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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출처 : | wkh.kr/PsGGZ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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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와 성찰] 금서가 된 우수학술도서
박구용 | 전남대 교수·철학
경향신문 2012-11-02
신분이나 계급을 분리하는 기준은 명확하지만 계층을 구별하는 틀과 방법은 애매하고 모호하다. 그 이름도 가지각색인데 그중에서 특히 계층을 탈정치화하는 데 가장 애용되는 말이 서민과 중산층이다. 한국인은 대부분 자신이 여기에 속한다고 여긴다. 더구나 자산이 0에 가까운 학생들조차 스스로가 중산층이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지만 부채 없이 최소 30평 아파트, 2000㏄ 자동차, 연봉 5000만원이 넘으면서 상류층에 대한 동경을 가져야 중산층으로 불린다. 물론 이 기준은 부유층과 그에 부역하는 이들이 만든 것이다. 그러니 중산층도 아니면서 중산층 의식을 갖는 것보다 중산층의 기준을 바꾸어야 정치판을 새로 짤 수 있다.
내가 생각하는 중산층은 크고 작은 뜻을 가지고 정치적 담론에 참여하는 시민, 어떤 주제라도 타인과 30분 이상 소통할 수 있는 교양인, 먹고사는 문제와 상관없는 책을 한 달에 한 권 이상 읽는 독서인이다. 이처럼 참여, 소통, 배움을 계층의 규범적 기준으로 세워야만 경제적 여건과 무관하게 누구나 자존심, 자부심,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 직장인이 한 달에 1.8권의 책을 읽는다는 최근 조사에 따르면 직업을 가진 대부분이 중산층인 한국은 바람직한 사회처럼 보인다. 그러나 직장인들이 읽는 책은 대부분 잘 먹고 잘 살기 위한 자기계발서이지 참여하고 소통하기 위한 책이 아니다. >전체기사^|^" borderStyle="none">
자신의 처지와 관심에 따라 읽고 싶은 책이 각양각색이듯 세상에 나와 있는 책의 종류와 수준 또한 다채롭다. 그렇다고 책이 다 책은 아니다. 현실을 비판하며 새로운 생각을 나르고 낯선 세상과 소통하며 상상 불가능한 이상(理想)을 상상할 수 있는 양서(養書)가 진짜 책이다. 이런 책을 쓰고(저자), 나르며(출판인), 읽는(독자) 이들의 수가 그 사회의 정치와 문화의 수준이다. 그러니 고품격 정치문화를 위해서는 국가가 세 축이 함께 성장하도록 도와야 한다. 첫째, 광범위한 독서층이 형성되도록 도서관을 늘리고 시민의 정치적 담론을 활성화해야 한다. 둘째, 독서층이 얇을 수밖에 없는 학술도서의 저자와 출판사를 파격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특히 독자와 저자를 연결하는 출판사를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대한민국학술원과 문화체육관광부의 우수학술·교양도서 사업이 큰 의미를 갖는 이유다.
한길사, 창작과비평사, 문학과지성사, 민음사가 없었다면 오늘의 민주주의는 없다. 1970~80년대 독재정권은 이들이 출판한 수많은 학술도서를 금서로 낙인찍었다. 그래도 사람들은 금서만큼은 반드시 찾아 돌려가며 읽었다. 독재의 금서가 민주혁명을 키운 것이다. 그런데 민주주의가 성취되고 금서가 사라지면서 역설적으로 민주주의가 위기를 겪고 있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알 수가 없어서다. 정부기관이 선정한 우수학술도서는 읽지 않아도 될 도서목록처럼 보인다. 4대강에 뿌려진 돈 때문에 우수학술도서 지원 사업비가 줄면서 선정된 책의 수준이 중구난방이기 때문이다. 정권에 위협이 될 만한 책을 배제한 것도 가련한 일이지만 저자조차 학술적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책을 우수학술도서로 선정하는 것은 독서인 모두를 희롱하는 것이다. 정권을 바꿔야 하는 중대한 이유다.
다양성은 출판문화의 생명이다. 그러니 몇 개의 큰 출판사보다 이색적인 담론을 발굴해서 나르는 작은 출판사가 많은 것이 바람직하다. 좋은 글을 알아보고 잘 다듬을 수 있는 훌륭한 편집자 2명만 있어도 세계를 움직이는 출판사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열악한 조건의 작은 출판사가 현 상황에서 학술도서를 출간하는 것은 자살에 가깝다. 그들의 책을 읽는 이도 적지만 보수 정권의 지원도 너무 조잡하다. 그래서 유명인의 성공일기나 신변잡기 혹은 말랑한 교양서로 돈벌이에 나선 출판사가 대부분이다. 그래도 그린비, 도서출판 길, 돌베개, 동녘, 후마니타스와 같은 몇몇 출판사가 자리를 지키며 자살을 반복하고 있기에 우리 사회의 생명력이 죽지 않고 있다. 실질적 금서가 된 이들 출판사의 책들이 곧 우리가 찾아서 읽고 돌보아야 할 우수학술도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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