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글모든게시글모음 인기글(7일간 조회수높은순서)
m-5.jpg
현재접속자

명설교 모음

택스트 설교

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저절로 높아지려고 하십시오

누가복음 이한규 목사............... 조회 수 2343 추천 수 0 2012.11.08 16:34:27
.........
성경본문 : 눅22:24-34 
설교자 : 이한규 목사 
참고 : 2012.10.8 주일예배- 이한규 http://www.john316.or.kr 

저절로 높아지려고 하십시오 (누가복음 22장 24-34절)

 

< 편견과 극단주의를 버리십시오 >

 저는 청소년 때 종말론과 예언 등의 신기한 얘기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666, 배리칩, 아마겟돈, 빅브라더, 프리메이슨, 노스트라다무스 등등에 관한 책을 많이 보면서 신앙심이 공포심과 두려움의 기반 위에 형성되었습니다. 그러다가 84년에 하나님과의 깊은 만남을 체험하면서 그런 호기심 위주의 초보신앙은 없어지고 몸으로 섬기는 중견신앙이 자리 잡으면서 평안의 깊은 맛을 체험했습니다. 잘못된 호기심은 공포와 두려움을 조장하면서 오히려 사단이 임하는 통로로 이용될 수 있습니다.

 지난주에 둘째 딸이 물었습니다. “아빠! 싸이 강남스타일은 나쁜 노래라는데 정말 그래요?” 학교 선배들이 그런 얘기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얼마 전에도 두려운 마음으로 종말론에 관한 질문을 해서 그때도 너무 종말에 대한 공포감을 가지지 말고 약속을 붙잡는 믿음을 가지라고 해서 딸의 마음에 평안을 준 적이 있었습니다.

 지난주에도 말했습니다. “한나야! 믿음의 순수성을 지키는 것은 좋지만 떠도는 소문만 가지고 극단적인 편견에 사로잡히면 안 돼! 어떤 한 가지 문제로 극단적인 편견을 가지기에 전쟁과 학살이 생기고 불상의 목을 자르면서 자기 신앙이 좋다고 으스대는 사람이 생기는 거야. 그것은 오히려 기독교의 참된 진리를 왜곡시켜 기독교를 욕 먹이고 참된 선교를 막는 사단의 교묘한 전략이야.” 그리고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한나야! 앞으로 결혼 대상을 찾을 때는 극단적인 편견을 가진 사람만은 멀리해라. 그러면 많이 힘들어져.”

 ‘편견의 딱지붙이기’는 영혼의 파멸성과 비인격성을 드러내는 사단의 애용 전술이고 선교하는 마음과는 180도 반대되는 마음입니다. 딱지붙이기를 즐겨하는 보수신앙은 ‘예수님’을 믿기보다는 ‘보수신앙’을 믿게 만듭니다. 그것은 참된 보수신앙이 아닌 위험한 극단신앙입니다. 그러므로 보수신앙과 극단신앙을 분별해낼 줄 알아야 합니다. 어느 종교든지 극단주의는 영적인 테러이고 그냥 놔두면 조만간 실제 테러를 낳습니다.

 왜 종교인이 편견과 극단주의에 빠집니까? 자신의 무가치감을 그런 무차별적인 공격으로 해소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극단적인 믿음을 가진 사람은 자기 믿음이 최고인 줄 알지만 사실상 그 믿음은 대개 불안하고 허약한 믿음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으로 자신의 최고 가치를 느끼지 못하고 여전히 무가치감 속에 살면서 남을 정죄하고 깎아내려야 비로소 가치감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극단주의는 고난을 벌고 징벌의 무덤을 스스로 파는 것입니다. 극단주의는 교만의 대표적인 산물입니다. 그래서 교만 중에 신앙적인 교만은 가장 치명적인 것입니다. 성도는 ‘거룩한 분리’도 잘해야지만 ‘거룩한 포용’도 잘해야 합니다. 왜 하나님이 선인과 악인에게 동시에 비를 주시는지를 이해하지 못하면 편견과 독선에 근거한 신앙으로 사람을 죽이는 히틀러가 나오게 됩니다. 그러므로 극단신앙의 유혹에서 자신을 잘 지키십시오.

 세상은 자기가 높아지려는 전쟁터입니다. 물론 때로는 정당한 경쟁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비겁하게 높아지려고 편견의 딱지를 붙이는 것은 제일 안 좋은 품성입니다. 그런 언행도 멀리하고 그런 언행을 보이는 사람도 최대한 멀리하십시오. 초보신앙은 자신이 읽고 들은 것 몇 가지만 진리인 줄 알고 ‘편견의 딱지붙이기’를 좋아하지만 성숙한 신앙은 시간을 두고 펼쳐가는 ‘진리의 담금질’을 좋아합니다.

 초보운전자가 마구 운전하면 반드시 사고가 납니다. 반면에 능숙한 운전자는 안전거리를 떼고 남이 갑자기 끼어드는 것까지 예상해 운전하고 방향을 틀 때는 전후좌우는 물론 사각지대까지 보면서 방어운전을 합니다. 그래서 몇 십 년 무사고 운전을 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에서도 전후좌우를 볼 줄 아는 통전적인 사고를 가지고 겸손하게 이웃을 살필 줄 아는 사람이 인생 및 신앙생활의 사고 위험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습니다.

< 저절로 높아지는 삶의 비결 >

 사람은 누구에게나 근거 없는 딱지붙이기를 통해 스스로 높아지려는 본능이 있습니다. 그런 잘못된 본능을 이겨내고 믿음의 자리에서 떨어지지 않고 자연스럽게 저절로 높아지면서 인물이 되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1. 섬김의 삶을 훈련하십시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기 전날 성찬식을 베푸실 때 떡과 잔을 제자들에게 주신 후에 말씀했습니다. “나를 파는 자의 손이 나와 함께 상 위에 있다. 나는 이미 작정된 대로 가지만 나를 파는 자는 화가 있을 것이다(21-22절).” 그 말씀을 듣고 제자들 사이에서는 은근히 “누가 주님을 배반할까?”라는 마음과 생각의 분리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분리되면 사단에게 쉽게 당하게 됩니다.

 이 세상의 어떤 공동체도 분리의 독침에서 면제될 수는 없습니다. 이 세상의 어떤 교단도 절대 분리가 없을 만큼 거룩하지 않고, 이 세상의 어떤 영혼도 믿음 안에서 완벽하게 거룩할 수 없습니다. 사단은 지금도 끊임없이 들어올 길을 찾습니다. 그래서 작은 분리의 틈만 있어도 그 틈으로 치명적인 독을 주입합니다. 분리는 사단의 주 무기입니다. 그 무기로 사단은 수많은 교단과 교파와 교회를 쪼갰습니다.

 왜 분리가 생깁니까? 예배 스타일, 교회 정치체제, 재정 운용방법, 목회 스타일, 그리고 성례식의 형식 등에 대한 의견차이로 분리가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가장 부끄러운 분리는 자리싸움으로 생기는 분리입니다. 제자들 사이에도 “하늘나라가 임할 때 누가 크냐?”는 자리다툼이 있었습니다(24절). 그런 자리싸움으로 분리의 영에 넘어가는 것은 예수님으로부터 분리되는 것과 같습니다.

 제자들 사이의 자리다툼은 누가복음 9장 46절과 마가복음 9장 33-35절 및 10장 35-41절에서도 여러 번 언급된 것을 볼 때 제자들 사이에도 그런 자리다툼이 종종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십자가를 곧 지게 되는 상황에서도 그런 이기심을 드러내는 모습을 보면 얼마나 안타깝습니까? 그것이 인간의 모습입니다.

 그 모습을 보고 본문 25-26절에서 예수님은 권력의 예를 들면서 이방 왕들은 백성을 종처럼 부리면서 왕권강화를 위해 ‘은인(선한 박애주의자)’이란 호칭을 의도적으로 붙여 백성들의 칭송을 유도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폭군에게 오히려 미사여구의 칭송이 많을 수 있기에 항상 역사의 이면을 냉철하게 살필 줄 알아야 합니다. 그처럼 세상은 힘 있는 사람이 힘없는 사람을 지배하지만 예수님의 제자들은 “큰 자는 젊은 자와 같고 다스리는 자는 섬기는 자처럼 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26절).

 계속해서 본문 27절 말씀을 보십시오. “앉아서 먹는 자가 크냐 섬기는 자가 크냐 앉아서 먹는 자가 아니냐 그러나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노라.” 이 구절에서 ‘앉아서 먹는 자’는 주인이나 권세자를 뜻합니다. 그들은 종의 시중을 받아 음식을 먹습니다. 반대로 ‘섬기는 자’는 식사 시중을 드는 종을 뜻합니다. 그처럼 보통은 종이 주인을 섬기지만 주님은 그 반대로 섬기는 종으로 너희 중에 있다고 했습니다.

 이 섬김의 말씀을 삐딱하게 180도 반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이렇게 적용합니다. “우리 목사님은 왜 종이 되지 않을까? 왜 정치인들은 종이 되지 않을까?” 그렇게 적용하란 말입니까? 아닙니다. 높은 사람의 교만도 문제지만 낮은 사람의 교만도 문제입니다. 이 말씀은 남에게 종의 자세를 갖추라고 요구하라는 말씀이 아니고 그 정반대로 스스로 종의 자세를 갖추라는 말씀입니다. 스스로 높아지려고 하지 마십시오. 살면서 한 가지만 분명하면 하나님은 때가 되면 그를 저절로 높여주십니다. 그 한 가지가 바로 섬김의 삶입니다.

2. 자신을 자신하지 마십시오

 본문 28절 말씀을 보십시오. “너희는 나의 모든 시험 중에 항상 나와 함께 한 자들인즉.”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고 영광스런 위치에 올리는 사람은 바로 ‘시험 중에 함께 하는 사람’입니다. 왜 주님이 12제자를 그토록 사랑하셨습니까? 당시로서는 소수의 길에 합류해서 주님과 모든 시험을 함께 했기 때문입니다. 그처럼 개척정신을 가지고 좁은 문으로 들어가고 소수의 길에 합류하면 다른 어떤 시험과 시련도 넘어서는 남다른 축복이 있습니다.

 결국 삶에서 중요한 것은 높은 위치로 올라서려는 것이 아니라 시험 중에도 믿음을 잃지 않고 제 자리를 지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축복이 주어집니까? 하나님의 나라를 맡겨주고 하나님의 상에서 먹고 마시며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다스리게 하실 것입니다(30절). 그처럼 성도의 마지막은 자연히 승리로 귀결됩니다.

 물론 승리로 가는 길에 끊임없는 사단의 방해 공작이 있습니다. 본문 31절 말씀을 보십시오.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 이 구절에서 “밀 까부르다.”란 말은 “밀 껍질을 까려고 키질한다.”는 뜻입니다. 사단이 그렇게 흔들었지만 베드로는 잠시 흔들렸다가 결국 알곡으로 거듭났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이 그를 위해 믿음이 떨어지지 않도록 기도했기 때문입니다(32절).

 그처럼 베드로가 잠시 사단의 이용을 당할 것을 말씀하자 베드로가 놀라서 말했습니다. “주님! 저는 주님과 함께 옥에도 갈 각오를 했고 죽는 곳에도 갈 각오를 했습니다(33절).” 마태복음(마 26:33)과 마가복음(막 14:29)에서는 더욱 강한 어조로 “남들은 다 버려도 자신은 버리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런 자기 과신이 문제입니다.

 그 말을 듣고 예수님이 말씀했습니다. “베드로야!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모른다고 부인하리라(34절).” 예수님은 베드로를 호칭할 때 항상 “시몬아!”라고 호칭했는데 본문에서만 “베드로야!”라고 호칭했습니다. 이름의 뜻대로 반석 같은 믿음을 가지라는 의도가 있으셨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가 닭 울기 전에 3번 예수님을 부인할 것이란 말씀을 통해 그의 자신감에 경종을 울렸습니다. 그처럼 자기의 선한 뜻대로 안 될 때도 많기에 늘 겸손해야 합니다. 왜 하나님이 사단의 키질을 겪게 하십니까? 결국 교만을 버리란 뜻입니다.

 사실 본문에서 언급된 베드로의 부인하는 모습은 결국 우리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를 쉽게 비난할 수도 없습니다. 적어도 예수님의 체포 후 다른 제자들은 다 도망갔어도 그와 요한만은 예수님을 완전히 버리지 않고 예수님 근처에 남아있었습니다. 그 사실을 외면하고 누가 베드로를 쉽게 비난하겠습니까? 사실상 겉으로는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지만 실제로는 예수님을 부인하듯이 사는 교인들도 얼마나 많습니까?

 바쁘다고 예배와 말씀과 기도를 멀리하는 것은 예수님이 삶의 주인이심을 부인하는 것과 같고, 염려하는 것은 예수님이 모든 상황을 다스리심을 부인하는 것과 같고, 전도하지 않는 것은 예수님의 구원사역을 부인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 삶들도 일종의 부인인데 그런 부인을 얼마나 많이 저지릅니까? 그러므로 자신을 자신하지 말고 늘 하나님의 은혜가 떠나지 않기를 간절히 사모하십시오. 그러면 저절로 높아질 때가 반드시 올 것입니다.

3. 감정에 속지 마십시오

 감정은 나쁜 것이 아닙니다. 감정도 하나님이 주신 것이기에 감정 문제도 지혜롭게 살펴야 합니다. 그러나 감정을 판단과 선택의 최종 주체가 되게는 하지 하십시오. 사단이 감정을 나쁘게 이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말씀, 기도, 교제, 그리고 섬김 등의 영적인 무기를 앞세워서 감정이 믿음을 따라오게 하십시오.

 믿음이 약해지면 내면에 두려움, 분노, 염려, 의심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이 생겨납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부정적인 감정은 고독감입니다. 믿음이 약화되면 남들이 외면하는 것 같고 하나님도 외면하는 것 같습니다. 그때 감정은 이런 보고서를 스스로 전달합니다. “하나님은 네게 관심이 없어. 관심이 있다면 이런 일이 일어났겠어?”

 그처럼 감정은 영혼을 갖고 놀면서 실제가 아닌 것을 실제처럼 보이게 하고 좋은 것을 나쁘게 보이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감정에 휘둘려서 자신의 존재가 무시되고 의미 없는 존재처럼 느끼면 삶은 고통이 됩니다. 그러므로 혼자라는 느낌을 주어 믿음을 포기하게 하는 사단의 간계에 속지 마십시오.

 사단의 가장 큰 무기는 속임수입니다. 그 속임수의 가장 효과적인 통로가 바로 감정이기에 감정이 전하는 거짓말에 속지 마십시오. 자기감정이 전하는 말보다 성경 말씀을 더 신뢰함으로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를 늘 인식하십시오. 본문을 보면 예수님은 베드로의 배반을 상세하게 알고 계셨습니다. 그처럼 하나님이 모르는 상황에서 성도가 그 상황을 혼자 통과하는 일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아무런 선한 계획도 없이 우리가 어떤 삶을 지나게 하지 않습니다. 또한 우리의 체질과 성향과 상황을 잘 파악하지 않은 상태에서 우리를 어떤 시험으로 이끌지도 않습니다. 욥을 보십시오. 사단이 욥을 공격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허락을 구했다는 말은 하나님이 욥의 공격당하는 상황을 다 알고 계셨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욥은 고난 중에도 하나님이 자신의 길을 살피고 자신의 걸음을 다 세신다고 믿었습니다(욥 31:4).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고민과 문제와 어려움을 다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알지 못하거나 관심을 두지 않는 문제는 없습니다. 사람은 경청의 능력이 약해도 하나님은 경청에 능하신 분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모든 고통을 자세히 다 알고 계시고 우리 자신보다 우리에 대해 더 많이 알고 계십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약속을 붙잡고 나가면 스스로 높아지려고 하지 않아도 저절로 높아질 때가 반드시 올 것입니다.

4. 최종 승리를 믿으십시오

 왜 예수님은 베드로가 넘어질 것을 아셨음에도 불구하고 그 상황에 개입해 그를 붙잡아주지 않으셨을까요? 그때 예수님은 문제해결 대신에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내가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위해 기도했다.” 결국 예수님이 베드로를 사단의 공격에서 완전히 막아주시지 않은 이유는 그의 실패를 즐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훈련을 통해 그의 믿음을 더욱 굳건하게 만들고 더 좋은 결과를 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특히 예수님이 본문에서 사단의 공격을 밀의 키질로 비유한 것은 결국은 그 시련을 통해 긍정적인 결과가 생김을 말씀하기 위해서입니다. 왜 키질을 합니까? 알곡에서 쭉정이를 제거하기 위해서입니다. 그처럼 알곡을 주시려고 하나님은 믿음의 시험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그 사실을 알고 용기를 내십시오. 믿음의 시험에서 잠시 실패해도 베드로처럼 그 실패를 통해 더욱 소중한 것을 얻게 됨을 기억하십시오.

 토마스 에디슨은 전구 발명 실험에서 250번 실패했습니다. 그때 한 기자가 어떻게 그 많은 실패를 극복할 수 있었느냐고 묻자 그가 말했습니다. “저는 그 실패들을 실패로 여기지 않고 작동하지 않는 수많은 방법들을 발견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시험 앞에서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믿음의 시험은 성숙함과 참된 축복을 위한 통과의례입니다. 그 시험 과정에서 얼마든지 실패할 수 있습니다. 아기들이 걸음마를 배울 때 때로는 넘어지고 울지만 마침내 때가 되면 걷습니다. 그처럼 하나님은 모든 문제에서 벗어나게 할 수도 있지만 그러면 자녀가 강해지고 성숙질 수 없기에 때로는 자녀의 실패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실패를 통해 더욱 좋은 결과를 도출해내십니다.

 이제 최종 승리를 확신하십시오. 인생은 “얼마나 잘 시작하느냐?”보다 “얼마나 잘 끝내느냐?”가 중요합니다. 시작을 잘했다가 시련 중에 넘어져서 흐지부지 끝내면 얼마나 아까운 시간낭비입니까? 하나님이 주신 거룩한 비전을 중간에 포기하면 사단은 좋아하지만 하나님은 슬퍼하십니다. 반면에 중간에 포기하지 않으면 사단은 낙담에 빠지고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그러므로 어떤 고난이 있어도 거룩한 꿈과 비전을 결코 포기하지 마십시오.

 감리교의 창시자인 존 웨슬리가 쓴  일기의 일부분입니다. “5월 5일 주일 오전 - 세인트 앤 교회에서 설교함. 다시는 오지 말라고 요청받음. 5월 5일 주일 오후 - 세인트 존 교회에서 설교함. 집사들이 꺼지고 돌아오지 말라고 함. 5월 12일 주일 오전 -  세인트 주드 교회에서 설교함. 역시 그곳으로 되돌아갈 수 없었음. 5월 19일 주일 오전 - 세인트 섬바디 엘스 교회에서 설교함. 집사들이 특별회의를 소집해 나를 다시는 못 오게 함. 5월 19일 주일 오후 - 거리에서 설교하다가 쫓겨남. 5월 26일 주일 오전 - 초원에서 설교할 때 황소가 달려들어서 초원 밖으로 도망침. 6월 2일 주일 오전 - 도시 근교에서 설교하다 고속도로 밖으로 쫓겨남. 6월 2일 주일 오후 - 목장에서 설교할 때 1만 명의 사람들이 내 말씀을 들으러 나옴.”

< 성공을 승리로 만드십시오 >

 고난 중에도 포기하지 않으면 결국 성공의 때는 옵니다. 그러나 성공했어도 마지막 한 단계까지 더 나아가지 않으면 그 성공은 참된 성공이 아닙니다. 그 마지막 단계는 바로 나눔입니다. 즉 자신의 성공으로 열심히 나누고 섬겨야 그것이 진짜 성공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돌이켜 알곡이 된 후에 형제를 굳게 하라는 사명을 주었습니다(32절). 왜 베드로가 예수님의 수제자가 되었습니까? 그가 제일 연장자였기 때문이었습니까? 그 이유도 있습니다. 그가 제일 적극적이었기 때문이었습니까? 그 이유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큰 이유는 그가 형제를 굳게 해주는 사명에 투철했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장자 국가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약소국들을 굳게 해주어야 합니다. 영적인 장자 성도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형제를 굳게 해주어야 합니다. 형제를 굳게 하라는 말은 자기중심주의를 버리고 이웃과 좋은 것을 나누고 선교하며 살라는 말입니다. 이제 기도하십시오. “하나님! 저희가 한국에서 나눔의 모델처럼 되게 하시고, 특별히 제가 최고로 나눌 줄 아는 성도가 되게 하소서!”

 왜 하나님이 시련을 허락하십니까? 그 시련을 통해 힘든 사람의 사정을 절실히 느끼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시련을 겪어본 사람이 이웃도 잘 돕습니다. 하나님이 왜 가끔 상처도 당하게 하십니까? 상처를 당해본 사람의 심정을 깊이 공감해 돕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고난도 당해봐야 합니다. 고난을 잘 극복하면 좋은 성품을 얻습니다.

 저는 키가 작아서 청소년 때 상실감이 컸습니다. 그래서 상처 당한 사람의 심정을 잘 이해하려고 하는 편입니다. 또한 저보다 키가 큰 아내가 저 같은 사람과 결혼해준 것을 항상 고맙게 느끼면서 더 인격적이 되고 더 위해주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또한 고학으로 유학하면서 깊은 외로움도 느껴보았기에 외로운 사람들의 심정을 이해하려고 하고 또한 결혼을 통해 외로움을 덜어준 아내에게 항상 기본적인 고마움을 느낍니다.

 콤플렉스가 나쁜 것이 아닙니다. 잘 극복하면 거기서 배려하는 인격과 성품이 나오고 책임지는 삶과 감사하는 삶이 나올 수 있습니다. 그처럼 외적인 조건이 부족해도 얼마든지 멋진 남녀노소가 될 수 있습니다. 사람은 ‘자기 극복하기’ 나름입니다. 시련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시련을 통해 좋은 성품을 배양하면 가족과 교우와 많은 사람을 굳게 해줄 수 있습니다. 그처럼 굳건한 믿음으로 저절로 높아지는 성공을 쟁취하고 그 성공을 가지고 나누고 섬김으로 ‘성공’을 ‘승리’로 만드는 복된 심령들이 되십시오.

ⓒ 글 : 이한규http://www.john316.or.kr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성경본문 설교자 날짜 조회 수
7532 잠언 이러면 지는 것입니다 잠3:27-35  이한규 목사  2012-11-08 2527
7531 출애굽기 성도에게 필요한 3대 의식 출29:29-37  이한규 목사  2012-11-08 2037
7530 출애굽기 형식도 중요합니다 출29:10-28  이한규 목사  2012-11-08 2421
7529 출애굽기 권위를 얻는 방법 출29:1-9  이한규 목사  2012-11-08 1975
7528 출애굽기 성도답게 사십시오 출28:1-43  이한규 목사  2012-11-08 2211
7527 마태복음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 마22:34-40  이한규 목사  2012-11-08 2397
7526 출애굽기 은사에 집착하지 마십시오 출27:20-21  이한규 목사  2012-11-08 1859
7525 출애굽기 좁은 문으로 들어가십시오(동문) 출27:16-19  이한규 목사  2012-11-08 2085
7524 출애굽기 주님 안에 거하십시오(성막 울타리) 출27:9-19  이한규 목사  2012-11-08 2531
7523 출애굽기 쓰임 받는 사람(제단 부속그릇) 출27:3-8  이한규 목사  2012-11-08 1873
7522 시편 감사해야 할 5대 주제 시107:1-9  이한규 목사  2012-11-08 2815
7521 출애굽기 십자가가 해답입니다(번제단) 출27:1-2  이한규 목사  2012-11-08 2195
7520 출애굽기 하나님을 높이는 삶(휘장) 출26:31-37  이한규 목사  2012-11-08 2166
7519 출애굽기 어깨동무하며 갑시다(성막 널판) 출26:15-30  이한규 목사  2012-11-08 2865
7518 출애굽기 불경기가 없는 신앙(성막 지붕) 출26:1-14  이한규 목사  2012-11-08 2106
» 누가복음 저절로 높아지려고 하십시오 눅22:24-34  이한규 목사  2012-11-08 2343
7516 출애굽기 자신을 성찰하십시오(등잔대) 출25:31-40  이한규 목사  2012-11-08 2549
7515 출애굽기 말씀을 겸손하게 받으십시오(떡상) 출25:23-30  이한규 목사  2012-11-08 2104
7514 호세아 회복의 때는 옵니다 호1:1-11  이한규 목사  2012-11-08 2018
7513 마태복음 백부장 마8:6-13  황성현 목사  2012-11-08 4648
7512 민수기 상처를 선용하는 자 민23:1-30  최장환 목사  2012-11-07 4970
7511 요한계시 지금 나에게 원하시는 것은 계5:1-14  최장환 목사  2012-11-07 4865
7510 예레미야 예레미야의 기도 렘32:16-25  한태완 목사  2012-11-06 4562
7509 마태복음 천국의 보물 마6:19-21  황성현 목사  2012-11-06 4903
7508 민수기 영원한 기업 민36:1-13  이정원 목사  2012-11-05 3649
7507 민수기 도피성 민35:1-34  이정원 목사  2012-11-05 3232
7506 민수기 기업을 주시는 하나님 민34:1-29  이정원 목사  2012-11-05 2683
7505 민수기 은혜를 회고함 민33:1-56  이정원 목사  2012-11-05 2437
7504 민수기 함께 싸우라 민32:1-42  이정원 목사  2012-11-05 2434
7503 민수기 죄와 싸우라 민31:1-54  이정원 목사  2012-11-05 2341
7502 민수기 서원에 대하여 민30:1-16  이정원 목사  2012-11-05 2780
7501 민수기 천국을 바라보는 삶 민28:16-31  이정원 목사  2012-11-05 3031
7500 민수기 예배하는 삶 민28:1-15  이정원 목사  2012-11-05 2754
7499 마태복음 좁은 문 마7:13-14  황성현 목사  2012-11-05 4768
7498 마가복음 퀴리에 엘레이송! 막10:46-52  정용섭 목사  2012-11-04 3026

설교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본 홈페이지는 조건없이 주고가신 예수님 처럼, 조건없이 퍼가기, 인용, 링크 모두 허용합니다.(단, 이단단체나, 상업적, 불법이용은 엄금)
    *운영자: 최용우 (010-7162-3514) * 9191az@hanmail.net * 30150 세종시 보람1길12 호려울마을2단지 201동 1608호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