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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출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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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시원하게 풀어보는 헌금 일문일답 (1)
십일조헌금은 언제 시작됐나요?
창14;20이하에 소개된 십일조에 대한 가장 오래된 언급으로 살렘왕 멜기세덱이 나옵니다. 그는 모세가 나기 오래 전의 인물로서 그는 족보도 없는 인물로 영원한 제사장으로서 그리스도의 전임자로 성경은 묘사합니다. 그에게 아브라함은 전쟁에서 얻은 전리품의 십분의 일을 드리고 축복을 빌고 응답을 받는 것은 십일조가 모세가 선포한 율법의 의무로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재정적인 축복의 원칙으로 사용하시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형식적인 율법에 얽매이지 말라고 하신 예수님께서도 십일조의 폐지를 원하시지 않으셨습니다.(마23:23) 예수님은 십일조를 빙자해서 하나님에게 드렸다고 핑계를 대고 부모님을 공경하고 섬기지 않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책망하시면서 의로운 행위와 믿음을 버려 하나님의 진노가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십일조의 행위를 계속 지켜야 할 것이라고 하십니다. 이는 십일조가 율법의 행위이기 이전에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들을 축복해주시는 통로이자 원칙으로 여기시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 명령이 구약에서 소개한 것이라고 생각해도 구약의 율법들조차 인간을 얽매이는 법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자녀를 사랑하셔서 위험하지 않게 살아가는 울타리를 만들어 주신 것이고 그 원칙은 오늘날에도 적용되고 있습니다. 중력의 법칙이 언제나 적용되고 있으므로 한강대교에서 뛰어내리는 것은 선택의 자유지만 그 행위로 인한 결과는 책임을 져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율법의 조문은 예수님의 희생으로 완성이 되어 신약시대의 사람들이 얽매이지 않고 살아갈 수 있지만 그 원칙이나 정신은 그 때나 지금이나 동일하게 살아 움직이고 있는 것입니다.
정규수입 이외의 수입에도 십일조를 드려야 하나요?
십일조는 수입의 십분의 일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새로 생긴 수입인지 아님 수입으로 이미 십일조를 드리고 난 후에 적립하였던 돈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먼저, 퇴직금은 회사에서 매달 주는 봉급이외에 적립하였다면 새로운 수입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십일조를 드려야하겠군요. 그렇지 않고 퇴직금적립을 위한 돈을 포함한 수입에서 십일조를 드렸다면 더 이상 수입이라고 볼 수가 없겠지요. 그러고 적금은 이미 십일조를 한 뒤에 남은 돈으로 적립을 한 것이므로 새로운 수입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자가 늘어났다면 이자수입에 대한 십일조는 드려야 하겠지요. 전세금도 수입이기 이전에 보증금으로 받아둔 돈이고 전세를 빼줄 때는 다시 돌려주어야 하는 돈이라면 수입이라고 볼 수가 없습니다. 상여금은 새로운 수입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보험금은 치료에 대한 비용으로 나왔다면 수입이 아닙니다. 그러나 사망보험금으로 나왔다면 새로운 수입이라고 보아야 되겠지요. 모든 돈에 대해서 십일조를 드리는 원칙은 그것이 수입인가를 판단해보시고 결정하시면 됩니다. 이미 십일조를 드린 돈을 모아둔 돈이라면 새로운 수입이 아닙니다. 투자수입도 새롭게 늘어난 부분만 수입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중요한 것은 정확한 십일조 뿐 아니라 하나님께 넉넉하게 감사와 기쁨으로 드리는 믿음의 자세를 하나님께서는 좋아하십니다.
십일조를 교회 이외의 단체에 드려도 되나요?
성경이 기록된 시대에는 매년 성전에 제사를 드리러가서 십일조를 드리면 되었으므로 십일조를 드리는 장소에 대해서 고민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현대시대에는 교회도 많고, 선교단체를 포함한 기독단체들도 많아서 한, 두개 이상 소속되어 계신 분이 많이 계십니다. 그러므로 십일조를 드리는 곳을 두고 재정이 약한 단체에 드리고자 하는 마음이 드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섬기는 교회에 십일조를 드리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대형교회는 대형교회대로 재정이 많이 드는 하나님의 사업을 할 수 있는 재정이 필요하고, 작은 교회는 작은 교회대로 규모에 맞는 재정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섬기는 곳 외에 재정이 염려되고 드리고자 하는 마음이 생긴다면 다른 헌금으로 책정하여 드려야 합니다. 그래야 소속감을 가진 형제자매로서 교회공동체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고 교회 사역자들도 자신의 양으로 여겨 더욱 힘써서 인도할 것입니다.
배우자 몰래 십일조를 드려도 되나요?
하나님께서는 남자와 여자가 한 몸을 이루고 부부가 되면서 가정공동체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부부는 죽음이 갈라놓을 때까지 서로 의지하고 서로 사랑하면서 살아가야하는 운명공동체입니다. 가정을 이끌어나가는데 있어서 돈의 사용도 부부가 협력하여 서로 상의하고 결정을 한 끝에 사용해야 됩니다. 그러므로 십일조를 드리는데 있어서도 서로 숨기어 정직하지 못한 게 있으면 옳지 않습니다. 만약 배우자의 한쪽이 믿지 않거나 믿음이 연약하여 십일조에 대하여 부정적이더라도 솔직하게 상의하고 결정을 하여 드려야 합니다. 만약 그렇지 않고 숨기고 거짓말을 하여 드린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는 기뻐 받으시지 않을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안타까운 심정을 알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믿지 않는 배우자를 위해 눈물로 기도하여 하나님의 도와주심을 바라고 정성껏 내조를 해서 감동을 이끌어 내어 하나님께 나아오도록 해야 합니다. 그 때까지는 서로에게 감추거나 거짓으로 대하지 않아야 합니다. 만약 믿지 않는 남편이나 아내가 그 정직하지 못함을 알고 나중에 추궁하면 하나님께 돌아올 수 있는 기회는 더 멀어지고 서로 반목과 갈등이 커져 돌이킬 수 없는 사이가 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십일조의 액수보다도 십일조를 하는 마음의 자세를 기쁘시게 보고 계십니다. 그러나 서로 부부가 각각 수입이 있더라도 내 돈은 내 맘대로 해도 된다는 식으로 지출을 한다면 역시 마찬가지 결과를 초래하고 되고 가정에 금이 가는 원인을 제공하게 됩니다. 이러한 경우라도 서로에게 동의를 구해 사용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나 배우자 앞에서 떳떳하게 되는 길입니다.
재정이 어려운 데도 십일조를 드려야 하나요?
재정적으로 어려운 크리스천 가정에 십일조에 대한 부담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십일조를 빼고 남은 돈으로는 고정 지출을 감당하지 못할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십일조를 드리는 돈의 액수를 보시는 것이 아니라 십일조를 드리고 하나님께서 풍성하게 공급하시는 것을 바라보는 믿음의 눈을 기대하고 계십니다. 만약, 기쁘게 드리고자 하는 믿음이 없이 목사님의 기대나 주위 사람들에 대한 체면, 직분에 대한 도리로 억지로 드린다면 하나님께서는 기쁘게 받아주시기 안으실 것입니다. 이는 내가 드리는 귀한 돈도 내게서 떠나가고 하나님께서도 받아주시지 안는다면 이보다 더 허망한 결과가 어디 있겠습니까? 또한 재정의 악화로 십일조를 제대로 드리지 못할 상황에 처했다면 악성채무가 날로 늘어나 이자부담이 상당한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를 해결하는 방법이 나의 지식이나 경험, 인본적인 해결책올 해결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이미 그와 같은 방법은 다 사용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우리의 고통과 죄와 허물을 해결하시려고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재정적으로 어려운 때가 오면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대하고 바라는 기회로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시는 기회로 생각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해결을 바라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비록 형편은 최악이지만 베드로가 믿음으로 호수에 그물을 내렸듯이 믿음으로 십일조를 드려야 하나님의 간섭하심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또한 십일조를 드리는데 만족하지 말고 우리의 재정을 정비하여 관리자의 자세를 확립해야 합니다. 가계부를 쓰시고 지출을 최소한으로 줄이시고 부족한 금액을 하나님께 간청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시는 재물이 밑 빠진 독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관리자(청지기)로서의 자세를 가지게 되어 하나님께서 재정을 열어주시더라도 제멋대로 재물을 사용하던 이전으로 되돌아가지 않게 됩니다.
다양한 항목의 헌금들을 어떻게 지혜롭게 관리할 수 있을까요?
교회에서 헌금봉투를 나눠 놓는 것은 헌금을 목적대로 사용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헌금은 의무사항이 아니라 마음에 정한 대로 하는 것으로 하나님께서는 넉넉하게 드릴 것을 말씀 하십니다. 그러나 목사님이 요구하셔서, 교회기관의 직책이나 집사이기 때문에, 혹은 남의 이목 때문에 마음이 내키지 않는 데도 드리는 것은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아 주시지도 않을 뿐 아니라 신앙생활이 짐이 되고 불평이 쌓이는 원인이 됩니다. 그러므로 헌금을 드릴 때는 가정 예산안에서 예비비(특별한 때를 대비해서 남겨 놓는 것)혹은 헌금의 용도로 남겨 두셨다가 그 중에서 하나님의 감동하심이 있으시면 형편에 따라서 순종하시든지, 아님 새로운 수입이 있어 여유가 있으시면 드리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십일조와 헌금과 각종 하나님과 이웃에게 드리는 봉사와 수고는 하늘나라에 쌓이는 보화입니다. 그래서 배가가 되어 필요할 때나 요청할 때 우리에게 돌아옵니다. 이런 믿음을 가지고 드려야 하며 그럴 때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드려집니다. 그러나 지나치게 감정이나 느낌에 좌우되어 행동하면 시간이 지나 평상심으로 돌아왔을 때 후회하는 태도는 좋지 않습니다. 언제나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기도하시면서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구하시고 평안함 속에서 드리시기를 바랍니다.
절기헌금과 작정헌금은 수입의 어느 정도를 드려야 하나요?
헌금의 액수는 얼마를 드리라고 성경에 정해진 것이 없습니다. 일부 목회자들께서 액수의 범위를 정하는 것은 정확한 것은 알 수 없으나 경쟁심을 부추기지 않고 액수를 정하면 금액을 정하는데 다소 부담을 줄이려고 하신지는 모르겠으나 이는 개인적인 견해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액수는 형편과 믿음의 분량대로 내실 것이고 인색하지 않게 넉넉히 드리되 마음의 평안이 있는 대로 드리면 됩니다. 언제나 기도하시면서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구하시면 지혜를 주실 것입니다.
필수헌금은 어떤 것이 있나요?
교회의 헌금봉투에는 절기헌금, 감사헌금, 선교헌금, 교회건축헌금, 장학 헌금등 여러 가지가 있어 혼란스러울 때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헌금의 용도는 선교와 구제의 목적에서 교회의 필요에 따라 세분하여 종류를 나누어 놓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교와 구제에 사용될 수 있는 헌금이 가장 중요하며 다른 헌금은 기도하시면서 성령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드리면 됩니다. 다만 너무 충동적이거나 생활에 지나치게 짐이 되지 않는 액수 내에서 넉넉하게 드리시면 평안이 오고 기쁨도 찾아옵니다. 이것이 성령님이 인도하시는 신호로 보아도 좋습니다.
절기헌금과 작정헌금은 수입의 어느 정도를 드려야 될까요?
7번 지혜롭게 드리는 방법에서 중복되었지만 다시 말씀드립니다. 헌금을 드리는 범위는 가정 예산안에서 예비비(특별한 때를 대비해서 남겨 놓는 것, 개인에 따라 다르지만 5~10%정도로 책정하는 것이 일반적임) 혹은 헌금의 용도로 남겨 두셨다가 그 중에서 하나님의 감동하심이 있으시면 형편에 따라서 순종하시든지, 아님 새로운 수입이 있어 여유가 있으시면 드리는 것이 좋습니다. 다만 너무 재정에 짐이 되어 억지로 드리게 된다면 아무런 의미도 없게 됩니다.
모든 예배 때마다 헌금을 드려야 하나요?
예를 들어, 교사들이 학생예배에 참여하는 것은 예배를 드리려는 목적이 아니고 봉사하려고 참여하는 겁니다. 엄밀하게 정의하자면 예배를 드리는 행위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헌금을 드릴 위무가 없겠지요. 이는 방송봉사자가 매 예배에 참석하더라도 예배를 드리는 것이 아닌 것과 같다고 보면 됩니다. 다만, 교사가 학생들에게 모범을 보이기 위하여 부담되지 않는 액수를 넣어 드리는 것도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방법이 될 수는 있습니다.
교회의 헌금 지출은 목회자의 권한인가요?
민감한 질문이지만, 원칙적으로 목회자는 교회에서 설교나 행정을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지도자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재정의 지출의 원칙은 교회의 재정위원회( 작은 교회는 재정집사나 장로 등의 담당자)가 주관이 되어 지출을 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그러나 교회의 행사를 계획하고 인도하는데 교회지도자로서 목회자가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지출권한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투명하게 하기위해서는 재정위원회가 주관을 가지고 관리를 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목회자가 교회 지도자의 한사람으로 다른 당회원이나 재직들과 머리를 맞대어 예산사용을 계획하고 참여하는 것은 문제가 없다고 보아야 합니다.
' 빛과 소금 11월호 칼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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