수술을 하면서 성형수술도 스무 번은 넘게 했습니다. 말콤은 절망에 빠졌고 바브가 계속 편지를 보내도 답장을 쓰지 않았습니다. 사고가 난지 6개월만에 퇴원한 말콤은 바브를 찾아갔습니다. 흉터 투성이인 얼굴에 팔은 기브스를 했고 몸은 바짝 여윈 말콤을 바브는 이전의 변함 없는 사랑으로 맞아주었습니다. 말콤은 바브의 청혼을 받아들여 둘은 결혼을 했습니다. 말콤에 관한 기사가 카나다 전역에 퍼졌습니다. 사람들이 의무감 때문에 결혼했느냐고 묻자 바브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사고 전부터 그를 사랑했고 앞으로도 사랑할 것입니다. 외모보다는 성품이 더욱 중요하며 흉터가 사람 됨됨이까지 바꾸는 것은 결코 아니니까요"

사랑이 깊은 자는 마음이 깊으며 사랑은 모든 장애를 극복합니다.

 

성경에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요일4:7-8)고 하였습니다. 진실로 사랑은 인생의 꽃이요, 사랑은 인생의 소금이며, 사랑은 죽음보다 강합니다. 그리고 정말로 진정한 사랑이라면 "나는 당신의 아름다움 뿐 아니라 추한 것까지도 사랑합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사로 사랑 하는 것이 마땅하도다’(요일4:11)

젊은 청춘 남녀가 사랑에 빠졌습니다. 그들은 서로의 변함 없는 사랑을 약속하고 약혼을 했습니다. 결혼식 날짜를 기다리던 중에 돌연히 군대의 입대영장을 받은 신랑은 전선으로 떠나게 되었습니다. 전쟁터의 약혼자로부터는 이삼일이 멀다하고 편지가 왔습니다. 그런데 한동안 편지가 뜸하게 되었습니다. 얼마 후에 한 통의 편지가 도착되었는데 거기에는 다음과 같이 써 있었습니다. "나는 싸움터에서 나의 두 손을 다 잃었습니다. 이제 나는 그대를 약혼의 약속에서 놓아드립니다. 당신의 원하는 대로 다른 사람과 결혼하도록 하십시오. 이 편지는 어떤 사람이 나를 위해 대필을 해준 것입니다."

이 편지를 받은 약혼녀는 아무 답장도 안 했습니다. 그러나 그 여인은 바로 다음 기차를 집어타고 남쪽으로 향하였던 것입니다. 약혼한 남자의 병원을 찾아가는 것이었습니다. 그 여자는 정거장에 내리자마자 있는 힘을 다해서 병원을 찾았습니다. 드디어 병실을 찾아 두 손을 다 잃은 약혼자를 발견했을 때, 그 여인은 가장 사랑에 넘치는 얼굴로 그에게 다가가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습니다.

"나는 결단코 그대를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이제부터는 나의 이 두 손은 당신의 손이 되어 드리겠습니다. 우리는 서로의 사랑으로 우리의 일생을 반드시 성공으로 이끌 수 있을 것입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사랑이요, 헌신이었습니다. 우리가 믿고 따랐던, 영원히 변치 않을 것 같았던 대상에게서 버림받은 상처와 아픔이 누구나 다 있을 것입니다. 우리를 버린 존재는 사람일 수도, 돈이나, 권세일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에는 용서가 있고, 회복이 있고, 따스함이 있고, 성장이 있고, 기쁨의 원천이 되며, 재생산이 있습니다. 우리는 진정한 사랑을 말하면서도 거짓사랑에 속고, 또 어쩌면 속이고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거짓된 사랑은 가장 어렵고 힘들 때 우리의 손을 놓아 버립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의 사랑은 어렵고 힘들 때 더 힘있고 확신 있게 잡아줍니다.

많은 물도 이 사랑을 끄지 못하겠고 홍수라도 삼키지 못하나니 사람이 그의 온 가산을 다 주고 사랑과 바꾸려 할지라도 오히려 멸시를 받으리라(아가8:7)

 

제2차 세계대전 때의 일입니다. 로젠베르그라는 유대인 가족이 독일의 강제 수용소로 붙잡혀 들어갔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두 아들이 함께 수용소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 중 작은 아들은 태어날 때부터 약간의 신체장애가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일을 다 처리할 수 없는 아이였습니다. 독일군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노동력이 있는 사람들만 살려 두었습니다. 일할 수 없도록 약해지거나 병이 들면 곧 독가스 실로 끌고 가 죽였습니다.

매일 새벽이 되면 로젠베르그 가족은 각각 다른 작업장으로 끌려갔습니다. 두 아이들도 각각 다른 곳으로 끌려갔습니다. 부모는 어린 아들에 대한 염려로 하루하루 고통 가운데 지냈습니다. 혹시 일을 제대로 못하는 작은 아들이 독가스 실로 끌려가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부모는 저녁에 막사로 돌아오면 제일 먼저 작은 아들이 있는지를 확인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지친 몸을 이끌고 막사로 돌아와 보니 큰아들이 한쪽 구석에서 울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작은 아들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큰아들은 울면서 말했습니다. 동생이 더 이상 일할 수 없게 되어 독일군이 독가스 실로 끌고 갔다고 했습니다. 억장이 무너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아버지는 간신히 숨을 고르며 말했습니다. "그러면 엄마는 어떻게 되었니? 아직 안 왔니?" 그러나 큰아들은 떠듬떠듬 말했습니다. 독일군이 동생을 잡으러 왔을 때 동생은 너무 무서워서 엄마를 붙들고 놓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엄마는 동생을 꼭 껴안으며 함께 가자고 했습니다. "그래, 함께 가자! 엄마는 끝까지 너와 함께 있겠다." 그리고 엄마는 작은 아들과 함께 독가스 실로 끌려갔습니다. 어머니의 사랑은 참으로 위대합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 위대한 사랑이 있습니다. 그것은 변함없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겠느뇨"(롬8:32)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롬8:35)

본문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변함없는 사랑으로 십자가까지 지시는 놀라운 사랑을 보여 주십니다. 하루는 어떤 바리새인이 예수께로 나아왔습니다. 그는 헤롯왕이 예수님을 죽이려 하니 그곳을 피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십자가를 향한 강한 의지를 보이시며 "내 갈 길을 가리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올라가 십자가를 질 수밖에 없는 현실을 보셨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을 생각하면서 크게 탄식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어쩔 수 없이 당하는 고통이 아니었습니다. 얼마든지 피할 수 있었습니다. 헤롯왕의 계획을 알려 주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를 도울 수 있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주저하지 않고 십자가를 향해 가셨습니다. 31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그때에 어떤 바리새인들이 나아와서 이르되 여기를 떠나소서. 헤롯이 당신을 죽이려 하나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32-33절의 말씀입니다. "가서 저 여우에게 이르되 오늘과 내일 내가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낫게 하다가 제3일에는 완전하여 지리라 하라. 그러나 오늘과 내일과 모레는 내가 갈 길을 가야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피하지 않은 것은 변함없는 사랑 때문입니다. 십자가의 고통을 모르셔서 택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 때도 십자가는 가장 고통스러운 형벌이었습니다. 예수님도 잘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도 피하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할 수만 있다면 피하고 싶다고 기도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이라면 십자가를 지겠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고통을 아시면서도 십자가를 피하지 않으셨습니다.

또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요한복음 12장에 있는 이야기입니다. 어느 헬라인이 명절에 예루살렘에 올라왔다가 예수님에 관하여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을 통하여 예수님을 뵙기를 청하였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자신을 찾아온 헬라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한12:23-24) 왜 이런 대답을 하셨을까요? 본문에는 자세히 나와 있지 않습니다. 아마도 헬라인들은 예수님께 십자가의 죽음을 피하라고 요청했을 것입니다. 아마도 예수님을 헬라지역으로 초청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한 알의 밀의 비유를 들어 십자가를 향한 강한 의지를 천명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피할 수 있었으나 피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를 향한 변함없는 사랑 때문에 그는 십자가를 향해 가셨습니다. 십자가를 지기까지 예수님은 십자가를 피하라고 권하는 바리새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32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가서 저 여우에게 이르되 오늘과 내일, 내가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낫게 하다가 제3일에는 완전하여지리라 하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완전하여 지리라'는 말은 '완전히 이루리라'라는 뜻입니다. 어떤 분들은 이것을 부활의 예고라고 봅니다. 그러나 저는 십자가를 통한 구원의 완성을 예고하신 것으로 봅니다. 이것이 문맥에 잘 어울립니다. 십자가를 향해 의연히 가시겠다는 주님의 뜻을 잘 부합합니다. 예수님은 오늘과 내일은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낫게 하다가 제3일에는 십자가를 통해 구원을 완성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물론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쳐주는 일도 중요한 일입니다. 또한 인기를 끌 수 있습니다. 마귀가 유혹한 방법이기도 합니다. 정치적인 메시야가 되면 쉽게 인기를 끌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부귀영화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십자가를 택하셨습니다. 경제적인 메시야가 되는 것도 인기를 끌 수 있습니다. 신비적인 메시야가 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를 택하셨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고쳐주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육신을 구하는 일입니다. 치유목회는 육신을 구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구원의 완성이 아닙니다. 치유목회가 인기는 끌겠지만 예수님의 궁극적인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영혼까지 구원하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자신의 공로로는 도무지 구원받을 수 없는 인간들을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영혼까지 구원하시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끝까지 변함없는 사랑으로 십자가를 지기까지 온전히 헌신하셨습니다. 그리고 인간들의 계속적인 배반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계속하여 인간을 찾으십니다. 에덴동산에서 나무 뒤에 숨었던 아담을 찾으시던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를 찾으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34절 말씀을 보십시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를 죽이고 네게 파송 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같이 내가 너희의 자녀를 모으려 한 것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않았도다."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하나님은 계속 찾으십니다. 인간들의 거절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사랑으로 찾아오십니다. 이보다 더 큰사랑은 없습니다. 히틀러 시대에 독일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어떤 사람이 자유를 위하여 투쟁하다가 체포되었습니다. 그는 감옥에 갇혀 고문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불굴의 정신을 가지고 고문을 견뎠습니다. 드디어 그는 지조를 지키고 석방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얼마 후 자살하였습니다. 사람들은 그가 석방되어 곧 자살한 것이 대하여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밀고자가 자기 아들이라는 것을 알고 자살했던 것입니다. 그는 고문의 고통도 이겼지만 가족의 배신은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녀인 우리들의 배신을 잘도 견디십니다. 하나님은 배반하는 이스라엘을 수없이 용서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끝까지 변함없는 사랑입니다. 이사야서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여인이 어찌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희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이사야49:15).

어머니의 사랑과도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의 큰사랑을 노래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이 계속 배반해도 하나님의 사랑은 계속되었습니다. 수많은 선지자를 죽이며 하나님의 뜻을 거역해도 하나님의 사랑은 계속되었습니다. 드디어 하나님은 육신의 몸을 입으시고 친히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는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이 보다 더 큰사랑이 어디 있겠습니까?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친구를 버리면 이보다 다 큰사랑이 없다"고 하셨습니다"(요한15:13). 그런데 하나님은 배반하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사랑입니까? 얼마나 위대한 사랑입니까? 이 놀라운 세상에 박수로 영광을 돌리십시다.

요한복음 21장에 보면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실 때 자신을 버리고 도망하고 세 번 씩이나 부인한 베드로를 변함없는 사랑으로 찾아오셔서 귀한 사명을 맡기셨습니다.

이러한 끝까지 변함없는 하나님의 사랑에도 불구하고 인내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물론 아가페적인 하나님의 사랑에는 한계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한계는 인내의 한계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오래 참으십니다. 천년을 하루같이, 하루를 천년같이, 참고 기다리십니다. 그렇지만 인내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십자가에는 하나님의 인내의 한계가 잘 나타나 있습니다. 십자가에는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과 인내의 한계가 교차하고 있습니다.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인내의 한계도 읽으시기 바랍니다.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만을 보면 진지한 신앙인이 될 수 없습니다. 인내의 한계를 읽고 하나님의 심판을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영접하는 자에게는 무한한 사랑을 베푸십니다. 그러나 거부하는 사람들에게는 심판이 있습니다. 35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보라 너희 집이 황무하여 버린바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거부하는 사람들에게 임할 심판을 예고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무한하지만 거부하는 자에게는 심판이 있습니다. 또 주님은 "너희가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를 찬송하리로다 할 때까지는 나를 보지 못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것도 하나님의 인내의 한계를 보여 줍니다. 지금은 누구나 주님을 만날 수 있지만 잠시 후에는 만날 수 없습니다. 이제 주님을 거부하는 사람들은 더 이상 주님을 뵐 수 없습니다. 오직 다시 만날 때는 주님을 찬송하는 사람들만 주님을 뵐 수 있습니다.

믿음의 형제 여러분! 하나님의 사랑을 말씀을 통해 다시 한 번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한3:16)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5:8).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요한1서4:10).

 

영국의 유명한 설교가였던 찰스 스펄젼 목사님이 한 번은 시골에 있는 어떤 농가를 방문했습니다. 농가의 마당 한쪽 편에는 큰 풍향계 하나가 서 있었습니다. 풍향계 끝에는 바람의 방향을 가리키는 화살촉이 바람 부는 대로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스펄젼 목사님은 그 모습을 재미있게 관찰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까 화살촉 밑에 표가 하나 달려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표에는 무엇이라고 글자가 쓰여있었습니다. 스펄젼 목사님은 과연 무엇이라고 쓰여있을지 궁금해서 풍향계 밑으로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요일4:16의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

스펄젼 목사님은 좀 의아스럽게 생각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집 주인인 농부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설마 하나님의 사랑이 바람부는 대로 바뀐다는 뜻은 아니겠지요?"

그러자 농부는 웃으면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물론입니다. 정반대이지요. 바람이야 어떠한 방향으로 불던지 간에 하나님의 사랑은 여전히 변함이 없다는 뜻으로 거기에 그 말씀을 적어놓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을 입은 자녀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엡5:1-2)

갈릴리 공동체는 하나님을 몸과 마음과 뜻을 다하여 사랑하는 성도들이 모인 제자 공동체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마22:37)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13:34-35)

 

사랑은 하나님 나라의 시작이자 열매입니다. 갈릴리 공동체는 하나님 나라 확장에 그 사명과 목적이 있습니다. 즉 갈릴리 공동체는 이 땅에 의와 평강과 희락과 사랑이 넘치는 공동체를 세우는 것입니다.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롬13:10)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롬14: 17)

세상에는 변함이 많습니다. 인간은 항상 변합니다. 얼굴도 변하고 사상도 변하고 풍속도 변하고 유행도 변합니다. 특별히 현대를 급변하는 세대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변치 아니하십니다. 그리스도는 변치 아니합니다.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우리의 구주이시고 교회의 머리가 되시고, 만세반석이십니다. 우리 모두 변함없이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참 사랑은 환경에 좌우됨이 없이 한결같아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께 한결같은 사랑을 드려야 하겠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모든 자에게 은혜가 있을 지어다

 

* 기도: 변함이 없으신 하나님! 저희를 지금까지 사랑과 은혜로 보호하여 주시고 인도하여 주셨음을 감사드립니다. 은혜의 주님께서는 이토록 변함이 없으시건만 저희 인생들은 바람에 흔들림같이 이리 저리 요동하며 변하는 세월을 보냈습니다. 주님의 형상을 잃은 지 오랜 저희들이 얼마나 추한 모습을 하고 주님을 반역했던가를 생각하면 감히 고개를 들 수도 없습니다. 오직 부활의 주님만 의지하고 여기 나와 섰습니다. 주님, 저희들을 긍휼히 여기사 받아 주시옵소서. 우리를 항상 변함없이 사랑해주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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