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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본문 : | 출29: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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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 이한규 목사 |
| 참고 : | 2012.10.24 새벽예배- 이한규 http://www.john316.or.kr |
출애굽기(83) 권위를 얻는 방법
(출애굽기 29장 1-9절)
기독교에서 예수님을 지칭할 때 ‘예수 그리스도’라고 합니다. 그리스도란 말은 너무 자주 들어서 그 중요성을 간과하지만 사실상 그 말은 엄청난 말입니다. ‘그리스도’란 ‘기름 부음을 받은 자’를 뜻하는 히브리어 ‘메시야’의 헬라어 표현입니다. 메시야는 구약에서 원래 신권과 왕권을 다 가지고 이스라엘을 통치하는 분을 지칭하는 표현입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오랫동안 압제에 시달린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을 구원할 미래의 한 인물을 염두에 두며 ‘메시야’란 용어를 사용했습니다.
결국 메시야란 말은 ‘기름 부음을 받는 자’란 의미를 가진 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기름 부음을 매우 중시했는데 본문에는 기름을 부어서 아론의 대제사장권을 위임하는 의식이 나옵니다.
위임식은 다음 과정을 거쳤습니다. 첫째, 제물을 준비하는 과정입니다(1-3절). 둘째, 사람을 준비시키는 과정입니다(4-6절). 셋째, 위임 받을 사람에게 기름을 붓는 과정입니다(7-9절). 그처럼 누군가를 기름 부어 제사장으로 성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만큼 중요한 것이 2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기름 부음 받는 자에게 요구되는 것으로서 자신이 하나님의 성별된 자로서 하나님의 뜻을 행하며 사는 것입니다.
사무엘하 23장 1절 말씀을 보면 다윗은 죽을 때 이렇게 말했습니다. “높이 세워진 자, 야곱의 하나님께로부터 기름 부음 받은 자, 이스라엘의 노래 잘하는 자가 말하노라.” 다윗은 위대한 삶을 살았지만 자기가 왕이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높이 세워진 자’라고 지칭합니다. 그 말 속에는 자신을 세워주신 하나님에 대한 감사한 마음이 가득 담겨있습니다.
또한 다윗은 자신을 ‘야곱의 하나님께로부터 기름 부음 받은 자’라고 표현합니다. 그것은 자기 삶의 목적이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는데 있음을 분명히 자각하며 살았다는 뜻입니다. 그런 자각이 있었기에 산문적인 현실 속에서도 시인의 감성을 잃지 않고 ‘이스라엘의 노래 잘하는 시인’이 될 수 있었습니다. 시인은 영혼의 민감한 촉수로 남이 보지 못하는 현실을 보고 남이 듣지 못하는 소리를 듣습니다. 그처럼 하나님의 시각을 가지고 하나님의 소리에 민감한 상태에서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영적인 시인이 되십시오.
< 권위를 얻는 방법 >
또 하나는 백성들에게 요구되는 것으로서 기름 부음을 받은 자의 권위를 존중해주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분을 성별하고 좋은 결의를 해도 사람들이 순종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입니다. 그러므로 권위에 대한 순종적인 자세도 대단히 중요합니다. 권위에 복종할 줄 아는 것은 성도의 최고 미덕입니다.
다윗은 사무엘로부터 이스라엘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았지만 여전히 사울 왕의 신하였습니다. 그때 다윗이 사울을 제거하고 스스로 왕이 되었습니까? 아닙니다. 사울은 다윗을 정적으로 생각하고 수없이 죽이려 했습니다. 그래서 다윗도 얼마든지 사울을 죽일 명분이 있었지만 사울을 죽이지 않고 항상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부음을 받은 내 주를 치는 것은 여호와의 금하시는 것이다.” 그처럼 권위를 존중하는 자세가 있었기에 나중에 자연스럽게 이스라엘의 위대한 왕이 될 수 있었습니다.
현대 사회가 혼란한 가장 큰 이유는 권위를 부정하고 과도하게 자기 권리를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모와 스승과 공권력의 권위를 부정하면서 오히려 부모는 자식의 종이 되고, 스승은 학생들의 종이 되고, 시장은 시민의 종이 되라고 합니다. 한편으로는 맞는 말입니다. 예수님도 제자들의 종이 되어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시며 제자들도 그렇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권위를 가진 자의 겸손한 자기 통제를 요구한 교훈이지 실제로 윗사람을 종처럼 여기라는 교훈이 아닙니다.
실제로 예수님이 제자들이 종이 되셨습니까? 제자들은 여전히 예수님의 제자였습니다. 학생이 스승을 종으로 생각하면 그것은 크게 잘못된 태도입니다. 자식이 부모를 종으로 여기면 성경 말씀대로 돌에 맞아 죽어야 마땅한 태도입니다. 또한 시민이 공권력을 존중하지 않으면 그 사회는 남아날 수가 없습니다. 권위가 부정될 수 있는 유일한 때는 어떤 일이 명백하게 하나님의 뜻에 위배될 때입니다. 그러나 그때조차도 기본적으로 권위를 최대한 존중하는 밑바탕은 확고해야 합니다. 권위를 존중해줄 때 권위를 얻습니다.
ⓒ 글 : 이한규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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