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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본문 : | 출27: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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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 이한규 목사 |
| 참고 : | 2012.10.12 새벽예배- 이한규 http://www.john316.or.kr |
출애굽기(77) 십자가가 해답입니다(번제단) (출애굽기 27장 1-2절)
성막의 동문을 열고 뜰 안으로 들어가면 제일 먼저 번제단을 만납니다(출 27:1-8). 번제단은 조각목으로 만들어졌고, 가로 5규빗(2.25미터), 세로 5규빗(2.25미터), 그리고 높이 3규빗(1.35미터)으로서 성막 기구 중 가장 큰 기구입니다(1절). 번제단은 희생 제물을 태우는 곳인데 조각목으로만 만들면 제물이 타기 전에 조각목부터 타버릴 것이기에 조각목 위에 놋을 입혔습니다(2절). 그래서 놋제단 혹은 놋단이라고도 말합니다. 번제단의 희생 제물은 흠이 없어야 합니다(레 1:10).
얼마 전 몽골로 보낼 의자를 기도제목으로 나눌 때 “중고도 상태가 좋으면 보내주세요.”라고 하자 한분이 화물로 중고의자들을 보내왔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의자들이 더럽고 여기저기 녹슨 상태여서 ‘보낸 사람의 마음’과 몽골에서 ‘받을 사람의 마음’을 두고 깊이 고민한 끝에 결국 보내지 않기로 했습니다. 아무리 물자가 부족한 선교지이지만 킬로 그램당 만 원의 운송비를 들여가며 녹슨 물건을 보내기에는 임 선교사님과 몽골 성도들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너무 마음이 아팠기 때문입니다. 그때 흠 없는 희생제물을 원하셨던 하나님의 마음을 조금 더 느낄 수 있습니다.
선교할 때 중요한 것은 후원금이나 후원물을 드릴 때 선교지 성도들의 인격을 존중하며 받으시는 분들의 마음에 언짢음이 없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소리 없는 은밀한 헌신이 중요합니다. “내가 아무개 선교사님을 위해 이만큼 선교했다.”고 널리 알리면 후원자의 이름이 올라가는 만큼 피후원자의 이름은 깎입니다. 선교는 ‘피후원자가 구걸하는 것’이나 ‘후원자가 시혜하는 것’이 아닙니다. 피후원자가 창피한 마음이 들지 않도록 피후원자의 마음까지 깊이 살펴주는 마음이 진짜 선교하는 마음입니다.
반면에 어떤 분은 겸손하게 “별로 좋지 않은 중고를 보내서 미안해요?”라고 말하고 보내오는데 생각 이상으로 상태가 좋고 게다가 깨끗하게 닦아서 보내옵니다. 그러면 그 마음과 정성을 느끼며 마음이 상쾌해집니다. 왜 꿈과 비전과 사랑의 수준을 높여야 합니까? 그때 ‘중고제품을 보는 개념’의 시각수준도 높아지고 더불어 인생과 가치관의 수준도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이 유월절 제물을 바칠 때 건강한 어린 양을 사서 바치려면 꽤 돈이 들지만 병든 양은 절반 이하의 가격에도 살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병든 양을 싸게 사서 속죄 제물을 바치며 자신의 의무를 다한 것으로 여기기도 했습니다. 너무 가난해서 바치기 힘들면 약간의 곡식이나 비둘기를 제물로 정성스럽게 드리면 됩니다. 그러나 병든 양을 바치고 “내가 양을 바쳤다!”고 하는 모습은 하나님이 결코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드릴 때는 마음과 정성을 다해 겸손하게 드리는 것이 참된 드림입니다.
< 십자가가 해답입니다 >
번제단은 신약 시대의 십자가를 상징합니다. 십자가가 기독교 신앙의 핵심 주제이듯이 번제단은 지성소에 있는 법궤와 함께 성막의 핵심이 되는 중요한 도구입니다. 번제단의 중요성은 번제단이 놓인 위치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성막은 동쪽과 서쪽의 길이가 100규빗(45미터)이고, 남쪽과 북쪽의 폭이 50규빗(22.5미터)인 직사각형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50규빗 크기의 정사각형 2개를 나란히 합친 모양이 됩니다. 그 2개의 정사각형에서 대각선을 그으면 대각선이 마주치는 2개의 장소가 나옵니다. 그때 첫째 마주치는 장소에 번제단이 놓여 있고, 둘째 마주치는 장소에는 법궤가 놓여 있습니다.
그 사실은 성막에서 가장 중요한 2개의 기구가 번제단과 법궤라는 뜻입니다. 또한 ‘하나님과의 만남(법궤)’을 위한 가장 위대한 전제 조건이 ‘갈보리 십자가(번제단)’임을 상징합니다. ‘번제단’이란 높은 봉우리와 ‘법궤’란 높은 봉우리가 서로 부르고 화답한다는 것이 기독교 신앙의 핵심 진리입니다. 즉 갈보리 십자가에서 죄가 정리되어야 하나님을 만나러 갈 수 있습니다. 결국 문제 해결의 길은 십자가를 지는 것에 달려 있습니다. 그런데 왜 십자가의 능력이 별로 나타나지 않습니까? 십자가에 대한 오해가 가장 큰 문제입니다.
어떤 분은 시부모를 모시는데 시부모의 간섭이 자기에게는 너무 무거운 십자가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때로는 자기의 잘못 때문에 시부모가 간섭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처럼 자기의 잘못을 고칠 생각은 안 하고 무엇이든지 자기에게 거북한 일은 다 십자가라고 오해하면 문제 해결은 더욱 어려워집니다. 십자가란 아무 죄도 없이 남의 죄를 뒤집어쓰는 것입니다. 그런 십자가 훈련이 잘 되어 있어야 문제도 수월하게 풀립니다.
어느 날, 교회에 큰 문제가 생겼을 때 한 사람이 찾아와 목사님에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다른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목사님! 그는 잘못이 없습니다. 오히려 제가 잘못했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또 다른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목사님! 그들은 잘못이 없습니다. 저의 전적인 잘못입니다.” 그런 앞 다퉈 십자가를 지면 어떻게 그 공동체에 평안이 없겠습니까?
자기에게 어려운 일이 생기는 것마다 무조건 십자가라고 돌려 치면 문제 해결은 더 어려워집니다. 자신의 잘못과 실수 때문에 생기는 어려움은 십자가가 아니라 회개해야 할 문제입니다. 그러나 자기는 정말로 아무 잘못도 없는 상황에서 남을 위해 십자가를 지면 하나님은 반드시 그 희생을 기억하시고 축복의 문을 활짝 열어주실 것입니다. 결국 십자가가 해답이고 축복을 위한 최적의 길입니다.
ⓒ 글 : 이한규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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