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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본문 : | 출27:20-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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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 이한규 목사 |
| 참고 : | 2012.10.19 새벽예배- 이한규 http://www.john316.or.kr |
출애굽기(81) 은사에 집착하지 마십시오
(출 27:20-21)
< 순수한 신앙을 가지십시오 >
성막 금 촛대의 등불을 켜는데 필요한 기름은 ‘감람으로 짠 순수한 기름’이었습니다. 이 기름은 감람열매를 절구에 넣고 찧어 낸 기름으로 순도가 높은 고급 기름으로서 깨끗하고 무색이며 사용할 때 밝은 빛을 내면서도 연기가 없었습니다. 이 기름을 만들 때 쓰는 감람열매도 깨끗해야 했기에 잎과 꼭지 등에 묻은 먼지나 불순물을 깨끗이 제거했습니다. 그처럼 촛대에 사용될 감람유는 원료에서 제조 과정까지 최선의 정성을 기울인 최상품이었습니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는 순수한 신앙을 가져야 함을 상징합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한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초대교회에는 기사와 표적이 많이 따랐는데 왜 오늘날에는 그런 역사가 적을까 하는 의문입니다. 첫째 이유는 의술 문제입니다. 그때는 의술이 지금처럼 발달되지 못했기에 특별히 신유의 은혜가 더 필요했습니다. 그 후 하나님이 기술과 지식을 주셔서 병을 고칠 수 있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까지 다 맡아서 해주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의술도 만드셨고 모든 치유가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된 것이기에 의술을 통한 치료도 하나님의 응답의 수단입니다.
둘째 이유는 초대교회 때의 순수한 신앙이 없기 때문입니다. 중세시대 천년 이상에 걸쳐 교회는 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심하게 이탈했었기에 하나님이 치유의 은사를 부분적으로 거두어 가셨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분입니다. 그래서 은사를 주었다가 다시 거두어 가셨다가 또 다시 많이 주셨다가 하는 분이 아닙니다. 문제는 하나님이 변한 것이 아니라 사람이 변한 것입니다. 즉 초대교회 때의 순수한 신앙이 없기에 그때와 같은 치유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날 은사를 강조하는 사람을 화려하고 매력적인 은사에는 관심이 많지만 순수함에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그래서 은사를 억지로 받아내려는 경향이 많습니다. 어떤 사람은 끈질기게 추구해야 은사가 임한다고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은사란 영어로 gift, 한국말로 선물인데 선물은 ‘거저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물을 지나치게 추구하는 것 자체가 선물을 주려는 사람에게는 기분 좋은 모습이 아닙니다.
또한 은사에 집착하는 사람들을 보면 은사를 평생직처럼 생각합니다. 물론 타고난 성격은 평생을 간다는 의미에서 ‘성품의 은사’는 평생직일 수 있지만 흔히 언급하는 ‘능력의 은사’는 평생직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40일 금식기도를 해서 치유의 은사가 생겼다고 합니다. 물론 그럴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40일 금식기도를 통해 신앙이 순수해졌기에 치유의 은사가 생긴 것이지 40일 금식기도로 치유의 은사가 평생직으로 생겨난 것은 아닙니다.
만약 치유의 은사를 받은 사람이 나중에 욕심이 생겨서 영혼 사랑하는 마음도 없이 치유를 목회 성공의 도구 및 돈 욕심을 채우려는 도구로만 사용하면 그 치유의 은사가 그대로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죄인은 하나님의 치유를 행할 수 없습니다. 죄를 빠져 있는데도 치유의 은사는 평생직으로 여기고 계속 치유행각을 벌이면 그것은 하나님의 치유가 아니라 무속종교인의 치유나 다를 바가 없게 됩니다.
< 은사에 집착하지 마십시오 >
능력의 은사는 평생직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나는 치유의 은사를 받았어! 그는 예언의 은사를 받았어!”라는 종류의 말들은 주의해서 써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말을 잘해서 웅변조로 사람의 감정을 울리며 논리적이고 감성적으로 유머를 섞어가며 말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가 말씀의 은사를 받았어!”라고 하지만 그것도 바른 말은 아닙니다. ‘말을 청산유수로 재밌게 잘하는 것’과 ‘말씀의 은사가 있는 것’은 다르기 때문입니다. 재능과 은사는 다릅니다. 재능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될 때만 비로소 은사가 됩니다.
결국 무슨 은사를 받았다는 어투는 인간적인 냄새와 교만의 냄새가 나서 기분 좋지 않게 만듭니다. 하나님도 기분이 좋지 않으실 것입니다. ‘선물을 주는 분’보다 ‘선물’에 관심이 있는 순수하지 못한 사람에게 선물을 기쁘게 주고 싶겠습니까? 한 청년이 한 예쁜 처녀를 사랑해서 아낌없이 선물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그녀가 배반했습니다. 그러자 청년은 수시로 보내는 선물을 더 이상 보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첫 사랑의 순수한 모습을 가지면 은사를 주시고 선천적으로 주어진 재능도 은사로 만들어주십니다. 게다가 수많은 좋은 선물을 주십니다. 반면에 그 자녀가 더 이상 하나님에 대개 관심이 없고 자기 영광과 돈 등에만 관심을 가지면 하나님은 그의 은사를 거두어가십니다. 그 상황에서는 더 이상 치유도 없고 만약 치유가 있어도 신유는 아니기에 다른 부작용과 후유증을 낳습니다. 또한 그 상황에서 이뤄지는 말씀선포도 더 이상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게 됩니다.
이제 은사 자체에 대한 집착을 주의하십시오. 그런 집착은 하나님을 더 기분 나쁘게 만듭니다. 심하게 말하면 은사에 집착하면 전능하신 하나님을 이용해 목적한 것을 뜯어내려는 영적인 제비족과 같은 존재가 됩니다.
제비족은 여자에게 잘해주는 척 하지만 그의 최종 관심은 무엇을 뜯어낼까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그것을 알면 어느 여성이 기분이 좋겠습니까? 보통 남녀관계도 그렇습니다. 두 남녀가 사귀는데 상대의 존재를 사랑하기보다 상대가 주는 선물에만 관심이 많다면 누가 상대에게 선물을 주고 싶겠습니까? 사실상 한국 교회가 타락한 가장 큰 원인 중의 하나가 영적인 제비족들 때문입니다. 결국 하나님을 향한 순수한 마음을 잃지 않는 것이 은사와 축복을 받는 최고 비결입니다.
ⓒ 글 : 이한규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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